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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B하이라이트]

    STB다시보기 | 역사 뒤집어 보기, 역썰 - 3회 가야사(1) 임나를 부활시키다


    강사: 이완영 사단법인대한사랑 사무총장

    많은 국민들이 가야사 복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계의 움직임을 보면 가야사 복원이 아닌 가야사 파괴를 하고 있기에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 가야사와 관련한 현실적인 문제를 3회에 걸쳐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임나를 부활시키다’라는 주제로 현실을 고발하고자 합니다.

    2012년 CRS보고서 사건


    2012년에 고구려사 등에 대한 중국의 역사 왜곡 주장을 담은 미국 의회 조사국 보고서를 CRS보고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 등장하는 4세기 한반도 지도는 우리 정부 기관에서 발송한 자료를 그대로 실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토가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4세기에 일본이 우리 한반도에 쳐들어와서 고구려 백제 신라를 식민지화했다는 일본의 황당한 주장에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2012년 CRS보고서 사건’이라고 하는데 이 사건이 당시 국회를 통해 드러났지만 관련자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임나=가야로 주장하는 역사학계의 현실


    일본이 우리나라의 고대사에서 특히 가야사를 이야기할 때 임나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야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임나=가야’라는 개념을 잡고 연구를 합니다. 이 개념을 가지고 가야사 관련 모든 석박사 논문들이 이뤄집니다.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얘기하지만 모두 새빨간 거짓말인 것입니다.

    임나가 정착할 수 있도록 우리 학계에서 계속 거짓된 근거 자료가 나오고 있는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런 우리 역사학계의 황당한 태도에 힘입어서 일본이 아베 정권 시절 임나일본부설을 일본 교과서에 등재하면서 정사正史로 만들어 버립니다. 아베 정권에서 임나를 ‘가야’로 공식 표기를 한 것입니다.

    가야사를 부정한 국립중앙박물관


    가야사에 대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 학계는 가야사를 반드시 ‘임나=가야’라는 공식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가야사를 연구할 때 우리나라 역사서의 가야 지명은 절대로 넣지 않고 『일본서기日本書紀』를 기반으로 가야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2017년 6월에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지시하게 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야본성-칼과 현>이란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진행했습니다. 가야사를 복원시킨다고 하면 가야사의 건국 시기가 언제인지, 건국자가 누구인지, 가야인들의 이동 경로 등을 밝히는 것이 상식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야 전시회를 할 때 가야 건국사를 부정해 버렸습니다. 김수로왕과 허황후로부터 시작된 가야사를 신화로 바꿔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예 가야 건국사를 빼 버립니다. 김수로왕릉도 가짜고, 허황후란 인물도 허구 인물이라고 하면서 가야사 복원이 아닌 가야사를 완전히 파괴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일본 교과서에 있는 임나일본부의 지도를 그대로 옮겨 놓은 지도를 전시했습니다. 우리 역사에 있는 김수로왕과 허황후는 부정하면서 『일본서기』를 인정하는 꼴입니다. 이것은 매국행위입니다. 왜 우리 역사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에서 주장하는 왜곡된 역사를 인정합니까?

    국립중앙박물관의 충격적인 4세기 연대표


    더 충격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4세기 연대표를 보면 ‘366년에 가야 탁순, 백제와 왜의 교류 중개(서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서기)는 『일본서기』를 말합니다. 또 탁순이라는 지명도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지명입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내용이 나옵니다. ‘369년 가야 7국(비사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백제와 왜 연합 공격을 받음(서기)’이라는 369년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369년은 『일본서기』에서 신공왕후神功王后가 한반도의 삼한을 정벌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를 복속했다고 하는 연도입니다. 신공왕후란 인물은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적도 없습니다.



    일본이 4세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를 복속했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일본의 주장을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69년을 중요한 연대로 표시하고 실제 있었던 역사인 것처럼 연대표에 기록해서 가야 전시회 때 전시를 했습니다. 이런 역사학계의 만행에 분노해서 2020년에 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를 통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요청했습니다.

    저희가 감사원에 감사까지 요청하자 역사학계에서 2020년 4월부터 5월 말까지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진행된 <가야본성-칼과 현> 2차 전시회에서는 문제를 제기한 지도에서 지명만 삭제하고 전시를 했습니다. 역사학계도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국민들을 상대로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가야사를 복원하는 전시회가 아닌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하는 전시회가 돼 버렸습니다.

    스에마쓰와 김현구의 위치 비정


    여기 지도를 보시면 일본 학자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의 위치 비정과 김현구의 위치 비정을 비교해 놓았습니다. 스에마쓰는 일제 식민사학자로 조선사편수회의 촉탁 위원이었으며, 광복 후에 서울대 사학과에서 지도를 한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평생 공적이라고 하는 것이 『일본서기』에 있는 임나 지명을 가야에 끼워 맞춘 것입니다. 없는 역사를 끼워 맞춘 것입니다.


    이런 인물이 주장하는 바를 우리나라에서 가야 연구에 손꼽히는 김현구라는 학자가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지도에서 좀 더 자세히 보아야 하는 지역이 강진, 나주, 전주입니다. 강진을 침미다례라고 하고, 나주를 반고라고 합니다. 모두 임나일본부설에서 나오는 지명입니다. 가야사를 유네스코에 등재한다고 하는데요, 이런 지명들을 수정하지 않고 등재한다면 우리나라가 4세기에 이미 일본의 식민지를 겪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일본서기를 두둔하는 식민사학자들


    우리 역사학자의 주장을 담은 여기 신문 기사를 보면 “임나일본부설 추종 학자 일본에도 없다”는 제목의 기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는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는 학자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또 보시면 “고흥에서 5세기 전반 왜계 추정 고분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완전 정신 나간 얘기입니다. ‘왜계’라는 표현을 써서 어떻게든 임나일본부의 흔적을 우리나라에 남기려는 의도입니다.

    또 마한의 마지막 제국을 ‘침미다례’라고 합니다.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침미다례’라는 지명을 마한의 마지막 제국이라고 하는 우리 역사학자의 주장을 보며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왜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을 우리나라 지역에 가져다 씁니까?

    남원을 기문국으로 홍보한 시의회


    또 최근에 남원시가 가야사를 유네스코에 등재시키려는 노력의 하나로 “백두대간 가야 왕국 기문국을 만나다”라는 기사를 써서 홍보를 했습니다. 남원시 의회까지 나서서 기문국 남원 가야 고분에 대해 발표를 했습니다. 기문국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한 가야사 전시회 지도에는 넣었다가 부산시립박물관 2차 전시회 지도에는 삭제한 지명입니다.
    남원이 기문국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남원이 임나일본부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주장에 의하면 임나가 200년 동안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남원은 200년간 임나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일본 문화청의 만행


    지금 일본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정사로 만들기 위해 삼국 시대 유물을 임나 유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경남 창녕에서 출토된 유물을 임나 시대의 임나 지역 유물로 둔갑시켜서 일본 문화청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고 있습니다. 일본은 절대 고대 한반도를 식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양심 있는 학자들


    하지만 일본에도 『일본서기』의 허구를 인정하고 역사의 진실을 얘기하는 양심 있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일본 왕실의 만세일계萬世一系를 확립하기 위해 쓰였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상당 부분이 왜곡되어 있으며, 왕실이나 중앙 정부에 불리한 것은 무엇이든지 제거되었는데 이로 인해 객관성이 결여된 부분이 매우 많다.” - 마쓰모토 기요바리松本淸張

    “일본 왕통 혈족의 만세일계 세습제부터 날조이며, 일본 개국 왕은 김수로金首露왕의 후손임은 상식인데도 이를 부정, 징구왕후神功王后라는 유령을 내세웠다. 또한 임나일본부 설치를 날조했을 뿐 아니라 오진應神왕이 백제계 부여 후왕인 의라依羅이며, 기토라 고분의 40대 텐무天武왕은 신라 김다수金多遂임에도 일본인으로 변조했다.” - 하야시 세이고林靑梧

    “일왕의 기원을 가능한 오랜 옛날로 늘려 잡기 위해 있지도 않았던 일왕 이름을 조작하여 추가시켰다. 또한 참위설에 입각해서 제30대 스이코推古왕 9년(601년)부터 1,260년 전인 BCE 660년을 진무神武왕의 즉위년으로 만들었다. 이 제1대 진무왕의 이야기도 일왕가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권위를 세우기 위해 조작한 것이며, 사실로 볼 수 없다.” - 나오키 코우지로直木孝次郞

    “인류학적 시작에서 고찰해 보면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온 이주족들과 일본 원주족의 비율은 대략 85%대 15% 정도이다. 이주족들은 나라 시대까지도 한복을 입고 한국 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한국말까지 사용했는데 『고사기』, 『일본서기』, 『만엽집万葉集』 등에 아직 조작되지 않은 부분은 한국어의 한국식 한자 용어가 남아 있다.” - 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의 <한반도를 경유한 아시아 대륙인> 중에서

    “오늘날 일본어의 모어母語는 한국어이며,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실려 있는 신화와 전설은 전부 고대 한국인의 이야기다.” - 시즈미 기요시淸水記佳 교수


    이렇게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일본의 역사학자들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식민사학자들과 정한론의 후예들은 끊임없이 일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점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한론征韓論: 187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 정계에서 강력하게 대두된 조선에 대한 공략론으로 한반도를 정벌하여 일본을 배양하자는 주장이다. 오늘날 일본 극우파의 사상적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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