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역사 수메르

[이 책만은 꼭]

지은이 김산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신화와 인류학을 공부했다. 30여 년 동안 수메르의 신화^역사^문명 연구에 전념했고, 수메르어^악카드어 같은 고대어를 해독하며 인류의 ‘최초’를 찾아 나섰다. 지은 책으로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신화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청소년을 위한 길가메쉬 서사시』,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 등이 있다.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수메르어와 악카드어로 쓰인 점토판 원문을 모두 해독하여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저자는 생전 수메르학의 토대가 전무한 우리나라 고대 역사 연구의 현실을 늘 애석해했다. 이제 그의 책이 국내 수메르학의 고전이 되어 인류의 최초를 향한 지적 탐험의 정수를 독자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특히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2007년 12월부터 2021년 6월까지 13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용 조사와 자료 수집, 원고 집필에 몰두한 회심의 역작이다. 집필 도중 세 번의 시한부 선고를 받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해 병마와 싸워 가며 글을 썼고, 마지막 원고를 탈고한 지 4개월여가 흐른 11월, 안타깝게도 출간을 지켜보지 못한 채 영면했다.

19~20세기에 걸쳐 인류가 이루어 낸 최대의 업적으로 꼽히는 사건은 ‘수메르Sumer의 발견과 부활’이었다. 이후 가속화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작업은 신화와 종교의 뿌리, 문명의 처음,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수메르’라는 문명을 고스란히 부활시켰다. 5,000여 년 전, 지구상에 미개와 야만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받았던 그 시절. 수메르인들이 이룩한 위대하고도 찬란한 문명이 2,000년 넘게 인간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가 하나하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유사 이래 인류가 쌓았던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곳곳에 불과 150년 전까지도 전혀 몰랐던 ‘수메르의 염색체’가 숨어 있었다. 서구인들에게 ‘최초’라는 타이틀을 잘못 부여받은 그리스 신화와 히브리 신화는 수메르 신화에서 출발했다. 신화뿐 아니라 문명과 역사를 비롯한 모든 것이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그토록 영생불멸을 갈구하면서 믿어 왔던 종교와 철학의 뿌리가 수메르에 있었다.

기원전 6500년경부터 수메르인은 마을을 일구고, 힘을 합쳐 농사를 짓고, 권력과 도시를 창조해 내더니 전쟁과 평화의 변주곡 안에서 국가와 문명을 탄생시켰다. 이제 수메르의 시작에서 멸망까지 약 4,500년 동안(BCE 6500~BCE 2004)의 기록을 통해 ‘최초’의 역사 시대를 만나 보자.


이 책의 구성


이 책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총 4부와 덧붙이는 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최초의 도시 문명국’과 2부 ‘최초의 역사’는 수메르 문명의 기원과 역사가 서술되어 있다. 3부 ‘수메르 암흑기’는 악카드 제국에게 나라를 빼앗긴 상황과 독립 전쟁을 다루고 있다. 마치 대일 항쟁기 때 조선인의 신세를 보는 듯했다. 우리는 35년이었지만, 수메르인들은 181년 동안 악카드 제국의 압제 아래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4부 ‘해방과 통일 그리고 종말’에서는 악카드 제국에서 벗어나는 과정과 수메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다루었다. 200여 장의 현장감 넘치는 지도와 설형문자로 된 점토판 등의 시각 자료와 상세한 주석이 달려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수메르 문명의 통사通史이다.

여기에 덧붙이는 글은 이후 수메르 문명의 붕괴 과정과 수메르 문명이 발굴되는 과정 및 최초 역사가 왜곡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마치 우리의 역사 왜곡 현장과 비슷해서 인간 삶의 과정은 어찌 이리 비슷한가 하는 생각을 가지며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만의 특징 - 최초의 역사와 그 역사 왜곡에 대한 기록


1차 사료를 근거로 한 번역
웹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 뻔한 수메르의 역사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았다. 내 앞에 점토판과 석판에 기록된 사료들이 첩첩했다. 나는 설형문자를 하나하나 짚어 가며 읽기 시작했다. …… 제대로 된 수메르의 역사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 <여는 글>에서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5,000년 전 제작된 수메르어 점토판이라는 1차 사료를 근거로 만들어졌다. 전 세계 18개 박물관에 보관된 수백 장의 점토판에서 설형문자 기록들을 일일이 발췌해 오기와 오독의 문제 가능성을 엄정히 검토한 뒤, 수메르 역사의 ‘미싱 링크missing link’들을 꼼꼼히 깁고 엮어 우리 눈앞에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으나 여태껏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수메르의 문명사를 짜임새 있게 복원해 냈다.

더욱이 영어 중역重譯에 의존하지 않고 수메르어 점토판을 한국어로 바로 해독해, 여타 번역서들은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 전문성을 보여 준다. 여기에 기존 학설의 모순과 오독을 바로잡는 30여 년의 연구와 13년의 집필 등 생애를 바친 장인 장신이 깃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수메르의 진면모를 보여 준다 - 이 책의 줄거리
이 책은 원原수메르인이 유프라테스강 주변 지역 오우에일리Oueili에 정착해 마을을 형성한 기원전 6500년경부터 우르 3왕조 멸망으로 수메르 문명이 지상에서 사라진 기원전 2004년까지 약 4,500년 동안의 이야기를 통째로 건져 올렸다. ‘수메르인의 경제-생활-문화’ 같은 식으로 나뉘어 이야기의 흐름이 툭툭 끊기던 기존의 교과서식 주제별 서술에서 탈피해, 역사적 맥락을 선명히 살린 시간순 서술로 박진감 넘치는 수메르의 진면모를 되찾았다.

최초의 도시가 발달하고, 대홍수가 대지를 집어삼키고, 영웅이자 왕인 길가메쉬Gilgamesh가 등장하고, 비옥토인 ‘에덴’을 차지하려는 끝없는 쟁탈전이 벌어지고, 최초의 수메르 제국이 개창하고, 끔찍한 부정부패가 자행되고, 악카드의 사르곤이 쳐들어와 수메르를 점령하고, 수메르 도시국가들이 독립운동을 펼치고, 왕과 신하 간의 권력 암투로 문명의 마지막 빛줄기가 꺼져 가기까지 피 튀기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 수메르의 대서사를 오롯이 담아냈다는 특징이 있다.

제국의 흥망성쇠
이 책은 수메르의 통사通史인 만큼 제국의 흥망성쇠가 그대로 담겨 있다.

수메르 땅은 (라가쉬 왕) 에안나툼이 벌인 전쟁의 광기로 피바다가 되었다. 수메르의 평화는 온데간데없었고 오직 먹고 먹히는 처절한 전쟁만이 있었다. 에안나툼은 눈에 보이는 도시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다. 어느덧 그가 정복할 곳은 더 이상 없었다. 에안나툼은 수메르의 남쪽과 북쪽의 도시를 모두 차지했다. 엘람과 수바르투까지 정복한 그는 모든 수메르 군주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 에안나툼은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전쟁을 택했다. 그는 ‘목재와 재화의 땅’을 모두 정복한 수메르의 영웅이었다. 에안나툼은 명실공히 수메르 ‘최초의 황제’였다. - 2부 17장 <최초의 황제, 에안나툼에서>


위 부분은 수메르 최초의 황제 에안나툼Eannatum의 이야기이다. 에안나툼은 여신 인안나Inanna의 남편으로 나온다. 수메르의 영광의 순간이다.

키쉬를 통합한 사르곤이 남쪽으로 칼끝을 돌렸다. 그는 아가데Agade의 아홉 부대를 이끌고 우루크로 쳐들어갔다. 우루크에서 수메르 황제 루갈자게씨Lugalzaggisi가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 그의 마지막은 끔찍했다. 루갈자게씨의 목은 엔릴 신전의 문설주에 걸렸다. 수메르 황제의 치욕이었다. - 2부 29장 <수메르 황제의 치욕>에서


위 부분은 악카드의 사르곤에게 처음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그 압제에 시달리는 시기의 시작이다.

수메르 독립 전쟁이 다시 일어났다. 수메르 도시들은 악카드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 수메르 전역의 도시들이 대대적으로 봉기할 태세였다. 수메르 북쪽과 남쪽 지도자들이 서로 힘을 모아 악카드를 쳐부술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 3부 4장 <나람-씬과 수메르 독립전쟁>에서


위 부분은 수메르인들의 독립 전쟁을 다루고 있다.

푸주르-슐기(수메르 황제의 충신)의 편지가 입비-씬(수메르의 마지막 황제)에게 도착했다. 푸주르-슐기는 편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이제 이쉬비-에라가 제 쪽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저를 도와줄 사람도 없고, 저와 연대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가 아직 저를 그의 손아귀에 넣지 못했으니, 그가 저를 덮치면 전하께 (도망)가겠습니다. 통촉해 주시옵소서!”

입비-씬이 답신을 보냈다. 왕은 마지막 충신에게 배신자 이쉬비-에라의 실체를 폭로하며 버텨 줄 것을 호소했다.

“나에게 오지 마라! 개 같은 성향을 지닌 마리 출신의 이놈(수메르의 배신자, 이씬의 이쉬비-에라)이 통치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 강토를 되찾으면 정말로 모든 이방의 땅에 우리의 힘을 알리게 된다. 급하다! 모두 포기하지 마라!” - 4부 8장 <배신자, 이쉬비-에라>에서


악카드의 압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수메르는 남쪽에서 라가쉬 왕 구데아Gudea가 나타나 성군으로서 선정을 베풀었고, 이어 우르 3왕조의 건설자 우르-남무Ur-Nammu가 수메르를 통일했다. 하지만 수메르는 내부 분열, 경제 파탄, 결정적으로 악카드인 이쉬비-에라Ishbi-Erra의 배신으로 스러졌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우르 3왕조의 왕들은 ‘악카드 제국 식민 통치 181년의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메르 멸망의 원인 - 과거 청산 실패와 망국
나라는 없어질 수 있으나 역사는 없어질 수 없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우르-남무는 수메르 재건에 성공했으나, ‘수메르 암흑기’라는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철저하게 악카드인을 멀리했어야 했다. 하지만 왕은 왕세자 슐기Shulgi를 악카드인과 정략적으로 결혼시켰고, 악카드 문화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였다. 슐기는 악카드인의 압제 시기를 잊고 있었다.

이는 마치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걸어온 ‘과거사 청산 실패’, 즉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식민사관이 여전히 한국 사학계를 지배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수메르의 운명이 어떠하였는지, 우리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최초의 역사’와 그 역사의 왜곡- 『수메르 왕명록』
약 150여 년 전인 1872년 12월 3일 영국인 조지 스미스George Smith가 『길가메쉬 서사시』의 대홍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면서 구약성서는 최고最古의 권위를 잃기 시작했다. 이후 서양 제국의 식자들은 ‘수메르의 땅’ 이라크로 모여들었고, 구약성서에 나오지 않은 왕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유물이 발굴되었다. 일명 『수메르 왕명록』이다. 이후 여기에 기록된 왕들의 행적을 알 수 있는 다른 증거물들이 쉴 새 없이 출토되었고, 이를 기준으로 역사를 다시 써야 했다. 1차 사료로 기록된 ‘최초의 역사’인 셈이다.

BCE 1817년 이씬Isin의 필경사筆耕士(손 글씨로 글을 쓰는 전문인으로 문자의 발명 이후 생겨난 최초의 사무직이며 수메르에서 유래됐다고 알려짐) 누르-닌슈부르Nur-Ninsubur가 제작한 『수메르 왕명록』이 수메르 역사의 표준이 되었다. 그러다 1877년 프랑스인 에르네스트 드 샤르제크Ernest de Sarzec가 ‘라가쉬의 성도聖都’ 기르수에서 수메르 역사를 찾아냈다. 그의 발굴(도굴)품은 당대 명문이 실린 사료들이었다.

여기에는 이른바 ‘에덴 쟁탈전’이 기록되어 있었다. 여기서 에덴은 비옥한 땅을 말한다. 우리가 아는 히브리인의 에덴의 원조가 된다. 이 에덴을 차지하기 위해 도시국가 라가쉬와 움마를 중심으로 해서 수메르 모든 도시들이 전쟁에 얽히고설켜 버렸다.

그런데 이 에덴 전쟁사와 『수메르 왕명록』이 충돌하였다. 즉 『수메르 왕명록』에는 라가쉬와 움마의 기록이 없었다. 라가쉬는 수메르에서 최대 영토를 소유한 도시 국가이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황제는 라가쉬의 에안나툼Eannatum이고, 우리의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성군도 라가쉬의 엔메테나Enmetena였다. 그런데 『수메르 왕명록』에는 철저하게 라가쉬 1왕조 통치자 11명과 움마 1왕조 통치자 12명이 지워져 있었다. 역사 왜곡이 자행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제대로 된 역사를 쓰고 싶다고 하였다.

누르-닌슈부르는 조국 이씬의 국력이 땅에 떨어져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조국이 수메르의 왕권을 가진 수메르 왕조이고 정당하며, 수메르의 마지막 왕조인 우르 3왕조의 진짜 (정통) 후계자임을 알리고자 했다. 도시국가 이씬은 수메르를 압제했던 악카드인의 피가 흐르는 ‘수메르의 배신자’ 이쉬비-에라가 세운 이방의 왕조이다. 이쉬비-에라는 자신을 믿어 준 우르 3왕조의 마지막 왕 입비-씬Ibbi-Sin을 배신하고 빈곤에 허덕이던 우르의 마지막 자본 보리[麥]를 빼돌린 사기꾼이다. 마치 번조선의 기준箕準왕을 배신하고 정권을 탈취한 찬적簒賊 위만衛滿과 같은 행태였다. 역사는 어찌 이리도 유사하게 진행되는가?

역사 왜곡의 주범은?
이 역사 왜곡은 마치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송두리째 잘라 버린 사마천이나 일본 식민사학자 및 그 후예들의 행태와도 맞닿아 있다. 저자는 이 역사 왜곡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방인이었으나 왕실로 들어간 사르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배신자의 기질’을 마음껏 발휘해 수메르 남쪽과 북쪽을 모두 차지했다. ‘이방의 왕조’가 수메르를 통치하게 되었으니 그 역사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 다시 쓰기’였다. 마치 일제가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역사 왜곡을 시작한 짓과 같았다. 『수메르 왕명록』의 필경사들은 키쉬Kish를 수메르 왕권의 출발지로 삼았다. 사르곤의 근거지가 바로 키쉬였기 때문이다.
- 덧붙이는 글 <수메르 왕명록> 역사 왜곡의 진범


오늘날 『수메르 왕명록』은 ‘수메르의 표준 역사 교과서’로 사용되었고, 저자는 약 3,840년 전에 자행된 역사 왜곡의 생명력에 몸서리쳐진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왜곡되고 잃어버린 한민족의 바른 역사를 반드시 되찾고 바로 세워야 하는 역사적인 소명을 각성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에덴 전쟁사’를 첫머리로 한 수메르의 바른 역사를 우리 앞에 내놓게 되었다. 그러면서 역사는 끊임없이 수정된다며, 역사가는 그가 평생 옳다고 읊어 대던 사실이 바뀌면 그 즉시 목에 세운 핏대를 누그러뜨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스스로 비난받고 비판받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적고 있다. 잘못된 일제 식민사관을 끊임없이 세상에 재생산하고 주입시키는 일제 식민사학자와 그 후예들이 경청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가며


- 역사는 거대한 조기 경보 시스템이다
(미국 저널리스트 노먼 커즌스, 1912~1990).
수메르에서 시작된 문명과 신화와 역사는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특히 서양 문명을 개명케 하였다. 하지만 ‘최초의 역사 시대’에 경험했던 적폐와 아귀다툼은 현대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수메르의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만든 종교는 서로 맞서고 있다. 유대교, 가톨릭교, 이슬람교, 기독교로 이들은 사랑보다는 비난, 반목, 대립, 증오, 이기심이 판치는 국면을 만들고 말았다. 말 그대로 아사리 난리판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수직 상승하여, 지구 사람들은 ‘욕망 극대 충족’의 희열을 맛보고 있다. 동시에 핵무기를 품고 산다. 지구 문명은 수메르가 멸망했듯이 단 한 번의 핵전쟁으로 끝장날지도 모른다. 저자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매서운 비판을 가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역사의 청맹과니로 현재를 그냥저냥 견디며 살지 말라고, 후손들에게 어떤 역사를 남겨 줄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말한다. ‘최초의 역사’와 그 ‘역사 왜곡’을 세상에 알린 저자의 꿈은 다음과 같고 그 울림은 깊었다.

나는 제국 없는 세상을 꿈꾼다.
나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꾼다.
나는 국경 없는 세상을 꿈꾼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가.
- <맺는 글>에서




서양 문명의 근원 - 수메르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
수메르의 좁은 진흙땅에서 정말로 갑자기 세계의 모든 고등 문명을 구성하는 단초들이 일시에 시작되었다. - 세계적인 신화학자, 캠벨 J. Campbell


수메르라는 명칭은 특정 국가의 이름이 아니고,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살던 사람들을 부르던 말이다.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정착하여 각각의 도시국가로 발전하였다. 대표적인 도시는 에리두(최초의 도시), 우루크(최초의 메트로폴리스), 우르(아브라함의 고향), 키시, 라가시(최초의 제국을 형성), 움마, 니푸르, 슈루파크(대홍수가 발생했던 도시) 등이다.

BCE 5000년경 ‘두 강 사이의 땅’에서 보리를 재배하면서 싹튼 수메르 문명은 BCE 3100년경에는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도시국가 체계가 확산될 정도로 성장하였다. 우리의 밝달국(배달국)보다 조금 늦은 시기였다. 도시 생활은 모든 사람이 농업에 종사하던 촌락 사회와 사뭇 달랐다. 수만 명이 사는 도시에 잉여 생산물이 늘어나자 식량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자가 많아졌다. 왕이 생겨났으며 지배 조직도 정비되었다. 일상 용품도 복잡하고 세련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도시국가가 발달하면 할수록 도시들 간에 분쟁도 더 많이 생기기 마련이다.

BCE 2900년경에 수메르의 우루크, 우르, 키시, 니푸르 등의 강력한 도시국가들이 교역로와 영토 문제로 전쟁을 되풀이하는 ‘초기 왕조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혼란기를 매듭짓고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일한 이는 사르곤Sargon왕(BCE 2334 ~ BCE 2279)이었다. 이때는 고조선 초대 단군왕검과 비슷한 시기이다. 사르곤왕은 셈족 가운데 하나인 아카드 출신이었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제국을 아카드 제국이라 부른다. 이 제국은 메소포타미아 땅을 100여 년 정도 지배하다가 5세 왕에 이르러 북쪽의 구티인에게 멸망당하였다(BCE 2193).

이렇게 ‘아카드 왕조 시대’가 끝나고 80년이 지나 수메르 출신의 우르-남무Ur-Nammu가 이민족을 축출하고 다시 통일 왕조를 세우니 ‘우르 제3왕조 시대(BCE 2112~BCE 2004)’이다. 약 100년에 걸친 우르 제3왕조는 수메르의 전성기이자 마지막 통일 왕조였다. 이 왕조가 동쪽에 자리한 엘람족의 침입을 받아 BCE 2004년경에 멸망함으로써 수메르인은 역사의 정식 무대에서 퇴장하였다. 수메르 멸망 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법전으로 유명한 함무라비 왕의 바빌론Babylon 왕조가 들어섰다.

서양 문명의 뿌리, 수메르 문명
수메르 문명은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로 꼽히는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문명보다 먼저 있었고,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수메르 문명에서 뻗어 나왔다. 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수메르 문명은 오늘날 서양 문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 최남단은 오랜 세월에 걸쳐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서 흘러온 퇴적물로 토양이 비옥한 데다, 비가 드문 건조지역이지만 관개수로를 이용하여 두 강에서 물을 공급받아 농사가 잘되었다.

수메르란 무슨 뜻인가?
수메르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신성한 물이라는 뜻(김상일), 두 번째는 문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타 네테르Ta Neter, 즉 ‘주시자注視者의 땅’이란 뜻(제카리아 시친)이다. 그리고 수메르 본래의 뜻은 키엔기르Ki-en-gir인데 이는 ‘고귀한(gir)주님들(en)의 땅(ki)’, 즉 ‘고귀한 주님의 땅’, ‘문명화된 통치자의 땅’이란 뜻(김산해)이라고 한다. 또한 바그다드 이북을 아카드라 하고, 이남을 수메르라 불렀다고 한다(문정창). 이에 저자의 다음과 같은 구절과 김상일 교수의 의견에 따라 ‘신성한 물’이 어느 정도 타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수메르는 물의 나라였고 수로의 나라였으며 운하의 나라였다. 물길을 따라 문명이 생겨났고 완성되었다. 물이 마르면 물길은 바뀌었고, 물길이 바뀌면 삶이 바뀌었다. 만사萬事가 물로 시작된 문명이었다. 문명이 시작된 뒤 도시는 더욱 팽창했다. 도시들은 경쟁하며 발전했다. 그럼에도 별 탈은 없었다.
- 책 2부 1장 <유프라테스강과 수메르인의 운명>


수메르인은 어디서 왔는가?
수메르의 창세 신화를 보면 수메르인은 후두부가 평평하고 머리카락이 검은 인종이다. 이는 전형적인 아시아 사람의 모습이다. 그리고 점토판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안샨Anshan으로부터 넘어왔다.’고 한다. 수메르어로 안An은 하늘, 샨shan은 산을 의미한다. 즉 이들은 환국 문명의 천산天山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은, 는, 이, 가’처럼 토씨를 사용하는 교착어를 사용하였고, 모음조화 현상과 ‘주어+목적어+서술어’의 어순을 지녔다. 우랄 알타이어 계통인 우리말과 동일한 문법 체계를 가졌다.

이들이 유프라테스강 유역으로 내려오기 이전 어디에 거주했느냐가 풀리지 않는 숙제거리인데, 서양학자들은 수메르인들의 두 가지 특징, 높은 산(지구라트)에서 신을 예배하는 것으로 보아 산악 지대에 산 민족이라는 것과 그들의 언어가 우랄 알타이어 계통의 언어로 보아 중앙아시아 산악 지대에서 내려온 것으로 추측한다. 어쨌든 수메르인들은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 지대에서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들은 동방에서 왔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수메르의 정신세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불규칙적이고 잦은 범람은 참혹한 재앙을 가져왔고, 개방적인 지형은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을 불렀다. 자연의 혜택보다는 재앙을 극복하는 데 힘써야 했던 수메르인들은 삶도 지극히 현세적인 삶을 꾸려 나갔다. 그들이 지닌 신에 대한 생각과 현세적인 가치관은 홍수 설화와 ‘길가메쉬 서사시’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수메르인은 자신들이 창조된 것은 신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라고 인식했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다. 신神은 대기, 태양, 바람 등 범신론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그래서 수메르의 도시들은 평원의 신, 바람과 공기와 하늘을 다스리는 신들, 포도와 곡물과 비옥함을 관장하는 신들을 섬기는 신전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수메르의 신관에서 가장 독특한 개념은, 신들 중에서 제일 큰 일곱 신이 있는데 그들이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며 그들에게 서열이 있다는 것이다. ‘운명을 결정하는 일곱 신’(dingir-nam-tar-ra 7-bi)들 중, 초기 왕조 시대에 우루크의 도시 수호신이었던 ‘신들의 왕’, ‘하늘 신’ 안An(하늘이며 신이라는 뜻)은 하늘로 올라가 하늘에 자리 잡았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여섯 신들은 수메르 주요 도시의 신들로서, 엔릴Enlil(대기신), 닌후르상Ninhursag(모신母神), 엔키Enki(지혜의 신), 난나Nanna(달신), 우투Utu(정의의 신), 인안나Inanna(사랑의 신)이다. 이 일곱 큰 신들의 모임에서 세상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수메르 신관은 ‘『수메르 신화』 - 조철수 지음, 서해문집’을 참조함)


설형문자楔形文字(쐐기문자)란?
설형문자는 기원전 3100년경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 지역에서 사용된 문자로, 그림문자에서 쐐기 모양의 획을 가진 문자로 발전했기 때문에 쐐기문자(cuneiform), 또는 설형문자라고도 불린다. 본래 수메르에서 수메르어를 표기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최초의 기록으로 메소포타미아 남부 우르크Uruk에서 기원전 31세기에 쓰인 것이 발견되었다. 수메르 쐐기문자는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이외에 이웃에 거주하던 여러 민족의 언어 즉 엘람어(Elamite), 카사이트어(Kassite), 고대 페르시아어(Old Persian), 후르리어(Hurrian)에서 차용해 갔다.

쐐기문자는 대개 점토판에 기록되었는데, 그 특성상 특별히 필기도구에 제약이 강하지는 않았으나 대개 갈대 가지를 뾰족하게 잘라 만든 철필로 썼다. 기록물로 쓰인 점토판은 기록의 양에 비해 그 무게가 심각한 수준으로 무겁다는 단점이 있으나, 그늘에서 잘 말린 경우 보존 능력은 돌을 깎아 새긴 것과 맞먹는 수준으로 후대에 등장한 파피루스, 양피지, 목간, 종이 등의 기록물보다 훨씬 보존성이 좋았다. 또한 재료를 구하기 쉽다는 것도 장점이었는데 그래서 남아 있는 유물도 제법 많은 편이다.

쐐기문자는 남부 이라크 지역의 우르크Uruk에서 수메르인이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첫째, 쐐기문자가 발견된 바로 그곳 우르크 지역이 수메르인들이 살았던 곳이라는 점이다. 환경적 증거로 인류 최초로 알려진 원시 쐐기문자의 기록서가 우르크 사원 에안나Eanna 경내에서 발견되었다. 둘째, 우르크는 당시 이미 도시로 번영하여 세계 최대의 도시로 성장했다. 후기 우르크의 인구가 2만에서 5만으로 크게 늘어났고, 크기가 2.5km²로 당시 세계 최대 도시가 되었다. 인구가 모인다는 것은 사회, 경제, 정치면에서 발전했다는 증거이다. 생산품, 물품, 노동력, 복잡한 행정들이 수반되면서 모든 것을 기억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점에 도달했고, 기록 유지가 필요해지면서 글자가 탄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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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 인류 최초의 히어로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수메르어 판본과 악카드어 판본으로 구성된 점토서판 원문 모두를 음역 및 한역을 하여 소개하는 작품이다. 문자를 발명하고 언어를 사용한 수메르인들이 남긴 놀라운 흔적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화된 거의 모든 것의 처음이었다. 사어死語가 된 언어와 문자를 더듬거리고 풀어쓰며 완성된 이 책은 30여 년간 지속된 저자의 힘겨운 수메르 여행길을 마감하는 역작임과 동시에 새로운 여정으로 나아가는 작품이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약 4,800년 전부터 126년 동안 지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위대했던 우루크를 통치한 영웅이자 폭군인 길가메쉬 왕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이다.

이 책 1부에서는 길가메쉬 서사시가 빛을 발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했으며, 본편인 2부에서는 모든 판본을 깊이 연구하여 한국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재구성했고 흥미진진한 해설을 더한 저자의 정성을 만날 수 있다. 3부에서는 ‘죽음의 공포’를 최초로 사유한 수메르인과 길가메쉬의 서사를 써 내려가며 느꼈던 저자의 감상문이 담겼다. 그리고 4부에서는 인류 최초의 무명 수메르에 관해 독자들이 궁금해할 정보들, 즉 길가메쉬 이전 황금시대의 이야기를 288행으로 압축해 놓은 수메르 신화의 귀중한 결정판과 수메르 도시국가 키쉬의 왕부터 우루크의 길가메쉬까지 이어지는 왕명록, 수메르에 뒤이어 등장한 최초의 셈족 국가 악카드의 시조 사르곤 1세에 이르는 연대기가 알차게 담겨 있다.

● 『최초의 여신 인안나』 - 국내에 소개된 유일한 인안나 신화이자 『인안나의 저승 여행』 해독본
약 4,000여 년 전 수메르와 함께 인간의 기억에서 잊힌 여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 여신은 자신의 신성神性을 이름과 모습을 바꿔 가며,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 그리스 문명권, 아라비아를 넘어 인더스강 유역까지 퍼져 나가게 했다. 그는 악카드의 이쉬타르, 가나안의 아스타르테, 히브리의 아스다롯,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아테나, 헤라에 이르기까지 사랑과 전쟁, 지혜, 풍요, 다산多産, 아름다움[美], 금성金星 등으로 상징화된, 모든 여신의 원형이 된 최초의 여신 수메르의 인안나Inanna였다.

『최초의 여신 인안나』는 거룩하고 위대한 여신 인안나의 사랑과 죽음, 부활의 서사시다. 이 책은 천제 안과 인간의 창조주이자 구세주 엔키, 인간에게 홍수를 내린 엔릴, 창조의 모신 닌후르쌍, 태양의 신 우투, 저승의 여왕 에레쉬키갈, 그리고 양치기 두무지와 하늘과 땅의 여신 인안나 등 수메르 신들의 이야기 속에서 신화의 ‘출발점’을 찾는다.

이 책은 2007년 출간한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의 개정판으로 이 책의 출간으로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와 『최초의 역사 수메르』에 이은 ‘수메르 3부작’이 완성되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초판의 저자 인터뷰 내용을 본문 주석과 도판 설명으로 재배치해 수메르 신화와 역사, 문화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 부록 『설형문자로 읽는 인안나의 저승 여행기』에 수메르어 해독 과정과 저자의 해설을 담아, 독자가 직접 설형문자를 해독하며 수메르 신화를 읽는 색다른 재미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