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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화]

    예화로 배우는 우주변화의 원리 | 달력[曆]에 얽힌 동서양의 문화전쟁 -역사 편(5)-


    김덕기 / STB상생방송 작가

    인류는 시간을 측정하고 기록하며 문명을 창조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시간 속에 살면서도 시대마다 지역마다 시간에 관한 기준이 달랐습니다. 이로 인해 인류 역사와 문화는 통일되지 못하고 분열되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달력 제정의 역사를 기후변화의 측면에서 알아보겠습니다.

    “ 선천개벽 이후로 홍수와 가뭄과
    전쟁의 겁재劫災가 서로 번갈아서
    그칠 새 없이 세상을 진탕하였으나
    아직 큰 병겁은 없었나니….
    - (도전 7:33:3)”


    서기전 6000년 : 지구에 무슨 일이?


    기원전 약 5600년쯤에 지중해의 수면이 높아져 북동부 지역에 홍수가 일어났고, 그 후 약 2년에 걸쳐 지금의 흑해가 만들어졌다. 그에 따라 생긴 난민들은 현재의 이라크를 포함해 주변의 다양한 지역으로 흩어졌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구약성경》에 기록되기 전까지 구전을 통해 전승되던 대홍수 이야기의 시간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 신시아 브라운, 『빅히스토리』 157쪽


    지금으로부터 11,700년 전에 영거 드라이아스기(소빙하기)가 갑자기 끝나면서 대홍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인류는 전 지구를 강타한 대홍수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아득한 옛날에 일어났던 대홍수는 전 세계에서 신화로 각색되어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약 1만 년 전에는 대홍수 시대가 끝나고 신석기 시대가 열렸습니다. 서기전西紀前(기원전; BCE) 6000년 전부터 서기전 4000년 전까지는 지구 연평균 기온이 15도를 넘는 온난기(1차 홀로세 기후 최적기)였습니다. 사람들은 최적의 환경에서 평화와 조화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서기전 6000년대 말부터 중동 지역 전역에서 요새와 유적지의 파괴층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서기전 6000년대 말에 고통과 혼돈의 역사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필자는 당시에 일어났던 대홍수가 그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서기전 4000년경부터는 사하라시아saharasia가 사막화되기 시작하면서 환경이 열악해졌습니다. 그로 인해 ‘나’라고 하는 자아自我에 대한 인식이 폭발하였습니다. 기온도 급강하해서 약 1,000년 동안 현재보다 기온이 약 0.2~0.6도 정도 낮았습니다. 이때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고 의식이 분열하면서 항시적인 전쟁과 대규모의 사회적인 불평등, 남성 지배 같은 상극성이 발현되었습니다.

    서기전 3000년 전부터 서기전 1500년까지는 현재보다 약 0.1~0.3도 정도 기온이 높은 온난기(2차 홀로세 기후 최적기)였습니다. 그러나 한번 굴러가기 시작한 상극의 수레바퀴는 강도를 더해 갔습니다. 특히 단군조선檀君朝鮮 시대 초기에 일어난 ‘9년 대홍수’는 상극성이 고착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지구의 9년 대홍수 : 우주 시간의 전환을 알린 사건


    지구처럼 우주에도 1년 사계절이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여름철 동안 장마가 발생합니다. 마찬가지로 우주 여름철에도 장마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홍수를 ‘우주의 여름철 장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 주기인 25,920년은 대년大年(Great Year), 2,160년은 대월大月, 72년은 대일大日입니다. 서기 2000년을 기준으로 2대월 전은 4,320년 전입니다. 4,320년은 지축 경사의 변동 주기로는 10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자전축 세차운동 주기로는 6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25,920÷6=4,320)입니다. 물병자리(보병궁)를 시점으로 하여 세차운동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었을 때 후반기의 말에 해당합니다. 9년 대홍수가 발생한 4,284년 전(서기전 2284년)과는 불과 36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9년 대홍수는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 주기 변동으로 우주의 시간 주기가 바뀌면서 일어난 대격변’이라고 보는 것이 필자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9년 대홍수를 1년 날수의 변동과 결부시키려는 시도가 있어 흥미를 끕니다. 후천개벽의 이치를 밝힌 『정역正易』에서는 『서경書經』을 인용하여 1년 날수가 요堯임금 때는 366일(제요지기帝堯之朞), 순舜임금 때는 365¼일(제순지기帝舜之朞)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9년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 1년의 날수가 바뀌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NASA 고다드 우주연구소의 기후 과학자 개빈 슈미트Gavin Schmidt에 따르면 “약 8,000년 전에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가 약 24.1도에서 현재의 23.5도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약 8,000년 전에 1년의 날수가 변경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

    *1) ‘How Earth's Orbit Shaped the Sahara’ by Anuradha K. Herath(「SPACE.com」2010.12.21.), ‘Could the Sahara ever be green again?’ by Donavyn Coffey(「Live Science」2020.09.27.) 참고


    그러나 1년의 날수가 바뀌기 위해서는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와 공전궤도가 변동하는 대격변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1년 날수가 변동한 시기를 특정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료를 취합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기전 2284년 : 9년 대홍수와 단군의 오행치수법


    서기전 2333년, 배달국이 문을 닫고 단군조선이 건국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우주의 시공간이 전환되었다는 걸 알리는 대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서기전 2284년에 ‘9년 대홍수’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에 대한 기록을 『단군세기檀君世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재위 50년 정사(단기 50, BCE 2284)년에 홍수가 범람하여 백성이 편안히 살 수 없게 되었다. 왕검께서 풍백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높은 산과 큰 하천을 잘 정리하여 백성이 편안히 거처하게 하셨다. 우수주에 이 내용을 기록한 비가 남아 있다. 재위 51년 무오(단기 51, BCE 2283)년에 왕검께서 운사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에 삼랑성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참성단이 곧 그것이다.(丁巳五十年 洪水汎濫 民不得息 帝命風伯彭虞 治水 定高山大川 以便民居 牛首州 有碑. 戊午五十一年 帝命雲師倍達臣 設三郞城于穴口 築祭天壇於摩璃山 今塹城壇 是也.) - 『단군세기檀君世紀』


    요임금 시절에 도도히 흐르는 홍수를 만나 천하가 물에 가득 차서 구주 사이가 막혀 두절되었고, 장강, 회하, 황하, 제수 등 4대 강이 막혀 통하지 않았다.(帝堯之時 遭洪水滔滔 天下沉漬 九州閼塞 四瀆壅閉.) - 『오월춘추吳越春秋』


    ‘9년 대홍수’에 관한 기록은 사서삼경 중 하나인 『맹자孟子』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삼과기문이불입三過其門而不入’(자기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면서 들르지 않았다)이라는 구절로, 그 주인공은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을 이어 하夏나라를 건국한 우禹임금입니다. 중원에서 대홍수가 발생한 건 요임금 말기인 서기전 2288년입니다. 대홍수가 일어나자 요임금이 곤鯀에게 치수를 맡겼지만 실패하였습니다. 요임금을 이어 권좌에 오른 우虞나라 순임금은 곤에게 책임을 물어 처형하였습니다. 그리고 곤의 아들 우禹를 사공司空에 임명하고 치수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우도 자기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면서 한 번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치수에만 전념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이미 치수에 성공한 단군조선의 초대 단군왕검께서 이를 불쌍히 여겨 부루태자扶婁太子를 사자로 파견하였습니다. 오행치수법을 전수받은 우 사공은 홍수가 발생한 지 22년 만인 서기전 2267년이 되어서야 치수에 성공하였습니다.
    *2)
    이때의 치적을 바탕으로 우는 하나라를 건국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2) 요순 시대의 홍수는 BCE 2288년~BCE 2280년까지 9년 동안 일어난 재해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禹가 치수 사업을 벌인 13년까지 포함하면 총 22년에 달하며, 그 기간 동안 범람한 홍수가 중국 전 지역을 삼켰다. ( 『증산도의 진리』 349쪽)



    재위 67년 갑술(단기 67, BCE 2267)년에 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우순虞舜(순임금)이 보낸 사공(우를 말함)과 도산에서 만나게 하셨다. 태자께서 ‘오행의 원리로 물을 다스리는 법’을 전하셨다.(甲戌六十七年 帝遣太子扶婁 與虞司空 會于塗山 太子 傳五行治水之法) - 『단군세기檀君世紀』


    그런데 증산 상제님께서는 “9년 대홍수가 창생의 눈물로 일어났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때 “요임금의 아들 단주丹朱가 한을 품으면서 원寃의 역사가 펼쳐지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요순지치堯舜之治를 일러 왔으나 9년 대홍수는 곧 창생의 눈물로 일어났나니 요堯는 천하를 무력으로 쳐서 얻었고, 형벌刑罰은 순舜으로부터 나왔느니라. (도전道典 4:30:3~4)

    무릇 머리를 들면 조리條理가 펴짐과 같이 천륜을 해害한 기록의 시초이자 원寃의 역사의 처음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깊은 원을 풀면 그 뒤로 수천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게 될지라. (도전道典 4:17:1~2)


    요임금 시대가 원한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은 당시에 인류의 상극성이 심화되기 시작하였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유가에서 태평성대로 일컫는 요순 시대가 사실은 상극이 성행한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김상일 교수도 『카오스와 문명』에서 ‘서기전 2000년경을 중심으로 하나였던 인간의 의식과 문명이 여럿으로 분열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서기전 9700년에 일어났던 대홍수, 서기전 약 5600년경에 일어난 대홍수, 그리고 서기전 2284년에 일어난 9년 대홍수가 인류 문화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요순 시대 : 역법曆法을 둘러싼 동북아 전쟁


    역법曆法은 천체의 운행을 관찰하여 달력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천문학과 수학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동북아에서는 역법을 제정하고 이를 반포하는 것이 곧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래서 삼신상제님의 대행자인 천자天子만 역법을 제정할 수 있었습니다. 제후국은 천자가 만든 달력을 받아 사용해야 했습니다. 상고 시대엔 한민족의 조상인 동방 동이족이 천자권을 부여받아 통치하였습니다. 그래서 서방 화하족은 동이족의 종주국인 단군조선을 천자국으로 모시며 달력을 하사받아 사용하였습니다.
    *3)

    *3)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紀」에는 ‘신시神市 시기에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에는 칠성력七星曆이 나오는데, 책력을 짓는 방법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 요堯의 ‘오행의 변變’
    그런데 인류의 창세 역사를 담은 『부도지符都誌』에는 단군조선의 천자권을 강탈하기 위해 역법을 임의로 바꾼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하족華夏族의 우두머리였던 요堯임금이 천지의 질서를 어지럽힌 ‘오행五行의 변變’을 일으킨 것입니다.

    요가 곧 9주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5중에 사는 제왕이라 칭하여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 때에 거북이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부문負文과 명협蓂莢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하여, 그것으로 역을 만들고 천부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의 역을 버리니, 이는 인간 세상의 두 번째 큰 변이었다.(堯乃劃地九州而稱國 自居五中而稱帝 建唐都 對立符都 時見龜背之負文 蓂莢之開落 以爲神啓 因之以作曆 廢天符之理 棄符都之曆 此 人世二次之大變) - 『부도지符都誌』 17장


    『부도지』에서는 지소씨가 일으킨 ‘오미五味의 변變’과 요임금이 일으킨 ‘오행五行의 변變’을 인류사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
    ‘오행의 변’은 기존의 오행의 법을 버리고 자기 방식대로 만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행은 본래 수평적 관계인데, 5토가 중앙에서 사방을 통제하는 수직적 관계로 잘못 설정한 것입니다. 나아가 요임금은 나라를 당국唐國이라 하고 당도唐都를 세워 천자국이었던 단군조선의 부도符都와 대립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부도의 13월 28일 달력을 버리고 12월 30일 달력을 임의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역법의 화禍’라고 합니다.
    *4) 『부도지』에 따르면 요임금은 마고 시절에 포도를 따 먹어 오미의 난을 일으킨 백소씨白巢氏족의 일파인 지소씨支巢氏 족의 후예라고 한다.


    - 순舜의 배신
    이에 단군왕검께서 재앙을 막기 위해 부도의 사자인 유호씨有戶氏를 요에게 보내 과오를 지적하고 설득하였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단군조선의 신하였던 유호씨(고수瞽瞍=高叟)의 아들 순舜이 부도의 진리를 거부하고 요를 이어 제위에 올랐습니다.
    *7)
    유호씨는 작은아들 유상有象과 함께 수년 동안 첫째 아들 순과 싸웠습니다. 마침내 요는 순에게 배반을 당해 옥에 갇혀 있던 중 죽고, 순은 창오의 들로 도망치다가 우禹의 추격을 받아 숨졌습니다. 이것이 단군조선의 유호씨와 요순 사이에 일어난 ‘1차 전쟁’입니다.
    *7) 『맹자』에는 순임금의 아버지가 ‘고수瞽瞍’라고 나온다. 그런데 대야발이 쓴 『단기고사』에는 ‘고수高叟가 중신 고시高矢의 친형’이라고 적고 있다. 고수瞽瞍의 실제 이름이 고수高叟이며, 단군조선의 중신이었던 고시의 친형이어서 단군왕검의 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하나라 우禹의 배신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순을 제거한 우禹는 부도를 배반하고 하夏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도산塗山에 제단을 만들어 주변의 종족들을 규합하여 세를 불렸습니다. 유호씨는 우에게 또다시 오행의 화를 일으키지 말라고 경고하고 토벌에 나섰습니다. 그러자 우의 아들 계啓가 군사를 이끌고 나섰습니다. 이것이 유호씨와 계 사이에 일어난 ‘2차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우가 죽고, 유호씨가 계를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유호씨는 하나라 백성들이 진리에 눈이 먼 것을 고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무리를 이끌고 서남의 제족諸族을 가르치기 위해 떠났습니다. 이상의 내용이 『부도지』에 기록되어 있는 ‘오행의 변’입니다.
    *8)

    *8) 이찬구, 『고조선의 오행과 역법 연구』 참고


    그런데 ‘요순우堯舜禹의 배은망덕한 행동이 우주 시간의 변동과 맞물려 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입장입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요임금이 당나라를 다스리던 시기는 9년 대홍수가 일어났던 때입니다. 9년 대홍수는 우주의 시공간이 바뀔 때 일어난 개벽 사건입니다. 단군조선에서는 오행치수법을 통해 이를 다스렸지만, 요임금은 이를 다스리지 못해 백성이 고통에 빠졌습니다. 따라서 9년 대홍수를 전후로 일어난 극심한 기후변동으로 사회적인 혼란이 거듭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황제헌원黃帝軒轅의 후손임을 자처하며 반역의 꿈을 키웠던 요임금이 이를 기회로 단군조선에 반기를 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단군왕검은 요순이 중원의 홍수를 다스리지 못하자 이를 불쌍히 여겨 부루태자를 사자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순임금의 신하였던 사공司空 우禹에게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과 『황제중경黃帝中經』을 전수하였습니다.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紀」에 의하면 ‘오행치수법과 『황제중경』이 부루태자(2세 단군)에게서 나와 우 사공에게 전해졌는데, 후에 기자箕子가 은나라 주왕紂王에게 진술한 홍범구주洪範九疇 또한 『황제중경』과 오행치수설’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천하를 올바르게 다스리는 대도가 담긴 ‘홍범구주’ 사상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하사받은 우와 아들 계가 이를 역으로 이용하여 단군조선을 배신하고 천자가 될 꿈을 꾼 것으로 보입니다.

    단군조선의 달력 : 마고력 - 여름철 날수 28일×13월


    단군조선에서 사용한 달력을 마고력麻姑曆이라고 합니다. 마고력은 마고수인 성수性數 1·4·7, 법수法數 2·5·8, 체수體數 3·6·9를 가지고 만든 달력입니다. ‘12월 30일’을 바탕으로 하는 현재의 달력과 달리, ‘13월 28일’을 바탕으로 합니다.

    마고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13월 28일은 364일(13×28)입니다. 1년은 약 365.25일이므로 12개월은 28일(12×28=336)로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달은 윤일閏日을 넣어서 29일로 만들면 365일(336+29=365)이 됩니다. 남는 0.25일은 4년이 되면 1일(0.25×4=1)이 됩니다. 그러므로 4년마다 윤일을 한 번씩 더 넣어서 366일(365+1=366)로 만듭니다. 이렇게 하면 지금처럼 달력을 만드는 데 복잡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달력을 한번 만들면 영원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9)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임금이 단군조선으로부터 천자권을 탈취하기 위해 복잡한 역법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9) 마야인들이 사용한 마야력도 13월 28일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인류의 재난과 타락 이전에 지구 전체가 시원력인 마고력을 사용한 하나의 문명권이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필자가 요임금이 일으킨 ‘오행의 변’보다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있습니다. ‘더 편하고 계산법이 단순한 13월 28일의 마고력을 버리고, 왜 복잡한 12월 30일 달력을 만들었나?’ 하는 점입니다. 이는 유가에서 요순 시대를 태평성대로 왜곡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유가에서는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위를 선양禪讓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堯가 덕이 쇠해서 순舜에게 구금당했다. 그 후에 단주丹朱를 언偃 땅에 가두어 놓고 부자지간에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라는 『사기정의史記正義』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요는 순에게 순리대로 왕위를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상제님께서도 “세상에서 요순지치堯舜之治를 일러 왔으나 9년 홍수는 곧 창생의 눈물로 일어났나니 요堯는 천하를 무력으로 쳐서 얻었고, 형벌刑罰은 순舜으로부터 나왔느니라.”(도전道典 4:30:3~4)라고 하시면서 역사의 진실을 밝혀 주셨습니다.

    요임금은 자신의 형 지摯를 죽이고 무력으로 싸워서 천하를 얻었습니다. 순은 왕위에 오른 뒤에 다섯 가지 무거운 형벌(오형五刑)을 만들어 자신의 정책에 반발하는 세력을 처단하고 박해하였습니다. ‘9년 대홍수’는 요순 시기에 죽은 창생들의 원한과 저주로 일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요임금이 자신의 악행을 감추고 자신의 통치 시기를 이상 세계로 둔갑시키고자 역법을 자의적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10)


    365.25일은 우주 여름철의 1년 날수입니다. 지구가 타원형 공전궤도를 한 바퀴 도는 기간입니다. 마고력처럼 13개월 28일 달력을 사용할 때 맞아떨어집니다. 그에 비해 360일은 우주 가을철의 1년 날수입니다. 12개월 30일 달력을 사용하면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그러므로 12개월 30일 달력은 지구가 정원형 공전궤도를 도는 후천 가을철에 사용하게 될 정력正曆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요임금이 만든 달력은 후천 정력에 맞춘 달력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후천 가을철의 이상적인 달력을 우주 여름철에 억지로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현실과 맞지 않으면 백성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요임금이 후천의 이상을 담아 제정한 달력은 현실과 동떨어진 달력이었습니다. 인류가 우주 여름철의 자연 섭리를 거스르는 달력을 사용하면서 몸과 마음에 병이 들고 급기야 문명의 위기를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10) 소강절의 원회운세元會運世 시간표에 따르면 우주 1년의 12회(달) 중에서 자회子會부터 사회巳會까지는 선천, 오회午會부터 해회亥會까지는 후천이다. ‘요임금 등극 후 서기전 2217년(갑자)부터 오회가 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로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되므로 아직 완전한 후천이 아니다. 그래서 오회 중천中天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이찬구, 『고조선의 오행과 역법 연구』 참고) 따라서 오회 시대의 전반기는 우주의 여름철에서 가을철로 바뀌는 환절기라고 할 수 있다.


    역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은 인간 세상에 화복의 단서가 되니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그 옛날 오미의 화가 한 사람의 미혹됨에서 나왔고, 만대에 걸쳐 산 사람에게 미치고 있는데 지금 또다시 잘못된 역법으로 인한 화가 장차 천세의 진리에 나쁘게 미칠 것이니 두렵기만 하구나.(故 曆之正與不正 人世禍福之端 可不愼哉 昔世五味之禍 出於一人之迷惑 及於萬代之生靈 今且曆禍 將欲及於千世之眞理 懼矣哉) - 『부도지符都誌』 22장

    서양의 역법과 황도 13궁 : 왜 12월×30일 달력을 만들었을까


    동양에서 일어났던 달력 전쟁은 수천 년 후에 서양에서도 벌어졌습니다. 황제 율리우스와 교황 그레고리가 천지의 이치를 무시하고 달력을 자의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달력을 자기 편의대로 바꾸고 달의 이름을 황제 자신의 이름으로 교체하고 30과 31을 자의적으로 만든 율리우스력이나 교리에 부합시킨 그레고리력도 마찬가지 비판의 대상이다. 부도지에 의하면 이것은 하늘에 죄를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지금 인류가 인류세를 맞아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하늘에 죄를 얻음, 다시 말해서 달력을 함부로 만들어 사용했기 때문이다. - 김상일, 『부도지 역법과 인류세』 52쪽


    그들은 왜 자연 섭리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12월, 30일 달력을 만들 것일까요? 여기에도 요임금과 같은 의도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로부터 서양에서는 원圓을 이상적인 신의 형상으로 여겼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천상의 등속 원운동을 이상적으로 여겼습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고대 세계에서 수학 지식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들은 하느님을 완벽한 구球로 상상했다. 하나의 구가 정확하게 동일한 크기의 다른 구들에 둘러싸여 있고 모든 구가 서로 맞닿도록 하면, 중앙의 구는 정확히 12개의 구로 둘러싸이게 된다는 사실을 고대인들은 발견했다. 신인과 12사도의 이미지는 기하학의 그러한 가르침을 암호화한 것이다. - 티모시 프리크·피터 갠디, 『예수는 신화다』 70쪽


    그래서 필자는 수메르인들이 역법을 12, 30에 맞추기 위해 천문을 왜곡시킨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11)
    왜냐하면, 현대의 12개 별자리가 황도 12궁의 개념으로 등장한 것은 서기전 3900년경 수메르Sumer의 기록이 최초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고대 유물들을 보면 시대와 문명권에 따라 황도대의 별자리와 숫자들이 조금씩 다르게 나옵니다. 예를 들어 잉카Inca나 마야Maya 등 아메리카 문명권에서는 20궁으로, 바이킹Viking과 켈트Celt족들은 13궁으로 나누었습니다.
    *11) 순태음력純太陰曆(purely lunar calendar)을 항성월恒星月(27.32일)이 아닌 30일에 가까운 삭망월朔望月(29.53일)로 만든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순태음력을 삭망월(29.53일)을 바탕으로 한 12개월 달력으로 만들면 1년이 약 354.37일이 되고, 항성월(27.32일)을 바탕으로 한 13개월 달력으로 만들면 약 355.18일이 된다. (그림 참조)


    역사가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등에서도 이들은 12:60을 사용했고, 서양 전통은 이런 수메르-바빌로니아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 1과 12의 분리는 창세기 에덴동산에서 야훼 신의 주장이고, 애초부터 1과 12를 구별하지 않고 ‘13’으로 본 것은 뱀이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후자를 악마화하여 13을 추방하고 말았다. 드디어 10세기경 가톨릭교회는 바빌로니아 점성학을 그대로 수용하여 13을 추방하고 12+1을 채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채택은 스페인이 마야를 정복할 때 12+1로 13을 공격하고 소멸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 김상일, 『부도지 역법과 인류세』 234~235쪽


    그런데 최근 들어 이에 관한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20~30년 전부터 황도대의 별자리가 13개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입니다. 13번째 별자리는 ‘뱀주인자리(Orphius, 땅꾼자리)’입니다.
    *12)
    뱀주인자리는 오리온자리 반대편에 위치하며 여름 저녁 하늘에서 주로 볼 수 있습니다. 뱀주인자리의 존재는 이미 3,000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단지 수메르인들에 의해 황도대 별자리로 사용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따라서 13월 28일의 마고력은 원래 황도 13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진정한 황도 12궁은 지구가 정원형 궤도를 도는 360일 후천 정력正曆 시대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12) 뱀주인자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의 별자리로 알려져 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인류 최초의 의사로 뱀에게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식물을 알게 되었고, 그 후 죽은 사람도 살려 낼 수 있는 신비한 의술을 펼친다. 그러자 제우스가 죽음은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이며 어떤 의술로도 깨뜨릴 수 없는 법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를 번개로 죽인 후 별자리로 만들어 하늘에서 영원히 살게 해 주었다.


    뱀주인자리에서 가장 남쪽의 별 두 개 사이를 황도가 가로지르지만, 너무 짧은 구간이어서 전통적인 황도 12궁에는 포함되지 않아 왔다. 1928년 국제천문학연합이 88성좌를 확립하면서 별자리의 개념을 별자리마다 정해진 영역을 주는 것으로 바꾸었으며 이에 따라 뱀주인자리에 속하는 황도대가 넓어졌다. 그러나 새로 편입된 구간은 그 남쪽에 전갈자리의 매우 밝은 별 안타레스Antares가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는 전갈자리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국제천문연맹의 결정 이후 뱀주인자리가 황도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강해졌다. - 「나무위키」 ‘뱀주인자리’ 참고




    노아의 홍수와 9년 대홍수 비교
    완전히 새로운 시대라는 뜻의 홀로세Holocene가 시작된 이후, 인류는 세 번의 대홍수를 경험하였습니다. 홀로세를 연 서기전 9700년경의 대홍수, 서기전 5600년경에 발생한 대홍수, 그리고 서기전 2284년에 발생한 ‘9년 대홍수’가 그것입니다. 이는 지구과학에서 분석한 홀로세의 시간 구분과 대체로 일치합니다.

    지구촌을 강타한 대홍수에 관한 기록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노아의 홍수’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가 발생한 시기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성경의 연대기로는 노아의 홍수가 서기전 2500여 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창조과학자 오스굿J. Osgood은 서기전 2304±11년에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명의 창세기』의 저자인 데이비드 롤은 수메르 문명의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에 나오는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의 대홍수 이야기’를 근거로, 대홍수의 연대를 서기전 235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서기전 2284년(단군왕검 재위 50년)에 동방에서 일어난 9년 대홍수와 서기전 2304년에 발생한 노아의 홍수는 불과 20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9년 대홍수’와 ‘노아의 홍수’를 같은 사건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5)

    *5) ‘노아의 홍수 시절 중국에는 9년 대홍수가 있었다’( 「한韓문화타임즈」 2020.07.20.) 기사 참고



    그러나 길가메시가 서기전 2750년경에 우루크를 다스렸던 것은 맞지만, <길가메시 서사시>는 서기전 6000년 이전부터 구전으로 전승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홍수와 9년 대홍수를 같은 사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기원전 약 2100년에 수메르인들이 쓴 것이다. 최초의 도시국가였던 수메르는 현재의 이라크에 있는 유프라테스강 입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기원전 약 6000년 이전부터 구전으로 전승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는 인간이 동식물을 기르기 시작한 때이며 인간 역시 농업 생활에 길들여지기 시작할 때였다. - 신시아 브라운, 『빅히스토리』 153쪽


    그럼 ‘노아의 홍수’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필자는 9년 대홍수가 단독 사건을 기술한 것과는 달리, 노아의 홍수에는 모든 대홍수 이야기들이 혼재되어 있다는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6)
    다시 말해서 홀로세 전기에 일어났던 두 가지 대홍수에 관한 신화와 기억이 마지막에 일어났던 홍수 사건에 모두 흡수 통합되어 ‘노아의 홍수’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6) 『회남자淮南子』에 등장하는 ‘여와의 홍수 신화’와 『부도지』에 등장하는 ‘마고성의 홍수’가 전 지구적으로 발생한 ‘노아의 홍수’와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순태음력을 마고력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순태음력을 삭망월(29.53일)을 바탕으로 한 12개월 달력으로 만들면 1년이 약 354.37일이 되고, 항성월(27.32일)을 바탕으로 한 13개월 달력으로 만들면 약 355.18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항성월을 기준으로 하면 13개월 마고순태음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마고력의 13월 28일은 364일(13×28)입니다. 항성월을 바탕으로 만든 13월 달력은 이보다 8.8일(364-355.2)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13개월 중 4개월은 28일로 하고, 9개월은 하루를 빼서 27일로 만듭니다. 이렇게 하면 마고순태음력은 355일(4×28+9×27)이 됩니다. 그리고 남은 0.2일(355.2-355)을 처리하기 위해 5년마다 윤일(0.2×5=1)을 넣습니다. 그러면 1년이 356일(355+1)이 됩니다. 물론 마고태양력과 마고순태음력의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윤달을 넣어 주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태양력과 순태음력을 일치시킬 수도 있습니다. 삭망월(29.5일)과 항성월(27.3일)을 평균하면 28.4일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13개월 순태음력을 만들면 369.2일이 되어 태양력과 4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한 달을 28일로 하여 13개월 순태음력을 만들면 태양력과 거의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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