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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도수기]

    순환하는 천지 만물 속, 묘한 인연 외(차명호, 박윤경, 고복만)

    순환하는 천지 만물 속, 묘한 인연


    차명호(남, 68) / 서울강남도장 / 도기 152년 음력 5월 입도

    당뇨 수치로 건강을 챙기며


    제가 집안 내력으로 인해 30대 초반부터 혈압약을 복용해 오고 있는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5년 2월 즈음이었나 봅니다. 평소에 주치의 선생님께서 “차 선생님, 당뇨 초기 증세가 보이네요. 아직 수치가 높지는 않지만 관리를 좀 하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하시며 음식도 음식이지만 많이 걸으라고 하셨습니다. 혈압에 당뇨까지!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지만 마침 그 당시 살고 있던 곳이 한강 공원에서 가까운 곳이라 저녁때마다 한강에 나가 걷기 시작했습니다. 집이 바로 가로수 길 인근이라 반포대교를 넘어 일부러 보광동 산동네를 올라가 다시 한남동으로 내려와 한남대교를 지나 집에 오면 하루 저녁에 10km 정도를 매일 걸은 폭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걷던 어느 날, 한강의 무수한 자전거 중에서 바퀴가 작고 메인 프레임의 곡선이 유난히 보기 좋은 자전거 하나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자마자 눈에 꽂힌 자전거를 뒤따라 달려가 보았지만 작은 바퀴의 그 자전거는 금세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한강 공원에 나가면 혹시나 그 자전거를 만날까 싶어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한번 사라진 그 자전거는 다시 제 눈앞에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즈음이었나요. 태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여행 정보도 얻을 겸 해외 여행자 카페에 접속했다가 2년 전 한강에서 보았던 그 자전거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자전거 이름은 ‘브롬톤Brompton’으로 1976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접이식 자전거였습니다. 저만 몰랐을 뿐, 한국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브롬톤 자전거 매장으로 직행하여 구입! 매일매일 거의 브롬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자전거 카페에도 가입하여 활동도 하면서 브롬톤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습니다. 매일마다 자전거로 운동을 하다 보니 염려하던 당뇨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묘한 분과 묘한 인연이 되다


    그러던 2020년, 제가 리더가 되어 이화동 벽화마을 자전거 번개를 가기로 한 5월 마지막 주말, 그날 오셨던 분들 중 멀리 울산에서 오신 부부가 계셨어요. 그날이야 제가 처음으로 자전거 라이딩 리더를 맡아 제대로 챙겨 드리지도 못했지요. 그러다 그 이후로는 자주 만나게 되면서 집은 울산이지만 대전의 병원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하민석 선생님과 묘하게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쓴 ‘묘하다’는 표현이 그 상황을 표현하는 데 아마도 가장 적절한 단어인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그해 9월의 셋째 날에도 연남동 시티 라이딩에서 함께 라이딩을 하고 그다음 날엔 지방에 함께 라이딩을 가야 했는데, 집은 울산이요 직장은 대전인 하민석 선생이 오늘 밤 어디서 머물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서울 시내에 하룻밤 잘 숙소가 없겠느냐마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성남터미널에서 버스를 타야 했기에 제 입에서 불쑥 “오늘 밤 저희 집에서 주무시고 내일 아침 성남으로 가실래요?”라고 물었더니 이분 또한 불쑥 “아! 좋아요” 하고 방긋이 웃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초기라 쉽지 않은 초대에 쉽지 않은 결정인데도 유쾌하게 성사가 되었고, 느닷없이 손님을 맞이한 집사람도 아무 일 없었던 코로나 이전 때처럼 반가이 맞이해 주었지요. 그 이후로 시간만 나면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 라이딩을 함께 해 오면서 스물다섯의 나이 차를 초월한 편안한 친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보다 연배가 한참 아래이신 분인데도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특히 글 쓰는 솜씨가 보통을 넘어 자주자주 저를 놀라게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오랫동안 수행을 해 오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깊게 와닿은 진리의 주제들


    그러다 증산도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즈음. 주변에선 저를 염려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점점 쌓여 가는 신뢰 속에 ‘그래 한번 믿어 보자. 어떻길래 저토록 맑고 깊을 수가 있지?’ 하고 저도 저 나름대로 귀동냥, 눈동냥으로 또는 하민석 사수가 전해 주는 증산도의 기본 진리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교회를 다니다가 교회가 두 개로 쪼개지는 모습도 보았으며 큰아이를 미국에 혼자 유학 보내면서 열심히 다니지는 못했지만 가톨릭 성당에도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증산도의 진리 내용 중에 제 눈에 깊게 그리고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천지 만물은 순환 속에 존재한다.’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이 ‘우리 인간’ 바로 ‘나’였습니다.

    ‘이게 뭐지.?’라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무엇보다 ‘네 조상 네 부모를 으뜸으로 모셔야 한다.’, ‘네 조상 네 부모가 제1의 하느님이요! 상제님은 제2의 하느님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진리가 오랜 역사와 더불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것도.

    주옥같이 점철된 놀라운 세계관


    아직 제가 입도 초년생으로 앞으로 공부해야 할 것이 무수하지만 정말 주옥같이 좋은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에 놀랐습니다. 제 나이 을미생(1955년)으로 이제 내일모레면 저도 일흔이 되지만, 지금부터라도 공부해 보고 싶다는 용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를 강건하게 움직이고 따라오게 한 하민석이라는 한 사람이 저에겐 둘도 없는 힘이 되었습니다.

    지난주 6월 8일 수요일 그러니까 도기 152년 음력 5월 10일에 함께 입도식을 올린 후, 열흘이 되는 날인 오늘 아침에도 함께 아침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상생월드센터 착공 대천제에도 함께 참여했던 것은 크나큰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바람이 있다면 저의 사수가 후천개벽 시 큰일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의 이러한 마음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빌면서 입도수기를 마칩니다. ◎

    인생과 생존의 비밀이 풀리다


    박윤경(여, 49) / 대구수성도장 / 도기 152년 음력 5월 입도

    영성 분야에 관심이 생기며


    기독교를 신앙하는 어머니를 따라 모태 신앙인으로 여태껏 삶의 일부라 생각하며 교회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자라 오며 자연스레 생기는 진리적인 의문에 대해 그 누구도 속 시원하게 말해 주지 못했고, 교회 내에 만연한 부정적인 모습들, 이기적인 사람들, 갈급증 나는 진리에 점점 마음의 문은 닫혀 갔습니다.

    제 남편은 미군 군무원으로 미국인입니다. 남편이 평택 미군 기지에 와 있을 때 만났고, 결혼 후 여덟 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군무원인 남편을 따라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았고, 5년 전에는 일본에서 2년, 미국에서 1년 반, 독일에서 1년 반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뉴욕에서 회계사 과정을 공부하며 혼자 살던 제 큰딸아이가 2차 백신을 맞은 부작용으로 인해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습니다. 당시 독일에 있던 저는 딸아이가 그렇게 눈을 감고 발견되기까지 3일 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있다가 소식을 받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실 큰아이가 연락이 되지 않던 3일, 그 사이에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여자가 다가와 제 입술에 키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꿈이었지만 ‘웬 여자가 키스를 하냐.’고 살짝 밀어내기까지 했습니다. 그 사고가 난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제야 제 딸임을 알았습니다.

    엄마한테 와서 마지막 키스를 해 주고 간 것이었는데, 미련한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딸을 밀어냈다니. 그때부터 저는 ‘다시 한 번만이라도 딸아이를 볼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에 영성 분야로 많은 것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상생방송과 환단고기, 그리고 생존의 비밀


    그러던 중 아산에 사는 여동생이 『환단고기』를 한번 읽어 보라고 했고, 저는 그것을 읽지는 못했지만 책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딸을 보낸 슬픔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걱정되었는지, 남편은 한국행을 선택했고 저희 가족은 작년 11월 귀국하였습니다.

    남편의 발령지가 대구여서 우리는 친정인 아산에 한 달 정도 머무르다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아산 친정에 머무를 때 한번은 TV를 보다가 상생방송을 시청하였는데, 방송에서 태을주 수행을 하는 모습이 좋게 보였고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찾아보지는 못했습니다.

    대구로 내려온 우리는 집을 구할 때까지 호텔에서 두어 달 머물렀고, 올 2월에 집을 구한 뒤로 ‘당근마켓’이라는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집에 사용할 물건들을 이것저것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인도자인 권정륜 수석포감님이 올리신 『생존의 비밀』 책 나눔 글을 읽고서 저도 받을 수 있냐고 채팅방 문을 두드렸습니다. 권 수석포감님은 친절하게 답장을 주셨고 저는 그 글에 있는 상생방송 관련 문구를 보고 혹시 『환단고기』라는 책도 읽어 볼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휴대전화 관리를 잘 못해서 수석포감님 연락에 바로바로 답을 하지 못했고, 직접 책을 갖다주신다는 수석포감님과 시간적으로도 잘 맞지 않아, 결국 한 달 뒤에 택배로 『환단고기』와 『생존의 비밀』을 받아 볼 수 있었습니다.

    수행이 이렇게 좋을 수가


    정신없이 살다 보니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환단고기』를 읽기는커녕 『생존의 비밀』도 완독하지 못한 상황에서 수석포감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만나서 『환단고기』는 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일주일 뒤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고, 그때까지 『생존의 비밀』이라도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책을 읽었습니다.

    일주일 뒤 권정륜 수석포감님을 만났는데 우리는 마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너무 편했고 대화도 잘 통했습니다. 육아를 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수석포감님이 아이들인 민서, 부겸이와 2년 이상 새벽 수행을 지속하고 있다는 말에 나도 함께하고 싶다는 것과 수행을 통해 우리 큰딸아이를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수석포감님에게 새벽 수행을 해 보고 싶다고 연락을 했고, 만난 지 4일째 되는 날 대구수성도장 새벽 수행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인터넷과 상생방송으로 어느 정도 증산도 도장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봤기에 도장에 처음 갔을 때 크게 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새벽 수행을 21일 동안 해 보기로 하고 시작했는데, 생활 틀이 잡히지 않아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고 새벽 수행을 하러 가는 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수행하는 게 마음이 편하고 좋았습니다.

    매일 엄마와 새벽에 일어나 수행하는 민서와 부겸이를 보니, 저도 저희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수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21일 기간 동안 초등학생인 아들, 중학생인 두 딸을 차례로 데려와 함께 새벽 수행을 했습니다. 아이들도 늦게 자는 생활 틀이 바뀌는 게 쉽지 않아 밤을 새고 참석하긴 했지만, 차츰차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해서 새벽 수행을 함께 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6.12 대천제 때 가족을 인도하며


    21일 수행이 끝나고 6.12 대천제 때는 저희 아이들과 친정 가족 11명을 모두 인도해 그동안 접해 보지 못한 우리 역사, 우리 문화를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남편은 미국 출장을 갓 다녀온 뒤라 대천제 참석은 하지 못했지만 나머지 가족들이 함께해 주어 참 기뻤습니다. 대천제 행사 당일 더위에 지친 아이들 때문에 어른들도 끝까지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함께 참석한 여동생과 친정어머니는 긍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척신 발동이 시작되었는지, 평생을 기독교 신앙을 한 어머니 주변 지인들과 제 친구들이 걱정되는 마음에 증산도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정보들을 전달하기 시작했고 친정어머니의 반대가 심해졌습니다. 급기야 친정어머니와 여동생은 제가 입도식을 못하게 입도 예정일 날 아산에서 내려오겠다고 해서 입도식이 미뤄졌습니다.

    하지만 내려온다던 어머니는 일이 생겨 오시지 못했고 여동생만 내려온 상황이 됐는데, 이는 오히려 여동생을 도장에 인도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동생과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 또한 새벽 수행에 함께 참석했고 수행 후 수호사님 면담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도공을 조금 더 해 보고 싶다며 40~50분을 더 했고, 조카도 도공이 재미있다며 더 하는 것이었습니다.

    수호사님께서 수렴 교육도 잘 해 주셔서 동생은 오기 전보다 훨씬 마음의 문이 열렸고, 아산으로 가서 21일 정성공부도 해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조카도 어포(어린이포교회) 지도교사님과 어포 도생들이 잘 챙겨 주셔서 도장에 매일 나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날 오후에는 마지막으로 남편을 도장에 인도해서 제가 하는 수행이 어떤 것인지 알려 줄 수 있었고 온 가족을 도장에 인도하겠다는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이제 입도를 하고 나면 저부터 제대로 진리 공부, 수행 공부를 해서 쓰임을 받는 일꾼이 되고자 합니다. 이후 가족들을 한 명씩 정성을 들여 입도시키며 참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가족들을 정말 정성으로 수렴해 주신 노희봉 수호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새벽 수행을 너무 하고 싶은데 일어나지 못하는 제가, 저희 집에서 자고 새벽에 깨워 데려가 주시면 안 되겠느냐는 부탁을 했을 때, 흔쾌히 민서와 부겸이를 데려와서 자고 저를 깨워 함께 가 주시는 등의 정성을 쏟으신 인도자 권정륜 수석포감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저희 딸들이 도장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번역기까지 돌리며 수렴해 주신 정서인 청포 지도교사님, 저희 아들 수호를 잘 이끌어 주신 어포 지도교사 김예현 수석포감님, 남편과 저희 딸들이 도장 왔을 때 적극적으로 통역해 주신 김정엽 도생님과 늘 따뜻하게 맞아 주신 김자영 수석포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보은!! ◎

    삶의 여정 속에 만난 단비 같은 진리


    고복만(남, 75) / 인천주안도장 / 도기 152년 음력 5월 입도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


    저는 1948년 무자생으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과 유소년 시기를 부모님의 은덕으로 잘 자라나 그런대로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생각지 못했던 끔찍한 사고가 났습니다. 화약을 갖고 놀다가 화약이 폭발해서 오른손이 엄지만 남고 손바닥과 네 개 손가락 두세 마디의 살점이 모두 파열되어 뼈만 앙상하게 남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 정신이 혼미하여 어쩔 줄 모른 채 울고 있었는데 마침 우물에서 김칫거리를 씻고 돌아오던 어머니께서 놀라시며 울고 있는 제 손을 꼭 붙들고 사거리 병원에 찾아가 수술 등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장애인이 됐습니다.

    그 이후로 활기차고 명랑했던 제 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했고 친구들의 놀림까지 받으면서 자존심이 상해 원망만 쌓였습니다. 세월이 지나 고등학교 때 아버지께 합기도와 무술을 배우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비록 손가락이 없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남에게 절대 멸시당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고, 그러면서 유도 대회에 출전도 하고 나름 잘 지탱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대학을 가야 할지 진로를 정해야 할 시기에 또 낙심되는 일이 생겨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동네 아주머니 30여 명과 계를 만들어 회장직을 맡으시고 제일 친한 친구가 총무를 맡아 곗돈을 관리했는데, 계를 타는 날 친구인 총무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에 사고의 모든 책임을 회장인 어머니가 지게 되면서 곗돈을 다 물어내야 했고, 그 결과 가정까지 파탄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대학을 포기해야 했고 그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벗 삼아 괴로운 시간을 방황하며 지내 왔습니다. 저는 가정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에 취직을 결심하고 직장에 입사 지원을 했지만, 면접을 볼 때마다 손의 장애 때문에 계속 불합격 통보를 받아 실망감만 쌓였고 세상에 대한 원망만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술만 먹고 싸움이나 하면서 생활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저는 큰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싸움이 일어나 상대에게 큰 상처를 입혔고 경찰서에 끌려가 유치장 신세를 지고 합의를 하는 데 큰돈을 들였으며 부모님께는 불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큰아들이고 동생도 4명이나 있었는데 무책임한 제가 너무도 한심스러웠습니다.

    사고를 저지른 후 제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와 함께 장남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사색한 끝에 제가 더 이상 방황하고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장남으로서 책임감도 생기고 뭐라도 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였으며, 강원도 정선의 아가씨와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으면서 그런대로 평화로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그동안 찾아 헤매던 그 진리


    그러나 왠지 마음 한구석에는 늘 뭔가 허전함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밥 세 끼나 먹으려고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고, 무엇 때문에 내 마음은 이렇게 허전할까 하는 의문이 일었습니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 ‘사주명리학에 뭔가 답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서점에서 사주명리학 책을 사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중 인천대학에 평생 공부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역학 공부를 시작했고 명리 지도사에 합격하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또한 나름대로 명상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불교방송도 자주 보며 진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TV 채널을 돌리다가 생전 처음 보는 상생방송을 보며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제 삶의 여정 속에서 듣도 보도 못한 개벽 상황과 왜곡된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접하게 됐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삼신상제이신 하느님이 150여 년 전에 한반도 땅 전라도 고부군 객망리에 탄강하셨다는 엄청난 소식이었습니다.

    또 앞으로 후천 오만 년의 신선 세계가 펼쳐지며 지금은 후천 오만 년으로 넘어가는 우주의 가을 추수 기간이라는 내용과 내로라하는 훌륭한 선지자들의 예언들, 그리고 법사들의 강의 내용이 제 마음속으로 강하게 밀려 들어왔습니다. 바로 이곳이 제가 그동안 찾아 헤매던 진리가 아닌가 생각하며 계속 상생방송을 경청했습니다. 수행에도 관심을 갖고 상생방송에서 방영하는 아침과 저녁, 그리고 새벽 수행을 같이 따라 했습니다. 그러다가 도장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천주안도장을 방문하였고 수호사님과 상담하면서 진리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정을 하고 팔관법 공부를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삶의 여정 속에 목말랐던 진리에 참여하게 됨에 조상 선령님과 상제님, 그리고 태모 고 수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진리 공부에 더욱더 정진하고 무극대도 삼신상제님의 증산도를 열심히 잘 닦아, 개벽기에 괴병으로 넘어가는 생명을 구원하는 신도로서 종도사님께 반드시 6임을 완수하여 보은하겠습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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