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사天下事에 정성을 다하라

[태상종도사님 말씀]
도기 134년 6월 28일(월), 청포 간부 교육

천지 만유는 다 목적이 있다


내가 요점만 몇 가지 얘기해 줄 테니 들어 봐라.

만유의 생명체라는 것은, 자기가 알든 모르든 간에 다 목적을 갖고 있다. 목적이 없는 생명체는 있을 수도 없고, 목적을 상실하면 존립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다. 천지도 목적이 있다. 만유의 생명체를 수용해서 춘생추살春生秋殺, 봄철에 물건을 내서 기르고 가을철에 가서는 열매를 맺는다. 그것을 누구도 부인 못 하지 않는가. 생명체 치고 목적이 없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사람도 당연히 목적이 있을 것 아닌가? 인간의 목적은 내가 노상 입버릇처럼 하는 소리지만 크게 묶어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꿈꾸는 것이다. 작게 개체로 말하면 암컷은 수컷을 생각하고 수컷은 암컷을 생각하고, 그걸 성性이라고 한다. 마음 심心 변, 이걸 심방변이라 한다. 마음 심心에 날 생生을 한 것이 성이라는 성性 자다. 마음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 틀 자체가 암컷은 수컷을 만나면 구수하니 좋고 수컷은 암컷을 만나면 구수하게 좋은 것이다. 그건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게 없으면 생물이 아니다. 그다음 목적은 제 모습을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 그것이 생물, 생명체의 목적이다.

정성이 밑바탕


헌데 크게 사상적으로 묶어서 말하면, 사람은 누구도 다 부귀영화를 꿈꾸다 죽었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동양이건 서양이건, 옛날 세상이건 중고 세상이건, 지금이건 미래건 그 이상 더도 덜도 없다. 부귀영화가 그냥 이루어지는가? 부귀영화가 어떻게 그냥 되는가 말이다.

무엇을 성취하려고 할 것 같으면 정성精誠이 밑바탕이다. 정성껏 살아야 한다. 천지도 정성이 아니면 가다가 정지한다. 밥은 그냥 먹어지는가? 밥 먹는 것도 정성이다. 배고파서 밥을 먹고 싶은데 아무리 좋은 고량진미를 갖다 줘도 정성을 쏟아서 먹어야 하는 것이다. 더우면 옷을 벗고서 먹든지 어떻게 먹든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정성껏 먹어야 밥 한 그릇을 제대로 해치운다.

무엇이고 정성이 없으면 작은 일 한 건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좋은 일을 해도 일심을 가지고서 정성을 바쳐야 매듭을 짓는 것이다. 그냥 되는 것은 없다. 똑같은 격에 똑같은 일을 하는데 정성이 지극한 사람은 성공하고, 가다가 중단하고 정성이 부족한 사람은 패배하는 것이다.

사는 길은 증산도, 상제님 진리


그러면 우리가 하는 일은 그 격이 무엇이냐 하면 천지사업이다. 이건 천지에서 농사지은 것을 추수하는, 천지의 역사를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게 그냥 되겠는가?

증산도 상제님 진리권에 입도를 해서 무형도 바치고 유형도 바치고 전부를 바쳐서 해야 한다. 누가 “네 본적지가 어디냐?” 하고 물으면 “내 본적지는 증산도다. 살아서도 본적지는 증산도이고, 죽어서 신명이 되어서도 증산도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천지사업을 한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거짓말이다.

이번에는 증산도를 접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상제님의 생명의 진리 영향권에 들어와야 산다. 그 영향권을 벗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좋고 그르고 간에 세상만사라는 것은 다 살고 난 다음 이야기 아닌가. 죽고서 무엇이 있는가? 그러면 다 죽는데 살 수 있는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고 하면 그 진리로 남도 좀 살려 줘야 할 것 아닌가.

우리가 인간인데 가장 좋은 목적, 좋은 길을 선택해야 할 것 아닌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바와 같이 인류 역사를 통해서,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상제님 진리 그 이상이 없지 않은가.

상제님 진리는 여러 말 할 것 없이 우주의 열매기를 맺는 진리다. 우주 열매기 맺는 진리, 그 알갱이 맺는 진리, 그 진리를 우리가 만났으면 우리도 알갱이, 통일된 열매를 맺을 것 아닌가? 이 이상 더 큰 일이 없고, 더 큰 비전도 없는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크게 일하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똑같이 출발해서 냅다 뛰는데 누구는 가다가 뒤로 처져 버리고 누구는 목적을 달성한다. 그 차이는 정성이다. 도중하차해 버리면 소용이 없지 않은가.

내가 가끔 “작지부지作之不止에 내성군자乃成君子라.”라는 말을 한다. 쉬지 말고 간단間斷없이 최후의 일순까지 가야 한다. 그 시간, 그 시점까지 죽기 살기로 가는 것이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서 해야 한다. 알아듣기 쉽게 말해서 신바람이 나서 활동하면 아무리 일을 해도 지치지 않는다. 하루 저녁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싹 다 풀린단 말이다.

나는 너희들만 해서 혼자 활동했다. 저 시골 같은 데 가면 집도 조그만 초가집이고 몇 채가 안 되었다. 길에도 별로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온종일 팔딱팔딱 뛰고 그렇게 활동을 했다. 그런 활동만 하나? 내가 스물네 살에 8.15를 만나서 그 후로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을 상대했다. 그때 우리나라 정당이 2백 개도 넘었다. 그 숱한 사람, 나 혼자 이론으로 해서 다 굴복시켰다. 내가 천지를 뒤집으려고 작정을 하고 나선 사람이다. 나는 부드러우면서도 한없이 강하고, 강하면서도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이다.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장을 한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1892~1956) 선생이 “지기知己가 셋만 있으면 천하를 뒤집어 놓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평생 독립운동을 했어도 지기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너희들은 지금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여기에 모였다. 너희들 각자에게 물어보면 다 “증산도 신도요. 상제님 신앙해요.” 할 것이다. 증산도 이념이 하나란 말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면 천지를 열 번을 뒤엎고도 남는다. 상제님 진리가 아무리 무슨 ‘육임六任을 짜라, 십이임을 짜라.’ 한다고 해도 그건 의통醫統을 집행할 때 그럴 수밖에 없으니 그런 것이지 천하사에다 대면 너무 참 고리삭은 것 아닌가. 만날 그것만 가지고서 어쩌고 하지 말고 틀을, 포부를 좀 큼직하게 갖고서 큰 걸음을 걸어라.

일꾼은 진리 매개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문명이 대진해서 남자고 여자고 늙은이고 젊은이고 누구도 다 이 세상이 어떻게 매듭지어질 것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 ‘천하天下는 오호정惡乎定고?’ 이 세상은 어떻게 매듭지어질 것이냐? 이 글은 『맹자』에 있는 구절이다. 그걸 누구도 다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 허면 상제님 진리 하나를 넣어 주면 다 납득을 한단 말이다. 헌데 진리를 넣어 주는 것은 기술이다.

지금은 우리 증산도 서적이 오죽이나 많은가? 이 사회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대해서 그 진리를 연결해 주는 매개 역할을 하면 된다. 그렇다고 책부터 주면 안 된다. 슬슬 이야기해서 책을 볼 만큼 마음을 좀 돌려놓고 ‘야, 사실이 그렇다면 그 책을 한번 보고도 싶다. 그 책 좀 빌려줄래?’ 이렇게 돼야 한다. 그런 것은 다 기술적인 문제이다. ‘만일 이런 것이 있고 이렇게 된다고 할 것 같으면 한번 알아보고 싶은 의사가 없느냐? 이럴 수도 있지 않으냐?’ 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토론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것을 싫다고 할 사람은 없잖은가.

천지도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四時 변화 작용을 한다. 역사라 하는 것도 자꾸 변화하고 세상은 창조의 경쟁을 해 왔다. 5천 년 전, 6천 년 전부터 창조, 창조, 창조를 경쟁해서 오늘날 이런 물질문명, 과학 문명, 극치의 문명이 발전했다. 이렇게 해서 진리 틀을 전해 주면 되는 것이다. 일을 이루고 못 이루는 것은 다 정성 문제다.

일꾼은 천지의 대역자


사람은 바르고, 크고, 거짓 없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 절대로 공명정대하게 살아라. 그런 격으로써 천지 일을 해야 한다. 지금은 시기가 그런 때다. 우리 상제님 일은 12만 9천6백 년 만에 오직 한 번 있는 일이다. 이것은 천지 일인데 어떻게 달리 하겠는가? 지금은 그런 때이니 천지의 역군이 필요하고, 우리는 지금 그 일을 하려고 모인 것이다. 이것을 각성해서 그런 줄 알고서 일해야 한다.

정성이 없으면 절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 이 일은 천하사天下事다. 오죽하면 ‘천지의 대역자代役者’, ‘천지의 역군役軍’이라 말하겠는가. 그 일이 어떻게 시원찮은 생각을 갖고서 되겠는가 말이다. 정성을 다 바쳐서 죽기 살기로 뛰어라. 지금은 상제님 일밖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알고서 하든 모르고 하든, 어떻게 하든지 상제님 사업을 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