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FOCUS | 종도사님께 듣는 대한역사관 ⑱

[STB하이라이트]

여덟 번째 국통맥 - 조선 시대 (118~124번 질문)



Q118 조선 시대에는 중국을 완전히 천자의 나라로 인식하면서 조선 초기부터 우리 역사에 대한 뿌리 의식이 심각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민족 고유 사서를 숨긴 자는 목을 벤다는 ‘닉자처참匿者處斬’을 했다고 하는데요. 참담했던 당시 역사의식의 실체가 궁금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해서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태조로 등극하는데, 중국을 천자의 나라라 해서 명明나라 태조 주원장에게 사절을 보내 “나라 이름을 ‘조선’과 ‘화령和寧’ 가운데 선택하여 윤허를 내려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또 국서에 ‘일찍이 기자 시대에도 이미 조선이란 호칭이 있었사옵니다.’라고 하면서 조선으로 해 달라고 했습니다. 또 “천자님의 허락이 이렇게도 빨리 시원스럽게 떨어져 특별한 은혜가 사무칩니다.”라는 기막힌 기록이 있습니다.

특히 세조, 예종, 성종 때에는 “고유 사서를 다 수거하라.”고 했습니다. 특히 예종 1년에는 “이런 사서들을 숨기고 있는 자들은 발각되면 참수를 한다.”고 했습니다. 『세조혜장대왕실록』과 『성종대왕실록』을 보면 거기에 안함로의 『삼성기』 등 고대 사서가 나옵니다. 이런 책들을 수거하라는 왕명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서는 전해질 수가 없고, 읽을 수가 없고, 기록될 수가 없고, 망각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자箕子에게 매월 초하루 보름날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1년이면 스물네 번입니다. 단군왕검께는 봄가을 두 번 모셨습니다. 단군왕검을 모시는 사당도 기자의 사당보다 300년이나 늦게 만들었습니다. 일찍이 고려, 조선 왕조 시대 동안에 국조 단군왕검을 찬밥 신세로 모독한 어두운 역사가 장장 천 년 동안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Q119 퇴계 이황 선생과 율곡 이이 같은 분들도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합니다.


『대동야승』에 보면 조선의 대철인이라는 퇴계 이황 같은 분이 우리 시원 역사에 대해서 상상도 못 할 소리를 했습니다. ‘기자조봉箕子肇封, 근통문자僅通文字’라고 해서 ‘우리 민족은 원래 야만인인데 기자란 분이 한반도까지 오셔서 나라를 세우고 문자를 가르쳐 줘서 우리가 도덕을 알게 됐다.’는 망발을 했습니다. 또 율곡 이이는 『율곡전서』에서 “기자께서 조선에 이르시어 우리 백성을 천한 오랑캐로 여기지 않고 후하게 길러 주시고 부지런히 가르쳐 주셨다. 우리나라는 기자에게 한없는 은혜를 받았으니 그것을 집집마다 노래하고 사람마다 잘 알려야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명나라의 임금님이 ‘우리 황상皇上’이고, 명나라 조정을 ‘우리의 천조天朝’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한민족을 모독하는, 정말로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Q120 국조이신 단군왕검보다 기자라는 인물을 더 높이 받들고, 위인이라 칭송받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마저 기자를 칭송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입니다. 기자조선은 중국에서 조작한 허구의 역사가 아닌지요. 기자조선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기자조선箕子朝鮮 설에 의하면, 중국 하은주 시대의 마지막 나라인 주周나라의 무왕이, 은殷나라 말기에 살던 세 사람의 현자 가운데 기자箕子를 동방 조선의 초대 왕으로 임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 3,100년 전에 중국을 종주로 모시는 제후국인 기자조선에서 우리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단군은 다 사라져 버리고 조선의 주인이 기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자조선은 원래 없는 역사 사건을 조작한 것입니다. 이 역사 왜곡의 죄악의 뿌리는 바로 3,100년 전, 한 무제의 사관史官,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史記』에 들어 있습니다. 『사기』에 “봉기자어조선封箕子於朝鮮”(기자를 조선에 봉하다)이라고 했습니다. 주周나라 무왕이 상商나라(은殷나라)의 성인인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봉하였다는 뜻입니다.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서는 또 “무왕이 은을 멸하고 기자를 방문하여 안민安民의 도道를 묻고 그를 조선에 봉했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삼인三仁 가운데 한 사람인 기자를 불러서 ‘내가 너를 조선의 왕으로 봉한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역사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그 답이 바로 『사기』의 다른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봉하였으나) 주나라의 신하로 삼지는 않았다[而不臣也].’고 했습니다. 만일 주나라가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봉하였다면 기자는 당연히 주나라의 신하가 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 기록은 앞뒤가 맞지 않은 모순일 뿐입니다. 이것은 기자조선이 허구라는 사실을 사마천이 자신도 모르게 고백한 것입니다.

『단군세기』의 기록을 보면 25세 솔나 단군 때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서게 됩니다. 문왕과 그 아들 무왕이 은나라 마지막 주왕紂王을 벌하고, 동이족 재상 강태공의 보필을 받아 새로 주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이때 은나라의 기자가 서화에 와서 은둔 생활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보면 중국이 주장하는 기자조선은 명백한 허구입니다. 『단군세기』 25세 솔나 단군 조를 보면, 기자는 한반도 조선 땅에 온 적이 없습니다.

Q121 조선이 유교를 국시로 채택하면서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더 심해졌지만 다행히 우리 역사의 국통맥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역사의 혼과 같은 인물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태백일사를 지은 이맥은 어떤 분이신지 궁금합니다.


『태백일사太白逸史』를 쓴 일십당 이맥李陌(1455~1528)은 행촌 이암 선생의 5세손으로 왕의 실록을 편찬하는 사관이었는데, 「천부경」을 도통해서 당호를 일십당一十堂이라 했습니다. 이는 ‘9천 년 역사, 환단의 본래의 우주 심법을 전하는 집안’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분은 연산군 때 충청도 괴산槐山에 귀양을 가게 되는데 이때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역사책과 역사 정리에 대한 자신감을 준 인물들을 만나면서 2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에 조정으로 돌아와서 실록을 기록하는 찬수관이 됐습니다. 이 찬수관이라는 직책을 맡으면서 지난 세조, 예종, 성종 때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수거하여 궁궐 깊이 감춰 두었던 상고 역사서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들과 귀양 시절에 정리해 둔 글을 합쳐 한 권의 책으로 묶고 ‘정사正史에서 빠진 태백의 역사’라는 뜻으로 『태백일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태백일사』 여덟 권을 쓸 때 『단군세기』를 저술한 ‘우리 할아버지 행촌 이암은 도통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단군세기檀君世紀』 서문을 읽어 보면 아는 것입니다. 일십당 이맥은 ‘할아버지가 우리 역사 문화 원형 정신의 근본을 통한 일인자一人者’라는 기쁨을 느꼈기 때문에 그 금서를 깊은 밤에 가슴에 품고, ‘숨겨 놓을 수밖에 없는 책, 일사逸史’를 하늘의 정신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일사逸史’라는 것은 지금은 역사의 실체를 말할 수 없는 역사라는 뜻입니다. 우주의 본질은 일태극과 십무극이라는 우주 본체 정신을 통관해서, 우리 9천 년 역사 틀을 바로 세우려 한 것이 『태백일사』 여덟 권에 흐르는 저자의 정신입니다.

Q122 『태백일사』를 지은 이맥이 『단군세기』를 저술하신 행촌 이암 선생의 현손이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환단고기』의 탄생에 큰 공덕이 있는 고성 이씨 가문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태백일사』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주요 내용은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태백일사』는 우주론, 역사관, 신관 등 모든 사상이 응축되어 있는 책으로, 그 내용을 보면 이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며 우주의 본성은 뭐냐? 우리들의 삶의 목적은 뭐냐? 그리고 천신 하나님 신앙의 근본이란 뭐냐? 이런 내용들이 정말로 품격 있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불가라든지 도가 계열, 또는 유대교라든지, 티베트 불교, 이슬람 이런 문화에 있는 신비주의보다도 더 원형적인 하나님 삼신관과 우주관과 인간관, 신관 내용이 잘 정리돼 있기 때문에 천신 하나님 역사관, 문화관의 경전, 소의경전所依經典, 제1의 경전이라고 저는 정의를 합니다.

『태백일사』의 1편 삼신오제본기를 보면 첫 문장에서, ‘상하사방上下四方 고금왕래古今往來’에, 사방 고금왕래, 예나 지금이나 영원한 미래에 ‘지일광명只一光明’, 오직 일광명, 한 광명뿐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어둠이 없다는 겁니다. 어둠과 빛, 선과 악, 천사와 악마 이런 이분법은 서양 종교의 낡은 사고라는 말이죠. 우리 동방 탱그리 신관에서는, 오직 이 우주에는 한 광명만이 영원히 살아 있을 뿐입니다. 이 광명 자체가 탱그리, 이 우주의 조화신 상제님의 존재 모습입니다. 빛이 신입니다. 광명이 신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생명의 본성입니다.

그리고 『태백일사』 여덟 편 중 「환국본기」 편이 끝나는 자리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환자桓者는 전일야全一也요 광명야光明也라.” 환이란 전일야, 아주 완전한 하나라는 뜻입니다. ‘환이란 대우주 만유가 일체, 한 덩어리, 한 몸이요 광명이다.’ 이렇게 쭉 해석을 하면서 ‘그것은 삼신三神의 실덕實德이라.’고 했습니다. 이 대우주의 조물주이신 삼신의 참된 덕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광명이 열리고, 광명 속에서 무엇이 나타나는데 그게 삼신이라는 겁니다. 광명 자체가 우주 만유의 존재 근거인 신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동서 문화의 근본이 분화됩니다. 서양 기독교의 유일신관과 동방 한민족, 소위 서방족이 말하는 동이 배달족의 문화 원류인 삼신관으로 갈라집니다. 저쪽에서는 일신론을 얘기하는데 여기서는 삼신이라 합니다. 신神 앞에 삼三 자를 붙였습니다.

신은 삼수三數의 법칙으로, 삼의 원리로 우주를 구성합니다. 극미의 세계나 극대 우주나 전부 삼수 법칙으로 만물을 구성합니다. 시간과 공간, 모든 생명, 인간의 인식 구조, 마음의 구조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삼수 원리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것이 삼신입니다.

Q123 조선 말에 이르러 우리 한민족과 인류의 창세 역사를 밝힌 유일한 책인 『환단고기』가 드디어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이 『환단고기』를 편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해학 이기 선생과 운초 계연수 선생은 어떤 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해학海鶴 이기李沂(1848~1909)는 전라도 만경 출생으로 정약용의 학통을 계승한 실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으며, 『단군세기』를 쓴 이암과 『태백일사』를 쓴 이맥의 후손입니다. 또한 김제에서 태어나서 전라도에서 활동을 많이 한, 호남 3대 문호의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해학 이기는 집안의 가보로 전해 오던 『태백일사』를 제자인 운초 계연수에게 전해 주게 되고 계연수에 의해 천 년의 세월에 걸쳐 쓰인 다섯 권의 사서가 『환단고기』로 묶여지게 됩니다. 해학 이기는 일본 왕을 저격하기 위해서 결사대를 조직했다가 실패하고서 나라가 망하기 전인 1909년 7월 13일 절식絶食을 해서 62년의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해학 이기의 제자였던 운초雲樵 계연수桂延壽는 1864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조국이 강제 합병으로 패망당하고 난 다음 해인 1911년, 계연수는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역사 문화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라는 뜻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만주에서 『환단고기』를 내고 만주 관전현 지역에서 역사 운동을 하다가 감영극甘永極(감연극甘演極이라고도 전함)이라는 조선인 민족 반역자의 고발로 끌려가서 죽는 순간까지 결코 항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경찰은 운초 계연수의 시신을 압록강에다 처넣었고 강가에서 토막 난 시신이 수습될 때 그 광경을 현장에서 지켜보던 14세 소년 이유립李裕岦은 그 후 아버지와 함께 비장한 천지 맹세를 올리고 마침내 『환단고기』 원본 한 권을 가지고 남한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환단고기』가 탄생하기까지 운초 계연수와 해학 이기의 혈성과 희생이 컸습니다.

Q124 일제에 의해 조선이 패망당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이 우리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많은 헌신과 노력을 했습니다. 『환단고기』를 출간하는 과정에서도 독립운동가의 혈성이 있었고, 단재 신채호 선생도 우리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1911년에 운초 계연수는 스승이 생전에 세세히 감수해 준 『환단고기』에 범례를 지어 붙인 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묘향산 단굴암에서 책을 옮겨 편집한 후, 자신의 벗이자 독립운동 동지인 홍범도(1868~1943) 장군과 오동진(1889~1944) 장군의 자금 지원으로 만주 관전현에서 『환단고기』 30부를 간행했습니다. 조선 왕조가 패망당한 그다음 해, 얼마나 서둘러서 냈겠습니까? ‘이제 우리의 그 역사 뿌리를 바로 세워야 된다, 본래의 동방 역사 문화의 주인공의 문화 정신이 나와야 된다.’, 해서 우리의 원형 문화 정신을 밝히는 『환단고기』를 30권 출간한 것입니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 선생은 우리 한민족 역사의 진실, 그 핵심을 밝혔습니다. 그분이 1929년에 쓴 「전후삼한고前後三韓考」라는 글에서 ‘전삼한前三韓’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한국사에서 문화의 근원 정신은 삼한인데 전삼한이 있었다는 겁니다. 한강 이남에 신라 이전의 진한, 가야 이전의 번한, 백제 이전의 마한이 있었지만, 사실은 그 이전에 만주 대륙과 한반도에 본래의 삼한三韓이 있었다는 겁니다. 한강 이남의 삼한이 북쪽 삼한에서 내려왔다는 겁니다. 이 본래 삼한을 ‘북삼한’, ‘대륙삼한’ 또는 ‘전삼한’이라 합니다. 이 삼한을 알 때 우리 역사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삼한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삼한이라는 것은 왕이 셋이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는 이렇게 정의를 했습니다. 18세기에 천문, 지리, 인사 등 여러 분야를 공부한 박식가博識家로서 백과사전을 편찬한 이규경李圭景(1788~1856)이라는 분은, ‘삼한은 우리 동방 조선에서 왔다. 요동을 삼한이라 했다.’고 이야기했어요. 단재 신채호가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한이라는 건 왕인데 진한에 대왕이 있었고, 번한과 마한에는 대왕을 보필하는 부왕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태백일사』는 어떤 책?
-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김현일 박사 -
(도기 143년 3월 10일 전북대 환단고기 북콘서트)

태백일사는 「삼신오제본기」, 「환국본기」, 「신시본기」, 「삼한관경본기」, 「소도경전본훈」, 「고구려국본기」, 「대진국본기」, 「고려국본기」 이렇게 여덟 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태백일사』는 제1편이 「삼신오제본기」입니다. 이 역사의 근원, 시간과 공간은 어떻게 열렸느냐? 그 시간과 공간은 호킹 같은 물리학자들이 얘기하는 그런 재미없는 세계가 아니고, 그 시공간을 다스리는 주재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음양오행 사상, 신교의 음양 우주론의 원형이 「삼신오제본기」에 있습니다. 그다음 「환국본기桓國本紀」는 우리의 국통을 말할 때 제일 먼저 나오는 환국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다음에 환국을 잇는 나라가 신시神市 배달倍達입니다. 그에 대한 기록이 「신시본기神市本紀」입니다. 그다음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는 고조선의 역사입니다. 시대적으로는 행촌 이암 선생이 쓴 『단군세기』하고 같은 시대를 다룬 것입니다. 원래 고조선은 세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고조선은 진한, 번한, 마한 이렇게 삼한인데 그중에서 번한과 마한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것도 역시 연대기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이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입니다. 이 소도라는 것은 우리 옛 신교의 성지입니다. 이 글은 천부경과 삼일신고, 참전계경 같은 신교의 경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천부경하고 삼일신고의 원문이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매우 귀중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일반적인 역사책의 형식을 띠고 있는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와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 그리고 「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입니다. 모두 김부식의 『삼국사기』와는 달리 우리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