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불빛이 된 상생방송 외(문용기, 김현정, 김진훤)

[입도수기]

생명의 불빛이 된 상생방송


문용기(남, 54) / 창원명서도장 / 도기 152년 음력 3월 입도

가족의 죽음으로 얻은 것은


저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3남 4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대대로 조상님 제사를 잘 모시는 불교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어릴 적부터 예의범절과 인사성을 중요시하며 윗사람을 섬길 줄 아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인사성이 밝았지만, 마음은 선하거나 바르지 못했었고 행동은 항상 비틀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와 멀어져 성적은 좋지 못하였고, 어렵게 살아가던 저는 자유롭게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 놀기만 하는 친구 무리와 어울렸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 급히 집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10리 길을 한걸음에 달려 불안하고 궁금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했는데, 슬픈 결혼식을 올린 지 얼마 안 된 작은형수님이 갑작스러운 연탄가스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작은형님은 신세만 한탄하시며 두 눈에 눈물이 마를 겨를도 없이 통곡하셨고, 마냥 울기만 하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형수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저도 마음이 너무 슬퍼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기억만 납니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은 지금의 저에게 죽음에 관한 생각과 슬픔을 이겨 내는 힘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상처를 입은 저의 마음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향해 큰 돌을 던지는 마음으로 발전하기 위해, 방황을 끝내고 현실로 되돌려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변화된 삶의 모습이 필요한 시간


하지만 어렵게 살아온 저의 스무 살 군대 시절 경험은 아픈 상처만 가득 채운 제 인생의 좌절기였습니다. 고통도 잠시, 의병제대라는 불명예를 지니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천천히 그 시절을 회상해 보면 선임들의 잦은 폭행과 수면 부족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못 하고 스트레스 폭발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병원 생활을 장기간 하게 되면서 심신이 많이 지쳤지만, 이제는 정신 건강을 되찾기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며 지속적인 약 복용을 점점 줄여 가면서 건강이 많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따랐더라면 이렇게 고생스러운 삶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작은 위안이 되는 건 힘든 병원 생활에서도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취침하기 전엔 기도를 드리고 수행도 조금씩 하면서 스스로를 다듬어 보려 했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부족한 아들로서 부모님께 효도 한번 제대로 못 하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저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 드려서 어머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나에게 날아온 생명의 작은 불빛


그런 저에게 생명의 작은 불씨가 날아왔고, 그 생명의 불빛은 저의 뇌리를 강타하였습니다. 상생방송을 시청하게 되면서 가슴은 항상 뛰었고, 여러 가지 서적도 구입해 읽기 시작했습니다. 약 10여 년 전 병원에서 증산도 신앙을 하시는 분을 만나긴 했지만, 그때는 마음의 고통과 심적 갈등으로 인연이 닿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상제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삼생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따르느니라.”라는 말씀에 새삼스러운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 1년 129,600년이라는 사실을 접했을 땐 정말 놀라웠습니다. 상생방송은 저의 모든 의문점을 너무나도 알기 쉽게 알려 준 정말 고마운 방송입니다. “모든 선령신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도 많으니라.”고 하신 상제님 말씀을 들으며 정말 가슴이 찡하고 아팠습니다. 진리 공부와 수행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개벽이 가까워지는 이 시간대에 상제님의 진리로 많은 사람을 도문에 인도해서 후천 오만 년 선경 세상에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본분을 잊지 않는 구도자가 되고 싶어


저는 도전 말씀 중 2편 23장 성구를 제일 좋아합니다. “형어천지形於天地하여 생인生人하나니 만물지중萬物之中에 유인唯人이 최귀야最貴也니라. 하늘과 땅을 형상하여 사람이 생겨났나니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니라. 천지생인天地生人하여 용인用人하나니 불참어천지용인지시不參於天地用人之時면 하가왈인생호何可曰人生乎아.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때에 참예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라는 이 말씀을 항상 가슴에 새깁니다.

어렵게 도장으로 왔고 21일 정성 수행을 잘 마치는 오늘 입도하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진리 공부와 수행에 더욱 매진하여 일심으로 구도하는 참신앙인이 되겠다고 서원합니다. 저를 도장으로 인도해 주신 조상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조상님 제사를 극진히 잘 받들고 빠른 시일 내로 천도식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가을철 열매를 잘 맺어 선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상제님의 참도생이 되겠습니다.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그리고 조상 선령신님들께 감사드리며 상제님의 도생으로서 본분을 잊지 않고 잘 지켜 나가는 참구도자가 되겠습니다. 일심을 잘 지켜 조상님과 함께 입도할 수 있는 자격을 고맙게 여기고, 항상 따뜻하게 도와주시는 윤영희 수호사님과 박선자 수석포감님 외 창원명서도장 도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보은~ ◎

인연으로 되살린 태을주의 힘


김현정(여, 46) / 부여구아도장 / 도기 152년 음력 3월 입도

강릉에서 경험했던 짧은 수행 생활


저는 7세~10세 무렵에 아버지와 할머니의 영향으로 태을주 수행을 접한 경험이 있습니다. 어릴 때의 기억이라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어떤 가정사로 인해 전라도에서 살던 저희 가족들은 강원도 강릉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무교 집안이 되었으며, 잠시 기독교를 접하기도 했습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고등학교는 다시 경기도 수원에서 수학하게 되면서 어린 나이에 독립을 했습니다.

20세 무렵, 나름대로 익숙했던 태을주의 영향으로 대순진리회라는 곳에 들어가 약 6개월여간 태을주와 몇 가지 수행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것들이 포착되었고, 그 의문들은 풀지 못한 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그곳을 나왔습니다. 그 후 여러 개인사들이 있었고 아버지가 계신 강릉으로 다시 오게 되었는데, 태을주 수행을 하면서 체험했던 것들은 후에 증산도에서 이법 공부를 하면서 신도 체험임을 알게 되어 계속 이어왔습니다.

대순진리회가 싫었던 저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태을주를 찾던 중 강릉 시내에서 포교 활동 중이던 한 분을 만나 태을주 수행에 대해 물었으며 강릉에 있는 증산도 도장으로 안내를 받아 그곳에서 당시 수호사님으로 계시던 모춘일 도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길지 않던 시간이긴 하나 이법 공부와 함께 태을주 수행과 도공 수행법을 배우면서 심신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긴 시간을 함께하고자 했으나 여러 감당키 어려웠던 개인사들로 인해 저는 또다시 강릉을 떠나 경기도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많은 것들을 잊고자 노력했으며 개명도 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기독교로 온전히 전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매년 세례받을 시기만 되면 뭔가 일들이 생기면서 나중에는 제 세례를 거부하는 상황이 됐고 10년 세월을 평신도로 지냈습니다. 세월은 흘러 저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생겨 정착을 했지만, 남편의 이직과 산재로 인해 금년 1월 남편의 고향인 충남 부여로 귀농을 하게 되어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강릉에 계신 아버지를 뵈러 강원도에 가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통해 추억한 수행의 기억


친정아버지께선 갑자기 40년 전에 연락이 두절된 친구분을 찾고 계셨는데, 1차로 실패하시고 2차로 저에게 부탁하신 거라서 과거 아버지가 사시던 곳까지 여행 아닌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경북 봉화군 소천면이었으며, 그곳에서 제 할머니의 권유로 당시 보천교를 접하고 수행을 하셨다고 하시더군요. 20여 년 전 강릉에서 만났던 증산도가 생각나서 혹시나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였고 가장 가깝다는 영주도장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곳 책임자분께 사연이 이러저러한데 도움받을 방법이 있을지 물었지만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영주도장 책임자분과 통화가 길어지던 중 저 역시 잠시 강릉에서 태을주 수행을 했다는 말을 하면서 모춘일 수호사님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찾으시던 그분은 10여 년 전에 작고하셨다는 소식과 함께 그날의 여행은 마무리되었고 저 역시 잠시 과거를 추억하게 되었습니다.

20년 만에 다시 느껴 본 태을주 수행


다시 시간은 흘러 저는 부여로 이사를 했고 농사 준비로 바쁘던 2월 중순경 모춘일 수호사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잠시의 통화로도 수호사님은 저를 기억하셨고, 만날 날을 약속했습니다. 과거 힘들던 시절 도움을 주셨던 분이라 많이 반갑기만 했습니다. 부여 읍내에서 증산도 간판을 보긴 했던 터라 ‘여기도 있네!’라는 생각만 했던 저는 다시 뵙게 된 수호사님과의 상담 아닌 상담을 통해 부여구아도장에 인도가 되어 함께 방문을 하였습니다.

별생각이 없었던 저였는데 도장 방문 시 온몸을 누르던 기운이 느껴졌고, 오랜만일 터이니 잠시 같이 수행을 해 보겠냐던 모춘일 수호사님과 태을주 수행을 함께 했습니다. 맑은 숲속에 있는 듯 예전의 그 깨끗하고 맑은 기운이 다시 느껴지는데, 20여 년이 지나고도 되살아난 그 느낌이 새롭고 신기하더군요.

대체 어떤 인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거짓말처럼 같은 분을 통해 태을주 수행을 했고, 입도를 생각하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신도 체험들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정도가 되었으며,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가끔 체험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무섭거나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법 공부와 함께 수행으로 탄탄한 참증산도인이 되고자 합니다. 상제님과 태모님,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그리고 저를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해 주신 모춘일 수호사님과 도장의 많은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생명의 자리에 인도해 주신 저의 모든 조상님들께 보은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보은! ◎

조상님이 바라시는 입도라면


김진훤(남, 62) / 구미원평도장 / 도기 152년 음력 3월 입도

중생 구제의 삶을 살기로 하고


저는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 오태동, 현 구미시 임오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는 몸이 약하여 무서운 꿈을 꾼다든지 하면 기절하다시피 경기를 자주 하고 죽었다 살아나기를 여러 번 해서, 농사철이나 바쁠 때는 죽거나 말거나 이불을 덮어 놓고 일을 가기도 하고 찬물을 끼얹어 깨어나는 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번씩 아팠다 깨어날 때마다 할머님과 집안 어른들은 삼신할매가 보살펴서 살아났다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열 살이 넘으면 괜찮아진다는 소리를 늘 하셨습니다. 성장해 가면서는 누군가가 내 머리 위에 있는 것 같았고, 누가 늘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삶이 이미 정해진 인생을 살아간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2014년에 회사 발령을 받아 세종시에 있는 영무예다음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의 직책을 맡아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명리학을 접하게 되어 잠을 자지 않을 정도로 몰입해 공부를 했습니다. 오행사 혜명 스님이 쓴 ‘천지기 비결’ 낭월 스님이 쓴 ‘사주학 시리즈’ 일주 스님이 쓴 ‘사주학’과 법오 스님이 쓰신 ‘일주론’ 등 당시 사주학에 관련된 서적은 거의 전부 읽었을 뿐 아니라 시중에 있는 사주 관련 동영상도 여러 편을 볼 정도로 사주에 빠져 미치도록 열심히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일 년이 지나서 사주팔자의 이치를 터득하였고 이후의 삶은 중생 구제를 위하여 매진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조상님의 예시가 풀리지 않아


그 뒤 여러 사람들의 사주를 풀어 주기도 하고 정말 어려운 친구들은 방편을 써서 위기에서 구해 준 일도 많이 있습니다. 이후 우연히 상생방송을 보게 됐는데 사주에서 배운 것과 도전 말씀이 맞아 들어가는 게 많아 계속 상생방송을 즐겨 시청하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 명절이나 제삿날 조상님들의 산소에 성묘를 가면 계절이나 시간상으로 뱀이 나타날 때가 아닌데도 산소 옆 신주 모신 자리에 뱀이 앉아 있는 경우가 여러 번 있어, 조상님이 무언가 예시를 해 주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조상님이 뱀의 가죽을 쓰고 후손들을 만나러 오셨다고 생각해 보기도 하고, 조상님들이 천도제를 지내 달라고 하시는 것은 아닌지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봤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늘 숙제를 안고 지내다가 경북 상주시 무양 LH7단지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인근에 증산도 무양도장이 있길래 숙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가 상담을 하고 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인도 메시지


그 후 구미로 발령이 나서 고향인 구미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꿈에 조상님의 예시를 받고 2020년 12월 30일 조상님께 개업을 한다는 신고를 하고서 구미시 송정동에 건강 쑥뜸방을 열어 아픈 사람들을 돌보며 중생 구제하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건강 쑥뜸방에는 병원에서 치료를 못 하고 때를 놓친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각종 암, 아토피(습진), 적취(담적) 허리병 등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지난해만 해도 약 1,800명 정도 다녀갔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병이 나아 돌아가는 분들이 많아,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주면서 저의 전생과 이생에서의 죄업을 닦고 상제님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상님들께서 길을 안내해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생활도전』을 여러 번 읽어서 지금 대세가 상제님 공사대로 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기는 했지만, 선뜻 도장에 가기가 힘들어서 시간만 보내다가 2021년 9월 상생방송에 전화를 걸어 구미원평도장을 소개받았습니다. 며칠 뒤 도장에 방문하여 팔관법 교육을 받았지만, 입도는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22년 3월 14일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손녀 꿈에 나타나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하셔서 하얀 케이크를 크게 만들어 드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상님께서 절실히 바라고 계시는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그리고 늘 저와 우리 가족을 돌봐 주시는 조상님을 모시고 열심히 수행하여 진정한 구제 중생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