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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상종도사님 말씀]

    일심하는 천지 역군이 되어라

    도기 134. 5. 2, 증산도교육문화회관, 파방군령 10호

    천지 이법에 따라 새 시대 새 진리를 여신 상제님


    우리가 맞이하는 이 시점은 선천 봄여름 세상이 매듭지어지고 새로운 가을 유금酉金 세상이 열리는 때다. 새 시대,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상제님이 천지 이법으로써 후천 새 세상을 창출하셨다.

    천지에서 사람 농사를 지어서 이번에 씨알을 추린다. 또 천지 이법에 따라 알갱이 문화가 열린다. 때는 바야흐로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에 해원解寃, 상생相生, 보은報恩하는 상제님 문화가 열릴 수밖에 없다.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우리 증산도 문화는 개벽 문화다. 상극相克이 사배司配한 선천 역사 문화를 매듭지어서 상생相生의 이법으로 후천 새 세상, 새로운 알갱이 문화를 창출한다. 이번 문화는 신인神人이 합일合一하는 문화다.

    우리가 있는 이곳은 우주 이법에 의해서 결실 문화, 성숙된 문화, 묶어서 하나인 알갱이 문화를 창출하는 진리권이다. 기존 문화권과 같이 어떤 한 성자가 와서 부분적인 문화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 대우주, 대자연이 생장염장生長斂藏이라는 한 주기를 통해서 변화무궁한 그 틀 속에서 알갱이 문화가 한 번 여무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상제님을 신앙한다고 해서 누구도 다 상제님 신도가 되고 후천 5만 년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예비 신도, 예비 성자에 불과하다. 상제님 신앙은 전부를 다 바쳐서, 천지 마음이 되어서 천지 이법을 집행하는 것이다. 상제님 진리는 천지 이법이다. 증산 상제님이 천지 이법을 집행하셨다. 천지 이법에 따라서 우주 가을철 알갱이 문화로 개벽을 집행하신 것이다. 다시 묶어서 말하면 새 시대 새 진리를 여셨다. 사실 그대로 새 시대 새 진리다.

    신앙이란 그 문화권과 결혼하는 것


    피상적으로 공연스레 상제님 천지공사만 가지고 떠들어서도 안 되고 우리 신도, 개개인이 실제 상제님의 혼, 천지 이법, 천지 마음이 돼서 상제님을 신앙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서자서書自書 아자아我自我’ 해서 입으로만 진리를 떠들고 실천역행實踐力行하지 않으면 빈 쭉정이가 되는 수밖에 없다.

    아직 우리 신도들이 신명을 보지 못해서 그럴 뿐이지 이 세상은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보시면서부터 신명이 주체가 된 세상이다. 조화정부, 신명정부에서 신명들이 선행先行해서 일을 추진한다. 그러면 그것이 인사로 반영돼서 현실 역사로 표출되는 것이다.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현실을 위주로 생활하고, 우선 이권을 바탕으로 돈을 벌어야 할 테니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살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신앙하는 사람은 외유내강外柔內剛하고 오매불망寤寐不忘해야 한다.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나 언제고 상제님 사업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이란 그 문화권에서 자기 평생을 바치는 것이다. 다른 길을 걷지 않고 그 문화권을 위해서 유형무형을 다 바쳐서 살다 가는 것이다. 그게 신앙이다. 신앙은 그 본질이 그 문화권과 결혼하는 것이다. 그 문화권에 시집오고 장가드는 것이란 말이다.

    기존 문화권도 다 그렇게 했다. 예컨대 불자가 되려면 성姓도 반납을 한다. 자기 혈통, 유전 인자를 받지 않고서 어떻게 자신이 생겨나는가? 그렇건만 성도 반납을 한다. 부처에게 유형무형을 다 바쳤단 말이다. 그렇게 한평생 그 문화권에 다 바치고 살다 간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신앙은 생명을 바쳐서 하는 것


    상제님 말씀으로 한마디 묶어서 전하면 ‘심야자心也者는 대어천지大於天地라’ 마음이라 하는 것이 천지보다 크다. 심법이 위주다. 우선 정신이 돼야 하는 것이다. 사상은 10대, 20대 계승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자식 대代는 그 자식 인간성보고서 물어봐야 한다. 애비가 하던 것을 계승해서 하겠느냐고 그 자식, 손자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이다.

    여기 앉았는 사람은 평생을 외길 인생으로 상제님 사업을 했다. 나는 친히 일선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접촉해서 포교를 해 본 사람이다. 나는 일선에서 포교할 때 별로 사람을 놓친 사실이 없다.

    사람은 천태만상이다. 옛날 문구에 이런 것이 있다. ‘천산千山이 형부제形不齊하고, 만인萬人이 심부등心不等이라.’ 일천 산 형상이 가지런하지 않고 일만 사람 마음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 있는 산천은 똑같은 모양을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 높이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봉우리 생긴 것도 다르고, 다 다르다. 지구상에 65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심법이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많은 사람을 다 안아 들이는데 천태만상일 것 아닌가? 내가 주체성을 가지고서 포교를 하려면 천지 마음을 바탕으로 해서 그 사람과 동화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을 안아 들일 수가 없다.

    신앙은 생명을 다 바쳐서 하는 것이다. 죽어서 신명이 돼서도 그 신앙을 버리지 않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사람을 신앙인이라 할 수 있지 그렇지 않고서 천지에서 개벽하는데 어떻게 살기를 바라겠는가? 그런 일심하는 신앙심을 가지지 않고서 어떻게 살기를 바라나 말이다.

    천지 이법, 생장염장이라는 틀을 바탕으로 천지가 한 주기를 돌아가는데 그 속에서 사람 농사와 더불어 알갱이 문화, 결실 문화를 내놓는다. 이것을 우리 증산도에서 한다. 그래서 천지 이법이 증산도 진리다.

    증산도 신앙은 번지수를 똑똑히 알고서 해야 한다. 강증산 상제님은 기존 문화권에서 성자들이 한 것처럼 부분적인 이념을 제시한 분이 아니다.

    상제님 진리 길잡이가 돼라


    우리 상제님 신도는 세상을 위해서 상제님 진리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대자연 섭리의 길잡이, 우주 이법의 길잡이가 되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좋은 시기를 만났다. 상제님 개벽 사업은 12만 9천6백 년에 가장 큰 일이고, 가장 소중하고 절대적인 일이다. 이 시간대에 생겨난 사람에게는 가장 소망스러운, 가장 비전 많은 일이다. 죽는 세상에 천지 이법을 가지고서 사람을 살리는데 그 이상 더 소중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천지 역군이라 할 수 있잖은가. 천지의 역군이 됨으로써 천지에 공을 쌓는다. 상제님도 “공功 중에 천지에 쌓는 공보다 더 큰 공이 없다.”라고 하셨다. 그보다 더 큰 공이 어떻게 있을 수 있나? 그런 봉사를 하면 그 공이 자기에게로 돌아온다. 그건 누가 뺏어 갈 수도 없고 뺏기지도 않을 게고 말이다. 그 은총을 받은 사람은 그러지 말라고 해도 후천 5만 년 잊지도 않을 게란 말이다. 그것을 일러 불천지위不遷之位라고 한다. ‘옮겨지지 않는 자리’라는 것이다. 옮길 수도 없고, 옮겨지지도 않고, 옮겨질 도리가 없는 그런 공을 쌓는 일이다. 그 이상 더 비전 많은 일이 어디 있는가?

    하라고 해서 활동하는 것과 창의력을 가지고 자기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판이 다르다. 신이 나서 신바람으로 활동하는 것은 닷새, 열흘 해도 지치지 않는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기 때문에 기쁜 생각을 가지고서 한다. 하기 싫은데 피동자가 돼서 마지못해 하는 것은 활동해도 성과를 못 거둔다. 상대방을 감화, 감동시키지 못한다. 기운이 가지 않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야 사람이 거기에 동화된다. 내 진리의 혼이 그 사람을 상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방이 감동받아 동화가 된단 말이다. 자기도 모르게 그 기가 풍겨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원시로 반본하는 때다. 원시반본이 안 되는 자는 천지에서 잡아가 버린다. 천지 이법이 허용을 하지 않는다. “이때는 원시로 반본하는 때라. 환부역조換父易祖하고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는다.”(道典 2:26) 천지의 틀이 그렇게 되어 있다.

    지금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도 ‘무언가 있을 텐데, 뭔가 살아날 방법이 있을 텐데, 이 세상이 이렇게 영원히 지속하지는 않을 게다. 무슨 변화 작용이 있을 게다.’ 하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뿐이다. 그 힌트만 주면 그냥 확 달라붙어 버린다.

    포교하기가 어려운 게 아니다. 정성이 부족한 것이다. 복록福祿도 성경신誠敬信이요 수명壽命도 성경신이다. 성경신이 부족하면 무엇이 되겠는가? 우리 상제님 신도들은 꼭 일심 신앙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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