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FOCUS | 종도사님께 듣는 대한역사관 ⑯

[STB하이라이트]

여섯 번째 국통맥 남북국 시대(통일신라, 대진국) (105~110번 질문)


Q105 북부여北夫餘의 역사를 통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국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라는 왜 당나라와 손을 잡고 형제국을 멸망시켰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수나라와 당나라를 선비족이 세웠고, 신라 김씨 왕족은 바로 훈족, 흉노족이었습니다. 이처럼 신라는 북방 유목 문화와 친연성親緣性이 있기 때문에 대화가 급속히 잘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국가 이권에 상응하는 여러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제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의 문제가 있습니다.

무열왕 김춘추金春秋(604~661)와 김유신金庾信(595~673)은 처음에 자기의 개인적인 원한으로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쳤습니다.

김유신은 전생에 고구려의 유명한 점쟁이 추남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국경 쪽에 홍수가 나서 그에게 이유를 묻자 ‘아, 왕비마마가 부정을 해 가지고 홍수가 났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격노한 왕이 점쟁이를 죽이기 위해 상자 속에 생쥐를 담아 갖다 놓고 점을 치게 했는데, 여덟 마리라고 대답하니까 ‘이놈이 쥐 한 마리를 여덟 마리라고 한다.’라며 죽였습니다. 그때 점쟁이가 죽으면서 ‘내가 다음에 장군으로 태어나서 고구려를 멸망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점쟁이가 죽은 후 그 쥐의 배를 갈라 보니 새끼 일곱 마리가 들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있습니다.

그리고 김춘추의 경우 사위 김품석과 딸이 대야성 전투에서 백제의 윤충에게 죽었습니다. 김품석이 부하인 검일의 처를 겁탈했으므로 검일이 그 원한으로 백제군과 내통해서 대야성을 공격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김춘추는 사람이 지나가도 모를 정도로 넋을 놓고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합니다.

Q106 신라의 삼국 통일은 통일의 위업을 이뤘지만 역사적인 한계가 있는 통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신라가 28대 진덕여왕 때부터 급속히 당나라 중심의 사대주의 역사의식으로 흘러간 것도 아쉽습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태백일사太白逸史」에 있는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를 보면 김춘추가 고구려에 가서 연개소문을 만났습니다. 연개소문이 ‘우리가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서 함께 다스리자.’고 했는데, 김춘추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고서 김춘추는 당나라에 자기 둘째 아들 김인문을 보냈습니다. 김인문은 40년 동안 당나라 조정에서 살았는데 당 태종, 당 고종이 김인문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신라가 당나라와 외교를 했습니다.

신라는 진덕여왕 때부터 왕과 벼슬아치가 당나라 관복을 입고 중국 연호를 썼습니다. 또 김춘추는 화랑도가 자발적으로 국가에 충성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이 인재를 체계적으로 직접 뽑고, 기르고, 씀으로써 국력을 진작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중국의 벼슬아치를 뽑는, 인재를 뽑는 국가 경영 제도인 국학國學을 수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라는 급속히 당나라 중심의 사대주의 역사의식으로 흘러갔습니다.

Q107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은 신라를 정통으로 놓기 위해서 고구려를 폄하하고, 고구려를 계승한 대진국大震國(발해)의 역사는 한마디도 싣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대진국의 역사가 감춰지게 되었고, 지금은 대진국이 당나라의 속국으로 왜곡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만리장성 밖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 황하 문명보다 1,500년 내지 3,000년 앞선 원형 용 유물이 나오자 중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현재 중국 땅인 동북아 지역에서 이뤄진 고대의 모든 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만드는 역사 왜곡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 그게 바로 동북공정東北工程입니다. 이로 인해 고구려高句麗와 대진국大震國(발해)은 물론 그 이전의 배달倍達이니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역사를 전부 중국의 역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고구려는 본래 북방의 진국, 바로 진한입니다. 고구려가 패망하자 장수 대중상大仲象과 그 아들 대조영大祚榮이 나와서 ‘우리가 진국이다, 후고구려다’하고 단군조선의 북방 진한의 역사와 문화 정신을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천자국, ‘살아있는 후고구려’가 나온 것입니다. 대진大震 즉 발해는 통치자를 황제라 부른 천자국이었습니다.

Q108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다섯 권의 역사서 중 『삼성기 상』은 신라 시대 안함로라는 도승에 의해 쓰였다고 하는데요. 안함로는 어떤 분이고, 『삼성기 상』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환단고기』는 「삼성기三聖紀 上」, 「삼성기三聖紀 下」, 「단군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夫餘紀」, 「태백일사太白逸史」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가 신라 시대에 안함로라는 분이 쓴 『삼성기』 상입니다. 바로 환국 배달 조선의 역사를 아주 간명하게 썼지만 그 내용에는 심원한 우주 사상, 신관, 인간관이 함축돼 있습니다.

안함로安含老(579~640)는 신라 때 수나라에 유학했던 승려로, 신라 10대 성인 중의 한 분입니다. 또 선덕여왕 때 왕실 고문 역할을 하면서 황룡사 9층탑을 짓게 한 인물입니다. 『해동고승전』을 보면 대도통을 한 성인으로 『환단고기』를 쓸 수 있는, 우주 광명 사상을 도적道的으로 체험한 분입니다. 불교에 몸담고 심법이 열려서 부처가 되어 유^불^선을 통한 아주 높은 의식 속에서 환국^배달^조선, 북부여, 고구려까지 국통맥을 바로 세웠습니다.

『삼성기上』은 그 첫 문장이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입니다. ‘우리가 환이 되어서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이 가장 오래된 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인의 조상들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됐다. 그러니까 지구촌 인류의 창세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 『삼성기上』 첫 문장, ‘오환건국이 최고라’에서 ‘오환건국’ 네 글자에 동서의 종교, 사상, 깨달음, 도통 문화, 인생의 주제, 삶의 목적이 들어 있습니다. 모든 종교의 총체적 근본 구원, 마지막 구원, 그 주제가 ‘오환吾桓’이라는 것입니다. 나 오吾 자와 밝을 환, 우주 광명 환桓 자. 내가 우주 광명 자체가 되는 것이고, 살아 있는 우주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오환, 우리 모두는, 우주 만유는, 우주 자체는 광명, 대광명 자체다! 오환, 우리가 환이 되어서, 건국, 나라를 세운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종교, 철학 사상, 국가 통치자의 이상, 인류 역사의 목적이 이 『환단고기』의 첫 문장 네 글자에 들어 있습니다.

Q109 통일신라와 대진국은 수도를 다섯으로 나누어 국가를 경영했다고 하는데요. 수도를 다섯으로 나눠서 다스린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신라와 대진국 모두 오경五京이 있었습니다. 『환단고기』를 보면 ‘우주 조물주 삼신이 있고, 이것이 우주의 시간 공간의 구조를 가지면서 동서남북 춘하추동과 중앙을 다스리는 오제五帝가 있다.’는 우주의 창조 드라마가 나옵니다. 삼신과 다섯 제왕신(오제)의 시스템으로 우주가 열려서 지금 이 순간에도 둥글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삼신과 오제, 이것이 우주관으로 전개될 때는 바로 삼신과 오행五行입니다.

여기서 오행이라는 것은 단순히 자연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기본 요소 수水, 목木, 화火, 토土, 금金이 아니라, 우주의 다섯 성령인 오령五靈입니다. 그래서 『환단고기』에서는 거기에다 클 태太 자를 붙였습니다. 태수太水, 그냥 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태목, 태화, 태토, 태금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행 사상도 원래 신교의 우주관입니다. 인류의 창세문화 원전 『환단고기』에서는 그 후대에 부르는 오행이 아니라 바로 다섯 성령, 오령이라는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삼신三神 오제五帝와 오령五靈 사상에 근거해서 나라를 나누고, 수도를 셋(고조선의 삼경)으로 또는 다섯(신라와 대진국의 오경)으로 해서 다스린 것입니다.

Q110 우리 한민족의 국통맥은 인류 최초의 경전인 ‘천부경’의 전수 역사와 함께해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와 대진국의 남북국 시대에도 천부경에 대한 역사 기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천부경天符經’은 일찍이 동서 문화의 고향인 환국에서부터 입을 통해서 전해 내려왔다는 말이 있습니다. ‘환국구전지서桓國口傳之書’라 했으니, 그때도 어떤 형태로든 언어가 있었을 겁니다.

그 후에 환국 문명이 동서 문명으로 분화되던 6천 년 전에 커발환 시조 환웅께서 동방 태백산에 오셨는데, 그때 역사를 기록하는 문자 담당 사관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사슴 발자국을 보고 만들었다는 문자, 녹도문鹿圖文으로 이것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단군조선 시대 때 제왕들이 봄가을에 천지의 원주인原主人이신 아버지 천주님에게, 『환단고기』에서는 삼신상제님이라 하는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에게 천제를 올리고 나서 온 백성들과 더불어서 술 마시고 노래했는데, 그때 11세 도해道奚 단군이 ‘논경연고論經演誥’ 즉 ‘천부경’을 논하고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론하셨다는 기록이 『단군세기』에 있습니다.

그 뒤 고구려 때 ‘천부경’의 핵심 사상이 들어 있는 ‘다물흥방지가多勿興邦之歌’를 불렀고, 대진국에서 4세 문황제文皇帝가 태학太學을 세워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라 때 박제상朴堤上(363~419)은 『징심록澄心錄』에서 ‘천부경’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통일신라 때 고운 최치원崔致遠(857~?)은 ‘천부경’을 찾아서 한문으로 기록했습니다. 묘향산 바위에 새겨진 것을, 20세기 초엽에 운초雲樵 계연수桂延壽(1864~1920) 선생이 약초를 캐러 산에 들어갔다가 기적적으로 발견하여 탁본을 떴다고 합니다. 그 사연을 적은 편지 내용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