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FOCUS | 종도사님께 듣는 대한역사관 ⑮

[STB하이라이트]

다섯 번째 국통맥 - 가야(98~104번 질문)


Q98 가야는 삼국 시대 초기 잠깐 존재했다가 신라로 흡수된 작은 연맹 왕국 정도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2019년부터 정부가 가야 역사 복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가야 역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한반도에서 ‘잊힌 역사’라고도 불리는 가야는 어떤 과정을 통해 건국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가야를 대왕국으로 봅니다. 가야는 단순한 6가야 연맹체가 아니었습니다. 가야 문화 속에는 대륙의 웅대한 역사문화의 원형정신이 살아 있습니다. 가야란 어떤 나라인가? 우선 가야의 문화 원류 정신을 제대로 못 보는 근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관의 빈곤에서 기인합니다. 환국을 계승한 배달, 단군조선의 국통 전개에서 ‘북삼한(진한, 번한, 마한)에서 남삼한(진한, 변한, 마한) 시대로 전환한 논리’를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주관과 국통 두 가지를 제대로 복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야 역사문화의 신비와 역사 정신의 근본을 보려면 무엇보다도 남북 삼한관, 북삼한에서 남삼한으로 전환되는 역사의 논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단군조선이 무너진 뒤에 북쪽에 있던 삼한 백성들이 한강 이남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그것이 소위 남삼한입니다. 식민사학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 하지만 실제로 중삼한中三韓이 있었습니다. 중삼한은 한반도에 있었던 남삼한입니다. 부산, 김해는 금관가야 땅입니다. 그다음에 충청도, 전라도는 마한입니다. 남삼한은 단군조선의 북쪽 삼한 백성들이 나라가 망하면서 한강 이남으로 내려와서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북삼한, 즉 단군조선을 신화의 역사로 송두리째 부정했습니다. 대륙삼한, 북삼한이 기록에 있는데도 그것을 엉뚱하게 해석하고 조작하고, 잘못된 역사관으로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남삼한이 성립된 이후에 신라, 백제 그리고 가야가 건국되었습니다.

고조선의 번한과 진한의 유민들이 합류해서 김해 방면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때 북방 대륙의 유목 문화 가운데 가장 강력한, 동서 문명을 교류시킨 흉노의 황손인 김일제의 후손이 남삼한의 변한에 들어와 가야 왕조를 열었습니다. 신라에 들어가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된 김알지와 가야를 세운 김수로는 조상이 같으므로 큰집과 작은집의 관계와 같습니다.

Q99 가야를 건국한 김수로왕의 황후께서는 인도 아유타국 공주로 알고 있습니다. 북방 민족의 혈통인 김수로왕이 남방 민족의 공주와 혼인을 했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인연은 『삼국유사』 「가락국기」 기록에 의하면 상제上帝님께서 맺어 주셨다고 하는데요,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所居北龜㫖(소거북구지) 是峯巒之稱(시봉만지칭), 有殊常聲氣呼喚(유수상성기호환) … 又曰(우왈) 皇天所以命我者(황천소이명아자) 御是處(어시처) 惟新家邦(유신가방) 為君后(위군후), 為兹故降矣(위자고강의), …

북쪽 구지, 이것은 산봉우리의 이름인데, 그곳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났다. … 또 말하였다. “황천상제께서 나에게 명하시길, 이곳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셨다. 그래서 여기에 내려왔다.” - 『삼국유사』 「가락국기」


수로왕과 허황후가 만날 때 그냥 만난 것이 아닙니다. 수로왕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황천상제님께서 나에게 명하기를 이곳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했다.” 그때 아홉 구九 자에 칸이라 하는 간干 자, 구칸九干이 모여들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습니다. 우리가 왕님을 모시게 됐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구칸이 김수로를 대칸, 왕으로 모신 것입니다.

妾是(첩시) 阿踰陀國(아유타국) 公主也(공주야) 姓許名黃玉年二八矣(성허명황옥년이팔의)
父王與皇后(부왕여황후) 顧妾而語曰(고첩이어왈) 爺孃一昨夢中(야양일작몽중) 同見皇天上帝(동견황천상제)
謂曰(위왈) 駕洛國元君首露者(가락국원군수로자)
天所降而俾御大寶乃神乃聖(천소강이비어대보내신내성) 惟其人乎(유기인호)
且以新莅家邦(차이신리가방) 未定匹偶(미정필우)

卿等須遣公主而配之言訖升天(경등수견공주이배지언흘승천)
形開之後(형개지후) 上帝之言(상제지언) 其猶在耳(기유재이)
“저는 아유타국 공주입니다. 성은 허許, 이름은 황옥, 나이는 16세입니다.”
부왕과 황후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비와 어미가 어젯밤 꿈에 함께 황천상제님을 뵈었는데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락국의 선량한 임금 수로는 하늘이 내려보내어 왕위에 올랐으니, 신령스럽고 거룩한 이는 오직 그 사람뿐이다. 또 새로 나라를 다스리는데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모름지기 공주를 보내 그의 배필이 되게 하라.’ 하시고, 말을 마치자 하늘로 올라가셨다. 꿈에서 깬 뒤에도 상제님의 말씀이 아직 귀에 있구나.”라고 하셨습니다. - 『삼국유사』 「가락국기」


재미있게도 허황후가 “제가 본국에 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꿈을 꾸셨는데, 함께 황천상제님을 뵈었답니다. 그 상제님이 ‘가락국의 선량한 임금 수로는 하늘에서 내려보냈다. 신령스럽고 거룩한 이는 오직 그 사람뿐이다.’라고 하셨어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있는 내용입니다. 허황후가 천상의 하나님, 삼신상제님으로부터 ‘동쪽으로 가서 너의 배필을 만나라. 왕님을 만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한양대학교 김병모 교수님이 기록에 따라 추적을 했습니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그 후예들이 중국으로 왔는데, 양자강 서쪽 사천성으로 왔습니다. 사천성 안악현 보주에서 양자강을 떠나 남쪽으로 해서 김해 주포까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지금도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Q100 종도사님의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통해 김수로왕의 둘째 따님이신 묘견 공주가 일본으로 건너가 고대 일본의 첫 여왕이 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기록이나 유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본 역사문화의 궁극의 진리 깨달음의 근본이 되는 묘켄 신사가 있습니다. 야쓰시로묘켄궁이었는데 팔대묘견궁八代妙見宮이라고 합니다. ‘묘견妙見’은 오묘할 묘妙 자, 볼 견見 자입니다. 우주의 궁극의 신성이 드러난다는 현見 자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묘켄이라는 것은 묘견 공주를 말합니다. 그 설명을 보면 명치유신 전에는 모켄궁인데,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둘째 딸 묘견 공주(히미코)가 여기에 와서 야마대국耶馬台國을 건설하고 동생 선견 왕자가 보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수로왕과 허황후의 일곱 왕자도 각기 나라를 세웠다고 합니다.

김수로왕의 둘째 딸 묘견 공주 비미호卑彌呼(히미코)의 재위 기간은 ?~247년(혹은 248년)으로, 남편이 없고 남동생이 정치를 보좌하였다. 영적인 능력을 가진 제사장으로, 종교적 권위자였다. 히미코를 천조대신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도흠 한양대학교 교수도 “고대 일본의 첫 여왕인 ‘히미코’가 가야국 공주로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의 두 딸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3세기 일본 규슈 사마태국은 가야와 같은 이모작을 했고, 철기 공방이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이는 일본으로 건너간 가야인들의 흔적”이라고 했다.


二十年(이십년) 夏五月(하오월) 倭女王卑彌乎(왜여왕비미호) 遣使來聘(견사래빙)
(신라 8대 왕) 아달라 이사금 20년(173년) 여름 5월에 왜의 여왕 히미코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 『삼국사기』 「아달라 이사금본기」


Q101 가야 역시 신라와 마찬가지로 유목 문화의 특성을 보이는 유물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가야의 유물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야의 유물들, 장식품을 보면 철을 녹이는 1,300도 온도에서 가공한 유리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장식 예술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방패 장식으로 사용된 파형동기와 3단, 4단으로 된 귀걸이 양식을 보면 매우 아름답습니다.

가야의 문화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방 대륙 유목 문화의 특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북방 유목 문화의 중심에 있는 흉노, 훈족의 문화 상징은 첫째로 동복銅鍑(청동 솥단지)입니다. 경주, 가야에서 나온 동복은 그 조상들이 살았던 황하의 오르도스 지역의 동복과 거의 비슷합니다. 또 순장 제도가 같고, 천자를 상징하는 왕관은 소도 제천문화 양식입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기마 무사단과 비슷한 막강한 무사들의 갑옷이 있습니다.

신라, 가야의 지배자들이 북방 기마 민족, 즉 흉노의 후예로 거론되는 결정적인 유물 중 하나로 동복이 거론된다. 말에 싣고 다니는 동복은 기원전 8세기나 기원전 7세기 무렵에 출현해 기원후 5세기나 6세기 무렵에 소멸되는데 유목 민족의 특성상 매우 넓은 지역에 걸쳐 발견되고 있다.
- 이종호, 『황금 보검의 비밀』, 183쪽


Q102 2021년 남원시가 가야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진행하면서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전라북도 남원 = 기문국’, ‘경상남도 합천 = 다라국’을 삭제하지 않은 것을 두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이 고대 한반도를 식민 통치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며 내세운 호칭인데요, 이 임나일본부설이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본 침략자들이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한국 사학계에서도 임나일본부라 부릅니다. 지금도 일본 우익 교과서를 보면 야마토 왜의 신공황후가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하여 임나에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고 백제, 신라, 가야를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했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남선경영론입니다.

임나일본부를 주장하게 된 근원은 『일본서기』와 1657년부터 1906년까지 250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대일본사』입니다. 일본 학자 3인이 임나일본부를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전개했는데 ‘임나라는 것은 작게 보면 김해, 즉 금관가야이고 넓게 보면 6가야 땅 전부이다.’라는 것입니다.

임나일본부를 내세운 침략 역사관의 시작은 백제라는 친정집이 망하고 나서 기록된 『일본서기』에서 비롯됩니다. 『일본서기』를 보면, 대륙과 전혀 관계없이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천조대신)의 손자 니니기(황조신)로부터 신무神武로 해서 만세일계로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찍부터 한반도 남부로 가서 무릎을 꿇리고 지배했다는 것입니다.

삐뚤어진 일본의 황국사관, 침략사관에 의해서 우리는 너무도 많은 역사의 희생을 치렀습니다. 임진년 조일전쟁뿐 아니라, 근래 명치유신 이후로 약 천만 명의 조선 동포들이 죽임을 당하고 역사의 뿌리, 시원 역사가 송두리째 말살됐습니다. 이 어둠의 역사에서 우리 모두가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고 진정으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Q103 임나일본부설의 진실을 알기 위해선 ‘임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먼저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환단고기』에 ‘임나’의 진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임’은 환인의 ‘인仁’입니다. 임나任那라 할 때 임任은 ‘님’입니다. 우리가 ‘잊지 못하는 님, 사랑하는 님’ 할 때의 님입니다. 그리고 나那는 ‘나라’를 말합니다. 임나는 ‘잊지 못할 님의 나라’입니다.

이 임나 문화의 근원은 9천 년 동서 인류 문명의 원형, 영원한 문화의 고향인 환국의 ‘환인’입니다. 안파견 환인입니다. 그 환인에서 지도자를 뜻하는 ‘인仁’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수메르 문명에서 지도자를 ‘인(En)’이라 했습니다. 또 이 환인에서 우리말로 임금님이라 할 때 ‘임, 님’이 나왔습니다. 이처럼 임나는 ‘님의 나라, 왕의 나라, 주군의 나라, 주인의 나라’를 뜻합니다. 대마도인들이 주군의 나라, 님의 나라를 그리워해서 임나라 한 것입니다.

『일본서기』에서 발원되어 ‘임나일본부’가 나왔습니다. 『일본서기』 숭신 65년(서력전 33년) 조에 ‘임나에 있는 한 신하가 조공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임나의 위치를 기록하면서 ‘계림의 서남쪽이고, 북쪽은 바다에 막혀 있다.’고 했습니다. 임나는 북쪽이 바다에 막혀 있다. 바다에 떠 있다는 겁니다. 『일본서기』 원본 자체에 임나는 한반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축자국으로부터 2천 리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임나는 일본 구주도 아니고 바로 대마도라는 겁니다. 『일본서기』 자체에서 분명한 해답을 알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를 보면 ‘대마도 서북쪽이 원래 임나다.’라고 했습니다. 대마도의 서북쪽 작은 땅이 바로 임나라는 것입니다. 또한 ‘임나는 본래 대마도에 있었고, 임나를 다스린 수도 역할을 한 곳은 국미성國尾城’이라고 나옵니다.

任那者(임나자)는 本在對馬島西北界(본재대마도서북계)하니
北阻海(북조해)하고 有治曰國尾城(유치왈국미성)이오.
後(후)에 對馬二島(대마이도)가 遂爲任那所制故(수위임나소제고)로
自是(자시)로 任那(임나)는 乃對馬全稱也(내대마전칭야
)라.
임나는 본래 대마도의 서북 경계에 위치하여 북쪽은 바다에 막혀 있으며, 다스리는 곳을 국미성이라 했다. 뒤에 대마도 두 섬이 마침내 임나의 통제를 받게 되어 이때부터 임나는 대마도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


Q104 일본이 백제와 신라를 통해 본격적으로 문화를 전수받기 전부터 가야와 임나(대마도)를 통해 신교 문화를 전수받음으로써 일본 왕조의 창세 역사가 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가야와 임나인 대마도를 통해 일본이 신교 문화를 전수받는 과정과 내용을 더 말씀해 주십시오.


대마도는 단군조선의 문화가 일본으로 전수되는 경유지로서 일본 창세 역사가 이루어지게 한 문화의 자궁입니다. 대마도는 일본 문화의 원류입니다. 동경대 교수라든지 그 외에 일본의 전문가들이 일본 사람들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조사해 보니까 조선 사람과 95%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 사람이 곧 한국 사람, 도래인渡來人이라는 뜻입니다. 대마도는 배달, 단군조선 이후 도래인들이 넘어가 일본 열도를 개척하기 위해 발판으로 삼은 전진기지이자 문화 전수의 첫 관문이었습니다.

대륙 문화가 마지막으로 들어오면 잠금장치를 하는 대마도, 일본 문화의 자궁인 대마도는 일본 10만 개 신사 문화의 근원입니다. 대마도에서는 대륙과 반도의 삼신 문화 원형을 나름대로 보존하면서 변형시켜 왔습니다. 삼랑, 삼시랑 문화를 근본으로 한 일본의 신교 문화는 나중에 쇼군 문화로 흐르기도 했습니다.

신라 화랑 문화는 신교입니다. 화랑의 원말은 천지화랑인데, 다른 말로 삼랑三郞입니다. 삼랑의 원래 말은 삼시랑三侍郞인데 일본어로 사무라이가 됐습니다. 이 모실 시侍 자를 따서 사무라이를 일본어 한자로 ‘시侍’라고 합니다. 가야의 꿈이 좌절되면서 작은집의 모든 역사 문화의 원류 정신이 큰집인 신라로 넘어갔습니다. 가야는 죽지 않았고, 통일신라를 통해서 결국은 백제를 무너뜨립니다.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에서 보면 중심국은 고구려 대제국이지만, 신라가 또 고구려를 무너뜨립니다. 일본에 전해진 가야 문화는 전부 신라 문화 양식으로 기록됩니다.


일본 역사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문화, 신사 문화의 원류는 조화삼신, 일곱 신입니다. 신교의 삼신 칠성 사상이 바탕이 되어 신화 체계가 수립되었습니다. 일본의 창세 역사의 근본 바탕은 조화삼신입니다. 조화삼신은 천어중주존天御中主尊, 고황산영존高皇産靈尊 그리고 신황산영존神皇産靈尊입니다. 천어중주존을 알면, 일본 역사 문화의 궁극의 근원을 깨닫게 됩니다. 인류 역사의 근원인 천상 신도 세계의 하나님 문화의 근본을 깨치는 것입니다. ‘천어중주’는 하늘의 중심이 되는 주신主神입니다. 고황산영존은 저 높은 곳에 계시면서 우리들을 직접 다스리시는 위대한 신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의 신도 구조에서 고황산영존과 신황산영존 두 분은 부부 관계처럼 묘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칠성 문화에 일곱 신이 있습니다. 앞의 세 분은 독신이고, 뒤의 네 분은 부부신인데, 바로 그 마지막이 유명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입니다. 아지나기와 이자나미는 일본 황조皇朝를 여는 주신이고, 그들의 자녀인 천조대신, 월독신, 소전명존은 황조신 삼 남매입니다. 이 삼 남매가 한반도에서 대마도를 거쳐 본주本州(혼슈)로 넘어간 것이 일본 왕조의 창세 역사가 펼쳐진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