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태을주를 읽어야 한다 외(변금연, 이덕용, 박종문)

[입도수기]

앞으로 태을주를 읽어야 한다


변금연(여, 88) / 대구대명도장 / 151년 음력 12월 입도

길을 찾기 위한 공부 과정


저는 1934년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외모와 재주가 남달랐는지 장군이 될 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10살쯤 되었을 때 철봉에 발만 걸치고 수십 바퀴를 돌아 신문에 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기억으로 갓을 쓴 멋진 사람 셋이서 전라도에서 왔고 자신들이 선도를 믿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태을주를 읽으시면서 앞으로 말세가 오면 태을주를 읽어야 한다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성장하여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기도 했지만 저는 진짜 참된 길을 찾기 위해 많은 곳을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대전大田에서 주역과 앞으로 오는 후천 세계에 대한 공부를 했고, 해인사 절에서는 30년을 지냈습니다. 성철 스님과 일타 스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갑자기 기운이 막혀 사경을 헤매는 스님들을 살려 드린 적도 있습니다. 이후 여기저기 고통받는 사람들을 많이 살리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더 이상 하지 못하고 매일 밤 자시에서 인시까지 늘 기도만 하고 있습니다.

태을주 읽는 참진리를 만나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불교방송을 틀려고 하다가 상생방송을 보았고 거기서 어머니가 늘 읽으시던 태을주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진짜 참된 길을 만났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고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모시는 신단에서 기도했습니다. “제가 증산도를 이제 가 봐야 하는데 어디를 가면 회향을 하지 않고 제대로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한 사람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화기에 들리듯 “대명동으로 가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명동이 넓은데 어디로 가면 됩니까?” 하고 물으니 다시 대명10동으로 가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대명동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지나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증산도 도장이 이쯤 있는 것 같은데 어딘지 아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저기 있네요.“ 하면서 도장이 있는 곳을 가리켰습니다. 도장에 올라가서 수호사님을 뵈니 제가 기도하면서 보았던 그분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기뻤습니다. ‘아 정말 제대로 가르쳐 주셨구나.’ 생각하며 이 길이 진짜 참된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은 나이에 참도道를 만나 아쉽지만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조상님을 모시고 남은 날까지 최선을 다해 기도하겠습니다. 보은! ◎

인생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 상생방송


이덕용(남, 67) / 목포옥암도장 / 151년 음력 12월 입도

봉청수의 기억과 인생의 굴곡


저는 충남 보령군 미산면 풍산리에서 6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가 직장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개인사업을 시작하여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 와중에 어머니께서는 고생만 하시다 47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당시에 동생들은 어렸고 아버지께서는 재혼을 하셨는데, 새어머니께서 교회를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안은 조상 대대로 불교 신앙을 하였고, 친어머니께서 장독대에 청수 올리는 모습을 보며 성장했으므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절에 다녔습니다.

제 나이 29세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고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였으며 사고로 머리를 다쳐 뇌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고비들을 넘기면서도 2녀 1남의 자녀가 생겼고 최선을 다해 삶을 영위하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하지만 IMF로 어렵게 유지해 오던 사업이 부도가 났고 모든 재산을 탕진하게 되었습니다. 은행과 빚쟁이들의 독촉에 아내와 협의 이혼을 하고 저 혼자 대전과 목포 등 지방을 전전하며 15년 이상 혼자 살아왔습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뇌출혈이 있어 극적으로 머리 수술을 하였고 뇌수술을 두 번이나 하다 보니 마음이 우울해졌을 뿐 아니라 모든 일이 보람도 없고 싫어졌습니다.

이제 만난 것이 한스러운 증산도 진리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빨간 도포를 입고 수많은 시체를 보면서 살려야 한다며 분주히 움직이는 꿈이었습니다.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남아 항상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는데, 집에서 불교 방송을 보며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상생방송을 보았습니다. 그 방송을 시청하다 보니 그간 가슴속에 담아 두고 살아온 여러 궁금증들이 하나둘씩 풀리게 됐습니다. 시간을 내서 대전에 있는 태을궁 상생방송국을 찾아갔으나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고, 안내하시는 분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제가 있는 목포에도 도장이 있다면서 목포옥암도장을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아파트 경비원 일을 하고 있어 쉬는 날에 마음먹고 목포옥암도장에 방문하여 진리 말씀을 듣다 보니 그간의 모든 궁금증들이 풀렸습니다. 또한 진리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증산도 진리를 이제야 만난 것이 한스럽고 급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입도 공부를 하면서 조상님 천도식을 올려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포옥암도장 도생님들이 열심히 신앙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입도식을 하자마자 천도식을 봉행하게 되었습니다. 상제님께서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그러므로 모든 선령신(先靈神)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도 많으니라.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을 중히 여기라. 너희들이 나를 잘 믿으면 너희 선령을 찾아 주리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증산도 공부를 하면서 조상님들의 음덕에 보은하며 천도식을 올리고 조상님들을 바르게 모실 수 있게 되어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혼신을 다해 입도 교육을 시켜 주신 김상섭 수석포감님과 수호사님을 비롯한 목포옥암도장 모든 도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천지일월 부모님께 보은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

상제님 행적이 담긴 도전을 보고


박종문(남, 53) / 서울동대문도장 / 151년 음력 12월 입도

개벽, 그리고 대순의 여정


저는 고등학교 때 누나가 보던 ‘노스트라다무스 대예언’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1999년 일곱 번째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 하고 지구가 멸망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그럴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참선을 좋아해서 시간이 나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것이 개벽이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개벽은 지구의 멸망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고 군대 가기 전인 1990년에 서울에 있는 누나 집에 가다가 대순진리회의 수도인을 만났습니다. 잠실 석촌동에서 입도식을 했으며 그때 바로 불고가사를 하고 일꾼이 되어 포덕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배도 고프고 잠도 많이 못 자는 힘든 생활이었지만, 상제님의 덕을 널리 편다는 일심으로 열심히 포덕 활동을 해서 함께 수도 생활을 하는 일꾼도 여러 명 생기고 해서 즐겁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군대 입영 영장이 나와 논산훈련소에 기술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신체검사를 하는데, 오른쪽 팔에서 종기가 발견됐습니다. 이를 이유로 사회에 나가 종기를 제거한 후 다시 들어오라며 갑자기 퇴소를 시키는 바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포덕을 계속하게 됐습니다. 이런 일이 전개되자 저는 조상님께서 사람들을 많이 살리라며 제게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크게 느꼈습니다.

그렇게 1년 반 정도 일꾼으로 포덕 활동을 하다가 다시 입영통지서를 받고 춘천 지역으로 입대하였습니다. 지난번과 다르게 이제는 실제 군대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춘천으로 가면 대부분 근무하기 힘든 곳으로 배치를 받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상님 은덕으로 102 여단 삼척으로 배치된 후에 모두 다 받는 유격도 한 번 받지 않고 편한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조상님께서 정말 많이 도와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군대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대순진리회와는 멀어졌습니다. 제대 후, 다행히 복학을 하게 되었고, 대학 졸업 후에는 회사 생활을 하며 결혼을 해서 가족도 생기고 자녀도 낳아 행복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평범하지만 열심히 생활하는 가운데에서도 가끔씩 태을주를 외우면서 마음을 다졌지만 꾸준하게 태을주를 외우지는 못했습니다.

코로나의 의미를 알고 재개한 주문 공부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다가 2020년이 되어 코로나 사태로 인해 시간이 많이 생겼는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책들을 보고 인터넷 블로그도 살펴보면서 코로나가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격암유록>이나 <정감록> 등의 책을 보면서 이제는 시간이 없다며 수도를 하지 않던 것에서 벗어나, 다시 예전과 같이 오전 7시, 오후 1시, 저녁 7시, 새벽 1시에 기도를 모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주문을 찾아 모두 다 외우며 사시 기도를 모셨고 하루 두 시간 정도는 주문 공부를 했습니다. 1년 8개월 정도 주문 공부를 하다가 예전에 잠실에서 저를 입도시켜 주신 선각을 찾아보려 했으나 벌써 30년 전이어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예전에 같이 수도하셨던 분들이 계신 곳을 찾아가 만나 보기도 했지만, 저와 같이 수도하시던 분들은 이미 중간에 모두 떠나신 상태였습니다. 겨우 안면이 있던 한 분만 만나 다시 수도를 같이 하려고 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원하는 상제님의 도를 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감명받은 도전 속 상제님 이야기


그래서 다시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하던 도중 인터넷에서 증산도를 찾게 되었고 서점에서 『증산도 도전道典』을 구입하여 집에서 읽었습니다. 도전을 읽으면서 기존에 알던 내용과는 다르게 상세하게 상제님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어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때까지는 수도할 곳을 정하지 못하고 증산법종교 관련 블로그에서 상제님 따님이신 강이순 선사의 화은당실기를 보고서 이곳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금산사 근처의 오리알터도 멀고 서울에도 도장이 있기는 하지만 단체의 규모도 작아 수도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시 계속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블로그를 찾아보다가 증산도의 입도 수기를 보았습니다. 그동안 주위에서 대순진리회 수도인이라고 하면 상제님의 덕화를 워낙 많이 손상시켜서 사람들이 좋지 않게 생각하는데, 증산도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온전하게 상제님의 도를 펴고 있는 곳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도전에 나와 있는 많은 치병의 행적들은 대순진리회에 있을 당시 ‘여기는 왜 이런 게 없을까?’ 하는 의문점을 가지게 한 것이었습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심을 가지고 공부하면 치병의 능력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맞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로운 곳을 향한 새 출발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내용은 대순진리회의 도주이신 조철제 님이 진정한 상제님의 도인이라면, 어떻게 도전에 나온 것처럼 도통을 위해서 상제님의 성골을 도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일반 사람으로서 생각해도 이는 사제지간, 군신지간의 도리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행동인 것입니다. 아무리 도통이 중요하더라도 이는 기본적인 의義가 없는 행동이어서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으면 아무리 도통에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도통을 못 한다고 해도 이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대순진리회의 수도인들이 어렵게 수도 생활을 하고 혈심으로 수도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제가 같이할 곳은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됐습니다.

이상과 같이 이제는 새롭게 수도 생활을 하자고 마음먹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증산도 서울동대문도장을 찾아 연락을 했습니다. 전 수호사님께서 전화를 받으셔서 방문 약속을 잡았고, 그다음 날 동대문도장에 찾아가 증산도 교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입도를 위한 팔관법 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후 김 수호사님과 이 포정님의 마무리로 입도를 위한 모든 팔관법 교육들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지금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이 제 조상님들의 지극한 공덕 때문이라는 것을 깊이 느끼며, 전 세계인들에게 증산 상제님의 무극대도를 널리 알리고 수많은 세계인들을 증산 상제님의 도문에 입도시킬 수 있는 도생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