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병란개벽 도전道典 강해(2차) 2부

[종도사님 말씀]
도기 151. 8. 29, 병란특집 개벽문화 콘서트 5차, 태을궁

본론 2: 상제님 강세와 동학


증산도의 진리 체계 : 팔관법, 사관법


지금 『도전』 1편을 강독하는데요, 강독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진리란 무엇인지, 진리에 대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진리, 참된 이치를 구성하는 세 기둥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理’, ‘신神’, ‘사事’라 합니다. 이理는 ‘우주의 이법’입니다. 이 우주에는 객관적인 변화의 원리적 측면이 있습니다. 자연 과학자들이 물리, 화학, 생물을 연구할 때 측정과 실험을 하고 공리를 세우듯이 이 우주의 이치를 탐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법理法만 안다고 해서 진리를 다 알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쪽에 불과합니다. 이 우주의 실제, 그 변화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우주의 이법을 다스리는 주관자들이 있습니다. 비가 하늘에서 그냥 내리는 것이 아니라, 비를 내려주는 우사雨師라는 신명들이 있어요. 그들이 구름 위에서 물을 부어야 실제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정부 부서에는 수자원을 다스리는 물 관리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름에 냉장고에서 만든 얼음으로 빙수를 만들어 먹기도 하듯이, 이 우주에는 사물의 변화를 다스리는 주관자가 있습니다. 신도神道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합리적이고 이법적이고 분석적이고 수학적인, 이理의 세계를 다스리는 신도가 있습니다. 이건 초월적이고 초이성적인 것입니다.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면서도 그걸 넘어서는 경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법만 가지고 안 되고 신의 세계, 신도 세계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이법과 신도가 음양으로 일체가 되어서, 태극의 구성 원리로 하나가 되어서 현실 세계에 헤아릴 수 없는 사건, 이벤트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 사건들이 모여서 인간의 인문 질서에서 역사가 됩니다. 그래서 이理(Principle), 신神(Spirit), 사事(Event) 다른 말로 역사歷史History를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신神과 기氣의 관계를 아는 게 어려워요. 이걸 제대로 말한 사람이 없습니다. 우주의 조화 바다, 우주의 생명의 바다를 기라 하는데, 신이 기의 바다를 타고 있다는 것입니다. 『환단고기』에서 이것을 말했어요.

一氣之自能動作(이기지자능동작)하야 而爲造敎治三化之神(이위조교치삼화지신)하시니
神(신)은 卽氣也(즉기야)오 氣(기)는 卽虛也(즉허야)오 虛(허)는 卽一也(즉일야)라.

우주의 한 조화 기운[一氣]이 스스로 운동하고 만물을 창조하여 조화造化·교화敎化·치화治化라는 세 가지 창조 원리를 지닌 신이 되신다. 이 신은 곧 우주의 기요, 기는 허요, 허는 곧 하나이다. ( 『환단고기』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우주에는 무수한 신이 있습니다. 인격신도 있고 자연신도 있습니다. 자연신은 사람 모습이 아니지만 인격신과 같은 경계인데요. 고구려 벽화를 보면 바람의 신, 천둥의 신이 있는데 얼굴이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신들과 인간 세계와 우주 질서를 다스리는 우주의 통치자를 ‘제帝’라 합니다. 그래서 상제님을 천지신명의 주권자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신사를 인식하는 주체는 누구일까요? 이법과 신도와 사건을 융합, 조화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이 우주의 진정한 주체, 주인, 주권자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대해서, 마음 법에 대해서 도를 통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선천 문화에서는 이 우주 진리의 구성 틀에 대해서 최종적인 답변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도통, 궁극의 도통이 나오지 않았어요. 상제님께서는 “내 공부에는 3등급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상등 도통을 한 자가 없었다. 내가 비로소 중통인의中通人義를 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주의 실제적인 이법의 결론은 무엇인가? 그것은 선천개벽과 후천개벽입니다. 지구 1년을 보면, 하루의 낮과 밤이 계속 바뀌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초목 농사를 짓는 1년이라는 지구 문명의 기본 단위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확장되어서 우주 1년인 129,600년이 됩니다. 지구가 하루에 태양을 안고 스스로 한 바퀴 돌고 이것이 반복되어 360일이 되면 이것은 정도수正度數로 129,600도입니다. 그래서 지구 1년은 129,600도, 우주 1년은 129,600년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해서 선천과 후천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우주의 선천 세상이 끝나고, 가을·겨울 후천 세상으로 들어갑니다. 이걸 선언한 것이 동학東學이에요.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니냐.’, ‘개벽 후 네가 처음이다.’ 이런 구절이 동학 가사에 있습니다. ‘개벽 후에 네가 처음으로 다시 개벽을 선언한다.’는 것입니다.

공자, 석가, 예수 같은 성자들도 이 개벽을 선언하지 못했습니다. 개벽 얘기를 그저 한두 마디 한 정도였습니다. 팔만대장경에 불과 문장 몇 개, 신구약에 문장 몇 개, 주역에 문장 한두 개가 나옵니다. 그만큼 개벽을 알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러다가 근대 문명의 진정한 출발점인 동학에서 개벽이 새로운 문명에 대한 담론의 중심 주제가 된 것입니다.

선천개벽 이후 인류가 최초로 생겨난 봄의 문명이 끝나고 지금은 여름의 문명입니다. 봄의 문명 시대인 약 5만 년 전에 크로마뇽인이 있었고 이어서 약 4만 년 전에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가 나왔다고 합니다. 10,800년마다 달 개벽이 있는데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다섯 달 접어들면서 지금과 같은 기후로 바뀐 것이 한 12,000년 전후라고 합니다. 그때 신석기 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여름의 문명, 불의 문명에서 가을 문명으로 건너뛰는 것입니다. 이게 후천개벽이에요. 우주에는 크게 보면 선천개벽과 후천개벽이 있습니다. 선천개벽은 선천이 시작되는 우주의 봄개벽입니다. 후천개벽은 우주의 후반부로서 성숙, 통일, 조화, 하나 됨이 이루어지는 가을철의 시작입니다. 가을개벽 문을 여는 후천개벽이에요. 이 선천개벽과 후천개벽이 있는 우주의 1년, 인간 농사 짓는 우주의 1년 이야기가 증산도에서 처음 완성되었습니다. 상제님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처음으로 이 개벽관을 완성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가을개벽을 앞둔 이 시점에 상제님의 후천 대학교 문화가 있습니다. 지금 천지가 병들어서 문명의 중심인 학교가 문을 닫게 될 것이기 때문에 상제님께서 후천 가을의 지상 선경 문명, 신선 문화를 건설할 인재를 기르는 후천 대학교 문을 여셨습니다. 그 학교가 바로 삼랑대학입니다.

삼랑三郞이란 뭘까요? 삼랑은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 문화의 중심 주제입니다. 아리랑은 아는데 왜 삼랑은 모를까요? 알고 보면 아리랑은 삼랑보다 선행된 언어예요. 삼랑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 영혼의 노래 아리랑의 진정한 뜻을 모릅니다. 아리랑에 대해서는 책과 논문도 많이 나왔지만 아리랑의 진정한 뜻을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랑대학의 교육에는 교법敎法과 행법行法이 있습니다. 교법은 상제님의 진리를 의미하는데요, 그 기본 틀을 16관법으로 했다가, 12관법으로 했다가 팔관법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없기 때문에 팔관법八觀法사관법四觀法으로 줄여서 전하기로 했어요. 팔관법에서 상제관上帝觀과 수부관首婦觀을 합치면 사관법의 제1법이 됩니다. 이 우주의 진리의 원점, 근본 중심은 대우주를 다스리시는 통치자 하나님입니다. 그분을 부를 때 천주님이다, 아버지다, 천제다, 천신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호칭을 씁니다. 또 하느님이다, 하늘님이다, 한울님이다 하고 별의별 호칭을 씁니다. 불가에서는 도솔천 천주님, 미륵불이라 합니다. 불가에서 그 하늘을 투시타라 하는데 도가에서는 태라천太羅天이라 합니다. 그러나 언어에 매이면 안 되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상제上帝님은 ‘천상에 계신 통치자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태모太母님은 ‘가장 크신 어머니, 인간과 신명의 큰 어머니’란 뜻입니다. 그래서 상제관과 수부관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상제님과 태모님을 올바로 아는 것은 곧 천지부모天地父母를 아는 것입니다.

이 상제관과 수부관이 지난 100년 동안 비뚤어졌어요. ‘공자, 석가가 자기 어머니, 자기 아내를 함께 섬기는 것 봤느냐? 수부관을 그냥 무시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수부 치마폭을 벗어난 자는 이번에 다 죽는다. 나의 종통은 나의 수부, 너희들의 어머니에게 전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다음에 제2법은 우주관宇宙觀과 신관神觀입니다. 상제님이 다스리시는 이 우주의 이법을 아는 것이 우주관입니다. 그리고 우주의 중심에 있는 내재적인 존재, 신을 알아야 됩니다. 이 신관은 수행관을 통해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우주의 최종 결론은 인간人間입니다. ‘나는 누구냐? 나는 왜 인간으로 태어났느냐?’ 이 물음은 기적 같은 우리 인생에 대한 큰 질문이며 영원한 질문입니다. 나는 왜 인간으로 왔는가? 돈이나 벌고, 세속적인 권력을 잡는다고, 내 인생의 모든 걸 실제 이룬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원점에서 볼 때 우리 삶의 진정한 목적, 최종 목적은 바로 ‘깨달음’입니다. 진리의 의혹을 푸는 것입니다. 진리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의 모든 난제와 급박한 사태를 극복하고 이 우주의 꿈인 새 세상을 연다는 것입니다.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후천 조화 세상을 여시기 위해서 행하신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알아야만 그러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별의별 공사가 있지만, 상제님의 천지공사라는 것은 천지의 이법을 근본으로 해서 병든 천지를 바로잡으시고 인간의 역사를 바로 세우신 일입니다. 『도전』을 많이 보시고 주문 읽고 수행하시면 천지공사를 우선 한 열 가지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지공사는 사실 그 뜻을 다 헤아릴 수가 없단 말이에요. 천지공사라는 것은 천지부모와 하나 되는 공사, 천지부모의 뜻을 이루는 공사입니다. 인간과 만물의 생명의 근원인 병든 천지를 바로 세워서 인간의 모든 문제를 끌러 내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제4법은 천하사天下事 일꾼관입니다. 천지공사를 인사로 완성하는 것은 대두목大頭目입니다. 상제님께서 대두목에게 의통법, 조화 도통권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상제님께서 김형렬 성도에게 “네가 공덕이 가장 많으니까 네 소원을 이뤄 줄 테니 얘기해 봐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김형렬 성도가 “개벽할 때 제 자손만은 다 살려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상제님이 깜짝 놀라시며 “에이, 도둑놈아.”라고 하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건 나도 뜻대로 못 한다.”고 하셨어요. 그것은 앞으로 나올 나의 일꾼들, 도생들이 역사 현장에서 모든 문제를 이룰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인사는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상제님의 도권道權을 쥔 우리 도생들, 일꾼들의 특권이라는 것입니다.

도생들이 혈심을 갖고 이 도를 지구촌 80억 인류에게 제대로 전하려는 정성을 가지면 더 많이 살릴 것이고, 팔다리 뻗고서 편하게 지내면 다 죽이는 것입니다. 한 나라 사람을 다 죽일 수도 있지만 많이 살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런 특권을 상제님이 도생들에게 내려 주신 것입니다.

교법敎法은 상제님의 진리를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법만 갖고 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실행하는 행법行法이 필요합니다. 특히 수행을 해서 직접 봐야 됩니다. 그래야 ‘돌아가신 우리 조상님이 늘 내 곁을 왔다 갔다 하시는구나’ 하고 실제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행법은 직접 체험을 하는 것이기에 교법보다 더 중요한 면이 있습니다. 이제는 상제님의 도통법을 전수받아서 행법으로 씁니다. 지금 병란 개벽의 시점에서 처음으로 이 도통법을 전수하는 것입니다.

동방 한민족의 신교와 상제님(『도전』 1:1)


우선 『도전』 1편 1장을 보겠습니다. 이 1장은 아홉 절로 된 총론 장입니다. 우리가 궁금하게 여기는 진리 주제가 여기에 다 들어 있습니다. 『도전』 전체를 볼 수 있는 진리 배경이 여기에 있는 거예요.

1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이 ‘문득’ 열리니라.
2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 삼신이 계시니, 삼신三神은 곧 일신一神이요 우주의 조화성신造化聖神이니라.
3 삼신께서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
4 이 삼신과 하나 되어 천상의 호천금궐昊天金闕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동방의 땅에 살아온 조선의 백성들은 아득한 예로부터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하느님, 상제님이라 불러 왔나니
5 상제는 온 우주의 주재자요 (아버지요) 통치자 하느님이니라.
6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니라.
7 한민족은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시대가 지난 후 열국시대 이래 중국 한족漢族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그 상처가 심히 깊더니
8 상제님께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道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시니라.
9 상제님께서 세상에 내보내신 석가, 예수, 공자를 비롯한 성자와 철인들이 상제님의 강세를 미리 알렸으니 이러하니라. (道典 1:1)


『도전』 1편을 보면 처음에 신교에 대한 선언이 나와요. 그다음에 삼신, 삼신일체 상제님이 나옵니다. 유불선과 기독교는 모두 그 근원이 신교입니다. 상제님이 천상에서 아버지로서 각 종교의 성자들을 내려보내셨어요. 그런데 각 종교권에서도 그들 사명의 핵심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불교의 핵심은 도솔천의 천주님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미륵불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此處之名(차처지명) 兜率陀天(도솔타천) 今此天主之名曰彌勒(금차천주지명왈미륵) 汝當歸依(여당귀의)
이곳의 이름은 도솔타천이다. 이 하늘의 주님은 ‘미륵’이라 부르니 네가 마땅히 귀의할지니라. ( 『미륵상생경』)


그런데 이것이 왜곡 정도가 아니라 아주 웃기게 된 거예요. 미륵불이 56억 7천만 년 후에 오신다는 겁니다. 지구 수명이 끝난 뒤에 오는 셈입니다. 그리고 석가불의 제1의 사명은 무엇인가? 오로지 심법 전수가 불교 사명의 전부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보면 미륵님의 도를 가장 잘 실천한, 불교 3천 년 역사에서 으뜸이 되는 큰 인물이 나옵니다. 신라 때 진표眞表라는 숭고한 도승이 소개되어 있어요. 이분은 석가불을 모시고 수도한 게 아니라 오직 미륵불에게 기도하며 정진했습니다. 이 진표 대성사는 미륵불로부터 직접 도통을 받은 유일한 인물입니다.

그다음에 기독교에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아버지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도교에서는 도의 주인으로서 천상의 통치자 하나님, 상제님이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노자, 장자에서 상제님에 대한 인식은 아주 약화되어 그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상제님보다도 앞서는 것 같도다(象帝之先)!
( 『도덕경』 4장)


유교를 보면 공자가 상제님 존재를 의도적으로 약화시켰습니다. 공자는 어떤 정치적 열망, 정치적 욕심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봅니다. 유교에서는 상제님 강세의 땅을 동북 간방艮方이라 했습니다.

제출호진帝出乎辰 ( 『주역』 「설괘전」)
성언호간成言乎艮 ( 『주역』 「설괘전」)


그다음으로는 정역과 동학도 말하고 있는데요. 최근에 김용옥 교수가 동경대전 원본을 번역했는데 그 번역본은 후세에 길이 남을 만한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봅니다. 우주 주재자 문제에서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지만 지금 학계에서는 그렇게밖에 안 되는 한계가 있어요.

자, 그러면 1편 1장으로 들어가서 즐겁게 한번 정리해 보기로 하겠어요.

1절에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이 문득 열리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도전』은 첫 문장에서 이렇게 하늘과 땅을 말합니다. 진리의 출발점은 하늘과 땅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도, 깨달음도, 도통도 궁극은 하늘과 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태시太始에’를 영어 『도전』 번역에서 ‘at the great beginning’이라고 했습니다. 성서에서는 ‘태초에in the beginning’라고 했죠. ‘태시’라는 말은 도가에서 쓰는 언어인데 ‘태역太易, 태시太始, 태초太初, 태소太素’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시에 하늘과 땅이 문득 열렸다’고 했는데, 우주는 어떤 시간 경계에서 본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대폭발설을 그 증거로 말하기도 하지만, 창세 우주의 탄생을 말하는 이것은 개벽관으로 말하면 천지개벽이고 시원개벽始原開闢입니다.

동양에는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모시는 천지부모天地父母 사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상입니다. 이 사상은 환국 배달 조선에 이미 있었고, 「천부경」에도 나옵니다. 그래서 ‘천지를 너희 부모처럼 섬겨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천지를 섬기지 못하는 자는 부모를 섬길 수 없습니다.

중국 송나라 때 장재張載(1020~1077)가 쓴 ‘서명西銘’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건칭부乾稱父요 곤칭모坤稱母라”, 하늘은 아버지로, 땅은 어머니로 일컫는다고 했습니다.

乾稱父(건칭부)요 坤稱母(곤칭모)라
하늘을 아버지로 일컫고, 땅을 어머니로 일컫는다.
Ch'ien [Heaven] is called the father and K'un [Earth] is called the mother.

故(고)로 天地之塞(천지지색)이 吾其體(오기체)오 天地之帥吾其性(천지지수오기성)이라
그래서 천지에 가득 찬 것(氣)이 나의 몸이 되었고,
천지 만물의 통수(理)가 나의 본성이 되었다.
therefore what fills up all between Heaven and Earth, that is my body, and that which directs Heaven and Earth is my nature.

知化則善述其事(지화즉선술기사)오 窮神則善繼其志(궁신즉선계기지)라
천지의 화육化育을 알면 천지부모의 사업을 잘 이을 수 있고,
신명의 오묘함을 궁구하면 천지부모의 뜻을 잘 계승할 수 있다.
Understanding the transformations [of the universe] is being skillful in carrying forward [one's parents'] activities; plumbing the spiritual exhaustively is being good at perpetuating their intentions. (장재張載의 글, 「서명西銘」)


이어서 “고故로 천지지색天地之塞이 오기체吾其體오 천지지수오기성天地之帥吾其性이라”라고 했어요. ‘천지지색天地之塞’, 천지에 충만해 있는 기를 받은 것이 바로 내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지지수天地之帥’, 천지 만물을 거느리는 것 즉 이법理法이 나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화즉선술기사知化則善述其事오 궁신즉선계기지窮神則善繼其志라”라고 했습니다. ‘지화知化’, 천지 변화를 제대로 깨달을 때 천지부모의 사업을 잘 이을 수 있고, 천지의 신도를 궁극으로 깨치면 천지의 참된 뜻을 계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선천이 끝나고 후천으로 가니까 우리는 이제 선천 문화를 넘어서야 합니다. 선천 문화를 정리하고 앞으로 후천 인간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주, 대광명, 조화성신 : 삼신의 바른 뜻


다음 2절은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 삼신이 계시니, 삼신三神은 곧 일신一神이요 우주의 조화성신造化聖神이니라.”입니다.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에서 이제 ‘천지’에서 ‘우주’로 넘어갔는데 인식의 장이 확장된 거예요. ‘우주宇宙’라는 말에서 ‘우宇’는 공간이고 ‘주宙’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상하 사방, 공간 중심의 사고를 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상제님이 ‘우주宇宙’에서 ‘주우宙宇’로 뒤집어 쓰셨어요. 그래서 동서남북 상하, 하늘과 땅이, 인간과 신명들이 시간의 한 질점에서 같이 만나는 것입니다.

앞으로 오는 가을개벽 실제 상황의 그 시간, 그 결정적인 한순간, 초비상 상황의 경계에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두를 지나서 실제 상황이 될 때는 천지의 대신명들이 상제님의 명에 한순간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이것을 한 글자로 말하면 ‘밝을 환桓’ 자, 우주 광명 환입니다. 이것은 천상 광명, 우주 광명 환이고 빛입니다. 이 빛 속에 누가 있는가? 삼신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신, 일신, 하나님을 얘기하지만 그게 아니라 삼신입니다. 이것이 동서 문화의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조물주는 삼신입니다. 그냥 ‘신이다, 유일신이다’ 하는 것은 완전한 진리가 될 수 없어요.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 삼신이 계시니 삼신은 일신이다.’ 여기에서 삼신은 각기 다른 세 신이 독자적으로 있다는 게 아닙니다. ‘삼신은 곧 일신’이라는 것은 삼신일체관三神一體觀입니다. 삼신은 한 몸이라는 거예요. 그 중심에 조화신造化神이 있고, 생명을 낳아서 기르는 교화신敎化神과 다스리는 치화신治化神이 마치 두 팔처럼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교치造敎治 삼신이라 합니다. 고려 공민왕 때 행촌杏村 이암李嵒(1297~1364)이라는 분이 여기에 대해서 인문학적인 논리, 틀을 잡아 주셨어요. 그러나 그 이전 환국에서 「천부경」이 완성되었습니다. 환국의 건국자 안파견 환인이 「천부경」 81자를 완성했습니다. 「천부경」의 원형은 그 이전 마고성麻姑城에서 나온 거예요.

하여간 서양의 삼위일체관과 우리 동방 1만 년의 삼신일체관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어떤 강단사학자가, 『환단고기』에서 기독교 삼위일체신관을 베껴서 삼신일체관으로 썼다고 했는데요. 참 무지막지한 주장입니다. 그 사람들이 사실 『환단고기』를 제대로 읽지 못해요. 『환단고기』의 둘째 문장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 유일신有一神이 재사백력지천在斯白力之天하사” 여기서 다 막힙니다.

서양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일체라 하는데요, 우리나라에 왔던 릭 워렌Rick Warren 목사 같은 이는 ‘하나인 세 하나님’이라 합니다. 이게 사실은 아주 어려운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일체라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엄연히 따로 있잖아요. 그런데도 일체, 한 몸이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은 원래 가르침의 반도 안 되는 거예요. 성령은 무엇인가? ‘아들의 영과 아버지 영이 성령이다.’ 이것밖에 없어요. 계시록을 보면 ‘하나님의 일곱 성령’이지만 원래는 그보다 훨씬 방대한 것입니다.

동양의 삼신일체는 우주의 조물주를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형상이 없습니다. 무형의 조물주인데, 우주의 조화 바다 속에 조물주 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엄격하게 말하면 이 조물주는 인격신이 아니라 망량魍魎입니다. 이 망량이 우리 『도전』에 나옵니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천지가 역(逆)으로 가니 역 도수를 볼 수밖에 없노라.” 하시고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左旋(좌선) 四三八(사삼팔) 天地(천지)는 魍魎(망량)이 主張(주장)하고
九五一(구오일) 日月(일월)은 竈王(조왕)이 主張(주장)하고
二七六(이칠륙) 星辰(성신)은 七星(칠성)이 主張(주장)이라
좌선이라. 사삼팔, 천지는 망량이 주장하고
구오일, 일월은 조왕이 주장하고
이칠륙, 성신은 칠성이 주장하느니라. (도전 4편 141장 1~2절)


서양 기독교에서는 조물주를 인격신이면서도 비인격의 성령적 존재로 말합니다. 그래서 2,000년 동안 기독교 신도들의 가슴 속에는 어떤 권능을 가진 로마 황제 같고 아버지 같은 인격신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그 신이 항상 기도를 들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신관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이처럼 신학적으로, 원론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얼굴이 없는 무형의 성령적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앞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오시는 게 아니라 예수가 재림한다고 합니다. 이 설은 바울이 만든 거예요. 계시록을 보면 ‘내가 장차 내려갈 자다’라고 해서 아버지가 오신다고 그랬잖아요.

『도전』 1편 1장 3절을 보면 “삼신께서 천지 만물을 낳으시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삼신三神이 바로 조물주입니다. 삼신 즉 일신인데 이 삼신의 화현으로 하늘과 땅과 인간이 나타난 거예요. 하늘과 땅과 인간은 삼신 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천일·지일·태일의 논리에 의해서 삼신의 신성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 1절, 2절, 3절은 삼신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우주에 영원한 빛이 있고 그 속에 삼신이 계시는데, 그분은 한 몸의 신이고 우주의 조화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조화성신造化聖神’으로 말한 것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우리가 망량신 문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기독교에서도 그 초기 문화에는 수메르 문명권의 어떤 망량신 문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환국에서 천산을 넘어간 사람들이 개척한 칼데아 우르를 비롯한 10여 개 도시 국가가 지금의 이라크 남부에 생겼습니다. 그곳은 구약 시대를 만든 에덴동산의 원형이 있던 곳입니다. 거기 늪지대에 ‘여기가 에덴동산이었다’라는 팻말이 있는 것을 우리가 봤어요.

그럼 망량은 무엇인가? 원原조물주는 망량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로 가면서 세속화해서 도깨비 문화로 변형된 거예요. 원래 언어는 망량입니다.

삼신상제님과 상제님


4절을 보면 “이 삼신과 하나 되어 천상의 호천금궐昊天金闕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동방의 땅에 살아온 조선의 백성들은 아득한 예로부터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하느님, 삼신하나님 상제님이라 불러 왔나니” 이렇게 되어 있고, 5절에 상제님에 대한 정의가 나와요. “상제는 온 우주의 주재자요 통치자 하느님이니라.”

5절에 삼신 언어의 운율에 맞춰서 ‘아버지’를 넣는 것이 더 좋겠어요. ‘우주의 주재자요, 아버지요, 통치자 하느님’으로 말입니다. 삼신일체, 삼신과 한 몸이신 상제님은 우주의 인격신 하나님으로서 이 우주의 신의 세계, 대자연의 세계, 인간 문명계의 중심에 계시는 최상의 주권자로서 신명들을 데리고 천상 궁전에서 하늘과 땅, 인간계와 신명계를 다스리십니다. 상제님의 본래 호칭은 삼신일체상제님입니다.

호천금궐이 있는 하늘은 북극성 주변에 있는 태라천太羅天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별이 어디인지 오직 증산도에서 압니다. 증산도는 아버지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5절에 상제님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상제님은 ‘온 우주의 주재자’이십니다. 홀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사막 문화권식의 독재자가 아닙니다. ‘내가 하늘도 빚고, 땅도 빚고, 인간도 빚어냈다’는 언명言明을 하는 신이 아닙니다. 실제 우주를 다스리시는 아버지의 실상은 바로 ‘우주의 주재자’인 것입니다.

‘주재主宰’라는 것은 의견을 수렴하고 상호 소통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조화 바다 깊은 곳에 계시는 실제적인 조물주는 삼신, 망량신으로서 인간과 조상신들과 온 우주의 성신들과 항상 대화를 하시는 분입니다.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은 이런 것입니다.

동방 한민족의 신교문화, 국통맥


6절에 가 보면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니라.”라고 했는데 여기서 동방의 조선을 얘기하고 있어요. 여기서 동방 조선을 ‘신교의 종주국’이라 했습니다. 신교, 신의 가르침으로 나라를 다스린 것입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신과 하나 되는 신인합일적 존재입니다. 궁극의 도통을 한 사람은 자신의 조상과, 우주의 성신들과, 상제님이 보내신 성자들 이런 신들과 하나가 된 몸이란 말입니다.

환국, 배달, 조선 초기에는 그런 역량을 가진 분들이 나라를 열고 다스렸습니다. 그런 신선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였어요. 지금은 신교라는 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신교는 종교가 아니에요. 종교 원형이라 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의 모체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나무와도 대화했습니다. 새들이 오면 “잘 있었어? 또 왔어?” 이렇게 말하기도 했어요. 저런 바위도 영靈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면 벌컥벌컥 빗물을 켜기도 하는 것을 옛사람들은 봤던 것입니다.

예전에 같은 동네에 살던 어떤 아주머니가 신을 섬기다가, 이제 이 신들을 그만 모시고 상제님을 믿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조상신들이 왔어요. 그러니까 개가 엄청나게 짖는데 그 남편이 저 개가 잠을 못 자게 한다고 빗자루로 개 머리통을 갈겼어요. 유명한 무당이던 그 여인은 ‘우리 조상신이 왔는데 저 무식한 남편이 개 대가리만 때린다.’고 했습니다. 세속의 무당들이 다 보는 영을 지식이 많다는 사람들이 못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문명의 근본 문제를 해소하려면 신교 문화가 다시 나와야 합니다. 이 대우주의 신의 세계를 제대로 아는 신교 문화의 부활은 동학에서 나옵니다. 동학의 모든 것을 완성하는 참동학을 상제님이 오셔서 매듭을 지어 주셨습니다.

동방 조선을 신교의 종주국이라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모든 종교 문화, 사상, 예술, 의식주 생활 문화의 원형이 모두 이 동방에서, 1만 년 전 환국桓國과 그 이후 배달倍達에서 나갔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구약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삼신 문화도 여기에서 나간 것입니다. 수메르 쐐기 문자로 기록된 그런 내용이 여기저기 나오고 있습니다.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다.”라는 말씀은 상제님만 유일신으로 받들라는 게 아닙니다. 상제님께서 ‘너의 조상을 먼저 받들고, 그 조상들이 나를 섬김으로 해서 그 조상들이 나로부터 자손의 복을 타 내린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복을 받는 공식, 단계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7절을 보면 “한민족은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시대가 지난 후 열국시대 이래 중국 한족漢族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그 상처가 심히 깊더니”, “상제님께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道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이렇게 나옵니다. 원시반본의 도로써 인류 역사 뿌리를 바로잡으셨다고 했는데 여기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이라는 것은, 이 하늘과 땅이 가을로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다시 뿌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초목도 그러하고, 사람도 세상을 떠날 때 대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고, 나의 조국, 고향에 한번 가고 싶다.’는 말을 하거든요. 여우도 죽을 때는 머리를 고향 쪽으로 돌리고, 연어도 회귀 본능이 있어요.

상고 역사 왜곡으로 중국 한족의 역사도 잘 정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본이 ‘조선을 파괴하려면 조선 역사를 파괴하라.’는 논리를 가지고 우리 상고 역사를 단절시키고 부정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당했어요. 지금 광복 80년이 다 돼 가는데도 오히려 더 심해졌어요. 완전 망각증에 걸려서 환국, 배달, 조선 상고사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인으로 살아야 되는데 왜 역사를 배워야 하나.’ 하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의 뿌리는 환국, 배달, 조선입니다. 그 삼성조 시대에는 삼신 문화를 그대로 문명의 주제, 건국의 주제로 가져갔습니다. 이번에는 뿌리를 못 찾으면 죽는 것밖에 없습니다. 뿌리와 열매는 하나이고, 뿌리와 나는 일체라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이 병란 개벽기에 생존하기 위한 첫째의 중심 주제인 것입니다.

『환단고기』를 보면 「천부경」이 실려 있는데 「천부경」은 왜 그토록 중요한가? 「천부경」에서 천일, 지일, 태일을 말합니다. 「천부경」은 창세 역사를 만들고 국가를 세우는 천명을 받는 태고의 우주 경전입니다. 국가를 세우고 경영하는 천명을 받아 내리는 경전이기 때문에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상제님 강세


“상제님께서 원시반본의 도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병든 천지를 개벽해서 새로 태어나게 하는 것은 인간과 하늘 땅, 천지부모를 새로운 질서로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전제로 합니다. 선천에서 후천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이므로 새 세상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병든 천지를 개벽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시니라.” 지금 인간도 제대로 구원하지 못하는데, 인간도, 한 나라도, 한 지역도 제대로 건져 내지 못하는데 상제님은 ‘내가 지구촌 온 인류와 천상에 있는 억조 신명들을 함께 건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신명이 되기 위해서 살고, 신명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사는 거예요. 인간은 조상 신명에게 의지하고, 조상 선령신들은 자손에게 의지합니다. 이것을 신인상의神人相依, 신인상생神人相生, 신인합발神人合發, 신인합일神人合一 같은 여러 언어로 표현합니다. 신명과 인간은 하나이고, 하나 돼서 사는 것입니다.

‘상제님은 하나님인데 무엇 때문에 인간으로 오셨나요?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시다니 말이 되나요?’ 이것은 서양 기독교적인 불가능의 논리입니다. 하나님, 창조주는 인간으로 오실 수가 없는데 어떻게 현상 세계에, 피조물 세계에 오시느냐? 그게 무슨 신이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불교나 동양의 역易철학 논리에서 보면 이 현상 세계가 진리 세계의 궁극입니다. 현상 세계가 바로 본체 세계입니다. 본체와 현상은 둘이 아니라 일체, 하나인 것입니다.

『도전』 1편에서 제일 중요한 1장을 기본적으로 대략 이렇게 언급을 했습니다. 이어서 상제님께서 세상에 내려보내신 석가, 예수, 공자를 비롯한 성자와 철인들이 상제님의 강세를 미리 알린 내용이 나옵니다.

세속에서 무당들이, 옥황상제가 용왕에게 “심청이 물에 들어갔으니까 받아 내려라.” 하셔서 구원해 주신 분이 상제님이라고 합니다. 우리 고전소설 「심청전」에도 그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도전』 답사를 해 보면 상제님 당신님이 “나는 옥황상제라는 호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옛사람들이 그 호칭을 썼지만 ‘무극상제’가 아주 권위 있는 말이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무극상제라는 언어의 본래 말은 삼신일체三神一體 무극상제無極上帝입니다.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셨으니까 축문에도 ‘삼신일체 강성 증산무극상제’ 또는 ‘삼신일체 증산무극상제’라고 넣습니다. 무형의 우주 본체신과 하나 되셔서, 그 자체가 되셔서 인격신으로 계시던 상제님께서 마침내 인간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주의 본체신과 우주 현상계의 주인으로서, 주권자로서, 통치자로서 그 체와 용이 합일된 신관 언어가 ‘삼신일체’입니다. 우주 본체론에서 쓰는 무극, 태극, 황극의 언어를 거기에 붙여서 ‘삼신일체 무극상제님’이라 합니다. 여기에 상제님의 신원을 넣어서 ‘강성 증산무극상제님’이라 하고 그냥 존호만 넣어서 ‘삼신일체 증산무극상제님’이라 하기도 합니다. 이 호칭을 줄여서 ‘삼신상제님’이라 하고 더 줄여서 ‘상제님’이라 하는 것입니다.

깊은 밤에 한번 기도를 해 보세요. ‘상제님, 제가 상제님 도를 한번 본격적으로 걷어붙이며 공부하고 수행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면 구도자로서 아주 위대한 첫걸음을 딛는 것입니다.

성자와 철인들의 상제님 강세 선언


불가에서는 도솔천兜率天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 문제를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도전』 2장에 불교 관련 내용이 나오는데, 석가불의 본래 사명은 오늘날의 불교처럼 심법을 통해서 그 심법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석가는 본래 도솔천 미륵님의 법을 수호하는 보살로 있다가 사명을 받아서 오셨어요. 도솔천의 스베타케투Svetaketu(호명護明) 보살이 천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와서 ‘미륵님의 법이 궁극이다. 미륵님의 법을 닦아라.’라는 말씀을 미륵경에서 하시긴 하셨어요.

그리고 ‘우주의 질서가 바뀌는 개벽이 온다.’는 것은 조금밖에 말씀하지 못했어요. 팔만대장경에서 미륵불에 대한 내용을 뽑아 보면 책 한 권 정도는 나오지만 거기에 실제적인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후대에 와서, 석가불이 56억 7천만 년 후에 이 세상에 온다는 설이 나왔습니다. 원래 3천 년 후 말법 시대에 미륵이 오신다는 것인데요. 지난 갑인년에 3천 년이 되었고 이제 47년이 더 지났어요. 남방불교에서는 불기를 500년 줄여 쓰고 있잖아요.

석가불은 미륵의 도법을 지키고 선포하고 그것을 수호하는 광명의 부처로 내려왔습니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 석가불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이 정리되어 있는데, 장편 문학의 백미라고 합니다.

然此菩薩,亦生兜率,其兜率陁所居諸天,卽喚菩薩,名爲護明,以是因緣,號爲護明。諸天展轉,稱喚護明,其聲上徹至淨居天,及到阿迦膩咤天頂。時諸天等,皆同唱言:‘護明菩薩,已來生於兜率天中。’
그리고 이 보살이 또 도솔천에 났을 때 그 도솔타천에 살고 있는 모든 하늘들이 그를 호명이라 불렀으므로 이런 까닭에 이름을 호명이라 하였으며, 모든 하늘들이 계속 호명이라 퍼뜨림으로써 그 소리는 위로 사무쳐 정거천淨居天에 이르렀고, 또 아가니타천阿迦膩吒天 꼭대기까지 이르렀다. 그때 모든 하늘들은 다 같이 불러 말하였다. ‘호명보살이 이미 도솔천에 났다.’
(석가모니의 생애를 기록한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기독교에서는 ‘아버지가 오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오신다는 것이 제대로 전수가 되지 않으니까 그 아버지가 기도를 제일 잘하는 사도 요한Johannes을 불러올렸습니다. 이런 상제님 말씀이 있어요. “내가 사도 요한을 태라천 궁전으로 불렀는데 큰 궁전에서 안 만나고 작은 궁전에서 만났다. 그때 천상에 성신, 신선들이 많아서 내가 작은 방에서 조용히 만나 개벽되는 것을 보여 주었다. 세상에 똑바로 전하라고.” 이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죠?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요한계시록 20:11)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요한계시록 1:20)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Seven Spirits of God’이라. (요한계시록 4:5)


그래서 요한이 그 하나님 아버지 보좌를 보니까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계시더라고 했습니다. 앞에 놓인 일곱 금 촛대는 일곱 성령The seven spirit of God입니다. 아들의 영, 아버지의 영만 있는 게 아니라 일곱 성령도 있습니다.

칠성七星 문화, 다른 말로 삼신칠성三神七星 문화는 신교 1만 년 문화의 중심 주제입니다. 우리 몸속에 삼혼칠백三魂七魄이 있습니다. 혼은 셋이 있고 육체 뼈 속에 일곱 넋이 있습니다. 이 혼백을 정화해야 영이 열리고 도통을 합니다. 이런 가르침을 우리가 오직 『도전』에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아버지 강세설이 예수 재림설로 빠진 것은 예수의 직계 제자가 아닌 바울Paul 때문입니다. 원래 이름은 싸울이었어요. 예수 믿는 자들을 두드려 패는 것을 일삼다가 사막에서 눈이 멀어 가지고 회심하면서 사람이 바뀌잖아요. 그런 사람이라 원본 가르침을 제대로 알았다고 보기는 어렵고, 듣고 은혜 받은 것으로 행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세운 것도 바울이지만 기독교의 궁극의 진리, 그 구원의 문을 막아서 무너뜨린 것도 바울입니다. 우리가 동방의 지혜로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교에서도 상제님이 오신다고 했지만, 노자·장자에서 이게 또 무너져 버렸어요. 그래서 사실 아버지, 우주 통치자, 상제님, 우주 주권자를 제대로 명백하게 전한 성자가 없어요.

그래서 상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는 기독교인들의 기도를 들어줄 수가 없다. 왜냐? 그들이 기도하는 아버지는 바로 야훼이기 때문이다.” 예수 성자가 ‘야훼는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야훼가 아니다.’라는 이 한마디를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신학자들이 ‘신약과 구약은 그 역사가 다르다.’라고 정직하게 말을 합니다. 기독교는 완전히 새로운 아버지 신관으로 넘어가는데 왜 야훼를 끌고 들어오느냐 하는 거예요. 유대 민족의 전쟁신은 ‘나를 거부하는 자는 배 속 태아까지 다 죽이라.’는 질투하는 신인데 어떻게 우주 보편의 사랑의 아버지가 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가에서는 공자가 천지 이법으로 ‘동북방에 상제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제출호진帝出乎震’을 말합니다. 인류 문명은 그 창세 역사가 동북방에서 시작되고, 동북방에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시설終始說, 천지 역사 종시설인데 간艮, 동북 간방艮方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울주군에 간절곶艮絶串(또는 간절갑艮絶岬)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간의 땅이 끝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주자 같은 이가 좀 알았지만, 유가에서는 상제천, 상제관이 변질돼서 도덕천, 이법천으로 바뀌고 이기론으로 흘렀습니다. 그래서 조선이 사색당쟁을 하면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정약용은, 사람들이 천주교를 믿다가 조상 신주神主를 불태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하나님, 천주님이 계신다. 그분이 상제님이다. 우리 문화, 상제관 유학으로 돌아가자고 했어요. 그리하여 유학의 상제관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주자는 ‘이 우주에는 주재主宰라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주재主宰라는 것은 곧 자연의 이법이고, 그 이법을 다스리는 우주의 신의 세계를 주재하는 주재자主宰者가 계십니다. 그분이 상제님입니다.

주자는 여기에 대해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옥황대제玉皇大帝인데 이것은 학자들이 개막능답皆莫能答, 능히 답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태라천에 계신 상제님은 워낙 조화가 무궁무진해서 그 세계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상제님의 탄강과 유년 시절


상제님이 저 고부古阜 객망리客望里로 오셨는데요. 원래 거기에 있는 천고의 대명당 손바래기는 억조의 자손이 나오는 곳이라 합니다. 그 옛날 지리地理의 명사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상제님이 거기에서 진주 강씨 문중에 탄강하셨어요. 그 마을 뒷산이 시루 증甑 자, 뫼 산山 자 시루산입니다. 한국에는 높은 산을 시루산이라 부를 때가 많습니다.

상제님 재세 당시에 ‘전라도 고부의 강 아무개가 말할 수 없이 신령하다고 하더라.’는 소문이 조선에 돌고 돌았습니다. 나중에 조선에 온 이등박문伊藤博文(1841~1909)이 강증산을 좀 만나고 싶다고 상제님 집에다 전통을 여러 번 보냈어요. 『도전』 5편 365장을 보면, 상제님이 김형렬 성도를 앞세우고 통감부 이등박문의 집무실로 직접 가신 내용이 나옵니다. 상제님이 “네놈이 나에게 하도 전통을 보내서 내가 왔다.”라고 하시자 이등박문이 상제님을 보자마자 거꾸러졌어요. 잠시 후에 깨어나서 나눈 대화 내용을 보면 얼마나 재미있나요? “네가 조선의 대왕이 되려고 하지 않느냐?” 하고 김형렬 성도가 상제님을 대신해서 막 쏘아붙이거든요. 그러니까 이등박문이 말을 더듬고 그러잖아요.

상제님이 이등박문을 제거하신 공사가 있습니다. 상제님이 천명을 내려서 이등박문을 죽이는 것입니다. 안내성 성도로 하여금 “네가 그 담뱃대로 내 가슴에 대고 꼭 죽인다는 생각으로 탕탕탕 세 번 소리를 내라.” 하셨는데, 그 공사로 말미암아 이등박문이 하얼빈哈爾濱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총알 세 발을 맞고 거꾸러졌어요.

어떤 여성 신도가 서울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도전』을 보고 있었는데, 그 구절을 보고 깜짝 놀란 일본에서 오래 있던 유명한 문화인이 있었습니다. 그 문화인이 “오, 이게 참 놀랍다. 이 책 나 좀 보자.” 해 가지고 신앙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건 기적 같은 사건입니다. 이등박문이 총 맞아 죽었지만 사람 하나를 살렸어요.

상제님이 어릴 때 동네에서 고사리손으로 땅을 파면서 “아, 샘 나와라. 샘 나와라.” 했는데 이윽고 물이 막 솟구쳐 나왔습니다. 그때 동네 아이들이 다 보고 있었어요. 그 샘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상제님이 여섯 살 때, 성부님이 이웃 마을에서 살던 황준재라는 훈장을 불러왔습니다. 그 훈장이 “도령, 글 배우셔야지요.”라고 했습니다. 훈장이 “하늘 천” 하니까 상제님이 “하늘 천”을 따라 읽고, “따 지” 하니까 “따 지” 하고 따라 읽었습니다. 그러고서 책을 딱 덮고 나가셨어요. “하늘 천 자에 하늘 이치를 알고, 따 지 자에 땅 이치를 알았는데 더 배울 게 뭐가 있나요. 천지를 알았으면 됐지.”라는 상제님 말씀에 성부님이 훈장에게 “감당을 못 하실 테니까 오늘 놀다 가시라.”고 해서 훈장의 가르침이 그날로 끝났어요.

그다음에 어떤 서당에서 시를 지으셨어요. 훈장이 놀랄 경驚 자를 넣어서 시를 한번 지어 보라고 하자 “원보공지탁遠步恐地坼이요, 내가 멀리 한 번 발걸음을 떼면 이 땅, 지구가 무너질까 두렵고 대호공천경大呼恐天驚이라, 한 번 크게 소리 지르면 온 우주의 하늘이 다 놀랄까 겁나는구나.”라는 시를 지으셨습니다. 이게 원 우주 통치자의 기개인 것입니다. 여기서 상제님 심법을 느끼고 기운을 받아야 됩니다. 『도전』을 그냥 문자적으로 읽으면 아무리 많이 읽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상제님은 어릴 때부터 산을 즐겨 다니셨어요. 동죽산 뒤에 있는 큰 산 두승산도 자주 다니셨는데요, “나는 원래 산을 좋아했다.”라고 상제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후원에다가 별당을 지어 달라고 하셔서 암꿩하고 비단을 사다가 무슨 예식을 하셨습니다. ‘내가 어떤 우주의 율려 도수를 본 것’이라는 말씀을 했어요. 상제님이 10세 전후에 그런 일을 행하셨다는 일화가 있는 거예요.

김형렬 성도를 만나심


상제님의 생애에서 열네 살 때 김형렬 성도를 만나신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상제님은 천지 조화주의 성령을 지니고 오셨으니까 김형렬 성도를 세 살 때 만나셨다는 것입니다. “세 살 때 부모님이 나를 안고 잔칫집을 가셨는데 저기서 좀 큰 사람이 오더만. 형렬이가 오더구나.”라고 상제님이 뒷날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그때 그 어린 상제님은, 김형렬이 상제님을 모시려고 천상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재미있는 일화입니다.

그러고서 열네 살 때 저 유명한 불출암에서 김형렬 성도를 만나신 것입니다. 김형렬 성도가 처갓집에 가려고 하다가, 전라도에 신인이 있다 해서 그 신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부엉이가 이상하게 울어서 자기도 모르게 불출암으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거기에 고부의 은 진사, 상제님 집의 옆집에 살던 은 진사가 와 있었는데 “저 도령이 그 도령”이라고 했어요. 그때 상제님이 별전別錢과 검은 돌을 가지고 돈치기 놀이를 하셨는데, 상제님은 그것을 태고 시대의 놀이 문화라고 말씀하셨어요.

거기서 김형렬 성도가 자기 신원을 아뢰면서 상제님께 절을 했습니다. 큰절을 두 번 올리자 “내가 죽었는가? 절을 두 번하게?”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나는 떠 있는 사람이다. 내가 땅바닥에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떠 있는 사람이다.”라고 당신이 조화를 부린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김형렬 성도가 나무토막 위에 계시는 상제님의 신발을 모시는 시늉을 하니까 상제님 몸이 자꾸 떴어요. 손을 더 높이 올리면 상제님이 더 올라갔습니다. “나는 허공에 떠 있는 사람이다.”라는 상제님 말씀에 김형렬 성도가 탄복을 했습니다. 그때 상제님이 동네에서 이사를 가지 않는 사정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워낙 재주가 많고 모든 걸 아니까 동네에서 이사를 못 가게 한다. 사실은 우리 부모님이 지금 돌아가시려 하기 때문에 이사를 안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김형렬 성도가 이렇게 상제님을 만난 것은, 어떤 초기 기록에도 없고 『도전』에만 실려 있어요. 김형렬 성도 집안에서 머슴을 살던 김덕찬이라는 사람이 어린 호연이 하도 예뻐서 그 얘기를 호연에게 특별히 해 주어서 『도전』에 실리게 된 것입니다.

동학혁명의 대세를 살피심


세월이 흘러서 상제님이 24세 때 고부에서 갑오동학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강증산은 동학군을 종군했다.’, ‘동학 신도였다.’라고 망발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상제님은 ‘나는 종군하는 것이 아니라 대세를 보기 위해서 왔다. 겨울이 되면 전패를 당할 것을 일러 주기 위해서 온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상제님이 녹두장군 전봉준(전명숙全明淑)을 한 번 찾아가고, 전봉준이 한 번 찾아왔어요. 전봉준 장군이 자신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제님은, ‘창생들을 다 죽일 것이니 때가 아니라, 나서지 말라.’고 하셨어요.

증산께서 명숙과 나이 차이는 많이 나나 일찍부터 교분이 있으시더니 갑오년에 하루는 명숙이 찾아와 말하기를 “내가 민생을 위해서 한번 거사를 하려 하니 그대가 나를 도와주시오.” 하거늘 증산께서 그 전도가 이롭지 못함을 미리 아시고 “때가 아니니 나서지 말라.” 하시며 “성사도 안 되고 애매한 백성만 많이 죽을 것이라.” 하고 경계하시니라. 이에 명숙이 대하여 말하기를 “그대가 안 된다면 나 혼자라도 하겠소.” 하고 물러가니라. (도전 1편 43장 4~8절)


상제님은 공주 우금치 전투를 앞두고도 충청도 공주로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그러고서 김개남 부대가 청주 쪽으로 갈 때, 동학군이 몰려오는 것을 미리 보시고 청주성 옆에 있는 소나무 밭에서 김형렬 성도와 안필성을 만납니다. 안필성은 금산사 모악산 아래에 있는 계룡리에 살았는데 어릴 때부터 상제님과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안필성은 키가 190cm가 넘는 장신이었어요. 상제님이 천상에서 데리고 나온 유일한 친구라 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