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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사관의 진실 | 환단고기가 처음 밝혀 주는 역사 진실(4)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역사 경전이면서
    동시에 종교 경전이요 문화 경전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우리 역사, 문화의 원형을 밝혀 주는 보배로운 사서이다. 특히 환단고기에서는 다른 사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역사 사실이 많이 실려 있다. 『환단고기 역주본』(상생출판)의 해제 편에서는 ‘환단고기에서만 전해 주는 새로운 역사 진실’이라고 하여 이를 52가지로 정리하여 밝혀 주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환단고기의 진정한 역사적 가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0 고조선의 영역에 대해 밝혀 준다!
    회수와 태수 지역을 평정하여 다스렸다!


    太子(태자)가 傳五行治水之法(전오행치수지법)하시고 勘定國界(감정국계)하시니
    幽營二州(유영이주)가 屬我(속아)오 定淮岱諸(정회대제)
    侯(후)하사 置分朝以理之(치분조이리지)하실새 使虞舜(사우순)으로
    監其事(감기사)하시니라.

    태자께서 ‘오행의 원리로 물을 다스리는 법[五行治水之法]’을 전하시고, 나라의 경계를 살펴 정하시니 유주幽州·영주營州 두 주가 우리 영토에 귀속되고, 회수와 태산 지역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分朝를 두어 다스리실 때 우순을 시켜 그 일을 감독하게 하셨다. ( 『단군세기』 1세단군 조)


    여기서 태자는 단군왕검의 아들 부루태자를 말한다. 위 문구를 통해 천자국 단군조선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국계를 정했다’는 것은 나라의 경계를 나누었다는 것으로 이때서야 비로소 단군조선에 대응되는 순舜왕조(우虞나라)가 국가로서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유주幽州는 오늘날 하북성에 해당하고 영주는 지금의 산동성 북부 지역이다. 『상서尙書』 우공禹貢 편에는 우禹가 천하를 기주冀州·연주兗州·청주靑州·서주徐州·양주揚州·형주荊州·량주梁州·옹주雍州·예주豫州 등 9주로 나누었다고 하였다. 『이아爾雅』 석지釋地에서는 9주 중 유주幽州의 위치가 연燕 지역이라고 했다. 『상서』(書經)는 중국의 고대 국가들, 특히 주나라의 정치철학을 기술한 책이고 『이아』는 가장 오래된 유의어 사전으로 주공단이 제작했다고 한다. 주나라 때 연의 세력은 지금의 북경 지역까지 세력이 미치지 못했고 전국시대에는 위읍魏邑으로 지금의 하남성 신향新鄕시 연진延津현 동북 일대였다. 유주는 하북성과 하남성 경계에 걸쳐 있었다.

    영주營州에 대하여 『상서尙書』상서 순전舜傳에서는 “처음으로 12주를 두었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동한東漢의 마융馬融과 정현鄭玄은 주석에서 12주 중에 영주가 있다고 하였다. 정현은 “청주淸州(현 산동성)에서 바다를 건너는데 제齊를 나누어 영주를 만들었다.”라고 했다. 이로 볼 때 영주는 제나라의 일부이고 청주의 왼쪽 옆에 위치함을 알 수 있다.

    환단고기의 위 기록은 고조선의 강역과 중국의 요순 정권과의 경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이어 회대의 제후를 평정했다고 했는데 회는 회수 지역을 말하고 대는 태산 지역을 말한다. 이 회대지간은 배달 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주요 활무대였다. 한민족의 뿌리를 노래한 최초의 역사서요 천지축문이었던 ‘서효사’(6세 달문 단군)에서도 ‘회대개귀왕淮岱皆歸王’이라 하여 회수와 태산 지역이 자오지천황에게 귀속되었음을 노래하였다.


    11 긴박했던 도산塗山회의의 정황을 밝혀 준다!
    창수사자인 부루태자의 활약상을 밝혀 준다!


    及九年洪水(급구년홍수)하야 害及萬民故(해급만민고)로 檀君王儉(단군왕검)이
    遣太子扶婁(견태자부루)하사 約與虞舜(약여우순)으로 招會(초회)
    于塗山(우도산)하실새 舜(순)이 遣司空禹(견사공우)하야
    受我五行治水之法(수아오행치수지법)하고 而功乃成也(이공내성야)라.
    於是(어시)에 置監虞於琅耶城(치감우어낭야성)하야
    以决九黎分政之議(이결구려분정지의)하니
    卽書所云(즉서소운) 東巡望秩肆覲東(동순망질사근동) 后者(후자)가 此也라.

    9년 동안 홍수가 일어나 그 재앙이 만민에게 미치므로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우나라 순임금[虞舜]과 약속하게 하시고, 도산塗山 회의를 소집하셨다. 순임금이 사공司空 우禹를 보내어 우리의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받아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때 감우소監虞所를 낭야성琅耶城에 설치하여 구려九黎 분정에서 논의된 일을 결정하였다. 『서경』에 이른바 “순임금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멀리 산천을 바라보며 제사 지내고, 동방 천자를 알현하였다[東巡望秩 肆覲東后]”라는 구절은 바로 이 내용을 말한 것이다. (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도산회의의 주체는 누구일까? 중국의 우순虞舜은 결코 도산회의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당시 중국 대륙에서는 9년 홍수라는 국가 재난으로 백성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었다. 순은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당시 우왕조는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다급해진 순이 긴급 구조요청을 보낸 곳은 천자국 단군조선이었다. 이에 단군왕검께서 특명 대사로 태자 부루를 파견하셨다. 비록 태자였지만 당시 동아시아의 진명천자眞命天子인 단군왕검의 명을 받고 간 부루태자는 순舜과 우禹로부터 천자와 똑같은 예우를 받는다. 그리하여 부루태자는 천자를 대신하여 당시의 혼란한 정국을 바로잡는 여러 조칙詔勅을 하달하게 된다. 부루태자가 보여 주는 천자국의 위엄은 환단고기 여기저기에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문헌에서는 부루태자의 실체를 숨기고 감추었다. 창수사자蒼水使者라는 애매한 용어를 빌리고, 역사적 사실을 꿈속의 일로 밀어 넣어 버렸다. 천자국 단군조선의 실체가 알려지면,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12 동순망질 사근동후의 진실을 밝혀 준다!
    당요, 우순, 하우는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다!


    甲戌(갑술)에 太子扶婁(태자부루)가 以命(이명)으로 徃使塗山(왕사도산)할새
    路次琅邪(노차낭야)하야 留居半月(유거반월)하야 聽聞民情(청문민정)하니
    虞舜(우순)이 亦率四岳(역솔사악)하야 報治水諸事(보치수제사)하니라
    番韓(번한)이 以太子命(이태자명)으로 令境內(영경내)하야
    大興扃堂(대흥경당)하고 并祭三神于泰山(병제삼신우태산)하니
    自是(자시)로 三神古俗(삼신고속)이 大行于淮泗之間也(대행우회사지간야)라.
    갑술(단기 67, BCE 2267)년에, 부루태자가 명을 받고 특사로 도산에 갈 때 도중에 낭야에 들러 반 달 동안 머무르며 백성의 사정을 묻고 들었다. 이때 우순이 사악四岳을 거느리고 치수에 대한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번한 왕이 태자의 명으로 경내境內에 경당扃堂을 크게 일으키고, 아울러 태산에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이로부터 삼신을 받드는 옛 풍속이 회수淮水와 사수泗水 지역 일대에서 크게 행하여졌다. (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우순이 치수에 관한 일을 보고할 때 태자 부루는 이 지역에서 경당 문화를 크게 일으킬 것을 명하신다. 경당은 소도 옆에 설치한 학교로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곳이다. 이는 9년 홍수라는 대재앙이 생기게 된 원인에 대한 성찰이다. 곧 우주의 주재자이신 삼신상제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원형문화가 약화된 것이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본 것이다.

    당시 대륙의 당요, 우순, 하우는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다.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대표적 문구가 서경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다.

    “(순임금이) 동쪽 지역을 순수하여 태산泰山에 이르러 시柴 제사를 지내고, 산천을 바라보며 차례대로 제사한 뒤 동방의 천자를 찾아뵈었다[東巡守至于岱宗, 柴, 望秩于山川, 肆覲東后].” (서경 우서의 순전)


    그런데 중국 사가들은 한결같이 동후東后를 ‘동방의 제후(東方之諸侯也)’라 해석해 왔다. 요즈음 나오는 『서경』 번역서들도 모두 중국 측의 해석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다. 하지만 『강희자전』에서는 후后 자에 대해 “后: 君后. 我后. 夏后. 夏言后者. 白虎通云: 以揖讓受于君, 故稱后. 告于皇天后土.”라고 하였다. 여기서 ‘후后’ 자는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 밝힌 것처럼 군주君主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것은 ‘근覲’ 자에서 더 분명해진다. 『강희자전』은 “천자가 즉위하면 제후들이 북면하여 천자께 알현하는 것을 일러 근이라 한다[天子當依而立, 諸侯北面, 而見天子曰覲]”라고 하였다. 그래서 ‘근覲’ 자는 ‘하현상下見上,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문안드린다’는 말이다. ‘제후인 순舜임금이 그 종주국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알현하였다’는 것이 ‘사근동후’의 본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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