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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만은 꼭]

    나는 박물관 간다


    우리는 수천 년 전의 과거를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구분한 후 몇 가지 유물로 대강의 생활상을 배우고 역사 학습의 도입부를 끝내 왔다. 이러한 모습은 박물관에서도 이어진다. 박물관의 유물들을 관람하는 것을 넘어 그 속에 담긴 정신문화에 대한 이해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이는 지루한 수박 겉 핥기에 그치게 된다.

    이 책은 기계적인 시대 구분과 유물에 대한 피상적인 설명을 넘어, 박물관의 수많은 유물이 결국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에 주목했다. 우리나라 박물관에 있는 세계 최고最古, 최고最高의 문화유산 속에서 체계적이고 독창적인 사상과 철학의 정신문화를 꺼내고 그것을 스토리텔링으로 이어 나간다.

    문화란 역사의 다른 말이다. 우리가 먹고 자고 입고 누리는 모든 것이 역사의 산물이자 일만 년 가까이 이어 온 우리 문화유산의 산물이다. 유물 속에 담긴 발자취와 이면에 있는 선조들의 찬란한 정신문화를 살펴보자.

    저자 소개 - 오동석, 김용호

    오동석 | 인문 여행 스토리텔러
    이 책의 글과 사진을 담당한 여행 가이드로, 전 세계 100여 개국을 다니며 박물관과 유적지 등 현지에서 직접 스토리텔링을 해 왔다. 국내에서도 박물관, 궁전, 유적지 등을 탐방하며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 속에 전해져 내려온 문화와 정신세계를 전하고 있다. 생생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많은 단체에서 인문학 강의를 했으며, EBS 특강과 EBS 세계테마기행 등 방송 활동도 하고 있다.

    김용호 | 역사 문화 스토리텔러
    1995년부터 IT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다. 학창 시절 풍물 동아리에서 전통 악기를 배우면서 우리 문화에 눈뜨게 되었고 동암 한동석 선생과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여러 저술을 접하며 우리 역사 문화의 비전을 꿈꾸게 되었다. 2013년부터 여러 단체와 함께 박물관 탐방 프로그램, 한문화 강연을 해 왔다. 국내의 많은 박물관과 고궁 답사 그리고 기고를 통해 축적된 내용을 바탕으로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유산들이 전하는 정신문화의 핵심


    이 책에서는 우리 박물관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혹은 가장 뛰어난 16가지의 문화유산을 선별해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사상적 가치를 풀어내고 있다. 또한 우리의 문화유산과 더불어 외국의 유사한 문화재를 살펴 우리와 그들이 역사 속에서 서로 주고받은 문화를 탐구하고 우리 문화의 특징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박물관의 수많은 유물들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상제문화, 천자문화, 음양오행 그리고 광명문화입니다. (6쪽)


    책에서는 수천 년 된 고인돌 상판에서 발견된 천문 관측의 흔적, 하늘의 명당을 땅에 구현한 궁전, 태양과 광명을 상징하는 생활 도구들을 통해 위의 인용문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여기서는 상제문화와 천자문화, 음양오행, 광명문화의 핵심을 담은 문화유산을 위주로 소개한다.

    상제문화와 천자문화, 천상의 하느님과 지상의 대리자


    고인돌의 별자리에서 천문도와 지상의 명당까지
    평안남도 증산군 용덕리에서 발견된 고인돌에는 약 4,900년 전의 별자리가 새겨져 있고, 연대가 약 5천 년 전으로 추정되는 평양시 상군 번동 고인돌에서도 북두칠성 등 여러 별자리를 표현한 모습이 발견된다. 남한에 있는 고인돌 중에도 덮개돌에 별자리가 새겨진 고인돌이 약 300기가 넘고, 북두칠성이 새겨진 고인돌도 수십 기가 발견되었다. 고인돌에 별자리를 새긴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의 선조들은 사람이 본래 북두칠성에 있었다가 육체를 받아 이 땅에 태어났다고 생각했고, 인간계와 사후세계 그리고 하늘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죽으면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여겨 무덤에 별과 칠성을 새겼다. 북두칠성에 얽힌 우주관은 우리의 전통적 종교관과 연결된다. 선조들은 북두칠성은 우주를 주재하는 옥황상제가 사는 곳이라 믿는 한편 북두칠성을 옥황상제가 타는 수레라 생각해 오랫동안 경배해 왔다. 이렇게 무덤(고인돌)에 별자리를 남기는 문화와 고대의 천문 관측은 고조선에서 고구려로 또 고려에서 조선으로 계승되었다.

    고대 선조들의 천문학은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지상의 궁전으로 이어졌다. 먼저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3차원 우주 공간의 별들을 지상의 방위에 맞춰 평면에 펼쳐 놓은 천문도이다. 구조를 살펴보면 가장 바깥쪽의 큰 원은 외규外規이다. 중간 크기의 겹쳐진 두 원 가운데 중심에 맞춰 있는 원은 천구(밤하늘)의 적도赤道이고, 중심이 어긋난 원은 태양이 1년 동안 별자리를 지나는 경로를 나타내는 황도黃道다. 가장 중심에 있는 작은 원 안쪽은 ‘자미원紫微垣’이라고 부르는 내규內規이다. 자미원과 28개의 대표적인 별자리를 중심으로 360도를 28개의 구역으로 나누었다. 선조들은 천상의 모습을 지상의 방위에 맞춰 천문도로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하늘의 명당을 닮은 땅의 명당을 찾는 풍수지리를 고안해 냈다. 그렇다면 하늘은 어디가 명당일까? 선조들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하늘의 제왕(천제天帝 혹은 옥황상제玉皇上帝)이 머무는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있는 영역을 명당이라 생각했다. 그곳은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자미원’ 혹은 ‘자미궁紫微宮’이다.

    우리나라, 미국, 일본, 러시아 과학자들이 참여한 텔레스코프 어레이Telescope Array(TA)라고 불리는 국제공동연구팀은 500개의 입자검출기와 3개의 대형 망원경을 설치해서 5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2014년에 발표했습니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우주선宇宙線(Cosmic Ray)이란 미세입자는 극한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데, 관측된 극한의 고高에너지 우주선 72개 중 19개가 북두칠성 근처로부터 쏟아져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로써 옛 선조들이 북두칠성을 최고의 명당으로 꼽았던 과학적 근거가 마련된 셈입니다. (152쪽)


    선조들은 하늘의 명당인 자미궁을 본떠 지상에 경복궁을 만들었다. 자미궁을 지상에 내려 짓는 것은 예로부터 계승해 왔던 천손 사상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천제가 직접 지상을 다스리지 않고 대행자인 천자를 보내서 지상세계를 다스린다는 세계관에서 비롯한다.

    조선의 건국자들은 천제(상제)가 있는 자미원, 그 아래서 우주 정치를 수행하는 곳인 태미원, 하늘 백성들이 사는 천시원까지의 3원을 지상에 조성했다. 자미원은 경복궁, 태미원은 육조 거리로 지금의 광화문에 해당한다. 육조 거리에는 중앙관청인 6조, 국가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인 의정부, 서울시청에 해당하는 한성부, 감사원격인 사헌부가 있었다. 백성들이 사는 천시원은 한양의 물품과 재화가 거래되던 종로의 시전에 해당한다.

    또한 자미원을 감싸 보호하는 28개의 별자리를 7개씩 네 묶음으로 묶어 4신(동청룡⋅서백호⋅남주작⋅북현무)으로 구분했는데, 이를 경복궁을 보호하는 4신으로서 4방위의 산, 4방위의 성문, 경복궁 4방위의 출입문과 각 출입문 천장에 그려진 신성한 4신으로 여겼다.

    용과 봉황을 담은 역사 박물관
    대한민국의 역사 박물관에서는 용봉박물관이라 해도 될 만큼 용龍과 봉황鳳凰을 흔히 찾을 수 있다. 우선 삼국 시대의 용과 봉황을 새긴 백제의 금동대향로나 고구려 강서대묘의 벽화에서부터 용봉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 시대부터는 생활 속에서 사찰의 외관, 구리로 만든 종의 용 장식, 도자기 등에 용봉을 사용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민화, 도자기, 바늘 침구함, 비를 내리게 하는 용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만든 용을 그린 깃발 등에서 용봉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천자의 상징이 용봉이기 때문에 왕의 복식은 물론이고 왕실에서 쓰던 물건에서 심심찮게 용과 봉황이 새겨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건물, 벼루, 식사 때 사용하는 합, 상을 덮는 포, 비녀, 의복, 제사에 쓰는 제기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 용과 봉황이 등장한다.

    하늘의 태양과 번개를 담은 청동검
    청동기 혁명은 고대 세계의 산업혁명이었다. 청동기 시대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무기를 개발하고 발전시킨 기술의 역사이자 전쟁의 역사였다. 당시 우리 민족은 고조선 유역인 만주 요령 지방에서 한반도 남부까지 발견된 고조선식 청동검(비파형 청동검)과 한반도에서 주로 출토된 세형 청동검(한국식 청동검)을 발달시켰다.

    우리 민족의 청동기 유물들의 주요 성분은 구리와 주석 외에 아연이 있습니다. 구리, 주석, 아연 이 세 금속을 함께 섞으면 주조하기가 쉬워지고 조직이 촘촘하면서 단단해집니다. 고조선의 청동기 기술자들은 어떤 도구를 만드느냐에 따라 세 금속의 합금 비율을 조율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아연과 구리, 주석은 서로 녹는점과 끓는점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이렇듯 금속을 합금하여 청동을 만드는 까다롭고 난이도 높은 기술을 수천 년 전 고조선의 기술자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과거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발달된 선진문명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청동기는 초기 때부터 아연이 포함되어 있지만, 중국은 우리보다 천 년 이상 늦은 한나라 때가 돼서야 아연이 포함된 청동기가 만들어졌습니다. (276~278쪽)


    고조선식 청동검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검날이 곡선을 이루며 검 중간에 돌기가 있고 등배라 불리는 척추 같은 줄기가 있다. 이러한 모양의 유래는 중국 내몽골자치구 홍산문화(6,055~5,000년 전) 유적에서 1980년대에 발견된 옥검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발굴 당시 함께 발견된 초기 청동검도 검의 중간에 돌기는 없으나 고조선식 청동검과 형태가 유사하다.

    고조선식 청동검의 디자인에 대해 계명대학교 김양동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는 고조선식 청동검을 사용한 이들을 태양 숭배 사상을 갖고 있던 고대 동이족 계통으로 정의하는데, 고대 동이 세력들은 태양의 상징인 불을 신권과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복식과 도구에 태양이나 불꽃무늬를 자주 사용했고 고조선식 청동검도 불꽃 봉오리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고조선식 청동검은 태양 숭배의 상징인 동시에 지도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상징물이었다고 정의한다. 이는 우리 선조들의 광명이세光明理世(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 홍익인간弘益人間(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이라는 이념과 연결된다.


    흔히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 달리 고조선식 청동검은 손잡이를 별도로 끼우는 조립식이다. 손잡이 중에는 번개무늬가 매우 정교하게 새겨진 것들이 있다. 고대사회에서 검이 상징하는 바를 통해 손잡이에 새겨진 번개무늬의 뜻을 알 수 있는데 우선 ‘검’은 무력을 보유한 권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고대 동양 사상의 핵심인 팔괘에 천둥 번개로 상징되는 진괘震卦가 있다. 『주역』 설괘전에서 진괘는 천둥, 우레, 용龍, 제출호진帝出乎震(진방에서 하늘의 임금인 천제天帝가 출현한다)이라고 설명한다. 고로 번개란 천제가 집행하는 강한 힘을 의미하며 청동검 손잡이의 번개무늬는 그 검의 소유자가 하늘(천제, 상제, 신)로부터 신성한 힘을 부여받았다는 상징이다.

    전통 생활 철학으로서의 음양오행


    오행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들
    풍수를 이야기할 때 흔히 쓰이는 용어인 동청룡東靑龍, 서백호西白虎, 남주작南朱雀, 북현무北玄武의 사신四神은 우리 문화유산 속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제왕의 무덤을 지키는 신성한 동물로서 강서대묘, 집안 오회분 4소, 통구 사신총에 4신을 담은 벽화를 그리고, 천장에는 중앙의 다섯 번째 신 황룡黃龍까지 그려 5신도五神圖를 만들었다. 고려⋅조선 시대에는 사용 범위가 넓어져 생활용품에도 널리 쓰였다.

    4신 중 물을 다스리는 현무는 용과 거북을 합친 모양새로 거북선(귀선)의 외형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선 건국 초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의 <태종실록>에서부터 군사 훈련에 거북선이 동원된 것을 볼 때 거북선(귀선)이 해적이나 해상 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전함으로 쓰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경복궁 근정전에서도 5신을 찾을 수 있는데, 근정전 밖은 4신이 수호하고 근정전 내부 중앙 천장에는 황룡 두 마리가 있다.

    5신은 음양오행(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방위로는 동서남북(목화금수) 그리고 중앙(토)을 반드시 포함한다. 다섯 방위를 색으로 나타내면 동⋅서⋅남⋅북⋅중앙은 각각 청⋅백⋅적⋅흑⋅황색의 5방색이 된다. 동청룡은 목木, 남주작은 화火, 서백호는 금金, 북현무는 수水를 상징한다. 이때 황룡으로 상징되는 중앙 토土는 황극皇極으로 천자의 자리라 한다. 이를 오황극五皇極 사상이라 하는데 하늘에는 천상을 다스리는 천제天帝(하늘 임금)가 있고, 지상에는 천제를 대행해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천자天子(하늘의 아들 곧 황제)가 있는 것이다.

    물을 다스리는 용과 거북
    경복궁 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조선 시대 건축 양식에서 상량上樑에 쓰인 용과 거북을 찾을 수 있다. ‘상량’은 집을 지을 때 기둥에 보를 얹은 후 올리는 마룻대 내지는 마룻대를 올리는 일을 말한다. 건물의 골격을 완성하는 단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서, 선조들은 상량식을 하고 대들보에 먹물로 ‘상량문上樑文’이라는 글을 적었다. 이때 상량문을 시작하는 글머리에는 용龍 자를 거꾸로 크게 쓰고 글의 끝에는 거북 구龜 자를 크게 써 두 글자가 서로 마주 보게 했다. 용과 거북을 쓴 것은 두 동물이 물을 다루는 신을 뜻해 건물에 화재가 나지 않기를 기원한 것이다.

    용과 거북이 화재를 막아 준다는 생각은 앞서 본 고구려 벽화의 현무도(북현무)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무도 속에서 뱀과 함께 엉켜 있는 동물은 몸통은 거북이에 머리는 용과 비슷하다. 현무가 지키는 북쪽은 음양오행에서 수水로 상징된다. 오행에서 수水는 목木이 성장토록 돕는 상생의 작용을 하는데, 木은 오행에서 동쪽을 의미하며 청룡으로 상징된다. 전통 속에서 용은 현무(거북)의 도움을 받아 물을 하늘로 끌어 올려 땅에 비를 내리는 신성한 동물이며, 거북 역시 물을 다스리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음양오행 원리를 담은 한글과 태극기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에 나오는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는 음양오행 원리로 시작하고 음양오행 원리는 곧 자연법칙을 의미한다. 그리고 훈민정음 스물여덟 자는 원래 존재하는 소리를 법칙에 맞게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입술소리(순음) ‘ㅁ’ 발음은 입술을 여닫는 발음이라 입술소리라 하는데, 입술로 소리를 머금는 것이 흙이 만물을 감싸는 모습과 같다 하여 오행에서 중앙 토土로 분류했다. 토土는 4계절에서 늦여름에 해당하며 5음으로는 궁宮 음이다. 아래 도표에서 음양오행으로 분류한 자음 발음 체계를 확인할 수 있다. 한글 자음은 음양오행 사상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한글 모음은 천지인 삼재三才 사상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ㆍ’는 하늘, ‘ㅡ’는 땅, ‘ㅣ’는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을 뜻한다. 오늘날에도 휴대전화의 천지인 자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최초의 ‘태극기’는 조선 말 고종을 중심으로 대신들 및 외국 사절들과의 논의 끝에 1883년 3월 6일 공식적으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태극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태극과 팔괘, 이들이 나타내는 음양오행과 팔괘 사상은 우리 민족의 보편 철학이었다. 태극기는 5천 년 이상 사용해 온 우리의 문화적 상징을 조선 후기에 재구성해 만든 것이다. 루마니아 태생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신부인 비르질 게오르규는 자신의 작품 『25시에서 영원의 시간으로』에서 태극기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한국의 국기는 유일한 것이다. … 거기에는 우주의 대질서, 인간의 조건,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 선, 점, 원, 붉은색, 흰색, 그리고 파란색으로 그려져 있다.” (212쪽)


    한마디로 태극기는 전 세계 국기 가운데 유일하게 우주의 질서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태극기의 세계를 포용하는 광대한 의미를 항목별로 살펴보자. 우선 태극 문양은 682년에 창건된 신라 감은사터 장대석에서부터 사용되어 11세기의 송나라 성리학자 주돈이의 태극 문양보다 앞선다. 이후 고려와 조선에서도 널리 쓰여 고려 공민왕릉에도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다. 조선 시대 군기의 하나인 ‘좌독기坐纛旗’에도 원시적인 태극 문양과 8괘가 그려져 있다.

    태극의 흰 바탕은 흔히 순수와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태극기를 만들 당시는 청과의 사대 관계를 종결짓고 제국주의로부터 국가를 지켜야 할 위기 상황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흰색의 의미를 찾아보면 광명 그리고 음양오행 원리에서 오행의 금金이 있다.

    광명은 배달국倍達國(‘배달’은 밝은 땅을 의미함)부터 대한제국까지 이어진 나라의 통치 이념이다. 그리고 앞서 5신도와 한글 자음 발음 체계 표에서 보았듯 금金은 방위는 서쪽, 색으로는 흰색, 계절로는 가을이며 그 정신은 의로움이다. 즉 태극기의 바탕을 흰색으로 정한 것은 환하고 의로운 세상, 공명정대한 국가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태극의 네 모서리에 위치해 있는 4괘는 건곤감리乾坤坎離이다. 이 4괘는 약 5,700여 년 전 우리의 선조인 태호복희씨가 만든 8괘에 포함된다. 현재 태극기에서는 8괘 가운데 4괘만 써서 온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건乾, 곤坤, 리離, 감坎 4괘가 각각 하늘, 땅, 해(불), 달(물)로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핵심이기 때문이다.

    곧고 넓게 뻗는 빛, 광명문화


    청동거울 다뉴세문경
    고조선 시대의 대표 유물 중 하나인 청동거울(다뉴경)에는 거친무늬거울(다뉴조문경), 고운무늬거울(다뉴세문경)이 있다.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은 두 개 이상의 고리(紐)가 있고 세밀한 무늬(細文)로 장식된 거울이다. 매우 정교하고 기하학적인 무늬가 특징으로, 충남 논산에서 발견된 다뉴세문경의 경우 지름이 21.2㎝인데 그 안에 0.3㎜ 굵기로 약 1만 3천여 개의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이 새겨져 있다. 최소 2,400년 전에 사람의 손으로 1㎜ 폭 안에 머리카락 굵기의 선 2~3줄을 거푸집에 새긴 다음 주물을 떠서 만든 것으로 현대에도 재현해 내기 어렵다고 한다.

    이처럼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진 청동거울은 당시에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최고 우두머리가 사용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지도자는 청동거울의 뒷면에 있는 고리에 끈을 연결해 목에 걸었다. 그는 가슴에서 반사되는 햇빛을 백성들에게 보여 줌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 했다. 햇빛을 반사하는 거울은 태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거울의 주인이 하늘을 대신하는 통치자임을 상징했다.

    이러한 모습은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광명이세光明理世(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와 연결된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문에서도 태양과 광명을 숭상하는 문화를 찾을 수 있다. 비문에서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에 대해 천제지자天帝之子, 일월지자日月之子라 했는데 이는 바로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아들이란 의미다.

    앞서 사진에서 보았듯이 우리 고조선의 다뉴세문경에는 유독 원과 삼각형이 많다. 다뉴세문경의 이러한 무늬가 방위, 천체 운행, 계절을 기록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청동거울의 고리가 달린 부분의 동심원은 중앙이고, 나머지 8개의 동심원은 8개의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빛줄기를 의미한다. 이는 또한 8방위, 곧 지상의 모든 세계를 의미한다.

    무늬의 뜻을 정리하면 청동거울을 소유한 사람은 태양이 비치는 8방위의 모든 지상 세계를 다스리는 통치자임을 의미하며, 청동거울은 통치자 임금이 천제天帝(또는 신神)에게서 내려 받은 정통성의 징표인 것이다.

    빗살(햇살)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는 겉면에 빗살을 닮은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토기다. 빗살무늬 토기의 제작 시기는 약 5천 년 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에 요하 문명(발해만 문명)에서 8천 년 된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되며 8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빗살무늬 토기인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의 토기는 약 8,000~7,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져 우리 빗살무늬 토기의 제작 연대는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앞서게 되었다.

    빗살무늬를 그릇에 새긴 까닭은 2013년도 고등학생 전국과학전람회에 출품한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왜 토기에 빗살무늬를 새겼을까”라는 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토기를 빚을 때 빗살과 같은 무늬를 교차하여 눌러 주면 압력으로 진흙 속의 빈 공간이 채워져 단단해지고, 구울 때 발생하는 잔금이나 갈라짐이 토기 전체로 퍼지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빗살 패턴 무늬에는 이러한 과학적인 이유만 있는 게 아니다. 계명대학교 김양동 석좌교수는 중국 최초의 자전字典(한자의 모양과 음, 뜻을 풀이함)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신神이란 글자의 ‘丨’는 태양의 빛살을 본뜬 것이라 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토기의 줄무늬는 태양 광선을 그릇에 새겨 넣은 것이라 해석했다. 빗살무늬 토기를 엎어 놓고 바닥 쪽에서 무늬를 보면 이러한 해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남한에서 발견된 빗살무늬 토기 아랫부분에서 그 무늬가 어떻게 보이는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해와 햇살 무늬를 새긴 걸까? 이는 한민족의 해와 달, 즉 밝음과 광명을 숭상하는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북부여의 해모수 설화와 고구려의 삼족오, 조선의 임금 뒤에 늘 자리했던 일월오봉도 등 수없이 많은 문화유산이 우리 민족의 광명 숭배 사상을 담고 있다. 우리의 광명문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다양하게 지속해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우리의 광명문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다양한 형태로 지속적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매년 1월 1일, 많은 이들이 새해 해돋이를 보려고 하는 것도 광명문화의 대표적인 형태라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태양을 숭배했다는 예는 우리의 상고사가 기록된 책 <조대기朝代記>에도 나타나 있다.

    “옛 풍속에 광명을 숭상하여 태양을 신으로 삼고, 하늘을 조상으로 삼았다. 만방의 백성이 이를 믿어 서로 의심하지 않았으며, 아침저녁으로 경배함으로 일정한 의식을 삼았다. 태양은 광명이 모인 곳으로 삼신三神께서 머무시는 곳이다.” (395~396쪽)


    맺음말


    한 문화유산에 담긴 이야기에서 두 가지 이상의 핵심 문화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본문에서 소개한 몇 가지 문화유산 외에도 수천 년 전 선조들의 위대함을 만날 수 있는 유산이 많다. 이 책에서 다루는 총 16가지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最古) 혹은 가장 뛰어난(最高)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해 알아보는 기회를 갖기 위해 독자 여러분께서 직접 책을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그리고 각 문화유산의 놀라운 이야기를 통해 문화적 자긍심으로 미래의 생생한 비전을 열어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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