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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B하이라이트]

    상생FOCUS | 종도사님께 듣는 대한역사관⑫

    다섯 번째 국통맥 - 고구려, 백제(77~83번 질문)


    ※ 출처 : 환단고기 북콘서트 광주 편 도훈말씀

    Q77 광개토대왕은 고주몽 성제로부터 보면 13세손인데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고구려의 태조로부터 17세손이라고 합니다. 광개토대왕이 태조로부터 17세손이라는 진실 속에 고구려 역사 900년의 비밀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요, 고구려 역사의 진실이 궁금합니다.


    이것은 고구려 역사의 비밀인데, 오직 『환단고기』에 실려 있고, 역사의 유물 광개토대왕 비문에도 나와 있습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아시황천지자我是皇天之子”, ‘나는 황천皇天의 아들이다’ 이런 말이 나오고, 그다음에 “환지십칠세손還至十七世孫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여 17세를 내려와서 널리 영토를 열었다, 호태왕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아들 장수왕이 아버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서 이 비석을 세웠는데, ‘우리 아버지 광개토대왕님은 원 창업시조로부터 17세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면 고주몽으로부터 치면 13세손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환단고기』를 보면 해모수가 있고, 그 아들 고진이 있고, 고진의 손자 불리지가 있고, 거기서 주몽이 나왔으니 광개토대왕은 창업 시조인 해모수로부터 17세손이 되는 것입니다. 『환단고기』의 기록을 통해서 고구려 건국 9백 년 역사가 증명되는 것입니다.

    Q78 종도사님께서는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통해 고주몽 성제께서는 ‘신교문화에 도통한 성인제왕’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고주몽 성제의 유훈 속에 담긴 깨달음의 소식이 궁금합니다.


    고주몽 성제의 유훈을 읽다 보면 그 내용이 모든 종교 성자들의 가르침 못지않고, 어떻게 보면 그보다 더 근원적이기 때문에 놀랍기도 합니다. 유훈을 보면, 아주 심원한 깨달음의 도통 경계에서 전하는 우리 역사 문화의 근본 주제가 들어 있습니다. 인간의 창조론에 대한 가르침을 보면 ‘천신天神이 조만인일상造萬人一像하사 균부삼진均賦三眞하시니’ 즉 ‘하늘이 만인에게 한 가지 상으로 창조하고 삼진을 고르게 부여하셨다’고 했습니다. 세 가지 참된 것, 즉 조물주의 신성과 광명, 우주의 지혜를 모든 인간에게 고르게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내면에는 우주의 조물주의 삼신이 100%, 순도 100% 그대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위대하며 이토록 숭고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영원의 생명, 불멸의 생명을 담고 있는 지존의 신비로운 존재인 것입니다.

    고주몽 성제의 가르침(유훈遺訓)
    大辯經(대변경)에 曰(왈) 高朱蒙聖帝(고주몽성제)가 詔曰(조왈)
    『대변경大辯經』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고주몽성제께서 다음과 같은 조칙을 내리셨다.

    天神(천신)이 造萬人一像(조만인일상)하사 均賦三眞(균부삼진)하시니
    於是(어시)에 人其代天而能立於世也(인기대천이능립어세야)라
    況我國之先(황아국지선)이 出自北夫餘(출자북부여)하사
    爲天帝之子乎(위천제지자호)아.
    하늘의 신(삼신)이 만인을 한 모습으로 창조하고 삼진三眞을 고르게 부여하셨느니라. 이에 사람은 하늘을 대행하여 능히 이 세상에 서게 되었다. 하물며 우리나라의 선조는 북부여에서 태어나신 천제(상제님)의 아들이 아니더냐!

    哲人(철인)은 虛靜戒律(허정계율)하야 永絶邪氣(영절사기)하나니
    其心安泰(기심안태)하면 自與衆人(자여중인)으로 事事得宜(사사득의)라.
    슬기로운 이는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하며 계율을 잘 지켜 삿된 기운을 영원히 끊나니, 그 마음이 편안하고 태평하면 저절로 세상 사람과 더불어 매사에 올바르게 행동하게 되느니라.

    用兵(용병) 은 所以緩侵伐(소이완침벌) 이며 行刑(행형) 은
    所以期無罪惡(소이기무죄악)이니라.
    故(고)로 虛極靜生(허극정생)하고 靜極知滿(정극지만)하고
    知極德隆也(지극덕륭야)라
    군사를 쓰는 것은 침략을 막기 위함이며, 형벌의 집행은 죄악을 뿌리 뽑기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마음을 비움이 지극하면 고요함이 생겨나고, 고요함이 지극하면 지혜가 충만하고, 지혜가 지극하면 덕이 높아지느니라.

    故(고)로 虛以聽敎(허이청교)하고 靜以絜矩(정이혈구)하고
    知以理物(지이이물)하고 德(덕이제인)以濟人하나니
    따라서 마음을 비워 가르침을 듣고, 고요한 마음으로 사리를 판단하고, 지혜로 만물을 다스리고, 덕으로 사람을 건지느니라.

    此乃神市之開物敎化(차내신시지개물교화)하야
    爲天神通性(위천신통성)하며 爲衆生立法(위중생입법)하며
    爲先王完功(위선왕완공)하며 爲天下萬世(위천하만세)하야
    成智生雙修之化也(성지생쌍수지화야)니라.
    이것이 곧 신시 배달 시대에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인간의 마
    음을 연 교화의 방도이니, 천신을 위해 본성을 환히 밝히고,
    뭇 창생을 위해 법을 세우고, 선왕을 위해 공덕을 완수하고, 천
    하 만세를 위해 지혜와 생명을 함께 닦아 교화를 이루느니라.
    -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 中


    Q79 단군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우리 한민족의 소의경전 중 하나인 「참전경」은 고구려의 명재상인 을파소에 의해 정비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참전경」과 함께 환국 시절부터 내려온 한민족의 3대 소의경전이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에도 고유 경전인 소의경전所依經典이 있습니다. 먼저 환국 시대 이전부터 내려온 한민족의 우주론과 신관과 인간론의 정수를 기록한 「천부경天符經」 이 있습니다. 이 「천부경」은 인류 동서 철학, 종교사상의 원형이며, 오늘날 0과 1을 근본으로 하는 컴퓨터 문화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배달 시대에 동방 민족을 교화하기 위해 시조 커발한(거발환居發桓) 환웅께서 내려 주신 수행법, 수행의 원형문화 원전인 「삼일신고三一神誥」가 있으며, 단군조선 시대에는 「참전경參佺經」과 「염표문念標文」, 「홍범구주洪範九疇」가 있습니다.

    일명 366사三百六十六事라고도 불리는, 「참전경」은 고구려 을파소乙巴素 때 360조로 정비됐습니다. ‘참전’은 참여할 참參 자에 신선 이름 전佺 자인데, 이 전 자는 사람 인人 변에 온전 전全 자를 했습니다. 그러니 ‘참전’은 ‘완전한 인간이 되는 그 길에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곧 「참전경」은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지켜야 할 계율을 기록한 경으로 우리 한민족의 윤리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Q80 북부여의 역사를 통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모두 형제국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환단고기』에는 백제의 시조가 고주몽 성제의 친아들이라는 놀라운 내용이 있습니다. 백제 왕조의 역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합니다.


    고구려 고주몽성제 시절, 동부여에 있던 첫아들 유리가 찾아와서 2세 유리명열제가 됩니다. 두 아들을 낳은 고주몽의 둘째 부인인 소서노召西弩 입장에서 미래가 불리해지자 두 아들을 데리고 따로 왕국을 세웠습니다(BCE 42). 그곳이 패대浿帶 지역, 옛 대방帶方 땅이라 하는데, 난하 유역입니다. 그때 고주몽이 소서노에게 ‘어하라於瑕羅’라는 왕의 호칭을 내려 주었습니다. 이후 소서노가 죽자 큰아들 비류沸流가 계승하게 되고, 온조溫祚는 인천 미추홀, 지금의 문학산 쪽으로 내려왔습니다(BCE 19). 하지만 그 땅이 습해서 다시 하남 위례성으로 와서 백제를 세우면서 500년 한성백제 시대를 열게 됩니다. 이렇게 한성백제 시대가 계속되다가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475년에 지금의 공주인 웅진熊津으로 내려와 웅진백제 시대를 이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백제의 시조 온조는 본래 고주몽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서는 고주몽의 천륜을 깨트리고 온조와 고주몽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대상大商 연타발의 딸 소서노가 우태와 결혼해서 두 아들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천륜을 잘라 버린 것입니다. 『삼국사기』는 신라를 종통으로 하기 위해서 모든 역사를 신라사 중심으로 기록하고 천자국인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를 비하했습니다. 백제를 폄하한 근본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를 고구려와 단절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환단고기』에서는 백제 역사의 원형을 체계적으로 잡아 주고 있습니다.

    Q81 학계에선 백제가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고 중국 지역까지 강역을 넓혔다는 ‘대륙 백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륙 백제’를 뒷받침하는 기록이 『환단고기』에 있다고 합니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遼西地(요서지)에 有百濟所領曰遼西晉平(유백제소령왈요서진평)이오 江南(강남)에 有越州(유월주)하니
    其屬縣(기속현)은 一曰山陰(일왈산음)이오 二曰山越(이왈산월)이오 三曰左越(삼왈좌월)이다.
    요서 땅에 백제의 영지가 있었는데 곧 요서, 진평이고, 강남에는 월주가 있었으니 여기에 소속된 현은 첫째 산음, 둘째 산월, 셋째 좌월이다.
    -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 中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는 한반도 남부, 호남을 차지했던 백제입니다. 하지만 백제는 단군조선 당시 중국 동부 지역의 위로부터 아래까지(번조선 땅)를 거의 다 지배했습니다. 실제 한반도보다 훨씬 큰 ‘대륙 백제’가 중국의 오른쪽, 동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온조의 아버지인 고주몽의 역사 통치 정신이 다물주의多勿主義이기 때문에, 단군조선의 영역을 다시 복원한다는 강건한 역사 통치 정신이 백제 왕들에게 그대로 지속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여다. 우리의 근원은 북부여다’라는 역사 정신으로 26세 성왕 때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바꾼 것입니다. 백제의 전체적인 역사 과정에서 보면 245년에서 580년대까지 한 350년 동안 산동성의 제나라, 노나라, 강남에 있는 월주(산음, 산월, 좌월)를 모두 회복한 ‘대륙 백제 시대’가 있었고, 이 시기에 중국 동쪽에 있었던 배달국, 단군조선 때의 영토를 복원했습니다.


    Q82 백제를 떠올리면 가장 친숙한 단어 중의 하나가 ‘22담로’입니다. 그런데 백제를 통치하는 제도인 ‘22담로’가 대륙과 일본을 포함해서 동아시아 전체를 통치했던 제도였다고 하는데요. 대륙 백제를 넘어선 해양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이 놀라운 내용이 궁금합니다


    백제의 ‘담로檐魯’가 무엇인지 알 때 대륙 백제, 옛 대백제의 역사 정신, 역사복원 정신, 강력한 우주적인 문화 통치 정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6세기 중국 양梁나라 때 제작된 사신도使臣圖인 「양직공도梁職貢圖」에는 ‘읍을 담로라 하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과 같으며 22담로가 있다’고 했습니다. 백제가 ‘반파, 탁, 다라, 전라, 사라, 지미, 마련, 상기문, 하침라’ 등의 부용국附庸國, 즉 제후국을 거느렸다는 것입니다. 백제 24대 동성왕과 25대 무령왕 때에는 이 담로와 같은 거점 성城이 발달했는데 이 내용이 중국 역사 기록에 있습니다. 즉 동성왕과 무령왕 때,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까지 ‘중국 땅에 왕, 제후, 귀족을 임명한 국가 통치 지방행정 군현 조직이 22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호칭이 바로 담로입니다. 그리고 일본에는 담로도, 인도네시아에는 담수항,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에도 담로문화가 있었습니다. 백제는 국제무역으로 동아시아를 제패한 해양대제국이었던 것입니다.

    해양대제국이었던 백제의 실제 영토를 담로제를 통해서 살펴보면 중국의 동부와 중부 일부 지역, 남부 지역, 그리고 동아시아 전체를 통관하는 대국이었습니다. 삼신문화, 삼한문화 통치 방식으로 보면, 중국에는 한반도보다 몇 배나 더 큰 대륙 백제에 우현왕을 두어 통치하고, 일본에는 야마토 정권 당시 나라 지역에 좌현왕을 보내 통치했습니다.



    이 담로제의 기원은 『환단고기』에서 그 근거를 찾습니다. 6세 달문 단군 때 구월산 상춘에서 당대의 대국, 소국, 읍락의 모든 제후들이 모여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린 기록이 있습니다. 그때 폐백을 바친 자는 대국이 둘, 소국이 스물, 읍락이 3,624곳이었습니다. 크고 작은 나라 22개국이 와서 문화 종주국인 단군조선에 조공을 바치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같이 올렸습니다. 여기서 백제 22담로의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백제국은 역사 광복, 문화 복원 다물주의의 강력한 의지를 단군조선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백제, 신라는 매년 두 번씩 단군조에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조선 시대의 사서에도 있습니다(『승정원일기』 74책, 영조 47년 10월 7일 기사 참조).


    Q83 백제는 정교하고 섬세한 문화가 발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를 통치할 수 있었던 백제 문화의 힘은 신교를 바탕에 둔 미륵신앙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백제의 미륵신앙과 그 문화가 궁금합니다.


    백제 문화의 절정은 백제가 미륵신앙의 세계 중심지라는 것입니다. 불교 중심으로 보면, 우주광명 부처, 법신불이 인간으로 화한다고 하는 미래의 부처, 미륵불이 인류 역사를 근본적으로 개벽하고 인류의 마음을 부처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중심이 지금의 김제 금산사입니다. 여기에 진표 스님이 와서 미륵전을 세웠습니다. 이분이 망신참법亡身懺法이란 아주 혹독한 방법으로 참회하면서 결국은 미륵님으로부터 직접 도통을 받았습니다.

    익산의 미륵사지는 미륵님의 천상 용화낙원을 완성한다는 상징으로, 가서 보면 장엄합니다. 여기에 9층 석탑과 좌우에 9층 목탑으로 3개의 탑이 있고 3채의 금당이 있습니다. 미륵은 3수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3회 설법을 해서 인류를 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미륵님이 원래 도솔천의 천주님으로 인류의 원형문화, 삼신문화의 원주인原主人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동빈이라는 분이 도를 통해서 천상에 가 보니까 도솔천의 원주인이 바로 하나님이고 삼신상제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백제 30대 무왕이 앞으로 오시는 미륵님의 꿈을 이루려는 미륵님의 대행자 전륜성왕을 자처했습니다. 26대 성왕은 일본에 불교와 미륵불 문화를 전했습니다. 교토 광륭사에 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은 일본의 국보 제1호입니다. 야스퍼스는 “반가사유상은 진실로 완벽한 인간 실존의 최고 경지를 조금의 미혹도 없이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고 말했습니다. 이 불상은 인간이 정말로 우주 진리의 인간, 태일 인간이 된 모습을 보여 주는 유일한 조각품입니다.

    그리고 백제 예술의 극치를 상징하는 금동대향로를 보면 아래에 용이 있고 위에 봉황새가 턱 밑에 여의주를 끼고 있습니다. 중간에 보면 악사樂士들이 있고, 그 악사들의 아래 연꽃과 문양이 3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백제의 문화 예술품은 지금 봐도 지구에서 정상, 극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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