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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만은 꼭]

    고조선의 오행五行과 역법曆法 연구


    저자 소개 - 이찬구
    1956년 논산 출신으로 대전대학교 대학원에서 『동학의 천도관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동학 관련 연구를 하면서 틈틈이 고대사 연구에 몰입하였다고 한다. 홍산문화와 광개토태왕릉비에 대한 저작은 그의 역사 연구 깊이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단군조선 역사의 심층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고 볼 수 있다.

    주요 활동으로는 가톨릭대학교에서 논어와 주역 강의, 인하대학교에서 민속학 강의,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한국민족종교운동사 강의를 하였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부도지’에 대한 표제어를 집필하였으며, 한국철학사전 집필위원과 한국민족종교문화대사전 편찬위원,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 협의회 공동대표, 세계환단학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작> : 『천부경과 동학』, 『주역과 동학』, 『고조선의 명도전과 놈』, 『천부경』, 『통일철학과 단민주주의』, 『홍산문화의 인류학적 조명』, 『紅山文化と檀君史話』(일본어판), 『새로운 광개토태왕릉비의 연구』 등.

    <주요 논문> : 「단군신화의 재해석」, 「주역의 선후천변역과 제3역학의 가능성」, 「천부경 대삼합륙의 우주론」, 「단(檀)과 홍익인간에 대한 철학적 이해」, 「광개토호태왕비문의 신묘 병신년조 기사에 대한 고찰」, 「수운교 개벽사상의 역리적 고찰」, 「고대화폐 첨수도에 나타난 ‘원시형태 한글’의 이해」 등.

    환단고기가 현미경이라면 부도지는 망원경이다
    지난 76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잠들어 계셨던 여천汝千 홍범도洪範圖 대한독립군 총사령관님을 고국 대한민국으로 모셔 왔다.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홍범도 장군은 항일 투쟁에서 큰 승리였던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실질적인 주역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홍범도 장군은 오동진 장군과 함께 인류 역사 경전이자 시원 역사를 다룬 『환단고기』 초간본 목판 인쇄 30권 발간에 흔쾌히 자금을 댄 역사 광복 운동의 주역이기도 하였다.

    이 『환단고기桓檀古記』와 음양 짝을 이루는 책이 바로 『부도지符都誌』이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 『부도지』는 『환단고기』에서 다루지 않았던 내용을 설명해 주는 책으로 우리 시원 역사를 풍부하게 해 주는 책이다. 『부도지』에서 제기한 여러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 책이 최근 출간되었다. 바로 이찬구 박사의 『고조선의 오행五行과 역법曆法 연구』이다.

    이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환단고기가 현미경이라면, 부도지는 망원경과 같습니다. 『환단고기』가 역사의 사실史實과 정체성을 알려 주고 있다면, 『부도지』는 역사의 이상理想과 사명감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역사의 사실도 알고 이상도 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 그래서 저는 이 감격을 ‘『부도지』와 『환단고기』의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적고 싶습니다.”라며 그 감격을 전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


    『고조선의 오행과 역법 연구』는 이름 그대로 단군 조선의 역사와 철학이 융합된 전문적인 책으로, 진정한 전문가가 아니면 손을 댈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약 40년 동안 주역周易을 연구하고, 20여 년 동안 동학東學을 연구한 데 이어 식민사관을 배격하고, 민족사관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이 분야의 전문가로 책 내용이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가 있다.

    책은 크게 2부로 나누어 편집됐다. 1부는 「부도지로 본 마고의 창세와 단군과 요순우의 전쟁」이고, 2부는 「원동중 삼성기의 63,182년에 대한 역사이해」이다. 부제인 ‘단군과 요순堯舜의 문화전쟁과 인류 창세 연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단군조선과 중국에서 태평성대의 대명사로 알려진 요순 사이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생소하면서도 충격적인 내용이 많지만, 책 내용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바른 우리 역사의 모습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부는 「부도지」 번역과 함께 논의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천문과 역법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당연하게도 저자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본다면 이해가 아주 힘들지는 않다.

    김상일 전 한신대 교수는 서평에서 “이 책은 『부도지』의 역법 하나로 종횡무진 만주 벌판을 말 타고 질주하듯이 글을 쓰고 있다. 단군과 요순堯舜의 오행 전쟁은 동북아 문명충돌론으로 그 어느 것보다 장엄하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오행은 중국식 오행이지 단군의 오행이 아니다. 단군은 5토를 숨어서 조절하고 중재하는 자리로 보았다. 반면에 요순은 5토를 지배 권력의 상징으로 여겼다. 남들이 위서라고 버린 「부도지」를 다시 보고 「사기」와 일일이 비교하여 논증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런 시각에서 역사와 철학을 보지 못했다. 동전 하나로 로마서 전체를 구현할 수 있고, 얼음 조각 하나에서 지구 역사를 다 찾듯이 단군 부도의 하나인 강화도 참성단으로 동북아 고대사를 다 밝힐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감하여 추천한다.”고 말하고 있다. 단군과 요·순·우 전쟁의 내용과 실제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서 깊게 알아보도록 하자.

    2부는 『환단고기』에 실린 원동중元董仲의 「삼성기 하」 편의 기록 중 우리 민족 태고사의 역년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즉 환국桓國의 역년歷年에 대해서 3.301년과 63,182년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는 부분을 논점으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서 63,182년에 3,301년을 포함할 것인가의 여부와 환국과 이전 환국을 구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는데, 저자는 『부도지』와 소강절의 『황극경세』 등 다른 문헌의 도움으로 이 문제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63,182년 안에 3,301년이 포함된 것으로 보고, 환국(3,301년)과 그 이전의 전환국前桓國 시대(59,881년)에 전개된 민족의 역사를 논의하고 있다. 그러면서 「삼성기 하」의 63,182년은 BCE 67,078년으로 인류 창세 원년이고, 우리 조상들은 처음부터 중국과 달리 계해년으로 그 기원을 잡았다는 ‘상원계해上元癸亥’를 사용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부도지』의 마고 역사를 이해하여, 환인과 환국 역사의 빈 공간을 채우는 일이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 내용 깊게 보기 - 단군과 요순우 전쟁의 실체


    오늘날 문화충돌이나 문화전쟁은 무혈 전쟁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오행과 역법曆法을 놓고 단군檀君과 요·순·우堯舜禹가 싸운 문화전쟁은 피 튀기는 유혈 전쟁이었다. 바로 4+1행이냐 5행이냐? 13월 28일이냐 12월 30일이냐?를 놓고 배달국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씨의 탁록대전 이후 벌어진 동북아의 대전쟁이었다.

    4+1행이냐 5행이냐?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오행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오행과는 다른 개념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오행은 중국을 통해 역수입된 것으로, 단군조선의 오행관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오행과 다르다는 것이다.

    즉 1에서 9까지의 수에서 5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것인데, 중앙과 4방위에서 중앙 5토의 의미가 다르다. 「부도지」에서 밝힌 단군조선의 부도철학은 음양과 같은 역할을 하는 허虛와 실實이 있으며, 금목수화와 토가 있다. 바로 (1)+4의 철학이다.

    그러면 부도철학은 왜 토土가 빠지고, 금金이 추가되는가? 토와 금 중에서 하나가 퇴장한다면, 토생금土生金의 이치에 따라 금이 남고 토가 물러나게 된다. 이것이 마고의 어머니 정신이다. 토도 기氣처럼 이미 모든 만물 속에 내재화되어 현덕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부도지」의 저자가 21장에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저자가 요약한다면 부도의 사행은 결국 ‘금金, 목木, 수水, 화火’로 귀결되지만, ‘토土’는 뒤로 숨는다고 본다. 이것이 부도철학의 요체인 것이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1)+4이다. - 『고조선의 오행과 역법 연구』 책 112쪽


    이어서 저자는 토는 금, 목, 화, 수의 4물성과 서로 수평적 관계를 맺으며 그 안에 숨어 있다고 말한다. 즉 5토중五土中은 극極이 아니라, 변邊과 극極을 조화調和하고 중재하는 수평적 관계이며, 토 자신은 오행의 전체이기 때문에 숨어 있다고 보았고, 그 자리는 하늘[天]을 모시는 자리로 여겼다는 것이다.

    본래의 오행설은 단군조선의 2대 단군이 되시는 부루태자가 도산塗山의 모임을 통해 하夏나라의 우禹에게 전했다. 그러나 요·순·우는 9년 대홍수 이후 노골적으로 단군조선에 반발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요堯는 이 5토가 중앙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자기의 왕권을 강화하는 독재 체제의 구축에 활용하였던 것이다.

    또 그 배성지물配性之物은 금 목 수 화 토의 다섯 중에서 금과 토를 왜 따로 구별하는가.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구별을 하고자 한다면, 기氣, 풍風, 초草, 석石 따위는 어찌 같이 들지 않는가. 그러므로 다 들자면 수가 한이 없는 것이요. 엄밀히 들자면 금 목 수 화 혹은 토 목 수 화의 넷이요, 다섯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 물성物性을 어떤 이유로 수성數性에 억지로 짝 지우는가? 수성지물數性之物은 그 원수原數가 9요 5가 아니다. 그러므로 5행의 설은 참으로 황당무계한 말인 것이다. 이로써 하늘의 이치를 밝히는 일[證理]로 속이고 미혹하게 하여[誣惑] 곧 하늘의 재앙[天禍]를 만드니 어찌 (오행의 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부도지」 21장) - 책 110~111쪽


    13월 28일과 12월 30일
    예로부터 달력은 천자만이 정할 수 있었다. 제후국은 천자가 정한 달력을 받아 사용하였다. 본래 동방의 종주국인 단군조선에서 정한 역법曆法을 요임금은 거부하며 스스로 1달 30일의 달력을 제작하였다. 이에 앞서 단군조선의 부도에 맞서기 위해 당도唐都를 건설하였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요에 관한 기사의 대부분은 놀랍게도 달력에 관한 내용이다.

    역법을 만들어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을 헤아리다. 태양이 뜨는 것을 공손하게 맞이하다. 낮과 밤이 같아지는 것으로 춘분의 절기를 바르게 하다... 1년은 366일인데 3년에 한 번 윤달을 두어 네 계절을 바르게 하다. (사마천 『사기』의 「오제본기」를 인용한 부분) - 책 81~82쪽


    단군조선의 역법은 364일을 기본 정수로 한 점에서 요의 366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366일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364일에서 우수리 2일은 단旦과 판昄으로 치윤置閏하였다. 단은 설날이 되어 365일이 됨으로써 큰 해가 되게 하였다. 이는 13월 마지막 28일 금요일에 두었다. 판은 널빤지란 뜻으로 하지가 있는 달에 두어 7월 마지막 28일에 두게 하였다고 한다. 즉 13월 28일로 하되, 1일이나 2일을 윤일로 두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부도지』 23장을 번역하면서 이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좀 더 부가하면 지금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력은 자연의 질서에 반한다고 한다. 본래 1년은 365일로 360일을 5일 초과하게 된다. 그래서 13달을 두어야지 그냥 12달로는 초과되는 5일을 억지로 나누어 꿰어 맞추게 되는데, 그렇게 되는 순간 5일이 갖고 있는 시간의 값은 파괴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1차 오행 전쟁
    세상에서 우순(虞舜)을 대효(大孝)라 일러 오나 순은 천하의 대불효니라. 그 부친 고수의 악명이 반만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였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세상에서 요순지치(堯舜之治)를 일러 왔으나 9년 홍수는 곧 창생의 눈물로 일어났나니 요는 천하를 무력으로 쳐서 얻었고, 형벌은 순으로부터 나왔느니라. (증산도 도전 4편 30장 1절~4절)


    단군조선의 오행 개념과 13월 28일 달력을 거부한 요순을 단군조선에서는 유호씨有扈氏로 하여금 격파하게 하였다. 『부도지』 17장부터 이 전쟁의 발단이 시작되었다. 유호씨는 요의 잘못된 오행 이론과 역법을 고발하였다. 이 유호씨의 큰아들이 유우씨有虞氏로 바로 순舜이다. 순은 단군조선의 관리였다가 요의 꾐에 넘어가 사위가 된 인물이다. 중국 문헌에서는 그의 부친을 고수瞽瞍, 즉 맹인이라 하고, 순의 효심을 모르고서 그를 죽이려고 하는 천하의 나쁜 아버지로 악명이 내려오게 하였다.

    유호씨는 단군 임금의 특사요 사상가로, 부도의 진리를 전파하고 단군의 부도를 수호한 인물이다. 이를 사마천은 하나라의 일개 제후로 여기고 단군조선을 숨겼다.

    2차 오행 전쟁
    『부도지』 18장에서는 순이 미혹되어 단군을 배반하고 요에게 넘어가는 과정을 보고 요와 순을 깨우치도록 설득을 하였으나 듣지 않기 때문에 19장에서 토벌에 나서 수년 동안의 전쟁 중에 요순을 완전히 응징하였다. 이 과정에서 순은 9년의 홍수 기간 동안 이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곤鯀을 책임을 물어 죽이고, 아들 우禹로 하여금 대신하게 하였다. 단군조선의 부루태자에게 오행치수법을 전수받은 우는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는 순을 전쟁 과정에서 추격하여 죽여 버렸다. 이에 순의 두 왕후인 아황과 여영이 소상강에 투신하여 자결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20장부터는 하夏나라의 우禹를 상대로 요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21장에서도 요의 잘못된 오행관을 비판하며, 22장에서는 요의 잘못된 달력에 대해 비판하면서 우가 이를 답습하지 말도록 설득과 경고를 반복한다. 하지만 우는 부도를 배신하고 도산에 단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서남 제족을 정벌하여 제후諸侯라 하고 조공을 받으며, 수륙으로 부도와 연락을 끊고 내왕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에 유호씨가 부도로 돌아올 것을 권하였으나, 우는 듣지 않고 유호씨를 거듭 공격하였지만 이기지 못하고 진중에서 죽었다.

    24장에서 우가 죽은 후 아들 계啓가 6군을 출전시켰으나 역시 이기지 못하였고, 이후 하나라는 타락하였으며, 단군 임금께서는 하토夏土의 형세를 심히 걱정하며 입산하여 도를 전수하였다고 「부도지」는 전하고 있다.

    한민족의 사명
    이 하나라와 유호씨로 대변되는 단군조선 사이의 전쟁을 저자도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부도지』에서는 상세하고도 치밀하게 기록하고 있어 그 연구 성과로 이런 책을 내게 되었다고 했다.

    저자는 단군조선의 부도철학의 핵심은 ‘숨어 있는 토’로, 이 토는 오행의 전체이면서 부분이기 때문에 구태여 밖으로 드러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숨어 있는 토’는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조절하고, 서로 소통하며, 근본을 잊지 않고, 이를 통해 홍익인세(부도지 11장에서는 ‘홍익인간’ 대신에 ‘홍익인세弘益人世’라고 표현하고 있다)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단군조선이 중앙에 천부단天符壇을 모시고 사방에 각각의 보단堡壇을 설치하여 하늘을 섬기는 천도天道 정치를 실현하였음을 지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하늘에 천제를 모시는 천자국, 천손의 자손으로서 그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보단 중 동쪽에 있는 제단이 바로 강화도 마리산의 참성단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고 우리는 단군조선 시대의 부도를 재건하여, 사해四海 모든 종족들에게 천부의 가르침을 전하고, 홍익인간의 도로 사해의 평화를 이루어야 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깊어 갈수록 성숙해지는 계절인 가을에, 부디 의식 있는 독자분들께서 이 책을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부도지符都誌란?
    - 저자의 견해를 중심으로 정리함 -

    부도지는 신라 때 영해 박씨의 시조인 박제상朴堤上(363~419)의 저술로 알려진 『징심록澄心錄』 안에 있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으로 고구려와 왜에 건너가 볼모로 잡혀 있던 왕제들을 고국으로 탈출시켰으나, 자신은 왜국에 잡혀 유배되었다가 살해당했다. 그 부인이 고개에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 설화가 민간에 전하기도 하였다.

    박제상이 저술한 『징심록澄心錄』에는 「역시지」, 「천웅지」, 「의약지」 등 15지誌가 있는데, 그 가운데 맨 처음에 실린 부분이 바로 『부도지』이다.

    부도지에서 부符는 법도, 부절符節, 도장, 들어맞는다는 뜻이고, 도都는 수도, 나라, 모두, 크다라는 뜻이다. 지誌는 기록하다. 표지, 기억하다는 뜻으로, 부도는 하늘의 뜻[天符]을 받드는 도읍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총 3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내용은 마고의 창세와 역법曆法, 인간이 타락하게 되는 오미五味의 변*, 그리고 오행의 변 등이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천부天符의 실체를 알게 하고, 부도符都를 건설하게 하고, 사해를 평화롭게 하여 근본을 다시 세우는 데 있다고 한다.

    박제상 사후에 박씨 종가에서 필사되어 전해 오다가, 후에 「금척지」와 「징심록추기」가 추가되어 모두 17편이 되었다. 조선 시대 김시습이 이를 보고 추기追記를 적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부도지』는 1953년 울산에 살던 영해 박씨 55세손인 박금朴錦(1895~?, 본명은 박재익) 씨가 해방 전 함경남도 문천에서 여러 대에 걸쳐 전수받은 원본 『징심록澄心錄』을 보고 공부했으나, 분단으로 북한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과거 기억을 토대로 복원한 ‘원고지 필사본’을 말한다.

    현재는 1986년 광주농고 국어교사 김은수의 번역본이 출간되어 일반에 알려졌다. 김은수 선생은 1985년 『주해 환단고기』를 펴냈으나, 1988년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이전에 미국의 김상일 교수에게 『부도지』 원고를 넘겼다. 이후 김상일 교수는 『부도지 역법과 인류세』를 출간하여 『부도지』 연구의 새 지평을 열어 주었다.

    *오미의 변 - 마고성麻姑城의 인간은 지유地乳를 먹었는데, 요堯의 조상인 지소씨支巢氏가 외부의 포도를 먹으며 타락한 사건을 일러 ‘오미五味의 변變’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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