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무극대도 | 주역 열여섯 번째 천지의 순順함과 동動함의 조화 뇌지예괘雷地豫卦䷏

[기고]

한태일(인천구월도장 교무도군자)

우레와 대지의 화음和音


위에는 우레괘(☳), 아래에는 땅괘(☷)로 이루어진 뇌지예괘雷地豫卦는 땅속에 있던 우레가 지상으로 나와 떨쳐서 즐겁다는 괘입니다.

뇌지예괘의 예豫 자를 자전에서 찾아보면 豫=予(나)+象(코끼리)입니다. 코끼리는 죽을 것을 미리 알고 무덤을 찾아간다는 데서 ‘미리 예측하다(豫測)’의 뜻이 있고, 코끼리는 본래 의심이 많은 동물이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다(豫備)’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주역의 용어에는 상象 자가 들어간 글자가 몇 개 있는데, 예를 들면 상수학象數學, 대·소상전大·小象傳, 괘상卦象 등에서 보듯 옛날 사람들은 코끼리가 워낙 커서 만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모습이나 형상’이란 뜻으로 썼습니다.

16번째 지뢰예괘에서 ‘예豫’는 두 가지 뜻으로 쓰입니다. ①우레(雷=震=木)가 봄철의 동방에서 땅 밖으로 싹을 틔워 즐거워하는 것을 상징하여 ‘기쁘다(悅)’는 뜻을 지니고 있고, ②땅(☷)속에 있던 천둥(☳)이 지상으로 나와 우르르 쾅쾅 하는 소리가 마치 ‘음악音樂’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뇌지예괘의 괘상에서는 다섯 음효(⚋)중 양효(⚊) 하나가 우레가 되어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옛 성인께서는 이런 뇌지예괘의 모습을 보고 음악을 지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땅속에 아직 양기(⚊)가 하나도 생기지 않는 중지곤괘(䷁)는 음력 10월이고, 드디어 양기(⚊) 하나가 땅속 맨 밑에서 꿈틀거리는 지뢰복괘(䷗)는 11월입니다. 땅[坤地,☷]속에 있던 지뢰복괘의 일양一陽이 커서 땅 밖으로 진목震木(☳)이 발아한 모습이 뇌지예괘(䷏)인 것이죠.

제후를 세우고 군사를 행함이


☯ 괘 사
預(예)는 利建候行師(이건후행사)하니라
예豫는 제후를 세우고 군사를 행함이 이로우니라.


☞ 제후를 세우고 군사를 행함이 이로우니라(利建候行師): 뇌지예괘는 기쁨, 즐거움을 표현하는 괘입니다. 왜냐하면 지상에서 우레가 만물을 진작시키려고 우르르 꽝 하는 소리를 내는 예괘는 생기를 복돋우는 음악과 같기 때문이죠. 개인도 심신이 편해야 마음이 즐겁듯이, 국가도 제대로 다스려질 때 국태안민國泰安民의 태평성대가 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후를 세운다는 것은 국가 조직을 수립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며, 군사를 행한다는 것은 국방을 튼튼히 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국가 통치 조직과 국방을 튼튼히 하면 그야말로 국민들이 맘 편히 생업에 종사할 수 있고 행복지수는 올라가게 마련이죠. 이처럼 예괘는 대승적 차원에서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질 때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만족도가 높아 국리민복國利民福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주의 원리, 음순양동陰順陽動


☯ 단 사
彖曰(단왈) 豫(예)는 剛應而志行(강응이지행)하고 順以動(순이동)이 豫(예)라
단전에 이르길 “예는 강이 응하여 뜻이 행하고 순함으로써 움직임이 예라.

豫順以動故(예순이동고)로 天地(천지)도 如之(여지)어늘 而況建候行師乎(이황건후행사호)여
예가 순함으로써 움직이는 까닭으로 천지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제후를 세우고 군사를 행함에 있어서랴.

天地(천지) 以順動(이순동)이라 故(고)로 日月(일월)이 不過而四時(불과이사시) 不忒(불특)하고
천지가 순함으로써 움직이라. 그러므로 일월이 지나치지 아니하며 사시가 어긋나지 않고

聖人(성인)이 以順動(이순동)이라 則刑罰(즉형벌)이 淸而民(청이민)이 服(복)하나니
성인이 순함으로써 움직이니라. 곧 형벌이 맑아서 백성이 복종하니

豫之時義(예지시의) 大矣哉(대의재)라
예의 때와 뜻이 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 강이 응하여 뜻이 행하고 순함으로써 움직임이 예라(剛應而志行順以動豫): 지뢰예괘는 양효(⚊, 구사) 하나에 음효(⚋, 초육, 육이, 육삼, 육오, 상육) 다섯 개가 응하고 있습니다. 예괘는 음악을 상징하는 괘로 양효(1개)와 음효(5개)가 서로 응하여 소리가 나옵니다(음陰은 정靜이라 실제 소리를 내는 것은 동動하는 양陽임). 예괘에서 음양 비율은 1:5입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음악 또한 양이란 율律과 음이란 려呂가 호응互應해야 ‘율려律呂’라는 음악이 나옵니다.

뇌지예괘에서는 음악을 ‘순동順動’이라 합니다. 사실 순동은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 이치에 적용됩니다. 정치도 아무리 군주가 강력(動:☳)해도 그를 따르는 신민臣民이 받쳐 줘야(順:☷) 임금이 정치를 펼칠 수 있죠. 뇌지예괘를 보면 아래의 땅괘(☷)는 유순柔順하고, 위의 우레괘(☳)는 강동剛動하여 서로 순동順動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 예가 순함으로써 움직이는 까닭으로 천지도 이와 같거늘(豫順以動故天地如之): 뇌지예괘는 아래 땅괘의 유순함(陰-順-呂)과 위의 우레괘의 움직임(陽-動-律)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만약 양이 강하다고 격렬히 움직인다면 음양이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이처럼 음양은 순동順動, 즉 음은 부드럽게(順) 양은 세게(動) 작용할 때 하모니harmony를 이룹니다. 그래서 천지의 이치도 순동이요, 음악의 음율도 순동입니다.

▶ 상제님 대도진리: 우주 이법이 양동음순陽動陰順하므로 천지 이치도 천동지순天動地順하고 인간도 남동여순男動女順하고 음악도 양율음려陽律陰呂합니다. 정리하면 ‘음양=순동=율려’입니다. 세상 이치가 순동의 원리를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상제님께서도 “대인을 배우는 자는 음양을 겸전兼全해야 한다.”(8:4:5)고 말씀하셨습니다.

수행 또한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정공靜功과 동공動功을 조화롭게 해야 도통의 경지에 오를 수 있죠. 또 중요한 것은 우주 음악인 태을주를 위시하여 모든 주문들도 순동의 곡조에 따라 읽어야 합니다.

* 성도들에게 주문을 읽게 하실 때는 항상 “음절과 고저장단을 맞추어 읽으라.” 하시고 (도전 8:64:3)


아울러 일꾼이 실천해야 할 예도禮道에 대해서도 ‘동정動靜’의 이치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 動於禮者(동어예자)라야 靜於禮(정어예)하나니 曰道理(왈도리)요
靜於無禮(정어무례)하면 則曰無道理(즉왈무도리)니라
예에 맞게 동(動)하는 자라야 예에 맞게 정(靜)하나니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도리(道理)요
무례를 보고도 정(靜)하면 도리가 아니라고 하느니라. (8:107:2)


☞ 하물며 제후를 세우고 군사를 행함에 있어서랴(而況建候行師乎): 하늘땅의 이치가 양동음순陽動陰順이듯 천지 안의 인간사 또한 양동음순의 이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컨대 국정의 양축인 복지와 국방 또한 그렇습니다. 국민을 배부르고 따뜻하게 감싸는 복지는 어머니의 모성애로 보듬고(順-☷), 국가 안보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굳건하게 지켜야(動-☳) 합니다. 이렇게 내치와 외치가 조화될 때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도가 높아 가는 것이죠.

☞ 천지가 순함으로써 움직이라. 그러므로 일월이 지나치지 아니하며 사시가 어긋나지 않고(天地以順動故日月不過而四時不忒): 여기서 한 번 더 천지의 순동에 대해 말하고 있네요. 천지 운행은 음양의 운행입니다. 양을 상징하는 해가 너무 세게 열기를 내리쬐면 다 타 버릴 것이며, 음을 상징하는 달이 숨어 버리면 세상은 암흑천지가 될 것입니다.

하늘땅이 천강지순天剛地順하여 해와 달이 순동順動하게 되고, 일월이 순동해야 때에 맞춰 춘하추동으로 변화합니다. 만약 천지일월이 순동하지 않고 밸런스가 무너진다면 하늘의 별들과 지구의 공전과 자전의 궤도가 틀어져 버립니다. 이렇게 천지일월의 운행 법칙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동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공간과 시간의 법칙은 ‘순동順動’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파멸만이 있을 뿐입니다.

▶ 상제님 대도진리: 어린 시절 상제님께서는 순동으로 리드미컬하게 신명을 돋우는 풍물굿을 보신 후 장성하신 뒤에도 즐겨 보셨습니다. 풍물風物은 신을 부르는 악기로 우레(雷)를 뜻하는 꽹과리, 바람(風)을 상징하는 징, 비(雨)를 상징하는 장구, 태평소 등이 있습니다.

* 상제님께서는 풍물굿을 좋아하시어 굿을 즐겨 구경하시고 흥이 나시면 풍물패에 직접 뛰어들어 장구도 치시고 꽹과리도 치시니라. (3:124:1~2)


그리고 우주의 조화주造化主이신 상제님께서는 옥단소의 다양한 곡조로 여러 가지 조화를 부리기도 하셨습니다.

* 상제님께서는 옥단소를 구성지게 잘 부시니 그 곡조에 따라 천지가 소란해지기도 하고 비가 오거나 개며, 멀쩡한 날에 공중에서 잉어가 툭툭 떨어지기도 하더라. (7:25:3)

☞ 성인이 순함으로써 움직임이라. 곧 형벌이 맑아서 백성이 복종하니 예의 때와 뜻이 크도다(聖人以順動則刑罰淸而民服豫之時義大矣哉): 천지 이법에 따르는 성인의 가르침은 순동하는 이치를 가르치므로 사람들이 복종합니다. 정치를 함에 있어서도 군왕이 천지 이법인 음양의 균형(순동)을 갖춘 시각으로 다스려야 왕도정치가 가능하며, 음양의 균형을 상실하면 패도정치로 전락합니다. 죄와 벌을 다루는 형벌도 순동의 이치대로 집행해야 하며, 순順(신상信賞)과 동動(필벌必罰)의 원칙대로 행하면 누구든지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 상제님 대도진리: 천지의 음양 이법을 주재하시는 상제님께서는 “천지의 대덕(大德)이라도 춘생추살(春生秋殺)의 은위(恩威)로써 이루어지느니라.”(8:62:3)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지의 운행에는 따뜻한 봄철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유순柔順함과 가을철 숙살肅殺의 살기로 내리치는 강동剛動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천지를 대행하는 천하사의 일꾼도 강유를 겸비하라는 가르침을 내려 주셨습니다.

* 일꾼된 자 강유(剛柔)를 겸비하여 한편이라도 기울지 아니하여야 할지니 (8:62:2)
이처럼 천지의 이법인 순동의 이치를 담고 있는 지뢰예괘가 행하는 때와 그 뜻이 크다는 것입니다.


성대히 상제님께 제를 올리니


☯ 대 상
象曰(상왈) 雷出地奮(뇌출지분)이 豫(예)니 先王(선왕)이 以(이)하야 作樂崇德(작악숭덕)하여
대상전에 이르길 “우레가 땅에서 나와 떨치는 것이 예니, 선왕이 이를 본받아 음악을 짓고 덕을 숭상하여

殷薦之上帝(은천지상제)하야 以配祖考(이배조고)하니라
성대히 상제님께 제를 올리면서 조상을 함께 배향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 우레가 땅에서 나와 떨치는 것이 예니, 선왕이 이를 본받아 음악을 짓고 덕을 숭상하여(雷出地奮豫先王以作樂崇德): 우레(☳)가 땅(☷)속에 있으면 지뢰복괘地雷復卦(䷗)가 되며, 우레(☳)가 땅(☷) 밖으로 나오면 뇌지예괘雷地豫卦(䷏)가 됩니다. 즉 지뢰복괘는 우레라는 일양一陽이 땅속에서 막 생기려는 모습이며, 뇌지예괘는 우레가 하늘에서 우르르 꽝 하며 뇌성雷聲이 크게 울리는 모습입니다. 아주 먼 옛날 이제삼왕二帝三王 시절에 성인이 천둥소리가 대작大作하는 것을 보고 음악을 지었다고 합니다.

음악이란 진동 주파수의 세기 차이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을 박자, 가락, 음성 등을 조화하여 내는 소리입니다. 자연의 순수한 소리 중 하나가 바로 천둥소리(뇌성雷聲)입니다. 전혀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때 묻지 않은 원시의 소리가 천둥의 울림입니다. 자연의 음악은 사욕이 배제되어 사람의 영혼을 맑게 정화시켜 주지만 인간의 음악은 영혼과 정신을 흐려지게 만듭니다.

이처럼 음악音樂이란 말 그대로 소리[音]로써 사람의 영혼을 즐겁게[樂] 만드는 것으로 인간의 심성을 착하게도 혹은 악하게도 만들기에 예로부터 위정자는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에 있어 음악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었던 것이죠.

▶ 소악韶樂과 정성鄭聲: 고대부터 위정자들은 음악을 중히 여겨 『논어』를 보더라도 안연顏淵이 공자에게 나라 다스리는 법도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길 “음악은 순舜임금이 만드신 소무韶舞를 쓰노라(樂則韶舞).”고 하였습니다. 공자가 제나라에 있을 때 순임금이 만든 소악韶樂을 듣고 그것을 배우는 3개월 동안 고기 맛도 모른 채 “음악을 만드는 것이 이러한 경지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토로하였다고 합니다.

성인의 음악인 소악韶樂과 대비되는 것이 바로 정성鄭聲인데요. 정성은 정鄭나라의 음악을 말하며, 당시 정나라에는 음탕한 음악이 유행하였으므로 후대에 와서 정성은 저속하고 음탕한 음악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 성대히 상제님께 제를 올리면서 조상을 함께 배향하느니라(殷薦之上帝以配祖考): 음악이란 살아 있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죽은 신명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생사를 넘나드는 소리의 향연입니다. 그래서 동양의 전통적인 유가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제례에 집행되는 공식 의례儀禮 중 하나가 음악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 왕조의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이 바로 그것이죠. 종묘제례악은 조선 시대에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에서 역대 제왕의 제사를 모실 때 쓰던 기악과 노래와 무용의 총칭입니다. 특히 세종이 지었다는 <정대업定大業>, <보태평保太平>이 대표적인 종묘제례악입니다.

▶ 천제天祭: 상고시대부터 천자나 황제는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에게 천제天祭를 올렸습니다. 유교 문화권에서 천제만큼 중요한 제례는 없었습니다. 천제는 하늘의 하느님을 대행하여 땅에서 인간을 다스리는 하느님의 아들인 천자天子(=天帝之子)만이 유일하게 지낼 수 있는 제례였기 때문입니다. 제후국에 불과했던 조선도 드디어 1897년 환구단을 조성하고 황천상제皇天上帝님께 천제를 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황제국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때 제천의례를 올리면서 연주한 제례악이 바로 <중화中和의 악>과 <응화凝和의 악>이었습니다.

▶ 상제님 대도진리: 그리고 상제님께 제를 올리면서 조상을 함께 배향했다는 말은 태상종도사님께서 들려주시는 다음 고사故事로 갈음하겠습니다.

“옛날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아버지인 문왕文王은 천제를 올릴 때 자기 아버지 왕계王季를 상제님과 짝을 해서, 즉 자기 아버지를 상제님과 대등한 위치에 놓고 제사를 모셨다고 한다.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을 낳아 준 분이 제 조상이다. 제 조상 이상 더 소중한 분이 어디 있겠는가? 조상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것은 절대로 흠이 아니다. 사람은 제 조상을 잘 받들어야 한다.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상제님 진리, 천지의 이법이 바른 것이다. 바르게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순리에 어긋나면 결국은 망하고 죽는 수밖에 없다.”

절개가 돌과 같음이라


☯ 육 효 사
初六(초육)은 鳴豫(명예)니 凶(흉)하니라
초육은 즐거움에 울고 있으니 흉하니라.

象曰(상왈) 初六鳴豫(초육명예)는 志窮(지궁)하야 凶也(흉야)니라
소상전 이르길 “‘초육이 즐거움에 운다’는 것은 뜻이 궁해서 흉하다.”고 하였습니다.


☞ 즐거움에 울고 있으니 흉하니라(鳴豫凶): 초육은 지뢰예괘에서 유일한 양효인 구사와 응하고 있습니다. 즐거움에 울고 있다(鳴豫)는 말은 예괘에서 구사가 음악 소리를 낼 수 있는데 그 구사와 응하는 초육만이 독점하여 희열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육을 제외한 나머지 음효들(육이, 육삼, 육오, 상육)은 구사를 그저 쳐다만 볼 뿐이죠. 음악은 다 함께 향유해야 하는 것인데 구사를 믿고 너무 설쳐 대는 것은 결국 흉하게 됩니다. 그래서 소상전에서는 도가 지나치면 궁하게 되어 흉할 수밖에 없다고 한 것입니다.

六二(육이)는 介于石(개우석)이라 不終日(부종일)이니 貞(정)코 吉(길)하니라
육이는 절개가 돌과 같음이라 날을 마치지 않아도 바르고 길하니라.

象曰(상왈) 不終日貞吉(부종일정길)은 以中正也(이중정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날을 마치지 않아도 바르고 길하다’는 것은 중정으로 함이다.”고 하였습니다.


☞ 절개가 돌과 같음이라(介于石): 육이는 뇌지예괘의 아래 괘에서 가운데(中)에 위치하고 두 번째 음 자리에 음효가 와서 바른(正) 자리입니다. 즉 육이는 ‘중정中正’합니다. 예괘에서 육이를 제외한 모든 여자들(초육, 육삼, 육오, 상육)이 잘난 남자(구사)에게 마음을 뺏겨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하지만 중정한 육이라는 여자는 자기 짝이 아닌 외간 남자(구사)에게 전혀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이런 육이의 일부종사一夫從事하는 모습을 ‘절개가 돌과 같다(介于石)’고 하였습니다.

▶논개와 장제스: ‘돌 같은 절개(介于石)’와 관련하여, 두 사람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먼저 논개論介(?~1593)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함락되었을 때, 기녀로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南江의 푸른 물에 뛰어들어 순국한 의로운 기생이 바로 논개입니다. 변영로 시인의 ‘논개’라는 시詩(1922년 작) 중에서 “아, 강낭콩 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라는 구절이 불현듯 뇌리를 스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중화민국 총통으로 중국 현대사의 거인이었던 장제스蔣介石(1887~1975)입니다. 사람들은 장개석 총통의 본명을 ‘개석介石’으로 알지만 원래 본명은 ‘중정中正’이며 개석은 자子입니다. 중정中正은 주역의 핵심 사상입니다. 장 총통의 본명(中正)과 자(介石) 모두 뇌지예괘(육이 효사)에서 따온 이름이죠. 대만의 타이베이臺北에 가 보면 국부로 받드는 장 총통의 기념관인 ‘중정中正기념관’이 있습니다.

☞ 날을 마치지 않아도 바르고 길하니라(不終日貞吉): 돌처럼 단단한 곧은(貞) 절개(介)를 가진 육이는 개인적인 욕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굳이 날이 마칠 때까지 미적거릴 필요가 없지요. 마음속에 항상 곧은(貞) 절개(節)를 가지고 일을 하니 당연히 길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 중정으로 함이다(以中正也): 육이가 날이 마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은 음효가 음 자리에 있고 하괘에서 중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날이 마치지 않아도 바르게


六三(육삼)은 盱豫(우예)라 悔(회)며 遲(지)하면 有悔(유회)리라
육삼은 쳐다보며 즐거워하니라, (쳐다본들) 후회하며 오래도록 해도 후회가 남으리라.

象曰(상왈) 盱豫有悔(우예유회)는 位不當也(위부당야)일새라
소상전에 이르길 “‘盱豫有悔’는 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 쳐다보며 즐거워하니라, 후회하며 오래도록 해도 후회가 남으리라(盱豫悔遲有悔): 육삼은 음효가 양 자리에 있어 제자리가 아니며, 하괘에서 가운데에 있지도 않고 맨 끝에 있어 부정不正, 부중不中, 불안不安한 자리입니다. 이렇게 제자리에 있지도 않는 여자(육삼)가 바로 위에 있는 잘생긴 남자(구사)를 쳐ㅈ다보면서 좋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육삼이 눈길을 준들 구사는 전혀 반응도 없으니 후회만 있을 뿐이죠.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 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位不當也): 쳐다봐도 후회만 되는 것은 육삼이 부정, 부중, 불안한 자리에서 부당不當한 짓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즐거움으로 크게 얻으니


九四(구사)는 由豫(유예)라 大有得(대유득)이니 勿疑(물의)면 朋(붕)이 盍簪(합잠)하리라
구사는 즐거움이 말미암느니라. 크게 얻음이 있으니 의심하지 않으면 벗이 비녀를 합하느니라.

象曰(상왈) 由豫大有得(유예대유득)은 志大行也(지대행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즐거움이 말미암아 크게 얻는다’는 것은 뜻이 크게 행하여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즐거움이 말미암느니라. 크게 얻음이 있으니 의심하지 않으면 벗이 비녀를 합하느니라(由豫大有得勿疑朋盍簪): 구사는 뇌지예괘에서 유일한 양효로서 즐거움과 음악이 구사에서 나옵니다. 또 초육, 육이, 육삼, 육오, 상육의 모든 음효들이 구사에게 목을 매고 있으며 음효들과 여러 소리들을 내고 있습니다. 비록 구사는 군왕은 아니지만 유약한 임금(육오)를 보좌하여 정치를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구사)은 음 자리에 양효가 와서 제자리가 아닌 탓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축되지 말고 소신껏 임금과 백성들을 위해 통합의 정치를 펼치게 되면 나라에 좋은 일들이 생겨납니다. 백성들(朋)의 수많은 바람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것을 여인들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묶는 비녀에 비유(盍簪)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치 각자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잡음 없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만들어 내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말이죠.

六五(육오)는 貞(정)하되 疾(질)하나 恒不死(항불사)로다
육오는 곧게 하되 병은 걸리지만 항상 죽지 않도다.

象曰(상왈) 六五貞疾(육오정질)은 乘剛也(승강야)오 恒不死(항불사)는 中未亡也(중미망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육오가 곧되 병이 걸렸다’는 것은 강을 탔음이요 ‘항상 죽지 않는다’는 것은 중이 없어지지 않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곧게 하되 병은 걸리지만 항상 죽지 않도다(貞疾恒不死): 육오는 상괘에서 중을 얻어 성정이 곧습니다(貞). 비록 군왕의 자리에 있긴 하나 인간인지라 특히 한 여성으로 밑에 있는 잘생긴 남자(구사)에게 마음이 쏠립니다(疾). 그렇지만 군왕으로 중심을 잡고 있어 죽을 정도로 애틋하진 않습니다.

☞ 강을 탔음이오(乘剛也), 중이 없어지지 않음이다(中未亡也): 육오 군왕이 병이 든 것은 바로 밑에 있는 굳건한 신하(구사)를 거느렸다는 것이며, 죽을병이 아니라는 것은 그나마 중도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上六(상육)은 冥豫(명예)니 成(성)하나 有渝(유유)하면 无咎(무구)니라
상육은 즐거움에 어두워졌으니 이루나 변함이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상왈) 冥豫在上(명예재상)이니 何可長也(하가장야)리오
소상전에 이르길 “즐거움에 어두워짐이 위에 있으니 어찌 가히 오래 하리오.”라고 하였습니다.


☞ 즐거움에 어두워졌으니 이루나 변함이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冥豫成有渝无咎): 상육은 뇌지예괘의 끝자리에 있습니다. 극한 자리라서 즐거움 또한 극에 달하다 보니 쾌락으로 치닫는 자리입니다. 상육 본인의 즐거움은 성취하였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하다가는 흉한 꼴을 당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으면 허물은 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 즐거움에 어두워짐이 위에 있으니 어찌 가히 오래하리오(冥豫在上何可長也): 상육은 끝까지 간 자리로 중천건괘의 끝자리(상구)처럼 ‘항룡유회亢龍有悔’하는 상황과 같습니다. 쾌락만을 추구하니 더 이상 갈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