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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B하이라이트]

    상생FOCUS | 종도사님께 듣는 대한역사관⑪

    네 번째 국통맥 - 북부여(71~76번 질문)



    Q71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보면 ‘부여사’에 대해 나오는데요. 대부여, 북부여, 동부여, 서부여, 남부여와 같이 부여의 여러 명칭이 등장합니다. 이 부여들은 어떤 점에서 다른지 궁금합니다.


    부여 역사 전체를 보면, 부여가 한 여덟 개 정도가 있습니다. 원래 ‘부여夫餘’라는 이름은 초대 단군왕검의 네 아들 중 막내아들의 이름 ‘부여’에서 왔습니다. 단군왕검이 막내아들을 하얼빈 서남쪽의 부여후로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부여’는 ‘밝다’는 뜻으로 광명을 상징합니다.

    먼저 대부여가 있습니다. 단군조선이 실제로 망한 것은 바로 44세 구물丘勿 단군 때 실제 쿠데타가 일어나 가지고 거기서 역사가 완전히 다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삼한, 삼조선이 각각 병권을 가지면서 독립된 개별 국가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바꾸었습니다.

    그다음 북부여와 동부여가 있습니다. 북부여는 단군조선 말에 해모수가 만주를 차지하고서 북녘 북北 자를 놓아서 ‘북부여北夫餘’라 했습니다. 그것은 단군조선의 마지막 왕조 대부여를 계승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북부여의 4세 고우루 단군 때 한나라 무제가 동북아를 완전히 경략해서 최초의 진정한 대천자가 되려고 쳐들어왔는데 동명왕 고두막한이라는 인물이 나와서 이를 물리치게 됩니다.

    그리고 북부여에서 ‘동부여東夫餘’가 나왔습니다. 한 무제를 격퇴한 동명왕 고두막한 때문에 북부여의 해부루는 보위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쫓겨나 가섭원이라는 땅으로 이주해서 거기에 부여를 세우게 됩니다. 그것을 가섭원부여迦葉原夫餘, 또는 동부여라고 합니다. 동부여는 해부루解夫婁, 금와金蛙, 대소帶素로 이어지는데, 3세 대소왕이 전쟁터에서 고구려 장수 괴유에게 단칼에 죽고서 동부여가 망했습니다. 그 후 대소의 아우가 ‘갈사부여曷思夫餘’를 만들고, 대소의 종제從弟가 ‘연나부부여椽那部夫餘’를 세우게 됩니다.

    연나부부여는 서쪽으로 가서 북경 위 정주라는 곳에 자리 잡고 서부여西夫餘가 되는데, 그 마지막 왕인 7세 의라依羅와 그 아들 의려依慮에 대한 기록이 『환단고기』에 나옵니다. 아버지 의라왕이 일본으로 갔다는 기록도 있고, 아들 의려가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가서 응신왕應神王이 됐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학자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1906~2002)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부여계 기마민족이 야마토 정권을 세웠다.”고 말했지만 일본의 야마토 정권은 북방 기마민족이 내려와서 연 것이 아니라, 서부여와 대륙 백제와 본本백제가 연합해서 연 것입니다. 그리고 백제 26세 성왕聖王이 공주에서 부여로 옮기면서 나라를 ‘남부여南夫餘’로 바꾸었습니다. 『환단고기』에는 이렇게 부여사의 총체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Q72 우리 역사의 국통맥을 바로잡기 위해선 부여사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북부여의 182년 역사는 단군조선에서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로 국통맥을 이어 주는 ‘고리’라고 강조하셨는데요. 북부여의 탄생 역사를 알고 싶습니다.


    단군조선의 마지막 47세 고열가 단군은 단군왕검의 사당을 백악산에 세우고, 유사有司로 하여금 사계절마다 제사를 지내게 하셨습니다. 단군은 1년에 한 번 제사에 참석하셨습니다.

    또 고열가 단군은 서력기원전 238년 계해년에, “나는 도저히 나라를 경영할 수가 없다. 이제 그만 물러나겠다.” 하고 나라 살림을 맡은 오가의 족장들에게 국권을 넘기고서 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후 6년 공화정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전해인 임술년(서력전 239년)에 해모수가 웅심산에서 나라를 세우고 북부여라 했습니다. 그러나 단군의 옥새를 전수받는 데까지는 약 7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리하여 서력전 232년에 본격적으로 단군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왕조시대가 정통 역사시대로 출범하게 됩니다.

    서력전 239년에 북부여가 서고 그 다음 해에 단군조선의 본조本朝인 진조선이 망합니다. 그러고 나서 44년 뒤인 서력전 194년에 위만이 번조선에 쳐들어와서 왕위를 빼앗았는데, 그때 준왕準王이 망명하여 익산益山에 들어오고 남삼한 중 하나인 마한이 생깁니다.

    그리고 북부여의 4세 고우루高于婁 단군 때 한 무제가 쳐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한사군 논리에 빠져서 ‘대동강 한사군 전쟁’으로 왜곡되어 있습니다. 한 무제는 북부여로 쳐들어오기 전에 중국 서방 36국을 평정하고 거기에 사군四郡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사군을 배치해서 진시황보다 훌륭한 대천자가 되려는 야망이 있었던 겁니다. 한 무제는 신선을 좋아하고, 하늘의 우주 정치 통치자 삼신상제님의 진정한 아들이 되겠다고 밤새 제사를 지내기도 한 인물입니다.

    번조선이 망한 뒤에 한 무제가 북부여로 계속 쳐들어왔을 때 서압록 사람 동명왕東明王 고두막한高豆莫汗이 한나라 군대를 계속 격파했습니다. 그 뒤에 고우루(해우루) 단군이 병들어서 죽자, 고두막한이 고우루 단군의 뒤를 이어 5세 고두막高豆莫 단군이 됩니다.

    실제 북부여의 역사는 182년인데 1세 해모수, 2세 모수리 이후 6세까지 이어지다가, 주몽이 계승했습니다. 『환단고기』에서는 단군조선을 계승한 북부여 왕조의 역사 족보를 총체적으로 밝혀 주고 있습니다.

    Q73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주요 사서 중에 북부여의 역사가 담긴 「북부여기北夫餘紀」가 있지요? 「북부여기」는 어떤 책인지 그리고 저자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북부여기」는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사와, 북부여에서 갈려 나간 여러 부여사를 총체적으로 기록하여 부여사의 전모를 밝혀 주는 사서로, 특히 북부여의 건국 시조인 해모수解慕漱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혀 줍니다. 그동안 고조선이 멸망한 뒤 어떻게 고구려로 이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 「북부여기」를 통해서 9천 년 한민족사의 국통맥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북부여기」는 부여사를 완전하게 복원해 주는 유일한 사서입니다. 우리 역사의 머리인 환국·배달·조선의 뿌리가 뽑히고 환국, 배달, 조선에서 여러 나라, 즉 열국시대로 가는 출발점인 부여사를 잃어버리면서 오늘날 학자들은 북부여와 동부여의 차이를 모르고, 동부여와 서부여의 차이도 모릅니다.

    북부여와 동부여, 가섭원부여의 역사를 완전히 복원한 분이 바로 호남 전라도 나주羅州에서 오신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입니다. 이분이 『진역유기震域留記』를 쓴 이명李茗과, 여섯 분의 임금을 모신 고려 말 공민왕 때 재상을 지낸 이암李嵒과 더불어서, 9천 년 역사의 문서를 종합해서 경기도 천보산天寶山 암자에서 인재를 기다리던 소전거사素佺居士에게서 비전祕典, 여러 사서들을 전수받았습니다. 그리고 세 분이 ‘우리 역사를 반드시 되찾자. 이것을 후세에 전해 주자’고 결의혈맹을 하게 됩니다.

    ※ 복애거사 범장 : 「북부여기」를 낸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은 행촌 이암과 더불어 고위 관료를 역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가 망하고 나서 이성계가 고려의 충신을 쓰려고 했는데 상당히 많은 사람이 거부했다. 당시 두문동에 은거하면서 조선에 몸담지 않은 고려의 충신들을 두문동 72인이라 하는데, 범장은 그중에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Q74 단군조선 말기에 중국 한나라 무제가 쳐들어왔을 때 고두막한이 중국 한 무제를 몰아냈다고 하셨습니다. 동북아의 역사가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고두막한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합니다.


    단군조선 말기에 중국의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이 동북아를 진정으로 대통일하는 진명천자眞命天子, 천지의 궁극의 진명을 받은 천자가 될 야망을 갖고 북쪽 흉노를 핑계 대고 쳐들어왔는데 그때 나라가 진정 멸망당할 위기에서 단군조선 47세 고열가 단군의 후손이었던 고두막한高豆莫汗이 일어났습니다.

    고두막한은 한 무제가 우거 정권을 멸망시킨 해인 기원전 108년에 졸본卒本에서 동방의 대광명이라는 뜻의 ‘동명’東明(동명부여 또는 졸본부여)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동명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87년에는 북부여를 계승하게 되는데 이분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동명성왕東明聖王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동명왕이 고주몽으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동명왕 고두막한이 한 무제를 몰아내게 되는데, 한 무제가 고두막한에게 패퇴한 이 대사건은 중국 역사상 최대의 수치로 남게 됩니다. 그리고 고두막한은 북부여 5세 단군으로 즉위하려는 해부루解夫婁에게 ‘나는 단군조선의 마지막 단군 고열가의 후손이다. 내가 동방 문명의 진정한 주인이고 천제지자天帝之子니까 왕권을 내놓아라’라고 보좌를 요구하게 되고, 동명왕東明王이던 고두막한은 북부여의 5세 단군 자리에 오릅니다.

    Q75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구려 건국의 주인공인 고주몽이 해모수의 아들인 줄 알고 있습니다. 고주몽을 다룬 TV 드라마 ‘주몽’에서 고주몽의 아버지가 해모수로 나왔는데요. 해모수가 주몽의 아버지로 왜곡되면서 북부여의 역사가 사라졌다고 생각됩니다. 해모수와 주몽의 관계를 설명해 주십시오.


    고주몽의 아버지는 불리지(고모수)인데, 해모수의 증손자로서 해모수와 주몽은 무려 120여 년 이상 차이가 납니다.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 부인이 혼전 임신을 하자 황실의 체면을 손상시켰다고 부모에게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동부여로 가게 되었고 주몽은 금와왕의 곁에서 크게 됩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주몽이 부호 연타발의 딸인 과부 소서노와 정략적인 결혼을 했다고 나오는데 소서노는 연타발의 딸이 아니라 북부여의 마지막 왕인 6세 고무서 단군의 외동딸이었습니다. 고무서 단군은 소서노召西弩를 고주몽과 혼인시켜 사위로 삼아 주몽으로 하여금 북부여를 계승하게 했습니다. 이로써 고주몽이 북부여의 7세 단군이 되었고, 그 후 기원전 37년에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로 변경하게 됩니다.

    환국, 배달, 단군조선에서 열국시대로 들어가는 원原모체, 자궁, 모든 열국의 근원이 해모수가 건국한 북부여입니다. 그리고 「삼성기三聖紀 上」의 마무리 부분을 보면 고주몽이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를 태조로 받들어 제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주몽은 ‘내가 시조가 아니고, 이 나라의 실제 시조(태조)는 나의 고조(4대조) 할아버지인 해모수다’라는 것입니다.

    至癸亥春正月(지계해춘정월)하야 高鄒牟(고추모)가 亦以天帝之子(역이천제지자)로
    繼北夫餘而興(계북부여이흥)하사 復檀君舊章(복단군구장)하시고
    祠解慕漱(사해모수)하사 爲太祖(위태조)하시고
    始建元(시건원)하사 爲多勿(위다물)하시니 是爲高句麗始祖也(시위고구려시조야)시니라.
    계해(단기 2276, BCE 58)년 봄 정월에 이르러 고추모(고주몽)가 역시 천제의 아들로서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났다. 단군의 옛 법을 회복하고, 해모수를 태조로 받들어 제사 지내며 연호를 정하여 다물이라 하시니, 이분이 곧 고구려의 시조이시다.
    - 「삼성기 上」


    더 놀라운 점은 「단군세기檀君世紀」에 해모수가 태어난 고향 땅 이름이 ‘고구려’임을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본래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가 태어난 고향이 고구려이기 때문에 그 시조 할아버지를 공경한 주몽이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했다는 것입니다.

    高句麗(고구려)는 乃解慕漱之生鄕也(내해모수지생향야)라
    故(고)로 亦稱高句麗也(역칭고구려야)니라.
    고구려는 해모수께서 태어난 고향이므로 북부여를 또한 고구려라고도 불렀다. - 「단군세기」


    Q76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은 강단사학자들은 가야를 포함한 열국列國시대가 원삼국原三國이란 생소한 시대에서 나왔다고 가르치면서 단군조선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군조선에서 고구려/백제/신라/가야로 국통맥을 이어 주는 고리인 북부여가 열국列國의 뿌리였다니, 참으로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두막의 아들이자 북부여의 마지막 단군이었던 고무서의 사위가 된 고주몽이 고구려高句麗를 건국했습니다. 고주몽은 북부여 시조인 해모수의 5세손이므로, 혈통으로 보면 종통 적자입니다. 바로 그 고주몽과 소서노의 아들인 온조가 내려와서 지금 서울 땅에다가 백제百濟를 건국했습니다. 원래 백제의 시조이자, 사실은 최초의 여왕이라고 볼 수 있는 고주몽의 둘째 부인 소서노는 북부여 마지막 6세 단군의 따님입니다. 신라新羅도 북부여 5세 고두막 단군의 외손자가 건국을 했습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는, 『환단고기』에 나와 있듯이 북부여를 계승한 5세 고두막 단군의 따님인 파소의 아들입니다. 선도산에 가면 선도산의 성모, 박혁거세의 어머니를 모신 사당이 있습니다.

    이처럼 신라, 백제 혈통의 근원도 북부여와 직접 연관이 있고, 고구려도 북부여 마지막 단군을 계승한 정통 왕조입니다. 그래서 이 삼국이, 크게 보면 가야加耶(伽倻, 伽耶)까지도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한 형제이고, 직계로 보면 바로 북부여를 뿌리로 한 형제입니다. 즉 신라와 고구려, 백제가 모두 형제국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알 때 우리 사회, 역사 속에 누적된 갈등의 모든 어둠을 아주 말끔하게 씻어 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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