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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도수기]

    갈구해 오던 신앙임을 깊이 느끼며 외 (장영태, 김종우, 이애춘)

    갈구해 오던 신앙임을 깊이 느끼며


    장영태(남, 60) / 안산상록수도장 / 151년 음력 8월 입도

    대순진리회의 한계를 절감하고


    저는 1985년 육군 소위로 임관해 풍운의 꿈을 안고 직업군인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원대했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007년 소령으로 전역하였습니다. 자존심의 상처를 내려놓지 못한 채 절치부심하던 중 예비군 지휘관 임용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동년 7월에 임용돼 11년간 예비군 지휘관 생활을 하던 중 군 전역 직후부터 마음에 두었던 사업을 시작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자타가 인정하는 황금 보직을 마다한 채 정년을 3년여 앞둔 2018년 명예퇴직을 하고 현재 하고 있는 청소 및 소독업을 창업하여 현재까지 꾸려 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업이 그러하듯 그리 녹록지 않은 사업임을 절감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과 궁금증이 증폭하던 중 우연찮게 사무실 벽에 붙은 사주팔자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해 찾아간 곳이 제가 얼마 전까지 몸담았던 대순진리회 연락소였습니다. 조상에 대한 치성이 필요하다는 연락소 책임자의 권유에 따라 넉넉하지 않은 경제 사정에도 어렵게 치성금을 마련해 치성을 올려 드렸습니다. 다음 날부터 연락소를 찾아 주문을 암송하기 시작했고 연락소를 찾지 못하거나 여건이 안 되는 날에는 사무실이나 차량 안에서라도 시천주주와 태을주를 주송했습니다.

    환갑이 다 되도록 뚜렷한 종교 활동을 해 본 적이 없었던 저로서는 남은 생을 믿음을 갖고 정성껏 기도해서 사업에도 도움을 받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일심을 다해 신앙생활을 해 왔으나 상제님의 무극대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에 대순진리회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천지공사의 대의를 알고 충격을 받다


    과거에 출퇴근길을 오가며 건물에 걸린 증산도 간판을 보고 한 번 방문해서 상담을 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예비군 지휘관 재직 시 증산도 사무실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천지개벽』 책자를 전해 주셨던 인천구월도장 양승진 도생님께 전화를 드렸고, 양 도생님을 통해 안산상록수도장 박창 수호사님을 소개받고 증산도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박 수호사님으로부터 자상한 상담을 받으며, 저는 그동안 갈구하던 신앙임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입도를 결심했습니다. 2021년 8월 3일부터 수호사님 지도하에 21일간 입도를 위한 정성수행을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증산도 진리와 천하사 신앙을 바탕으로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도록 강의를 해 주셨던 수호사님의 8관법 교육을 마무리하고서 입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8관법 교육을 통해 민족의 뿌리와 조상의 뿌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우리 민족의 위대성을 깨우쳤고,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인간으로 오신 증산 상제님께서 선천 상극 세상을 마무리 지으시고 상생의 후천개벽 세상을 열어 놓으신 천지공사를 공부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높은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수호사님의 지도를 바탕으로 일심으로 수행하고 도전 공부도 열심히 해서 주변 지인들에게 후천개벽의 불가피성을 전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증산도에 입도할 수 있도록 하겠으며, 수행과 포교 그리고 진리 공부의 3박자를 갖춘 구도의 길을 걷겠습니다. ◎

    이것은 세계인이 공감할 진리


    김종우(남, 71세) / 청주흥덕도장 / 151년 음력 8월 입도

    책에서 기운 받는 아이


    저는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먼산바라기처럼. 산, 들을 바라보고 하늘, 해. 달, 별을 쳐다보며 자랐습니다. 그럴 때면 항상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고, 세상이 참 신비롭게 여겨지며 왜?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에는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고운 여전도사 손을 잡고 마을의 조그마한 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에서 성경 시험을 보았는데, 1등을 하여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동전 한 푼 들고 가서 사탕 얻어먹는 재미로 성경 구절과 찬송가를 소리 높여 불렀나 봅니다. 하나님이 밥과 반찬을 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5학년부터인가, 우리 집의 빈곤함이 피부로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땅 한 뼘 없이 아버지 박봉으로 삼시 세끼 때우기도 힘들었습니다. 6학년 때는 날마다 중학교 입시 모의고사를 보았고 학교 수업 끝나고 집에 늦게 들어와 밥 한술 먹고 책 보따리와 플래시를 들고 담임 선생님 하숙집에 가서 밤늦게까지 입시 공부를 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아! 세상 사는 것이 힘들구나’ 하고 느꼈는지, 같은 반 친구와 둘이 해인사로 출가해 도를 닦아 요술을 마음대로 부리는 도사가 되어 보자고 자주 만나 꿈을 나누었지만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외도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사는 것이 더 힘들어졌습니다. 학비는커녕 끼니도 잇기 힘들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살다가 1970년대에 직장을 잡고서야 겨우 굶주림과 나물밥을 면하게 되었지만, 당시 식량 자급자족과 새마을 사업 등 일방적인 상명 하달식 조직 문화로 인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법 테두리 안에서는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라고 하니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참 고충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우리 집안에는 일찍이 문학에 뜻을 두셨던 아버지 덕택으로 역사, 문학 등 각종 서적이 많았고, 학교 도서관에도 세계 위인, 명작집이 잘 갖추어져 있어,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였던 것이 오늘날 저의 인생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저를 보고 ‘책 읽는 데서 향기가 나고 책에서 기운을 받는 아이’라고 하셨습니다.

    과욕을 부린 단전호흡의 부작용


    1980년대에 소설 『단丹』이 출간되면서 단전호흡에 관련된 책들이 부지기수로 쏟아졌습니다. 나오는 책마다 사 보고 실제로 해 보았지만, 스승도 도반도 없이 혼자 마음만 앞섰지 잘되지 않았고, 끈기 있게 하지 못하였으며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이 개최되자 직장 일은 밤낮없이 바빠지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총동원 삼매였습니다. 새벽같이 출근하면 자정이 넘거나 밤샘을 하는 날도 있어, 피곤이 쌓이면서 과로한 몸이 되다 보니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이때 다시 단전호흡을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걸 한 번 느껴 보았지만, 욕심이 앞섰던 탓에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무리해서 상기上氣가 되어 가슴이 답답해지고, 혈압이 오르며 머리가 터질 것 같아 혼자 거리를 헤매다가 병원 응급실에 다녀와서야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거울을 보니 눈은 충혈되고, 얼굴은 하룻밤 새에 반쪽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증세는 직장에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피로가 쌓이는 오후가 되면 더 심해졌습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혈압이 오르고, 눈앞이 캄캄해져서 청심환을 입에 털어 넣고 병원을 쫓아다녔습니다.

    그 후부터 손가방 속에는 항상 청심환과 혈압강하제, 안정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사람 꼴이 말이 아니었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한 달 병가를 내고 수승화강하는 한약을 지어 먹으면서 산과 시내를 미친 듯 돌아다니며 나물도 뜯고 고기도 잡고 하면서 모든 걸 잊고 평온을 되찾고자 애썼습니다.

    단전호흡을 해서 무언가 좀 되는 듯하니 더 큰 욕심을 내고 오만해져서 자초하여 병이 된 것이었습니다. 스승의 올바른 지도 없이 이것저것 보고 과욕을 부린 것입니다.

    신선한 충격, ‘뭐, 이런 책이 다 있지?’


    한 달 뒤 직장에 복귀해서 일하다가 휴게실에 들렀는데 그곳에 있는 책장을 들여다보다가 『이것이 개벽이다』라는 책 한 권을 발견하였습니다. 평소 예언서 등 각 종교에서 많이 듣던 말이라 선뜻 손이 갔습니다. 밤새 읽어 보고서 ‘뭐, 이런 책이 다 있지?’ 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 서점에 달려가 『이것이 개벽이다』 나머지 한 권과 『증산도의 진리』, 『환단고기』를 사서 읽어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거기에는 신화로만 배웠던 우리 역사가 장쾌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유불선 종교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신도 세계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그전에 저는 ‘강증산’이란 분의 사진과 함께 조선 말의 예언가였다고 쓰인 어느 일간지를 본 적이 있어 그저 예언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증산도에서 나온 책을 읽고서 그분이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이시구나’ 하고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상제님을 신앙하고 도道를 배우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있는 경북 영주에는 증산도 도장이 없었습니다. 다만 대전에 증산도 본부가 있고 책 저자가 ‘안경전安耕田’이란 분임을 알았을 뿐입니다. 그 후 저는 다시 진리를 찾아 해인사의 장경각에서 중국 달마 스님 이래 혜능 스님과 큰 스님들의 전집 수십 권을 구입해 읽어 보았습니다. 1990년에는 영주불교대학(원)을 다니면서 각종 경전을 익히고 유명 법사와 스님들로부터 법문을 들으며 불경도 읽고 사경도 하고 화두도 틀어 보았지만 ‘깨달음’이란 것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깨달았다는 스님들은 왜 속세에 나오셔서 중생을 제도하지 않고 산사에 은둔하여 스스로 자득하고만 계실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와 우주 이법은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기도하고 “믿습니다.”만 외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역사와 수행, 우주까지 담은 진리이니


    퇴직한 후, 아내와 아들이 있는 청주에 와서 머물던 어느 날 불교방송을 시청하려고 채널을 돌리다 상생방송을 보았고 증산도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 증산도에도 방송국이 있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상생방송을 시청하면서 『월간개벽』도 신청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청주흥덕도장을 알게 되고 올 3월 14일 처음 도장을 방문했습니다. 그날부터 도장을 오가며 진리를 배웠으며 도장 분위기가 너무나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증산도에 마음이 끌리게 된 것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친근한 상제님과 하느님, 미륵부처님, 옥황상제님이 호칭만 다를 뿐 같은 분이시며 더불어 잘살자는 것, 우리 역사에 대한 민족사관이 뚜렷하다는 것, 주문수행과 기도만 하는 줄 알았는데 호흡 수련도 하고 우주 이법에 대한 공부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한민족만이 주류가 되고 한류가 원류라는 것만 내세워 민족종교에 그치고 세계종교로서는 자리 잡기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받아 보니 세계인 모두가 공감하고 신앙할 수 있는 진리여서 세계종교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진리 체화를 향한 힘찬 발걸음


    그동안 진리를 공부하고 수행과 치성에 참석하면서 신앙생활이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으며 머리와 가슴으로 진리가 조금씩 쌓이고 있습니다. 요즘은 지난날 경험을 토대로 호흡 수련도 조금씩 새로운 방법으로 하고 아침과 저녁 봉청수 때 제 잘못을 참회하며 조상님들 음덕과 상제님 은혜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진리 서적 탐독과 더불어 잠자는 시간 외에 주문을 계속 듣고 읽으며 천지와 같이 숨 쉬고, 천지와 같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면서 진리를 체화하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를 상제님 도문으로 이끌어 주신 조상 선령님들과 부모님께 보은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상제님 진리를 저희들에게 내려 주신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천금 같은 시간을 할애하여 상제님 대도 세계를 교육시켜 주신 청주중앙도장 이승계 수호사님, 여러 VOD를 통해 뵈었던 수호사님 감사합니다. 도장에서 따뜻하게 맞이해 주신 수석포감님, 여러 도생님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제가 상제님 도문에 입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드리며 나도 살고, 이웃도 살리는 데 성경신을 다하겠습니다.

    증산 상제님! 요즘 날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상제님을 그립니다. 소생은 이제 겨우 열두 살. 아직은 정이 그립고, 배움에 목이 마른 철부지 어린아이입니다. 이제야 상제님을 뵙게 되었으니, 상제님 어깨에 매달려 사무치게 울고 싶습니다. 보은. ◎

    하늘에 서원한 기도의 답을 찾다


    이애춘(여, 63세) / 인천주안도장 / 151년 음력 8월 입도

    사람 살려 내길 서원한 무속인의 삶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선족이고 이름은 이애춘입니다. 1994년 한국에 와서 식당을 하다 보니 자리에 누울 정도로 몸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많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내다 결국 무속 세계에서 무당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세계 역시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제 자신이 왠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보살님은 무당 같지 않아서 안 어울려요.” 하면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 부모님은 왜 나를 이렇게 낳았을까 하며 매일 신세타령과 팔자타령을 하였습니다. 몸도 약골이고 매일매일 병원에 의존해 살아가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좀 건강하게 낳아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무당으로서 삶을 살아야 하기에 매일매일 기도에 열중했습니다.

    오늘 하루 옥상에서 하늘을 보며 천신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옥황상제님께서 나타나 저를 내려다보시면서 ‘东为여 扁急’라고 글로 써서 보여 주었습니다. ‘동쪽에 여자를 얕보지 마라. 급한 일이 있다.’ 이런 뜻입니다. 진짜로 그 이후 좋지 않은 일로 제가 중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중국에서도 초하루나 명절 때면 옥황상제님께 향을 올리고 금종이로 돈을 접어서 옥황상제님께 바치곤 했습니다. 수없이 신기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다시 2019년에 한국으로 왔습니다. 뭘 좀 본다는 사람은 저를 보며 ‘도道줄’이 강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하며, 무당 팔자는 아니고 부처님 제자라 하였습니다. 안 그래도 무당일을 하기 싫던 차라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매일매일 부처님 앞에 절을 하면서 ‘이 세상에 정말로 미륵부처님이 오셨다면 죽는 인간 살려 내고 병든 자 치료하는 부처님의 일등 제자가 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매일 서원을 세우고 기도를 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가르치려고 왔다”


    하지만 현실은 맘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몸은 계속 아프고 돈은 버는 것보다 지출이 더 많았습니다. 또한 그 와중에도 누가 어렵다고 해서 돈을 빌려주고서 받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안 좋은 소리만 듣고 이러다 보니, 가족들도 모두 저를 원망하며 바보 같다고 하였습니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족에게 피해를 주고 저 역시 힘들고 좋은 소리 못 들어 가면서 참 바보가 틀림없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그 사람이 더 불쌍해 보이고 더 힘들어 보이고 내가 안 도와주면 그 사람은 어찌 살까 하는 생각으로 또 주고 또 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와주고 나면 신기하게도 스스로 행복해지고 힘이 나고 제 자신이 살아 있는 느낌이라 할까, 그 묘한 행복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린이를 돕는 여러 단체에 기부하고 있으니 더 이상 당할 것이 없어 더없이 행복합니다.

    기도는 정말 저의 천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기도를 하다 보면 신기한 일들이 많습니다. 하루는 기도 중 눈빛이 빤짝빤짝 빛나는 닭이 보였습니다. ‘웬 닭이지?‘ 하고 보니 발이 3개였습니다. 그래서 삼족오三足烏임을 알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삼족오를 하늘의 뜻을 땅에 전하는, 태양에 사는 새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니산 단군 성전 앞에서 기도하는데 또 삼족오가 나타났습니다. 두 번씩 이렇게 오는 것은 무슨 뜻이 있겠지 싶어 제가 물었습니다. “저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려고 이렇게 오셨습니까?”라고 했더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가르치려고.”라는 답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하늘을 보고 기도하라.”고 하여 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매일매일 집에서 창문을 열고 옥황상제님, 칠성님, 칠원성군, 천존대왕을 찾아 기도하면서 “저에게 사찰명을 내려 주십시오.” 했더니 법보사法寶寺라는 절 이름을 내려 주었습니다. 또 소원을 말씀드렸습니다. “사찰명은 받았는데 저의 법명을 내려 주십시오.” 했더니, “해와 달.”이라 하였습니다. 너무 감격해서 막 눈물이 나왔습니다. ‘정말 잘 살아야지,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바르게 살아야지‘ 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늘과의 언약을 지킬 그 진리를 만났으니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네가 하는 말과 행동이 하늘에 다 녹화된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순간 깜짝 놀라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두렵고 신경이 쓰였습니다. 하늘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신기한 생각을 하면서도 왜 나의 모든 일들이 이렇게도 풀리지 않는지 의문이었고 힘들기만 했습니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들어서 어느 때는 ‘어떻게 죽을까? 약을 먹고 잠을 자면 편하게 죽겠지?’ 같은 별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사람도 만나기 싫어지고 손님이 온다고 하면 집에 없다면서 피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때였습니다. 증산도에 다니는 양병록 도생님께서 저에게 증산도에 대한 기본 진리를 전해 줬습니다. 듣다 보니 도장에 가 봐야겠다는 욕구가 생겨났습니다. 도장에 방문하니 수호사님께서 친절하게 반기시며 증산도 진리와 우주 1년에 대해 상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주 가을에 죽어야만 되는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 미륵부처님께서 이 땅에 강세하셨고. 옥황상제님이 미륵부처님이시고 아버지 하느님이시고 상제님이신데, 바로 증산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신 미륵부처님이시며, 결국은 한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아! 이리저리 돌고 돌아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뻤습니다. 제가 하늘에 기도를 열심히 한 것도 다 뜻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증산도 진리 공부를 하고 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에 들어오고 우주 1년을 들을 때마다 삼족오가 저에게 와서 하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가르치려고 왔다.”고 하였는데 바로 그곳이 증산도가 아니겠습니까! 상제님의 참진리를 열심히 공부해서 많은 중생을 살려 내겠습니다. 매일 부처님 앞에 기도할 때의 약속인 ‘진짜 이 세상에 미륵부처님께서 오셨다면 1등 제자가 되어 많은 사람을 살리겠다’고 한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양병록 도생님 감사합니다. 수호사님, 수석포감님과 저를 가르쳐 주신 여러 포감님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느님 진리를 저같이 무지한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쉬운 언어로 전해 주신 종도사님께 사람 많이 살리는 것으로 보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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