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외(정경재, 최강호, 서정원)

[입도수기]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정경재(남, 62) / 부산광안도장 / 151년 음력 6월 입도

누님들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저는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형님이 셋, 누님이 셋이죠. 제가 막내이다 보니 형님, 누님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규제를 받아 왔습니다. 특히 누님들의 규제 중 종교에 관한 자기들만의 사랑의 표현은 40세부터 60세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어 왔습니다. 큰누님은 우리 상제님을 모시는 증산도이고, 둘째 누님은 천주교, 셋째 누님은 기독교입니다.

누님들의 사랑의 표현은 저뿐 아니라 형님들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큰누님의 포교 활동과 둘째, 셋째 누님의 선교 활동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큰누님은 스스로 느끼면 입도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신 반면, 둘째와 셋째 누님은 동생인 저에게 대하듯 오빠인 형님들에게도 무조건적인 맹신을 강요하는 것을 보고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어디에서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어’라고요.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제가 고향인 부산을 떠나 경기도에서 중장년 생활을 한 관계로 누님들의 사랑의 강요에서 다소 피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증산도 간판이 보여


그렇게 가족을 위해 생활하던 경기도에서의 직장을 퇴직한 후, 가족들과 상의 끝에 노후를 고향에서 지내기 위한 적응의 시간을 갖기 위해 혼자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60이 넘은 남자이고, 평생 혼자 생활을 해 보지 않은 저로서는 참으로 외로운 나날들이었고, 이를 견뎌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여기저기에 이력서를 넣어 보았지만 나이 때문에 취직은 잘되지 않았고 어쩌다가 오라는 곳은 너무 열악한 작업환경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거짓말 같다고 하겠지만 여태껏 살아오면서 증산도 도장 간판을 한 번도 본 적 없었는데 우연히 모처에서 증산도 도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증산도 도장을 보게 된 그날 마침 큰누님이 전화를 저에게 하셨습니다. 제가 이런저런 말씀을 드리니 큰누님께서 “이제 때가 된 것 같다.”고 하시며 저를 부산광안도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부산광안도장에서 정대업 수호사님과 배훈기 수호사님을 비롯해 여러 포감님들께서 증산도 진리를 너무나도 재미있고 쉽게 설명해 주시어 아둔한 제가 많은 진리적 깨우침을 얻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조금씩 알아 가고 있는 동생인 저를 대하며, 이제 팔순을 앞둔 큰누님께서 만족하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뵙노라면 참으로 잘한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정경재라는 후손의 정성으로 저의 조상 선령님들께서 안도하실 수 있도록, 더욱더 매진하는 증산도 도생이 되겠습니다. 보은. ◎

국통맥을 이은 참진리를 만나


최강호(남, 65) / 서울강남도장 / 151년 음력 7월 입도

마음이 불편했던 대순진리회


오래전 서울 사당역 사거리에서 ‘이것이 개벽이다’ 플래카드를 걸고 홍보 행사를 하는 것을 봤습니다. 무척 궁금했으나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속해서 홍보하는 것을 보고 궁금하여 물어본 뒤 거기서 증산도에 관한 짧은 대화를 나누고 개벽 책자를 선물로 받아 와서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뒤 궁금한 점이 많았으나 증산도에 관련된 것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며 어느 정도 해소를 하고, 부족한 부분은 기회가 오면 도장에 방문해 알아보기로 마음먹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과 대화 중 종교에 관련된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가족 모두가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몇 년 다니다 마음에 와닿지 않아 현재는 나만 혼자 무신론자라고 하니 대순진리회관을 방문해 보자고 했습니다.

조상과 역사, 명리학, 동양철학에 관련된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다 하여 방문하기로 하고 다음 날 안양에 있는 대순진리회관을 방문했습니다. 회관의 모습은 지금의 증산도 도장과 비슷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용도 전에 인터넷으로 증산도를 검색해서 알게 된 내용과 비슷했습니다.

방문 기간에 많은 대화를 했으며 여주 도장도 방문하자고 해서 가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될 시점이었는데, 당시 대순진리회는 사회적 이슈가 되어 언론 매체에서 뉴스로 연일 보도하던 시기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 마음이 더 불편할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전율과 감탄을 느낀 환단고기 북콘서트


어느 날 환단고기에 관련된 광고를 보았습니다. 저도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방송을 꼭 보리라 마음먹고 STB 상생방송을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종도사님께서 강의하신 우리 조상님의 위대하고 찬란한 역사 문화를 들으면서 온몸에 전율과 감탄을 느꼈습니다. 증산도에 방송국이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방송을 시청하면서 역사 강의와 도전 봉독 내용을 들으며 증산도 관련 내용도 조금씩 알아 갔습니다.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들으면서 증산도가 우리 정통 국통맥을 이은 참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때는 도장을 한번 방문해서 참진리를 제대로 공부해 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인연이 닿으면 자연스럽게 어떤 계기가 있을 거라 여기고 일상생활을 하던 중 몇 년 만에 우연히 이종명 부포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대한사랑 책자를 건네주길래 저도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한번 계기가 된다면 직접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해서 자연스럽게 서울강남도장을 방문했습니다.

강남도장 김남운 수호사님께서 도전을 읽어 주시며 현 시대 상황과 과거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것, 그리고 역사에 관한 다양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 이를 듣고서 편안함과 감사함을 느꼈으며 이제는 정말 제대로 진리 공부를 해 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돌고 돌아서 결국 늦게나마 참진리를 깨닫고 공부하게 이끌어 주신 이종명 부포감님과 정성껏 진리 교육을 해 주신 임치상 수석포감님께 감사 말씀을 드리며 더욱 열심히 수련할 것을 다짐합니다. ◎

참회와 감사 그리고 소원으로 이룬 신앙


서정원(여, 49) / 강진평동도장 / 151년 음력 7월 입도

성직자들의 이중성에 느낀 회의와 환멸


강진평동도장에 입도하게 된 강진문화원 사무국장 서정원이라 합니다. 강진문화원 사무국장이 본업이지만 틈틈이 광주 전남 지역에서 스피치 강사와 이미지 메이킹 강사도 하고 지역 축제나 행사에 나가 MC를 맡거나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어울림 밴드’라는 밴드를 결성해서 퇴근 후에는 매일 2시간 이상씩 보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 정화수를 모시고 기도하시는 할머니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살아오면서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깊어 그런지 기독교를 비롯해 불교, 천주교, 남묘호렌게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앙생활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종교도 제가 갈구하는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고 각종 부정부패와 성직자들의 이중성에 회의와 환멸을 느꼈고 또 제가 진실한 믿음이 없이 겉으로만 신앙하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 또 다른 종교를 찾아 옮겨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엔 ‘그저 신은 내 마음 안에 계시니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고 착하고 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된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최근까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지내 왔습니다.

“증산도를 깊이 오해하고 살아왔구나!”


그러던 작년 11월 어느 날. 이인희 대한사랑 강진지부장님께서 제가 근무하는 강진문화원에 ‘세계개천문화대축제’행사 전단지를 전해 주며 강진문화원 회원들에게 문자 홍보를 부탁하러 찾아오셨습니다.

왜곡되었던 우리 역사에 적지 않은 관심이 있었던 터라 지부장님의 홍보 요청에 기꺼이 응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저희 임원님 중 한 분이, 이인희 대한사랑 강진지부장님의 방문이 잦아지는 것을 보시고 그분이 ‘증산도인’이라며 너무 가까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지부장님의 방문이 달갑지 않고 꺼려졌지만 내색하지는 못하고 냉담히 대하는 무례를 범해야만 했습니다.

또 언젠가 “증산도는 사이비 종교야! 이단이래!”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던 저는 증산도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싫은 내색에도 불구하고 수호사님께서는 수차례 저를 찾아 주셨고 식사도 함께 하며 차도 마시고 저와 좀 더 친숙해지고 소통하며 저의 마음의 문을 열어나가 주셨습니다.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다 들어 주시고 인생 문제, 가정과 자녀 문제 등 적절한 조언을 해 주며 조상님과 하나님, 그리고 자연의 이치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내가 그동안 증산도를 정말 깊이 오해하고 살아왔구나!’라는 자성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남의 말만 듣고 증산도에 대해 깊이 오해한 제 자신이 너무도 창피하고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휴가 반납하고 한 달간 진리 공부를


그러던 중 올해 5월 말 강진에서 대한사랑 역사특강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함께 성공시켜 보자는 수호사님의 부탁을 받고 열심히 도우며 역사특강 MC도 맡게 되고 대한사랑 완도지부와 목포지부 특강에서 MC도 보았습니다. 목포도장과 강진도장이 함께한 장흥 동학농민혁명 기념탑에서 거행된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혼을 위로하고 화합시키는 위령제에도 참례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가정에서 남편의 일 문제로 소원을 비는 가정 치성을 수호사님께서 두 차례 올려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수호사님과 증산도 문화에 대해 더욱 친밀해지며 신뢰를 하게 되었습니다.

증산도를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에 휴가를 반납하고 그 대신 한 달 동안 매일 한 시간씩 일찍 퇴근하여 증산도 진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고민고민 끝에 증산도에 입도시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수호사님은 “혼자는 입도 안 시켜 준다. 남편(해남 예총 회장)이 30년 기독교 신앙을 하고 있는 기독교 집사인데 한 집에 종교가 둘이면 분란이 일어나고 신앙생활도 정착하기 힘들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요즘 남편도 역사에 대한 시각이 새로 열리고 증산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어 이번 기회에 함께 노력하여 기독교를 그만두게 하고 남편과 함께 공부하자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수호사님과 상의하여 한 가지 꾀를 냈고, 남편과 밤새워 대화를 나눈 끝에 남편은 기독교를 그만두기로 약속했습니다. 남편은 수호사님께 전화를 걸어 저의 증산도 입도에 동의하며 저의 입도를 허락해 주면 나중에 남편도 공부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참회록과 감사록이 가져다 준 것들


수호사님께서는 입도 공부를 시작하면서 매일 도장에 와서 공부와 수행을 하고, 입도식 전에 증산도 『도전道典』을 1회 완독할 것과 매일 잠자기 전에 그동안 살아오면서 지은 죄를 씻어 내지 않으면 『도전道典』의 상제님 말씀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 아니라 진실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워진 그릇에 하나님의 진리를 담을 수 없다며, 매일 도장에 와서 공부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동안 살아오면서 지은 죄를 참회하고 용서를 비는 [참회록]과 세상에서 받은 은혜를 무한히 감사하는 [감사록]을 매일 다섯 개씩 쓰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저러실까? 나보다 훨씬 더 나쁜 짓 하고 남에게 해 끼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하며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았었지만 참회록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참회록을 계속하여 쓰던 어느 날 저에게 지은 죄가 무엇이고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충격적인 선몽과 수행 체험들이 저로 하여금 그동안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르고 살아왔는지를 절감하게 해 주었습니다.

감동과 행복으로 충만한 마음


어느 날 실제 상황 같은 선몽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꼼짝 않고 앉아 한 시간 반 동안 펑펑 울며 참회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신경을 쓰고 있어서 그런 꿈을 꾸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상제님과 조상님께서 보여 주고 계신 깨우침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거듭되는 믿기지 않은 체험을 통해 진심으로 뉘우치지 못하고 있는 저를 꾸짖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라는 말을 저절로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지은 죄를 마음속 깊이 반성하고 참회하며 이런 마음을 갖게 해 주신 상제님과 조상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도전을 읽어도 믿기지 않아 건성으로 읽었는데 그 후로는 도전 읽기가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깊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참회를 한 다음 날 도전을 읽다가 잠이 들었는데요, 꿈에 갑자기 월경을 하는 것입니다. 선지같이 엉겨 있고 시커먼 핏덩어리들이 엄청 많이 쏟아졌습니다. 저는 ‘이게 무슨 일이지? 큰 병에 걸린 게 아닐까?’ 하고 깜짝 놀라며 꿈에서 깨었습니다. 깨고 난 후 꿈인 것을 실감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꾼 뒤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 상쾌함을 느꼈습니다. 제 몸 안에 있던 묵고 더러운 기운이 다 씻겨 나간 것 같았습니다. 그날부터 제 마음은 감동과 감사와 행복으로 충만했으며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환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다음 날 수호사님께 꿈 이야기를 해 드렸더니 제가 느낀 그대로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소원록으로 사람 많이 살릴 거예요


저는 오는 잠 이겨 내며 때로는 새벽까지 수호사님이 권하는 『생존의 비밀』, 『춘생추살』, 『도전』을 완독했습니다. 제 자신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기까지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제부터는 『증산도의 진리』 책을 완독하고 지금까지 쓰고 있는 [참회록], [감사록]에 덧붙여 가족과 인연 있는 자를 살려 내려는 소원을 적는 [소원록]을 매일 작성하라는 숙제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제 입도 공부를 마무리하고 입도식을 며칠 앞두고 있습니다. 49년 일생 동안 길 잃은 아이처럼 찾아 헤매었던 참신앙. 다른 종교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참진리와 참된 하나님. 간절히 원했던 신앙을 찾았다는 확신에 저는 요즘 너무나 행복합니다.

늘 곁에서 큰 감동과 교훈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몸소 보여 주고 계신 이인희 수호사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앞으로는 상제님 가르침을 일심으로 잘 닦아 천지일월 부모이신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과 부모 조상 하나님의 천지 홍은에 보은하고 가을 개벽기에 억조창생을 구원하며 증산도의 존재 목적에 부합하는 참되고 바른 큰 일꾼이 되겠습니다. 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