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로 배우는 우주변화의 원리 | 수행법의 원시반본 - 수행론修行論(3) -

[한문화]

인류는 도를 성취하여 자아실현과 불로장생을 이루기 위해 수행을 해 왔습니다. 수많은 성인과 철인들은 각자 자신만의 수행법을 체득하여 인류에게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수행법이 번잡하고 어려워져서 이를 실천하여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예로부터 전해져 왔던 다양한 수행법을 통해 좀 더 효과적인 수행법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자력 수행


전 세계적으로 명상, 참선, 요가, 단전호흡 등 수많은 수행법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대부분 수행을 건강관리의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중에 자아실현을 위해 수행을 본격적으로 하는 분들은 단전, 금단, 소주천, 대주천이라는 용어를 접하기 마련입니다. 이들 수행용어는 대체로 내단內丹 수행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단 수행에서 벗어나면 정도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내단 수행도 수많은 수행법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하단전에 정을 축장하는 내단 수행은 모든 수행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다른 수행법보다 원리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의 대표 격으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내단 수행


『혜명경』에서는 내단 수행을 통해 성취하는 도통을 누진통漏盡通이라고 합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번뇌와 망상이 완전히 끊어지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신통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라한이나 불보살만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로 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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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통은 신족통神足通,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命通, 누진통漏盡通이 있다.


그런데 내단 수행을 통해 율려를 회복하여 선체仙體를 이루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단전의 토대를 구축하는 백일축기, 도태를 기르는 삼년유포와 선체를 완성하는 구년면벽에 이르기까지, 이를 실천하기 위해선 일체의 생활을 포기하고 수행에만 전념하더라도 13년은 족히 걸립니다. 그래서 『용호비결』에서는 ‘정성이 부족하여 천 명, 만 명이 배워도 끝내는 한두 사람의 성공자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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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규지』에서는 ‘여러 선인을 기록해 둔 계보나 전기를 뒤져 찾아보면 예로부터 이제까지 선인이 된 사람이 십만 명이 넘고 집째 날아간 곳이 팔천 곳이 넘는다’고 하면서 신선을 배울 곳이 없음을 탓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생각해 보면 역사가 기록된 이래, 지구상에 태어난 수백억의 사람 중에 겨우 십만 명 남짓한 사람만이 신선이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첫째 백일축기百日築基란 쇳가루를 긁어모아 녹이는 일과 같아서 연정煉精할 만큼 정만기족精滿氣足한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둘째 그 이후에 다시 백일연정百日煉精으로써 진종자를 이루고, 셋째 이는 백일연기百日煉氣로서 삼성내단三成內丹을 이루니 이것이 통상 삼백 날이 된다. 이렇게 하여 각기 백 일씩의 과정을 마치면 다시 삼백 일의 수련, 즉 열 달 도태道胎를 지켜야 하며, 열 달 도태 후에는 또다시 삼을 곱하니, 즉 삼년유포三年乳哺를 하여 양신陽神을 성장시키며, 그 이후에 또다시 세 배를 하니 구년면벽九年面壁 수도로써 천선天仙을 이룬다. - 『금단의 길』


그렇다면 선천 봄여름 시간대에는 왜 도를 성취하기가 그토록 어려웠던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인간이 율려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섭취하여 생성된 혼탁한 기혈에서 인간정신을 생성한 후에 이를 맑히고 통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지금까지 살펴본 내단 수행입니다.

둘째, 소우주인 인간은 율려 생성에 제약을 받고 있어서 1년 동안 생성하는 율려수가 대우주보다 적습니다.

셋째, 선천은 지축이 동북방으로 기울어져서 양陽의 분열 기운이 강합니다. 특히 지금은 우주의 여름철 말이어서 화火 기운이 가장 극성한 때입니다. 이에 반해 수행은 의식을 집중하여 정기신精氣神을 통일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을 통해 도를 성취하는 일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지닌 바의 토화작용, 즉 정신의 본체가 인간의 형체라는 협소한 악조건을 받았고, 게다가 인간적인 정욕 때문에 화중주유격火中注油格인 화禍를 가하고 있으므로 천운天運에 의해서 율려수律呂數를 제한당하고 있는 것이다. - 『우주변화의 원리』 352쪽


지금 이때는 천지가 성공하는 가을개벽기입니다. 따라서 우주의 가을철에 맞는 새로운 수행법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본고에서 새로운 수행법을 제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뿌리를 찾아 근본으로 돌아가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가을개벽기를 맞아 내단 수행 외의 다양한 수행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물론 조식調息을 통한 내단 수행을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호흡을 고르게 하여 하단전에 정기를 축장하는 것은 모든 수행의 기본이자 근본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초학자의 수행법


수행의 3요체는 감정을 절제하는 지감止感, 호흡을 천지의 중도에 맞춰 고르게 하는 조식調息, 촉감을 금하고 자극을 억제하는 금촉禁觸입니다. 그중에서 조식調息은 내단 수행의 관건입니다. 조식은 호흡을 고르고 가늘며 미세하고 끊어지지 않게 하면서 차차 호흡의 길이가 길어지게 해야 합니다.

단전까지 처음 길이 열리는 들숨 10초-날숨 10초의 수준에서는 이 하단전의 자취를 본 것에 불과합니다. 폐기閉氣 공부가 점차 깊어져서 소주천이 완성되는 들숨 30초-날숨 30초 정도가 되어야 하단전 자리가 명확해지며, 들숨 1분-날숨 1분이 넉넉해야만 하단전에 잠복해 있는 원기元氣가 온전히 복원됩니다. - 『윤홍식의 용호비결 강의』


조식법調息法을 행할 때는 대부분 호흡의 길이를 늘이기 위해 호흡수를 헤아리는 수식법數息法을 함께 합니다. 그러나 조식법이건 수식법이건 수행을 처음 시작하는 초학자가 하기엔 다소 어려운 수행법입니다. 자칫 수행을 잘못하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초학자들은 숨 쉬는 상태가 안 좋고 폐활량도 적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조식법부터 한다면 폐활량이 더욱 위축되고 숨 쉬는 상태가 약해지게 됩니다.

그럼 초학자는 어떤 수행을 하면 좋을까요? 『장자』와 『동의보감』에서는 가장 초보적인 양생법으로 토납법吐納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토납법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서 호흡이 자리가 잡힌 후에 조식법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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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에서는 800년을 살았다는 팽조가 이 수행법을 좋아하였고, 『회남자』에서는 진한 시대의 신선인 왕교와 적송자가 이 수련을 하였다고 한다. 천태종을 연 천태지의대사도 『마하지관』에서 토납법을 통한 질병 치료를 설하고 있다. 따라서 토납법을 초급 단계의 수행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토납법과 가장 부합하는 수행법은 주문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토납은 토고납신吐故納新의 준말로 ‘낡은 기운을 내보내고 신선한 새 기운을 들이마신다’는 뜻입니다. 토납법을 하는 이유는 코로 들이쉰 진기眞氣를 그대로 날숨으로 내보내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탁기濁氣를 뱉어 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토납 호흡을 하면 심신의 병독과 탁기는 몰아내고 천지의 맑은 기운은 들이쉬어서 장부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오염된 환경에 노출된 현대인들은 먼저 노폐물을 배출하여 심신을 청결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토납법은 현대 의학에서 ‘독성배출 호흡법’으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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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後漢의 안세고가 번역한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에서는 안반安般(호흡)을 헤아리고 집중하는 석가불의 수행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안반이라는 호흡법이 토납법과 유사하다고 한다.


凡吐者(범토자) 出故氣(출고기) 亦名死氣(역명사기) 納者(납자) 取新氣(취신기) 亦名生氣(역명생기) 以口吐鼻取(이구토비취) 能去病延壽(능거병연수)
내쉬는 숨은 오래 묵은 기를 내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기死氣라고 하며, 들이마시는 숨은 새로운 기를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생기生氣라고 한다. … 입으로는 소리를 내며 숨을 내쉬고 코로는 숨을 들이마시면 병을 없애고 오래 살 수 있다. - 『동의보감』 「내경편」


토납법은 한마디로 아랫배로 깊은 숨쉬기(심호흡)입니다.

토납을 할 때는 첫째, 호흡呼吸이란 말처럼 날숨부터 시작합니다. 허파에 있는 탁기를 모두 뱉어 낸 다음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둘째, 숨을 내쉴 때는 상체를 약간 숙이면서 배꼽 밑의 아랫배를 최대한 움츠리고 들이쉴 때는 상체를 펴면서 아랫배를 의식적으로 팽창시킵니다.

셋째, 숨을 내쉴 때는 혀끝을 아랫니의 뒤편에 대고 들이쉴 때는 혀끝을 윗니 천장에 댑니다. 넷째, 숨을 내쉴 때는 길게 소리를 토하며 의식을 밑으로 내려보내고 숨을 들이쉴 때는 하단전에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서 기운이 이르도록 합니다.

상근기의 수행법


- 불가의 돈오점수
불가에서는 도에 들어가는 문이 많은 것 같지만 요약하면 두 가지 문이 있다고 합니다. 단박에 깨닫는 돈오頓悟와 점진적으로 닦아 가는 점수漸修가 그것입니다. 돈오는 진아眞我로 거듭나 인과를 초월한 절대계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단박에 깨칠 수 있어도 삶을 살면서 물든 그릇된 습관은 단박에 제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업善業을 쌓고 그릇된 습관을 차차로 없애야 현상계에서 자유자재해질 수 있게 됩니다. 비록 단박에 깨닫고 단박에 닦는 돈오돈수頓悟頓修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전생에 무수한 생을 통해 점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則從上諸聖(즉종상제성) 莫不先悟後修(막불선오후수) 因修乃證(인수내증)
예전의 모든 성인들께서는 먼저 깨닫고 뒤에 닦으셨으며 그 닦은 바에 따라 경지를 증득하셨다. - 『수심결』


- 선가의 돈오점수
그런데 선가에서 말하는 돈오점수는 불가와 차이가 있습니다. 선가에서는 수행의 단계를 돈오와 점수로 나눕니다. 대주천이 완성되어 금단이 완성되기까지의 단계를 점수漸修, 도태가 형성된 이후의 단계를 돈오頓悟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조식을 통해 태식胎息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단계까지가 점수라면, 태식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단계부터는 돈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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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調息은 의식을 단전에 집중하고 호흡을 고르게 하는 유위有爲의 호흡입니다. 이에 비해 태식胎息은 단전이 스스로 숨을 쉬는 무위無爲의 호흡입니다. 돈오의 과정부터는 수행자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점수의 과정에서 수행자가 얼마나 정신 집중을 하고 정성을 많이 들여서 금단金丹을 이루는가가 수행의 성공을 이루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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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직론내련금단심법』에서는 연정화기까지를 소승小乘, 그 이후를 대승大乘으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의 몸 수련은 점漸에 해당하고, 우리의 마음 수련은 돈頓에 해당합니다. … 선가에서는 대주천이 완성되는 연정화기煉精化氣까지를 점법漸法, 연기화신煉氣化神과 연신환허煉神還虛의 단계를 돈법頓法이라고 구분하고 있습니다. - 『황제음부경주서』, 허천우 역


- 상단전 수행법
내단 수행은 하단전에 정精을 축장한 후에 소주천과 대주천을 통해 중단전의 기氣와 상단전의 신神을 순차적으로 개통하는 방식입니다. 『혜명경』에서 누진통漏盡通이라고 하는 수행법으로 돈오점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근기上根器가 하는 수행법은 이와 반대로 상단전의 신神을 먼저 밝힌 후에 이를 바탕으로 중단전의 기氣와 하단전의 정精을 개통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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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물을 머리 위에 붓는 불교(밀교)의 관정灌頂 의식이나 기독교의 세례洗禮 의식은 상단전 개규開竅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夫虛無之學(부허무지학) 虛化神(허화신) 神化氣(신화기) 氣化精(기화정)
一了萬了(일료만료) 何事於修而上根(하사어수이상근) 利器世不易逢(이기세불역봉)
惟以精留氣(유이정유기) 以氣留神(이기유신) 神存則生(신존즉생) 不存則死(부존즉사)
무릇 허무지학이란 허화신虛化神하고 신화기神化氣하며 기화정氣化精하여 한 가지 이치로써 온갖 법을 꿰뚫어 마치게 되는 것이니, 이는 어떠한 일로도 닦음이 가능한 것이나 오직 상근기上根器라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근기는 세상에서 쉽게 만날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은 오직 정精을 지켜 기氣를 머무르게 하고, 기氣를 지켜 신神을 머무르게 할 것이니, 신神을 보존한즉 살 것이고 보존하지 못한즉 죽게 된다. - 『천선직론내련금단심법』


나무는 뿌리에서 흡수한 기운이 줄기와 가지, 잎으로 뻗어 나가면서 생명 활동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나무의 뿌리와 같이 생명 기운을 공급하는 곳이 머리 부분입니다. 통천문通天門인 백회百會를 통해 흡입된 우주의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단전부터 여는 수행법에 비해 상단전부터 여는 수행법이 자연 섭리에 더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단전을 여는 수행법을 설명한 수행서가 『태을금화종지』입니다. 『혜명경』이 ‘하단전 → 중단전 → 상단전’을 순차적으로 개통해 나가는 방법을 설명한 데 반해, 『태을금화종지』는 빛을 안으로 돌려 모으는 회광반조回光返照를 통해 상단전을 먼저 여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尙有訣中捷訣(상유결중첩결) 惟用梵天伊字(유용범천이자) 卽日月天罡(즉일월천강)
在人身卽是左目(재인신즉시좌목) 右目(우목) 與眉心(여미심)
眉心卽天目(미심즉천목) 乃爲三光會歸出入之總戶(내위삼광회귀출입지총호)
비결 중에 긴요한 비결이 있는 것이니 … 오직 세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즉 이는 해와 달과 천강성인데 사람의 몸에서는 왼쪽 눈과 오른쪽 눈과 두 눈썹 사이의 미심이다. … 미심眉心은 곧 천목天目이며 삼광三光(세 개의 눈빛)이 모이고 출입하는 총체적 문호이다. - 『태을금화종지』


상근기는 깨달음을 성취할 품성과 능력이 가장 우수한 사람입니다. 상근기가 하는 구체적인 수행법은 달마대사가 치우蚩尤 동굴에서 혜가에게 전한 관천법貫天法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수행법은 송과체의 천목天目(영안靈眼)을 선천지기(율려)로 열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에 관한 내용의 전문을 실어 상근기의 수행법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달마의 이른바 ‘하나’의 가르침은 현관일규玄關一竅를 여는 것으로 비롯된다. 현관玄關이란 지현지묘지관문至玄至妙之關門의 준말이다. 지극히 오묘한 기운이 출입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사는 집의 경우 현관을 통하지 않고는 출입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몸에도 현관이 있어 오묘한 기의 출입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전통선도에서는 현관일규의 위치를 두 눈썹 사이의 한가운데라고 풀이한다. 현관일규는 선천의 기를 받아서 견성하는 통로이다. 옛 선인이 이르기를 “상단전을 닦으면 성인聖人이고, 중단전을 닦으면 현인賢人이며, 하단전을 닦는 이는 범인凡人”이라고 했다.

달마가 비전으로 가르친 수련법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이른바 현관玄關에 선천의 기를 관통시키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선천의 기로 주천周天을 이루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주천의 시발점부터 특이하다. 먼저 현관에 선천의 기를 느끼면 이 느낌이 강하게 오래 지속되도록 상단전에 집중을 한다. 그렇게 하면 증폭된 선천의 기가 자연히 현관에서 얼굴과 목을 거쳐 중단전과 하단전으로 내려간다. 이때 의식을 중단전과 하단전에 차례로 옮겨 가면서 기의 흐름을 이끄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해서 기가 하단전에 모이면 절로 등줄기를 따라 상승함으로써 다시 현관으로 회귀한다. 현관에서 현관으로 주천하는 방법이 바로 달마가 가르친 비법이다. - 『단전호흡과 정신문화』, 이규행


이때 기운을 단전에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눈을 활용합니다. 눈을 따라 기운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눈을 상단전에 집중하고 오래 보면[구시久視] 신神이 장생長生합니다. 중단전에 집중하고 오래 보면 기氣가 장생하고, 하단전에 집중하고 오래 보면 정精이 장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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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수행법 중 하나가 ‘장생구시長生久示(오래 살기를 바라면 먼저 오래 보기부터 하라)’이다. 구시久示는 초점을 맞추지 않고 봄으로써 보아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에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상단전으로 직접 받아들인 기운은 선천지기先天之氣(율려)인데 반해, 내단 수행의 초기에 하단전에 모인 기는 후천지기後天之氣(외양화外陽火)입니다. 선천지기는 수화水火가 합일하여 맑고 시원한 청량감淸涼感을 수반합니다. 이에 비해 후천지기는 몸 안의 인간정신과 호흡의 기운이 어우러진 것으로 열감熱感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천周天을 할 때는 먼저 후천지기를 정제하여 선천지기(소약·대약)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만약 약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후천지기의 뜨거운 열을 직접 상단전으로 올리게 되면 주화입마走火入魔가 되어 상기병上氣病에 걸릴 수 있습니다.

타력 수행


정력통과 감화통


지금까지 알아본 내단 수행은 모두 수행자의 정성과 노력으로 도를 성취하는 수행법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근기根機를 바탕으로 도를 이루는 수행법을 정력통精力通, 또는 자력수행自力修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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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홀로 수행하여 깨달은 자나 홀로 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를 독각승獨覺乘, 또는 연각緣覺, 벽지불闢支佛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상호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영적 성숙을 이루어 가는 존재입니다. 대표적인 관계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입니다. 더 나아가 신성과 불타, 보살들도 중생을 계도啓導하여 대승大乘의 보살도菩薩道를 이루고자 합니다. ‘인류가 해혹복본解惑復本할 수 있도록 황궁씨黃穹氏가 돌이 되어 조음調音을 울리고 있다’는 『부도지』의 기록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성통공완性通功完을 함께 이룰 인연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참종자를 간택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신誠敬信입니다. 상근기의 자질을 갖추고 성경신이 지극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가 도를 성취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천지신명이 참종자에게 대우주의 무궁한 진기眞氣를 내려 주어 도업道業을 이룰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승과 신성·불보살의 공력으로 도를 성취하는 것을 감화통感化通, 또는 타력수행他力修行이라고 합니다. 당팔선唐八仙 중의 한 분인 여동빈 선사의 일화는 감화통의 실재를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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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사건’도 감화통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일은 여동빈(呂洞賓)의 일과 같으니 동빈이 사람들 중에서 인연 있는 자를 가려 장생술(長生術)을 전하려고 빗 장수로 변장하여 거리에서 외치기를 ‘이 빗으로 빗으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고, 굽은 허리가 펴지고, 쇠한 기력이 왕성하여지고 늙은 얼굴이 다시 젊어져 불로장생하나니 이 빗 값이 천 냥이오.’ 하며 오랫동안 외쳐도 듣는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허탄하게 생각하여 믿지 아니하더라. 이에 동빈이 그중 한 노파에게 시험하니 과연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는지라. 그제야 모든 사람이 다투어 사려고 모여드니 동빈이 그 때에 오색구름을 타고 홀연히 승천하였느니라. 간 뒤에 탄식한들 무슨 소용 있겠느냐! (도전 7:84:3~10)


그런데 도를 성취하기를 바라는 존재는 천지의 성신만이 아닙니다. 수행자의 진아眞我인 원신元神도 도를 성취하여 열매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행 공부를 할 때는 원시의 신성·불보살과 더불어 자신의 원신을 염념불망念念不忘 존사存思하면서 모든 장애를 없애고 도업을 성취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연정화기의 단계에서 점수漸修하고 있는 수행자를 감화로 이끌어 주어 단박에 돈오頓悟에 다다를 수 있게 해 줍니다.

내관 수행


원시의 신성·불보살 등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는 수행은 다분히 종교적인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런 수행법이 현재 널리 행해지고 있는 내단 수행이나 간화선보다 더 오래된 수행법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육신통 중에서 숙명통과 누진통은 불교나 인도의 독특한 것으로 동북아시아에서는 원래 없던 사고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즉 몸 안의 기 순환에 주목하여 호흡법의 훈련을 중시하는 내단 수행은 불교가 중국에서 유행한 수당隋唐 시대(7세기 이후)에 이르러 발달하였다고 합니다. 이전까지는 종교적 수행법인 존사存思(존신尊神)가 더 많이 행해졌습니다.

명상법의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진 것은 진晋나라 갈홍葛洪(283~363)이 쓴 『포박자』로부터이다. 이 시대의 명상법은 존사存思나 내관內觀 등으로 불려지고 있다. - 『몸과 우주』, 유아사 야스오 지음


내관존사법內觀存思法은 우주와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천인감응天人感應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소우주인 신전神殿으로 보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천계의 신들이 우리 몸 안에도 동시에 거주한다고 합니다. 이들을 ‘몸 안의 신’이라 하여 체내신體內神이라고 합니다. 체내신들은 본래 천상의 존재로서 고유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자, 도의 원기元氣가 신의 형태로 변형된 존재입니다. 원기는 우주를 가득 채울 뿐 아니라 각 사람의 신체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 몸 안에 있는 체내신들을 마음으로 보고 보존하면 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참된 기운을 키워서 도의 원기元氣로 전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체의 백맥百脈과 관규關竅에 각각 그것을 지키는 신이 있다. - 『삼십구장경』


체내신 신앙은 니환泥丸(뇌)의 구진九眞과 오장육부의 체내신 존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관존사법에서는 삼단전과 오장육부에 거주하는 체내신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집중합니다. 즉 신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머무는 체내신을 실제로 구체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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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체내신을 그림으로 그린 색채화상色彩畫像을 걸어 두고 관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체내신 관념은 인도의 요가 명상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쿤다리니Kundalini 요가 경전에서는 차크라Chakra에 체내신이 거주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내관존사법은 고대에 신을 직접 체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수행법으로 추정됩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신을 존사하면 실제 그 신이 응한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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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박자』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쓰인 『황정경』에는 존사법이 자세히 실려 있다. 도교가 성립한 후에 존사법은 도교 상청파上淸派의 전형적인 수련법이 되었다. 『동의보감』에도 『황정경』의 존사법이 소개되어 있다.


성현의 신이 응기하면 어진 마음이 일어나고 영웅의 신이 응기하면 패기(覇氣)가 일어나고 장사(壯士)의 신이 응기하면 큰 힘이 생겨나고 … 마음이란 귀신이 왕래하는 길이니 마음속에 성현을 생각하면 성현의 신이 와서 응하고 마음속에 영웅을 생각하고 있으면 영웅의 신이 와서 응하며 마음속에 장사를 생각하고 있으면 장사의 신이 와서 응하느니라. (도전 4:89:2~10)


그런데 『포박자』에서는 ‘체내신을 내관하는 방법이 많지만 수일守一을 알면 중요한 것은 끝난다’고 합니다. 수일守一에서 일一은 도道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수일법守一法은 도와 일체화되는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포박자』에서는 일一을 인격신의 이미지를 가진 체내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북극성에 사는 태일신太一神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수일법은 북극성의 태일신이 내 몸의 단전에도 거주하고 있다고 여기며 단전에 정신을 집중하는 수행법입니다. 즉 북극성의 태일신과 상단전의 태일신을 마음으로 결부시키며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내관존사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一을 보존하고자 하는 수일守一 사상은 도교의 영적 체험과 모든 수행의 기본이 되며 도교 명상의 핵심을 종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상청파의 수일사상」, 최현민


양신養神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먼저 내관內觀으로 신들과 관계를 맺는 것, 그것으로 신들을 몸 안에 머물게 하려는 것에 있다. … ‘지켜서 머물게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몸 안에 거주하는 모든 신들 가운데서도 특히 그 우두머리인 태일신太一神에 해당하는 말이다. - 『도교-불사의 연구』, 마스페로 지음


칭명염불


타력신앙의 전통은 불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성과 불보살의 명호名號(불호佛號)를 부르면서 가피력加被力을 기원하는 칭명염불稱名念佛이 그것입니다. 칭명염불은 원래 일심으로 부처님의 상호相好와 공덕을 관하고 생각하는 관상觀想 수행법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중국 정토교를 조직화한 담란曇鸞(476~642)에 의해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칭명염불로 발전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그림으로 그려서 모시고 생각하며 관觀한다는 것에서 칭명염불의 원형이 내관존사법과 같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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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정토종淨土宗은 사바세계인 예토穢土가 아닌 정토에서 왕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토에는 미륵불의 정토, 아미타불의 정토, 약사여래의 정토 등이 있다. 초기 중국불교는 미륵신앙이 왕성하여 미륵불이 계시는 도솔천에 왕생하기를 발원하였다. 그러나 정토교의 개조開祖인 혜원慧遠(334~417)에 의해 아미타불 신앙으로 옮겨 가면서 아미타불의 정토인 서방 극락세계에서 왕생하기를 기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담란의 사상을 계승한 도작道綽(562~645)이 칭명염불을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맞는 수행법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말법시대는 석가불의 정법正法이 절멸하고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의 도법이 출현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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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선천 봄여름 시대가 끝나고 후천 가을이 열리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입니다. 그러므로 도작의 말을 빌리면 칭명염불이 우주 여름철 말의 말법 시간대에 살고 있는 현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
불교 문헌에 따르면 불교의 가르침은 정법正法·상법像法·말법末法의 3단계를 거쳐 사라진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이래 염불 수행이 널리 유포되었습니다. 염불 수행이 보편화된 데에는 신라의 원효대사가 지대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복잡한 교학敎學보다 일반 민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염불 수행법을 전파하여 극락왕생의 소원을 이루도록 한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선정과 염불을 조화시킨 염불선念佛禪이라는 이름으로 염불 수행이 널리 행해지고 있습니다.

염불은 참선처럼 까다로운 위의威儀나 조용한 환경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근기根機의 차별 없이 아무 데서나 손쉽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을 통한 자력수행만으로는 금생에 성불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염불수행을 채택하기 때문에 많은 수행자들을 점유하고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주문수행


원효대사는 민중들에게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읽게 하였습니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 부처님의 명호입니다. 그리고 나무는 ‘부처님께 귀의歸依한다’는 뜻입니다. 나모namo의 음사어로 ‘예배, 절, 인사’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나마스namas의 변형어입니다. 이를 엄밀히 구분하면 아미타불은 칭명염불이며, 나무는 ‘소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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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도문을 만트라mantra, 즉 주문呪文이라고 합니다. 만트라는 ‘사념한다’는 뜻의 만man과 ‘그릇’의 뜻을 지닌 트라tra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트라에는 ‘신의 덕을 사념하고 표현하기 위한 그릇’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신성한 진리의 말’이라는 뜻으로 진언眞言이라고 합니다.
*13)
이는 의미상의 구분일 뿐, 실제로는 칭명염불과 만트라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夫密者(부밀자) 咒之敎也(주지교야) 非其所以敎也(비기소이교야)
무릇 비밀한 것은 주문으로 가르치는 것이며 일반적인 가르침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천선직론내련금단심법』


나무南無가 산스크리트어Sanskrit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트라는 대부분 산스크리트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는 고대 천축국天竺國의 문자와 언어로 ‘완성된 언어, 순수한 언어’라는 뜻입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산스크리트어를 범어梵語라고 부릅니다. 범어란 범梵, 즉 브라만Brahman(범천梵天)의 언어로, ‘브라만 신이 만든 신성한 문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브라마 수트라』에서는 ‘우주의 일체 만물이 모두 브라만으로부터 나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삼신은 조화로 만물을 빚어내신다’(三神 有引出萬物)는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산스크리트어를 기반으로 하는 만트라는 우주의 조물주이신 삼신三神의 언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만트라를 반복해서 소리 내어 노래하는 주문수행이 산스크리트어만큼 오래된 고대의 수행법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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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브라만은 힌두교에서 삼주신三主神 중 한 분으로 여겨지고 있다. 브라만Brahman은 창조자로, 비슈누Viṣṇu는 유지자로, 그리고 쉬바Śiva는 파괴의 신으로 신봉된다. 삼주신은 불교에 수용되어 브라만은 범천梵天, 비슈누는 비로자나毘盧遮羅, 쉬바는 대자재천大自在天으로 신앙되고 있다.


브라만brahman(범梵)은 ‘브라흐마나’ 시대에 이르러 우주를 창조하고 일체를 지배하는 근본 원동력으로 일컬어져 세계의 근원적 창조 원리로 여겨졌다. … 힌두교에서 일체 만물을 창조·지배하는 우주의 최고신으로 숭배된다. - 『두산백과』


진언眞言은 7세기 들어 밀교密敎에 의해 동아시아에 본격적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밀교는 ‘붓다의 비밀한 깨달음의 세계를 드러낸 불교’라는 뜻입니다. 입으로는 진언을 암송하고, 손으로는 다양한 수인手印을 짓고, 마음으로는 대일여래大日如來(비로자나 법신불)를 비롯한 불보살들의 도상을 염상하는 신구의身口意 삼밀수행三密修行을 행하여 현생에서 성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밀교는 신라 말기부터 선종禪宗 및 정토종과 서로 깊은 관계를 맺으며 융섭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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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불교계에서 가장 많이 외우는 진언(주문) 가운데 하나가 ‘옴마니반메훔唵麽抳鉢銘吽’이라는 육자대명주六字大明呪이다. 이 주문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성과 불보살을 부르는 칭명과 기도문인 만트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앞서 칭명은 천계에 실존하는 불보살의 가피력加被力을 받기 위해 그분들의 명호를 부르면서 억념億念하는 수행법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미타불이 서방정토를 다스리는 것처럼, 불보살들은 천계에서 각자의 정토를 다스리며 그에 맞는 기운을 주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기氣(에너지)는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기운과 일치하는 파동을 일으켜 공명시키면 직접 생명의 에너지를 받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때 사용하는 신성한 소리가 주문(만트라)입니다.

주문은 우주 생명의 근원에서 울려오는 신神의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주문을 소리 내어 꾸준히 읽으면 그 소리에 감응하여 대우주의 생명력이 내 몸과 마음과 영靈 속으로 흘러들어 옵니다. 즉 주문을 읽으면 천계에서 정토를 주재하고 계신 신성과 불보살이 신성한 기운을 내려 주어 생명의 근원 자리와 하나가 될 수 있게 해 줍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도 주문을 읽으면 신이 응한다고 하셨습니다.

呪誦(주송)은 神之路也(신지로야)요 符(부)는 神之宅也(신지택야)라
주송을 해야 신이 내 마음에 출입을 하며 부는 신명의 집이니라. (도전 8:102:1~2)


앞서 내단존사법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북극성의 태일신太一神을 수일守一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증산 상제님께서는 태일신이 율려천을 주재하시는 ‘태을천 상원군’이라고 밝혀 주셨습니다. 율려律呂는 수행자들이 도업을 성취하기 위해 천지에서 받아 내리고자 한 선천지기先天之氣입니다. 따라서 태을천 상원군님에게 율려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칭명염불 만트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주문이 바로 상제님께서 내려 주신 ‘인류구원의 법방, 태을주太乙呪’입니다.

태을천(太乙天) 상원군(上元君)은 하늘 으뜸가는 임금이니 오만년 동안 동리동리 각 학교에서 외우리라. (도전 7:75:2)

태을주(太乙呪)

吽哆(훔치) 吽哆(훔치) 太乙天(태을천) 上元君(상원군) 吽哩哆㖿都來(훔리치야도래) 吽哩喊哩娑婆訶(훔리함리사파하) (도전 7:72:7)


천제와 수행


내관존사법은 신을 사념하고 직접 봄으로써 신과 합일하는 종교적인 수행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내관존사법과 같은 종교적 수행법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요? 이에 관한 단서를 『환단고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昔有桓仁(석유환인) 降居天山(강거천산) 主祭天神(주제천신)
옛날에 환인이 계셨다. 천산에 내려와 거처하시며 천신께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셨다. - 『태백일사』 「환국본기」

[#擇三七日(택삼칠일) 祭天神(제천신) 忌愼外物(기신외물) 閉門自修(폐문자수) 呪願有功(주원유공)
삼칠일(21일)을 택하여 상제님께 제사 지내고 바깥일[外物]을 꺼리고 삼가 문을 닫고 수도하셨다. 주문을 읽고 공덕이 이뤄지기를 기원하셨다. - 『삼성기전 상』


한민족은 예로부터 삼신상제님과 천지신명을 지극히 모시며 천제를 지내 왔습니다. 천제天祭는 신에게 제사 지냄으로써 신과 인간이 만나서 합일하는 의식입니다. 천제를 올릴 때는 신을 맞이하고, 신에게 소망을 빌면서 음주와 가무를 즐겼습니다.

그런데 천제에서 행해진 춤이나 노래는 단순한 유흥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며 흥이 나면 흔히 ‘신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천제를 올리며 행하는 음주가무는 신과 인간이 만나 하나 되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천제를 거행하기에 앞서 모두 목욕재계하고 근신하는데, 이는 신과 합일하기 위해 심신을 바르게 하며 자신을 수양修養하는 의식입니다. 이러한 수양 의식은 ‘천제를 거행한 후에 주문수행을 하였다’는 『삼성기전三聖紀全』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수행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행해졌습니다.

하늘에 올린 제사가 상제문화의 한 형식이라면 수행은 상제문화의 내용이다. 상제를 위하고 상제를 모시는 드러난 의례가 천제라면, 드러나지 않지만 인간에게 내재한 삼신의 조화 광명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 수행이다. - 『동방 조선의 천제』, 강영한


이상을 통해 내관존사법을 비롯한 칭명염불과 주문수행은 모두 천제에서 행해졌던 수행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행을 할 때는 천제의 연장선에서 치성致誠을 올리고 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천제에서 행해졌던 수행은 앞서 알아본 수행과 차이가 있습니다. 기존의 수행법은 수행자 개인의 도통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에 비해 천제를 올리며 행한 수행은 백성들이 함께 신바람을 일으키며 신과 합일하는 축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제는 온 백성이 상제님과 천지신명의 감화력으로 도를 성취하는 수행의 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