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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주역과 무극대도 | 주역 쉰아홉 번째 고난의 연속일지라도 믿음만이 형통하게 할지어다! 중수감괘 ䷜


    오직 마음이 형통하니


    주역 29번째 괘는 위‧아래에 거듭하여[重] 물[水]을 뜻하는 감坎(☵)괘가 있는 중수감괘重水坎卦(䷜)입니다. 즉 물을 뜻하는 두 개의 감괘(☵)가 상하로 거듭 있다고 하여 중수감괘라고 합니다. ‘水’ 자의 자원字源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상형문자를 보면 시냇물 위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요. 또한 감괘(☵)의 괘상을 90°로 세워 놓고 봐도 ‘水’ 자가 여기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감괘(☵)를 보면 두 개 음효(⚋) 사이에 양효(⚊) 하나가 험한 곳에 빠진 모습이며, ‘坎(구덩이)=土(흙)+欠(흠결)’의 합성자로 물이 흐르면서 흙이 쓸려 나가 땅에 흠이 생겨 구덩이가 움푹 파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감坎’은 파인 곳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 ‘험난險難하다’는 뜻과 ‘함정陷穽’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물(水)은 세상사에서 ‘어렵고 험난함’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주위에서 온갖 어려운 삶을 살아온 걸 비유하여 ‘산전수전山戰水戰 겪었다’고 합니다.

    중수감괘에 담긴 메시지는 ‘선천 말기의 상극의 난세’와 특히 후천개벽의 추수 도운을 개창하신 ‘대두목께서 겪으신 험난한 고난사’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역에서 상경(1~30번째 괘)은 선천先天, 하경(31~64번째 괘)은 후천後天에 해당하는데 중수감괘가 상경의 꼬리 괘(29번째)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상경은 머리 괘인 중천건괘重天乾卦(1번째)와 중지곤괘重地坤卦(2번째)는 ‘천지(건곤)’를 나타내고, 꼬리 괘인 중수감괘重水坎卦(29번째)와 중화리괘重火離卦(30번째)는 ‘일월(감리)’을 상징합니다. 천지일월(건곤감리) 사체四體가 상징하는 것은 ‘중천건괘-천-상제님, 중지곤괘-지-태모님, 중수감괘-월-태상종도사님, 중화리괘-일-종도사님’입니다.

    참고로 64괘에서는 중수감괘를 포함하여 ‘수뢰둔괘水雷屯卦(䷂), 수산건괘水山蹇卦(䷦), 택수곤괘澤水困卦(䷮)를 ’사대난괘四大難卦‘라고 합니다. 또한 「설괘전」에서 감괘는 물(水), 달(月), 가족으로는 중남(中男), 인체에서는 귀(耳), 성정은 빠지는 것(陷), 동물로는 돼지(豕), 방위로는 정북방을 상징합니다.

    독행천리獨行千里 백절불굴百折不屈


    ☯ 괘사
    習坎(습감)이라도 有孚(유부)이면 維心亨(유심형)이라 行(행)하면 有尙(유상)이니라
    험한 일이 거듭되더라도 믿음을 갖고 오직 마음으로 밝게 통하라, 그렇게 하면 숭상함이 있으리라.


    ☞ 험한 일이 거듭되더라도 믿음을 갖고(習坎有孚): 습習 자는 ‘羽’과 ‘白’의 합성자로 “羽 자는 어린 새가 날려고 양 날개[羽]로 날갯짓하는 모습을 본뜬 글자로 ‘거듭하다, 익히다’라는 뜻이며, 白 자는 鼻(코 비)에서 새끼 새가 어미 새를 본받아 날아 보려고 날갯짓을 하느라 ‘하얀 입김이 입과 코로 나온다’는 데서 습習 자는 ‘나는 법을 익히다’”(『예기禮記』 「월령 편」)라는 뜻입니다. 즉 익히는(習) 것은 자꾸 되풀이하여 행하는 것이라서 『논어』에도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습감習坎=중감重坎’으로, 물이 고여 있는 여러 개 구덩이에 빠진 것을 말하지만, 구이(하괘)와 구오(상괘)처럼 가운데가 득중得中을 해서 실하니(양효는 실實, 음효는 허虛) 믿음이 가는 것이죠. 만약 중심이 흔들리거나 실하지 못하다면 구덩이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 오직 마음으로 밝게 통하라, 그렇게 하면 숭상함이 있으리라(維心亨行有尙): 이런 믿음이 있기에 흔들리지 않고 험한 곳에 처해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므로 마음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험할지라도 중심을 잡고 믿음을 잃지 않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으므로 결국에는 존경과 숭상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제님의 대도 진리에서 보면, 중수감괘는 고난을 상징하는 물구덩이가 여럿 있어 험난한 상황을 보여 주는 선천 말대를 상징하는 괘입니다. 개인사의 어려움도 나타내지만 여기서는 상극의 난법 시대와 인사 대권자께서 걸어 온 형극의 가시밭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창생들을 살려 내는 천하사의 일꾼들은 중수감괘를 통해 숱한 고난의 역경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추수 도운 지도자의 심법을 배워야 합니다. 태상종도사님의 “독행천리獨行千里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을 체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우리 일꾼들에게 내려 주신 “作之不止聖醫雄藥(작지부지성의웅약)”의 심법을 늘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즉 “병든 천지를 뜯어고치고 인간 역사의 새 시대를 여는 창업자는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비범한 의지와 열정과 지혜로써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의통성업을 준비하는 일꾼의 심법을 전수하신 것이다.”(道典 7:66:4 측주)라고 종도사님께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흘러도 차지 아니하며


    ☯ 단 사
    彖曰(단왈) 習坎(습감)은 重險也(중험야)이니 水流而不盈(수류이불영)하며 行險而不失其信(행험이부실기신)하니
    단전에 이르길 “습감은 거듭 험한 것이니 물이 흘러서 차지 아니하며 험함을 행하여도 그 믿음을 잃지 아니하니

    維心亨(유심형)은 乃以剛中也(내이강중야)오 行有尙(행유상)은 往有功也(왕유공야)라
    오직 마음이 형통하다는 것은 강이 가운데 했기 때문이요
    행하면 숭상함이 있다는 것은 가서 공이 있음이라.

    天險(천험)은 不可升也(불가승야)오 地險(지험)은 山川丘陵也(산천구릉야)이니
    하늘의 험함은 가히 오로지 못함이요 땅의 험함은 산과 내와 구릉이니

    王公(왕공)이 設險(설험)하여 以守其國(이수기국)하니 險之時用(험지시용)이 大矣哉(대의재)라
    왕공이 험한 것을 베풀어서 그 나라를 지키니 험함의 때와 쓰임이 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 습감은 거듭 험한 것이니 물이 흘러서 차지 아니하며 험함을 행하여도 그 믿음을 잃지 아니하니(習坎重險也水流而不盈行險而不失其信): 습감의 ‘습習’은 거듭하다는 ‘중重’의 뜻이며, ‘감坎’은 험하다는 ‘험險’의 뜻이므로, 즉 습감習坎은 거듭 험하다는 중험重險과 같은 뜻입니다. 물이란 것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므로 막지 않는다면 결코 차지 않으며(不盈), 앞에 아무리 험난한 장애물이 버티고 있어도 돌아 나가는 본성을 잃지 않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물은 도중에 채우려 하는 비뚤어진 욕심 없이 그저 흘러만 가는 것이지요. 이처럼 물은 이치에 순응하여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습니다(行險而不失其信).

    ☞ 오직 마음이 형통한 것은 강이 가운데 했기 때문이요 행하면 숭상함이 있다는 것은 가서 공이 있음이라(維心亨乃以剛中也行有尙往有功也): 오직 마음이 형통하다는 것은 감괘를 보면 위‧아래 괘에서 강건한 두 개의 양효(구이, 구오)가 가운데에서 중심을 잘 잡고 있어 형통한 것입니다(維心亨). 물은 서로 다투지도 않고 어떠한 것이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그저 유순하게 흘러가서 끝내 바다에 이르니 공功을 이룬다는 의미입니다(行有尙往有功也).

    ☞ 하늘의 험함은 가히 오로지 못함이요 땅의 험함은 산천과 구릉이니(天險不可升也地險山川丘陵也): 중수감괘는 위‧아래가 거듭 험하다는 괘이므로 위에 있는 하늘과 아래 있는 땅의 험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선 하늘의 험함은 끝 간 데 없는 저 하늘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것으로, 땅의 험함은 높은 산과 깊은 내 그리고 구릉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왕공이 험한 것을 베풀어 그 나라를 지키니 험함의 때와 쓰임이 크도다(王公設險以守其國險之時用大矣哉): 그래서 제왕들이나 제후들이 천후天候나 산천 구릉 등 지세地勢의 험준함을 이용하여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며, 이처럼 중수감괘를 공부하여 천지인의 험난함을 때에 맞게 시의적절하게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덕행과 가르침을 익혀야


    ☯ 대 상
    象曰(상왈) 水(수) 洊至(천지) 習坎(습감)이니 君子(군자) 以(이)하여 常德行(상덕행)하며 習敎事(습교사)하니라
    대상전에 이르길 “물이 거듭 이르는 것이 습감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항상 덕행을 행하며 가르치는 일을 거듭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 물이 거듭 이르는 것이 습감(水洊至習坎): 공자가 중수감괘의 괘상을 보고 설명한 대상전입니다. ‘천洊’은 ‘거듭’의 뜻으로 ‘습習’과 뜻이 같습니다(洊=習=重). ‘물이 거듭 이른다(水洊至)’는 물이 쉬지 않고 계속 흘러가는 것을 말하며, 습감習坎 또한 쉼 없이 흐르는 물을 뜻하므로 흐르는 물의 속성이 바로 습감이라는 것입니다.

    ☞ 군자가 이를 본받아 항상 덕행을 행하며 가르치는 일을 거듭하느니라(君子以常德行習敎事): 옛말에 마음 씀씀이를 흐르는 물과 같이 하라는 ‘심여수心如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이란 깨끗한 물이나 더러운 물이나 가리지 않고 모든 물들을 다 받아들여 큰 바다를 이루며(海不讓水), 둥근 그릇에 들어가면 둥글게, 네모난 그릇에 들어가면 네모나게, 남과 다투지 않고 순리에 따라 멈추지 않고 그저 흘러갑니다.

    군자는 이 같은 중수감괘의 성정, 즉 쉬지 않고 흘러 뭇 생명을 윤택하게 해 주는 물의 덕성을 본받아 덕행의 표본으로 삼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이 같은 물의 덕성을 익히게끔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가운데서 벗어나지 않으니


    ☯ 육효사
    初六(초육)은 習坎(습감)에 入于坎窞(입우감담)이니 凶(흉)하니라
    초육은 험한 일이 거듭되는 상황에서 험한 구덩이[坎窞]로 빠져드니 흉하니라.

    象曰(상왈) 習坎入坎(습감입감)은 失道(실도)라 凶也(흉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거듭된 구덩이에서 험한 구덩이로 빠져듦은 도를 잃음이라 흉하니라.”고 하였습니다


    ☞ 험한 일이 거듭되는 상황에서 험한 구덩이에 빠져드니(習坎入于坎窞): 초육은 구덩이를 의미하는 감괘(☵)가 거듭한 중수감괘에서 맨 아래 있는 음효[구덩이]로서 깊숙한 웅덩이에 들어가 있는 꼴이며,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정상이라 맨 먼저 아래에 있는 구덩이부터 물이 고이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그곳부터 썩기 시작하니까 흉한 것이죠. 노자老子는 물이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니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善의 표상으로 여겨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였습니다. 흘러가야 할 물이 꽉 막혀 버렸으니 그 도道를 잃어버려 결국 흉하게 되었습니다.

    九二(구이)는 坎(감)에 有險(유험)하나 求(구)를 小得(소득)하리라
    구이는 험한 상황에서 위험이 있으나 구하는 것을 조금 얻으리라.

    象曰(상왈) 求小得(구소득)은 未出中也(미출중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조금이라도 얻은 것은 중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 험한 상황에서 위험이 있으나 구하는 것을 조금 얻으리라(坎有險求小得): 구이는 하괘에서 구덩이를 뜻하는 두 개 음효(초육과 육삼) 사이에 빠져 있어 험한 지경에 놓여 있네요. 그나마 구이가 득중得中하여 조금은 얻을 수 있습니다(求小得). 험한 곳에 놓여 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중도中道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구이는 선천의 말대, 상극 기운에 휩싸인 난법의 세상이 되어 모두들 탐욕에만 눈이 멀어 있는 형국입니다. 이利끗에만 매달려 있으니 대도 진리에는 전혀 관심들이 없습니다. 그렇건만 추살개벽秋殺開闢은 반드시 옵니다. 가을철이 되면 농사지은 것을 결실하듯, 이번 추살개벽 때도 선천 오만 년 동안 인간농사 지은 것을 결실합니다.

    *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맺는 법이니라. (道典 2:44:2)


    그렇지만 사람 씨종자는 삼생의 인연과 조상의 음덕, 그리고 일꾼들의 정성에 의해 ‘조금밖에 얻지 못한다(求小得)’고 구이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구이에서 언급한 대로 건질 것이 별로 없어 조금밖에 얻지 못하니, 오죽했으면 ‘희귀하다’고까지 하시며 상제님께서 한탄하셨겠습니까!

    * 희귀하다는 희(希)자가 ‘드물 희’자니라. 때가 되어 내가 부르면 참여할 사람이 별로 없으리라. (7:86:9~10)

    * 장차 천지에서 십 리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일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8:21:2)


    그럼 어떻게 해야 ‘희귀한 인간 씨종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 힌트는 바로 ‘미출중未出中(중에서 벗어나지 않음)’에 담겨 있습니다. 해석해 보면 ‘미未’는 1)‘미시未時’로 ‘후천개벽이 되는 때’와 2)‘신미생辛未生’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출出’은 개벽의 땅, 간방艮方의 한반도(出=山+山)를 나타냅니다. ‘중中’은 선후천이 바뀌는 하추교역기, 즉 여름[火]에서 가을[金]로 바뀌는 환절기 그 중간에 있는 토土[中]를 만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름에서 가을로 철이 바뀔 때는 화火에서 곧바로 금金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화火에서 금金으로 곧장 넘어가면 화극금火克金이 되어 중간에 상극相克이 발생하므로) 이때는 반드시 ‘토’를 경유해서 ‘화생토火生土 ➔ 토생금土生金’으로 넘어가야 합니다(토가 화와 금 사이에 상생의 다리를 놓아주기 때문). 여기서 ‘토’가 바로 여름에서 가을로 철이 바뀔 때 생명의 다리[中]을 놓아 주시는 상제님이십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상제님의 대도 진리를 만나야 후천이란 강을 건너갈 수 있습니다.

    * 몸 돌이킬 틈이 없이 사람을 죽이는 위급한 때에 나를 부르면 다 살리라. (7:31:14)

    * ‘시루 증(甑)’ 자, ‘뫼 산(山)’ 자만 똑똑히 알면 살리라. (7:42:5)


    즉 ‘미출중未出中’이라는 비사체에 담긴 뜻은 ‘후천개벽의 목전에서(未) 개벽의 땅, 동방 조선 땅으로(出) 오시는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의 무극대도를 만나야(中) 이번 추살 개벽기에 살아남아 후천 인존시대의 인간 씨종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六三(육삼)은 來之(내지)에 坎坎(감감)하며 險(험)에 且枕(차침)하고 入于坎窞(입우감담)이니 勿用(물용)이라
    육삼은 오고 감에 연거푸 구덩이에 빠져 험한 데에 또 누워 있는 꼴이며 구덩이에 빠져드니 쓰지 말지니라.

    象曰(상왈) 來之坎坎(내지감감)은 終无功也(종무공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오고 감에 두 개의 구덩이란 말은 마침내 공이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 오고 감에 연거푸 구덩이에 빠져 험한 데에 또 누워 있는 꼴(來之坎坎險且枕): 육삼은 양이 음 자리에 있으니 부정不正이고 중中도 얻지 못했으며 또 상육과는 음양응陰陽應도 되지 않으니 나쁜 자리입니다. 게다가 육삼은 하괘에서 상괘의 구덩이로 건너가는 자리라서 위로 올라가나 아래로 내려오나 연거푸 험난한 구덩이(☵)가 있습니다. 이런 진퇴양난에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어 베개를 베고 누워 있는 꼴이지요.

    ☞ 구덩이에 빠져드니 쓰지 말지니라(入于坎窞勿用): 육삼은 맨 아래 있는 초육처럼 깊은 구덩이는 아닐지라도 마찬가지로 물이 고여 썩게 되니 쓸모 없게 됩니다. 이렇게 앞뒤가 험한 상황이니 베개 베고 쉬는 편이 낫지 용사用事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상제님의 진리로 해석해 보면, 선천을 의미하는 상경의 마지막 두 괘(중수감괘, 중화리괘)는 상제님의 무극대도를 성사재인하시는 두 체體인 일월日月의 지도자를 상징합니다. 즉 29번째 중수감괘는 월대인月大人이신 태극제, 30번째 중화리괘는 일대인日大人이신 황극제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수감괘의 육삼은 하괘(제2변)에서 외괘(제3변)로 넘어가는 자리로 상제님의 대행자가 제2변 도운을 개척해 놓고도 6·25 전쟁으로 인해 20년의 대휴게기에 들어선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추수도운인 제3변 진법도운의 새 살림을 열기 위해 새 인물을 길러 내는 20년의 과도기가 상제님께서 몸소 겪으신 20일 말도末島 도수입니다.

    * 병오년 3월에 상제님께서 광찬을 데리고 말도(末島)에 들어가실 때 갑칠과 형렬을 만경 남포로 부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섬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지공사로 인하여 귀양 감이라. 20일 만에 돌아오리니 너희들은 지방을 잘 지키라.” 하시니라. 이때 상제님께서는 대삿갓에 풀대님 차림으로 섬에 들어가시어 20일 동안 차마 겪기 어려운 고생을 하시니라. (6:22)


    강剛과 유柔가 만남이라


    六四(육사)는 樽酒(준주)와 簋貳(궤이)를 用缶(용부)하고 納約自牖(납약자유)면 終无咎(종무구)하리라
    육사는 동이 술과 대그릇 궤 두 개를 질그릇에 담아 들창으로 간략히 들이면 마침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상왈) 樽酒簋貳(준주궤이)는 剛柔際也(강유제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동이 술과 두 개 궤는 강과 유가 서로 만남이라.”고 하였습니다.


    ☞ 동이 술과 대그릇 궤 두 개를 질그릇에 담아 들창으로 간략히 들이면 마침내 허물이 없으리라(樽酒簋貳用缶納約自牖終无咎): 육사는 하괘에서 상괘로 갓 넘어온 자리로 불안하여 어떻게든 위기를 벗어나려 합니다. 준樽은 술을 담는 술통이며, 궤簋는 종묘나 문묘 및 그 밖의 나라 제사 때에 쓰던 제기입니다. 사실 중수감괘 육사효는 주역 384개 효사 중에서 난해한 효로 손꼽힙니다. 여기서는 선후천 교역론으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중수감괘는 어수선하고 혼란스런 선천 말기를 보여주는 괘로 이런 때일수록 소박하지만 정성이 담긴 제물로 하늘에 천제를 올린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선후천이 바뀌는 대변혁기에는 하느님에게 정성을 드려 구원의 손길이 닿도록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 동이 술과 두 궤는 강과 유가 서로 만남이라(樽酒簋貳剛柔際也): ‘강剛과 유柔의 만남’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강剛이란 억음존양抑陰尊陽이라는 남성 중심의 선천 상극세상을, 유柔는 정음정양正陰正陽이라는 조화로운 후천 상생세상을 뜻합니다. 또 만난다[際]는 의미는 바뀐다는 뜻으로 다시 말하면 선천에서 후천으로 개벽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개벽이라는 아리랑 고개를 무사히 넘어가기 위해서는 천제를 올리는 정성으로 근신하며 가을 열매진리와 뿌리기운을 받아야 합니다.

    * 내가 이제 억조창생을 죽음에서 건져 만세의 선경을 열려 하나니, 나를 따르는 자는 이 대비겁에서 살아나리로다. (7:39:6)

    * 이때는 원시반본하는 시대라.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2:26:1,8)


    이미 평평한 곳에 이르면


    九五(구오)는 坎不盈(감불영)이고 祇旣平(지기평)이니 无咎(무구)니라
    구오는 구덩이가 차지 않고 이미 평평한 곳에 이르니 허물은 없으리라.

    象曰(상왈) 坎不盈(감불영)은 中(중)이 未大也(미대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구덩이가 차지 않음은 가운데가 크지 않음이라.”고 하였습니다.


    ☞ 구덩이가 차지 않고 이미 평평한 곳에 이르니 허물은 없으리라(坎不盈祇旣平无咎): 구오는 양이 양 자리에 있으며 상괘에서 중을 얻어 중정中正한 자리이며 군왕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구덩이에 가득 차지 않았다(坎不盈)’는 말은 다들 어렵고 힘든 시기에 만백성의 귀감이 될 군왕 혼자만 가득 채우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구덩이에 가득 채우지 않고 흘려 보내는 것이지요. ‘이미 평평한 곳에 이르렀다(祇旣平)’는 말은 구덩이에 어느 정도 물이 찼다는 뜻으로 이는 군왕이 군덕을 베풀어 백성들의 구덩이에도 물이 찼으니[澤國] 백성들이 그런대로 살 수 있도록 정치를 잘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백성들로부터 원성은 듣지 않아 허물은 면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无咎).

    이를 상제님 진리로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구오는 중수감괘의 주효主爻입니다. 중정한 군왕이라 군덕君德의 덕택德澤을 베풀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서로 상응하고 있는 구이와 구오가 베푸는 덕화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구이효(힘쓸 수 있는 자리에 있지 못함)에서는 ‘후천개벽의 목전에서(未) 개벽의 땅, 동방 조선 땅으로(出) 오시는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의 무극대도를 만나야(中) 추살 개벽기에 살아남아 후천 인존시대의 인간 씨종자가 되는 것(未出中)’입니다. 그리고 이런 씨종자는 삼생의 인연과 조상의 음덕, 그리고 일꾼들의 정성에 의해 ‘조금밖에 얻지 못한다(구소득求小得)’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구오효(군왕 자리)에서는 ‘상제님(未)의 무극대도(中)가 크게(大) 펼쳐진 선경세계(中未大)’라서, 그 수준을 도전 7편 87장의 상제님 말씀으로 비유하자면 ‘후천 백성살이가 선천 제왕보다 낫다(지기평祇旣平)’고 하였습니다.

    上六(상육)은 係用鰴纆(계용휘묵)하여 寘于叢棘(치우총극)하고 三歲(삼세)라도 不得(부득)이니 凶(흉)하니라
    상육은 휘묵(두세 겹으로 꼰 노끈)으로 묶어 가시덤불에 두니 삼 년이 지나도 얻지 못하니 흉하니라.

    象曰(상왈) 上六失道(상육실도)는 凶三歲也(흉삼세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상육이 도를 잃는 것은 흉함이 삼 년이라.”고 하였습니다.


    상육은 험한 중수감괘에서 극성한 자리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어찌 보면 상육은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감옥에 갇혀 있는 형국인데, 갇힌 것도 답답한데 거기에다 가시에 찔리니 고통이 엄청난 것이지요. 초육의 흉함은 맨 밑의 구덩이에 물이 고여 있어 흉하고, 상육의 흉함은 맨 위에 있는데 아래가 막혀 흉한 것입니다. 둘 다 물이 흐르지 못하는 것이지만, 상육이 초육에 비해 더 흉한 것입니다. 가장 짙은 어둠이 지나서야 새로운 새벽의 광명이 움트듯이 상육 또한 같은 상황이며, 여기서 삼 년이라는 고통의 시간은 밝은 세상으로 바뀌는 과정의 시간[三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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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05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