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적으로 만난 상제님 진리 외(김서미, 장문성, 이의준)

[입도수기]

기적적으로 만난 상제님 진리


김서미(여, 66) / 부산중앙도장 / 151년 음력 2월 입도

미륵불과 조상 선령신을 찾은 기쁨


상제님 진리를 만난 것은 기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기능성 속옷을 판매하기 위해 네이버에 제품 관련 블로그를 올려 홍보를 하고 있었는데, 작년 10월쯤 한 여성분이 노모의 건강을 위해 제품 구입차 연락이 왔습니다. 문의 이후 연락이 없다가 11월 중순 카톡으로 ‘세계개천문화축제’라는 내용의 카톡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그 이후로 자료를 보내 주셨는데 자료에는 크게 흥미가 없었지만 계속 보내 주시다 보니 문자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독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생존의 비밀』 책을 자연스럽게 기증을 받았고, 형광펜으로 그어진 부분들을 대략 읽어 보다가 궁금증이 더하여 결국 전화 통화를 하였습니다. 대화를 하던 중, 완도가 고향인 모친이 10남매 가운데 막내인 저를 데리고 금산사에 가끔씩 갔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불교 모태 신앙으로 최근까지 고향 부근 사찰 건립에 도움을 주고자 여러 해 동안 공을 들여 오던 중이었습니다. 인도자가 설명해 주는 미륵불 이야기와 조상 선령신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아 도장 방문을 문의하였고, 소개해 준 상생방송을 시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일 후 도장 방문을 하여 김재오 수호사님 말씀을 통해서 증산도 진리의 큰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륵님께 참회했던 21일 정성수행


저는 수십 년 동안 정말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세속적 욕심보다는 어려운 주위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경제적으로 힘든 지인들에게 돈을 많이 빌려주었습니다. 있어서라기보다 힘들다고 하면 빚을 내서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습니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차마 달라고 할 수 없어 받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가족들과 저 역시 많은 경제적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경제적 고통의 극점에서 정말 우연히 인도자를 통해 증산도, 상제님을 만났습니다. 저의 이야기들을 들은 인도자는 저에게 팔관법 진리 공부와 21일 정성 새벽 수행을 도장에서 해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도장에서 틈틈이 시간 내어 팔관법 진리를 공부하면서 상제님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고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진리 공부와 21일 정성수행 동안 내내 미륵님께 저의 잘못을 진심으로 참회하였습니다. 남편이 종손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천도식 이후 일체 제사를 올리지 않았던 저의 잘못과 함께 제가 열심히 살았음에도 힘들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21일 정성수행 마지막 날, 놀랍게도 최근 힘들었던 경제적 고비를 넘길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40년 결혼 생활 동안 여러모로 뜻이 맞지 않아 갈등 속에서 살아온 남편과의 관계가 180도 달라졌습니다. 도장 방문 초기에 전화를 걸어 저를 곤란하게 하고, 보름이 넘게 엄청나게 괴롭혔던 남편이 말입니다. 지금은 상생방송도 함께 시청하고 도장 방문을 하여 수호사님과 상담 후에 함께 입도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조상 선령신과 인도자인 이은정 포정님, 부산중앙도장 김재오 수호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진리 공부와 수행 공부를 놓치지 않고 꾸준히 하여 진리를 더 크게 깨치고 개벽기에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상제님, 미륵님의 도를 많은 주위 지인들에게 전하는 진정한 일꾼이 되겠습니다.

참된 진리 증산도가 나를 자유롭게 해!


장문성(남, 62) / 서울동대문도장 / 151년 음력 2월 입도

무거운 짐을 지고 달려가야 했던 삶


저에게 증산도의 입도는 그리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만큼 인생에 있어서 큰 사건의 변곡점이 되기도 합니다. 인생의 전환점이자 출발점이기에 과거 나의 삶을 되짚어 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제2의 출발점에서 보낼 것은 보내고 맞이할 것은 깊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입도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삶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피눈물의 연속 가운데에서 아파하며 살아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참으로 희한한 인생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알기 쉽게 얘기하자면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다른 사람은 가벼운 운동복 하나 입고 달린다고 치면, 저는 10킬로그램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려가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제 인생이 가장 처절하고 완벽하게 짓밟힌 사건 중 하나가 중학교 2학년 때 치아가 빠진 사건입니다. 치과에 가서 의사 선생님 진단을 받고 정상적으로 치아를 뽑았으면 제 인생을 10킬로 모래주머니 삶이라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앞 치아가 빠져서 치아를 해 넣어야 하는 상황인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치과에서 못하고 불법시술소에서 하게 됐습니다. 부러진 앞 치아를 뽑아야 하는데 뽑히지 않으니까 마취도 안 한 상태에서 펜치로 나의 부러진 치아를 잡고 한쪽 발로 못 움직이게 저의 이마를 짓밟은 채 치아의 뿌리까지 뽑아 버렸습니다. 그 이후 저는 정신적 충격에 의한 언어 장애에 시달려야 했는데, 그것은 너무도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것을 이겨 내려고 저는 대학 1학년 때 하루 3시간을 자고 8시간씩 운동을 하면서 정신적 고통과 언어 장애를 극복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학 2학년이던 5월 어느 날 오징어 튀김을 먹고 다음 날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운동을 하려 했는데 운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배가 아프고 힘을 쓸 수 없었습니다. 어느 약국이나 병원, 한의원을 가도 병명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고칠 수 없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지인들은 신병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저는 살아야 하기에 이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다니며 억척같이 살았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생각으로


저는 군 제대 후 삼성에 입사하여 결혼을 하고 두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10억 원 상당의 부富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가족의 노력으로 일궈 낸 모든 것을 집사람이 사기를 당해 날려 버리고 그 일로 가출까지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망연자실한 저는 더는 못 견디겠다 싶어 도봉산에서 뛰어내렸는데, 저승 같은 곳에서 만난 저승사자로 보이는 사람이 아직 올 때가 아니라고 돌려보내 그곳에서 쫓겨났습니다. 눈을 뜨니 몹시도 추운 느낌이 들면서 소나무에 저의 몸이 축 늘어진 채 걸쳐져 있었습니다. 삶이 너무 힘들어 죽겠다는데 죽지도 못하게 하니, 죽기 살기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을 했습니다.

500만 원의 보증금에 30만 원 단칸방에서 아들과 딸, 이렇게 세 식구는 목숨을 걸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딸은 시집을 보냈고 아들은 대학생입니다. 전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죽었다 살아 온 사람이 두 번인들 못 죽으랴 생각하니. 안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내가 나서면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진다. 고생의 결과물이 기적으로 나타난다!”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인도자의 인품에 따라나서다


그러던 중 2020년 10월 6일 페이스북에서 달빛에 빛나는 홍매화 사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림에서 시상이 떠올라 시를 적어 보내기를 몇 번 반복했더니 10월 26일 상대 쪽에서 수재학원 이사장 오정순이란 명함과 함께 본인 소개를 해 주었습니다. 매너와 진정성에 이끌려 10시간씩 대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직장이 끝나고 난 뒤 그다음 날 출근 때까지 밤을 새워 가며 카톡을 주고받았는데도 출근해서 일할 때는 더욱 힘이 났습니다.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오정순 이사장님이 12월 9일 저를 학원으로 정식 초대를 했습니다. 나름 멋을 내고 정성껏 준비한 아름다운 꽃바구니를 들고 방문했는데 학원 전 직원이 반겨 주었습니다. 집무실에 들어가 보니 사무실 전체가 각종 상패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사장님께서 그동안 걸어오신 길이 다 보이는 듯했습니다. 대화를 하며 느낀 것은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장님이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길 “장문성님, 자신이 있으면 나를 절로 인도하던가 그렇지 않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더군요. 저는 한참을 고심 끝에 “당신 인품을 보고 따라가겠다” 했더니, 바로 1월 29일 6시에 교육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방문한 동대문도장에서 전기훈 수호사님과 이사장님,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대면을 하고 바로 증산도 팔관법에 대한 첫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신세계를 맛본 진리 체험


“와우, 신세계다.” 60평생 교육을 받아 봤지만 3시간 동안 물 한 모금, 휴식 한 번 없이 6시에서 9시까지 논스톱 강행 교육을 하신 것입니다. 교육이 끝나고 수호사님께 여쭤본 질문은 “제가, 강의만 보이고 주위의 모든 것은 느낄 수 없는 꿀맛 같은 이것은 뭐냐?”는 것이었고, 수호사님은 “깊은 진리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상제님께서 지켜보시니 그렇다.”라고 하더군요.

하도 낙서의 마방진 15수 참진리가 얼마나 저를 자유롭게 했던지 앞으로도 그날의 강의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뒤 3월 18일에는 수행을 셋이서 했습니다. 저를 중앙에 자리하게 하고 좌측은 수호사님 우측에는 인도자인 이사장님이 자리를 잡고서 한마음 한뜻으로 태을주 수행을 하는데, 하늘의 상제님께서 웃고 계심에 제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 수행의 참된 기쁨을 느꼈습니다.

도기 151년 저는 60년 동안의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삶이, 새로운 변화의 1년을 만들기 위한 수행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지식을 통하여 15년간 밭을 갈고 옥토로 만든 세월은 바로 그곳의 하나님이신 상제님이요, 제가 갈 곳임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아픈 60년 세월을 다리 밑의 물처럼 흘려보낼 것입니다. 상제님이 집행하신 천지공사가 행동行動하는 증산도인이 되라는 당신님의 계획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으니, 실행하는 참일꾼으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우리 정신과 개벽 극복의 진리가 여기에


이의준(남, 63) / 안양만안도장 / 151년 음력 2월 입도

몸이 아파 찾았던 수행의 길


저는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원부리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경기도 이천 시골에서 자랐으며 1980년 8월에 군 입대를 했습니다. 그러다 초겨울에 들어서면서 훈련 도중 오른쪽 발목 부상을 당했고, 불구의 몸으로 의가사 전역을 하게 되어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를 도와드려야 하는데 농사일 돕기가 싫어 요령을 피우며 돕지 않을 때마다 “이놈의 자식,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린다!” 하신 아버지 말씀대로 된 거 같아 죄의식에 늘 참회를 하며 지냈습니다.

그 후 1986년 7월, 서울 금천구에 있는 (재)한국생활용품검사소에 근무하게 되었으며 1988년에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 이후 원인 모를 증상으로 몸이 피곤하고 힘들어졌습니다. 병원을 찾아가 보았지만 이상이 없다고 하고, 한의원을 찾아갔으나 기가 허하다며 지어주는 약을 복용해 보기도 했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몸이 좋아지기 위해 수지침도 공부하고, 몸에 좋다는 것은 다 찾아 챙겼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굿도 해 보고 신내림을 받아 박수무당을 하면 나아진다고 권유도 받았지만 마음이 원치 않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10년이 흘러갔습니다. ‘이제는 죽는가 보다’ 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져 사경을 헤매던 1997년 늦가을 무렵에 저는 단학선원을 만났습니다. 몸이 건강해지길 원해 찾아갔는데 마음공부도 하는 곳이었습니다. 수련 14일 만에 개혈 수련을 하게 되었는데 큰 체험을 하였습니다. 기운이 장심을 타고 어깨를 거쳐 가슴이 열리고 황금색으로 바뀌면서 단무가 되었습니다. 그 뒤 몸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나중에는 경영지도자까지 되어 단학선원 지원장으로 2년을 운영하였습니다. 이후 단학선원 계열의 선불교를 다녔고, 2017년 선불교를 나온 뒤에는 한동안 자운선가 수행도 하였습니다.

대순의 진리 의혹을 풀어 준 증산도를 만나


그런데 여전히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에 마음은 허전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효심사 성담 스님의 유튜브를 시청하였습니다. 성담 스님의 강의를 통해 단학과 선불교에서 정리되지 않던 의문점이 쉽게 풀리면서 효심사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3년을 열심히 다니던 중, 2020년 5월부터 이상하게 효심사를 다녀오면 몸의 에너지가 완전히 탈탈 털려 나가는 듯하였고 심지어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몸이 힘들어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효심사에 더 다니기 힘들어 쉬고 있을 무렵 선불교에서 같이 수행하던 도반의 소개로 대순진리회를 소개받았습니다. 그때까지 대순진리회나 상제님에 대해선 전혀 몰랐었는데 2020년 7월부터 지인을 따라 대순진리회를 접하고 그 이후 난생처음 신앙이란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순진리회에서 입도치성을 하고 다니던 중, 의문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이시라는데 하느님에 대한 예禮인 ‘촐싹대는 인사 방법’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궁금한 점을 질문해도 속 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의문점들을 가득 안은 채 밤 1시 자시 수행을 하려고 기다리던 중, TV에서 상생방송을 시청하다 보니(단학선원 시절부터 상생방송은 보고 있었습니다) 태모 고수부님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내 일은 수부가 없이는 안 되느니라. 수부의 치마폭을 벗어나는 자는 다 죽으리라.”(도전 6:96:5~6)는 말씀과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보냈느니라”(도전 2:40:6)는 상제님 말씀이 나왔는데, 대순에서는 수부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 터라 더 큰 의문이 일어났습니다. 도반끼리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하고, 일정한 때가 되면 유공의 공덕(성금 헌성)을 쌓으라고 강요를 했습니다. 게다가 안양의 수임 선감 이야기가 도무지 와닿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때가 되어 귓전에 북소리가 들리게 되면 영국에 있든지, 미국에 있든지 신명님이 북소리 나는 곳으로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초점이 운수받는 부분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대순이 상제님의 종통을 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역사를 전혀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문은 9년 동안 천지공사를 보셨다는데 그 내용을 담은 경전이라는 전경 책은 얇은데 상생방송을 보니 상제님과 태모님의 말씀을 담은 도전은 두께가 훨씬 두껍고 달랐습니다. 도전은 어떤 내용일까? 도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또 종도사님께서 명쾌하게 밝혀 주시는 카자흐스탄 편, 일본 편, 가야 편 ‘환단고기 북콘서트’와 ‘개벽문화 북콘서트’를 쭉 시청하면서 ‘우리의 정신과 우주 가을의 대병란을 극복할 수 있는 곳은 증산도구나!’ 하는 확신이 들어 알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인도하려고 주신 고난임을 깨닫고


그동안 살면서 원인 모를 고통을 겪고 해법과 진리를 찾아 돌고 돌며 방황했던 지난날과 지금까지 하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경제적으로도 많이 힘겨웠던 것은 아마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상제님의 진리로 인도하시려고 고난을 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제님의 참진리인 증산도 입도를 위해 21일 정성수행을 하면서 이제까지 항상 묵직했던 어깨도 가벼워졌으며 머리도 몸도 맑아졌습니다. 14일 차 수행을 할 땐 감사함의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고, 수행을 하면서 제가 사람으로 태어나 쓰여질 수 있다는,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느낌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상제님 진리로 안내하여 후천 세계로 함께 데려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느껴졌습니다.

또 신기한 체험은 그동안 늘 책만 보려 하면 눈앞에 뿌연 안개가 낀 듯 책을 잘 보지 못했는데 21일 정성 수행을 마쳐 갈 즈음엔 눈이 맑아져 어느덧 돋보기를 쓰지 않고도 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안개 속 미로를 헤매는 눈과 마음이 너무도 편안해졌습니다. 21일 정성수행과 입도 공부를 하며 만병통치 태을주라고 하신 말씀을 직접 체험하여 너무도 기뻤습니다.

상제님, 태모 고수부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조상님 감사합니다. 정성으로 태을주 수행을 하고, 신교문화의 정신을 바로 세워 원시반본하는 후천세계로 갈 수 있게 안내하여 주신 수호사님 감사합니다. 일심으로 신앙하고 사람 많이 살리는 일꾼이 되어 천지부모님과 조상님의 은혜에 보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