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하여 외 (이종현, 이재훈, 한경숙)

[입도수기]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하여


이종현(남, 56) / 태전도안도장 / 151년 음력 1월 입도

사람이 잘 사는 길을 고민하다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사람으로 잘 사는 걸까?’ 하는 고민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었습니다. 인류를 위해 헌신 봉사하신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현실에서 실천하려다 보니 다른 사람한테 이용당하기 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들의 가르침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다닌 천주교는 선천의 상극 질서가 덜한 곳이라 좋았고 친구들과도 어울리기 좋았습니다. 하지만 사람한테 원죄가 있다는 것과 예수님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지옥에 간다는 교리에는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천주교와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고, 삶의 부침 속에서도 무언가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들이나 억울한 부분들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지 못한 삶으로 지내 오기만 했습니다.

평소 우리 민족의 찬란한 역사가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걸 알았으며, 올바른 역사가 꼭 밝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배운 중학교 시절 국사 과목에는 고조선이 있었고 법령으로 '8조 금법'이 있었다고 시험에도 나왔던 게 기억납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은 ‘옛 북한 땅에 고조선이 있었다고 한다’라고 남 얘기하듯 말하고 있습니다. 찬란했던 역사를 밝혀내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퇴보시키는, 기가 막히는 범죄 현장을 본 목격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억울함과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었습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로 열린 진리의 마음


<환단고기 북콘서트> 유튜브 방송을 보며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시원해지면서 자부심이 차오르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생물체가 후손에게 삶의 자부심과 힘을 내려 주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역사는 바로 사람을 낳아 기르시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알고 실천하던 역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 더욱 자긍심이 생겼습니다.

예전에 읽어 알았었던 여러 종교와 철인, 예언가들이 하나같이 얘기한 대변화, 개벽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나아가 후천 조화선경, 지상천국을 여는 일꾼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삶의 굴곡을 겪으며 욕심의 많은 부분이 떨어져 나간 지금에서야 간절해지며, 인생을 걸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지일월 부모님께 보은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

‘훔치’ 소리가 인도한 신앙의 길


이재훈(남, 61) / 의정부도장 / 151년 음력 1월 입도

산행하며 깊어진 사색과 의식 변화


저의 어머님은 불심이 깊으신 분이십니다. 이런 어머님을 따라 어렸을 때부터 절에 다니다 보니 절 문화에 익숙했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4~5학년까지 절에 다니다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어머니하고 시간이 맞지 않아, 어머니는 동생들만 데리고 절에 다니셨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등산을 다니면서도 절에 가서 기도하고 절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차츰 참선이나 기 수련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보곤 했습니다. 20대 후반부터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등산도 못 가고 절하고의 인연도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사회에서 만난 아는 누님께서 절에 1박 2일 기도 수련을 가는데 같이 가면 어떠냐고 제의가 들어와 흔쾌히 대답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하고 절에 다닌 기억을 회상하면서 1박 2일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이때부터 생각이 바뀌고 사색이 깊어지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근교 북한산성을 둘러보면서 “산성을 만드느라 수많은 백성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고 또 얼마나 다치고 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25 전적지에 가면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죽었을까?” 하는, 예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상념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동학혁명 전적지의 한 곳인 공주 우금치에 갔을 때에는 마음이 너무 짠하게 아파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에 대한 극락왕생을 마음속으로 빌어 주기도 했습니다. 문득 오래전에 배운 기억들인 고조선, 단군, 천지신명 같은 단어들이 마음속에 떠오르면서 태백산 천제단 생각이 났습니다.

많이 듣던 ‘훔치 훔치’소리의 기억


어느 날 청량리역에서 열차를 타고 태백산 천제단에 가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등산 다니면서 봐 왔던 그냥 제단이라서 인사 한번 하고서 능선을 타고 옆 봉우리로 이동하다가 중간쯤에서 천제단을 바라보았는데, 보는 순간 숨이 멈추면서 멍해지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천제단이 하늘에 맞닿은 모습을 보고서 다시 발걸음을 돌려 천제단으로 갔습니다.

“이 자리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자리네.”

“그 옛날 사람들은 길도 없고 신발도 없는데 이런 자리를 어떻게 알았을까?”

“하늘에다 천지신명을 부를 수 있는 자리구나.” 하면서 산행 중에 간식으로 먹을 과일과 떡과 생수를 꺼내 천제단에 올려놓고 제 나름대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순간 제가 마치 천제단의 제사장이 된 것 같은 묘한 기분과 함께 몸에 흐르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다음에 또 와야지 하며 하산을 했고 그 후 날짜를 잡아서 천제단에 몇 번 더 올라갔습니다.

여기저기 산행하면서 절에 들러 기도하며 지내던 중 집에서 우연히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방송에서 환단고기와 상고사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고 재미가 있어, 그날부터 상생방송을 짧은 시간 동안 자주 보게 되었고 방송에서 태을주 주문을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어! ‘훔치 훔치~’ 많이 듣던 소린데···” 제가 어렸을 적 이모 댁에 놀러 가면 이모부님과 이모님 두 분이 새벽에 물 떠놓고 “훔치 훔치~” 하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모습이 궁금해서 현재 생존해 계시는 작은외삼촌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모부님이 6, 25전쟁 이전부터 증산교를 믿어서 “훔치 훔치~”를 하는 모습을 보셨다고 말씀해 주셔서 상생방송에서 듣는 ‘훔치 훔치’ 소리가 점점 더 친밀하게 느껴졌습니다.

상생방송으로 열린 신앙의 길


그런데 어느 날 자막에서 의정부도장이라는 글씨가 보여서 의정부도장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분(나중에 알고 보니 방흥수 포정님)이 친절하게 응대해 주시고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그날 바로 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마침 포정님과 도장 간부님들이 송년회를 하시던 터라 다들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다과를 대접받고 저녁도 같이 먹고서 헤어진 그 뒤부터 포정님과 자주 통화하고 만나서 대화도 하였습니다. 포정님의 진심이 점점 더 느껴지면서 입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입도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포정님은 입도하기 전에 21일 정성수행과 팔관법을 공부하는 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포정님과 팔관법 공부를 하는데 책의 내용이 신기하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또 21일 정성기도를 하면서 태을주를 주송하는데 마음이 편해지고 무엇인가가 정리되어 가는 느낌도 들었으며, 기도 4일째 되는 날에는 참 신기한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진리 공부를 마치고 매일 새벽 한 번도 안 빠지고 했던 21일 정성기도도 무사히 마치자 포정님께서 날짜를 잡아 주셔서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포정님이 저를 잘 이끌어 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포정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잘 따라서 증산도를 열심히 믿고 진실한 참구도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30년 대순 신앙 끝에 만난 참진리


한경숙(여, 60) / 서울강북도장 / 151년 음력 1월 입도

어머니의 무병과 기독교 신앙


저의 고향은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저는 화목한 가정에서 부러울 것 없고 별 탈 없이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께서 무병巫病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새벽녘에 집을 나가셨다가 옷이 이슬에 흠뻑 젖어 들어오시곤 하셨습니다. 눈동자도 풀리고 저를 알아보지도 못하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겪은 그런 참담함이, 지금 생각해 보아도 가슴이 아픕니다. 집에 붉은 장삼의 스님들이 드나들기 시작했고 불경 소리에 잠에서 깨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기독교 신앙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무병은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기독교 신앙생활에 대한 약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신앙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울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열심히 공부하였고, 마침내 1979년 서울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직장도 잘 다니고 무리 없이 서울 생활에 적응하며 지내다 결혼도 했습니다.

내 인생을 뒤흔든 대순 신앙의 말로


그런데 둘째 아이 산후조리 중, 저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 파란만장의 인생 서막이 시작되었습니다. 대순진리회를 만났던 거였습니다. 이후 상제님의 진리를 따라 포덕천하를 이루리라 결심하고 저의 청춘과 영혼까지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포덕 사업에 일로매진하였습니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내부 모순과 더불어 도 닦는 사람들의 행동에 환멸을 느끼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 같은 현실을 보다 보니 30년 대순진리회의 수도 생활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두 아들은 저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너무나 무지했고 교만했으며 어리석었던 것에 대해 어찌해야 할지 수습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무책임한 행동은 할 수 없기에, 다시 용기를 가지고 살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대순 도인들은 항상 가까이 접근해 왔었고, 견디기 어려운 모멸감에 치를 떨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순진리회의 조직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간의 무지와 과오를 뉘우치다


그러던 차에 옛날에 잘 알고 지내던 강순례 포감님에게 연락을 하여 만남을 가졌고 그런 와중에 증산도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강 포감님으로부터 도전과 진리 서적을 받고 증산도에 대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증산도를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한 날 같이 도장에 방문하였습니다.

왜 그럴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증산도 도장에서 도전 공부를 하면서 알 수가 있었습니다. 도전 10편 138장에 나오는 상제님 성골을 도굴하는 만행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또한 태모님의 존재도 몰랐습니다. 얼마나 무지했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얼마나 많은 과오를 저질렀는지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30년의 대순진리회 생활을 접었습니다. 조상 선령님들의 60년 기도의 결실로 참진리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열정적인 포교와 육임조직 도체 완수에 힘쓰겠습니다. 상제님과 태모님의 거룩하신 상생의 무극대도를 일심으로 잘 닦아 의롭고 진실한 참도인으로 거듭나 억조창생을 널리 건지는 데 힘쓰겠습니다.

그리하여 제 가족과 저의 모든 지인들에게 속죄하려 합니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다 사하여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드라마틱하게 저를 인도해 주신 강순례 포감님께 감사드립니다. 서울강북도장의 모든 도생님들과 포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진리 공부를 할 수 있게 교육을 시켜 주신 남상현 포정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증산도 입도와 함께 저의 새 삶을 시작하려 합니다. 어제와 다른 생활, 묵은 정신은 버리겠습니다. 포덕에 힘쓰고 낮은 곳에서 할 일을 찾아 진실한 마음을 갖고 참된 진리를 전하는 도인으로 거듭나겠습니다. 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