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로 배우는 우주변화의 원리 | 인류문명과 인간의식의 발전원리 - 일체삼용一體三用 -

[한문화]
김덕기 / STB상생방송 작가

도道를 모체로 하여 태어난 우주 만유는 도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며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우주는 천·지·인 삼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인 원자는 양성자·중성자·전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체는 머리·몸통·팔다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 만유의 변화는 삼 단계를 거쳐 이루어집니다. 이번 호에서는 삼 단계로 이루어지는 인류 문명과 인간 의식의 전개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일체삼용으로 보는 인류 문명


도道는 천지만물을 낳은 본체이자 대자연이 변화해 가는 길입니다. 『주역』에 따르면 우주가 음운동과 양운동을 하는 것은 본체인 도가 음극과 양극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음과 양은 그 성격이 정반대이므로 실제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음과 양을 만나게 해 주는 중中이 개입해야 합니다. 즉 본체인 도는 음·중·양의 삼원三元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이 음양의 상대성 운동을 조화시키면서 우주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체에 내재된 삼원의 속성에 따라 우주 만유는 삼태극(무극·태극·황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변화도 삼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시간은 시중종始中終, 공간은 본중말本中末, 만물은 생장성生長成으로 삼 단계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인 본체가 셋으로 작용하는 것을 일체삼용一體三用이라고 합니다.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순환


가장 먼저 생긴 것이 카오스Chaos이고 다음에 가슴이 넓은 가이아Gaia(대지)가 생겼는데 그것은 모든 것에 대하여 움직이지 않는 자이다. - 그리스 신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성경』 「창세기」 <1장 1절~2절>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우주가 혼돈混沌이나 무無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바빌로니아의 창조 설화에서는 티아마트Tiamat라는 혼돈의 여신을 마르두크Marduk라는 남신이 정복하자 세상이 밝아졌다고 합니다. 인도 신화에서는 밝음과 질서의 신인 인드라Indra가 흑암과 무질서의 신인 브리트라Vritra를 물리쳤다고 합니다. 현대 우주론에서도 우주는 혼돈에서 발생한 우주알이 대폭발(Big Bang)하면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무질서의 카오스Chaos 상태에서 질서의 코스모스Cosmos 상태로 전환된 것입니다.

그런데 19세기 이후 과학자들은 질서 뒤에 무질서가 생긴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시우스는 ‘전체 계界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정립하였습니다. 엔트로피는 무질서 정도에 대한 척도이므로 우주는 질서에서 다시 무질서한 상태를 향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볼 때 우주의 변화는 무질서에서 질서로, 다시 질서에서 무질서로 순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오스의 삼 단계 과정


김상일 교수는 『카오스와 문명』에서 태초에 있었다는 혼돈을 ‘원原카오스, 또는 알카오스’라 부르고, 코스모스는 카오스를 벗어난 상태이므로 ‘비非카오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질서 다음에 등장하는 카오스를 ‘초超카오스, 또는 얼카오스’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알카오스는 빅뱅이 일어나기 전에 우주가 ‘하나’였던 상태입니다. 비카오스는 다양한 만물이 생겨나 ‘여럿’이 된 상태입니다. 얼카오스는 ‘여럿’이 다시 ‘하나’로 돌아간 상태입니다. 이는 하나의 씨앗에서 새싹이 생生하여 줄기·가지·잎으로 장長하다가 하나의 열매로 성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우주의 삼 단계 변화를 뜻하는 우리말이 ‘한’이라고 합니다. 일체一體인 ‘한’이 생장성으로 삼용三用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과 문명은 이 ‘하나’에서 나와 ‘여럿’으로 쪼개어졌다가 다시 ‘하나’로 모이는 과정이다. 세 번째의 이 ‘하나’ 속에는 처음의 ‘하나’(一, one)와 두 번째의 ‘여럿’(多, many)이 종합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 속의 여럿’(一中多)인 상태이다. - 『카오스와 문명』, 김상일

인도 사람들도 이러한 3단계 과정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들은 범梵(Brahman)이라고 했다. 불교는 무無(Sunyata)라고 했으며, 중국 사람들은 도道(Tao)라고 했고, … 한국 사람들은 한을 인격화시켜 ‘하느님’ 혹은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 인류 문명사는 바로 이 ‘한’(혹은 梵, 無, 道)에서 출발하였다가 그것이 깨어져 다시 한이 되는 과정인 것이다. - 『카오스와 문명』, 김상일


인간 의식의 삼 단계 발전


우주의 계통발생(phylogeny)은 인간 개인의 개체발생(ontogeny) 속에 반복되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삼 단계 변화는 인간의 의식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습니다. 가장 낮은 단계는 물질적인 지각의 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자아의식을 하는 자의식적 단계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절대정신의 단계입니다. 이처럼 발달심리학은 만물이 어떤 높은 목적을 지향하여 움직인다고 보고 있습니다.

삼원적三元的, 혹은 삼단계적 의식의 발전 과정은 인간의 의식이 애매모호한 카오스의 상태에서 합리적인 비카오스적인 상태를 거쳐 얼카오스의 초합리적인 단계로 발전됨을 의미한다. - 『카오스와 문명』, 김상일


인간 의식의 삼 단계 발전 과정은 인류 문명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500만 년 전부터 4천 년 전까지는 알카오스의 시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때 인간의 의식은 주관과 자연이 분리되지 않았고, 인류는 우리라는 소속감을 공고히 하며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4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는 비카오스의 시기로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는 자아의식이 싹트고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얼카오스의 시기에 인류 문명은 분리를 초월하여 다시 하나로 통일하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 켄 윌버Ken Wilber는 『에덴을 넘어서(Up From Eden)』에서 피아제J.Piaget의 인지발달론과 문화인류학을 연관시켜 인간의 의식구조와 문명의 전개 단계를 8개의 문명소文明素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8단계보다는 9단계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삼원三元 구조는 팔괘가 아닌 구궁九宮으로 분화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원론에서는 ‘1 → 2 → 4 → 8 → 64’로 분화하고, 삼원론에서는 ‘1 → 3 → 6 → 9 → 81’로 분화합니다. 그러므로 얼카오스에서 알카오스로 넘어가는 단계는 9층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9층은 본체로서의 ‘한’(도)이 현상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한’이 압축 공약되어 있는 ‘공空태극’(씨앗의 핵核)과 같습니다.
*1) 인간 의식의 생장성 발달은 인간이라는 영장목이 지구상에 출현하여 사라지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우주 1년마다 새롭게 출현한 인류도 생장성의 의식 발달 과정을 반복한다.


천부경의 집일함삼과 회삼귀일


一(일)은 始(나)나 無始一(무시일)이오 析三極(석삼극)하야도 無盡本(무진본)이니라
하나는 천지만물 비롯된 근본이나 무에서 비롯한 하나이어라. 하나가 나뉘어져 천지인 삼극으로 작용해도 그 근본은 다할 것이 없어라. - 「천부경」

三一其軆(삼일기체)오 一三其用(일삼기용)이니라
삼은 일로 본체를 삼고 일은 삼으로 작용을 삼으니라. -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執一而含三(집일이함삼)하고 會三而歸一者(합삼이귀일자)가 是也(시야)니라
하나 속에는 셋이 깃들어 있고, 셋은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원리가 그것이다. - 『단군세기』 「서문」


일체삼용의 원리는 인류 최초의 계시록인 「천부경天符經」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본체인 일자一者는 삼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를 잡으면 그 속에 셋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집일함삼執一含三이라고 합니다. 또한 일자가 셋으로 드러나므로 셋을 수렴하면 다시 일자로 돌아갑니다. 이를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주는 하늘·땅·인간을 포함하고 있으며, 하늘·땅·인간이 하나 되어 우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정은 아버지·어머니·자녀를 포함하고 있으며, 아버지·어머니·자녀가 하나 되어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본중말의 변화 운동


본체에 내재된 삼원의 속성에 따라 우주의 변화도 삼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집일함삼과 회삼귀일이 일어날 때도 각각 삼 단계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집니다. 즉 일자에서 다자로 분열할 때는 본중말本中末의 과정을 거치고, 다자에서 일자로 통일될 때는 말중본末中本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2)
본本은 생명의 진액이 뿌리에 자리한 것을 형상한 글자입니다. 중中은 생명의 진액이 중간까지 올라온 것을 뜻하고, 말末은 지엽의 끝에 이른 것을 형상한 글자입니다. 식물이 자랄 때 생명의 근본인 뿌리에서 멀어지며 성장하는 것을 역逆운동이라고 하고, 원시반본原始返本하여 생명의 진액이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순順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본말本末과 유사한 글자가 있습니다. 말末보다 더 분열하여 극에 이른 상태를 형상한 미未 자입니다. 미未는 음도 아니고 양도 아닌 중의 상태(무극無極)입니다. 미未에서 분열 운동은 통일 운동으로 전환됩니다.
*2) 생성의 관점으로 보면 본중말은 생, 말중본은 성에 해당한다. 생장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본중말과 말중본의 전체 과정이 생장성을 이룬다.


그런데 생장성과 본중말은 개념의 차이가 있습니다. 생장성은 식물이 탄생하고 성장하여 열매 맺는 발전 성숙의 과정입니다. 이에 비해 본중말은 뿌리에서 멀어지면서 본래의 순수성과 생명력을 잃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말중본의 과정은 뿌리로 다시 돌아가는 원시반본의 과정입니다. 종교의 관점으로 보면 본중말은 일자인 신神에게서 멀어지는 과정이고, 말중본은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 신과 합일하는 과정입니다.

플로티노스의 일자 사상


서양철학사에서 일자(The One)에 대한 사상을 주창한 철학자가 신플라톤주의자인 플로티노스Plotinos(204~270)입니다. 그는 존재의 하향도下向道라 불리는 ‘일자로부터의 유출’과 구원의 상향도上向道라는 ‘일자와의 신비적인 합일’을 강조하였습니다. 플로티노스에 따르면 일자一者는 만물의 원초적인 근원으로 유한한 존재를 초월해 있는 신神으로 묘사된다고 합니다.

일자는 광명光明 자체요, 대립과 차별을 초월한 절대적인 통일체이다. … 우주만물은 일자에 의존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일자는 우주만물의 존재 근원이요 궁극의 원인이 된다. - 『서양 지성인과 만남』, 문계석


- 존재의 하향도, 삼 단계 유출설
그럼 우주만물은 일자로부터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플로티노스는 일자가 자체로 완전히 충만한 존재이므로 일자로부터 우주만물이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이 존재의 하향도인 ‘유출설流出說’입니다. 일자로부터 만물이 유출되는 과정은 삼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단계로 일자로부터 정신이 유출되어 나옵니다. 두 번째 단계로 정신에서 영혼이 유출되어 나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로 영혼에서 물질이 유출되어 나옵니다. 일자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으로 본중말(역운동)의 과정과 같습니다. 그런데 일자에서 유출된 우주 만유는 모두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봄여름에 식물이 뿌리로부터 멀어지며 생장하는 것은 가을에 열매를 맺어 종種을 보존할 씨앗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 구원의 상향도 삼 단계
그럼 어떻게 해야 일자와 합일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존재의 유출설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구원의 상향도라고 합니다. 구원의 상향도에도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혜, 용기, 절제, 정의를 발휘하여 쾌락과 번뇌를 벗어나는 영혼의 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올바른 사유를 통해 참된 인식을 소유하는 정신의 단계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사랑과 관조의 직관을 통해서 절대적인 일자와 합일하는 단계입니다.

플로티노스에 의하면 인간의 완성은 영혼의 정화를 통한 ‘일자와의 신비적인 합일’이 됨으로써만 가능하다. - 『서양 지성인과 만남』, 문계석

‘일자’와 합일하는 순간은 신비적인 경지에 몰입하여 본래적인 자아 속에 깃들어 있는 ‘일자’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 달리 말하면 인간의 내면에 깃든 ‘신과의 합일’이다. … 자아가 ‘일자’와 신비적인 합일을 이루는 것은 최고의 가치요, 더없는 행복이요, 궁극의 존재 목적이요. 자아의 완성이다. - 『서양 지성인과 만남』, 문계석


헤르메스 사상: 창조의 삼 단계


플로티노스의 사상은 서양의 르네상스와 근대과학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한 헤르메스 사상(Hermeticism)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3)
헤르메스 사상에서는 근본적인 힘, 즉 본질적인 실재를 디올(THE ALL)이라고 합니다. 디올의 우주 창조 과정은 신성한 에너지가 유출되어 진동에너지가 낮아지면서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영계, 정신계, 물질계가 형성됩니다. 유출의 극에 이르면 다시 영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여 각각의 혼에 깃든 영(Spirit of each soul)이 창조자와 합쳐진다고 합니다.
*3) 헤르메스학이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Hermes Trismegistos)의 가르침으로, 마법적인 비전祕傳이 포함된 철학이며 과학이다. 이집트의 신전에서 비롯되어 세대를 거쳐 전수된 헤르메스학의 요점은 ‘신과의 합일’이다. 우주 만물은 4원소와 또 하나의 제5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과 세계와 인간은 이를 매개로 통일성을 가지며 서로 합일한다. - 『헤르메스학 입문』


그런데 문제는 일자로부터 유출된 과정을 거꾸로 되돌리기만 하면 일자와 합일이 이루어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서 밝힌 것처럼 자연계에서 가역可逆의 과정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자연계에서는 봄여름에 증가하던 무질서도(엔트로피)가 가을과 겨울이 되면 줄어듭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주가 가역이 아닌 순운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가역은 생장生長 과정을 장생長生 과정으로 거꾸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순운동은 생장 과정에서 일자와 멀어진 우주 만물을 염장斂藏 과정을 통해 원시반본시켜 일자와 합일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자와 합일하는 순운동의 과정은 단순히 역운동의 과정을 거꾸로 밟아간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정화하고 생명의 진액을 연단하여 통일하는 수행修行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동양의 태극도


생장성, 또는 본중말의 삼 단계로 이루어지는 우주의 창조, 인류 문명의 발전, 인간 의식의 발달을 설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동양의 ‘태극도’와 서양의 ‘카발라’가 그것입니다.

태극도太極圖는 송대 성리학의 개조인 주돈이周敦頤(1017~1073)가 그렸습니다. 그는 『태극도설』에서 우주 만물이 무극, 태극, 음양, 오행, 건곤도성남녀, 만물화생의 순서로 발생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태극도는 도교의 ‘태극선천지도太極先天之圖’와 진단의 ‘무극도無極圖’를 참고하고 변형하여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도교에서 태극선천지도를 그린 목적은 도와 합일을 이루는 원리를 제시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플로티노스의 사상과 결부시킨다면 유교는 태극도를 존재의 하향도로 사용하고, 도교는 구원의 상향도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극도를 좀 더 살펴보면 맨 위의 원은 0무극입니다. 바로 아래의 감리괘坎離卦는 수水태극이고, 가운데 작은 원은 공空태극입니다. 오행 중의 토는 오황극이고, 아래쪽에 오행과 연결된 원은 10무극입니다.
*4)
그런데 태극도와 유사한 구조를 카발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4) 본지 2021년 2월호, 연재 27회 ‘우주의 탄생과 변화(본체론)’ 참고


유대교의 신비주의 카발라


- 절대무한 아인소프
카발라Kabbalah는 유대교의 신비주의 사상으로 입에서 귀로 직접 전수된 구전, 또는 전통을 의미합니다.
*5)
카발라에 따르면 우주는 아인소프Ayin-Sof에서 신성한 에너지가 유출되어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아인소프는 절대적 무한으로서의 신神으로 무無, 또는 충만한 공空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아인소프의 이런 성질은 태극도의 0무극無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모세는 신의 계시를 받은 후 그것을 율법(토라)에 기록했는데, 문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카발라로서 후세에 전했다고 한다.


- 10개의 세피로트 구조
아인소프는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그 자신의 순수한 에너지를 수축하여 10개의 빛으로 만들어 유출시킵니다. 창조주인 신이 10을 통해 이 세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피로트Sefiroth(단수로는 세피라Sefirah)라고 하는 이 빛은 세계를 구성하는 질료가 됩니다. 그리고 우주의 빛을 담은 세피로트는 여러 단계를 이루며 특별한 모습으로 형상화됩니다. 이를 세피로트 나무(생명수生命樹)라고 하는데 신화에 등장하는 우주수宇宙樹(신단수神壇樹)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피로트 나무는 자비의 기둥(우측)·균형의 기둥(중앙)·심판의 기둥(좌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시에 위로부터 아칠루트Atziluth(유출계/영계/불)·브리아Briah(창조계/정신계/물)·예치라Yetzirah(형성계/아스트랄계/공기)·아시야Assiah(활동계/물질계/흙)로 된 사중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세 개의 기둥과 네 개의 세계가 교차하는 곳에서 10개의 세피로트가 발생합니다.

아인소프에서 처음으로 유출된 빛은 ①케테르Kether(왕관)입니다. 케테르에서는 남성의 속성을 가진 ②호쿠마Hokhmah(지혜)와 여성의 속성을 가진 ③비나Binah(이해)의 에너지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태극도에서 감괘와 리괘의 중심에 공태극이 자리하여 음양 기운을 통일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케텔과 호크마, 비나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우주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④헤세드Hesed(자비)는 신이 빛을 창조하고 그 빛을 근원적 무질서인 어둠으로부터 분리시켜 낮과 밤을 만든 ‘창조의 제1일’을 나타냅니다. ⑤게블러Gevurah(공정)는 신이 물 가운데 궁창(하늘)을 만들어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눈 ‘창조의 제2일’을 상징합니다. ⑥티페레트Tifereth(미美)는 신이 땅과 식물을 만든 ‘창조의 제3일’을 나타냅니다. 또한 티페레트는 헤세드와 게블러의 힘이 결합하여 탄생한 것으로 둘을 중재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헤세드와 게블러는 태극도의 수水와 화火, 티페레트는 토土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⑦네쳐Netsah(승리)는 태양과 달이 만들어진 ‘창조의 제4일’을 나타냅니다. ⑧호드Hod(영광)는 바다와 하늘이 만들어진 ‘창조의 제5일’을 상징합니다. 네쳐는 태극도의 금金, 호드는 목木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⑨에소드Yesod(기반)는 아담과 이브가 만들어진 ‘창조의 제6일’을 상징합니다. 이는 태극도의 곤도성녀坤道成女와 건도성남乾道成男에 대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⑩마르크트Malkuth(왕국)는 ‘창조의 제7일’로 이날 신은 휴식을 취합니다. 또한 마르크트는 아담 카드몬(원형적 인간으로서의 신)의 조화 또는 완성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마르크트는 태극도의 10무극과 대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구원의 상향도, 7단계
이밖에도 카발라는 인간이 직접 신神과 합일하여 봉사하는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케테르는 신이 자신을 드러낸 최초의 모습이며, 마르크트는 신의 최종적인 모습입니다. 케테르에서 마르크트로의 하향下向은 신의 유출을 나타내며(존재의 하향도), 마르크트에서 케테르로의 상향上向은 신의 귀환을 나타냅니다(구원의 상향도). 카발라 수행자는 케테르에서 마르크트까지의 각 위계를 자유로이 왕래하면서 우주와 인간의 비밀에 통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발리스트Kabbalist들은 세피로트 나무가 인체를 상징한다고 여깁니다.

신과 합일에 이르기 위해서는 일곱 개의 헤칼로트hekhaloth(천궁天宮)를 통과해야 하는데, 마지막 일곱 번째 헤칼로트를 멜카바Merkaba(신의 보좌·전차)라고 합니다. 이러한 개념은 인도의 쿤달리니 요가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쿤달리니 요가에 따르면 인체 내에 있는 에너지는 7개의 층을 통해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7개의 에너지 중심점을 차크라Chakra라고 합니다.
*6)

*6) 호쿠마와 비나는 좌뇌와 우뇌로 하나를 이루고, 헤세드와 게블러는 좌우의 폐장으로 하나를 이룬다. 네쳐와 호드는 좌우의 신장으로 하나를 이룬다. 그러므로 7개의 헤칼로트는 7개의 차크라에 대응된다.


세피로트 나무에 열린 열매를 먹음으로 인간은 선과 악의 지식을 얻게 되며 그러한 관점에서 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게 된다. … 생명나무는 대대待對 관계에 있는 것들을 통합하고 상호 상반된 것들을 합일시키는 데 필요한 힘을 상징하고 있다. - 『비밀의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


- 영혼의 3단계
카발라에서 주목할 점은 영혼의 3단계라는 본중말 구조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트리아드triad는 케테르(1)·호쿠마(2)·비나(3)로 이루어집니다. 네쉐마Neshema 단계라 하여 지성계를 상징합니다. 두 번째 트리아드는 헤세드(4)·게블러(5)·티페레트(6)로 이루어집니다. 루아Ruah 단계라고 하여 도덕계를 상징합니다. 세 번째 트리아드는 네쳐(7)·호드(8)·에소드(9)로 이루어집니다. 네페쉬Nefesh 단계라고 하여 질료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각 단계는 차례로 트리아드의 중심 세피로트에 위치합니다. 네쉐마는 케텔(머리), 루아는 티페레트(가슴), 네페쉬는 에소드(생식기관)에 위치합니다. 이는 동양의 수행원리에 나타난 상단전·중단전·하단전과 대체로 상응합니다. 우주의 근원인 아인소프로부터 첫 번째 트리아드는 본本, 두 번째 트리아드는 중中, 세 번째 트리아드는 말末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발라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각각의 트리아드가 세 개의 세피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본중말 각각이 본중말을 다시 반복하는 것으로(3×3=9), 이런 구조는 「천부경天符經」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7)
「천부경」은 좀 더 구체적으로 ‘無 → 1 → 3 → 6 → 9 → 81’의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부경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형성된 신교의 인식론에서는 인간 의식의 발달 구조를 ‘성명정性命精·심기신心氣身·감식촉感息觸’의 구궁九宮 형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7) 각각의 음양이 다시 음양으로 분화되어 사상四象을 형성하는 것과 같다(2×2=4).


우리 국통맥의 본중말


본중말의 삼 단계 변화는 우리나라의 국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천 시간대 동안 ‘우리나라의 국명이 아홉 번 바뀐다’는 ‘진조구변도국震朝九變圖局’이 그것입니다.

九變之局(구변지국) 豈是人意(기시인의)
구변의 도국이 어찌 사람의 뜻이랴. - 『용비어천가』

神誌氏九變之道(신지씨구변지도) 將有其理(장유기리)
신지씨가 말한 ‘구변의 도’는 장차 그 이치를 드러내리라. - 『신교총화』


실제 우리나라의 국명은 본本에 해당하는 ‘환국 → 배달 → 단군조선’에서 시작하여, 중中에 해당하는 ‘북부여 → 고구려·백제·신라·가야 → 대진국·통일신라’를 거쳐, 말末에 해당하는 ‘고려 → 조선 → 대한민국’으로 아홉 번 바뀌었습니다. 상수학에서 9는 선천의 최대 분열수를 뜻하고, 10은 후천의 완성수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진조구변도국’은 우리나라의 국명이 본중말 과정을 거쳐 근본으로 원시반본하는 열 번째가 될 때, 선천 역사가 끝나고 후천 가을이 열린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상을 통해 인류 문명은 언어의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원리를 바탕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부경에 바탕을 둔 일체삼용의 원리입니다. 일체삼용의 원리는 우주변화의 근본 원리이자 인류 보편의 철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