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로 문화읽기 | [EBS 창사특집] 5원소, 문명의 기원

[칼럼]
한재욱 / 본부도장

EBS 창사특집 다큐 〈5원소, 문명의 기원〉은 위대한 인류문명을 일으킨 다섯 가지의 원소를 동양의 오행인 목화토금수로 보고 나무와 흙과 물과 철과 불에서 그 기원을 찾는 여정을 그린다. EBS 다큐프라임으로 방송되었으며, 한중 국제공동으로 제작된 동서양문명사 시리즈이다. 인류와 다섯 원소 간의 관계를 과학적 분석과 역사적 사건을 통해 바라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에 퍼져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모아 거대한 인간의 역사를 그려내는 스토리텔링 구조로 다섯 원소와 문명의 관계를 설명하는 명품 다큐이다. 다섯 개의 다큐 중 이번 호에는 1부 나무, 2부 흙 편을 정리한다.

이 다큐를 살피기 전에 먼저 『우주변화의 원리』 책에서 정의하는 오행의 의미를 살펴보자.


오행은 정신과 물질을 포함하는 의미
우주의 운동원질運動原質을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다섯 가지로 명명命名했다. 목화토금수라는 것은 ‘나무’나 ‘불’과 같은 자연형질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목화토금수의 실체에는 형形과 질質의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행五行의 법칙法則인 목화토금수는 단순히 물질만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요 또는 상象만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형이하와 형이상을 종합한 형形과 상象을 모두 대표하며 또는 상징하는 부호인 것이다. - 우주변화의 원리


이 다큐는 목화토금수를 주로 물질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우주변화원리를 공부하면서 오행은 우주 일 년이라는 사계절 변화의 거대한 시간을 움직이는 개념으로만 많이 치우쳐 생각해왔는데 이 다큐를 보면서 인간 생활의 도구와 기능적 측면에서도 인간의 문명은 오행에 의해 발전해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1부 나무, 지식을 담다


1. 신성과 통치의 코드, 나무


1부는 나무를 지혜와 신성을 내려 받는 존재로서 탐구한다.

“높은 하늘 아버지여, 넓은 땅 어머니여. 하늘신 탱그리여. 우리의 육체를 보호하소서. 우리를 진실의 길로 인도하소서.”
-다큐 : 부리야트 공화국의 샤먼이 나무 아래에서 하는 기도


시베리아의 샤먼은 천지부모 사상을 가지고 있고 북방 민족의 가장 높은 신 탱그리tengri는 삼신상제님을 뜻한다. 또한 부리야트의 샤먼들은 그들의 기도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 조상들의 영혼에 닿는다고 믿는다.

천지부모, 상제님, 조상님을 모두 나무를 중심으로 모시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샤머니즘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지구상에서 가장 외지고 넓고 깊고 혹독한 기후를 가진 호수 바이칼. 이 호수 가운데에 알혼섬이 있다. 샤먼들의 성지라 여겨지는 곳. 바이칼 호수를 지구의 배꼽이라 여겼던 시베리아의 샤먼들은 하늘과 소통하기 가장 좋은 곳을 이곳이라 여겼고 수백 리 길을 말을 타고 달려와 동굴에서 수행했다고 전해진다. 시베리아 기마 민족에게 나무는 하늘의 신성을 전달받는 통로였다. - 다큐 해설


알혼섬 위쪽 언덕엔 13개의 나무 기둥인 세르게가 있다. 세르게는 하늘, 땅 위, 땅 아래라는 삼계 우주를 상징한다. 이는 시베리아 샤머니즘 속에 천일天一(조화신), 지일地一(교화신), 태일太一(치화신)의 삼신문화가 원형 그대로 전해 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현재 60명 정도만 존재하는 시베리아 샤먼들은 신화를 통해 그들의 영혼이 나무에서 자란다고 믿고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상고 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은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린 성지聖地를 소도蘇塗라고 했다. 소도를 알리기 위해 세운 높다란 기둥이 솟대[立木]인데, 이 솟대는 ‘신을 모시는 기둥’이었다.

이런 샤먼 사상은 동아시아 곳곳으로 전해져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 다큐 해설


이 다큐에서는 나무에서 빌어온 권력의 모습을 통치자의 금관장식에서 찾는다. 바람이 불면 잎이 흔들릴 것 같은 선비족의 금관, 나무 위에 하늘의 매가 앉아있는 흉노족의 금관, 러시아 호구라치 무덤에서 발견된 금관도 사슴과 나무로부터 지혜를 전달받는 여신상을 표현한다. 모두 나무로부터 신성을 받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경주 적석목곽분에서 발견된 5세기 신라 금관은 나무와 사슴과 새가 등장한다.

신라 금관은 6개이고 거기에 나무가 있는 것은 신라 사람들도 관을 쓰고 있는 사람이 신성한 존재로서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금관에 나무를 형상화한 조형미를 가지고 금관을 제작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다큐 : 최성애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2. 지혜의 코드, 나무


신성의 상징이었던 나무는 종이로 변하는 순간 지혜의 전달자가 된다.

중국 안후이성에 있는 징현 마을에 가면 전통적인 방법으로 종이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1,000년 동안 옛 전통 방식으로 종이를 만들어오고 있는데요. 볏짚을 5~6개월 햇볕에 쬐고 비에 젖게 놔둬 표백이 되게 한 후 주재료인 청단나무를 섞어 종이를 만듭니다. - 다큐 해설


이 내용에서 전통 방식으로 정성을 다해 만든 종이는 그 과정에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장인정신이 아니라면 결코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최초로 종이를 만든 사람이 채륜으로 알려져 있다. 채륜은 한나라 시대 궁궐에서 일하던 관리였다. 당시는 죽간에 글을 썼는데 죽간을 보관하는 것이 꽤 번거롭고 힘든 일이 되어 죽간을 대신할 것을 찾다가 만들어낸 것이 종이였다고 한다.

인류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쐐기 모양 문자를 진흙에 새겨 도서관을 만들었다. 동양에서는 뼈에 새기는 갑골문이 있었고,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 양피지 등에 기록을 하였다.

105년에 채륜이 화제에게 자신이 만든 종이를 헌상하고 용정후에 봉해지자 사람들은 채륜의 종이를 ‘채후지’라 불렀다. 하지만 기원전 50~기원전 40년대에 제조된 종이가 중국 신안, 서안 지역에서 발굴되면서 채륜이 종이의 발명자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채륜이 개량한 제지술에 의해 종이 품질이 크게 향상되면서 사람들의 생활환경과 기록 문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다음백과사전 참고)

종이가 세상에 나오자 학자들은 머릿속에만 지식을 담을 필요가 없게 된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의미한다. 서예와 회화를 하는 시인과 화가들에 의해 생각과 지식이 종이에 담기게 됐다.

나무는 샤먼의 곁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왔고, 급속도로 대중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 다큐 해설


1,600년 된 고찰인 초당사에는 인도에서 온 승려의 일화가 있다. 승려 쿠마라지바는 인도 베다학에 관해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습득했으며 현자로 인정받았던 그는 초당사에서 수많은 불경들을 한자로 번역했다. 그의 번역으로 불교는 일본, 한국, 동남아로 전파될 수 있었다. 종이가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글쓰기가 좋고 휴대가 간편했던 종이, 기록 문명을 연 종이는 이제 서역으로 필연적인 여정을 시작한다. 중앙아시아의 관문 도시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시대에 모든 것이 모이고 교류가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아프라시압 유적에서 발굴된 궁전 벽화에는 아프라시압 왕을 만나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온 사절단이 그려져 있다. 돌궐인, 티베트인, 고구려인까지. 키르키즈스탄이 있는 탈라스에서 751년 전쟁이 벌어진다. 고구려인 고선지가 이끄는 당나라군과 이슬람 압파스 왕조의 대결에서 당나라 제지공들이 포로로 잡히게 된다. 이들이 사마르칸트의 시압강 주변에 정착한다. 오늘날에도 시압강 주변에서는 줄기 속에 섬유질이 많은 뽕나무(뽕나무도 비단길로 동방에서 전해졌다)를 이용해 전통 방식의 종이인 ‘사마르칸트지紙’를 만들고 있다. 이곳의 제지 공정도 중국과 흡사하다. 뽕나무 잎을 먹고 사는 누에에서 비단이 나오듯, 이 종이는 비단처럼 윤이 난다.

이것은 세계 12억 무슬림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보물이다. 7세기 우스만 칼리파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고대 아랍어인 쿠픽체로 쓰여진 꾸란의 유일한 정본이다. 가죽으로 된 이 꾸란을 만들기 위해선 최소한 40마리 이상의 사슴이 필요했을 것이라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종이의 전파와 함께 모든 것이 달라졌다. 종이는 가죽보다 싸고 얇고 가벼웠으며 대나무로 만든 펜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필사할 수 있었다. 종이가 꾸란의 전파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필경사들은 꾸란 외에도 수학, 물리학, 천문학, 역사 등을 잉크도 마르기 전에 출판해냈다.

모든 지식은 종이에 옮겨지면서 세대를 넘어 전 세계로 널리 보급됐다. 나무가 종이가 되는 순간 문명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다. 지식은 세상의 영광이고 무슬림의 명예다. - 다큐 해설


이슬람 사원 곳곳에 쓰여 있는 문구다. 이슬람 사원은 지식의 전당이다. 모스크 곳곳에는 교육기관인 마드라사와 도서관이 설립됐고, 학생들은 책을 통해 지식을 마음껏 습득했다. 이렇게 이슬람 학문이 꽃핀 것이다. 이슬람 시대 학문의 정점은 9~11세기로 ‘이븐 시나’가 살았던 시대이다. 이 시대는 수학, 천문학, 의학, 화학, 철학과 언어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 주제가 이 사람의 손끝에서 쓰였다. 또한 그는 ‘의학전범’을 전술한다. 그리스와 아랍의 의학을 집대성한 책이다.

이븐 시나는 유럽 학자들에게까지 의성이라 칭송받던 사람이다. 이미 17살의 나이에 천재성을 발휘했다. 그는 병리 현상과 세계 각지에 있는 수많은 약초들을 분석했고 최초로 암의 전이 과정을 알아냈으며 폐결핵이 어떻게 전염되는가를 밝혀냈다. 이후 서양의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의 책들은 라틴어로 번역되었고 18세기 유럽의 의과대학에서 의학전범은 기본 참고서가 되었다.

나무의 또 다른 얼굴인 종이! 중앙아시아에 지식의 황금기를 열었던 종이는 다시 필연적 여정을 계속한다. 종이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탄생한 지 1천 년이 넘은 12세기였다. 독일의 작은 도시 비텐베르크에는 종교개혁을 부르짖었던 마르틴 루터 동상이 서있다. 당시는 교회의 성직자만이 지식을 독점했고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암흑기로 불린다. 성직자들의 부패는 면죄부를 팔아 돈을 버는 지경에 이르렀다.

루터는 교회의 부당함을 전하는 반박문을 썼고 순식간에 필사되거나 인쇄돼 단 2주 만에 전 유럽에 전달됐다. 최초의 ‘팸플릿(전단지) 혁명’이었다. 루터는 값싼 문자를 통해 성서와 신학 사상 등에 접근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의 생각을 보급할 수 있었다. 종교개혁의 팸플릿 혁명은 종이와 인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독일 마인츠 구텐베르크 박물관, 이곳은 지식의 보편화를 이룩한 구텐베르크를 위한 박물관이다. 15세기 금세공업자였던 구텐베르크는 이 활자를 이용해 자유자재로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인쇄기를 만들어낸다. 활자만 맞추면 어떤 책도 혁명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한 대만으로도 일주일에 500권 이상을 찍어낼 수 있었다. 1,500년까지 유럽에서 인쇄된 책이 약 50종, 2천만 권! 인쇄술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탈리아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마르차나 도서관, 이곳에는 1만 3천 점에 달하는 중세 개인기록물과 기관기록물, 구텐베르크 시절의 인쇄물 2,883점이 보존돼 있다.
마르차나 도서관

베네치아 마르차나 도서관이 르네상스를 시작하는 기본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엘리자베타 시아라, 마르차나도서관 컬렉션 관리자

유럽의 르네상스가 종이와 인쇄술 없이 가능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종이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밖으로 꺼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했으며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고, 삶을 향기롭게 만든 또 하나의 숲이었다. - 다큐 해설


나무들이 빼곡했을 자리는 거대한 인공구조물이 차지했고 종이가 아닌 전자문명이 지식문화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나무야말로 자신의 몸을 통해 인간에게 지혜와 지식을 전달해준 문명의 어머니였다.

나무는 필연적으로 태양을 향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동양 사상에서 나무가 동쪽을 의미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태양 빛에 성장한 나무는 통치자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그 나라의 백성에게 생존과 문명의 길을 열어준다.

나무는 자신의 몸을 통해 얼마나 많은 학자들을 키워냈고, 또 얼마나 많은 지식을 세상 밖으로 내보냈을까. - 다큐 해설


1부 나무 편에서 가장 와닿는 문구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다시 위대한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종이가 된 나무는 책이 되어 수많은 사람을 깨어나게 하고 오늘날까지 문명을 일으켜왔다.

증산 상제님은 새 천지를 열어 주신 개벽장 하느님이시니, 9년 동안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항상 종이에 글이나 물형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하루는 어떤 사람이 상제님을 헐뜯어 말하기를 “종이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신미생(辛未生)이라. 통속에 미(未)를 양(羊)이라 하나니 양은 종이를 잘 먹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4:142:1~3)


우주 통치자 상제님은 신미생 양띠로 인간 세상에 오셨다. 9년 천지공사 내내 항상 종이에 글을 써 불사르시며 천지에 명을 내리시고 후천 5만 년 프로그램을 짜셨다. 오죽하면 종이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는 말까지 들으셨을까.

양이나 염소는 보통 종이를 잘 먹는다. 어린 시절 어머니 심부름으로 풀을 뜯기러 염소를 끌고 나가보면 가끔 길가에 떨어진 공책 조각을 먹는 것을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알아보니 양이나 염소는 소화력이 뛰어나서 종이에 있는 셀룰로오스마저 소화시켜 당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상제님은 “내가 양띠이고 양은 종이를 잘 먹는다”고 하시며 후천 5만 년 문명을 여시는 천지공사에 여념이 없으셨다. 그만큼 무수한 종이에 글을 쓰신 것이다. 종도사님께서도 “문명은 서책이다.”라고 하셨다. 글월 문, 밝을 명이니 글로써 밝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문명이란 단어의 뜻이 아니겠나 생각해본다.

자연스럽게 덴젤 워싱턴 주연의 영화 ‘일라이’가 떠오른다. 이 영화는 지구 문명이 황폐화되어 사람들은 글을 읽을 줄도 모르고 책을 구하기도 극히 어려운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문명 도시로 귀중한 책을 전하러 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악당은 그 책을 빼앗아 자신이 중심이 되는 문명을 열고 싶어 하는데 주인공은 죽어가면서도 기필코 이 책을 문명 도시에 전한다. 마지막에 그가 전하는 책은 다름 아닌 킹제임스 본 성경이었다. 2천 년 역사의 서양문화는 성경 책 한 권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에서 바라는 세상은 성경 책만 있으면 다시 문명을 열 수 있다는 관점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선천의 과거 역사를 정리하는 환단고기와 미래의 후천 오만 년을 여는 도전이 얼마나 소중한 책인지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인간이 지상에서 이루어 놓은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경이로우며 가치 있는 것이 책이다. - 언론인 칼라일


2부 흙, 생명을 품다


2부의 첫 장면은 이탈리아 베네토 지방의 한 작은 시골 마을 학교의 야외수업이다. 흙이 무엇인지, 씨앗이 어떻게 흙과 만나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는지를 배운다. 아이들은 땅을 만지고, 땅의 생명을 확인함으로써 땅의 소중함을 배운다.

너무도 흔한 물질이기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흙, 그러나 이 흙의 수고는 잠시도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씨앗으로부터 뿌리를 불러내 자신이 갖고 있는 온갖 자양분을 제공하고, 씨앗은 그 자양분을 바탕으로 마침내 지상에 얼굴을 내밉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27만 종의 식물. 이 식물을 키워낸 건 이 흙인 것입니다. - 다큐 해설


인류의 역사는 어머니 땅, 곧 흙과 동행의 역사이기도 했다. 다큐는 다음으로 중국 윈난성 쿤밍시에 있는 홍토지를 보여준다. 해발 2천 미터에 달하는 이 고원지대에서 조상 대대로 가꾸는 고구마, 옥수수, 보리와 밀, 그리고 감자와 같은 작물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다.

여기 사는 부부 농부는 일터에 나가기 전 반드시 애써 수확한 곡식을 꺼내 제단에 올림으로써 이를 주신 하늘과 조상신에게 감사함을 표합니다. 부부의 삶을 오래도록 지속시킨 것은 조상에 대한 감사와 자식에 대한 염원, 자신이 일군 땅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들은 흙을 믿었고, 매년 씨앗을 심었으며 비와 햇빛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글자는 몰라도 땅과 하늘, 바람과 비를 알아야 했던 농부는 이렇듯 자연의 섭리를 숙명적으로 터득해야만 했습니다. 농부들은 곡식이 잘 되고, 안 되고의 여부를 두고 흙을 탓하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조상 대대로 흙에 써 내려왔을 또 하나의 인생 교과서입니다. - 다큐 해설


이 해설은 정확히 상제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농가에서 추수한 뒤에 곡식 종자를 가려두는 것은 오직 토지를 믿는 연고니 이것이 곧 믿음의 길(信路)이니라.”(증산도 道典 8:34:2)


태상종도사님께서 그리신 우주변화원리 도표에서 봄·여름·가을·겨울 방위에 배치한 인도의 4덕은 4계절 변화에 따라 인간이 지녀야 할 정신으로 봄철은 ‘인仁’, 여름철은 ‘예禮’, 가을철은 ‘의義’, 겨울철은 ‘지智’이다. 그런데 종도사님께서는 인의예지를 강력하게 키우는 힘이 있다고 하셨다.

“그것이 바로 중앙의 토심土心, 즉 믿음[信]이다. 토는 천도 4덕의 근원이 되는 천지의 마음자리이다. 가을개벽을 앞둔 인간은 반드시 강력한 천지의 토심, 도심道心을 받아 내려야 한다. 왜 그런가?” 가을 천지로 들어가려면 화생토火生土 → 토생금土生金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본래 토土자리는 신의 세계로서 토심은 본심, 일심, 평화의 마음이며 만물을 조화시키는 마음이며 깨어있는 마음이다. 토심은 선천 종교에서 말하는 중도의 마음이며, 미국의 사상가이자 명상가인 켄 윌버Ken Wilber가 강조하는 ‘변치 않는 항상의식(constant consciousness)’이다. 토심은 상수로 말하면 동서남북 네 공간과 춘하추동 사계절을 조화하는 조화궁 15수의 정신이다. 이제 선천 닫힌 우주의 개인주의, 자기중심 사상에서 벗어나 인간과 인간, 문화와 문화 사이의 벽을 허물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가야 한다. 토자리에 계신 상제님이 바로 토심의 주재자이시다. - 개벽실제상황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한반도 농경문화의 비밀이 담긴 유물이 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농경문 청동기’는 고대의 농사 과정을 담아낸 타임캡슐이다. 2,500년 전 따비로 땅을 일구는 농부, 괭이로 땅을 파는 농부, 수확한 곡식을 토기에 담는 농부가 새겨져 있다. 같은 시기로 추정되는 진주 대평리 유적지로 볼 때 한반도에서 이미 활발하게 농사가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이 다큐는 한반도의 농사에 대해 이 정도로만 소개하고 있지만 우리 땅의 농사는 그 정도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고대의 볍씨가 출토되었다. 미국 아리조나대학교에서 토탄과 볍씨를 분리 측정하여 볍씨의 연대를 BCE 10,550년경으로 밝힌 이후, 소로리 볍씨는 1만 년 전 벼농사의 명확한 증거자료가 되었다. 소로리의 단립벼(야생벼가 아닌 재배종)는 현대 단립벼와 같은 것으로 관찰되었다. 서울대 신용하 명예교수는 한반도에서는 신석기가 막 시작되던 BCE 10,000년경부터 야생벼 가운데 단립벼를 선택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전기 신석기(BCE 10,000~BCE 6,000)에 이미 농경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1만 년 전 볍씨가 발견된 것은 당시 동북아 전역에 벼농사가 행해졌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흔히 농경문화는 ‘BCE 7,000년경 서남아시아의 오리엔트 지역, 즉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맨 먼저 발생’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소로리 볍씨가 발견된 후, 신석기 시대를 연 농경문화의 발원지로 동북아시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1만 년 전에 농경문화를 가장 먼저 일군 동북아시아인은 과연 누구인가? 그 답은 바로 『환단고기』에 들어 있다.

배달국 시절의 위대한 성인 제왕 중에 경농과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신농씨가 있다. 염제신농은 나무로 보습과 쟁기, 호미를 만들고 지력地力 있는 땅에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채소를 재배하였다. 그러므로 신농씨는 경농의 시조요 동서의학사의 원조이다. 또한 시장을 개설하여 천하의 백성과 재보가 모여들어 교역이 이뤄지게 함으로써 도시 문명과 산업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실제로 배달국, 단군조선이 일어났던 홍산문화 지역의 유물이 대량으로 발견된 조양시의 덕보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돌을 갈아 만든 쟁기, 도끼, 망치 등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최근 기후 연구로도 5,000~6,000년 전 한반도와 만주는 현재보다도 3~5도 높은 온난 다습한 기후였기 때문에 벼농사가 신석기 시대부터 이 지역 전역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농경 생활의 시작으로 인류의 생활에 일어난 일대 변혁을 신석기 혁명이라 한다. 이 다큐에서는 그 중심에 쟁기가 있다고 한다. 쟁기가 없었다면 인류는 그 많은 땅을 경작할 수 있었을까? 땅을 파서 들어 올리는 쇠보습과 들어 올려진 흙이 한쪽으로 뒤집어질 수 있도록 고안된 볏, 애써 힘을 주지 않아도 자유자재로 파는 깊이를 조절할 수 있는 한마루. 이렇듯 과학적 경험이 총 집결된 쟁기를 소가 끌게 함으로써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월등한 능률을 올릴 수 있었다.

농사에서 가장 힘든 일이 흙을 가는 일인데 가축이 농경에 이용됨으로써 사람이 중노동으로부터 해방이 되고 생산이 증대되는 풍요로워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 중심에는 쟁기가 있었다. - 박호석 전 농협대 교수


볏 쟁기가 세상을 바꾼 것이다. 고랑을 파면 땅이 숨을 쉬고, 토양이 뒤집혀 영양분이 생기고 배수가 잘되어 죽어있던 땅이 되살아난다. 황무지들이 개간됐고, 뿌리를 잘 내린 작물의 알곡은 더욱 여물고 튼실했다. 바야흐로 잉여생산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더 이상 전답에 매달리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어 도시를 형성했다. 쟁기라는 작은 발명품이 제국의 틀을 만들어낸 것이다. 당나라 시절 800년대 수도인 장안의 인구는 약 백만 명에 이른다. 이는 300년 후인 1,100년대 런던의 인구 15,000명, 프랑스 파리 20,000명, 로마의 인구 35,000명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 규모였다. 셰필드대학교의 교수 존 홉슨은 이 차이가 곡선형 볏 쟁기의 힘이라 주장한다.

이집트를 포함한 지중에 연안에선 이미 4~5천 년 전에 쟁기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집트 벽화 속의 쟁기에서는 볏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씨를 뿌리기 위해 땅을 긁는 수준의 단순한 쟁기일 뿐이다. 그리스 시대에도, 1200년대까지도 마찬가지다. 16세기 초 드디어 볏 쟁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1730년대에 쇠로 만든 곡선형의 볏 쟁기, 로더럼 쟁기가 보급된다. 다큐에서는 이 로더럼 쟁기도 동양에 왔던 네덜란드 선원들이 볏 쟁기를 가져간 것이 계기가 되어 영국의 로더럼 쟁기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볏 쟁기가 유럽의 경제 발전에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증기기관이 발명된다. 볏 쟁기를 다수 장착한 트랙터들이 밭을 일구고, 할 일이 없어진 농부들은 산업현장으로 몰려들었다. 쟁기는 이처럼 인류 문명에 엄청난 역할을 했다. 쟁기는 흙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도구이다. 다시 말하지만 환단고기에 의하면 경농의 시조는 배달국의 성인 염제신농씨이고 이분이 쟁기를 만들어 보급했다. 유럽인들은 위도가 높은 곳에서도 잘 자라는 밀을 농사지었고, 아시아인들은 일조량이 충분한 까닭에 쌀농사를 지었다. 모두 흙이 주는 풍족함에서 삶을 이어가고 역사를 만든다.

이 땅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줍니다. 우리의 핏줄과 같아요. - 베트남 호앙수피의 다랑논 농부


인터뷰에 등장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쌀을 단순한 음식으로 보지 않는다. 조상의 은덕이고 흙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은 약 400만 톤, 수확의 대부분은 사람의 손이 아닌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베고, 옮기고, 훑는, 지난 수천 년에 걸친 조상들의 경험이 기계 속에 들어가 그 노동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흙을 밟지 않아도 얻어낼 수 있는 곡식, 오늘 우리는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흙과 멀어지게 됐다. 상점에 진열된 수많은 야채 속에서 누구도 흙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알고 있을까? 지구를 덮고 있는 평균 두께 1m의 흙이 오늘날의 문명을 일군 자양분이라는 것을. - 다큐 해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즉 농사는 천하의 가장 큰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농사야말로 하늘과 흙을 믿고 순리에 따른다는 의미일 것이다.

흙은 우리의 생명과 삶과 문화, 꿈과 기억 모두를 품고 있는 가장 거대한 그릇이다. - 다큐 해설


부분으로 보면 흙이지만, 전체로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어머니 땅 지구다. 〈2부 흙, 생명을 품다〉 편은 땅 어머니에 대한 인식으로 끝나고 있다. 이 다큐를 보면서 도전 성구가 깊게 와닿았다. 증산 상제님께서도 우주 통치자 하나님이시지만 인간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으니 땅 어머니께 존댓말을 쓰시고 고축하셨다. 상제님께서는 평소에 흙으로 물건을 잘 만드셨고, 특히 사람 만들기를 좋아하셨다. 다큐 마지막에 김제 평야의 한 농부가 이렇게 말한다. “흙은 나의 생명이죠.”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순환이 느껴지는 말이다.

상제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들에서 진지 드실 때는 항상 음식을 드시기 전에 “어머니, 어머니! 제가 여기 도량 구경을 왔는데, 여기 데리고 온 일꾼들 모두 충실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고축(告祝)하시며 밥을 세 번 떠 놓고 드시니라. (증산도 道典 9:62)


상제님께서는 흙으로 그릇은 물론 어떤 것이든 잘 만드시는데 특히 사람을 잘 빚으시니라. (증산도 道典 4:142:6)


이번 호에서는 ‘다큐프라임 5원소, 문명의 기원’에서 ‘나무와 흙’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나무는 신성과 지혜로서 현실적으로는 책으로서 인간과 함께했고, 흙은 딛고 설 땅과 곡식을 주고 경제와 문명을 세울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우주변화의 원리에서는 목화토금수의 오행이 절대법칙이라고 했다. ‘나무와 흙’ 외에 우주의 운행원리이자 원소로서의 ‘물과 철과 불’도 인간 문명에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로 다음 호에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인쇄술의 원조는 고려Korea
다큐의 이 부분에서 아쉬웠던 내용을 보충해 보면 이렇다. 이 종교개혁의 원동력이었던 인쇄술이 사실은 Korea(고려)에서 배워간 것이라는 충격적 사실이다. 2005년 방송통신 분야의 세계적 거물들이 대거 참여한 서울디지털포럼에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이런 발표를 한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할 즈음 Korea로부터 막 귀국한 교황의 사절단이 금속활자에 관한 그림 등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절단은 구텐베르크가 알고 지내던 친구였습니다.”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앞서 고려는 금속활자 인쇄술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인쇄술이 고려에서 전해졌다는 것을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사람이 세계적인 행사 자리에서 발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