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姜씨에서 파생派生된 성姓씨들

[한국의 성씨]
나라에 역사가 있고, 각 개인에게도 혈통의 역사가 있다. 나라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는 함께 맞물려 간다. 나라의 역사가 파괴되면 개인 성씨의 역사 역시 뒤틀리기 마련이다. 한민족은 중국과 일본에 의한 역사의 왜곡으로 나라의 역사가 왜곡·사장되어 있다. 동시에 성씨의 역사도 숨겨지고, 왜곡되고, 미화된 부분이 많다. 지금부터 자신의 뿌리를 찾는 성씨 여행을 시작해 보자.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


시조공정始祖工程
몇 해 전 중국 후난성湖南省 주저우시에 있는 염제릉에서 중국 정부는 난데없는 ‘시조공정始祖工程’을 벌였다. 2007년 11월 박승준 조선일보 중국특파원의 보고에 의하면 18일 오전 중국 후난성의 시골 마을 옌링炎陵현에는 “염황炎黃(염제炎帝와 황제黃帝)의 자손들은 시조始祖를 잊지 않는다.”, “염제炎帝(신농씨)의 정신을 널리 펴서 중화민족을 단결시키자.”라고 쓰인 붉은 글씨의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전례를 주재한 저우창 성장은 능 내부의 염제상 앞에서 삼배三拜를 올린 뒤 “우리 시조를 높이 받드는 길이 우리 중화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염제릉이 있는 옌링현은 중화민족의 성지聖地”라고 치켜세운 후 “성지 염제릉은 중화민족 정신의 고향”이라고 강조하였다.

역사를 조금만 더 깊이 연구하다 보면 중국사의 시초는 전부 동이족 역사를 떼다가 하화족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으니, 이렇게 남에게 뺏기고 있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삼황오제는 전부 동이족
그러나 중국의 3황 5제는 전부가 배달동이족이다. 실제로 1958년 대약진운동 때 황제헌원黃帝軒轅과 소호금천少昊金天의 묘가 동이족이라는 이유로 파헤쳐진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중국 정부는 이들을 신화 속의 인물에서 역사상의 실존 인물로 만들어 고위관료들이 몰려가 제사를 올리며 중화민족주의中華民族主義를 부르짖고 있다. 우리 사학계가 치우蚩尤(천황)의 역사를 우리 역사로 넣지 않자 중국은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삼황오제로 불리는 고대 우리 조상들을 거의 다 중국에 빼앗긴 것이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중화민족주의를 앞세워 국민들에게 중화의 깃발 아래로의 대단합을 호소하고,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라는 자부심을 국민들이 갖도록 많은 사업을 가열하게 벌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 ‘시조공정’인 것이다. 그러나 100% 완전범죄가 없듯이 역사왜곡은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다.

염제 신농씨는 누구인가?


동방 신시 문명사에는 배달의 위대한 두 분의 성인 제왕이 계신다. 그중의 한 분이 동양철학의 아버지요 인류 문명의 창시자인 태호 복희太昊伏羲씨이다. 이분은 인문지조人文之祖로 중원 땅에 문명 탄생의 파종播種을 하셨다. 그리고 경농耕農의 시조이며 동서의학사의 원조이신 염제 신농씨는 문명 개화의 이종移種을 하였다.

상제님께서는 직접 당신님의 신원을 밝혀 주시면서, 인류 성씨 문화의 뿌리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상제님께서는 강姜가가 성의 원시라고 하시면서 현존 성姓 중에서 강성이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을 밝혀 주셨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강성으로, 한민족으로 강세하심은 곧 강성의 원조인 신농씨가 동방 배달의 성군이었음을 보여 준다.

도전에서 만나는 신농씨
* 강씨는 인류의 시원 성(姓)이니 상고시대 동방 배달의 신농씨(神農氏)로부터 시작하니라. 신농의 아버지 소전씨(少典氏)가 군병 감독의 명을 받고 강수(姜水)에 살았으니 신농이 그곳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성을 강(姜)씨로 하니라. 신농의 후손 강태공(姜太公)은 동방 신교의 일맥(一脈)을 한족(漢族)에 전수하고, 병법(兵法)과 정치(政治)로써 천하 만세에 은혜를 베푸니라. (道典 1:12:2~4)

* 인류의 뿌리 성씨로 강세하심
세상에 성(姓)으로 풍(風)가가 먼저 났으나 전하여 오지 못하고 다만 사람의 몸에 들어 체상(體相)의 칭호로 쓰이게 되어 풍신, 풍채, 풍골 등으로 일컫게 되었을 뿐이요 그 다음에 강(姜)가가 났나니 강가가 곧 성의 원시라. 그러므로 이제 개벽시대를 당하여 원시로 반본하는 고로 강가가 일을 맡게 되었느니라. (道典 2:37) 



환단고기桓檀古記 속의 신농씨
환단고기가 도가사서로서 가진 커다란 가치 중 하나는 한중일 3국의 성씨에 대한 기원을 자세히 밝혀 준다는 사실이다. 우리 한민족 성씨의 유래, 특히 한중일 3국 성씨는 환단고기의 전거에 의하지 않고는 그 뿌리를 구체적으로 살필 수가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신교문화의 원전이며 도가사서의 결정판인 환단고기를 통해 염제 신농씨의 혈통을 세찰하는 것이 뿌리 시조역사를 밝히는 첫걸음이라 할 것이다.

동양 의학醫學과 농사農事의 시조인 신농씨의 혈통

神農(신농)이 起於列山(기어열산)하시니 列山(열산)은 列水所出也(열수소출야)라.
神農(신농)은 少典之子(소전지자)이시오
少典(소전)은 與小皞(여소호)로 皆高矢氏之傍支也(개고시씨지방지야)시니라.
盖當世之民(개당세지민)이 定着爲業(정착위업)하야 漸至成阜(점지성구)하고 穀麻藥石之術(곡마약석지술)이 亦已稍備(역이소비)하니 日中爲市(일중위시)하야 交易以退也(교역이퇴야)라.
신농은 열산에서 창업을 하셨는데 열산은 열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시고 소전은 소호와 함께 모두 고시씨의 방계 후손이시다. 당시 백성이 정착하여 각기 생업에 종사하여 점차 인구가 증가하였다. 곡식과 삼을 많이 생산하고 각종 의약과 치료법도 점차 갖추어지자 한낮에 시장을 열어 교역을 하고 돌아갔다. (환단고기 신시본기)


강씨姜氏에서 갈라져 나간 성姓씨


신농씨의 계보
신농은 고시씨의 방계 소전의 아들로 몽산곡蒙山谷에서 태어나, 구룡천九龍泉에서 목욕하고 강수姜水에서 오래 살았다. 그가 강수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강姜씨가 되었다. 강씨의 마을은 지금의 중국 섬서성陝西省 보계寶鷄 남쪽 교외의 강성보 일대가 된다. 보계는 신농의 고향이다. 보계와 강씨족의 족보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신농의 후예로 8대의 수령이 대를 이었다고 한다. 이 내용은 <자치통감資治通鑒 외기外紀>에 기록되어 있다.

신농의 계보에 대해서는 “제1대 염제 신농炎帝神農부터 시작하여 2대 제괴帝魁, 3대 제승帝承, 4대 제명帝明, 5대 제직帝直, 6대 제리帝厘, 7대 제애帝哀, 8대 제유망帝楡罔까지 426년간 나라가 이어진다. 신농이라는 호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임괴臨魁(제2대 제괴)로부터 유망 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염제 신농의 51세손이 주나라 창업의 1등 공신 강태공姜太公(呂尙, 子牙)이다. 강태공은 후에 주나라의 왕이 되었다. 강태공의 자손으로부터 파생된 성씨를 살펴보면 중국에서는 천수天水 강씨를 비롯하여 고高, 노盧, 여呂, 구(丘,邱), 정丁, 최崔, 시柴, 허許, 사謝, 하賀, 경慶, 장章, 제齊, 신申, 악岳, 기紀, 상尙, 두钭, 강强씨 등 총 102개의 성씨가 있다.

한국에서는 강태공의 후손으로 8개 성씨가 있다. 진주 강씨姜氏, 노씨盧氏(교하 노씨 등), 구씨丘氏(평해 구씨), 여씨呂氏(함양 여씨 및 성산 여씨), 최씨崔氏(충주 최씨 및 전주 최씨 대다수), 정씨丁氏(압해 정씨 및 나주 정씨), 시씨柴氏(태인 시씨), 장씨章氏(거창 장씨) 등이 그들이다.

강태공 사당에는 해마다(매년 9월 12일) 강태공의 후손들과 강씨에서 분화된 성씨들이 대거 참례를 온다. 염제 신농씨의 후손들은 강씨를 비롯해 250여 성씨가 있는데 중국과 대만, 홍콩 외에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고 한다.

파생 성씨


1) 여呂씨
강씨姜姓에서 갈라진 여씨呂氏는 강씨의 원시조인 염제 신농씨(姜石年)의 후대이다. 중화 강성의 중시조인 강백이姜伯夷는 우임금 때 치수의 공을 세워 여국呂國 땅에 봉해져 강백이의 자손들이 여씨呂氏를 성으로 삼았다.

여씨呂氏의 대표적인 후손으로 강태공 여상呂尙, 진시황을 시황제로 옹립시킨 여불위呂不韦와 그의 아들인 진시황, 한나라 때에는 전한 초기에 국권을 잡은 여태후(여치), 한나라 말에는 대장군 여포呂布가 있다.

2) 고高씨
강태공의 11세손 강혜姜傒가 제나라 16대 왕 제환공 강소백姜小白을 제나라 임금으로 옹립한 공으로 고高씨가 되었다. 강혜는 오늘날 중국의 모든 한족 고씨(발해 고씨, 광릉 고씨, 경조 고씨, 암문 고씨 등)의 시조이다. 고씨高氏 중에는 수나라 건국 이전 남북조 시기에 27년간 존속한 북제北齊의 황성皇姓 ‘발해 고씨’가 있다. 황제 고환은 강태공의 50세손이다[고환(추존황제) → 1대 황제 고양 → 2대 황제 고은 → 3대 황제 고연 → 4대 황제 고담 → 5대 황제 고위 → 6대 황제 고항]. 고혜 → 고환 → 고양 이후로 70대까지 세계가 이어져 현재 중국 고씨는 1,600만 명으로 중국 성씨 순위 15위에 달한다.

3) 시柴씨
강성에서 갈라진 시씨柴氏에서는 오대십국 시대의 명군으로 꼽히는 후주後周의 황제 시영柴榮, 그의 아들 시종훈柴宗訓이 배출되었다. 시영은 누나가 곽위郭威의 처가 되면서, 곽위의 휘하 아래서 곽위가 패업을 이루어 후주의 태조가 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어렸을 때부터 곽위의 집에서 길러져 곽위의 양자가 되었다. 곽위가 사망하자 후계자로 지명되어 즉위한다.

4) 악岳씨
강성에서 갈라진 악씨岳氏에서는 금나라로부터 마지막까지 남송을 지켰던 중국의 구국영웅 악비岳飛가 배출되었다.

5) 허許씨
강씨에서 갈라진 허씨許氏는 허문숙許文叔(姜丁)이 세운 허국許國의 국성이다. 600여 년간 20대에 이어 통치하였다. 후손 중에 허신許愼은 중국어학中國語學 분야에서 경전經典으로 꼽힐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저술하였다.

6) 오吳씨
중국의 오씨吳氏는 대부분 황제헌원의 후손인 희성姬姓 오태백吳泰伯계가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더 역사가 오래된 염제 신농씨의 강성계 오씨吳氏가 있다. 산동 지방의 오씨는 염제의 후손인 강성계 오씨가 많다.

7) 주朱씨
명나라 황제 주원장의 주씨朱氏는 본래 염제 신농씨의 별칭인 염제 주양씨炎帝朱襄氏에서 갈라져 나간 성씨이다. 즉 강성姜姓 주씨朱氏이다. 특히 주원장의 손자인 건문제 주윤문은 늘 염제 주양씨 능전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중국의 주씨 종친들도 중국 주씨의 득성 시조이자 원시조인 염제 주양씨의 릉陵에 가서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8) 홍洪씨
홍씨洪氏는 염제 신농의 후손인 공공씨共工氏에서 나온 성씨다. 중국의 돈황 홍씨가 여기에 해당되고 한국의 남양 홍씨 당홍계도 같다는 설이 있다.

9) 방方씨
방씨方氏는 염제 신농씨의 11세손인 방뢰씨가 하남성 방산 지방에 봉해져서 그 지명을 따서 방씨方氏가 되었다. 한국의 온양 방씨가 해당된다.

10) 공孔씨
공자의 성씨인 공씨孔氏는 황제헌원의 희성계 공씨가 대부분이나, 제나라 강태공의 후손 일부가 공씨孔氏가 되었다.

11) 정丁씨
정씨丁氏는 강태공의 아들인 제정공 강급에서 탄생한 성씨이다. 한국의 압해 정씨, 나주 정씨 등도 강태공의 후손이다.

12) 습習씨
춘추시대에 염제 신농씨의 후손이 세운 나라 중에 습나라(습국習國)가 있었다. 습국의 멸망 이후 습나라의 군주였던 강후姜侯(습후)의 후손들이 나라의 국명을 따서 습씨가 되었다.

13) 노盧씨
강씨에서 갈라진 노씨盧氏는 강태공의 11세손 강혜姜傒(중국 고씨高氏와 노씨盧氏의 공동 시조)의 후손이다. 강혜가 제나라 16대 왕 제환공 강소백姜小白을 제나라 임금으로 옹립한 공으로 고씨를 하사받고 또 제나라 노현盧縣 땅을 식읍으로 받았다. 그 자손들이 노현의 이름자를 따서 노씨盧氏를 창설했다. 범양 노씨范陽 盧氏가 강혜의 자손들이다.

우리나라 노씨盧氏에서는 두 명의 대통령이 탄생하게 되는데, 바로 노태우와 노무현이다. 특히 전 대통령인 노태우와 노무현은 중국 산동성 강태공 사당에 직접 참배를 하였다. 2000년도에 강태공 사당에 방문하여 노태우 전 대통령이 쓴 ‘선조의 높은 뜻을 받드오리다’라는 글이 강태공 사당에 지금도 비치되어 있다.

14) 중국계 최崔씨
중국의 최씨崔氏 즉, 중국의 청하 최씨(현재 한국의 충주 최씨, 전주 최씨 일부도 해당)는 강태공의 손자인 강계자가 제나라 3대 왕의 자리를 서제인 강득에게 양보하고, 산동성 최읍에 봉해져 살면서 최씨가 되었다. 최씨는 특히, 당나라 때 황제에 필적할 만한 명문 귀족 성씨로 세력을 떨쳤다. (당나라 명문 귀족 4대 성씨 : 최崔, 왕王, 사謝, 노盧)

15) 베트남 건국, 웅왕雄王 왕조
베트남의 경우 베트남 민족의 시조이자 건국자인 녹속(경양왕)과 그의 아들인 낙룡군은 염제 신농씨 강씨의 후손이다. 염제 신농씨의 3세손인 제명이 무선의 딸과 혼인하여 녹속을 낳았는데 그는 경양왕이 되어 남방의 적귀국(베트남)을 다스리게 되었고, 용녀와 혼인하여 낙룡군을 낳았다. 낙룡군은 부친을 이어 베트남을 다스리게 된다. 낙룡군의 아들 중 장남인 웅왕이 베트남의 건국자가 되어 건국 이후 베트남은 그의 후손들이 15개 부락으로 나누어져 베트남 민족을 이루었다. 베트남 건국으로부터 강성 웅왕 왕조는 18대를 존속하게 된다. 즉 베트남인은 강씨姜氏의 후손인 것이다.

16) 베트남 쩐 왕조, 진陳씨
베트남 쩐 왕조를 건국한 진씨陳氏는 원래 강씨에서 갈라진 강성계 사씨謝氏이다. 강성姜姓국인 신국왕 강좌의 11세손 강신백의 후손 중 사령운의 자손인 ‘사승경謝升卿’은 안남(베트남)으로 이주하였고, 성을 진씨陳氏로 바꿨다. 그의 아들 사경謝煚, 진경陳煚이 베트남 ‘쩐 왕조’의 개국황제가 되었다. 즉 베트남 쩐 왕조 진씨는 강성姜姓 진씨陳氏, 사성謝姓 진씨陳氏이다.

17) 태국계 구丘씨
강성에서 갈라진 구씨丘氏는 강태공의 아들이자 삼남인 구목공丘穆公을 원시조로 그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그 후손 중에 태국泰國(Thailand)의 31대 총리였던 탁신친나왓(구달신丘達新), 그의 여동생인 태국 제37대 총리(대통령) 잉락친나왓(구영락丘英樂)이 배출되었다. 구달신과 구영락의 선계는 구춘성으로, 그들은 구춘성의 4대손이다. 청조 말년, 타이완에 세거하던 중국 강성姜姓 구씨丘氏인 구춘성이 섬라(태국)로 가게 되는데 태국의 화교 재벌가로 유명하였으며, 그의 후손은 현재 4대까지 이어졌다. 구달신의 경우 총리 임기 때 타이완과 태국에 있는 구씨 종친회를 방문하였다고 한다. 구씨는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전역에 분포하며, 특히 태국에 집중되어 있다.

참고문헌
증산도 道典
『환단고기』 「신시본기」 (안경전, 상생출판, 2012)
위키백과 강씨
2007. 11. 09 조선일보 “중국 난데없는 시조공정”


설렁탕의 유래
진주강씨대동보晋州姜氏大同譜에서 염제 신농씨는 기원전 3218년 음력 4월 26일에 천수天水(현 감숙성 위천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날은 후베이湖北성 수이저우隨州시에서 한국을 비롯한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홍콩 그리고 중국의 각 성省에서 온 2백여 대표단이 모여 ‘신농대제탄신神農大帝誕辰祭’를 열어 염제 신농씨를 추모하며 제사를 봉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시대 이후로 농신農神으로서 신농씨와 후직씨后稷氏에 대한 제사를 지냈음이 기록되어 있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는 '선농단先農壇'이라는 제단이 있는데, 조선 시대에 봄이 되면 임금이 직접 참석해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임금도 이때만은 백성들과 함께 직접 소를 몰고 밭을 가는 의식을 했는데 이를 친경親耕이라 하였다. 제사와 친경이 끝나면 임금은 백성들에게 술과 소뼈를 푹 삶아 곤 '선농탕先農湯'을 내렸는데,  선농탕의 이름이 바뀌어 설렁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곡식의 신이 바로 염제 신농을 가리킨다.

선농단에 같이 배향된 후직씨의 어머니 역시 신농씨의 후손으로 강원姜嫄이다. 후직씨의 초기 이름은 기棄(버릴 기: 후직씨의 탄생 설화는 고구려 추모대왕과 유사하다. 자세한 사항은 『사기』 「주본기」 참조)로 어릴 때부터 삼과 콩 따위를 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는 요임금 시대로 기棄는 농업에 관한 직책을 맡아 크게 흥하게 했으며, 이로 인해 주 왕실의 성인 희姬를 부여받았다고 한다. 이 후직씨의 15대 손이 바로 주나라 문왕이다.
(참고: 한국문화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