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사람을 살려 보은하겠습니다 외 (최옥경, 김이순, 이익호, 민영숙, 임주성)

[입도수기]

반드시 사람을 살려 보은하겠습니다


최옥경(여, 53) / 인천주안도장 / 149년 음력 6월 입도

진리를 찾아 헤매던 노정


저는 전주 최씨 평도공파 최유경 할아버지의 27대손입니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이며, 인천이 고향이시고, 아버지는 개성이 고향이십니다. 아버지는 6.25 전쟁 때 월남을 하셨고, 어머니와 결혼하셔서 슬하에 5남매를 두셨습니다. 그중에 저는 넷째로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두 살 아래인 남동생이 고등학교를 마친 1987년에 부모님은 어머니의 고향인 인천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저는 외국어대학교 대학원 2학년(1992) 중간에 니가타현 현비縣費 유학생으로 니가타대학에서 1년간 공부할 기회를 얻었고, 그 인연으로 지금의 남편과 1999년에 결혼하여 2000년부터 니가타현에 있는 나가오카시에 살고 있습니다. 전공은 수학과 국어국문학이고, 현재는 나가오카 토요한글학교에서 2세들과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으로 원광디지털대학 한국어문화학과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1학기 언어학개론의 과제인 EBS 다큐멘터리 <문자의 기원>을 보고 감상문을 쓰기 위하여 유튜브를 보게 되었고, 참고로 홍산문화, <환단고기 북 콘서트>, <개벽문화 북 콘서트>, <소리로 듣는 증산도 도전>을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년 전부터 남은 50년 생애를 올바로 살기 위해 신앙을 가져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신앙을 찾아 헤매고 있던 도중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일련정종日蓮正宗, 현정회顕正会, 나가오카 교회, 나가오카 가정교회(통일교회의 신명칭)를 전전하면서 의문을 갖고 있던 중에 상제님 말씀을 듣고, 통일교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문선명씨가 보천교에 몸담은 적이 있다는 기록을 읽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증산도를 방문해서 사실을 확인하고 진리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때마침 한국에서 재외동포 한국어 교사들에게 1주간 교육이 있어서 예정보다 일주일 일찍 귀국하여 인천주안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상제님의 말씀이 진실임을 확인하고


원래는 나가오카 토요 한글학교 졸업생 중에 한 명이 현재 공주대학교 한민족교육문화원 재외동포 교육센터에 재학 중이라서 공주대학을 방문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정을 취소하고 바로 인천 친정으로 와서 인천주안도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고향인 충청도에서 교육을 받을까 하여 공주, 논산, 대전 등에 있는 도장을 검색하다가 어머니가 계신 인천에서 교육을 받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일본에서부터 증산도 홈페이지의 국내 도장 리스트에서 인천주안도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천에 와서 언니에게 인천주안도장 검색을 부탁하여 통화를 하였습니다. 여성분(고원덕 포감)이 전화를 받았고, 친절히 도장을 안내받아 7월 8일 오후에 방문을 하였습니다. 도장에 방문하여 김완주 수호사님께 한국에서의 제 일정을 말씀드리고, 국내에 있는 동안 상제님의 진리를 공부할 수 있도록 부탁을 드렸습니다.

갑작스런 청인데도 불구하고 수호사님은 흔쾌히 스케줄을 잡고 교육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소리로 듣는 증산도 도전> 전편을 듣고 교육을 받아서인지 어렵지 않게 『증산도 기본교리』 1,2편 교육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상제님의 천지공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을 듣게 되어 기뻤습니다. 상제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다 진실이었구나 하는 믿음이 더욱 확실하게 다가왔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하루 종일 교육을 담당해 주신 김완주 수호사님, 이래경 포정님, 길이숙 수석포감님, 고원덕 포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되다


사실 저는 마음에 커다란 번뇌를 안고 주안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가정교회 교리에 대한 의문과 가정교회에서 3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한 신자 부부의 삶에 대한 자세에 실망을 하고, 그로 인해 그 부부를 미워하게 된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척을 쌓지 말라고 하셨거늘 내가 쌓은 공덕을 그 몇 배의 죄로 바꾸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면서도 미워하는 마음을 해소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마음을 끊기 위하여 상제님 말씀을 듣기 시작한 때부터 태을주 주문을 암송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도장을 방문하여 많은 공부를 하신 수호사님, 포정님, 포감님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아침 수행과 태을주 수행을 계속하는 동안 마음의 안정과 함께 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때에 참여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라는 상제님 말씀이 크게 와닿았고 이제 내가 찾는 진리를 만났다는 마음에 안도감이 왔습니다.

보은의 기회를 얻음에 감사하며


7월 증대에 함께 참여를 하자고 하여 저는 주안도장의 도생님들과 일요일 일찍 버스를 타고 설레는 맘으로 대전으로 갔습니다. 고원덕 포감님이 세심하게 돌보아 주셔서 편안하게 종도사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전진하려는 많은 분들이 계시고 모든 도생님들께서 정성을 드리는 가운데 성장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종도사님께서 마지막에는 항상 도생님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자상하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급한데도 불구하고 급히 몰아붙이기보다 다독이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저지만 종도사님을 받들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천지일심으로 저를 다듬고 부모 형제를 구하고 조상님들께 보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성물 코너에서 상제님 어진, 태모님 진영, 태사부님 존영과 조상님 신위를 모두 구입하고 증산도 필독서 20여 권을 도장에서 구입하였습니다. 곧 일본에 가서 하느님이 오셨음을 모르고 죽어야만 하는 불쌍한 재일 교포와 일본인들을 많이 살리겠습니다.

조상님들의 음덕과 삼생에 걸친 큰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성경신誠敬信으로 공부하여 도생님들과 같이 일심으로 상제님의 일꾼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저를 도장으로 인도한 조상님과 멀리 타향에서 증산도를 알아볼 수 있도록 환단고기 북 콘서트, 도전문화 콘서트를 들을 수 있게 열정적으로 말씀하심과 상생방송을 통하여 진리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여 주신 종도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은혜를 반드시 사람을 살려서 보은하겠습니다. 보은 보은!! ◎

“내가 너를 살려 주마”


김이순(여, 53) / 익산신동도장 / 149년 음력 6월 입도

불교와 대순을 거치며 겪은 고초


저는 불교를 신앙하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남편의 친구들로부터 소개를 받아 10년 전에 지금의 남편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상처喪妻를 하였고, 큰아들을 먼저 보낸 아픔을 안은 채 살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다녔던 전북 임실군에 있는 도덕사에서 남편의 전처를 모시는 천도식을 올렸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은 점점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고 저는 무언가에 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꿈속에서 밥을 해야 하는데 쌀은 없고 온 집에는 죽은 쥐와 고양이가 산처럼 쌓여 썩어 있었으며, 장롱이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습니다. 죽은 동물을 보며 눈이 뜨이지 않는데, 아들이 저의 손을 잡고 청소를 하면서 깨어났습니다. 그러고서 이틀을 앓아누웠습니다. 그 후로 도덕사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약 4년 전 전주 금암동에 요리 강의를 받으려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때 대순진리회 사람을 만났습니다. 당시에는 대순의 실상을 미처 몰랐지만, 아무튼 만난 그날 입도식까지 올렸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니 저도 이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대순 사람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리고 월 1~2회 정도 대순에 다녔고, 부산에 남편과 함께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대순 사람이 반찬을 산다며 1만 원만 달라고 하는데 기분이 이상하여 그때부터 대순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때 태을주를 알게 되었는데 대순에서는 ‘훔치 훔치’를 처음 한 번만 하고 다음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경계에서 읽은 태을주


어느 날 남편과 심하게 싸우고 죽을 생각으로 농약을 마셨습니다. 10일 동안 혼수상태였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너를 살려 주마” 하는 우렁찬 목소리가 세 번 들렸습니다. 그리고 허름한 차에 저를 태웠는데 차가 공중에 떠서 바람처럼 날았습니다. 바람에 날려 오는 도중에 어른들과 아이들이 길가에 많이 보였습니다. 다칠까 봐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며 왔습니다. 그러면서 의식을 차렸습니다. 친구가 병문안을 왔는데 혼수상태에서 태을주를 읽고 있었다고 합니다. 의식을 차려 보니 그 순간에도 저는 태을주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남편과의 사이는 좋아졌습니다.

이후 친구의 소개로 대순을 안 나가고 전주 용두사에 남편과 같이 다녔습니다. 용두사에서도 남편 전처의 천도식을 올려드렸는데 남편은 술을 더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용두사를 자주 가다 보니 나이도 같고 뜻이 잘 맞아 절 사람들과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절에 다니면서 불교방송을 자주 보았는데, 어느 날 채널을 돌리다가 무궁화꽃이 있는 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방송이 상생방송이었습니다. 상생방송에서 나오는 『도전』 말씀이 가슴에 와닿고 좋았습니다. 작년에 불의의 사고로 퇴직해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남편도 상생방송을 함께 보곤 했는데, 어떤 날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남편이 혼자 상생방송을 보고 있기도 했습니다.

척신의 방해에도 6.23 콘서트에 참석하다


지난 6월 중순경에 익산신동도장에서 <6.23 도전문화 콘서트>를 소개하는 전화가 왔습니다. 통화를 하면서 『환단고기』 책을 부탁했더니 다음 날 도장 수호사님과 이다감지 도생이 책을 가지고 저의 집으로 왔습니다. 마침 방송을 즐겨 보고 있었기에 저도 한번 본부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전에도 연락이 왔지만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이번에는 가 보고 싶었습니다.

두 분이 심방하던 날 밤 꿈에 파마를 한 것처럼 엉클어지고 어깨까지 머리를 늘어뜨린 사람이 저를 째려보고 있었습니다. <6.23 도전문화 콘서트> 이틀 전에는 저의 오른손을 비틀어 한 바퀴 돌리며 꺾는 것이었습니다. 꿈속인데도 너무나 아프고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그 뒤 3~4일간 오른 손목이 실제로 너무 아팠습니다. <6.23 도전문화 콘서트> 행사는 남편과 함께 가기로 하였으나 당일 아침에 남편이 안 간다고 하여 저만 다녀왔습니다. 이다감지 도생의 도움을 받아 그날 청수그릇과 상제님 어진, 태모님 진영을 구입해 모시고 와서 바로 청수를 모셨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청수를 모시는 것을 보고 자라서 청수 모시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수행과 진리 공부로 변화된 가정


<6.23 도전문화 콘서트>에 다녀온 다음 날부터 수행을 하고 복록수를 남편에게 마시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삼키지 못하고 세 번을 토했습니다. 그래도 마시도록 하였더니 토하지 않게 되었고 그 후로 1주일간 남편이 술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가정에서 105배례와 정성수행을 하며 조금씩 『도전』을 읽고 있습니다. 105배례를 하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자꾸 납니다. 남편의 건강이 좋아지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시고, 제가 입도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시라고 기도하며 수행을 하였습니다. 배례를 하고 주문을 읽으면 공중에 뜬 것 같고, 멍해지기도 하는 기분이 듭니다. <6.23 도전문화 콘서트> 때 태을주 MP3를 구입하여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태을주가 온몸에 차는 것 같고, 배와 허리 주위가 무척 가려웠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남편이 경제활동을 못하고 있기에 제가 가게를 운영하느라 일하는 시간이 많고 남편을 챙겨야 해서 도장에는 자주 나가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런 저의 사정을 알고 수호사님과 이다감지 도생님이 저의 집으로 방문해서 입도 교육을 해 주었습니다. 도장에 나가서 정성수행을 하고 입도 공부도 제대로 하고 싶었지만 여건상 그렇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동안 남편의 행동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술을 안 마시는 날도 많아지고 양도 줄었습니다. 남편이 술을 끊고 건강이 좋아져서 함께 도장에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정의 평화와 함께 하는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도 한 명씩 도장에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주 최씨 조상을 잘 모시고 싶습니다. 제가 입도를 하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보은! ◎

조상님들께서 돌보지 않았다면


이익호(남, 49) / 천안구성도장 / 149년 음력 6월 입도

고향이 없어 외로웠던 아버지


저는 1971년 2월 서울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아도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단지 부모님 성격이 워낙 다르셔서 항상 집안 분위기가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유년 시절 친구들은 명절에 할아버지, 작은아버지 댁에 인사를 간다고 하는데 저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고향이 북한이어서 명절 때가 되어도 가족들은 갈 곳이 없어 늘 집에만 있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보니 아버지께서 얼마나 외로우셨을지를 생각하면 많이 죄스럽고, 살아생전에 제대로 보살펴 드리지 못해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희는 제사를 모신 적이 없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제사를 모신 음식을 주어서 얻어먹곤 했었는데, 어린 제가 생각해도 왜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조상 제사를 모시지 않아서 그런지 지금 생각해 보면 항상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 적이 많았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늘 불행한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뿌리에 대한 호기심이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제가 학창 시절부터 여러 교과목 중 역사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마도 무의식 속에 작게는 우리 조상님에 대한 생각과 호기심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역사 소설과 역사 서적을 읽으면서 더욱 증폭되는 궁금증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고대사인 고조선에 대해서는 간략한 내용들만 있을 뿐 깊이 있게 집필한 역사책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계획 한 가지는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고대사와 관련이 깊은 중국으로 무조건 가기 위해서 직장 생활과 병행하면서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늘 현실의 벽에서 좌절하기를 몇 번 하였고 허망한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2002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공부를 하면서 그곳에 있는 우리 역사와 관련된 유적지를 답사하는 것이 제 목표였는데 이 또한 현실적 생계 문제와 경제 문제로 실천하지 못하고 허망한 10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상님의 도움인지 한 여성(중국인)과 인연을 맺어 보석 같은 딸을 얻게 되었고 갈 때는 혼자였지만 귀국할 때는 3명이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직장을 구하게 되었고 열심히 근무하는 시간에도 제 머릿속과 가슴속에서는 역사 공부에 대한 갈증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에 퇴근하면 피곤하더라도 몇 페이지 역사 관련 서적을 보고서 잠이 들곤 하였습니다.

운명처럼 만난 『환단고기』와 증산도


그런데 운명일까요? 십수 년 전에 제가 충격적으로 읽었던 『환단고기』와 『한국 상고사』, 그중에서 『환단고기』의 내용은 도무지 우리 역사인지 소설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일면식도 없는 분(인도자인 류근필 포감)이 갑자기 찾아와 그 책을 보여 주면서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왔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고 너무나 흥분스러운 일로 다가왔습니다.

기존에 제가 보았던 『환단고기』와는 다르게 너무나 일반인도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실증을 근거로 집필한 책이어서 더욱 제 마음 속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그 의구심을 풀고자 그 책을 소개한 인도자를 따라서 더 깊은 민족의 뿌리와 작게는 제 조상님들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증산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것은 운명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되고, 더욱이 조상님을 돌보지 못했던 저를 조상님들께서 돌보지 않았다면 지금도 저는 저의 현실을 한탄하면서 미로 속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

증산도 입문 이후 생활에 변화도 생겼지만 특히 믿음과 일심으로 상제님, 태모님과 조상님들을 잘 모신다면 앞으로 제 주위에서 저처럼 어둠 속에서 방황하며 해답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제가 걷고 있는 길이 얼마나 참된 진리를 찾는 행복한 해답인지 알려 주고자 합니다. ◎

미륵부처님께 다니면서 상생방송을 봐라


민영숙(여, 58) / 서울강북도장 / 149년 음력 6월 입도

병실에서 대순을 만나고


저는 교통사고로 서울 강북구에 있는 현대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받으며 지내던 중 병원에서 한 여성이 민영숙 님을 꿈에서 보게 되었다고 하면서 여기서 만나니 인연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좋은 진리가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라고 하면서 조상님 얘기를 하였습니다. 조상님이 배고프고 힘들어서 난리가 났다고 하였습니다. 그 여성분은 대순진리회를 신앙하고 있었습니다.

조상 얘기에 끌려 퇴원을 한 그 여성을 따라 중곡동에 있는 대순회관에 나갔습니다. 가니까 아래 사람 보고는 김 여사, 이 여사라 부르고 대순 신앙 선배한테는 도선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대순에서는 태을주를 읽으면 아픈 몸도 낫고 조상님들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여주에 있는 대순 본부에 갔더니 아주 화려했고 그곳의 여성 신도들은 한복을 입고 있었으며, 이쁜 한복이 여러 벌 있어서 입어 보기도 했습니다.

“미륵부처님에게 가라.”


대순에서는 같이 다니던 다른 신도들한테 천도제를 올리라고 하면서 2,000만 원을 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000만 원은 제물비로 하고 1,000만 원은 자신들이 나눠서 개인 사비로 쓰는 것이었습니다. 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거기의 신도들을 구타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고 결국 대순을 일 년 정도 다니다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대순을 나온 이후 친어머니의 권유로 조계사 절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일 년 동안 저와 같이 조계사에 다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조계사 절에 다녔는데 어느 날 꿈에 조계사 부처님이 나오셨습니다. 부처님이 “이제 절에 더 이상 나오지 마라. 봉은사 미륵부처님한테 가라. 나도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는데 아버지가 너를 오라고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조상님들이 너 때문에 공부해야 한다”


그 이후 미륵부처님이 계신 봉은사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한 달 정도 봉은사에 다니는데 꿈에 10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나오셨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봉은사 미륵부처님한테 다니면서 상생방송을 봐라. 상생방송을 보면서 공부를 해라. 조상님들이 너 때문에 밥도 먹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집에서 상생방송을 찾아 시청을 하였고 이후 <도전퀴즈>에 응모하면서 강북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도장에서 팔관법을 공부한 후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의 참일꾼이 되겠습니다. ◎

“일어나라”는 목소리가 인도한 진리


임주성(남, 49) / 익산신동도장 / 149년 음력 6월 입도

누군가 계심을 깨달은 사고 체험


저는 전북 김제시 백구면에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을 도우며 어린 시절 경운기와 이앙기 등 농기계를 가까이하고 좋아했습니다. 농기계를 다루게 되면서 농사짓기를 약속했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에는 관심을 두지 못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저에게 불교를 신앙하는 어머니는 저를 마이산에 있는 절에 몇 번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재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절에 있는 그림들이 무서워서 그림을 떼어 내기도 하고 절에서 자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동네에 있는 교회 여름 성경학교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한 직장에 오래 다니지 못하고 방황을 하면서 운전하는 직업이 맞아 택시 운전을 하였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차가 전복하는 사고를 당하였는데 그때 마음속으로 간절히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 열렸던 문이 열리며 차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계신다는 것을 느꼈고 하느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찾아 방황하는 사이 생활은 녹록하지 못하였고 빚까지 지게 되어 결혼은 하였으나 딸 하나를 낳고 이혼을 하였습니다. 죽을 각오로 수면제를 막걸리에 타서 먹었습니다. 잠은 오지 않고 기운만 빠지는 체험을 하며, 그때 다시 한번 죽을 때까지 살아 보자 하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찾았고, 대순진리회와 신천지 교회도 가 봤지만 저의 의문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곳저곳 진리를 찾아다녔으나 답답한 마음은 여전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증산도를 검색해 보면서 상생방송이 있는 것을 알고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도전道典』이 눈에 들어와 읽다


그러던 5월 어느 날 바람을 쏘일까 하고 익산 배산체육공원에 갔다가 가판대에 있는 『도전道典』이라는 한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도전』을 보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때 가판대 활동을 하고 있는 모춘곤 수호사를 만났습니다. 도장에 나오라는 수호사의 말을 듣고 신동도장에 방문하였습니다.

저의 태몽은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이었다고 하는데 도를 닦아야 하는 운명인가 보다 생각했고, 도를 닦을 곳은 증산도밖에 없다고 여겨져 수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수호사님이 정독하라며 『도전』을 주어서 그날부터 『도전』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저는 제대로 책을 한 권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도전』을 두 달에 걸쳐 완독을 하고 입도를 결심하였습니다. 하느님이 실제로 이 세상에 오시고 천지공사를 보시어 인류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도전』에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하신 상제님 말씀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조상님의 음성을 듣다


제가 37세 때 심한 몸살로 몸이 무척 아픈 적이 있었는데, 봄인데도 온몸이 춥고 떨렸습니다. 그렇게 추워 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3일째 되던 날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하는 굵고 우렁찬 남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정신이 들었고, 눈을 뜨려 했으나 뜨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내가 눈을 뜨지 않으면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하나, 둘, 셋 하고 있는 힘을 다해 눈을 떴습니다. 몸을 움직이게 되었고 기침을 하니 누런 가래가 뭉치로 나왔습니다. 누구의 음성인지 아직까지 의문이지만 아마도 조상님의 음성이라고 여겨집니다.

지금은 매일 도장에 나가서 청수를 모시고 정성수행을 하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야간에 대리운전을 하기 때문에 콜을 기다리는 시간을 활용해서 공부를 하라며 수호사님이 상제관, 우주관, 신관, 100문 100답 등 소책자를 주어서 이것을 읽으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후천 가을개벽기에 상제님께서 생명의 법방으로 내려 주신 태을주를 항상 읽고 다니고 MP3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입도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과 조상 선령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도전』을 바탕으로 진리 공부를 제대로 하여 가족과 이웃을 많이 살리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