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道典』에서 도전挑戰의 꿈을 키우다 외 (장은실, 박수안, 박지선, 최상용, 고은수, 강기동)

[입도수기]

『도전道典』에서 도전挑戰의 꿈을 키우다


장은실(여, 53) / 광주상무도장 / 149년 음력 5월 입도

생생한 꿈이 암시한 진리와의 만남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 새벽에 생생한 꿈을 꾸고서 기분이 좋아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꿈 이야기를 들려 드렸습니다. “엄마, 방금 꿈속에서 돌아가신 이래 처음으로 외할머니랑 친할머니를 만났는데요.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찾는 나에게 외할머니가 미소 띤 얼굴로 요강을 바닥에 놓아주셔서 정말 반갑고 고마웠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참을 수 없이 몹시 급했는데 이번엔 친할머니가 푹신한 마른 천 위에 요강을 얹어 주시며 마음 놓고 볼일을 볼 수 있도록 자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는데 감격했어요. 길몽 맞지요?” 예지몽을 잘 꾸시는 엄마는 “네게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너의 외할머니는 여러 차례 내 꿈에서 앞일을 미리 알려 불상사를 막아 주시곤 했단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고 암시하는지 알 길이 없었지요. 막연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던 중, 향우 문예지 출판을 앞두고 오랜만에 고향 선배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근황을 묻는 안부 인사 끝에 선배님은 진지하게 진리에 관한 공부를 권하고 상생방송을 안내하셨습니다. 평소 고향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망이 두터운 분이고, 평소 저의 재능을 인정해 주시고 살뜰히 챙겨 주시는 선배님이라 상생방송을 짬짬이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상업적이지 않고 자연 풍광과 인문 교양 강좌와 『도전道典』 말씀이 공감 가고 편안하게 와닿더군요.

인도자의 간절한 호소에 마음을 열고


일주일 후 다시 연락하신 선배님은 『도전』 강독을 권유하셨습니다. 제 처지가 녹록지 않아 제 형편이 나아지고 한가해지면 그때 시작하겠다고 완곡히 거절했습니다. 그럼에도 선배님은 그런 상황이니 더 시급하다고,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고, 일이 안 풀리는 것도 복마의 발동이나 척신의 방해일 수 있다고, 개벽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당신 자식들과 교회 다니는 며느리들에게도 권했는데 말을 듣지 않아 안타깝다고 하소연까지 하였습니다.

자식에게 권하는 일이라면 그 절실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기에 상생방송에 연락해서 책을 받아 보았습니다. 『도전』을 포함하여 소책자 다섯 권을 보다가 『환단고기』 역주자 안경전 종도사님이 『이것이 개벽이다』를 비롯하여 여러 책을 저술한 것을 보고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2012년 강진 청자축제에 갔다가 홍보 부스에서 <환단고기 소책자>를 받아 보고 그해 제 생일 선물로 『환단고기』 대형판을 주문해 읽었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우리 고대사를 되찾고 일깨워 주신 덕분에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되어 내내 감사하며 살았거든요. 증산도와 『도전』에 부쩍 호기심과 신뢰가 생겼습니다. 가장 빠른 길은 정통 코스를 올바르게 밟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사무실과 가까운 광주상무도장으로 연락했습니다. 우선 궁금한 내용들을 안성순 집감님을 통해 해소하고 『이것이 개벽이다』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다음 날 5월 25일에 도장 책임자이신 김종우 수호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제 사무실에 방문하시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6월 1일부터 정성수행 공부를 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도전』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고통과 한으로 점철된 가족사


저는 인동仁同 장씨張氏 참찬공파 34대손으로 종가의 종녀로 태어났습니다. 외가는 장흥長興 마씨馬氏이고 할머니는 밀양密陽 박씨朴氏, 외할머니는 진주晉州 강씨姜氏이셨습니다. 조상 복이 많았던 덕분에 증조모님을 비롯하여 양가 조부모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천관산과 남해의 넉넉함 속에서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장흥에서 제일 부자였던 외가가 제가 다섯 살 되던 해 부도로 몰락하면서 한약방을 하시던 아버지도 경제적 타격을 크게 입었다 들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젊고 의술이 탁월해 금세 회복을 하셨는데, 가세도 기울고 연로한 탓인지 옛 기억을 자꾸 소환하십니다. 그것은 부모님에게 깊은 상처와 함께 원한의 씨앗으로 자라났습니다. 부모님께서 갈등과 반목의 세월로 여생을 보내고 있음에 식구들은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불자이신 부모님은 오랜 세월 천관산과 무등산에서 산신 기도로 치성을 드리셨습니다. 백일기도도 여러 차례 하시고 아침마다 청수를 올리고 기도하셨습니다. 올해 여든이신 아버지께서 아침기도를 안 하신지 일 년 남짓 되면서 두 분의 관계는 악화 일로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시면 두 분의 서로에 대한 원망과 비애는 한으로 남아 구천을 떠돌 듯합니다.

가족사를 낱낱이 고할 수 없지만 우리 집안은 정신적인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 작은 아버지는 알코올리즘alcoholism(알코올 의존증)이었고 고모와 두 동생도 조상의 신명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가족들을 살려 보겠다고 무속인을 불러 굿판도 여러 차례 벌였습니다. 전설의 고향 납량 특집 4부작 뺨치는 사연을 선산, 마당, 안방에서 목도했습니다. 구구절절 한 많은 신명들의 읍소를 들었기에 저는 그들의 존재를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아 아버지 몰래 교회를 다니며 성경 공부를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긍하기 어려운 기독교적 신관과 이질적인 가치관은 저를 거듭 방황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제 형편도 아주 나빠져 경제적 고통까지 감수하고 있는데 지난 겨울에는 두 동생이 동시에 아파서 각각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고 온종일 내내 일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한 부모로서 판소리하는 딸아이를 양육하는 일도 버거운데 가족들마저 아프니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도전道典』은 모든 난관을 극복하게 한 단비


제가 진 짐이 너무 버거워 짐을 부리고 가고 싶어도 가족이기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절대자에게 매달리고 싶어도 그럴 대상도, 시간도 제게 없었습니다.

총체적 난관에 직면하였을 때 증산 상제님의 존재와 그 말씀이 적힌 『도전道典』은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 그 자체였습니다. 불경이나 성경과 달리 같은 문화, 비슷한 정서에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전하시는 가르침은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무릎을 치는 탄성까지 절로 나왔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었던 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옛 성현의 심정이 비로소 공감되기도 했습니다. 한민족으로서, 전라도인으로서 이 땅에 오시어 애민 정신으로 천지공사를 펼치시는 상제님의 모습은 우리 할아버지처럼 친근하여 깊이 감동을 받았고 선민의식과 자긍심도 무진장 생겼습니다.

열강에 유린되었던 비통한 한국 근대사에 대한 의문도 풀리고 다가올 오선위기 바둑판과 상씨름판에 대한 상제님의 멋진 비유는 우주관과 인간관이 그대로 드러나 통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동안 나라 걱정에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한몫하겠다고 노심초사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했던 역할을 우리 역사회복운동에 이바지하겠다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장차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여 고대사에 누렸던 그 영토와 영예를 되찾는 그날까지, 후천개벽의 조화롭고 이상적인 세상에서 조상 신명들과 후손들이 함께 복록을 누리는 그날까지 제 소임도 뚜렷해졌습니다.

먼저 가족에게 이 진리를 알리기 위해 부모님을 모시고 다닐 때마다 세심히 살피고 진리를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은 태을주를 외우시고 상생방송을 시청하십니다. 태전 <도전문화 콘서트> 초대에 응하셨는데 동생들은 제 귀가 얇다고 빈정댑니다. 그동안 시행착오와 실패 속에서 신뢰를 주지 못한 제 탓이라 쿨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더 마음을 비우고 지극한 정성을 다해 인도해 볼 생각입니다.

상제님과 자신을 믿고 정진하는 신앙을 하고파


『도전道典』을 공부하면서 지금의 역경과 시련이 도전挑戰이라면 마땅히 응전應戰하겠다는 의지와 기운이 생겼습니다.

“한번 해 보자. 일심으로 성경신을 다해 보자. 태을주에 힘 얻고 천지진액주에 기대어 용기를 내 보자. 증산 상제님을 믿고 자신을 믿어 보자. 하루하루 작은 성취도 기뻐하자. 작은 변화에도 감격하고 감사하자. 우선, 입도가 목표다.”

21일 정성수행을 하며 일심으로 정진할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조상님들과 가족을 구원하는 일꾼으로 선택되었다는 사명감과 책임 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천지성공의 시발점이라 확신합니다. 진리를 찾아 도를 찾아 오랜 방황을 끝내고 이제 제대로 길을 찾도록 인도해 주신 조상님의 정성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증산도를 알려 주신 이준옥 선배님과 제 공부를 도와주시고 정성수행에 함께 참여해 주신 김종우 수호사님과 박기숙 수석포감님께도 뜨거운 인사를 전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끝으로 천지일월 사체 하나님께 보은하는 신앙을 하겠습니다. ◎

선친의 외침에 길을 찾다


박수안(여, 58) / 진주도장 / 149년 음력 5월 입도

선친의 영적 인도가 의미한 것


제가 증산 상제님 진리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고모님의 영적인 인도 덕분이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께서는 말년에 삼천포에 있는 고모님이 운영하던 절에서 일을 도와주시면서 붓글도 쓰시고 사주도 봐 주시고 하면서 공부를 많이 하셨습니다. 돌아가시 전에 「천수경」을 쓰셔서 병풍도 자식들에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옴마니반메훔’ 육자 진언을 써 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유품으로 집에 액자를 만들어 늘 걸어 놓았습니다.

지금부터 10년 전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어느 날 꿈에 나타나셔서 정화수를 떠 놓고 ‘관세음보살’과 「천수경」을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이후에 집에서 꾸준히 읽으면서 절에도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2년 전쯤 어느 날 꿈에 나타나신 아버지께서는 ‘옴마니반메훔’ 액자를 치우라고 하시며 이제 그만하고 다른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2016년경에도 아버지께서 꿈에 무슨 주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깨어나서 ‘훔치 훔치’만 생각이 나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태을주였습니다. 글 내용이 좋아서 1년 정도 태을주를 읽고 다닌 적도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삶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생각도 자주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 암이란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수술받고 입원해 있는 동안 자식들이 너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나를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 있는데 마음이 너무 우울한 나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때 아버지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고 씨를 많이 뿌려라.”고 하셨습니다. 최근 도장에 나오면서 아버지께서 하신 이 말씀의 뜻이 개벽기에 자손들이 사람을 많이 살리는 것을 도와주시기 위해 천상 신도에서 조상님들이 분주히 서두르시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장에 오기 전 다시 아버지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기도하던 걸 정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고 하시며 불교서적을 정리하라고 하셨는데, 버릴 수가 없어서 헌책방에 갖다주었습니다. ‘옴마니반메훔’ 액자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그렇게 열심히 읽고 있던 ‘관세음보살’과 「천수경」이 잘 읽히지가 않았습니다. 미련이 남지 않고 마음에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성당도 가 보고 하였으나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상생방송을 보고 정착한 신앙의 길


그러다가 우연히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태을주가 만병통치의 약이라는 『도전』 말씀을 보면서 신비스럽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집 근처에 도장이 있어 가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4월쯤에 도장 앞에 사는 김선자 포감님의 시누이 사무실에 방문했다가 그곳에 꽂혀 있는 <개벽지>가 보고 싶어 달라고 하였고, <개벽지>를 빌려 시누이와 둘이서 걸어 나오던 중 도장 앞에서 류형기 수호사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후 지인 김선자 포감님으로부터 도장에 한번 오라는 연락이 와서 증산도 진주도장에 처음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장에서 저의 건강이 안 좋다는 말을 하니 21일 새벽수행을 권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매일 도장에 와서 류형기 수호사님과 함께 49배례와 태을주 수행과 도공을 했더니 무겁던 몸이 가벼워지고 많이 맑아졌습니다. 전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쉬어야 하고 기운이 없었는데 지금은 기력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수행 후 말씀을 나누고 영상 강의도 보고 했는데, 진리공부를 해 보자고 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김선자 포감님, 수호사님, 강문주 부포정님이 번갈아 가면서 팔관법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정성수행 기간 중 꿈에 하얀 한복을 곱게 입고 머리에 비녀를 꽂은 단아한 분을 뵈었는데 고모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입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인간으로 오신 개벽장 아버지 하나님 증산 상제님과 어머니 하나님이신 태모님,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저의 조상 선령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신 김선자 포감님과 공부를 가르쳐 주신 분들과 진주도장 도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진리 공부와 태을주 수행을 통해서 인간의 광명을 회복하여 참된 일꾼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기성 신앙으로 채워지지 않은 의문을 풀다


박지선(여, 31) / 울산옥현도장 / 149년 음력 5월 입도

남편을 통해 알게 된 증산도


결혼 전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에 남편을 통해 증산도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난생처음 듣는 얘기라 생소하게 느꼈던 터에 대순진리회가 한참 “도를 아십니까?”로 물의를 일으키던 때여서 ‘증산도는 어떤 단체일까..?’ 하고 의문이 생겼습니다. 증산도에 대해 블로그 등 여러 자료들을 보다가 한 사이트에서 보내준 책을 읽었습니다. 몇 가지의 의문과 오해는 풀렸고 남편도 제게 소책자를 주며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모태 기독교 신앙이었기에 부모님과 교회를 나가고 있었고 증산도에 대해 제대로 알아 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천국과 지옥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점과 채워지지 않는 믿음에 항상 물음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위에 눌리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남편이 운장주를 알려 주었고 따라 했더니 신기하게도 가위에 눌리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태을주도 따라 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태을주의 뜻이 궁금해졌고 우주1년에 대한 소책자를 보며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도장을 한번 방문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흐지부지 부모님에게 이끌려 다시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여러 상황들과 육아로 인해 마음 한 귀퉁이로 밀어 놓고 증산도를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태을궁에서 흘린 참회의 눈물


작년부터 남편이 매일 청수 모시는 모습에 도장 방문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동지대치성 때 태을궁에 발을 들여놓고 그만 저도 모르게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참회의 눈물이었을까요! 자연스럽게 도장에서 입문을 하고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통해 오래전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났습니다. 우주1년, 개벽에 대한 수호사님의 말씀이 참 들어도 신기하고 한편으론 충격이었습니다. 나를 보호해 주고 계신 조상님들, 내가 아는 하나님은 증산 상제님이라는 것이 각인되었고 이것이 진리구나, 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의문점을 풀게 되었습니다.

입도를 준비하면서 몇 달째 수행과 공부를 해 왔습니다. 입도를 결심하면서 이상하게도 두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아프고 저도 다치고 건강하던 남편도 독감에 걸리는 등 잔잔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화복禍福이라고 했듯이 복을 받기 위한 과정이라 여겼습니다. 태을주와 운장주 덕분에 무사히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입도에 앞서 “나는 정말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일꾼이 될 수 있을까..? 되겠는가..? 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가톨릭, 기독교 신앙을 하시는 부모님과 시부모님 모두 함께 신앙하는 그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기도와 수행을 열심히 하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일꾼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수호사님과 약속한 신도 5대수칙을 잘 지키며 제대로 된 일꾼 신앙으로 천지일월에 보은할 수 있는 도생이 되고 싶습니다. ◎

대순 사람들이 틀어 준 상생방송


최상용(남, 48) / 부천도장 / 149년 음력 5월 입도

시력을 잃고 시작한 대순 신앙


저는 20대 후반부터 망막색조변성증을 앓게 되면서 40살이 됐을 때 완전히 시력을 잃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결혼도 하고 아들딸 낳고 가정을 꾸미고 살았지만 시력을 잃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가정도 깨지고 자식들도 모두 곁을 떠났고 부천에 자리를 잡고 홀로 살게 되었습니다.

희망 없이 살던 어느 날 대순진리회에서 제가 살고 있는 집에 찾아왔습니다. 조상님에 대한 얘기와 여러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동해서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한 번 다녀온 뒤로는 오라는 말도 없고 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가끔씩 집에 와서 성을 모시라는 얘기만 하였습니다. 진리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돈만 요구하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제가 자꾸 질문을 하고 궁금한 것을 얘기하니까 그들은 대답을 시원하게 해 주지 않고 얼버무리듯 그 순간을 피했습니다.

대순에서 안내한 상생방송


저의 질문이나 궁금증이 더 심해지니까 그들은 제 집에서 상생방송을 직접 틀어 주면서 방송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증산도를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상생방송을 볼 수는 없었고 들을 수만 있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앙 체험 사례를 듣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 체험 이야기를 안 믿었습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조작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순에서 태을주 주문 이야기를 들었는데, 상생방송에서도 수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집에서 태을주 수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행을 하면서 척신과 마신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주문 수행을 하려고 하는데 머릿속에서 하지마! 하지마! 그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도 하기 싫은 마음으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참고 계속해서 주문을 읽었더니 저도 모르게 그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또 한 번은 주문을 읽고 있는데 한 20분 했을 무렵 몸에서 힘이 다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흔들리고 힘이 없어지는 마신 체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체험을 통해 상생방송에서 얘기하는 신앙 체험 사례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저의 꽉 막힌 생각이 무너지게 되면서 진리에 대한 관심이 더 커져 갔습니다.

상생방송에서 각 도장 이야기가 있어서 부천에도 도장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114로 전화해서 도장 번호를 안내받아 부천도장으로 전화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도장에 나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도전』 말씀과 진리 말씀을 들을 수 있는 MP3를 구입해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생활을 정리하고 참된 구도의 길을 걷다


도장 포정님이 다녀간 후 청수를 모시고 수행을 하면서 주변 정리가 되었습니다. 저의 생활을 어지럽혔던 친구들, 불필요했던 것들을 포함해서 생활이 바뀌었습니다.

『도전』 말씀과 『춘생추살』 말씀을 계속해서 들으면서 진리에 대한 확신과 신앙에 대한 의지가 강해져서 도장에 다시 전화를 하고 입도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실 여건이 어려워서 실질적으로 적극적인 참여에 어려움이 있지만 저를 도와주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주 1회 정도 도장에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6 23 도전문화 콘서트>에도 참여하여 큰 기운을 받았습니다.

시각 장애라는 제한 속에서 상제님 도를 닦아야 되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구도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고 사람 살리는 일꾼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 생이 끝날 때까지 상제님 일꾼으로서 참 구도의 길을 걷겠습니다. ◎

<월간개벽>이 인도한 참진리의 종통맥


고은수(남, 55) / 태전대덕도장 / 149년 음력 5월 입도

약국에 비치된 월간개벽을 만나다


20대 때 사는 것이 뭔지 사회적인 현상들에 대한 의구심과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름대로 책을 읽어 보고 판단하여 불교를 신앙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철학서, 예언서, 종교 서적과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등의 책을 접하고 읽어 보았습니다.

50대 중반에 접어들어 금산의 요양원에 입소한 어르신들의 처방 약을 타기 위해서 대전 을지대병원 앞 조은약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거기서 <월간개벽> 두 권이 책 비치대에 꽂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약사분에게 월간개벽을 가져가서 읽어 봐도 되냐고 물었더니 허락을 하여 집에 가져와 읽었습니다. <월간개벽〉을 읽은 후에는 계룡문고에 가서 『쉽게 읽는 도전』을 사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기존의 궁금했던 점에 대해 실마리가 잡혀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상생방송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상생방송을 본 아내가 금산에도 상생방송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해서 그 후 상생방송을 계속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도전봉독>, <환단고기 북콘서트>, 〈청소년 나는 법사다>, <우리들의 살릴 생 자 이야기〉, <도전퀴즈>. <역사스페셜>, <주역강의> 등 볼 만한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계속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알고 있는 내용들이 하나하나 정리가 되었습니다.

성복 전수로 진리의 종통맥임을 깨달아


그러다가 상제님의 존호를 묻는 ARS 퀴즈에 참여하여 『도전』과 소책자 등을 받았습니다. 이어 상생방송 시청자상담실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공부를 하기 위해 가까운 도장을 문의했더니 태전대덕도장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 후 대덕도장에서 연락이 와서 동지대치성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2018년 12월 22일 동지대치성에 참석하여 상제님 성복 전수 과정을 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증산도가 상제님의 종통맥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저 혼자라도 공부를 해서 입도식을 할 수 있었지만 아내와 함께 공부하고 입도식을 하기 위해서 아내에게 증산도를 설명하고 상생방송 시청도 권유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이것을 해 봐야겠다고 결심을 하기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이후 아내도 상담실에 전화를 하여 태을랑을 묻는 ARS 퀴즈에 참여하였습니다. 일을 마치고 저녁 늦게 전화했던 탓에 두 번의 참여를 거쳐 퀴즈 정답을 맞추고 가까운 지역에 있는 태전대덕도장을 안내받는 똑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아내가 대덕도장으로 전화하여 책임자와 상담하고 6월 16일 가족이 함께 도장에 방문하였습니다. 17일부터 정성 공부와 입도 교육을 받고 <6.23 도전문화 콘서트>에도 참여한 후 마침내 6월 30일에 함께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찾던 진리가 증산 상제님을 모시는 이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입도식 때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도생님들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어서 감사했습니다. 참된 진리는 통일되게 하는 기운이 서려 있기에 아내와 함께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시작을 새로이 하게 되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조상님의 은덕을 잊지 않고 이치에 부합되는 일심자가 되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도생이 되겠습니다. ◎

씩씩한 초립동 일꾼이 되겠습니다


강기동(남, 8) / 울산옥현도장 / 149년 음력 5월 입도

저는 울산 범서초등학교 1학년 강기동입니다. 엄마, 아빠가 증산도 신앙을 하고 계셔서 배 속에서부터 도장을 다녔습니다. 저는 도장에서 하는 천도식과 조상보은치성 때 조상님께 술잔 올리는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청수는 다섯 살 때 저의 동생이 병원에서 집으로 온 이후부터 ‘동생 안 아프게 해 주세요’ 하면서 모시기 시작했고, 여섯 살 때부터는 아파서 일찍 자는 날 외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어요.

저는 동생과 할머니가 아프지 말고, 외국에서 일하시는 아빠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돌아오시라고 기도합니다. 제주도 할머니는 도장은 안 다니시지만 제가 청수 모시고 기도하면 고맙다고 안아 주십니다.

지난주에는 이종사촌인 서윤이와 함께 태전에 있는 교육관 어포 교육장에서 처음 교육을 받았는데, 좀 힘들었어요. 하지만 누나와 형들이 공연하는 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증산도 행사 때 하는 대취타와 농악놀이가 너무 멋집니다.

예전에 TV에서 ‘미스터션샤인’ 드라마를 보았는데, 독립운동가가 되고 싶었어요. 이순신과 안중근 의사가 너무 멋져서 책도 읽고, 엄마를 졸라 〈명량〉 영화와 〈영웅〉 뮤지컬도 보았어요. 최근에는 〈녹두꽃〉드라마를 보면서 동학에 대해서도, 상제님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졌어요. 도장에서 읽었던 주문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가 TV 드라마에서 나오니 너무 신기했어요. 그리고 우리의 잘못된 역사가 바로잡혔으면 좋겠어요.

이종사촌이자 친구인 서윤이와 함께 입도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청수 잘 모시고, 수행도 하고, 교육도 잘 받고, 책도 많이 읽을게요.

입도를 허락하여 주신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조상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상제님 초립동 일꾼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