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상제님 진리에 복종하라

[태상종도사님 말씀]
道紀 139년 9월 13일(일), 증산도대학교, 증산도교육문화회관 태을궁
인간 세상 역사라 하는 것은 대자연 섭리의 반영이다. 세상에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역사는 자연 섭리의 표출이다. 하늘땅이 둥글어 가는 법칙을 알려면 봄여름 세상과 가을·겨울 세상, 춘하추동 사시四時, 생장염장生長斂藏의 틀이 한 바퀴 둥글어 가는 대우주 천체권의 법칙을 알아야만 되는 것이다. 그 틀을 앎으로써 비로소 사람 사는 세상이 둥글어 가고 인류 역사가 조성되는 이치를 알 수가 있다. 대자연 섭리가 성숙됨에 따라서 인류 역사도 성숙되는 것과 같이 이 세상은 상제님이 틀 짜 놓으신 그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대로 세상이 둥글어 가는 것이다. 봄에 물건 내서 여름철에 기른 진액을 전부 뽑아 모아서 가을철에 통일을 한다.

내가 노상 말하지만 다음 세상은 군사부 세상이다. 상제님 진리 하나 가지고서 5만 년을 통치한다. 그 진리 가지고서 5만 년을 통치하니 그게 ‘열매기 진리’ 아닌가? 더 좋은 것은 없다. 천리天理와 지의地義와 인사人事에 합리적인 최선의 진리다. 상제님이 선생님이요, 임금님이요, 부모님이신데 어떻게 바꾸는가? 바꾸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바꿔봐야 그것만 못하고, 바꿀 필요도 없다.

지금은 천지이치에 따라 천지의 철이 바꿔지는 때다. 하늘 쓰고 도리질하는 사람이라도 천지의 틀이 바꿔지는 것은 거역하지 못한다.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이때는 필연적으로 개벽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에는 상제님이 오시게 되어 있다. 그래서 현실 세상에 상제님이 내려오셔서 천지공사로 보심으로써 앞으로 5만 년 세상의 판을 짜셨다. 크게 묶어서 말하면, 앞으로는 천지 틀이 바꿔져서 인류 문화도 알갱이 문화, 열매 문화로 통일이 되고 신인神人이 합일合一을 하는 세상이 된다. 사람은 신명을 만나야 살고, 신명은 사람을 만나야 산다. 이번에는 천지에서 사람 농사를 지어서 그 씨종자를 가린다. 악척惡隻을 지은 조상의 자손은 다 잡아가 버린다. 또 적덕積德을 하고 남을 도와준 조상들의 씨종자는 이번에 신명들이 돕고, 또 척이 없어서 살아남는다. 열매를 맺는다.

진리라는 것은 공명정대하다. 그러니 자기 자신부터 이 세상을 반듯이 살고 신앙도 정의롭게 해야 한다. 상제님 진리에는 유교, 불교, 기독교가 다 함축돼 있다. 산함신감고酸鹹辛甘苦, 시고 짜고 맵고 달고 쓴 것이 전부 갖춰진 통일된 진리다. 이번에는 통일 이념, 열매기 진리, 알갱이 진리, 후천 5만 년 새 세상을 창출하는 이 문화권에 들어와야 나도 살고, 세상도 건질 수가 있다.

신앙은, ‘내가 진리와 더불어 결혼을 하는 것’이다. 후천 5만 년 가도록 상제님 진리보다 더 좋은 진리는 없다. ‘나는 대자연 섭리와 동반同伴한다. 동행을 한다. 나는 그 영향권에 수용을 당하겠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하늘땅이 상제님 진리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된다. 이것은 천지의 알갱이다. 천지가 둥글어 가면서 사람 농사를 지어서 그 알갱이, 씨종자를 추리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70억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이 문화에 수용될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갖고서 신앙하면 된다. 가면적으로 신앙하지 말고 내 순색純色대로, 항상 겸손하고 진실로 상제님 진리에 복종하라는 것이다. 거짓말하고 속이는 사람은 신앙인이 아니다. 사람은 진짜가 돼서 ‘진짜 신앙’을 해야지 가짜로 신앙을 하면 안 된다.

운래시지運來時至, 운도 오고 때도 왔다. 우리는 보천교普天敎 때부터 수많은 신도들이 신앙한 원력願力을 계승해서 신앙을 한다. 우리는 다 같이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진심으로 그분들의 신앙을 계승해서 상제님 일을 해야 된다. 우리 신도들은 능력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상제님 신앙에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내가 두 손 모아서 기도를 한다. ■


하늘땅이 둥글어 가는 법칙을 알아야


오늘은 알아듣기 쉽게 누구도 이해할 수 있도록 내가 설명을 해 줄 테니 잘 들어봐라.

인간 세상 역사라 하는 것은 대자연 섭리의 반영이다. 광명에 의해서 그림자가 만들어지는 것과 같이, 세상에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역사는 자연 섭리의 표출이다. 대자연 섭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서 몇 백억 사람이 앉아서 현실만 갖고서 이야기를 해야 소용이 없다. 대자연 섭리, 다시 말하면 우주변화의 법칙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묶어서 말하면 선천先天, 봄여름 세상만 가지고서 이야기해도 안 되고, 후천後天, 가을·겨울 세상만 가지고 이야기해도 안 된다. 선천이 없는 후천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하늘땅이 둥글어 가는 법칙을 알려면 봄여름 세상과 가을·겨울 세상, 춘하추동 사시四時, 생장염장生長斂藏의 틀이 한 바퀴 둥글어 가는 대우주 천체권의 법칙을 알아야만 되는 것이다. 선천 분열·발달 과정 64,800년만 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후천 통일·수장 과정 64,800년만 안다고 해도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이다.

대우주 천체권이 한 바퀴 둥글어 가는 틀, 묶어서 생장염장, 더 쉽게 말해서 춘하추동이 둥글어 가는 틀을 앎으로써 비로소 사람 사는 세상이 둥글어 가고 인류 역사가 조성되는 이치를 알 수가 있다.

봄 세상에는 만물을 낳고, 여름 세상에는 자꾸 성장·발전을 하고, 가을 세상에는 봄에 물건 내서 여름철에 기른 진액을 전부 뽑아 모아 통일을 해서 열매, 알갱이를 맺는다. 그것을 묶어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이라고 한다. 그런데 원시반본이라 하면 어렵지 않은가? 아무리 철인哲人이라 해도 우주변화 원리를 모르고서는 원시반본이 무슨 소리인지 모른다. 원시반본을 한마디로 묶어서 말하면 뿌리로 환원을 하는 것이다. 초목도 가을철이 되면 뿌리로 환원해야 겨울철에 폐장을 한다. 뿌리에다 진액을 축적하고 동면冬眠하다가 새봄이 오면 새싹을 내는 것이다.

자기가 알려고 하든지, 아니면 남을 상대해서 설득을 하든지 간에 인간 세계, 역사가 조성되는 이 세상 이야기를 할 때는 천지가 둥글어 가는 틀을 밑자리에다 깔아 놓아야 된다. 대자연 섭리, 우주변화의 법칙, 시간법칙을 밑바닥에다 깔고서 말을 해야 상대가 알아듣는다. 그렇지 않고 말하면 신빙성이 없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믿어 주지도 않고, 설득도 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딱딱 들어맞으면 듣는 사람도 ‘옳거니, 천지가 그냥 무궤도로 둥글어 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철칙적으로, 법칙적으로 그렇게 둥글어 가는 수밖에 없구나’ 하고 이해를 한다. 무엇으로써도 고칠 수 없고,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이 바로 대자연이다.

증산도 종도사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인류 역사라 하는 것은 대자연 섭리가 성숙됨에 따라 더불어서 성숙된다. 묶어서 늘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대자연 섭리를 알지 못하면 백 번, 천 번, 만 번 들어도 소용이 없다.

봄이 되면 천지에서 만유 생명의 싹을 틔운다. 봄철에는 천지에서 내는 정사政事만 한다. 여름철이 되면 봄에 물건 낸 것을 이어 받아서 자꾸 성장만 시킨다. 한 시간이 다르게 엿 늘어나듯 쭉 성장한다. 크는 것이 눈으로 뵈듯이, 와싹와싹 소리가 들리도록 성장한다. 그렇게 해서 봄에 물건 내서 여름철에 기른 진액을 전부 뽑아 모아서 통일을 한다. 가을철 금기金氣가 들어오면 초목이 더 성장할 수가 없다. 거기서는 봄여름에 생장한 그 진액을 전부 뽑아 모아서 통일시키는 수밖에 없다.

여름 불의 시간에서 가을 금 시간으로 넘어갈 때는 화극금火克金을 하기 때문에,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으로 토土가 매개를 해서 가을철에 매듭을 짓는다. 껍데기라 하는 것이 바로 금기운이다. 그래서 열매를 맺는다. 다시 말하면 춘하의 시간을 지나 가을철에 와서 아주 종결을 짓는 것이다.

기존 종교문화에는 우주변화 원리가 없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여러 수백 조 인간이 왔다 가는 가운데 참사람이 더러 있었을 것 아닌가? 예를 들면 공자 같은 사람도 나왔다. 공자의 문화권을 유교라 하지 않는가? 유가에서는 ‘성언호간成言乎艮’이라 전했다. 성언호간, ‘간艮에서 매듭을 짓는다’는 소리다. ‘간에서 옥황상제님이 오신다. 참 하나님이 인류 알갱이 문화를 들고 나오신다. 하나님이 오셔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다한 말이다. ‘종어간시어간終於艮始於艮’이라고도 했다. ‘간에서 인류 문화가 비롯하고 간에서 매듭을 짓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자가 매듭짓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천시天時도 그런 때가 아니었다. 공자가 나름대로 그 이치를 말한 것이다. 유가에서 세상이 둥글어 가는 천지이법을 이처럼 ‘성언호간’이라고 나름대로 매듭을 지어놓은 것이다.

불가에서 참선參禪이라는 수행법을 제창했다. 그런데 불가에서 아무리 영을 통했다 하더라도 진묵震默 대사만큼 통하지는 못했다. 진묵 대사는 ‘석가모니보다도 더 많이 통했다’는 분이다. 진묵 대사의 평생 시구를 내가 읊어줄 테니 들어봐라.

‘천금지욕산위침天衾地褥山爲枕’하고, 하늘로 이부자리를 하고, 땅으로 요대기를 하고, 산으로 베개를 삼는다. ‘월촉운병해작준月燭雲屛海作樽’이라, 달로 촛불을 하고, 구름으로 병풍을 삼고, 바닷물로 술독을 삼는다. 진묵은 술을 곡차라고 해서, 잘 자셨다. 태평양, 대서양이 오죽이나 넓고 바닷물이 많은가? ‘대취거연잉기무大醉遽然仍起舞’하니, 그 술을 실컷 마시니 크게 취했을 것 아닌가, 크게 취해서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각혐장수괘곤륜却嫌長袖掛崑崙’이라, 길 장長 자, 소매 수袖 자, 중의 장삼이 얼마나 긴가, 너풀너풀 춤을 추니 곤륜산에 소매가 걸릴까 염려한다.

불가에서는 겁을 말한다. 무슨 억겁, 몇 십억 겁이라고 하는데 그건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없는 소리다. 그것이 불가의 한계다. 3천여 년 동안에 불자들이 오죽이나 많았는가? 그 사람들은 우주법칙을 모른다. 그 수많은 인구가 평생을 다 바쳐서 수도한 것을 내가 가볍게 평할 수 없어서 더 입을 안 열 뿐이다.

진묵 대사의 시구를 가지고서 불교문화의 깊이를 한마디로 묶어서 말을 하는 것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3천 년 동안 참선 수행을 했지만 거기는 우주변화 원리가 없다.

증산도에서는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춘하추동 사시四時, 전반기 후반기, 선천과 후천 64,800년을 다 딱딱 따져서 누구도 알기 쉽게 말하지 않는가? 불가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저 겁만 말하다가 말았다.

그러면서도 종국적으로 ‘미륵불이 출세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진표 율사眞表律師가 나와서 생명을 걸고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수행을 했는데 그 대상이 바로 미륵님이다. 그 문화권에서는 옥황상제를 미륵님이라 했다. 그러니 옥황상제님을 상대로 해서 ‘만나 주시지 않으면 죽겠습니다’ 하고 망심참법을 하는데, 몸뚱이를 다 망쳐서 꼭 죽게 생겼다. 옥황상제님이 하늘나라에서 보니 안 만나 주면 죽을 것인데 어떻게 하나? 그래서 진표 앞에 나타나셔서 “네가 그렇게 소원을 하니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진표 율사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자, 옥황상제님이 “여기다가 나를 그대로 받들어 세워라.”라고 명하셨다.

지금 금산사金山寺가 있는 곳이 예전에는 용소龍沼라는 못이었다. 「정감록鄭鑑錄」 같은 비결을 보면 ‘사답칠두락寺畓七斗落이라. 부금浮金은 냉금冷金하니 종금자생從金者生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시간이 없으니 그걸 다 말할 수도 없다. 우리 신도들은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을 것 아닌가?

불가에서 진표 율사가 3천 년 불교를 대표해서 나와서, 가을철 옥황상제님이 오셔서 인류 문화를 통일하고 좋은 세상을 여시는 데 무엇으로써도 바꿀 수 없는 공을 세웠다.

서교는 자기 조상을 보고서 사탄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이 들으면 싫다고 할 테지만, 내가 그 사람들을 평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 신앙을 해도 종국적으로 그들도 죽으면 사탄이 될 것 아닌가?

세상을 위하려는 마음은 불가나 서교나 다 똑같지 않은가? 불가에서도 저 땅 끝까지 중생을 다 살려보겠다고 하고, 유가도 내내 오륜삼강五倫三綱이라 해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갖고서 세상을 위해야겠다고 한다. 세상 위하려는 마음은 유불선儒佛仙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그런데 불가에서는 제 아버지 성姓도 안 쓰고 제 혈통도 내버리고, 법명을 쓴다. 스님한테 성을 물으면 “불자가 무슨 성이 있습니까?” 한다. 기독교에서는 조상 제사를 지내면 동티가 나는지 사탄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철창에 있는 사람도 ‘주님을 찾으면 복 받는다’ 하고 세상을 위한다고 그런다. 세상 위하는 방법이 좀 다를 뿐이다.

상제님께 하소연한 마테오 리치 신부


그 문화 속에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1552~1610) 신부 같은 분이 나왔다. 가톨릭 신부가 다 바쳐서 예수를 믿었다. 리치 신부는 선천 성자들보다 훌륭한 분이다. 여러 천 년 동안 동서양 장벽이 막혀 있었는데, 리치 신부가 문화를 교류시켰다.

리치 신부가 동양에 와서 몸담고 있던 곳은 중국이다. 거기 와서 서양문화를 동양에 전했다. 또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라틴어로 번역해서 서양에 보냈다. 동양문화도 통한 분이고 동양 사람보다 더 많이 알았다.

그런데 그분은 살아서 못다 한 일을 죽어서도 계속했다. 죽어서라도 끝매듭을 지어야 될 것 아닌가? 공자가 죽은 후에는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석가모니도 그것으로 끝냈다. 그 제자들이 계승해서 일을 했을 뿐이다. 예수도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바울을 시켜서 일하게 하고, 사도 요한 같은 사람도 있었다. 역시 그 제자들이 사역을 계승했을 뿐이다.

헌데 리치 신부는 그게 아니다. ‘죽어서 내가 영신靈神이 되었어도 인간 세상을 위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 하고서, 저 천상세계, 문명한 세상을 찾아다녔다. 좋은 문명이기文明利器를 따 내려서 과학자들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었다. 사실 사람은 누구도 다 과학자다. 왜 그러냐 하면 사람은 다 창조의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자기 두뇌가 발전한 만큼 창조를 하는 것이다. 자기 사는 방에 밝은 종이라도 붙이고, 거기다가 꽃도 그리고 싶고 말이다. 농사를 지어도 ‘어떻게 잘 지을 수 있을까?’ 하고 창조의 경쟁을 하는 것이다. 그런 심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무엇을 만들면 그 사람이 과학자다. 연구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알음귀를 열어줘서 과학문명이 발전했다.

그렇게 생활 문화에 이바지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서 보니까 사람들이 오만무도傲慢無道해졌다. 이지理智가 발달하고 살기 편해지니 더 못돼지더란 말이다. 그래서 리치 신부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인간 세상은 과학문명만 가지고는 안 되는구나. 생활을 하는 틀이 바뀌어야 되겠다’ 하고 대오각성大悟覺醒을 했다. 그런데 그런 경지는 자기로서도 연구가 안 되어서, 그 이전 선지자들, 역사 인물들, 공자, 석가모니, 예수를 비롯한 인물들을 다 찾아다녔다. 그 신성, 불, 보살 들을 모두 찾아다니면서 상의를 해 봐야 무방법無方法,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하다하다 안 돼서 동서양 신명들, 거룩한 분들과 더불어서 하늘나라 옥경玉京에 계시는 옥황상제님께 등장을 했다.

인간 세상이 좋은 세상이 되지 않으면 천지도 제 노릇을 못 한다. 천지라 하는 것은 사람 농사를 짓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인간 농사를 폐농하게 생겼으니 상제님께 찾아간 것이다. 옥황상제님은 우주를 주재主宰하시는 주인공 아니신가? 그래서 “천지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생겼습니다. 저희 능력으로써는 방법이 없으니 옥황상제님께서 직접 인간 세상에 임어臨御하셔서 구원해 주십시오.” 하고 호소했다. 지나간 세상은 전쟁의 역사 속에서 제 명에 못 죽고 다 그렇게 갔으니, 이제 상제님께서 임어하셔서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에 전 인류가 행복스럽게 살게끔 좋은 방법을 열어 주시기를 하소연한 것이다.

상제님 진리로 군사부 세상이 된다


인류 역사가 생긴 이후로 세상 사람들이 겨울에도 훈훈하게 좀 잘 살았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하나 예를 들면 구들을 놓고 장작불을 때면 뜨뜻하게 지낼 수가 있다. 구들 돌, 그 두꺼운 돌이 불에 달면 얼마나 뜨겁고 좋겠나? 구들을 놓고서 자는 민족이 지구상에 우리 민족밖에 없다. 그런 좋은 문화를 우리가 갖고 있다. 이불 폭 덮고 따끈따끈한 데서 잠을 자면 얼마나 좋은가. 그런 좋은 생활 문화를 개발해서 상극이 없이, 서로 싸우지 않고 살면 얼마나 좋은가. 앞 세상은 군사부君師父 문화가 돼서 싸우려 해야 싸울 도리가 없다. 싸워도 안 되고 싸울 이유도 없다. 만일 싸우고 못된 짓 하면 인간 세상에서 법칙적으로 제외가 돼 버린다.

내가 노상 말하지만 다음 세상은 군사부 세상이다. 상제님 진리 하나 가지고서 5만 년을 통치한다. 그 진리 가지고서 5만 년을 통치하니 그게 ‘열매기 진리’ 아닌가? 더 좋은 것은 없다. 천리天理와 지의地義와 인사人事에 합리적인 최선의 진리다. 상제님이 선생님이요, 임금님이요, 부모님이신데 어떻게 바꾸는가? 바꾸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바꿔봐야 그것만 못하고, 바꿀 필요도 없다.

그러니 옥황상제님께 등장을 해서, ‘그런 좋은 진리를 계발해 주십시오’ 하고 호소한 것이다. 지나간 역사과정에서 잘 지냈든지 못 지냈든지, 싸움박질을 했든지 어쨌든지, 그 역사 문화권의 중추 인물들, 역사를 이끈 문화의 제창자들이 다 올라가서 ‘처분대로 해 주십시오. 그저 잘 살게만 해 주십시오’ 하고 호소를 한 것이다.

옥황상제님의 위치에서야 참 고마운 사람들 아닌가? 또 당신이 내보낸 사람들 아닌가?

신인이 합일하는 문화, 열매 문화


지금은 천지이치에 따라 천지의 철이 바꿔지는 때다. 천지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고, 천지의 틀이 바뀌는데 그것을 누가 어떻게 하는가? 하늘 쓰고 도리질하는 사람이라도 천지의 틀이 바꿔지는 것은 거역하지 못한다.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이때는 필연적으로 개벽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천지라 하는 것은 ‘대우주 천체권이 형성될 때부터 그렇게 둥글어 가거라’ 하고 틀이 정해져 있다. 이것을 알아야 사상 신앙을 하게 된다.

이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에는 상제님이 오시게 되어 있다. 그래서 현실 세상에 상제님이 내려오셔서 앞으로 5만 년 세상의 판을 짜셨다. 상제님이 오셔서 천지공사를 보신 것이다. 천지공사는 천리天理와 지의地義와 인사人事에 합리적인 최선의 방법으로 짜신 틀이다.

크게 묶어서 말하면, 천지 틀이 바꿔져서 신인神人이 합일合一을 하는 세상이 된다. 하늘땅 생긴 이후로 땅에서 살다간 역사적인 신명들, 그리고 현실 세상을 육신을 갖고서 사는 사람들, 그것이 ‘신인’이다. 그 신명과 사람이 합해서 하나가 된다. 사람은 신명을 만나야 살고, 신명은 사람을 만나야 산다.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사람이 남녀가 짝을 짓듯이 신인이 합일하는 것이다. 그런 문화가 나온다.

이 문화는 상제님이 꼭 그렇게 만드시는 것도 아니다. 천지의 질서가 바뀌어서 가을철이 되면 꼭 그렇게 된다. ‘추지기秋之氣는 신야神也라’, 가을철의 기라 하는 것은 신이다. 시골 가서 개울에 물이 내려오는 것을 보면, 봄물은 아주 부옇다. 헌데 가을 물은 깊이가 한 길이 돼도 유리쪽에 비친 것처럼 아주 훤하다. 그 밑에 나무 이파리 빠진 것까지 환하게 뵌다.

지금은 여름과 가을이 바꿔지는 때다. 그래서 열매 문화가 나온다. 가을철에는 열매가 여물지 않는가? 인류 문화도 알갱이 문화, 열매 문화로 통일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신인이 합일하는 문화가 나온다. 지금 생활 문화는 물질문화 위주이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사람에게도 육신과 영신이 있다. 내가 여기에 왜 왔는가? 내 심령이 ‘여기로 가자’ 해서 몸뚱이가 끌려온 것이다. 옛날부터 “심야자心也者는 일신지주一身之主라.” 마음, 나의 심령心靈이라 하는 것은 내 몸뚱이의 주인이라 했다. 내 심령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그러니 유형만 있어도 안 되고 무형만 갖고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모든 것이 다 통일이 된다.

천지에서 사람 농사를 지어서 이번에는 그 씨종자를 가린다. 악척惡隻을 지은 조상의 자손은 다 잡아가 버린다. 또 적덕積德을 하고 남을 도와준 사람이 있다. 그런 조상들의 씨종자는 이번에 신명들이 돕고, 또 척이 없어서 살아남는다. 열매를 맺는다. ‘열매를 맺는다’는 말은 그 씨종자, 자손이 이번 개벽기에 살아남는다는 소리다. 상제님 말씀에도 “십 리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 한 때가 온다.”(道典 8:21)라고 하셨다. 이 세상에 왔다 간 사람들 중에서 척을 짓고 못된 짓을 많이 한 조상의 자손들은 그 원억寃抑에 의해서 이번 개벽기에 다 처넘어간다. 대자연 속에 그런 증오憎惡하는 기가 뭉쳐 있다. 10대조 할아버지가 척을 지었으면, 그 10대조 할아버지에게 패배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신명들이 지금까지 내려오면서도 저주를 한다. 그런 것이 쌓인다. 그 척신隻神이 증오하는 기가 쌓여 있는데 개벽철에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그래서 그런 것을 다 플러스, 마이너스해서 개벽 때 심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불선이 함축된 상제님 진리


사람 사는 이 세상은 천 갈래, 만 갈래로 복잡하지만 세상이라는 것은 공명정대公明正大한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공명정대하다. 그 먹줄에서 벗어날 것 같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상제님이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감臨監하여 마음에 먹줄을 잡아 사정邪正을 감정케 하여 번갯불에 달리리니 마음을 바르게 못 하고 거짓을 행하는 자는 기운이 돌 때에 심장과 쓸개가 터지고 뼈마디가 튀어나리라.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기가 어려우리라.”(道典 4:32)라고 하셨다.

그러니 자기 자신부터 이 세상을 반듯이 살고 신앙도 정의롭게 해야 한다. 하늘땅 생긴 이후로 가장 좋은 진리가 우리 상제님 진리다. 상제님을 믿은 것도 없이 갖은 못된 짓을 속으로는 다 하면서 어떻게 남 죽는 세상에 살 수가 있겠는가.

지구상 사람이 다 상제님을 똑같이 믿을 권리가 있고, 또 진리가 다 수용을 한다. 흑인종도, 백인종도 누구도 다 상제님을 신앙할 수가 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이야, 상제님 고향이 여기고 우리나라가 종주국이니까 우선 먼저 믿을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상제님 진리는 가치관으로 해서 열매기 이념, 가을철 통일 진리다. 상제님 진리는 사유비유似儒非儒, 유교 같으면서 유교가 아니고, 사불비불似佛非佛, 불교 같으면서 불교가 아니고, 사선비선似仙非仙, 선도 같으면서 선도가 아니다. 상제님 진리에는 유교, 불교, 기독교가 다 함축돼 있다. 산함신감고酸鹹辛甘苦, 시고 짜고 맵고 달고 쓴 것이 전부 갖춰진 통일된 진리다. 2천 년, 3천 년 전에 꽃봉오리가 벌어졌고, 지금은 인류 문화가 2천 년, 3천 년 더 진화된 세상이다. 그것만큼 더 성숙된 세상이다. 이번에는 통일 이념, 열매기 진리, 알갱이 진리, 후천 5만 년 새 세상을 창출하는 이 문화권에 들어와야 나도 살고, 세상도 건질 수가 있다.

진리와 동행하야 사람을 살려라


신앙은, ‘내가 진리와 더불어 결혼을 하는 것’이다. 후천 5만 년 가도록 상제님 진리보다 더 좋은 진리는 없다. ‘나는 대자연 섭리와 동반同伴한다. 동행을 한다. 나는 그 영향권에 수용을 당하겠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동반은 동등한 위치라야 할 수 있다. 내가 거만한 사람들, 잘난 척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잘난 척하지 말고, 그저 ‘나도 성스러운 이념 속에 수용을 당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라. 내가 생명체로서 이 천지에 수용을 당해서 살듯이 말이다.

하늘땅이 상제님 진리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된다. 하늘땅이 빙하질대氷河迭代로 해서 상제님 진리 하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번에 유불선 선천 문화권이 다 정리돼서 상제님 진리, 알갱이 진리, 열매 진리, 통일된 진리 하나를 결실해 놓는다. 이것은 천지의 알갱이다. 천지가 둥글어 가면서 사람 농사를 지어서 그 알갱이, 씨종자를 추리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70억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이 문화에 수용될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갖고서 신앙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내가 꼭 공을 받기보다도 가족을 살리고, 인아족척姻婭族戚도 살려 주어야 한다. 이 세상에 와서 부모님한테 몸뚱이를 받아가지고 성장하면서 학교 친구, 사회 속에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도 쓸 사람이 있고, 못 쓸 사람도 있을 것 아닌가?

진실로 상제님 진리에 복종하라


태을주를 속으로 읽으면 그것이 그냥 습관화가 된다. “훔치훔치 태을천 상원군” 하고 소리만 안 낼 뿐이지 속으로 태을주를 읽는 것이다. 계속 소리 내어 읽으면 에너지가 소비돼서 그것도 못 배긴다. 태을주 읽는 것이 생활 습관이 되면 주문 읽으면서 자고, 또 자다가 보면 내가 주문을 읽고 있다. 자는 사람이 주문을 읽을 수가 있나? 그렇게 오래 주문을 읽으면 자면서도, 꿈에서도 태을주를 읽는다. 그건 힘든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어쨌든지 이번에 살아야 될 것 아닌가? 그건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강압으로 할 것도 아니다. 저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잘난 척하는 것이 다 소용없다. 잘난 척하면 사람도 미워하고 신명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억지로 못난 척하라는 것도 아니다. 내 순색純色대로, 가면적으로 신앙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고, 진실로 상제님 진리에 복종하라는 것이다.

거짓말하고 속이는 사람은 신앙인이 아니다. 신앙이 아니어도 그렇게 생활하면 안 되지 않는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친구에게도 ‘야, 그 사람은 참 진짜다’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할 것 아닌가?

하나 예를 들어서 말하면, 옛날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자기 처자를 어디다가 맡겨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아주 친하고 의리 있는 사람을 선택해서 “내가 독립운동을 꼭 해야 되겠는데 처자를 맡길 데가 없으니 자네가 좀 맡아주게.” 하고 부탁을 한다. 그러면 그 처자를 맡아서, 그 친구의 자식들을 키워 주는데 학비도 먼저 주고, 제 자식은 다음으로 준다. 모든 면에서 제 가족보다 친구의 가족을 먼저 한다.

또 친구가 독립운동을 하다 보면 죽을 수도 있지 않은가? 친구의 가족을 맡았으면 자기 가족보다 위선爲先해서 매듭을 잘 지어줘야 된다. 그런 사람이 진짜 사람이다. 사람 값어치는 그렇게 평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은 신앙도 그렇게 해야 된다.

신앙이라 하는 것은 다 ‘제 것’이다. 증산도를 신앙하면 ‘누구의 증산도’가 아니다. 다 제 증산도다. 제 신앙의 집, 제 신앙의 틀이다. 그건 혈통처럼, 바꿔지면 안 되지 않는가? 사람은 진짜가 돼서 ‘진짜 신앙’을 해야지 가짜로 신앙을 하면 안 된다.

선배 신앙인의 원력을 계승해서 일하라


운래시지運來時至, 운도 오고 때도 왔다. 우리는 보천교普天敎 때부터 수많은 신도들이 신앙한 원력願力을 계승해서 신앙을 한다. 그분들이 평생을 마음과 힘을 다 바쳐서 백 년이라는 세월을 끌고 내려왔다. 우리는 다 같이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진심으로 그분들의 신앙을 계승해서 상제님 일을 해야 된다.

내가 우리 신도들한테 ‘사람 되라’고, ‘신앙 잘 하라’고 여러 이야기를 했다. 지금 이 세상, 역사라 하는 것은 상제님 천지공사 보신 틀대로만 둥글어 간다. 대자연 섭리가 성숙됨에 따라서 인류 역사도 성숙되는 것과 같이 상제님이 틀 짜 놓으신 그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대로 세상이 둥글어 가는 것이다. 이제 때도 박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 내일 개벽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개벽이 늦어지더라도 증산도가 많이 성장한 다음에 개벽이 왔으면 싶다. 그래야 사람도 많이 살릴 것 아닌가? 빈 하늘땅만 남으면 뭘 하는가? 그러면 천지와 일월만 있을 뿐이다. 아니 사람이 없는 천지일월이 무슨 소용이 있나.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우리 신도들은 능력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상제님 신앙에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내가 두 손 모아서 기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