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내가 여기에 왔구나 외

[입도수기]

이제야 내가 여기에 왔구나



박검상(46) / 서울영등포도장 / 도기 145년 음11월 입도

저를 늘 보살펴 주시고 이끌어주신 조상님들의 음덕으로 증산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조상님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저희 조상님들, 특히 외할머님이 저를 항상 돌봐주신다는 생각이 늘 강하게 들었습니다. 저의 외할머니께서는 영월의 팔괘리 산 속에서 샘물이 솟아나는 바위 위에 지은 작은 흙집에서 조그만 금불상을 모셔 놓고 홀로 사셨던 보살님이셨습니다.

증산도에 입문하신 많은 분들처럼 저도 늘 구도심에 대한 갈급증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도 초겨울의 동네 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어 앉으면 제가 꼭 어디 딴 데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푸른 하늘의 흘러가는 흰 구름을 보면 한없이 빨려 들어가 무언가 신비로운 기분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또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울에 비친 제 얼굴과 생각하고 느끼는 제가 다르게 느껴져서 당혹스런 느낌이 들곤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중학교 1학년 때 서점에 교재를 구하러 갔다 우연히 ‘갈매기의 꿈’이란 책을 보았습니다. 겉표지에 흑백사진으로 갈매기 한 마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책을 펼쳐보니 흑백사진들과 짧은 글들이 있었습니다. 없는 집안이라 책 한 권 사기도 어려웠지만 나도 모르게 그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물론 무슨 내용인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이가 차 대학에 가서도 전공보다는 우리 역사에 관심이 갔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때 알았습니다. 상고사를 공부하고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자 머리 꼭대기서부터 몸속을 관통하는 기둥 같은 것이 우뚝 서 있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언가가 머리와 온몸의 겉과 속 여기저기를 계속 돌아다니며 톡톡 두드리듯이 진동시키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며 친구들이랑 후배와 만나 우리 역사에 대해서 얘기해주었는데 친구들은 앞으로 먹고 살 일과 직장 구할 생각만 가득 차 있어야 할 시기에 그게 우습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며 농담으로 박도사 박도사 하며 놀리기도 했습니다. “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질문이 우선이었던 저는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기독교를 비롯한 각종 종교 단체에서 3000배나 단식도 해보고 종교를 포함해 진리를 구하는 데 관련된 것은 두루 공부하였습니다. 하지만 속 시원한 답을 구하진 못했습니다. 다만 단체와 종교들에서 조금씩 깨우쳐가고 스스로 성장해가는 걸로 만족을 하였습니다. 대신 서점에 가면 이상하게도 그 당시의 제 의식 수준과 맞는 영혼의 의미라든가 마음을 공부하기에 딱 좋은 책들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그때 깨우침을 주는 분들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이십대 후반을 지나 삼십대 초반이 되니 더 이상 어떤 종교도 마음이 가지 않게 되었고 어느 정도 영혼과 이 지구란 별에서의 여행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에서야 ‘갈매기의 꿈’이란 책에서 마지막에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찾고 상승한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계속해 가는 과정에서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제가 다른 별에서 왔고 오랜 과거서부터 배달민족으로 우리나라에 반복해서 태어났었으며, 이번에 마지막 굳은 결심으로 몸을 받아 대한민국에 왔고, 지구 별과 같이 인류의 문명도 이 세기를 마지막으로 이번에 상승 단계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비슷하게 각성을 하고 깨어나기 시작한 영혼들이 전 세계 도처에, 특히 우리나라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거리의 도서 비치대에서 환단고기 소책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 후 역사에 관심이 있었던 저는 강화도 환단고기 콘서트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종도사님을 처음 뵈었는데 속으로 너무 기뻤지만 같이 갔던 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증산도에 대해서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진리와 속 내용은 몰라서 좀 더 공부를 계속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 대순진리회도 몇 번 가보고 얘기도 들어봤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끌리지가 않았습니다. 그 후 강남 선릉역의 아이타워에서 역사 강의를 몇 번 들었고 진리 강좌도 한 번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지만 계속 연락이 와서 ‘장 선생님’이라고 그냥 편하게 불렀던 분이 증산도 영등포도장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으로부터 ‘증산도의 진리’란 책을 선물 받고 읽었는데 확 깨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구입해 읽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서부터 한 글자도 놓치지 말고 읽겠다는 생각으로 앞머리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도전을 처음 펼쳐보는데 상제님의 어진을 보고 너무도 빛나고 위엄스럽고 한편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들어 두 손을 합장하고 허리 숙여 인사를 드리고 간행사부터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읽다 보니 “개명장이 나는 날에 일꾼들이 일제히 개심한다.”는 구절이 있었는데 꼭 귀에다 대고 얘기하시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 오르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밤늦도록 며칠을 계속 읽어나가면서 책 내용이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하나도 어려움 없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상제님이 진짜 상제님이란 걸 바로 알았습니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박혀 들어왔습니다. 지난 11월 29일 대전에서 열린 천지보은 대천제에 참석하였는데 그 날이 제 생일이었습니다. 태을궁에 서 있으니 감전된 것처럼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기운이 쭉 관통하였고 눈물이 계속 나왔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감추려 애썼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등포도장에 처음 갔는데 ‘이제야 내가 여기에 왔구나’ 하는 생각에 계속 눈물이 나왔습니다. 도장의 수호사님께서 입도 준비를 위한 정성수행을 21일 하라고 하여 매일 수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첫날에는 상제님과 태모님 어진 앞에 감히 서기가 두려운 마음이 들었는데 정성수행을 마치고 나니 환하게 웃어주셔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정성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느낀 메시지들과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에게 많은 사람을 살릴 지혜와 힘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성금은 사람을 살릴 천지공사의 군자금이다/ 태을주는 여의주다, 태을주 소리에 녹아 들어라, 무아지경으로 몰입하여라/ 상제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상제님의 허락 없인 아무 것도 안될 것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정말 염치없고 부끄럽지만 전생과 이생에서 범한 죄와 허물을 모두 사하여 주시옵소서(속죄의 심고를 드리고 대성통곡함)/ 항상 밝고 의로운 생각을 하여라/ ‘태을주는 여의주니라’의 참뜻을 체득하였는가/ 끊임없이 태을주 수행을 하여 입과 마음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여 기운이 붙게 하라/

그 외 머리 속에서 잡념의 기운을 끄집어내는 등 여러 가지 체험을 하였지만 중요한 것만 적어 보았습니다. 이제 입도를 앞두고 상제님과 태모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보고자 합니다. ◎

하루는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믿는 사람 중에는 타고난 마음 그대로 믿는 원심자原心者가 있고 착한 마음으로 믿는 선심자善心者, 마음을 굳게 다져 믿는 결심자決心者가 있으며 또 뜨거운 열정으로 믿는 혈심자血心者가 있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믿는 일심자一心者가 있느니라.”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이런 사람들을 추리고 또 추려 내면 마침내 마음 심心 자 하나가 남나니 오직 마음을 잘 닦아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1:160)

혈심자血心者가 한 사람만 있어도 내 일은 성사되느니라. (증산도 道典 8:52)


상생방송을 통해 놀라운 대도를 만났어요


최대훈(41) / 경주노서도장 / 도기 145년 음 11월 입도

저는 경주시 산내면이라는 산골에서 3형제의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적의 기억으로는 동생이 백혈병으로 죽었던 일과 할머니께서 신줏단지를 정성껏 모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정월 보름뿐만 아니라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신줏단지 앞에서 기도를 하셨고, 동네 뒷산 바위에 가서 기도를 하시거나 가까운 절에도 한 번씩 가서 기도를 하기도 하셨는데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어머니께서도 정월 보름날 기도를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형이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서 집안의 자랑이기도 했지만 저와 비교되는 것이 싫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가 거울로 햇빛을 반사해 제 얼굴에 비추는 장난을 쳤을 때 괜히 오기가 생겨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식으로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참 동안 힘겨루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인지 저는 서서히 시력이 떨어져서 책을 볼 때면 눈에 가까이 가져다 보아야 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병원을 여러 곳 가보았지만 정확한 원인과 치료방법을 얻지 못했고, 시력이 지속적으로 나빠지면서 학업에 대한 의욕도 나의 미래에 대한 꿈도 사라지고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죽음의 세계에 대해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저승의 세계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학업을 지속하여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취업을 하게 되었지만, 제가 하는 업무가 갈수록 세밀한 작업을 해야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회사에서는 저를 계속해서 채용해 주었지만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월급을 받는다는 것에 미안해하던 차에 우연히 OO진리회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퇴사를 한 후 부모님께는 다른 직장을 다닌다고 말씀드리고 OO연락소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시력 문제로 다른 직장생활에 어려움이 있고 해서 도를 닦는 것이 저에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열심히 수행하면 제 눈이 나을 수 있다는 생각과 전생의 업을 닦고 부모님도 잘되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부산으로 옮겨서 OO진리회 사람들과 같이 가정과 상가 방문 및 길거리 포덕생활을 6개월 정도 하였습니다. 욕도 많이 얻어먹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여기서도 제가 뒤에 온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누가 진리를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제가 시력이 안 좋아 혼자 공부하는 것도 안되고 해서 마음에 흔들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공덕을 쌓는다는 말에 현혹되어 직장생활에서 번 돈뿐만 아니라 부모님 통장의 돈까지 몰래 인출해서 성금으로 모신 일도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제가 교통사고를 내서 합의금을 내지 않으면 감옥을 가야 한다는 거짓말을 해서 부모님의 돈을 끌어내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일들이 자꾸 마음에 걸린 데다가 제가 진짜로 도를 닦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생기고 눈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등 여러 가지 고민들이 생기고 해서 무작정 경주 집으로 올라오면서 OO과의 인연을 끊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다른 직장생활을 했지만 항상 걸리는 문제는 시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경주에 있는 시각장애인 협회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장애인 컴퓨터 사용법과 안마 기술까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시각 장애인 TV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상생방송을 경청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계속 듣다보니 OO진리회에서 듣던 내용이 나오긴 하는데 ‘OO진리회보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과학적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 두 번 상생방송을 경청하면서 놀랍고 신비하다는 생각을 했고, 2년 정도 시청을 했을 무렵 상생방송 상담전화를 통해 안내를 받아 경주노서도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도장 포정님이 21일 정성수행과 진리교육을 받아 볼 것을 권유해서 거의 매일 도장을 방문해 수행과 진리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 OO진리회에서 전혀 들을 수 없었던 내용들을 배우면서 너무도 재미있고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짜놓으신 천지공사 그대로 이 세상이 둥글어 간다는 것이 너무도 신비스러웠습니다. 입도교육을 마치고 입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면서도 눈의 시력 때문에 상제님 신앙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으나, 포정님과 몇 차례 도담을 나누면서 만병통치 태을주, 만사무기 태을주, 소원성취 태을주를 굳게 믿고 더욱더 열심히 태을주 수행을 통해 제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며 천지의 일꾼으로 천명을 다 할 것을 다짐합니다. ◎

진리의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죠


홍민(48) / 익산신동도장 / 도기 145년 음 11월 입도

우선 이렇게 참 하느님의 진리를 만나 입도수기를 작성해 올릴 수 있어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저는 무신년(1968년) 음력 3월 그믐날 지금의 전남 광양제철소 바로 앞 태인도라는 섬에서 4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태인도는 우리나라 김의 원산지인데 지금은 광양제철소 때문에 김 수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에 김 생산을 할 때 양식이 아닌 자연생산 방식으로 했기에 굉장히 맛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 도와드리던 생각과 반쯤 말라가는 김을 뜯어 먹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저의 부모님께서는 그 섬에서 김 생산도 하시고 여러 가지 장사도 하시면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습니다. 그 결과 전남 순천에 집을 사셔서 저희 4남매가 순천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할머니께서 저희 4남매를 키워 주셨습니다. 그 때 할머니께서는 아침 일찍 정화수를 떠 놓으시고 천지신명님들과 조상님들께 부모님과 저희 4남매가 잘될 수 있도록 매일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마쳤을 때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부모님 하시는 일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고향으로 갔었습니다. 그 당시는 광양제철소가 준공되어 부모님께서도 여러 가지 사업을 확장한 터라 너무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제가 알기에 장남으로서 편안히 돈만 쓰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사업이 너무 하고 싶어 대학교 진학 포기를 결심하였고 결국은 반대하는 부모님도 설득을 시켰습니다. 그러던 중 OO전자에서 이 지역에 대리점을 개점하고자 하였는데, 여러 사람들의 개점 요청 쇄도에도 불구하고 OO전자 관계자는 ‘우리는 사장님 아니면 절대로 대리점을 허락할 수 없다’면서 저희 집에 방대한 자료뭉치를 가져와서 아버지께 권유를 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지금 있는 일도 다 하지 못하니 안 된다고 돌려보내기를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결국 그들의 집요한 설득 끝에 대리점을 개점하였고 그곳을 제가 맡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OO전자에서 목표한 월 매출을 훨씬 넘기는 실적으로 새벽까지 열심히 일하면서 돈 버는 보람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습니다. 대학에서 배울 수 없는 여러 가지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하고 싶은 분야를 연구하며 재밌게 살아왔었습니다. 그때 대리점을 같이 관리해 줄 안사람의 필요성을 느껴 23세의 나이에 일찍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무조건 결혼은 빨리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렇게 살아오던 중 아버지께서 무리한 투자와 회사 창업을 계획한 것이 잘못되어 부도가 나게 되었고, 저의 명의로 된 대출과 보증, 이서 등으로 엄청난 금전적인 시련이 닥쳐오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애들 엄마하고도 헤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 마음의 위안을 삼고자 어머니가 다니시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그때부터 기독교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가며 성경공부를 하였지만 그곳에 나갈수록 멀어지는 마음만 생길 뿐이었습니다. 왜 교인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일까?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교리인 너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조차도 모르니 그것이 어떻게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단 말인가? 왜 교회 성당은 비싼 땅에 많은 돈을 들여서 건물을 세워야 하며 진정 하느님께서는 그 돈으로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바라진 않을까? 성경에도 나와 있듯 인간들이 왜 지구 종말 같은 현상을 겪어야만 되는가? 고등학교 때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를 즐겨 읽고 성경에서도 언급이 되는데 성경에서 조차 명확한 답은 없는 것인가? 교인들 스스로가 모범이 되는 언행은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기도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왜 과학이 발달할수록 창조론이 아닌 진화론을 주장하는가?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기독교에서는 찾을 수 없어서 교회를 더 이상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문득문득 하느님이 생각날 때마다 하느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느님 저는 분명히 하느님이 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진정으로 참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문득 하느님이 생각날 때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이들은 다 출가를 시키고 아내와 헤어지고 나서 저는 혼자였는데 우연한 인연으로 전북 익산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익산에서 혼자 방을 잡아 놓고 생활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려고 채널을 돌리는데 언뜻 ‘환단고기’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 채널에서 스포츠를 보고 난 후 잠깐 스쳐들은 환단고기를 찾아 채널을 찾으니 상생방송이었습니다. 안경전 종도사님께서 일본에서 환단고기 북 콘서트를 하고 계신 장면을 상생방송을 통해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좀 있었던 터라 제가 듣도 보지도 못한 말씀에 집중하여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상생방송에 흥미가 느껴져서 시간만 되면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의 가을개벽에 대한 귀중한 말씀을 듣게 되었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를 읽고 그동안 너무 궁금했던 부분과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아 더욱더 관심을 가지고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종도사님의 독일 환단고기 북 콘서트까지 보고 나서 잘하면 ‘내가 진정으로 찾던 참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겠다.’라는 희망으로 집에서 가까운 증산도 도장을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무작정 찾아간 곳이 익산신동도장이었습니다. 도장을 방문하여 포정님을 만나 뵙고 상생방송을 보고 관심이 있어서 찾아오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리니 반갑게 맞아 주시면서 증산도에 대해서 친절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책자를 주시면서 읽어 보라고 권하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길로 집에 와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포정님께 전화해서 물어보곤 했었습니다. 그때마다 포정님께서 친절하게 자세히 말씀을 해주신 것에 지금도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포정님과 함께 대구 개벽문화콘서트에 참가하여 종도사님을 처음으로 뵙고 말씀을 들었고, 태전 태을궁에서 봉행하는 천지보은대천제에도 참석하여 너무나 뜻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입도시험을 3일 앞둔 날, 그날 저녁에 팔관법 기본교리책을 공부하고 밤 12시30분이 넘어 아침 일을 위해서 잠을 자려고 누웠습니다. 그때 얼굴 밑에서 하얀 불빛이 휙 지나가면서 젊은 청년의 목소리로 “공부해”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너무 신기한 체험을 해서 저는 상제님께서 저를 상제님의 일꾼으로 받아 주시려는 것 아닌가 해서 너무 기뻤습니다.

지금은 입도를 하기 위해서 팔관법을 배우고 있으며 아침, 저녁으로 증산 상제님과 태모 고수부님, 태상종도사님, 천지신명님들 그리고 조상님들께 청수를 올리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미천한 저는 거룩하신 증산 상제님의 진정한 일꾼이 되고자 합니다. 꼭 개벽기에 사람을 많이 살릴 수 있도록 일심으로 상제님의 도를 잘 닦아 부모님과 형제들, 자식들 그리고 열심히 포교를 통해서 알게 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필코 거룩하신 증산 상제님께서 열어주신 후천 선경세계에서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종도사님과 익산신동도장 포정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상생방송의 모든 관계자 여러분들과 익산신동도장의 포감님 이하 여러 성도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For the world of equal Yin and Yang
정음 정양의 세상을 위하여



마일라 플러리(40) / 필리핀 마닐라도장 / 도기 145년 음 11월 입도
Maila Flurey(40) / Philippines Maniladojang / initiated into Jeung San Do in the 11th month of the lunar calendar in 2015

몇 달 전, 저는 증산도 신앙인이 되기 위해 증산도 공부와 수행을 지속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스코틀랜드에서 필리핀으로 왔습니다. 2년 전에 입도를 했어야 했지만 그때는 망설였고, 그러나 유솝 신도가 입도를 과감히 결심하여 상제님의 일꾼이 되는 것을 보면서 기뻤습니다.
A few months ago, I arrived in Philippines from Scotland to fulfil the promise, that is, I will practice Jeung San Do meditation until I become a member of Jeungsando. I should have done it two years ago, but I hesitated, nevertheless, I was happy to see Yusoph Sungdonim took the plunge and became a Sangjenim’s Ilgoon by that time.

저에게 증산도 입도란 큰 책임감을 요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입도는 영적성숙을 위한 통과의례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많은 시간을 옥단소, 도전, 그리고 오텀콜링을 읽고 토론하는데 할애했지만, 결론적으로 천지의 일을 이해하는 것은 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현재까지 수행을 할 때면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발견합니다. 매주 모임을 통해 얻은 지식과 통찰력은 결코 충분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따라서 철야수행에 참여했으며, 정공과 도공을 함께 하는 것이 기운을 돌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을 머물면서 점진적으로 상제님과 태모님의 가르침을 공부했습니다. 제가 2014년 초에 필리핀을 떠나기 전, 저는 도장에 다시 와서 다음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수행을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For me, Jeungsando initiation requires a huge responsibility because it is a rite of passage to spiritual maturity. I spent countless hours reading and discussing Jade Flute, Dojeon, and Autumn Calling enough to know that understanding the work of heaven and earth is a never ending task. Up to now, I still feel that I am learning and discovering new things whenever I do meditate. It is as if the knowledge and insights that I gained through our weekend meetings are never enough. Consequently, I decided to join the overnight meditations and discovered that combining mantra meditation and dogong meditation would help circulate the qi. For a few years, I stayed on to practice meditation and gradually studied Sangjenim's and Taemonim's teachings. Before I left the Philippines early 2014, I made a promise that I will return to Dojang and study Jeungsando with meditation until I reach the next stage.

저의 영적인 구도의 길은 5년 전 리더십 세미나에서 이상규 님(지금은 포정님으로 부릅니다)을 만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포정님이 증산도 워크샵에 저를 초대해서 기본적인 우주원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의 강의에 약간 놀랐습니다. 그의 음양론 강의는 보통의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연구의 일환으로 유교와 성리학을 약간 공부했지만, 관련 학술 논문과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개념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강의 후에 갑자기 모든 것이 의미롭게 인식되었습니다. 과거 동양철학에 대해 배경지식이 없었던 제가 (저는 문학을 전공합니다) 그 심오함의 대의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My spiritual journey began five years ago when I met Sang Kyu Lee (whom I now call Pojeonim) in a leadership seminar. He invited me to the Jeung San Do Workshop and showed us the basic principles of universe. I was quite surprised by his lecture. It made the Yin and Yang theory comprehensible to the ordinary individual. Having studied Confucianism and Neoconfucianism as part of my research, I struggled understanding most of the concepts as I read through the academic essays and books. After his lecture, everything suddenly made sense to me. I, who have no previous background in Oriental Philosophy (I am a Literature major), grasped its profundity.


그 만남엔 마치 어떤 운명의 힘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음양론을 바탕으로 한 여성과 유교에 관한 논제를 개발하는 중이었습니다. 중국 철학의 기초 원리를 학습하기 위해 제가 수주간을 도서관에서 필기를 하며 독서를 한 것을 포정님이 냅킨 사이즈의 종이 한 장에 요약을 했습니다. 워크숍 후 커피타임을 가지며 우주일년과 개벽, 일심, 그리고 수행 등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포정님이 그 내용들을 종이냅킨 한 장의 도표 속에 모두 적어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음양의 움직임이란 것이 우리들 주변에서 만물을 창조하는 힘으로 대각선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음양의 움직임이란 단순히 하늘로 뻗쳐 나가는 코일 스프링이라기보다는 두 개의 힘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회오리 바람과 같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 후, 저는 증산도의 가르침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It is as if destiny brought us together. At that time, I was developing my topic on Women and Confucianism, based on Yin and Yang theory. Learning the basic principles of Chinese philosophy took me weeks of reading and note taking in the library only to watch the Pojeonim reduced it into the size of a paper napkin. Shortly after the workshop, we sat down for coffee and discussed the ideas of cosmic year, gaebyok, one mind, and meditation. I watched him, scribbled everything into a diagram on a paper napkin. I imagined the movement of Yin and Yang separated by a diagonal line interacting as it creates the universe around us. It was then concluded that the movement of Yin and Yang is similar to a whirlwind as these forces constantly interacts with each other rather than a coil spring that stretched out to the sky. After that, I wanted to know more about Jeung San Do teachings.

포정님은 제가 주문수행과 상제님 태모님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배울 수 있도록 저에게 소책자 ‘옥단소’ 한 권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 가르침이 제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신념, 특히 남성과 여성의 상호 보완성에 대한 생각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유교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저의 연구에서, 저는 원래 유교의 참된 의도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가치로서 그들의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사회에 조성시키는 것이며, 따라서 건전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 음(여성)과 양(남성)은 반드시 함께 협업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유학자 동중서 때 음양이 엄격히 이분화되면서 여성의 역할이 심각하게 제한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유학의 개념은 여성의 성을 폄하시키는 데 크게 기여를 해왔습니다. 옥단소에 있는 상제님의 말씀을 인용을 하면:
“선천은 억음존양抑陰尊陽의 세상이라. 여자의 원한이 천지에 가득 차서 천지운로를 가로막고 그 화액이 장차 터져 나와 마침내 인간 세상을 멸망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원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비록 성신聖神과 문무文武의 덕을 함께 갖춘 위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세상을 구할 수가 없느니라.” (옥단소 P.66)

Pojeonim gave me a copy of ‘Jade Flute’ so that I may learn mantra meditation and the basic teachings of Sangjenim and Taemonim. I read it with such enthusiasm and discovered that it corresponds with my long-held beliefs, particularly, gender complementarity. In my studies of the role of women in Confucianism, I learned that the true intention of Confucianism is to foster complementary roles with equal worth between genders, hence, Yin (woman) and Yang (man) must work together in order to build a good society. It is only during Dong Zhongshu's time that Yin and Yang were strictly dichotomized which severely limited the role of women. The concept of Neo-Confucianism has greatly contributed to the denigration of the female gender. As I borrow this passage from the Jade Flute:
“The Early Heaven has been the world of oppressed yin and revered yang. The natural course of heaven and earth as they are filled with bitterness and grief of women. From this, a disaster threatens to burst forth the power to destroy the human world. If women are not relieved of their bitterness and grief, even a great person of divine nature with intellectual and military accomplishments will not be able to save the world.” (Jade Flute, p. 66)

그 후 옥단소에 있는, 음과 양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상제님 말씀이 저에게 사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이신사의 법칙을 바탕으로 천지공사를 보셨는데, 이신사는 우주원리가 어떻게 신도와 맞물려서 인간의 역사를 구성해왔는지를 설명합니다. 우주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서 법칙인 이理과 에너지인 기氣가 있는데, 이것은 음양과 오행으로 설명이 됩니다. 이들 각각의 요소들은 공존을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우주는 소멸됩니다. 음양은 또한 균형되게 운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우주에 불균형을 가져옵니다.

It is then that Sangjenim's words in the Jade Flute became real to me that Yin and Yang cannot exist without the other. He conducted his work of renewal based on the law of Li-Shin-Sa, which explained how the principle of the universe interlocks with the way of the spirits and shapes human affairs or history. Within the universe, the key components are Li (the principle) and Qi (the energy), which are explained by Yin and Yang, and five elements. Each of these components should be present, otherwise, this universe will cease to exist. They should also operate properly or it would cause imbalance in the universe.

저는 상제님께서 도전에 여러 번 강조하신 음의 부재는 우주의 멸망을 야기한다는 말씀에 큰 위안을 받습니다. 사실, 음의 억압은 여성의 원한을 초래합니다. 결과적으로, 그 원한으로 부터 발생한 부정적인 기운이 개벽기 때 큰 재앙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상제님께서 여성들(음 에너지)이 남성들만큼 중요하다고 알려주셨고, 따라서 태모님께서 10년 천지공사를 집행하시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상제님과 태모님께서는 그 시대에 미래를 내다보고 앞일을 개척하신 분들이란 것을 보여줍니다.

It is with great comfort that Sangjenim emphasized it numerous times in Dojeon that the absence of ‘Yin’ will cause this universe to collapse. True enough, its oppression results in the bitterness and grief of women. Consequently, the negative qi coming from bitterness and grief will bring us great disaster in the time of gaebyok. To reduce its adverse effects, Sangjenim taught us that women (also known as Yin energy) are as essential as men so he brought Subunim to conduct her 10 years Cheonjigeongsa (or the work of renewing heaven and earth). It shows that Sangjenim and Taemonim were forward thinkers of their time.

반면,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형식상의 신新 유학을 따라 결과적으로 여성의 억압을 야기했는데, 상제님과 태모님께서는 미래를 위해 그것을 치유하는 법방을 추구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태모님께서 천지공사에서 큰 역할을 하실 것을 믿으셨고, 그녀를 당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분으로 만드셨습니다. 여성의 한 사람으로, 저는 태모님을 저의 위대한 역할 모델로 생각합니다. 태모님께서는 우리가 일심법의 가르침에 집중해야 하며, 그리하면 우리는 삶에서 위대한 것들을 성취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심법의 개념을 이전에는 전혀 접해보지 못했지만, 증산도 수행을 해오면서, 저는 제 자신이 복원력을 가지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직면한 많은 난관들에도 불구하고, 저는 세속적인 유혹에 빠지기보다 오히려 삶의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의 질병, 대학, 가족문제 등은 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좌절감을 가져다 주었지만 저는 인내를 했고, 실질적으로 제 논문안은 1차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Whereas many people blindly followed Neo-Confucianism on its surface which led to female oppression, Sangjenim and Taemonim sought to repair it for the future. Sangjenim also believed that Taemonim played a great part in Cheonjigeongsa and made her one of the most influential women of her time.
As a woman, I consider Taemonim as a great role model to me. She once said that we should focus on the teachings of one mind and we will accomplish great things in our lives. The concept of one mind never crossed my path before, but having practiced Jeung San Do meditation, I realized that I have become resilient. Despite the many challenges I encountered, I learned to focus on the important things in life rather than be caught by worldly distractions. My illnesses, university, and family issues were my setbacks in developing myself, but I persevered and true enough, I succeeded in gaining approval for my thesis proposal.

그로 인해 저는 제 아이디어와 여성 연구에 대한 노력의 가치가 인정이 되었다는 것에 고무되었습니다. 도장에서 수행을 하면 할수록 그만큼 저는 제 삶의 방향성과 균형감각을 얻습니다. 저는 아침 저녁 수행에 진지하게 참여를 했습니다. 저에게 아침에 일어나 바쁜 일상을 시작하기 전과 저녁에 돌아와 잠들기 전 수행을 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일과 활동들을 수행을 중심으로 짰으며, 그것은 제가 저의 공부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줍니다. 그러나 포정님과 저의 조상님, 그리고 위대한 성신들의 지도가 없었다면 그 모든 것을 성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That is why I felt inspired because my ideas and my work on women studies are validated. The more I meditate in the Dojang, the more I gain a sense of balance and direction in my life. I joined the morning and evening meditations with solemnity. It became a routine for me to wake up in the morning before the rush hour, then return in the evening for dinner and meditate before going to bed. I based my scheduled activities around meditation and it gives me the strength and courage to continue my studies. However, I would not have achieved all this without guidance from Pojungnim and my ancestors and other great spirits.

도장에서 저는 치성을 엄숙하게 드리고 싶었습니다. 태모님께서는 “각 주문의 기본 정신을 알고 읽어야 주력呪力이 확고히 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솝 신도와 저는 한글 원어민이 아니므로, 정성을 다해 수행을 하기 위해서 모든 주문들의 영어 번역본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저는 부지런히 옥단소 첫 번째 카피본에 메모를 했고, 그것들을 자주 보다 보니 첫 번째 옥단소의 바인딩이 끊어져서 페이지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In Dojang, I felt our Chiseongs (ceremonial ritual) should be solemn. It was Taemonim who said that we need ‘You must grasp the fundamental meaning of each mantra you chant to fully experience its power.’ Since Yusoph and I are not native Hanggeul speakers, it was necessary for us to study the English translations of all the mantras so we can meditate with all sincerity. I diligently wrote down notes on my first copy of Jade Flute. I read them so frequently that the spine of my first copy broke and its pages fell apart.

사실, 저는 그 당시 제 석사학위 논문에 적합한 주제를 찾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2주 후, 저는 꿈속에서 “네가 원하는 해답은 그 책 속에 있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저는 전에 그 책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 당시 단지 몇 권의 사본만이 남아 있어서, 저는 그 책을 사러 출판사로 직접 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저는 지체하지 않고 출판사 사무실에 가서 책을 구입했습니다. 저는 점심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서, 즉각적으로 제 논문의 논제를 위한 아이디어를 구상했습니다. 제가 제 삶에서 증산도 수행의 긍정적인 효과를 경험한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True enough, I prayed that I may find the suitable topic for my proposal. Two weeks later, I dreamt of a voice that said, “The answer you seek is in that book.” I have read about the book itself. At that time, there were only a few copies available so I have to go to the publishers to buy it. When I woke up, I wasted no time going to the publishing office and bought the book. I read it over lunch and instantly formulated the idea for my proposal. It was then that I felt the positive effects of Jeung San Do meditation in my life.

저는 영어로 번역된 도공체험 사례들을 통해서 증산도 성도님들의 체험 내용들을 읽었습니다. 그들 체험사례들은 그들 대부분이 개인적인 질병으로 문제를 겪으면서도, 증산도를 꾸준히 배우고 수행을 지속해 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과 마닐라 도장에서의 제 자신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저는 제가 이제는 입도를 할 단계에 도달했고,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현재 1년 정도 집중수행을 해오고 있습니다. 매주 도장을 방문하던 것이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포정님과 함께 매일 2회씩 도공과 함께 수행을 하며, 서전서문과 도전성구를 읽고 있습니다. 다음은 포정님과 대화를 하다 떠오른 도전성구 말씀입니다.

“모든 일에 마음을 바로 하여 정리正理대로 행하여야 큰일을 이루나니, 만일 사곡邪曲한 마음을 가지면 사신邪神이 들어 일을 망치고, 믿음이 없이 일에 처하면 농신弄神이 들어 일을 번롱飜弄케 하며, 탐심을 두는 자는 적신賊神이 들어 일을 더럽히느니라.” (영문도전 2:87).

이제 새해를 2주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다가오는 새해를 올바른 마음가짐과 긍정적인 시각으로 시작할 것을 기원합니다. 저는 일심으로 증산도를 배울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상제님과 태모님의 가르침을 통해 제 삶의 목적과 염원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I can even read it from our English translations of Dynamic meditation experiences. Most of them faced problems of illnesses and yet, they persevered in learning Jeung San Do and continued practicing meditation. From these accounts and my own experience here in Manila Dojang, I can only say that my readiness to become a member of Jeungsando has reached its proper timing and a decision has to be made.

I have been practicing intensive meditation for a year now. My weekly visits to the Dojang became daily. I practice mantra and dogong meditation twice a day with Pojeonim as I move on to the next stage. Every day, Pojeonim and I would read the Preface of the Shuzuan and passages from Dojeon. As I go through the words with Pojeonim, I came across this passage from Chapter Two:

“In all matters, only when you set your mind right and act accordingly can you accomplish great things. If you possess a crooked mind, a wicked spirit spoils the work. If you approach your work without faith, a jesting spirit turns it into a joke. If you have covetous mind, a thieving spirit corrupts the work.” ( Dojeon 2:87).

It is two weeks before the start of a new year. I am looking forward to beginning my year with the right mindset and a positive outlook. With one mind, I will continue studying Jeung San Do. I have faith that I can still achieve my goals and aspirations through the teachings of Sangjenim and Taemon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