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7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STB하이라이트]

    〈STB콜로키움〉 광개토태왕 비문을 통해 본 우리 고대의 역사

    2강 광개토태왕 비문의 왜곡과 올바른 해석



    추모왕의 통치이념 - 도道로써 나라를 다스리라


    고구려의 건국은 기원전이죠. 신라도 그렇고 백제 역시 기원전입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사람이 추모왕*이죠. 그런데 고구려 통치이념이 굉장히 좋아요. 오늘날 봐도 통치 철학이 그거 이상 갈 수가 없을 만큼. *고주몽(BCE 58~BCE 19) 고구려의 개국시조, BCE 37년 고구려를 건국했다.
    *고주몽(BCE 58~BCE 19) 고구려의 개국시조, BCE 37년 고구려를 건국했다.


    추모왕이 1세 왕이라면, 광개토대왕은 19세 왕이예요. 적어도 한 400년 내려왔죠. 그런데 중요한 게, 광개토대왕비에는 기원전에 있던 추모왕에 대한 건국의 정의와 통치의 기본이념에 대해서 썼어요. 그 기록을 우리가 지금 눈으로 볼 수 있는데 굉장히 좋아요. 그 첫머리를 간단히 하나 읽어보면요. [번역문 읽기]

    추모왕이 통치철학을 얘기하는데, 이도여치*, 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힘으로 다스리면 안된다. 군대로 권력으로 다스리면 안된다. 욕심으로 다스리면 안된다. 세력으로 다스리면 안된다. 수레 여(輿) 자인데, 이 지구를 여라고 그래요. 이 세상을 도로써 다스리라. 대단히 좋은 말씀입니다. *이도여치(以道輿治): 도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고조선의 건국이념 중 하나.
    *이도여치(以道輿治): 도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고조선의 건국이념 중 하나.


    나는 하늘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이라는 물의 신이 있는데 그 따님이 우리 어머니다. 그래서 나는 하늘을 내 아버지로 하고 땅을 어머니로 이 세상에 난 추모왕이다. 사고가 다르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종교 아닙니까? 아, 조상의 아들이라고 그러지,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하늘의 아들이라고 그러잖아요.

    하늘은 나를 낳은 근원이기 때문에 그건 아버지요 할아버지요. 그러니까 하늘은 선생이라고 못해요. 선각자나 뭐 진리라 해도 안돼요. 나를 낳았으니까 아버지지. 사람에 대해서는 하늘이고, 아들에 대해서는 아버지. 하늘에 있는 아버지요, 땅에 있는 사람의 아들이라. 그래 father of heaven, son of man. 이렇게 된 거거든요. 성경이 이 이상 넘어가지 않죠? 단순한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느냐.

    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도로써, 로고스죠? 도로써 다스려라. 그리스도도 나지 않은 기원전인데, 도로 다스려라 그랬잖아요. 광개토대왕의 호가 영락이거든요. 영락대왕이라고 그래요. 영락사해*라. 사해(四海)라는 건 세계를 뜻해요. 사해동포라면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되요. 이 세계를 영원하게 낙원으로 만들리라.
    *영락사해(永樂四海): 영원히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든다는 뜻으로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난 고주몽 성제의 건국이념


    더 이상이 없죠? 세계화가 이와 다른가요? 같은 얘기죠. 어떻게 해야 되는가. 진리로 다스려야지 힘으로 다스리면 안돼요. 로케트로? 경제력으로? 안되요. 도로써 진리로 다스려라. 영원토록 사해를 낙원으로 만들리라. 그게 정치의 모토예요. 우리나라가 남을 지배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사실 오늘날같은 세계화 시대에 이 철학이 필요한 거죠? 이게 얼마나 좋아요? 아 요한복음이 다른거 아니잖아요. 제1장 봐요. 태초에 말씀이 있었는데, 그 말씀이라고 번역했지만 로고스거든요. 근데 중국 성경에는, 태초에 유도有道하니, 도가 있으니, 그냥 도라고 새겼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는 자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성경 그대로 아닙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랬지, 하늘의 이치라고 하지 않았죠? 우리 아버지는 하늘이요, 나는 하늘의 아들이다. 우리 아버지는 하늘이다. 아버지라고 불렀잖아요. 이걸 자꾸 보면요. 하나하나 깜짝깜짝 놀랄 얘기가 막 쏟아져나와요. 오늘날 하는 얘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죠.

    일본이 조작한 광개토대왕 비문


    그러면 우리가 이런 철학이 있는 걸 아는데, 여기서 문제되는 구절이 뭐냐 하면, 지금 내가 여기 써놨어요. 똑같은 원문인데, 일본 사람들은 해석하는 게 달라요. 한문은 구두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서, 구절 떼는 데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거든요. 그럼 일본 사람들은 점을 어디다 찍느냐.

    탁본은 ①판독이 먼저 중요하고 ②그 다음에는 점을 어디다 찍는지 구두점(본지에서는 띄어쓰기로 하였음-편집자주)이 중요하고 ③그 다음에는 해석이 문맥이나 논리에 맞아야 되고 ④동시에 역사적인 사실하고 일치해야 돼요. 왜? 비문은 역사적인 사실의 기록이니까. 중국, 한국, 일본 역사의 사실이 거기에 나와야 되거든요.
    ■광개토대왕 비문 중 논쟁부분


    ■일본의 해석(사카와라 요코이)*

    =>백제와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 속민이다. 왜냐? 고구려 세력이 컸거든요. 신라도 조공을 바치고 백제도 조공을 바쳐서 속민이다. 유래조공이, 속민이 된 유래로 조공을 바쳐왔는데, 왜(일본)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파는 동사예요. 파했다. 백제와 신라를 □□ 파괴하고 깨부수고, 이위신민이라. 신민을 삼았다. 육년병신이라는 건, 신묘년은 광개토대왕 1년인데 신묘 임진 계사 갑오 을미 병신 하니까 병신년은 광개토대왕 6년이거든요. 그래 6년 병신에 왕이 궁설수군하야 토리잔국, 여기 이로울 이(利) 자를 써요. 이게 잘 안 보이는데 이(利) 자 써가지고 토리잔국, 그리고 군공취… 이렇게 해석을 해요.
    [#*일본 측은 광개토대왕 비문의 조작과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았다.

    ■정인보* 해석

    =>백제와 신라는 옛적부터 고구려의 속민이다. 그런 유래로 조공을 바쳐왔는데, 일본이 침략해왔기 때문에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바다를 건너가서 일본을 파했다. 도해파의 주어를 고구려로 봐요. 그래서 백잔이, 백제가 일본하고 통하거든요. 왜하고 같이 연합해서(연침) 신라를 침략했다. 신라가 이위신민, 고구려의 신민이었는데 일본이 침략해오기 때문에 왕이 6년 병신에 직접 군대를 이끌고 백제를 공격했다. 이렇게 해석해요. 토리잔국이라, (백제를 때리고) 신라를 이롭게 했다. 정인보씨가 이렇게 해석했거든요.
    *정인보(鄭寅普, 1893~1950): 일제가 날조한 역사를 배격하고 우리의 역사 속에 흐르는‘ 얼’을 강조하는‘ 얼사상’을 주장했던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비판의 쟁점
    일본의 해석으로 보면, 일본 사람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 신라를 쳐부수고 신민을 삼았다고 했으니까 이것은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다는 것이 광개토대왕 대문자에 써 있지 않느냐. 임라일본부를 뒀다는 일본 기록도 거짓말이 아니고 이것이 증명해준다. 그러니 오늘날 한국, 만주 지배해도 이상할 게 아무것도 없다. 옛날에도 그랬지 않느냐. 이렇게 제국주의 이론을 뒷받침했다고 보는 거에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런 사실이 없는데 일본 사람이 이렇게 해석하고 보니까 이걸 어떻게 하냐. 최남선 씨 같은 이는 이렇게 따라가고 말았어요. 반대하고 나선 게 우리나라의 애국지사 신채호, 정인보 같은 양반이죠. 그런데 정인보 씨가 다시 읽은 비문 해석은 무리한 게 많거든요. 토리 할 때, 백제는 때리고 신라는 이롭게 했다, 이렇게 주어와 목적어가 불분명한 그런 해석이 있을 수 없지 않느냐 하고 중국 사람이 공격을 한다 말이에요.

    백잔신라百殘新羅


    야, 그러면 이게 어떻게 되는 건가. 요새 꽤 공부하는 사람들이 공격을 해오는데 야단났다 말이여. 하지만 일본 사람이 백제 신라를 공격한 사실이 없죠? 오히려 뭐가 있냐? 광개토대왕비에 광개토대왕의 업적이라는 데를 보세요.

    ■비문에 쓰인 광개토대왕의 업적
    -영락 5년 을미(乙未)에 비려를 정복
    -영락 6년 병신(丙申)에 왜와 백제를 정벌
    -영락 8년 무진(戊辰) 식신을 정벌
    -영락 9년 기해(己亥) 평양을 순수
    -영락 10년 경자(庚子) 신라를 구원하고 왜구를 정벌
    -영락 14년(404) 왜와 잔(殘, 백제)을 정벌

    굉장히 많이 쳐부셨어요. 저 잔(殘) 자는 쇠잔할 잔 자, 못된 놈, 괴뢰정부 같은 놈. 고구려하고 백제는 사이가 아주 나빠요. 어머니만 다르지 아버지가 같은 형제인데 이렇게 웬수예요. 이름도 잔이라고 불러요. 그래서 왜놈과 같이 아주 경멸했다.

    이렇게 보면 일본이 여지없이 당하기만 했는데 무슨 식민지를 둬요? 이건 아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안된다.

    이위신민以爲臣民 조작부분 [vod사진]



    그런데 일본 해석은 말이죠. 백제와 신라를 파하고 신민을 삼았다 그러거든요. 한문법에, 이 써 이(以) 자가 없으면 위(爲)신민, 신민이 됐다. 이렇게 되요. 그러나 이위(以爲)하면 신민을 삼으려고 생각했다 이거에요. regard to, think to, 그렇게 기도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신민은 아니지만 신민 같이 취급했다. 신민으로 여겼다.

    일본어로 오모에라쿠おもえらく(思えらく, 以為·意·謂, 생각컨대 생각하기를), 그건 실지로 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여겼다. 자꾸 와서 제 나라 백성 같이 뺏어가고 집어가고 부녀자 약탈하고 그렇게 했다. 일본에서 공부했으면 알게 아니예요? 문법을 분명하게 새겨줘야 되요.

    이위신민以爲臣民 -신민으로 삼으려 하였다
    위신민爲臣民 -신민이 되었다

    그래서 일본이 쓴 『會餘綠』(회여록)에는 말이죠. 이위신민以爲臣民에서 이(以) 자를 빼내버리고 위신민爲臣民, 신민이 됐다, 이렇게 썼다고. 다른 사람은 그것도 지적을 안해요. 원문에 써 이(以) 자가 있는데 왜 빼내버리고 신민이 됐다고 그러냐. 신민이 됐다는 걸 강조하려고 문자까지 빼내버려가면서 얘기하는 그런 얘기를 왜 들어요? 너희는 문장도 못 읽는 거 아니냐. 이위신민하고 위신민은 전혀 달라요.

    토討 왜잔국倭殘國


    일본 사람들이 관학자들, 어용학자들하고 『會餘綠』(회여록)을 가지고 5년 동안 광개토대왕비 비문을 고쳤어요. 어떻게 하냐면 돌로 깨고서 여기에 백회, 석회를 발라가지고 굳잖아요. 그럼 글자를 만들어요. 그래가지고 탁본을 했다고. 그러니까 일본에 유리하게 글자를 전부 조작하고 만들어서 책을 낸 거에요. 지금도 광개토대왕비 현지에 가보면 회 바른 자취가 허옇게 있어요. 저희 비위에 맞도록 글자를 조작한 부분이야. [회 바른 자취그림 참조]

    토리잔국討利殘國 -
    토왜잔국討倭殘國 -왜와 백제를 쳤다.

    이게 왜(倭) 자인데 이로울 이(利) 자를 만들어놨다고. 정인보 씨는 직접 가서 보지는 못했거든요. 일본이 해놓은 걸 가지고 문장만 해석하는 거지, 실지 원석탁본을 봤느냐 할 때는 못 봤다고.

    정인보 선생이 왜(倭) 자를 이로울 이(利) 자로 보아 토리잔국(討利殘國)으로 보고 나니까 고구려가 왜를 친 구절이 하나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여기 도해파渡海破에서 고구려가 쳤다고 억지로 갖다 붙였는데 무리가 됐다 그 말이죠.

    저게 벌써 백수십년 되었잖아요. 그런데 수십년간 얼었다가 녹았다가 하니까 석회 바른 게 떨어졌거든요. 아 그랬더니 원형이 나왔다고. [vod사진] 보니까 요 대목에 토□잔국 군□□ 이럴 때 잔/국/군 보이잖아요. 자, 지금 이거 보세요. 이 왜(倭) 자가 원 광개토대왕비에 있는 글자에요. 이 탁본을 보면 분명히 드러나요. 주은태라고 하는 사람이 탁본을 잘하는 사람이에요. 일본이 이걸 깨서 잘 안 보여서 그렇지, 요 대목에 여기가 토 자, 입 구 하고. 여기 잔 자, 나라 국 자, 군사 군 자. 여기 글자를 깼다고. 이로울 리(利) 자 없잖아요. 이거[亻]만 조금 보이죠? 토□잔국 討□殘國 할 때 여기 인(亻) 변이 분명하게 딱 보이죠? 이것이 이 왜(倭) 자와 같다구요. 요 형상이 여기 보이는 거야. 그러니까 토왜잔국, 일본과 백제, 두 나라를 쳤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요 남은 글자 갖고 리(利)로 읽은 사람이 있느냐. 지난 120여년 동안 중국, 한국, 일본에서 광개토대왕비를 연구한 학자가 천명도 넘을 텐데 리(利) 자로 본 사람이 없어요. 혹시 깨진 후에는 벌(伐) 자로 봐요. 인(亻) 변은 보이니까, 정벌해 토벌했다 이렇게 본다고.

    토벌잔국討伐殘國 -왜와 백제를 토벌했다.

    그런데 비문에서 토(討) 자만 써도 다 된 거지, 벌(伐) 자까지 안 써요. 한 글자 한 글자 공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중복해서 안 써요. 다른데 다 그렇게 했거든요. 토벌, 토멸, 뭐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왜(倭) 자로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내가 얘기하는 거에요. 왜와 백제를 쳤다. 그래서 왕이 일본 소굴에 이르러서 공취일팔성이라. 여러 개 성을 공격했다. 논리도 맞고 사실에 맞게 하려면 이렇게 해야 옳다 그 얘기입니다.

    도해파渡海破


    이것도 내가 읽었어요. 증명이 다 돼요. 괜히 주창하는 게 아니예요. 그런데 이형구는 왜(倭) 자가 후(後) 자다. 올 래(來) 자가 아니고 아니 불(不) 자다. 여기 도해파 할 때 건널 도(渡) 자가 아니고 공(貢) 자다. 그리고 바다 해(海) 자가 아니고 인(因) 자다. 그러면 이렇게 읽는 근거가 어디 있어요?

    ■이형구* 해석 [vod사진]
    =>(백제와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 신민인데 조공을 바쳐왔는데)
    그 이후에 신묘년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음으로 인해서 백제를 쳤다. 백제를 파하고, 백제가 왜구와 같이 연합해서 신라를 공격해서 신민을 삼았다.
    *1981년 이형구(李亨求)는 비문 자형(字型)의 짜임새[結構], 좌우행과의 비교에서 나오는 자체(字體)의 불균형 등을 들어, '倭'는 '後'를, '來渡海破'는 '不貢因破'를 일본인이 위작(僞作)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형구,『 한국 고대 문화의 비밀』, 새녘출판사 2012개정판, 239쪽 참조)


    일본이 조작했다고 지적하는 건 말할 수 있지만 비문 해석은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납득되는 근거가 있나요? 문법에도 맞지 않고 문리에도 통하지 않는다고 중국 학자가 공격을 해요. 우리로서는 이렇게라도 됐으면 좋겠지만, 논증의 실재 근거, 시각적으로 논리적으로 또 실증적으로 역사적으로 사실에 맞아야 되는데 조금 무리라고요. 그러면 내가 지금 얘기하는 건 뭐냐?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고구려의 속민이다. 그 연후 이래로 조공을 바쳐왔는데, 그랬는데, 이(而)는 접속사에요. and도 되고 but도 되고 therefore도 되고 그래요. 위 문장과 아래 문장을 연속시키는 접속사 역할을 해요.
    이신묘년내, 신묘년 이래로. 중국말에는 이래(以來)라고 붙일 수도 있지만 떼어 가지고 이렇게 넣기도 합니다. 제외할 때, 제외(除外)라고 붙여쓰지 않고 제□□외 이렇게도 쓴다고요. 여기 중국서 공부하신 분 있나요.

    도해, 바다를 건넌다는데 이건 바다 해(海) 자가 아니에요. 바다 해로 보면 글자가 안 되요. 이 줄을 보세요. 삼 수(氵) 변이 줄 바깥으로 나가 있거든요. 가령 다른 데에는 사해라 할 때, 줄을 딱 맞춰서 사각형 안에 들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걸 떼고.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바다를 건너 매양 파했다. 백제와 신라를 파했다. 신묘년에서 병신년까지 6년 동안 자주, 매양, 바다를 건너와서 신민을 삼으려고 했다. 삼은 게 아니고 집적거리고 해적질로 약탈했다 그말이예요. 그러니까 6년째 병신년에 광개토대왕이 직접 몸소 수군을 이끌고 토왜잔국이라, 왜잔국을 쳤다. 고구려가 백제를 치면 수레를 타고 가지, 왜 수군을 끌고 가요? 일본을 치니까 수군을 끌고 갔죠? 왜잔국, 왜는 일본이고 잔은 백제에요. 둘을 다 쳤다.

    군지과구軍至窠臼 [vod사진]



    주은태 탁본이 최근에 나온 건데 여기가 이를 지(至) 자거든요. 삼각형하고 흙 토 한 거, 맞죠? 그 다음에 희미하게 보이는 글자, 웅뎅이 과(窠) 자에요. 새들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아서 소(宵)라고 하고 동물들은 굴을 파고 속에다 웅뎅이를 만들어서 과(窠)라고 해요.

    그리고 다음 글자를 아무도 못 읽어요. 혹 읽으면 남녘 남, 머리 수, 길 도, 뿔 각, 이렇게만 읽고 이걸 구(臼)라고 못 읽어요. 이게 방아 찧을 때 밑에 돌 절구 쑥 들어간 거 있잖아요. 이게 절구 구(臼) 자라고. 그러면 뭐냐? 과구인데, 이 말은 소굴이라고, 왜놈의 소굴. 그때 왜놈은 나라도 아니예요. 해적이니까 왜적, 왜구, 도적 구 자, 도적 적 자, 소굴. 이렇게 말했죠. 그러니까 왜놈 소굴에 가서 18성을 공격해 쳤다 그렇게 쓴 거에요.

    =>6년 병신에 왕이 몸소 수군을 이끌고 왜국과 백제잔국을 토벌하여
    고구려 군대가 왜놈들 소굴에 이르러 공격해서 18성을 취했다.

    그리고 백제의 58성을 취했다. 뒤에 나와요. 이렇게 해석해야 옳다. 그러니까 저 18성은 일본의 18성이예요. 지금까지 이걸 왜(倭)로 본 사람이 아무도 없고, 구(臼) 자로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이렇게 하면 앞뒤가 꼭 맞지 않아요? 내가 해석한 겁니다. 아마 역사적인 사실하고 논리하고 꼭 맞으니까 이건 중요한 발견이 될 거예요. 수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이것은 언순이정하고,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문제는 말이죠. 제가 철학적으로 어떻게 보는가 하는 건데, 다시 얘기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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