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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개벽뉴스]

    크림사태와 한반도 정세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지난 2014년 3월 3일 러시아가 인접국 우크라이나의 크림(크리미아)반도 전역을 장악한 뒤 주민투표 등의 절차를 거쳐 3월 21일에 러시아-크림공화국 합병을 확정짓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2013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 정권에 반발하는 시민 저항이 일어나 친러시아 세력과 친서방 세력 간에 정치 투쟁이 벌어진 혼란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이 사태로 인해 친러 성향의 우크라이나 대통령 야누코비치가 국민에 의해 축출되어 러시아로 도피하는 국면을 맞았고, 내전의 위기까지 거론되는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 남쪽으로 흑해를 향해 돌출한 ‘크림반도’ 내부에서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해 독립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에 러시아가 즉각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크림반도에 군대를 투입해 장악하고 일사천리로 합병을 확정해버린 것이다.

    크림반도 합병의 전략적 이유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진입해 합병을 강행한 표면적인 명분은 크림반도 내의 다수를 차지하는 친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면의 사정을 들여다 보면 합병을 강행한 몇 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크림반도가 러시아 흑해함대 주둔지로서 세바스트로폴이라는 부동항不凍港이 있어서 전략적,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주변의 국가들을 친서방국으로 포섭해 가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또한 크림지역이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유럽에 수출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고 많은 지하자원을 보유한 지역이라는 점도 이곳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히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이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사태는 그 부분만 국한해 볼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전반적인 정국을 함께 살펴봐야 하는 복합적인 문제다. 우크라이나는 많은 유럽의 국가들처럼 현재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와중에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권력 부패상이 드러나면서 우크라이나 정국은 반정부 시위와 이를 폭력으로 제압하는 정권 사이에 대립이 격화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당면한 디폴트(default, 국가 대외채무불이행)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대외적인 경제지원이 필요했는데, 서방측인 EU와 나토에 가입하느냐 아니면 러시아와 손을 잡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야누코비치는 미온적인 지원을 약속한 서방측보다도 현실적인 지원을 약속한 친 러시아 정책으로 선회를 했다. 하지만 1932년 당시 소련의 스탈린이 집단농장체제에 저항이 심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해 식량을 징발하는 인위적인 기근 정책을 실시해서 최소 80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을 굶어 죽게 만든 수탈과 원한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이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 무능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데다가 대통령이 민족적 감정이 개입된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자 국민들이 극렬하게 저항하게 된 것이다.

    또한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영토인 크림반도는 본래 러시아 영토였으나 1920년대 소련이 사회주의 연방에 우크라이나를 강제 편입시키면서 그 불만을 달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넘겨준 지역이다. 이처럼 언어와 인종이 다르고 2/3가 러시아계 주민인 크림반도 지역을 우크라이나는 지금까지 자치공화국 형태로 묶어두면서 관리를 해 왔는데, 친러시아 입장에 선 대통령이 축출되는 정국의 혼란 속에 최근 크림지역이 러시아와의 합병을 선택하면서 분리 독립의 흐름을 촉발시킨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우크라이나 동부 주州 세 곳의 친러 분리주의 세력도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현재 동부 도네츠크, 루간스크, 하리코프 주州가 각각 독립 공화국을 선포한 상태이고,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강력 대응을 천명하면서 도네츠크 주에서 친러시위대와 교전을 벌이는 등 사태가 확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크림사태의 파장


    이번 크림사태는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적지 않다. 1991년 알마아타 선언Alma Ata Declaration을 통해 소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The Budapest Memorandum를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대신 우크라이나-러시아 국경의 보안과 안보를 약속했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1997년 크림반도 항구에 러시아의 흑해함대Black Sea Fleet의 주둔을 허가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서는 특히 대규모 러시아군의 병력이동은 우크라이나의 허가 아래 가능하도록 되어있고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병력 규모를 늘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크림반도 합병 과정에서 보았듯이 러시아는 협정에 구애받지 않는 듯한 행동을 취했고, 결과적으로 약속을 믿고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현실에 있어서는 위축된 입장에서 힘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비핵화’를 화두로 삼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에 충분하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목격한 북한이 핵의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원하고 있지만 강대국의 이권과 힘의 논리가 어떤 결과를 낳느냐를 보여준 이번 사태를 통해 비핵화는 더욱 어려운 난제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는 것이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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