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국, 배달시대부터 옛 선조들은 도로써 나를 다스렸다

[특집]
9천년 한민족사의 위대한 증언
안경전 종도사님의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8〉

신교는 유도 불도 선도 기독교 등의 뿌리종교이자 인류의 원형문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통계자료(각 종교가 제출한 자료를 집계한 ‘2008년 한국의 종교현황’)에는,

불교 3800만, 개신교 1100만, 천주교 488만, 유교 1018만여명이라는 자료가 있다. 주요 종교단체들이 주장하는 신도 수를 모두 합하면 대한민국 인구 두배 가까운 8300만명에 이른다. 자료의 신빙성을 떠나 가히 신의 나라, 종교의 나라라 할 만하다.

기자는 문득 <종교에도 원산지 표시제를 실시하면 어떨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불교는 인도에서, 기독교(카톨릭과 개신교)와 이슬람교는 중동지역에서 나왔다. 신앙은 국적을 초월하지만 우리 한민족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모두 외래종교요 수입문화다. 이들 외래종교의 연대기를 거슬러 따져보면 아무리 멀리 잡아도 3∼4000년 전이다.

환국과 배달, 단군조선의 상고시대 이래 한민족 역사가 9000년이라면… 한민족과 이들 종교는 애당초 어떠한 관계도, 연결고리도 없다. 그야말로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되고도 한참 뒤늦게, 밖에서 전해져온 생소한 사상이요 문화이다. 그런 외래종교, 외래사상이 들어오기 훨씬 전, 한민족은 과연 어떤 종교, 어떤 신앙을 가졌을까.

“한민족의 역사는 한마디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아
그것을 일상의 모든 지침으로 삼은 신교神敎문화의 역사이며
나아가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역시 그 뿌리는 신교이다.”

한민족 고유의 신앙사상, 신교神敎


◎교과서는 물론 그 어느 역사책에서도 신교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신교에 관한 기록들이 어딘가에 나오기는 나올 텐데요.
▶한민족의 고유한 종교와 사상을 신교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동안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신교는 ‘이신설교以神設敎’를 줄여 부르는 말인데 ‘신으로써 가르침을 베푼다’는 뜻입니다. 조선 숙종 때 인물로 추정되는 북애자가 지은 『규원사화』에 “우리나라는 신으로 가르침을 베풀고 옛것을 좇으니 그것이 풍속이 되어 사람들 마음이 안정되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또 이보다 후대 인물인 이종휘의 『수산집修山集』에 포함된 『동사東史』에는 “신시 배달의 시대에는 신으로써 가르침을 베풀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조선 성종 때 서거정 등이 편찬한 『동문선東文選』에는 “신도로써 가르침을 베푸니 태평이 가득하다” 쓰여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도 “이삼신설교以三神設敎”, “이삼신입교以三神立敎”, “제천위교祭天爲敎”, “이신시교以神施敎” 등 유사한 표현들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한결같이 신의 가르침, 즉 신교를 교화敎化의 중심에 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흥미롭게도 동양의 오랜 고전의 하나인 『주역』에서도 “성인이 신도로써 가르침을 편다”는 구절도 등장합니다.

◎신교 말고 달리 부르는 명칭도 있습니까.
▶고신도, 선도, 수두교, 풍류도 등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아마 풍류라는 말이 아마 가장 대중에게 친숙할 것입니다. 통일신라 때 대학자인 최치원이 남긴 「난랑비서鸞郞碑序」라는 글 가운데 일부가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진흥왕조에 실려 있습니다.

“나라에 지극히 신령스런 도道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그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으니, 실은 곧 삼교三敎를 포함包含하여 군생群生을 접화接化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정에 들어와 효도하고 나가서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魯司寇(=공자)의 뜻과 같은 것이요, 무위無爲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이 가르침을 행함은 주주사周柱史(=노자)의 종지와 같음이요,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竺乾太子(=석가)의 교화와 같다.”는 대목입니다.

‘풍류’에서 바람 풍風은 ‘’을, 달아날 류로도 읽는 류流 자는 땅을 의미하는 ‘달’을 이두문식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또 풍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신령스런 존재인 ‘신’을 상징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어느 쪽으로 보나 풍류는 그 본성이 빛, 광명으로서 무소부재無所不在하며 천지의 온갖 조화를 짓는 ‘신’을 삶의 중심에 두고 있는 신교를 의미합니다. 게다가 최치원은 신교의 내용도 소개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선사仙史』라는 문헌에 자세히 실려 있다, 했습니다. 아쉽게도 그가 말한 『선사』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고대 한민족에게는 다름 아닌 신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나 백성들의 삶을 떠받치는 토대였다…, 앞의 여러 문헌이나 기록들은 그런 사실을 명백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최치원 선생의 난랑鸞郞이란 표현이 신라 때 화랑 혹은 화랑도를 가리키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화랑도는 <화랑을 우두머리로 한 청년집단>입니다. 화랑도花郞徒는 선도仙徒 혹은 낭도郎徒라고도 불렸는데 그 우두머리를 ‘국선國仙’이라고도 했습니다. 단순한 청년무사들의 모임처럼 인식되고 있는데 잘못된 겁니다. 화랑도는 원래 신을 받드는 모임이었습니다. 신라시대 김대문의 『화랑세기』에 보면 “옛날에 선도仙徒는 단지 신을 받드는 일을 하였다”고 쓰여 있습니다. 앞서 본 것처럼 신교를 신선 선仙자를 써서 선도仙道라 했고 또 ‘풍류’라고도 했습니다. 최치원 선생은 「난랑비서」 곧 화랑을 기리는 비문에서 풍류라고 했고요. 『삼국유사』에 화랑도의 명부名簿를 ‘풍류황권風流黃卷’이라 했다, 그런 기록도 있습니다.

이처럼 초기 화랑도는 군사집단이 아니어서 여성도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삼국사기』 진흥왕조條에 ‘처음에는 얼굴이 예쁜 여자를 둘 뽑아 화랑의 우두머리로 삼았는데 서로 질투하고 다투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죽이는 바람에 이후 잘 생긴 남자를 화랑으로 뽑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화랑도 뿐만 아닙니다. 고구려에도 조의선인皂衣仙人이라 해서 화랑도 비슷한 집단이 있었습니다. 또 북부여에서는 이를 천왕랑이라 했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단군조선 때는 국자랑國子郞이라 했습니다. 『단군세기』에 의하면 국자랑은 미혼소년들로 구성되어 독서와 활쏘기를 익혔습니다. 이들이 밖에 다닐 때에는 모자에 천지화天指花를 꽂아서 ‘천지화랑’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화랑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죠. 또 『태백일사』에 의하면 삼신을 수호하는 ‘삼랑三郞’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신채호 선생은 이러한 우리 고유종교를 지키는 사람들을 통칭하여 낭가郞家라 했습니다.

◎앞서 최치원 선생의 「난랑비서」 이야기 가운데 ‘삼교三敎’와의 연관성을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입니까.


▶잘 알려진 것처럼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한다는 것은 유교의 주요 덕목입니다. “무위無爲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이 교敎를 행한다”는 『노자』 제2장의 대목입니다. 또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한다”는 내용은 불교경전인 『열반경』과 『증일아함경』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최치원 선생은 풍류가 삼교를 포함한다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포함包含’이란 단어입니다. 그것은 ‘포함包涵’과는 다릅니다. 후자가 단순히 밖으로부터 휩쓸어 싼다는 의미인 반면, 앞의 것은 본래부터 함께 그 속에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신교에는 애초부터 삼교사상의 핵심적 가르침이 간직돼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원형原型으로서 현묘한 도道인 신교가 있는데,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삼교를 들여다보면 결국 그 종지宗旨들도 신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문맥상 <유불선 삼교가 뒤늦게 신교의 요소들을 다듬어 각각 그 종지로 삼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최치원의 「난랑비서」를 근거삼아 한민족 고유의 종교와 사상인 신교는 유, 불, 선을 수용하여 재구성하거나 종합한 것이다 혹은 그것들을 섞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주장하는데 그런 주장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최치원은 또 “우리에겐 이미 유儒와 불佛의 토대가 되는 신교적 유산이 남아 있어서 유·불의 도를 따르는 것이 붉은 인주가 옥새에 새겨진 대로 찍히고 쇠가 거푸집 안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고도 했습니다. 최치원뿐만 아닙니다. 19세기 말에 나온 『신교총화』에서도 신교를 뭇 종교의 조상이며 모태가 되는 뿌리 진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육당 최남선 역시 조선에는 예로부터 유, 불에 앞서 고유신앙이 있었으며 이 민족종교는 유교나 불교가 들어온 뒤에도 나란히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림 신교문화 발전사]

◎신교가 나중에 한민족에게 전해진 외래종교나 사상들을 아우르는, 말하자면 뿌리 혹은 모태라는 말씀인가요?
▶『환단고기』에서도 유, 불, 선 삼교가 주장한 이념의 원형, 곧 신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교에서 만물의 본원을 이루는 삼신三神은 낳고(조화), 길러 깨우치고(교화), 다스리는(치화) 세 가지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좀 어려운 이야기입니다만, 이 세 가지 창조성은 각기 천도天道, 지도地道, 인도人道에 해당합니다. 삼신에 깃든 천도, 지도, 인도는 신교의 교화가 깊어지면서 다시 전佺, 선仙, 종倧의 이념으로 구체화됩니다.

전佺은 천도, 즉 하늘 아버지의 창조정신에 근본을 둔 것으로 사람들이 본성을 틔워 참을 이루는 것이고, 선仙은 지도, 즉 어머니 땅의 조화정신에 근본을 둔 것으로 자신의 영원한 생명력을 깨달아 널리 선함을 베푸는 도입니다. 종倧은 천지부모의 꿈을 성취하는 인도에 근본을 둔 것으로 자기 몸의 정기를 잘 보존하여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 전도, 선도, 종도가 유불선 삼교의 뿌리가 됩니다.

이처럼 천·지·인에 근본을 두는 전·선·종의 길은 <모든 인간이 천도, 지도, 인도에 부합하여 자기 본성을 회복하고 온전한 인간을 지향하는 계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각각의 계율이 차례대로 조화를 요체로 하는 선仙, 심법을 주장하는 불佛, 인간의 도리를 밝히는 유儒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교는 곧 (삼신)상제님의 가르침


◎그런데 지금 사람들에게는 신교라는 말 자체가 아예 생소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신교는 신의 뜻과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린다, 신의 가르침을 인간생활의 중심으로 삼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종교나 신앙을 넘어 정치 종교 사회 문화 등 삶을 이끌어가는 바탕이 된다는 뜻입니다. 신교는 곧 사람들이 하늘을 섬기고 천지, 자연, 인생이 굴러가는 모든 것이 신의 주재 아래 있다고 믿으면서 신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생활문화 전체를 말합니다. 나중에 유, 불, 선 등 외래종교가 유입돼 우리 정치와 삶을 지배하면서, 또 일제강점기와 서구 근대화과정을 거치면서 신교는 점차 우리 삶의 전면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 스스로 신교를 무속이나 민간신앙으로 왜곡하거나 미신으로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신교는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9천년전 이래 지금까지도 우리 한민족의 생활과 사고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한민족의 정신세계에 영감을 불어넣어 왔습니다.

◎신교의 가르침을 줄여 말하면 어떤 것입니까?
▶먼저 신교에서 말하는 신이 어떤 분인가 알아야 합니다. 그동안 줄곧 이야기했던 것처럼 신교에서 받든 신은 우리 한민족이 오랫동안 삼신상제님, 상제님으로 불러온 그 분입니다. 상고시대 이래 한민족의 역대 임금은 삼신상제님의 대행자로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그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백성을 다스렸고 백성들은 그 뜻에 따라 삶을 영위했습니다.

『환단고기』를 보면 제천의례는 환인천제로부터 “새 시대를 열어 가르침을 세우고 신교의 진리로 교화하라”는 명을 받은 환웅천황 때 나라의 의례로 자리잡습니다. 해마다 음력 10월 중 정기적으로 봉행되던 천제는 후대로 가면서 봄과 가을 한차례씩 거행됐습니다. 강화도 마리산을 비롯해 태백산, 황해도 구월산, 평양의 기림굴 등에 천제를 올린 제천단祭天壇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제천의례 또는 종교의식이 단순히 종교나 신앙차원에 머문 것이 아닙니다. 신교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개개인의 수행修行,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한 구도求道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신교가 가르치는 온전한 인간, ‘참나(=진아眞我)’는 본래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내 안의 신성神性과 광명을 회복해서 내 자신이 바로 삼신상제님이 머무시는 그릇(=궁궐)이 되는 데 있습니다.

제천祭天의식은 그러한 목표를 향한 수행이며 다짐입니다. 상제님을 받들고 내 본성을 찾아 ‘참나’가 되고(=성통性通), 나아가 그 깨달음을 삶 속에 실천하면서 나와 이웃이 협력해 상생의 새 세상을 이룩하는 것(=공완功完)이 신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런 가르침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입니다. [그림 태백산]

◎신교에서 제천행사, 혹은 천제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신교는 한마디로 삼신상제님을 모시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생활 전체를 말합니다. 마땅히 그 처음과 끝은 삼신상제님입니다. 환국시대 이래 수 천여년 한민족은 지도자와 온 백성이 참여하는 제천행사를 통해 삼신상제님을 받들어 왔습니다. 환국, 배달, 고조선시대 이래 우리 조상들은 삼신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려 그 은혜와 덕을 기리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천제는 한민족의 상제신앙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의례요 생활이자 문화행사입니다.

단군조선 제22세 색불루단군 때 올린 천제의 제문祭文에 보면, 천제가 과연 어떤 행사인가 알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 폐백幣帛을 바쳐 나라의 부강과 백성의 번영을 기원하고 상제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국가행사>인 것입니다(『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나아가 천제를 올린 뒤에는 모든 백성이 한데 어울려 음주가무와 놀이를 즐기는 축제의 장이 열렸습니다. 한마디로 천제는 제사와 놀이로 신과 왕과 백성이 하나 되는 큰 마당이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

동방 한민족의 이 같은 천제문화는 9천년전 이미 환국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천년전 배달을 개척한 환웅 역시 나라를 세운 후 천제를 봉행했습니다. 뒤를 이은 단군왕검도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아사달에 도읍을 정했습니다. 지금도 저 강화도 마리산에는 초대 단군왕검께서 쌓은 제천단(=참성단)이 있습니다.

◎상제님이라고 하면 쉽게 와 닿는데, 삼신상제님이라 할 때 왜 굳이 삼신이란 말을 덧붙여야 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신교에서의 신神은 그저 우리가 무조건 받드는 저 절대자 한 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을 과연 어떻게 볼 것이냐, 신교의 신관神觀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신교에서 신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신교에서 신은 먼저 우주가 생겨나고 만물이 존재하는 본원本源, 천지에 가득한 그 본원을 가리킵니다. 한민족은 세상 모든 것이 생성돼 나온 근원이신 이 신을 일러 태곳적부터 삼신이라 했습니다. 서로 다른 세 분의 신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존재는 한 분, 곧 일신一神입니다. 이 일신께서 낳고(造化), 기르고(敎化) 다스리는(治化) 세 가지 방식으로 우주와 인간 역사에 작용하신다는 뜻입니다. 세 가지 작용, 이른바 3수三數의 원리로 만물을 창조하고 변화를 열어나가는 까닭에 삼신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형태가 없으면서도 우주에 가득한 실체인 이 삼신의 생명을 오늘날 과학자의 눈으로 본다면 천지에 가득 찬 ‘에너지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동양학의 주기론자主氣論者들 눈으로 보면 천지를 메우고 있는 ‘기氣’라고도 표현됩니다. 신교에서는 그 같은 신의 실체와 본성을 ‘광명光明’으로 파악했습니다. 대우주를 채운 광명, 순수한 영기靈氣의 주동자(발동자) 삼신은 만물의 탄생과 변화를 지어나가기에 조화삼신이며, 또 만물의 바탕을 이루기에 원신元神(Primordial God)이라고도 합니다.

이와 함께 신교의 신은, 천지 만유의 본원이 되는 삼신과 하나 되어 그 조화권능으로 실제 온 우주를 다스리는 주재자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 하나님은 인격적 형상을 한 살아있는 삼신, 유형의 통치자 하나님입니다. 이를 앞서 말한 원신과 구별해 주신主神(Governing God)이라 합니다.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신이라는 뜻입니다.

조물주 삼신이 천지간의 온갖 변화와 생성의 근본이 되는 본원이요, 근원적인 힘이지만 이 같은 힘은 천상 궁전의 통치자이신 주신에 의해 우주의 운행과 인간의 역사에 구체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환단고기』에서는 모든 것의 본원인 신과 구별하여 직접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 하나님을 삼신일체상제三神一體上帝 또는 삼신즉일상제三神卽一上帝라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를 줄여 삼신상제님, 상제님이라 부른 것입니다.

또한 신교에서는 대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역사, 생활 속에서 움직이고 작용하는 다수의 신들도 존중합니다. 『환단고기』 기록에는 ‘삼신상제께서 오제五帝나 오령五靈 등 신들의 힘을 행사하여 만물을 다스렸으며 뭇 신령과 철인[群靈諸哲]이 상제님을 모시고 있다’고 했습니다. 본성에 있어서는 같지만 그 위격位格이 다른 수많은 신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일원적一元的 다신관多神觀입니다. [그림 오제오령]

환인천제의 가르침, 홍익인간


◎‘홍익인간’이란 말이 신교에서, 그것도 상고시대에 나온 것이라니 놀랍습니다.
▶우리 고등학교 윤리나 국사교육 때문에 대개 홍익인간이라 하면 단군의 개국이념이다, 그렇게들 알고 있습니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정확하거나 충분한 것도 아닙니다. 먼저 홍익인간이 어디서 나온 이념 혹은 사상인가 하는 것을 『환단고기』가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는 환국시대 환인천제가 환웅에게 전수한 이념이자 가르침입니다. 『삼국유사』의 「고조선조條」에서도 확인됩니다.

일찍이 환인천제는 늘 인간 세상을 구하려는 환웅에게 새 세상을 열도록 허락합니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바로 이때, 그러니까 환웅이 새 세상을 열 때 환인천제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대원칙이자 근본이념으로 내려준 것입니다. 환웅은 이 이념을 바탕으로 배달을 열고 백성을 다스렸고 나중에 단군왕검도 이를 계승해 개국이념으로 삼았습니다.

그 본래 의미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을 진정 이롭게 하는 게 과연 무엇일까요. 그저 생활의 질을 높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 개개인이 본래 자기 모습, 앞서 말한 ‘참나’를 실현해서 참된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신교에서 참된 인간이란, 내 안에 본래 깃들어 있던 삼신의 광명(=신성)을 회복해서 대자연과 천지 신성과 하나 된 존재로 상제님을 받드는 존재입니다. 이처럼 천지의 신성을 회복한, 참된 인간이 바로 태일太一입니다. 태일은 천지부모와 한마음으로 이웃과 함께 모두가 행복한 새 세상을 이룩합니다. 이것이 홍익인간의 이념입니다.

◎참된 나를 완성하고 나아가 새 세상을 여는 것이 홍익인간의 본래 뜻이다, 그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요.
▶앞서 신교의 제천祭天의식을 말하면서 성통性通과 공완功完이라 했습니다. 참나를 찾고 새 세상을 여는 것이 바로 성통공완입니다. 단군왕검께서는 일찍이 성통공완했을 때 비로소 조천朝天이라 하셨습니다. 하늘에 이른다, 천상 궁전의 상제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교를 통해 나타나는 한민족의 우주사상은 한마디로 삼신에서 출발해 태일에서 매듭지어진다, 그렇게 줄여 말할 수 있습니다.

환웅천황과 단군임금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은 점차 유교 불교 도교 등 외래종교와 사상의 득세로 우리 삶을 이끌어가던 힘을 잃었습니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서 홍익인간이란 대목이 나오지만 이후 600년 이상 어떤 기록에도 그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8.15해방 후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교육법이 제정되면서 홍익인간이 일단 교육이념으로 채택됐다는 점입니다.

홍익인간은 한민족이 나라를 열던 저 옛날이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국할 때나 변함없이 우리 한민족의 다짐이며 약속이었습니다. 그랬던 우리가 과연 그러한 다짐대로 살고 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약속한 홍익인간의 이념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자기배반이고 자아상실입니다. 『환단고기』는 참됨으로 돌아가 우주의 통치자 상제님의 조화세계에 들어설 것[반진일신反眞一神]과 그릇됨을 바로잡아 참됨으로 나아가야 한다[개망즉진改妄卽眞]며 우리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상고시대 통치체제가 제정일치祭政一致로 이루어진 것도 신교와 관련이 있습니까.
▶제정일치란 아시다시피 종교와 정치권력이 분리되지 않고 한 사람에게 집중된 정치체제입니다. 단군조선시대 정치틀은 왕이 제사장을 겸한 제정일치체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칫 나중에 나온 자의적인 독재나 전제정치 시스템과 혼동하면 안 됩니다.

먼저 단군왕검의 조선을 제정일치 사회라고 보는 근거는 단군이라는 호칭에 있습니다. ‘단군’은 하늘 혹은 천신天神을 의미하는 몽골어 ‘텡그리’와 통하는 말로 제사장의 의미입니다. 초대 단군은 특히 단군왕검이라 했는데, 여기서 왕검은 통치자 즉 군장君長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단군왕검은 제사장이자 군장입니다. 초대 단군의 그러한 권한과 통치시스템이 후대 단군들에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당시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국가행사였는데 이를 단군이 주관했습니다. 천제를 집전執典하는 사람인 까닭에 단군은 자연히 신의 뜻을 이 땅에 대변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왕이 하늘을 대신해 천하를 다스린다, 그런 관념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군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한 것은 아닙니다. 『환단고기』 중 「단군세기」를 보면 단군의 권력이 오늘날의 전제권력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오늘 주제를 비껴가는 것이어서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이야기하지요. [그림 국조삼신] [그림 광개토호태왕비]

◎광개토대왕비도 신교와의 연관성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그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비碑에 보면 광개토대왕의 업적뿐 아니라 고구려 건국시조인 추모왕(고주몽)에 대한 언급이 첫 부분에 나옵니다. 추모왕이 죽기 전 세자인 유류왕에게 내린 유언이 다름 아닌 이도여치以道與治 즉 ‘도로써 나라를 다스리라’ 당부한 것입니다. 여기서 추모왕이 말씀하신 도道가 무엇이냐, 구체적인 내용이 비문 자체에는 없지만 『환단고기』 중 『태백일사』의 「고구려국본기」에 나와 있습니다.

“하늘의 신은 만인을 한 모습으로 창조하고 삼진三眞을 고르게 부여하였느니라. 이에 사람은 하늘을 대행하여 능히 이 세상에 서게 되었다.” “슬기로운 이는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하며 계율을 잘 지켜 삿된 기운을 영원히 끊나니 그 마음이 편안하고 태평하면 저절로 세상 사람과 더불어 매사에 올바르게 행동하게 되느니라. 군사를 쓰는 것은 침략을 막기 위함이며 형벌의 집행은 죄악을 뿌리뽑기 위함이니라. 그런고로 마음을 비움이 지극하면 고요함이 생겨나고, 고요함이 지극하면 지혜가 충만하고, 지혜가 지극하면 덕이 높아지느니라. 따라서 마음을 비워 가르침을 듣고, 고요한 마음으로 사리를 판단하고, 지혜로 만물을 다스리고, 덕으로 사람을 건지느니라.”

이는 고주몽의 조칙을 기록한 『대변경大辯經』이란 책의 내용을 전재한 것입니다. 대목마다 위대한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고주몽을 ‘성제聖帝’라고 부르는 배경을 짐작하게 합니다. 단순히 영토를 확장했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성제라 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나아가 고주몽은 이런 가르침이 일찍이 신시배달시대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옛 선조들은 도로써 나라를 다스렸다. 그것이 바로 환국·배달 때부터 있었던 신교라는 것입니다.

도로써 나라를 다스리다


◎그렇다면 삼국시대까지도 신교의 전통이 살아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 교과서에 보면 삼국시대 이후로는 주로 불교문화가 생활을 지배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불교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에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였습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대체로 그 시기가 4, 5세기쯤 됩니다. 중국에서 승려를 파견했고 이를 삼국의 왕실이 받아들이고 후원해서 이윽고 불교가 민간에 전파됐습니다.

물론 불교가 도입됐다고 해서 곧바로 신교가 쇠퇴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가 전래된 뒤에도 신라의 왕들은 여전히 신궁神宮에 행차해 천제를 지냈다는 기록들이 사서에 나옵니다. 외래불교와 전통신교가 공존했던 것이죠. 그런 가운데 불교가 우리 민간에 파고들기 위해서는 전통사상과 민간신앙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불교는 오리지널 인도 불교와는 다른, 한국에서만의 독특한 요소들을 갖게 됐습니다. [그림 칠성문화]

◎불교가 전통 신교의 요소들을 받아들인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요?
▶불교가 신라에 도입돼 사찰이 지어질 때 그 장소가 공교롭게도 우리네 전통적인 신교의 성소聖所와 겹치는 것이었습니다. 『삼국유사』 「흥법편」에 초기 사찰들의 위치가 천경림天鏡林, 용궁 근처, 신유림神遊林 등 구체적으로 일곱 곳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장소를 가리켜 ‘전불前佛시대의 절터’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신교의 성소였다, 그런 뜻입니다. 장소를 가리키는 천경림, 용궁, 신유림 등 이름 자체가 신교의 전통을 담고 있습니다. 천경림 자리에는 흥륜사, 신유림 자리에는 천왕사, 용궁의 남쪽과 북쪽에는 나중에 황룡사와 분황사가 각각 들어섭니다. 불교에서도 신교의 성소가 민중들로부터 신성시되던 곳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또한 불교 사찰 내에 산신각, 칠성각 등 우리네 신교 사당이 지어졌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신교에서는 상제님 뿐 아니라 산신 등 다양한 신들을 모셨습니다. 또 칠성각은 칠성七星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우리 전통사상에서 칠성 즉 북두칠성은 하느님이 계시는 별로 우주의 중심이었습니다. 칠성이 인간의 수명을 다스린다고 믿어 고인돌에 칠성을 새기고 죽은 사람의 관 밑에도 칠성판을 깔았습니다. 원래 칠성은 삼신하느님 즉 상제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불교 사찰 안에 산신각과 칠성각이 세워진 것은 우리나라 불교만의 특징입니다. 일찍이 불교가 신교를 받아들여 그 전통을 변용한 것입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