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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B하이라이트]

    〈STB스페셜〉 동북아 안보진단 특별대담(1)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2013년 10월 방송> 사회 STB 최원호 / 대담자 前 공군중장 배창식 사령관 / 前 해군중장 서양원 제독 / 前 육군소장 송길섭 장군


    새로운 밀레니엄을 외치면서 시작했던 2천년도 벌써 1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문명 패러다임의 전환을 꿈꾸었지만 2001년 미국의 9.11 테러를 시작으로 20세기 문명의 행태로 회귀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으로 오늘날의 시리아 사태까지 전세계적으로 전쟁과 갈등, 대결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도, 2013년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정전이란 말 그대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이 전쟁이 민족과 인류의 앞날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육해공군 예비역 장성들을 모시고‘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그런 주제로 대담을 나눠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군사전략가치


    세계 여러 곳곳에서 지금 갈등과 대립, 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그중 특별히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왜 한반도가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가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배 사령관 과거에는 문화 흐름의 중심이 유럽이었으나 최근에 문화, 경제, 군사력 중심이 동북아로 이동되고 있죠. 특히 경제대국 일본과, 최근 양극체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중국과 미국이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특수전부대, 화학전 대비 등 여러 가지 지역내 안보위협이 있다보니 세계 언론들이 한반도를 주목한다고 생각합니다.

    서 제독 군사적인 측면에서 한반도는 아시아의 발칸반도, 즉 전쟁이 많이 일어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륙세력에겐 바다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해양세력에겐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기 때문에 주변국의 충돌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치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는 쪽으로 주변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중국의 경우, 안정을 바라는 시진핑 체제로서는 호전적인 북한 김정은 체제가 상당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6.25한국전쟁과 정전의 의미


    올해가 정전 60주년이잖아요.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의 의미를 말씀해 주십시오.

    송 장군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열강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육교적인 위치죠. 그래서 1945년부터 1990년까지 냉전시대가 45년간 지속되는 가운데 1950년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 두 사건을 계기로 한반도는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으로 분단되는 운명에 처합니다.

    그 외에도 양대 세력간 대립각은 한반도에서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고 열강들은 우리 한반도가 분단된 상태로 계속 유지되기를 오히려 희망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것이 열강들의 대한반도 정책기조가 되는 ‘현상유지 정책’인데, 우리가 통일을 앞두고 해결해야 될 큰 과제죠.

    최근에 중국이 G2 국가로 부상하면서 미중간 경쟁패턴, 패권경쟁에서 한반도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중요하고, 또다시 6.25와 같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3차대전으로 확전할 도화선이 될 수 있는 지역이 한반도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피해사상자 그림]

    배 사령관 한국전쟁 당시 우리 남북한 3천만 인구로 볼 때 사상자 인원은 정말 대단한 숫자죠. 지금 남북한을 비교해보면 당시보다 훨씬 많은 무기와 성능이니 만일 다시 이땅에 제2의 6.25가 난다면 우리는 재건하기 힘든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겁니다.

    서 제독 6.25전쟁의 교훈은 한마디로 전쟁에 대비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잘 보여주는 전쟁입니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 때 왜군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을 믿고 전쟁에 대비하지 않음으로써 나라 전체가 전쟁에 휩싸였던 역사가 있습니다(임금이 의주까지 피난). 전쟁의 뼈아픈 역사를 우리 민족은 금방 잊어버렸고 그 뒤 전쟁에 대비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뼈아픈 역사를 겪었고, 광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6.25전쟁을 겪었죠.

    휴전 이후 남북의 대치와 도발


    송 장군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된 후 60년대까지는 전후복구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70년대 이후부터 북한은 소규모 국지도발을 계속 해왔던 것이죠.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안보의식이나 군의 경계태세를 점검하는 의도도 있다고 봅니다. 즉 적의 준비태세, 경계태세를 시험하는 소규모 도발이었죠.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은 IMF시대를 맞기 전 1996년 9월입니다. 18일 새벽 한시 반경, 강릉시 안인진리 대포리 인근 해안가에서 북한에서 독자적으로 제조한 상어급 잠수함(약 300톤급)이 발견되었죠. 이들의 침투목적은 군사 정찰이었습니다. 문제는 잠수함을 발견한 장본인이 초소 경계병이 아니라 택시기사였다는 거죠. 그날부터 11월5일까지 50일간에 거쳐 게릴라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전개합니다. 50일이라는 것은 대단히 장기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어봐야 될 부분은 이 50일 작전기간 동안 강원도에 살고있던 주민들은 그야말로 공포와 불안 속에 살 수밖에 없었고 생업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습니다. 완전 마비상태였죠.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당시 생포한 이광수 상위 수첩에는 여러번 우리 해안 NLL을 넘어 동해안을 침투해 군사정찰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현대전에서 가장 자유로운 무기체계가 잠수함입니다. 바다 속에서 움직이는 잠수함은 인공위성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북한은 70여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오늘날도 잠수함을 이용해서 북한군이 정찰 내지는 정보수집 임무를 하려고 언제든 NLL을 넘을 수 있다 이러한 교훈을 되새겨봐야 합니다. 또 택시기사가 신고했다는 것은, 이제는 민간인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경계병 역할을 해야 되고 민간군이 통합일체가 되는 총력전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북한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을 도출하게 된 것이죠.

    서북도서와 NLL(북방한계선)


    정전 이후 국지적인 도발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이 바다 아닙니까? 그 중 서해쪽 NLL 국지도발에 대해서 정리를 해주시죠.

    서 제독 북한은 1970년대부터 NLL이 무효한 선이다 라고 주장을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NLL문제는 근본배경이 뭐냐면 그동안 양측의 군사작전 경계선(=해상작전경계선, 해상영토선)으로 쭉 유지되어 왔던 유효한 선이다 라고 주장하는 우리측 주장과, 이것은 유엔군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선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 라는 북한측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대결해온 것이죠.

    원래 6.25전쟁 당시에는 연합군 해군이 한반도 전체 해역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각 도서들도 유엔군이 운영해오고 있었죠. 가령 대동강 입구에 있는 석도라는 섬이라든가, 동해 영흥만 안에 있던 각종 섬들이 우리가 장악한 것이었기에 그 섬을 기준으로 유격대나 특수작전부대가 북한지역에서 작전을 해왔었습니다. 그러다 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지금의 NLL북쪽에 있는 섬들은 관리차원에서 포기하고 다 철수를 했는데 그중 남아있던 섬이 지금의 서해 5개 도서 곧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이런 섬들이었죠.

    그런데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바다를 작전수행에 이용하다 보니 어민들이 바다에서 생업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민들이 바다에서 생업을 할 수 있도록 선포한 선이 NLL입니다. 통항이나 생업을 위해 우리 한국이나 유엔군 선박이 위로 올라가지 말아라 이렇게 양보해준 선이니, 북쪽에서 볼 때는 당시로선 아주 감지덕지한 선이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던 것이 1973년도가 되면서 북한에서 기습공격전력을 좀 갖추게 되고 또 잠수함도 갖게 되니까 이제 그 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입니다.

    [NLL과 북 주장 해상경계선 그림] 북한에서는 그림에 보이는 엉터리 같은 빨간 선을 지켜라 주장하면서 수시로 NLL선 남쪽으로 도발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연평해전, 2차 연평해전(=서해교전), 천안함 사건, 대청해전, 연평도 포격사건 등이 모두 다 NLL을 무시하려는 북한의 책동에 의해 이루어졌던 사건들입니다.

    서해 NLL(북방한계선) 남북대치전력


    서 제독 NLL에서 교전도 벌어지고 포격사건도 있다보니 남과 북이 상당히 많은 전력을 NLL 주변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도발을 해야할 상황이 발생한다면 제가 볼 때는 틀림없이 NLL부근 수역이 아니겠느냐. 왜냐하면 북한의 속성이 궁지에 몰리거나 정치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때는 항상 도발을 해왔는데 가장 쉬운 곳이 서로 의견충돌이 있는 NLL지역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배 사령관 운전을 하면 교통규칙을 지켜야 하고 스포츠를 하면 룰을 지켜야 되죠?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전규칙은 전시와 평시 두 가지 교전규칙이 있습니다. 최근 우리 군은 정전 60주년을 맞아 북한의 게릴라전, 국지도발에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대비할 수 있을까 해서 평시교전규칙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북한의 도발에 좀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연평도 포격사건 때는, 적이 공격해오면 비슷한 화력으로 공격해라 이렇게 했지만 이런 문제점을 없앴죠. 이제는 만일 북한이 도발한다면 ①공격받는 즉시 공격하라. 비례성으로 하지말고 ②도발하는 세력과 지원세력까지 완전히 제압하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북한도 연평도 같은 포격은 섣불리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되고 우리 군이 참으로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남북 공군 전력현황


    현대전에서는 공군의 역할이 대단히 크잖아요. 현재 남북한 공군의 상황이 어느 정도입니까? [공군 작전수행능력비교 사진]

    배 사령관 우리 공군이 작전하는 걸 실제로 보여드리지 못하는게 안타깝습니다. 아시겠지만 걸프전, 아프간전, 코소보전, 이라크전… 현대전에서는 인명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 전쟁의 큰 목표 중 하나입니다. 특히 육군의 인명피해가 많은데, 그래서 전쟁 초기에는 대부분 공군과 해군이 제압을 합니다. 나중에 육군이 진입을 하는데, 특히 산악지대 같으면 공군이 먼저 제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남북한 공군을 비교하면 제가 볼 때 숫자는 북한이 좀 많습니다. 그러나 숫자보다 ①얼마나 정밀하게 필요한 목표를 타격할 수 있느냐. 그 다음에 ②얼마만큼 파괴할 수 있느냐. 이런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숫자는 적지만 우리는 신예기로 아주 정밀하게 필요한 부분을 공격할 수 있다. 그래서 대체적인 비교는 한국 공군이 북한 공군보다 조금 앞선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뭐냐. 스포츠에서 비슷한 사람이 경기하면 결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전시에 쌍방이 비슷해서 결론이 안날 경우, 전쟁이 오래가고, 그러면 양쪽이 다 피해를 입습니다. 따라서 전쟁은 우수한 전력을 가지고 빨리종결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니 우리는 한미연합 공군전력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죠. 한미연합작전을 하면 짧은 시간 내에 북한을 완전히 괴멸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전시작전권을 재검토해야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전시작전권의 개념과 이전문제


    전시작전권이 무엇인지, 역사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좀 정리해 주십시오.

    송 장군 전쟁은 제군과 제해권이 확보돼야만 지상작전이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죠. 그런 측면에서 전시작전권이란, 전쟁이 발발했을 때 우리 국군을 누가 지휘하느냐 하는 작전지휘 및 통제권을 말합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이승만 대통령은 7월14일 유엔군 사령관한테 서한을 보냅니다. 작전의 일원화와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우리국군을 포함, 미8군 사령관이 당시 한국동란에 투입된 모든 병력을 통제하고 지휘하라, 이것이 뿌리가 된 것이죠. 당시 우리 한국군은 전쟁경험도 없었고 병력도 보잘 것 없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전쟁을 경험한 군대와 그렇지 못한 군대는 전시에 지휘통제능력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것을 고려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 한국군 지상군은 미8군 사령관에게 지휘권이 이양되고 해군과 공군은 각각 극동해군 구성군 사령관한테 이양됩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 주한미군의 역할조정문제가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그후 1992년 한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합의하기를 1994년까지는 평시 작전통제권을 한국군한테 이양하고 2012년 4월1일까지 전시작전권을 한국군한테 이양하기로 합니다. 평시작전권이란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라든지 국지도발이 일어났을 때 우리 한국군이 단독으로 작전통제나 지휘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94년도에 한국군에 이양됐습니다. 전시작전 통제권은 준비가 어렵다 해서 우리정부 요청으로, 현재는 한미연합사령관이면서 유엔군 사령관이 작전지휘권, 통제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만, 2015년 12월1일부로 합참의장한테 이양한다 이런 배경과 내용이 골자인데요.

    문제는 한국 합참이 주도하고 미군은 보조역할, 지원역할로 변하게 될 때 우리가 여기에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적이고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다 구비해야 됩니다. 소프트웨어란 전쟁수행능력, 운용능력이고 하드웨어란 주한미군한테 의지하던 정보자산 같은 것입니다. 국군의 사정을 제일 잘 아는 국방장관이 언급한 측면을 고려할 때 아직도 2015년 12월1일부로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죠. 그러나 미국정부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2015년 12월1일부로 합참으로 전시작전 통제권을 이양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 부분이 우리 정부와 국민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앞으로 제2의 6.25 한국전쟁이 벌어졌을 때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우려가 있습니다. 전쟁 원칙에 보면 우리의 작전계획은 방어개념입니다.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의사도, 그런 계획도 없다는 뜻인데 물론 북한은 공세적인 공격개념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수행하다 보면 적이 100이라는 전력을 보유했을 때는 최소한 70이라는 전력은 보유해야만 방어할 수 있다는 통계, 전례가 있습니다. 미군의 지원없이 한국군 독자적으로 북한군 대비 과연 70% 전력을 확보했느냐 이 부분을 우리는 예의주시하는 것이죠.

    배 사령관 고려해야 될 사항이 참 많죠. 한반도처럼 핵과 미사일과 화학무기와 세균전, 게다가 특수부대, 이런 전력을 갖고 있는 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도 없습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준비하면 되겠다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남북한의 상황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가장인데, 내가 힘이 되면 우리집을 내가 지키면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힘이 버거울 때는 경찰 요청하고 개인경호도 사서 쓰고 해서 내 가족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어느 것이 중요한가는 국가지도자가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안전, 국가의 안전이 더 우선돼야 된다고 저는 봅니다. 특히 최근 북이 핵을 개발하는 소위 비대칭 전력, 아주 위험하거든요.

    6.25 한국전쟁이 나던 해 1월 미 국방장관 에치슨이 에치슨 라인을 선언했죠. 우방국을 지켜준다는 방어구역이 오키나와, 필리핀까지 연결되면서 지도상으로 보면 한국이 제외돼버린 것입니다. 물론 전쟁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일어나진 않지만, 북한으로 하여금 오판하는데 상당히 큰 작용을 했습니다. 그래서 5개월 후에 6.25가 일어났거든요. 전/작/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북한이 전면전을 못합니다. 연합전력으로 하면 북한이 자기가 멸망한다는 걸 알거든요. 내가 죽는데 왜 덤비느냐 이겁니다. 그러나 전작권이 한국에 넘어와 미국의 지원이 소홀해지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지금처럼 연합사령관이 하면 자기 전력을 요청해서 불러오겠지만, 만일 여기서 제가 합동사령관이 돼서 미국에 어, 폭격기 부족합니다, 몇대 보내주십시오. 쉽게 보내줄까요? 그러한 예상을 해야 되기 때문에 어렵다는 겁니다. 어쨌거나 이런 안보위협과 현상황을 좀더 많이 고려해서 전/작/권 환수시기를 재검토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대남전략


    송 장군 손자병법에도 나옵니다만 적을 모르고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북한의 대남전략은 선남조선 혁명인데요, 쉽게 얘기해서 남한을 분홍색으로 물들여놓고 그 후에 인민군을 투입시키겠다는 개념이죠. 매우 주목해야 되고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입니다. 이를 위해서 북한은 일찍부터 3대혁명역랑 강화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습니다. 북한사회주의 혁명역량강화, 남한사회주의 혁명역량강화, 국제사회주의 혁명역량강화, 이 세 가지 혁명역량이 강화됐을 때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하겠다. 즉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하는 것인데 두 번째가 중요합니다. 남한사회주의 혁명 역량강화를 위해 북한이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느냐.

    쉽게 얘기하면 간첩과 공작원을 통해 남한세력을 동맹세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공세력, 즉 북한 공산주의를 따르는 세력을 많이 확충하고 이런 사람들을 동맹세력으로 포섭해서 한마디로 ①연공정권(북한 공산주의와 연계되거나 공산주의를 따르는 정권)을 서울에 수립하게 한다.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②인민군을 투입해서 무력통일 적화통일을 하겠다는 것이 대남전략의 기조입니다. 여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소위 공작원, 간첩들이죠.

    남조선혁명이라는 큰 틀 안에서 간첩들이 우리 정부나 군에 대한 정보수집을 해서 북한에 보고하는 시스템인데, 최근 들어 우리가 중국과 많은 교류를 하지 않습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간첩 운영하는데 있어서 정말 좋아졌습니다. 우리는 아주 자유로운 사회 아닙니까. 중국을 통해서 많은 공작원, 간첩들이 침투하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의 핵개발과 한반도 정세


    분단과 대결 과정의 정점에 있는 것이 북한 핵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북한의 핵개발이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 국민들이 아직 인식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핵무기라는 것은 어떤 무기입니까?

    배 사령관 딱 하나만 예를 들면 현대 미, 중, 러시아, 프랑스, 영국이 갖고 있는 핵들은 전부 메가톤급이거든요. 100메가톤 한 발이 대전 2km 상공에서 떨어지면 남한은 완전히 초토화 됩니다. 그게 핵무기입니다. 단 한 발에.

    과거 미소 냉전시대 때 핵은 탄두로 몇천개가 됩니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 상호멸망하기 싫으니까 사용을 못하는 거죠. 그래서 스타트START, 썰트SALT 해서 감축을 하고 있죠.

    2차대전 때 아시아대륙, 태평양까지 그렇게 쟁쟁하던 일본이 두발 맞고 그냥 항복을 했거든요. 종말 무대가 되었죠. 이것이 핵무기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북한이 개발하는 핵무기는 이보다 성능이 좋다고 봐야 됩니다. 올해 개발됐다면 더 위험한 것이고, 거기다 소형화까지 되고 나면 정말 우리는 방법이 없는 것이죠.

    송 장군 북한은 한국전쟁이 끝나자마자 전후복구 사업에 매진합니다. 해외 자본과 기술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는데, 그 일환으로 1956년, 전쟁 끝나고 3년 후 소련과 핵연구소 조직에 대한 협정을 체결하고 1959년에는 조소朝蘇 원자력평화이용에 관한 협정을 체결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영변 핵시설 단지에 제1원자로, 그것은 소형입니다만 연구용 원자로인데,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아 설비를 합니다. 자, 김일성은 애초에 소련과 협정을 맺을 당시에는 평화적인 분야에 핵을 활용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기도 부족했고 수풍발전소도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봤고.

    그런데 생각을 바꾸게 되는 시점이 옵니다. 북한은 많은 재래식 무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핵폭탄을 한번 만들어놓으면 다 해소가 된다. 그래서 김일성은 드보나 연구소라고 모스크바 북방에 국립핵연구소가 있는데 매년 수명씩 연구원 또는 기술자를 보냅니다. 기술축적을 위해서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 같은데서도 핵공학 분야에 젊은이들을 양성해 현재 약 3천명의 핵관련 기술자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1980년대 우리가 아시안게임을 했을 때 벌써 영변 핵시설 단지에서 고폭실험을 하기 시작합니다. 고폭실험이라는 것은 뇌관실험입니다. 소위 신관의 발화실험인데, 150여회 실험을 하면서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 239를 추출해내기 시작한 거죠.

    원자폭탄은 플루토늄과 우라늄으로 구분되는데 우라늄 235를 응축시켜서 만들어낸 것이 우라늄탄, 플루토늄 239를 이용해서 만들어낸 것이 플루토늄탄입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때 히로시마에 투하한 것이 우라늄탄이고, 나가사끼에는 플루토늄탄을 투하하지 않았습니까.

    그 후에 플루토늄을 계속 추출해낸 겁니다. 그리고 2006년 10월9일 드디어 1차 핵실험을 한 거죠. 그렇게 보면 약 20년에 걸쳐서 핵무기를 개발했다.

    실제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은 아주 소규모고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그 다음에 2009년 5월에 한번, 또 금년 2013년 2월12일 3차에 걸쳐서 핵실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군에서는 거의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금번 핵실험은 소형화와 경량화를 성공시킨 핵실험이다,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아주 심각한 얘기입니다. 소형화와 경량화를 이뤘다, 달성했다는 것은 스커드미사일이나 노동미사일, 또는 대포동 미사일에 탄두를 (고폭탄이 아닌) 원자탄으로 장착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투발 수단면에서 대단히 발전된 단계거든요.

    [히로시마 원폭사진] 미국이 히로시마나 나가사끼에 투하할 때 원자탄은 3톤에 가까운, 닉네임도 Fat-Man이라고 했습니다. 아주 큽니다. 초기단계의 핵탄은 크게 만들 수밖에 없는데 과학기술수준이 발전함에 따라 자꾸 작게 만드는 겁니다. 지금은 말입니다. 제가 대학에서 무기체계를 강의하고 있습니다만 소총탄만한 우라늄, 초정밀 우라늄탄을 만들어낼 정도입니다. 소총으로 실은 원자탄을 쏜다는 거죠. 그런 단계까지 왔는데.

    아무튼 북한은 현재 미국 정보당국의 분석에 의하면 한 10발 정도의 플루토늄 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일부에서는 북한이 핵을 갖고 또 그 핵을 소형화시켜서 미사일에 탑재하게 되면 미국을 향해서 공격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는데, 그건 가당치도 않은 얘기입니다.

    일단은 ①북한의 목표는 대한민국입니다. 어떻게든지 대한민국을 무력 적화통일하겠다는 그런 의도가 있는 것이고. 두 번째로 국제정세 속에서 북한의 소형화된 핵폭탄(=미사일)이 테러분자들한테 팔려나간다면 그게 어디로 돌아오겠습니까? ②제2의 9.11사태가 또다시 미국을 향해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개발한 소형 핵미사일이 테러분자들한테 넘어갔을 때 그게 심각하다는 겁니다. 이것이 미국이 걱정하는 부분이죠.

    북한의 핵개발과 6자회담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동된 것이 6자회담이잖아요. 6자회담이 몇년 동안 계속 진행되면서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말씀해주시죠?

    배 사령관 핵개발을 못하게 하는 것이 6자회담이었는데 지금 핵개발이 됐지 않았습니까. 여러 차례 핵실험도 했고. 그러니 6자회담은 실패했다고 저는 정리하고 싶고요. 그동안 6자회담은 시간을 벌어주고 개발할 수 있는 자금도 오히려 지원을 해줬던 것입니다. 이건 정말 우리가 잘못한 거죠.

    그 핵이 어디로 돌아옵니까?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한테 돌아온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앞으로 6자회담을 한다면 현지에 있는 핵폐기까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핵을 완전히 폐기하는 쪽으로 6자회담을 유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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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04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