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알음귀를 주시는 조상님

[태을주천지조화문화를연다]

작년 7월 7일 대천제에 참석하러 태전으로 올라간 날이었습니다. 태을궁 입구에서 고인이 되신 저의 선친과 장인어른 두 분이 서로 만나서 인사를 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영으로 보았습니다. 자손들이 도장이나 태을궁에 참석할 때만이 조상님들은 같이 출입을 할 수 있어 보였습니다. 시간이 되어도 자손들이 오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초조하게 자손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치성을 마치고 다함께 도공을 하였습니다. 백회가 열리면서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 눈물이 나왔습니다. 무속인이셨던 할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 매달 초사흗날 한 번씩 동네 앞의 냇가와 길가에 가서 제물을 올리고 소지도 하고, 노자 돈도 올리고 하던 모습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또 일년에 한 번씩 집에서 밤을 새며 굿을 하던 모습도 떠올라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 다음엔 지속적으로 아파왔던 좌측 골반이 많이 가벼워졌고, 무릎에 통증이 왔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무릎 통증도 많이 완화된 것을 느꼈습니다. 자발 도공이 시작되면서 하늘에서 밝은 라일락꽃 색의 꽃잎들이 온통 하늘을 가득 채우며 눈처럼 내려왔습니다. 꽃잎 하나하나가 모두 성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꽃잎들이 떨어지면서 그 꽃잎 기운에 취해 우리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의 병들이 많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종도사님이 더 집중해서 하자고 말씀하실 때 기운이 더 크게 내려오면서 자발 도공이 더욱 강력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어느 도공보다도 강한 도공 기운이 내려왔습니다. 본격적인 도공 체험이 시작되려는 즈음에 도공이 종료되어서 ‘좀 더 시간을 두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도공시간이 부족하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 전에 도장에서 도공을 할 때는 조상님들이 줄을 타고 내려오셔서 자손들과 만나기도 하고 도공 기운을 주시기도 하였고, 다음엔 도공 신장들이 줄을 타고 내려오면서 기운을 주었습니다.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도훈 시에는 도훈 시작부터 끝까지 두 분 주위에서 광채가 보호막처럼 빛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처형을 치유하다!


대천제가 끝나고 장모님을 모시고 전주로 오는데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같이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장인어른은 늘 저와 아내의 주위에 머무르시면서 살아계신 것처럼 저희들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십니다.

며칠 후에 장모님, 아내와 함께 부산의 처형 집에 갔을 때에는 늘 그랬듯이 장인어른이 밤새도록 잠을 재우지 않고 처형을 신유하게 하셨습니다. 장인어른은 처형을 일꾼 신앙인으로 만들려고 부단히 힘써 오셨습니다. 신앙에 다소 소홀하였던 처형을 지금처럼 신앙하게 한 것도 장인어른의 장기적인 목표였습니다.

처형이 다니는 직장은 수요치성에 참석하지 못할 만큼 힘든 직업이라서 장인어른은 처형이 그 직장을 그만두고 도장일(홍보, 포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라셨습니다. 그렇지만 처형은 계속 힘든 일을 하면서 직장을 다녔고 늘 온몸이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신유를 하면서 보니 직장에서 온갖 안 좋은 탁기, 살기를 많이 받아 가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온몸이 혈액순환도 안 되고 전에 앓았던 갑상선 기능 항진증 증세가 다시 시작되면서 생각보다 몸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직장을 계속 다니면 몸이 다 망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밤새 신유를 하는 가운데 처형은 코를 골면서 깊이 잠을 잤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며 신유를 한 뒤 아침에 약 십여 초 정도 졸았는데 밤새도록 잔 것처럼 모든 피곤함이 다 풀렸습니다. 몇 시간도 아니고 몇 초를 깜박 졸았는데 모든 피곤함이 풀리다니 정말 신기합니다. 연속 이틀 동안을 밤새 신유를 했습니다. 아침에 처형이 많이 놀라워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쉬는 날 아침에 일어나면 녹초가 되어서 하루 종일 잠만 자는데 지금은 몸이 아주 가볍다며 기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