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1월 홈 | 기사목록 | 되돌아가기

    [STB하이라이트]

    식민사관은 해방 후 어떻게 주류사학이 되었나?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으로 고쳐라.
    -일본국왕은 천황으로 바꿔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 사진설명에서 김구를 삭제하라.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가 2012년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심사에서 수정권고한 내용입니다. 일제의 한국침략을 합법화하고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국사편찬위원회가 앞장서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주류사학계는 단군조선을 역사가 아닌 신화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역사에 대한 연구를 국수주의로 몰아붙입니다.

    광복 68년, 여전히 우리는 일제가 채운 족쇄를 차고 있습니다. 1945년 일제는 패망했지만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는 아직도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를 왜곡한 이들이 국사학계를 장악하고 교원양성소를 통해 일제식민사관을 확대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이 국사교과서를 통해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일제군국주의, 중화패권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이 땅의 역사교과서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사를 약술하는 데서 그치고 있고, 일제의 역사날조만행에 대해서는 단 한줄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중일의 역사전쟁이 날로 격화되는 가운데 우리의 국사교과서는 일제 식민사관의 틀에 여전히 갇혀 있는 것입니다.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었다면 오늘의 식민사학자들은 역사를 팔아먹고 있습니다. 지금 식민사관 구조를 해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찬란한 역사는 영구히 일제 식민사학에 지배될지 모릅니다.

    식민사관은 해방 후 어떻게 주류사학이 되었나?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박사의 강연에서 식민사학, 그 실체를 밝힙니다.

    [들어가는 글]
    2012년 11월 15일, 오늘이 무슨 날이냐? 102년전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점령당한 후 67년전 우리 대한민국은 해방이 됐죠.

    그러나 우리의 역사관은 67년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일제 식민사관이 지배해 왔습니다. 이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주체적 사관에 대한 테러에 가까운 공격을 해왔습니다. 상해에서 쓸쓸히 돌아가신 백암 박은식 선생, 만주에서 돌아가신 석주 이상용 선생, 여순감옥에서 돌아가신 단재 신채호 선생, 이분들에 대한 공격은 해방 6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자리는, 그런 공격이 과연 합당한가. 역사학의 가장 기초적인 일반원칙에 비춰봤을 때 과연 합당한가. 그것을 여러분과 함께 검증해보는 자리입니다.


    일본 강경파와 손잡은 친일세력 _일진회와 노론당파



    102년 전, 우리나라가 망할 때 온 백성들이 울고불고 목숨을 끊고 망명하고 했지만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부부동반하여 일본 가서 자랑스럽게 사진 찍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1908~9년 무렵 친일파들의 행위가 어느 정도까지 이르게 되냐 하면, 나라 팔아먹는 경쟁을 서로 치열하게 하게 됩니다. 이 당시 일진회라고 불렸던 친일세력과 인조반정 이래로 250년을 집권한 노론 당파, 일진회와 노론, 양쪽에서 나라 팔아먹는 경쟁에 나서게 됩니다.

    당시 일본에는 정치 주류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토 히로부미 중심의 문관 온건파가 있고, 또 하나는 야마가타 아리토모 중심의 무관 강경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토 히로부미가 강경파와 손잡고 바로 조선을 점령하자는 합의를 했는데, 석 달 후 안중근 의사에게 하얼빈에서 총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후 일본 통감부로 부임하는 인물이 데라우치 마사타케입니다. 대한제국을 바로 점령하자는 강경파입니다.

    매국경쟁에 앞장선 이완용과 이인직
    그렇게 되니까 이완용이 대단히 급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야마가타 아리토모 계열의 데라우치가 일진회와 손을 잡고 나라를 먹어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이런 불안감이 든 이완용이 비서인 이인직을 시켜서 통감부 외사국장인 고마쓰와 나라 팔아먹는 비밀협상을 몰래 주도하게 됩니다. 이 비밀협상에서 이완용과 이인직이 가장 알고 싶은 게 뭐였겠습니까? ‘우리가 나라를 넘기면 우리에겐 뭘 줄거냐?’ 통감부 외사국장이 외교부 장관입니다. 고마쓰가 하는 말이 ‘나라를 넘기면 조선 귀족령을 만들어서 너희들은 조선의 귀족으로 봉해주고 그리고 따로 특별예산을 편성해서 막대한 돈도 주겠다.’ 그랬더니 이인직이 ‘그렇게 관대한 조건이라면 하등 어려울 것이 없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돌아간 뒤 일사천리로 나라를 일본에게 팔아넘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인직 하면 뭐가 생각나십니까? ‘혈의 누’가 생각나죠? 대한민국 교과서에서 이인직을 뭐라고 가르칩니까? ‘혈의 누’를 쓴 선각자, 이렇게 가르치고 있죠? 나라 팔아먹는 비밀협상을 한 매국노를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사교과서는 선각자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혈의 누의 내용은 안 가르칩니다. 혈의 누의 내용이 뭐냐면, 청일전쟁 때 청나라 군사에게 겁탈당할 뻔한 조선처녀를 일본군이 구해줬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21세기 백주대낮에 대한민국 학생들이 선각자로 알아야 하는 이인직의 실체죠.

    일제로부터 귀족작위를 받은 76명중 56명이 노론
    일본에서는 지금으로부터 102년 전, 나라를 점령하고 10월 7일 약속대로 76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에게 귀족의 작위를 주고 훈장을 줍니다. 그 중에 왕족들이 있고 당파로 알 수 있는 사람이 64명쯤 됩니다. 조선의 사색당파로 분류를 해보면 남인들은 한명도 없고 북인은 두 명이고 소론은 여섯 명이고 나머지 56명이 전부 다 노론입니다. 250년 동안 인조반정 이래로 집권했던 당파가 조직적으로 나라 팔아먹는데 가담을 한 것이죠.

    이 후예들이 오늘날까지도 한국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특히 역사학계의 주류를 장악해서 우리 국민들의 역사관에 테러를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식민사관의 논리구조 ①한사군


    우리가 역사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좁히면 일제 식민사관의 대부분, 일제식민사관의 논리구조가 주로 고대사에 집중돼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중국 동북공정이 일제식민사관의 복사판인데 마찬가지로 고대사에 집중돼 있죠. 그런데 일제 식민사관이 만든 고대사 논리가 뭐냐?

    한사군 한반도설을 가르치는 한국 역사교육

    한사군은 한강 북부에 있었다.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 남부에는 일본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반도 북부도 식민지로 시작했고 한반도 남부도 식민지였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식민지는 너희 나라의 운명이다. 이것이 일제 식민사관의 핵심입니다.

    해방된 나라에서 초등학생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치려면 먼저 뭘 가르쳐야 됩니까? 이순신 장군을 가르치고 을지문덕을 가르치고 세종대왕 가르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죠. 그런데 우리 역사는 식민지로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인직을 갖다가 선각자로 가르친 그 논리구조, 그 속에서 한사군을 어릴 때부터 주입식으로 가르쳐왔던 것이죠. 그럼 이 시점에서 과연 그것이 사실인가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데 독립운동가들이 왜 한사군은 일관되게 만주에 있었다고 주장했을까요.

    중국의 고대 사서에도 낙랑군은 만주에 있었다

    여기서 보시는 『한서』 「설전 열전」에 보면 사고왈, 낙랑속유주. 낙랑은 유주에 속해 있다. 『후한서』 「광무제 본기」에 보면 낙랑군은 옛날 조선국이다, 재요동. 요동에 있다. 『후한서』 「최인 열전, 장잠현」은 속낙랑군, 기지재요동. 낙랑군에 속해 있다. 그 땅은 요동에 있다.

    제가 일부만 뽑아왔습니다만 중국의 고대사서는 한사군, 낙랑군은 만주에 있다고 시종일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이것을 인용한 글을 본 적이 없습니다. 불리한 글은 일체 인용을 안하죠.

    그런데 이들이 낙랑군의 위치를 획정하기 위한 구절이 『사기』 「하본기 태강지리지」에 나오는 제일 아랫귀절입니다. 낙랑군에는 첫째 수성현이 있고 두 번째 갈석산이 있고 세 번째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기점이다. 이렇게 기록돼 있죠? 그래서 요 세 가지 정보를 만족시키는 지역을 찾으면 그곳이 낙랑군 지역이고 그 주변 일대가 한사군 지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류 식민사학계에서는 지금 황해도 수안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가 뭐냐? 이병도가 세칭 ‘낙랑군고’라는, 저는 이게 논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국 주류사학계에서 성서처럼 떠받드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중국 성은 벽돌성, 우리나라 성은 석성

    “수성현, 자세하지 아니하나 지금의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에 비정하고 싶다.” 낙랑군 수성현이 황해도 수안이란 이야기죠. 그런데 그 다음에 “수안에는 승람산천 쪽에 요동산이라는 산명이 보이고.” 승람, 동국여지승람이란 책에 황해도 수안군 조에 요동산이라는 산이 나온다. 그게 갈석산 아니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갈석산은 갈석산이고 요동산은 요동산이죠?

    그 다음에 동국여지승람 황해도 수안군 관방 방어수세를 적어놓은 “관방조에 후대 소축의 성이지만 방원진의 동서행성의 석성이 있고.” 이 방원진 석성이 만리장성 아니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중국 만리장성 가보시면 벽돌로 만들었죠? 우리나라 성들은 뭘로 만듭니까? 자연석으로, 돌로 만든 석성이죠? 저희가 이번에 지난 7월 내몽골 적봉에 갔더니 중국 사람들도 이야기합니다.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에 쌓은 석성이다. 단군 조선의 석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석성에 올라가봤습니다. 지금의 고구려, 백제성하고 똑같습니다. 석성이라는 것 자체는 벌써 우리 민족의 성이지, 중국의 성이 전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병도와 그의 스승 이나바 이와기치의 역사날조
    “또 진지의 수성현 뒤에는 맹랑한 설이지만 진대장성기효기라는 기재도 있다.” 이건 한마디로 문장 자체가 아니에요. 비문이에요. 왜냐면 이병도씨의 사전 전제가 자기는 “낙랑군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에 비정하고 싶다” 라고 그랬죠? 그러다 논리로 전개하다가 논리가 부족하니까 진지, 진지는 뭐냐면은 중국 고대진서 지리지에 낙랑군 수성현조에 보면은 ‘진대장성기소기-진나라 때 장성이 일어나는 지역이다’라고 쓴 이 구절은 그야말로 낙랑군 수성현, 만주에 있는 낙랑군 수성현을 말한 것이지, 황해도 수안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논리가 부족하니까 아무거나 뒤죽박죽 섞어놓은 이야기죠? 터무니없는 말이라면 논문에다 쓰지 말아야죠?


    그런데 이병도씨의 모든 논리가 그렇듯이 이것도 자기가 만든 게 아니어요. 이 문장은 원래 이나바 이와기치라는 이병도의 스승이 「낙랑군 수성현 및 진장성 동단에 관한 고」라는 이것도 논문인지 아닌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에다 뭐라고 써놨냐면 “수성, 진나라의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지금 조선 황해도 수안의 경계에서 시작해서” 이렇게 써놓은 걸 무비판적으로 이병도씨가 추종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을 현재의 주류 식민사학계가 성서처럼 떠받들다 보니까 중국에서 동북공정을 진행하는데 너무 신이 난 것입니다.

    만리장성을 한반도에 그려넣었지만 갈석산은 못 그려넣은 이유

    중국 동북공정이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시작하다가 한국 주류 식민사학계가 자기네 학설에 동조를 하니까 너무 신나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도가 바로 중국에서 동북공정을 진행하는 중국 사학계의 공식 역사지도집입니다. 이 지도집을 보면은 만리장성이 한반도 안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죠? 여기 수성이 보이죠? 이게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만든 중국의 공식 지도집이예요.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고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기점이다. 그런데 이 지도에 보면 낙랑군 수성현을 한반도 내로 끌어들였죠. 만리장성을 끌어들였죠. 그럼 뭐가 빠졌습니까? 갈석산이 빠졌죠? 갈석산은 바로 여기 중국 하북성에다 그려놨어요. 우리 시각만 제대로 서 있으면 이 지도 한장으로 중국 동북공정의 모든 논리는 무너집니다.

    그러면 중국 사람들이 수성현을 한반도로 끌어들이고 만리장성도 끌어들였는데 왜 갈석산은 못 끌어들였을까요?


    갈석산은 너무 유명한 산입니다. 갈석산은 중국에서는 진시황을 비롯해서 아홉 명의 황제가 올라갔다 그래서 구등황제산이라고 불리우는 대단히 유명한 산입니다. 그런데 한나라때 저술된 회남자에 보면, 한사군이 있었다는 시대의 지리인식을 반영하는 회남자 십초군에 동방의 끝 갈석산을 지나면 조선이다. 갈석산을 지나면 바로 고조선이다. 이렇게 중국의 고대사료들은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석산 주변에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이 있습니다. 갈석산이 있는 곳이 지금의 하북성 창려현인데 중국 수서에 보면 하북성 창려현은 옛날에 수성현, 낙랑군 수성현이다. 이렇게 기록이 돼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낙랑현에는 수성현이 있고 갈석산이 있고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기점이라고 말한 것이 지금의 중국의 하북성에 있는 창려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믿어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중국의 하북성까지 고조선 강역이었다 이렇게 되는 거죠? 너희들이 먼저 시작하지 않았느냐.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다 너희들 고대 사료에 나와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죠. 우리의 역사관이 바로 서면 중국에서는 동북공정의 ‘ㄷ’ 자도 못 꺼내게 돼 있습니다.

    식민사관의 논리구조 ②임나일본부


    그런데 또 하나의 일제 식민사관, 한반도 남부에는 임나일본부가 있었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소위 말하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입니다. 이 이론은 왜 나왔냐? 쓰다 소키치라는 이병도의 스승, 이 식민사학자가 삼국사기를 보니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그 시기에 경상도 지역에는 강력한 고대국가 신라가 있었고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는 강력한 고대 국가 백제가 있었다. 이렇게 강력한 두 고대국가가 있는데 임나일본부라는 식민통치기관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서 임나일본부를 살리려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다 가짜로 몰아야 되겠다 이런 발상을 하게 되죠. 그래서 이 쓰다 소키치라는 인물이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발명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 발명품의 가장 원조, 첫 번째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과 원삼국 발명

    여기서 시종일관 쓰다 소키치의 사고는,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는 왜 혹은 왜인 기록대로라면 임나일본부가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최초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장하면서 마치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이런 식의 논리를 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 최근까지도 가보면 원삼국실이라는 게 있었어요. 원삼국실이 뭐냐? 낙동강 유역에서 칼이 하나 나왔습니다.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해보니까 A.D2세기 때라고 나옵니다. 그럼 뭐라고 쓰면 됩니까? 신라시대! 그럼 간단하죠?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A.D1세기 때 금동관이 나왔어요. 뭐라고 쓰면 되요? 백제시대! 하면 간단하죠? 그러나 이 식민사학자들 머릿속에 3세기 4세기에 백제 신라는 없었다. 있어도 조그만 부락이었다. 그러니까 신라 백제란 말을 쓰지 않기 위해서 원삼국, 이런 걸 하나 발명해가지고 원삼국론이라고 써놓은 것입니다.

    백제사 400년을 말살하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 국사교과서에 뭐라고 쓰고 있느냐. 백제에 관해서 여기 보시는 대로 3세기 중엽 고이왕 때 중앙집권국가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하지만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B.C18년에 온조 임금이 백제를 건국했다’ 라고 기록했죠? 그런데도 국사교과서에서 3세기 중엽 고이왕 때 백제가 건국됐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뭐냐? 이병도 씨가 “나의 연구한 바로는 엄밀한 의미의 백제의 건국은 온조로부터 제8대 되는 고이왕 때 되었다고 믿는 바이다. 고이왕 이전은 부락정치 시대에 불과했을 것이다.” 라고 해서, 자기의 스승 쓰다 소키치가 이야기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따라서 백제사 400년을 전부 다 날려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식민사관의 논리구조 ③식민지 정체성론


    조선총독부는 1945년 8월에 해체됐지만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는 전혀 해체되지 않고 그대로 주류대학 국사학과, 국사관, 국사교원양성소를 장악하여 주요대학 국사학과와 국사관에서 일제 식민사관을 반복해서 확대 재생산하고 가르친 결과 여러분이 초등학교 때 한사군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방됐지만 우리 역사는 지금도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그대로 교육현장에서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한국역사의 정체성 주장
    그렇다보니 이들로부터 세례를 받은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뉴라이트라 말하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 이것이 왜 문제냐? 이 문제는 좌우의 잣대로 바라보시면 안됩니다. 여야의 잣대로 바라봐서도 안됩니다. 이 이야기는 좌우 여야를 뛰어넘는 우리가 코리안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 라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에 관한 부분이에요.

    일제 식민사관의 주요한 논리 중에 하나가 정체성론停滯性論입니다. 정체성론은 뭐냐? 우리 역사는, 한국 역사는 전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었다. 그래서 삼국시대 때부터 19세기까지 상태가 똑같았다. 한국인들은 자발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국의 식민지배를 받아야만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이병도씨가 자기 책에 한사군을 극찬하는 논리가 나오고, 21세기 백주대낮에 ‘식민지 시대에 근대화가 되었다’라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죠. 일제정체성론에 따르면은 우리는 해방 이후에 지금쯤 다 굶어죽었어야 돼요. 지금 우리사회가 이렇게 발전한 것과 저 식민사관과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한국사 바로세우기 과제


    이뿐만 아니라 법학, 음악, 미술, 국문학 등 조금 공부해보면 전부 다 일제 통치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해방 이후 67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한번도 종합적으로 연구검토한 적이 없습니다. 이걸 연구 검토해가지고 받아들일 점이 있으면 계승하고, 버릴 점이 있으면 철저하게 버리는 작업을 해야 되는 게 첫 번째입니다.

    두번째로 한국사 관련 국가기구, 여러분이 낸 세금 가지고는 식민사학 하려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본에 가서 자민당 돈을 받아서 해야죠. 일본에 가서 일본 극우파 돈을 받고 중국에 가서 중국 패권주의 공산당의 돈을 받아가지고 식민사학 하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식민사학을 하느냐? 이제는 ‘이 구조를 해체하고 판을 전면적으로 새로 짤 때가 됐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국사교과서를 주체적인 입장에서 다시 써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너무 재밌어서 국사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게 돼 있어요. 국사교육이 암기과목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기초사안
    이제는 식민사관 비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나아가 이들이 장악한 한국사 관련기구를 해체, 재편하여 한국사를 한국인의 시각으로 재구성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은 좌우의 문제도 아니고 여야의 문제도 아니고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21세기에 순국선열의 피와 한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21세기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기초적인 사안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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