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과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화란和蘭

[세계지역문화탐방]

이해영 전임기자 / 서울관악도장

[뽑은 글]
네덜란드 하면 어떤 게 생각날까? 풍차와 튤립을 비롯한 다채로운 꽃들이 만발하는 이미지가 연상될 것이다. 진보적 세계관, 세계적 수준의 예술, 자전거 친화적 도시로도 유명하고, 특히 암스테르담을 연상하면 홍등가와 대마초가 가장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치 있는 운하와 꽃이 만발한 공원들은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여기에 50개가 넘는 박물관 지역에는 세계적 수준의 네덜란드 예술과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어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경험해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하멜 표류기』로 처음 알려졌고, 을사늑약 이후 헤이그로 파견된 헤이그 특사의 아픔을 간직한 나라다. 최근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4위까지 끌어올린 거스 히딩크 감독의 나라로 유명해졌다.

네덜란드는 1949년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했고 1961년 공식 수교 이후에는 기술⋅투자⋅반도체⋅문화 교류에 이르기까지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다. 정식 명칭은 네덜란드 왕국(Kingdom of The Netherlands)인 이 나라는 모두 네 개의 나라로 구성되어 있다.


한눈에 보는 네덜란드




여행 정보




국명
유럽 본토와 카리브해 3개 국가로 구성된 왕국


네덜란드 왕국(Kingdom of the Netherlands)

정식 국호는 ‘네덜란드 왕국(Kingdom of the Netherlands)’이다. 네덜란드어로는 ‘코닝크레이크 데르 네데를란덴Koninkrijk der Nederlanden’이라고 부른다. 왕국은 본토와 카리브해의 3개 특별 지방자치단체(보네르Bonaire, 신트 외스타티위스Sint Eustatius, 사바Saba)를 지배하는 네덜란드와 카리브해의 아루바Aruba, 퀴라소Curaçao, 신트마르턴Sint Maarten 3개국을 포함하여 총 4개의 국가로 구성된다.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어로 ‘낮은 땅들, 저지대’를 뜻하며, 라인⋅마스⋅스헬더 하구의 하천 평야와 간척지⋅저지 지형을 반영하는 이름이다. 영어 이름 ‘Netherlands’ 역시 같은 의미가 있으며, 흔히 ‘Holland’라고 부르지만, 홀란트는 역사적으로 그 안의 일부 지역(노르트홀란트⋅자위트홀란트)을 가리키는 말이다. 19세기 말부터 동양 한자권에서 이 나라를 부르는 호칭은 홀란트와 비슷한 화란和蘭이다. 일본에서는 화란和蘭을 ‘오란다’로 발음한다.

지리와 기후
낮은 땅에 수시로 내리는 비, 그리고 바람


지정학적 위치

네덜란드는 북서유럽, 북해 연안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독일, 남쪽으로 벨기에와 접하고, 서쪽과 북쪽은 북해와 마주한다. 수도는 암스테르담Amsterdam이지만, 정부와 의회⋅왕실의 주요 기관은 사실상 행정 수도인 헤이그Hague(덴하흐Den Haag)에 위치한다.

국토는 매우 평탄한 저지대로, 상당 부분이 해면보다 낮거나 강 하구의 충적지이며, 중세 이래 제방⋅방조제⋅폴더polder 간척으로 바다와 호수를 육지로 바꾸어 왔다. 네덜란드라는 국명 자체가 낮은(Neder) 땅(Lands)이라는 뜻이다. 국가에서 제일 높은 곳조차 해발 321미터에 불과하다. 그래서 촘촘한 제방⋅수로⋅펌프 시설을 갖춘 물 관리 체계가 국가의 생존 전략이자 풍경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기후

서유럽 국가답게 전형적인 서안 해양성 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 기온은 섭씨 10도 안팎, 겨울의 평균 온도는 1~4도이고 여름은 평균 17~19도이다. 한국처럼 사계절이 있지만, 한국에 비해 여름은 훨씬 시원하고 겨울은 덜 춥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날씨가 마음에 안 들면 10분만 기다려라.”라는 농담을 한다. 그만큼 날씨 변화가 심하다. 국토가 평평해서 바람을 막아 줄 산이 없다. 일 년 내내 바람이 강하게 불며, 이는 네덜란드에 풍차風車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외출 전 반드시 ‘뷔엔라다Buienradar’라는 비 예보 앱을 확인한다. 비구름의 이동을 분 단위로 정확하게 보여 주기 때문에, 비를 피해 이동할 수 있다.


역사 history
작은 나라가 세계를 제패했던 '거인'의 역사



네덜란드는 중심이 되는 중앙 국가 또는 특정 거점이 주변을 병합하면서 성장했던 다른 국가의 역사와는 다르다. 오히려 특정 지역의 처지와 정서가 비슷한 도시들이 따로 살았다가 외부의 위협에 직면하자 도시들끼리 뭉쳐서 국가를 만든 것에 가깝다. 네덜란드 역사는 로마 제국의 국경 지대에서 시작해, 16세기 독립 투쟁과 17세기 황금기를 거쳐 오늘날의 입헌군주국으로 발전했다고 크게 정리해 볼 수 있다.


선사⋅고대

지금의 네덜란드 지역에는 선사 시대부터 켈트⋅게르만계 집단이 혼재해 살았고, 로마 시대에는 남부가 로마 제국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라인강 하류 일대에는 바타비Batavi, 카나네파테스Cananefates, 프리시이Frisii 같은 게르만 부족이 살았고, 바타비는 로마와 동맹을 맺고 기병을 제공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중세~근세

로마 쇠퇴 후 이 지역은 프랑크 왕국 등 게르만 세력에 편입되었고, 이후 여러 봉건 영지와 도시국가가 발달했다. 16세기 스페인 합스부르크 통치에 맞선 80년 전쟁(1568~1648)에서 북부의 7개 주가 동맹(1579년, 위트레흐트Utrecht 동맹)을 선언한다. 끝까지 스페인에 맞서 싸우고 개신교의 자유를 지키겠다고 나선 이 동맹은 네덜란드라는 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건국 선언문이자 최초의 헌법과도 같은 역사적 조약이다. 반면 남부의 주들은 아트레흐트Atrecht(아라스Arras) 동맹을 맺고 스페인과 타협하여 가톨릭을 유지하고 스페인 왕에게 충성하기로 한다. 이 지역은 오늘날 벨기에의 기반이 된다.
이후 북부의 7개 주는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을 수립했고, 17세기에는 해상무역⋅금융⋅과학⋅예술이 번성한 ‘네덜란드 황금기’를 펼친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상징색은 오렌지(주황색)이다. 이는 네덜란드의 오라녜(Oranje-Nassau) 왕가의 이름과 연결된 것이다. 17세기 네덜란드가 스페인과 독립 전쟁을 하던 시기, 그 중심에 있었던 빌럼Willem 1세의 가문 이름이 Oranje-Nassau였다. 그때부터 오렌지색이 애국심의 상징이 되었다. 독립의 구심점이 되었던 오라녜 가문이 영어로 ‘Orange’로 번역되면서, 그 이름이 국가의 상징색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특히 ‘오렌지 군단’은 네덜란드 축구팀의 별칭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근대~현대

나폴레옹 전쟁기 당시 프랑스의 영향권에 들어갔다가 1815년 네덜란드 왕국이 성립되었으며, 이후 입헌 군주제와 의회 민주주의가 정착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1차 대전에는 중립을 유지했으나, 2차 대전 때는 독일의 침공과 점령을 겪었으며, 전후에는 복지 국가⋅개방 경제를 바탕으로 고소득 국가로 성장해 오늘날 EU(유럽연합)⋅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심 회원국이 되었다.

정치 제도
의회 민주주의에 기초한 입헌 군주국



국가 체제 및 특징

네덜란드는 의회 민주주의에 기초한 입헌 군주국이다. 현재의 왕가는 오라녜나사우 왕가(Huis Oranje-Nassau)로 빌럼 알렉산더르Willem-Alexander 국왕이 2013년 이래 재임하고 있다. 명목상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이 국왕에게 속하기 때문에 통치자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다른 입헌 군주제 국가에 비하면 왕권이 넓은 편이다. 국방 관련 권한은 정부에 속한다. 그러나 국왕은 국가 원수로서의 의례에 관여할 뿐, 내각을 이끄는 총리가 실질적인 행정부 수반이다.

네덜란드 정치⋅행정의 특징은 지방 정부의 수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중앙 정부가 임명하는 중앙 집권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다당제와 연립 정부 구조로 인해 정책은 합의와 협상 과정을 거치는 협의 민주주의가 발달해 있다. 그리고 EU, NATO, ICJ(국제사법재판소) 등 국제기구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통치 구조

중앙 정부는 국왕, 총리와 각료로 구성된 각료 회의, 그리고 상⋅하원으로 이뤄진 의회(States General)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하원(제2의회)은 국민이 비례 대표로 직접 선출하고, 상원(제1의회)은 지방 의회가 선출하며, 내각은 의회 신임에 기반한 연립 정부 형태가 일반적이다.


행정 구역

네덜란드 본토는 12개의 주州(province)로 나뉘어 있다. 각 주 아래에는 수백 개의 지방자치단체(자치시⋅자치구)와 별도로 수水 관리 전담 자치 기구인 ‘워터보르트(수 관리위원회)’가 있어 방재⋅수자원 관리를 맡는다.


네덜란드를 구성하는 12개 주

네덜란드의 지방 자치는 강력한 편이다. 단일 국가 체제를 명시하고 있지만 지방 정부에 상당한 권한이 이양되어 있다. 각 주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 직선으로 선출되는 독자적인 의회가 있으며 의회 의원들이 정부를 구성해 자신의 주를 관할한다.

입법부⋅사법부

입법부인 의회는 Staten-Generaal(스타텐헤네랄, 국가의회)이라 하며,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회가 제1원(상원), 제2원(하원)으로 두 개가 있다. 다른 유럽 양원제 국가들처럼 상원은 큰 힘이 없고 하원이 정치를 주도한다.

상원의 임기는 4년이며, 하원과 달리 해산이 불가능하므로 의원 개인에게 문제가 없는 한 임기가 지켜진다.
하원(제2원)의 영어 명칭은 네덜란드어와는 다르게 ‘House of Representatives’, 대의원으로 미국 하원과 이름이 같다. 총원 150석으로 전 국민의 보통 선거로 선출된다. 네덜란드의 하원 총선은 1917년에 비례 대표제를 도입한 이래 현재까지 전국 단위 완전 비례 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의회가 비례 대표 의원들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유럽에서는 흔한 일이다.

네덜란드 하원의 임기는 헌법상 4년으로 고정되어 있다. 역시나 다른 의원 내각제 국가처럼 내각의 의회 해산이 가능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헌법상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사례가 차고 넘친다. 일본 중의원만큼 의회 해산이 자주 발생해 2~3년 정도 지나면 총선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가장 긴 임기를 가졌던 것이 2012년 9월 총선부터 2017년 3월 총선까지의 4년 6개월이다. 전국 단위 비례 대표제를 시행하는 의원 내각제라 연정 구성이 약간만 불안해지면 바로 의회 해산과 총선을 한다.

​주요 정당으로는 노동당(PVDA), 기독민주당(CDA), 자유민주당(VVD), 민주66당(Democrats66), 녹색당, 사회당 등이 있다.
사법부는 최고법원(Supreme Court)과 5개의 고등법원, 19개의 지방법원, 62개의 간이법원으로 구성되며, 판사는 국왕이 임명하고 종신직이다.


주요 도시
수도는 암스테르담, 정부 소재지는 헤이그



네덜란드에서 인구⋅경제의 중심지는 이른바 ‘란트스타트Randstad’(도시 집중 지역)으로 불리는데, 암스테르담Amsterdam(공식 수도)⋅로테르담Rotterdam(최대 항만)⋅헤이그Hague(정부 소재지)⋅위트레흐트Utrecht(교통 허브)가 고리 모양으로 이어진 대도시권을 이룬다.

그 밖에도 에인트호번Eindhoven(첨단 기술⋅필립스⋅반도체 클러스터), 흐로닝언Groningen(학생 도시), 마스트리흐트Maastricht(EU 조약 체결지), 틸뷔르흐Tilburg⋅네이메헌Nijmegen 등 중견 도시들이 지역 거점 역할을 한다.

암스테르담Amsterdam : 네덜란드의 수도로 최대 도시라 다양한 박물관이 있다. 암스테르담 시티 카드 보유 시 주요 박물관 대부분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며 운하 크루즈도 타 볼 수 있다.

잔세스칸스Zaanse Schans : 암스테르담에서 1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로 풍차 마을로 유명한데 치즈 공장, 나막신 박물관도 있어 볼거리들이 많은 핵심 관광지이다.

위트레흐트Utrecht : 암스테르담 남쪽 40킬로미터 지점에 있어 있는 네덜란드 제4의 도시로 가톨릭의 중심이 되는 돔 성당과 오르골 박물관이 명소이다.

알크마르Alkmaar : 암스테르담 서북쪽 5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도시로 치즈 박물관과 광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더 레이프라는 동네가 있는데 우리나라에 최초로 정착한 유럽인인 박연朴燕(Jan Janse de Weltevree, 1595년생)의 고향으로 그의 동상도 있다.

로테르담Rotterdam : 네덜란드 제2의 도시로 물류와 경제의 중심지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항만港灣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무자비한 파괴를 겪어 오래된 건물이나 문화재는 별로 남아 있지 않은 대신 각종 창의적인 디자인의 현대적 건물이 많다.

헤이그Hague(덴하흐Den Haag) : 암스테르담에서 5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네덜란드의 정치경제의 중심지로 1250년 네덜란드 왕궁이 세워지고 의회 등 주요 기관들과 해외 기관들, 대사관들이 위치한 곳이다. 1907년 고종 황제가 파견한 헤이그 특사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이준李儁 열사 기념관도 있다.

쾨켄호프Keukenhof : 암스테르담 남서쪽 3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공원으로 네덜란드 튤립 축제가 열린다. 매년 3월부터 5월 사이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 방문해 보면 좋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도 가깝다.

델프트Delft : 네덜란드의 색인 오렌지 군단의 기원이 되는 도시이자 네덜란드 왕가의 시초가 되는 도시이다. 로얄 델프트 도자기의 탄생지이기도 하며 관광지가 구시가지에 몰려 있다. 헤이그와 로테르담 사이에 있어 도시를 연계해서 구경한다면 좋은 곳이다.

민족 구성
184센티미터 세계 최장신 국가



인구는 약 1800만 명 수준이며, 전통적으로 ‘네덜란드인(Dutch)’이 인구 대다수를 차지한다. 세부 구성으로는 네덜란드계가 70퍼센트대 중반을 차지한다. 20세기 중후반 이후 식민지와 전前 식민지(인도네시아⋅수리남⋅카리브 지역), 그리고 터키⋅모로코 등에서 노동력과 가족 이주가 이루어지며 인구 구성이 크게 다양해졌다.


네덜란드인의 성향

네덜란드 사람들은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이며, 개인과 공동체를 칼같이 구분한다. 이는 과거부터 해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던 네덜란드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는데, 해안가 지역 사람들이 그러하듯 뱃사람들의 어법을 물려받아 군말이나 꾸밈말을 거의 하지 않고 전달하고 싶은 뜻만 정면으로 전달한다. 마찬가지로 감정도 숨기지 않으므로 사실 기분이 나쁜데 애써 웃는 것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뿌리가 같은 독일인들이나 북유럽 사람들과 성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실제로도 원리 원칙을 중시하며 시간관념이 투철한 등 유사점이 많다. 하지만 이들 문화권보단 사고나 행동 면에서 유연성이 좀 있는 편으로, 오히려 기존의 규범보다 효율적으로 보이는 방법이 있다면 주저함이 없이 그쪽을 택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사회 질서는 존중하지만, 비효율을 감수하면서까지 철저하게 규칙을 따르려고 하지는 않는 편이다.

한편 개인주의가 잘 정착하여 회사나 학교 등에서의 정해진 활동 시간이 끝났거나 휴가, 방학 중이면 개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보장해 준다. 한국처럼 퇴근했거나 휴가 중인데 일 문제로 연락한다거나 하는 일은 어지간히 중대한 사항이 아니면 없다. 아예 개인 휴대전화 외에 업무용 휴대전화를 따로 지급하고 주말 및 휴가 중에는 꺼 놓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직장도 꽤 많다. 여느 서구권 국가가 그렇듯 직장 내 위계질서도 엄격하지 않으며 상사를 직위 대신 이름으로 직접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친분이 별로 없는 사이에는 일에 관한 것이 아니면 정말 무관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서로 건드리지 않는데, 실은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각자 무언가 할 게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서로 방해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반대로 친분이 두텁거나 가족이라면 퇴근하자마자 파티하러 가는 수준으로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시간 여유를 두고 미리 알려 주는 것이 예절이다.


세계 최장신 국가

세계에서 가장 평균 신장이 큰 것으로 유명하다(2025년 기준 남자 184.4센티미터, 여자 169.4센티미터). 세계적으로 북유럽, 발칸반도 북부, 독일, 동유럽 일부 국가와 함께 남자의 평균 키가 180센티미터 이상인 몇 안 되는 국가이다. 네덜란드 지역 사람들은 원래부터 키가 컸으며, 로마 제국에서도 이 지역 사람들이 금발에 키가 크다는 이유 때문에 의장대 구성을 위해 군인으로 뽑아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반면 여타 서유럽⋅북유럽 국가들과 달리 비만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들의 압도적인 피지컬은 격투기 분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킥복싱 왕국으로 불리우며 유명 격투 프로모션인 골든 글로리Golden Glory에서는 세미 쉴트Semmy Schilt, 앨리스테어 오버림Alistair Overeem 등 여러 세계 챔피언들을 배출한 바 있다.


네덜란드 성씨의 특징 - van

네덜란드인의 성명에는 성씨 앞에 ‘van’*이 들어가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빈센트 반 고흐, 마르코 반 바스턴, 버질 반 다이크, 로빈 반 페르시, 도니 판더베이크, 아민 반 뷰렌 등이다.

van(’반‘ 또는 ’판‘)은 출신지 내지는 가문을 뜻하는 전치사로 영어의 of와 비슷한 뜻을 갖는다. 예를 들어 ‘마르코 반 바스턴’의 뜻은 '바스턴 가문의 마르코' 혹은 '바스턴 지방에서 태어난 마르코' 이런 식이다. 네덜란드계인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이름에도 역시 이 판(van)이 들어가 네덜란드의 관습을 잘 모르는 독일인들이 이것을 독일어권 귀족들이 성 앞에 붙이는 3격 전치사 폰(von)의 네덜란드판이라고 생각해서 베토벤을 네덜란드계 귀족으로 대우했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독일어의 von이 네덜란드어의 van과 같은 어원에서 갈라져 나와 거의 같은 의미가 있는 전치사지만 독일어권에서는 귀족들만 성씨 앞에 Von을 쓸 수 있었다.
*van의 표기법 – ‘van’의 한글 표기와 관련하여, 이를 ‘반’으로 적느냐 ‘판’으로 쓰느냐에 대해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독일어에서 'van'은 네덜란드계 이름에 쓰이는 말로서 일반적으로는 '판'으로 적고, 네덜란드어에서도 'van'은 전치사로서 표기법상 어두의 'v'를 ‘ㅍ'으로 적으므로 '판'으로 적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어 외래어표기법 제4장 제1절 제3항에는 “외국의 인명, 지명 표기에 있어 원지음이 아닌 제3국의 발음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관용을 따른다.”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독일 작곡가 베토벤은 독일어 표기법에 따라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으로 표기하고, 네덜란드 화가 고흐는 이미 굳어진 외래어 관용을 존중하여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로 표기하는 것이다.

한편 성씨 앞에 ‘더(de)’가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영어의 the에 해당하는 정관사로, 인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성씨 앞에 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더 용(de Jong)은 ‘젊은(Jong)’을 뜻하고, 마찬가지로 흔한 성씨인 더프리스(de Vries)는 ‘프리지아인(Fries, Vries)’을 의미한다. 프랑스어권이나 스페인어권에서 귀족들의 성씨 앞에 들어가는 de와는 관련이 없다.


언어
외국어 교육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



공용어와 지역어

네덜란드의 공용어는 네덜란드어(Dutch)이며, 북부 프리슬란트Friesland(프리슬란)주에서는 프리슬란트어(Frisian)가 함께 공식어 지위를 가진다. 프리슬란트어, 저지 독일어계 방언(로우색슨), 림뷔르흐어, 로마니어, 이디시어 등은 ‘유럽 지역 언어⋅소수 언어 헌장’(ECRML: European Charter for Regional or Minority Languages)에 따라 법적 보호를 받는다.

네덜란드 본토에서는 영어 구사율이 매우 높아, 비즈니스⋅고등교육⋅관광에서 영어 사용이 광범위하다. 네덜란드는 교육이 발달한 서유럽, 북유럽 국가와 함께 언어 교육에 관심과 투자가 많은 국가로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처럼 세계적으로 쓰이는 언어와 같은 유럽의 언어인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대량의 외국어 교육 서적을 네덜란드어로 발간해 일반인들이 언제든 공부할 기회를 제공한다. 서적의 가격도 싸기 때문에 네덜란드인은 평범한 사람들도 취미로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경우도 많다.

주요 인물
빈센트 반 고흐의 나라




정치

오라녜 공公 빌럼 1세(Willem van Oranje)는 16세기 스페인 펠리페 2세의 폭정에 맞서 독립 전쟁을 이끈 지도자로, ‘국부’國父에 비견되며 오늘날 왕가(오라녜나사우Oranje-Nassau가家)의 상징적 기원이 된다. 그는 종교적 관용을 강조하며 ‘80년 전쟁’을 주도했다. 1581년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의 초대 국가 원수로 추대되었으나 1584년 암살당했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1837~1920)는 20세기 초 수상으로 복지 국가의 기초를 닦았다. 휘호 흐로티위스Hugo Grotius(1583~1645)는 국제법의 토대를 놓은 법학자로, ‘해양 자유’ 개념을 제시해 이후 국제 해양 질서와 국제법 사상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학문⋅예술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1606~1669)은 ‘야경’과 자화상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프란스 할스Frans Hals(1580~1666)와 요하네스 페르메르Johannes Vermeer(1632~1675)는 초상화와 일상 장면으로 네덜란드 미술을 풍성하게 했다. 이 17세기 화가들은 ‘네덜란드 황금기’의 회화를 대표하며, 사실적이고 섬세한 빛 표현으로 서양 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1629~1695)는 토성 고리를 발견하고 진자의 시계를 발명한 천문학자이며,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1632~1677)는 17세기 철학자로, 합리주의와 자유 사상, 관용 이념을 강조하며 근대 철학과 세속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네덜란드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는 한국에서 해바라기 그림으로 특히 사랑받는 화가다. 불과 10년간 2,100여 점의 작품을 창작했으며, 대담한 색채와 극적 붓놀림이 특징이다. 동생 테오Theo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했다. 정신적 불안정과 건강 문제로 고통받았으며, 친구 폴 고갱Paul Gauguin과의 대치 후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도 있었다. 정신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1890년 37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고흐는 생전에 무명이었으나 사후 제수 요한나가 그의 작품과 편지를 정리하고 전시하여 재조명되었다. 그의 대담한 색채와 표현은 20세기 야수파와 표현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세계 최대 컬렉션이 소장되어 있다.

한국 문화를 유럽에 알린 인물

루브루크Rubruck 신부}] : 우리나라와 네덜란드의 문화사적 관계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유럽에 소개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그 첫 번째 매개 역할을 담당한 사람은 플랑드르 출신으로 프란치스코회 신부인 빌렘 반 루브루크Willem van Rubruck였다. 그는 프랑스 왕 루이 9세와 교황 이노센트 4세의 사신으로 1253∼1255년 사이에 몽골 제국의 영내에 다녀왔는데 우리나라를 까울레Caule라 하여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하였다. 까울레는 고려高麗의 중국식 발음이다. 그에 따라 후일 베네치아 출신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도 카울레를 언급하였다.

{{하멜Hamel
: 우리나라를 다녀간 뒤 그 견문을 직접 책으로 소개한 사람은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이다. 하멜은 네덜란드 배 데스페르베르DeSperwer호가 1653년 제주도 해안에서 파선되자 표류하던 선원들과 제주도에 올라와 동료 7인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13년간 살다 돌아갔다. 그 뒤 그는 『하멜 표류기』를 1668년 로테르담에서 출간한 바 있는데, 그것은 곧 프랑스어⋅독일어⋅영어로 번역되었다. 편집과 번역 과정에서 많은 오류가 들어가기는 했으나, 이 책은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처음으로 17세기 유럽인에게 소개한 공적이 있다.

벨테브레Weltevree(최초의 귀화인 박연朴燕) : 네덜란드인이 한국(조선)에 최초로 온 역사는 1627년으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의 선원 얀 얀스 벨테브레Jan Jansz Weltevree가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중 태풍으로 표류해 제주도에 도착한 사건이다. 그는 ‘박연朴燕’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받고 조선에 귀화하여 정착했다. 총포⋅화승총 제조 기술을 전수하며 조선 무기 개발에 이바지했다. 1653년 헨드릭 하멜 일행의 표류 시 통역원으로 활약해 네덜란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그는 조선 최초의 서양인 귀화자로, 네덜란드-조선의 첫 접점이었다. 이 사건은 양국 400년 우호의 상징으로, 수교 60주년(2021) 등 현대 외교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비첸Witsen :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니콜라스 비첸Nicolaas Witsen이 1692년 암스테르담에서 출판한 『북부 및 동부 타타르인(Noord en Oost Tartaryen)』도 우리나라를 유럽에 소개한 중요한 저서이다. 특히 1705년에 나온 그 재판본은 우리나라와 일본에 관한 유럽인들의 기록과 하멜의 두 동료에게서 받은 제보를 바탕으로 한글 어휘와 한국에 관한 값진 정보를 많이 수록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역사는 끊임없는 자연과의 투쟁,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 그리고 내부의 종교적⋅정치적 갈등 속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관용과 실용주의 문화를 만들어 낸 인물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종교
유럽에서 가장 세속화된 나라 중 하나



네덜란드 사회는 17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는 개신교 인구가 60퍼센트가 넘는 개신교 국가였으나 현재는 카톨릭(17퍼센트)과 개신교(14퍼센트)가 공존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종교를 갖지 않는 인구(51퍼센트)가 종교인(49퍼센트)을 추월하여 현재는 급격한 세속화를 겪고 있다.

네덜란드는 중세 이후 상업 도시를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종교적 관용을 보여, 타국에서 박해받던 집단(유대인, 청교도 등)이 이주하는 피난처 역할을 한 전통이 있다. 오늘날에도 #종교의 자유와 세속주의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종교가 공적 정책 결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비교적 작은 편이다.


경제
서비스업이 GDP의 70퍼센트 이상



경제 구조와 특징
네덜란드는 1인당 소득이 높은 선진 경제로, 개방적 시장 경제⋅복지 국가⋅농식품⋅물류⋅고부가가치 제조업⋅서비스업이 결합한 구조를 가진다. 로테르담항은 유럽 최대 항만이자 세계적인 물류 허브이며, 덕분에 재수출⋅물류⋅무역 관련 서비스가 GDP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무역 개방도는 매우 높아, 상품⋅서비스 교역액 합계가 2024년 기준 GDP의 약 1.5배를 넘는 수준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돈다. 국토는 작지만 온실 재배와 낙농을 이용해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국이다. 화학⋅정유, 하이테크 제조(반도체 장비⋅의료 기기), 금융⋅물류⋅ICT(정보통신기술) 서비스 등이 대표 산업이다. 기후⋅에너지 전환과 주택⋅기반 시설 개선이 최근 주요 정책 과제다.

외교
헤이그는 국제법의 도시



유럽⋅세계 속에서의 역할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상업 해상 무역 국가로서 개방적이고 다자주의적인 외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현재 EU(유럽연합)⋅NATO(북대서양조약기구)⋅OECD(경제협력개발기구)⋅WTO(세계무역기구) 등 주요 국제기구의 적극적인 회원국이다. 헤이그에는 ICJ(국제사법재판소), ICC(국제형사재판소), OPCW(화학무기금지기구) 등 다양한 국제법⋅국제기구 본부가 위치해 ‘{{국제법의 도시’로 불린다.

유럽연합 안에서는 재정⋅무역⋅기후⋅법치주의 분야에서 적극 참여하는 중견국으로, 독일⋅벨기에⋅룩셈부르크 등과 경제적으로 긴밀히 얽혀 있다. 인권⋅개발 협력⋅국제법 수호, 해상 안보⋅사이버 안보 등에서도 이바지하며, 아프리카⋅아시아 개도국에 대한 원조⋅투자⋅지식 공유를 중시한다.

대한민국과 주요 협력 사례

네덜란드는 1949년 대한민국 정부 승인 후 1961년 공식 수교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지상군⋅해군을 파병해 전투와 의료 지원에 이바지했다. 이로 인한 ‘참전국’으로서의 특별한 유대가 양국 관계의 정서적 토대가 되었다. 2022년 양국 정상회담에서도 이를 강조하며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네덜란드는 유럽 내 한국의 최대 투자국으로, 누적 투자액이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최근 양국 간의 주요 협력은 세계 최고의 반도체 동맹(Semiconductor Alliance)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네덜란드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최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EUV 노광露光 장비)를 만드는 회사 ASML이 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를 만들려면 이 장비가 필수적이다. 양국의 기업들이 MOU(양해각서)를 맺고 공동 투자, 공동 개발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한⋅네덜란드 외교 관계의 상징적 인물로는 네덜란드 국적의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02년 FIFA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 당시 한국 대표팀의 감독으로 4강 신화를 이끌어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주요 음식#

네덜란드는 식문화가 유럽에서 가장 발달하지 않은 축에 속한다. 일단 게르만 문화권 자체가 기본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식문화가 다소 부실한 편이다. 거기다 네덜란드는 한때 원조 개신교 국가였던지라 금욕을 강조하고 사치를 죄악시하는 청교도 특성상 요리 문화가 발전하려야 발전할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길거리 음식으로 청어 절임이나 치즈를 끼워 만든 샌드위치, 완두콩 수프, 감자로 만든 팬케이크 정도나 맛볼 수 있다. 실제로 현지인들이 밖에서 식사를 할 때는 주로 외국 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한다.

네덜란드에서 주요 음식으로 꼽히는 것은 스탬폿, 파타, 비터발렌, 헤링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