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종도사님의 진리 혼 | 마음에 새기는 태상종도사님 도훈(우리는 상제님의 천지 역군)
[태상종도사님 말씀]
도기 133년 2월 3일, 정삼치성 도훈 발췌

우리는 상제님의 천지 역군
‘천리장정千里長程도 일보위시一步爲始하나니’, 멀고 긴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상제님 사업은 천리장정이 아니라 만리장정萬里長程이다. 상제님 진리는 전쟁할 때 군사를 훈련해서 행군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내가 우리 신도들은 후천 5만 년 새 문화, 새 시대를 개창하는 역군役軍이라는 말을 늘 하는 것이다.
상제님 천지공사天地公事 내용은 인위적으로 누가 마음대로 바꾸지 못한다. 우리는 그저 상제님이 틀을 짜 놓으신 도수度數 그대로 그 시간표, 이정표, 프로그램에 의해서 그렇게만 표출되는 것을 인사적으로 집행하는 수밖에 없다.
천지 역군의 사명을 다하라
우리는 상제님의 혼魂이 되고 증산도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어서 명실공히 상제님 공사 내용을 집행하는 하자瑕疵 없는 역군이 돼야 한다. 상제님 9년 천지공사의 총결론인 의통醫統 그 목을 맞이할 때까지 인연 있는 사람들을 따 담는 임무, 그 역할을 걸머진 사람이 바로 여기 앉아 있는 우리 신도들이다.
우리 신도들이 그런 중차대한 소임을 실감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각자 분업적 작용을 하는 목적은 하나다. “나를 믿는 자는 다 각기 육임六任을 짜라.”는 상제님 말씀대로 육임을 완수해서 상제님 사업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그 목적이다.
집중해서 정육임을 짜라
육임을 짜는 것은 우리 신도들의 지상 과제인데, 그 육임도 반드시 정육임正六任이라야 한다. 내가 여섯 사람을 짜면 그 육임이 각기 여섯 사람씩 포교布敎하는 것, 그게 정육임이다.
우리 신도들은 다 정육임을 짜라. 불위야不爲也언정 비불능非不能이다. 정성만 있으면 남녀 노유男女老幼를 막론하고 누구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요 시기를 놓쳐 버리면 앞으로는 포교하고 싶어도 허용이 안 된다. 하니까 천재일우千載一遇,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을 금쪽같이 아껴서 사람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최선을 다하여 상제님 사업에 임해야 한다.
『도전』은 상제님의 천지공사와 말씀을 담은 책
상제님의 진리 증산도라는 이름에 붙은 ‘도道’ 자는 한마디로 ‘열매기 진리’라는 도道 자다. 그렇기 때문에 증산 상제님의 천지공사 내용 이념을 쓴 책 이름이 『도전道典』이다.
지나간 세상에 극히 제한된 성자들이 와서 제한된 이념을 말한 것을 적은 글을 경전經典이라 한다. 유가에서 경서經書라 하는 것은 벼리가 되는 글, 본바탕이 되는 기본 글이라는 뜻이다.
상제님 진리에는 경經 자를 놓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천지 이법으로 역사를 심판하여 천지의 도를 집행한 행적을 담은 책을 어떻게 경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주 변화 원리의 틀을 정리해서 매듭지으신 상제님의 공사 내용과 성구를 담은 책이기 때문에 그 이름이 『도전』이다. 천지의 틀, 역사의 틀이 되는 전적典籍이란 말이다. ‘도전道典’은 증산도라는 체제에 맞게 지은 이름이다. 그 이상 고귀하고 합당한 이름은 없다.
창업자가 가지는 세 가지 특수한 복
상제님 사업을 인사적으로 성취해 나가는 우리는 창시자創始者다. 백 년 전에 상제님이 신명 세계 조화정부에서 그 틀을 다 짜 놓으셨지만, 삼변성도三變成道 과정에서 우리가 개창하고 성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부自負하라.
상제님 신도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향유할 수 없는 세 가지 특수한 복이 있다. 상제님 사업의 창시자가 되려면 후천 새 세상을 개창하는 역군으로서 고생복, 욕복, 일복 이 세 가지 복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다 같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앞에서 잡아끌고 뒤에서 밀면서 일로매진一路邁進해야 한다.
봉사 정신을 갖고 포교하라
사람은 사회 속에서 봉사奉仕 정신을 가져야 한다. 인류 역사를 통해 봉사 정신에 가장 투철한 사람은, 예컨대 평생 행려병자들을 거두어 돌본 테레사Teresa(1910~1997) 수녀 같은 사람이다. 테레사 수녀는 세상과 전 인류를 위해서 인종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가서, 자기 능력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 봉사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성인聖人이다.
그러니 우리도 그런 봉사 정신을 갖고 사회 속에서 상제님 사업을 해 나가야 한다. 사람들을 애처롭게 생각하고 봉사 정신을 갖고 포교하란 말이다. 포교는 죽는 세상에 살 길을 매개하는 것이니 천지보다 더 큰 은총恩寵이 아닌가. 얼마나 거룩하고 성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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