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을 채우고 행복을 찾다 외 (김민서, 채관배)

[입도수기]

부족함을 채우고 행복을 찾다



대순에서 상제님에 대해 알게 됐지만, 강요가 너무 많고 잘 가르쳐 주지도 않아 그곳을 나왔습니다. 증산도에 와서는 진리를 공부할 수 있어 기쁘고, 좋은 일꾼의 꿈을 갖게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김민서(여, 49세) / 군산도장 / 도기 155년 음력 2월 입도

상제님을 알았지만 뭔가 부족했던 대순


저는 1977년 군산 미룡동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나왔으며 기독교를 신앙하였습니다. 33세 때 몸이 너무 아파서 기독교를 그만두고 불교로 전향하여 금산사에 가서 기도를 드리다가, 군산으로 이사 와서는 은적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미륵절(대순진리회)에서 미륵 부처님과 상제님에 대해 알게 되었고 공부도 했지만, 강요가 너무 많고 잘 가르쳐 주지도 않아 뭔가 아닌 듯하여 그곳을 나왔습니다. 그러다 상생방송을 보고 증산도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고 인터넷을 통해 인도자인 창원명서도장 구지영 도생을 만나 군산에도 도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알고 일꾼이 되는 게 행복해


군산도장에 찾아와서는 진리 공부를 하는 것도 좋았고 새로운 소식들과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더 잘 알 수 있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이법 공부를 한 후 수행 영상을 볼 때 꽃을 그리며 따라 했는데 빛이 잠깐 보였고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수행을 하고 집에 가서 혈당을 재 보는데 정상으로 나와서 처음으로 놀랐습니다.
그 뒤로 집에서 수행하고 있지만 증산도에 와서 입도를 하고 수행을 하면서 나중에 일꾼이 되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그리고 제 조상님도 해원시켜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너무 편안합니다.


시대정신의 실현을 위해 해야 할 일



내 자신을 알고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 되며 남을 위하는 희생정신으로 살아가고자 앞만 보면서 살아왔습니다. 정의를 위해 정치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그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마음을 다잡지 못해 방황하다가, 상생방송을 통해 증산도를 만나 진리를 들으면서 당면한 시대 상황이 촉박함을 느끼고 입도를 결심했습니다. 신앙을 잘 해서 천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채관배(남, 67세) / 제주연동도장 / 도기 155년 음력 2월 입도


어렵게 공부하던 시절


저는 1959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빈농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큰아버지 댁에서 살다가, 성장하면서 친구와 자취 생활을 했기에 부모님, 동생들과 헤어져 살았습니다.

중학교 수업료를 지불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에 중 2학년 때 전학을 했고, 아버지께서 근무하시는 제주축산개발 사업소 관사에서 어렵게 살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제주시 노형로터리에서 현 KT 전화국까지 도보로 한 시간을 걸어 다니면서, 학교가 끝나면 석간신문 배달과 주간지 판매 등을 하다가 밤 늦게 귀가하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님의 권유로 제주농업고등학교 축산학과에 진학했는데, 당시 교장 선생님께서 매주 월요일에 훈시하시는 좋은 명언이나 명심보감 등 성구들이 제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이라 정말 좋았습니다.

전통과 역사가 좋은 학교에서 대학 진학 시기를 맞은 저는 집안도 가난하고 장남이었기 때문에 제주대학교 축산학과로 진학하였습니다. 이 대학 시절에는 4-H 활동에 미친 듯이 진력하여 마을 청소년 구락부를 조직하고, 야간 학교에서 후배들에게 영어, 수학 강의를 하면서, 농사 정보 안내와 마을회관 준공, 방역 활동, 시각 장애인 돌봄 서비스 활동 등에 종사하였습니다.


마음에 품은 뜻을 위하여


군 복무를 마치고서는 떨어져 지내던 친구들과 어울리며 여러 가지 일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내 자신을 알고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 되자는 존재의 필요성을 생각하며 남을 위하는 희생정신으로 살아가고자 앞만 보면서 살아왔습니다. 대학 3학년에 복학하고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시위운동에 동참하다가 제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0년 동안 건축 노동, 생선 장사, 우유 배달, 포장마차 등등 해 보지 않은 것 없이 다 하면서 학비를 벌었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학교에 복학하고 마침내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제 마음에 품은 뜻은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듯이 조상과 나라를 위하는 충, 효, 예를 근본 바탕으로 삼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어려운 삶을 영위하고는 있었지만 그 와중에 정치적인 한 인간의 삶에 매료되기도 했습니다. 정당에서 당 사무를 보면서 생활 정치를 근간으로, 위민 생활을 철칙으로 삼으며 살았습니다. 나라가 잘되어야 국민의 삶이 윤택하기에 정의를 위하여 숱한 과정을 정치를 통해 이겨내 보려 하였으나,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그 일을 접고 말았습니다.


시대 상황이 촉박하니 도문에 들어와야


그 후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성경을 두 번 읽고 공부하며 신천지와 영락교회 등을 접해 보았고, 대순진리회와 원불교, 천주교에도 가 보았습니다. 집에서 기도해 볼 요량으로 TV에서 종교 채널을 돌리다가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지인인 서점 주인 김창삼 씨를 찾아가서 증산도 주문지와 책을 구하려 했는데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주연동도장에 직접 전화하여 주문지를 구할 수 있는지 문의하였고 도장 주소를 받고 방문하기로 하였는데, 마침 김창삼 씨가 증산도를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연결시켜 줄 테니 대화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3월 6일이 되어 제주연동도장 강희겸 수호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다음 날 아침에 직접 만나기로 했습니다. 집에 오시라고 했더니 강희겸 수호사님이 『도전道典』과 주문지 등을 가지고 방문했습니다. 서로 대화를 나눈 후, 강 수호사님이 점심을 먹고 도장에 가 보자고 권유를 하길래 수락하여 도장 방문을 했고, 이미향 수호사님과 면담을 하였습니다. 이 수호사님이 진리 공부를 권하시기에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강희겸 수호사님을 통해 8관법 증산도 진리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구원관 진리 내용을 들으면서 당면한 시대 상황이 촉박함을 느끼고 증산도 입도를 결정하였습니다.

앞으로 증산도 신앙을 잘 하여서 천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사람을 살리는 일꾼으로 천지의 큰 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