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개벽

위당 정인보 선생이 역사연구를 하게 된 계기와 이유란 글을 펌했습니다

글쓴이: 이태수 날짜: 2021-11-01 20:43

○위당 정인보 선생이 역사연구를 하게 된 계기와 이유란 글을 펌했습니다.

인터넷에 위당 정인보 선생이 역사연구를 하게 된 계기와 이유란 글이 있어서 펌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위당 정인보 선생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사매국노 이병도와 그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점제현 신사비를 선전하고, 점제현이 평안남도 평강군이라고 조작한 일본인의 조작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dgdragon/222361308452

 

위당 정인보 선생이 역사연구를 하게 된 계기와 이유

역사 연구의 계기

"나는 국사를 연구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 선친께서 늘 "우리나라 역사책을 좀 잘 보아 두어라. 남의 것은 공부하면서 내 일은 너무들 모르더라"라고 말씀하셨건만 다른 노릇에 팔려 많은 세월을 허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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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어느 해인가 우연히 일인들이 《조선고적도보》랍시고 낸 '첫 책'을 보게 되었는데 그 속장 두세 쪽을 넘기기도 전에 벌써 '분'이 터지면서 "이건 가만히 내버려 둬서는 안되겠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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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느 해인가는 일인들이 이른바 "한일 병합 몇 주년"이랍시고 《경성일보》인지 《매일신보》인지에다 기념호를 내었는데 거기에 이른바 '점제비(秥蟬碑)' 사진이 최근 몇 년 내의 대표적인 대사건의 하나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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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을 보고 나는 일본 학자들의 조선사에 대한 고증이라는 것이 저들의 총독정책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으며그들의 음모를 "언제든지 깡그리 부셔 버리리라"라고 다짐하게 되었다."

(위당 정인보, <부언>, 《조선사연구》(연세본, 하권). 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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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3db0000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91pixel, 세로 512pixel

위당 정인보 선생의 <개천절가> 초고

위당 선생이 역사 연구에 나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일제의 '한사군 재평양설'을 주장하며 식민통치의 역사적 명분을 강조하려는 책동 때문이었고 1935년 1월 1일부터 동아일보에 <오천년간 조선의 얼>이라는 제목으로 한민족의 진짜 역사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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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까지 위당은 1915년 즈음 상해에서 단재 신채호를 처음 만난 이래 교류를 가지면서 그의 고대사 연구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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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연구의 이유

"과거는 곧 지금의 뿌리이며 과거의 책은 곧 과거가 남긴 자취이다.. 그런데 이 과거는 묵고 썩은 구태의연한 과거가 아니니 이를 풀어 본다면 곧 '본연의 나[本我]'라고 할 수 있겠다. 말류의 폐해로 그 뿌리에서 어긋나고 또 그것을 버리고 말았다면 그 다음에는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고서는 '본연의 나'를 스스로 입증할 도리가 없으며 또 이러한 스스로에 의한 입증이 아니고서는 언제나 맴돌면 맴돌수록 더욱 미혹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런즉 우리 자신에 대한, 아주 섬세하고도 치밀한 뿌리에 대한 조사야말로 바로 우리가 우리의 '올바른 실체[正實]'로 되돌아가는 밑천인 것이다." (<조선고서 간행의 의의>, 《동아일보》, 193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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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당이 말한 '본연의 나'는 일찍이 행촌 이암 선생이 말한 '천하만사가 먼저 나를 아는데 있다(先在知我)'에서의 '나(我)'요, 단재 선생이 말한 '아(我)와 비아의 투쟁'에서의 '아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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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의 정신, 정체성을 아는 것이 역사를 알아야하는 이유이며, 설령 몸과 나라를 빼앗겼어도 나와 나의 정신(정인보의 '얼'이며 박은식의 '국혼'이며 신채호의 '낭가사상'이며 문일평의 '조선심'이다)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다시 재생(再生)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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