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고대사자료11. 고죽국은 고조선의 후국이며, 상나라보다 청동문화가 앞선 나라다 글쓴이 이태수 날짜 2023-02-05

한국고대사 단편적 자료들고죽국은 고조선의 후국이며, 상나라보다 청동문화가 앞선 나라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고죽국(孤竹國)은 고조선의 후국(侯國)이며, 상나라보다 청동문화가 앞선 나라다

 

고죽국에 대한 인터넷의 설명

고죽국(孤竹國, 기원전 11세기~기원전 664)은 상주(商周)대부터 춘추시대 후기까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허베이성 탕산 시(河北省 唐山市)에 존재한 국가이다. 국성은 자(), 씨는 묵태(墨胎)이다. 백이와 숙제의 고사로 알려져 있고 기원전 664년에 제()에 의해 멸망했다. 수서(隋書) 배구전에는 고려(高句麗)는 본래 고죽국인데 주()가 기자(箕子)를 봉하여 조선(箕子朝鮮)이라 하였고, 한은 3(三郡)을 나누어 설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위키백과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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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과 주() 시대에 롼허[灤河] 유역을 중심으로 요서(遼西) 지역에 존재했던 제후국이다. 상을 건국한 탕왕(湯王) 때에 분봉(分封)되어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며, 왕족(王族)의 성()은 상 왕조와 마찬가지인 자()였으며, ()는 묵태(墨胎)라 하였다. 초기에는 국도(國都)를 허베이성[河北省] 루룽[盧龍] 인근으로 하였다가 영지(令支, 지금의 河北省 遷安)로 옮긴 것으로 여겨진다. 춘추시대에 서쪽으로 연(), 남쪽으로 제()와 맞닿아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산융(山戎)의 압박을 받았다. 기원전 664년 제()와 연()의 정벌로 멸망하였다. (두산백과 요약)

 

***참고: 인터넷에서는 고죽국을 상(=)을 건설한 탕왕 때 분봉된 상()의 제후국처럼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설명으로 보인다. 고죽국은 고조선의 후국으로 고추가(古鄒加)가 다스리던 나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고죽국의 성립연도는 BC 11세기가 아니라, BC 21세기로 보기도 한다.

고죽국(孤竹國)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보면 주무왕 시기인 BC 11세기로부터 BC 644년 까지 존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명예교수 신용하박사는 고죽국의 성립연도를 중국 황제(黃帝)의 하()나라(BC 2070BC 1600) 성립연도 보다도 다소 빠른 시기인 BC 21세기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는 고죽국이 은나라의 후국(侯國)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대로 은(: BC 16001028)의 후국이었다면 BC 16세기에 이미 고죽국이 있었다.

 

주무왕(周武王: BC ?1043)때 백이와 숙제가 고죽국의 왕자이었다는 기록을 보면 BC 11세기 때 고죽국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환단고기의 백이, 숙제 및 고죽국에 대한 기록

환단고개에는 고조선의 21세 소태단군(BC 1337-BC 1285) 당시 은()나라가 아니라, 조선의 후국(侯國)인 고죽국(孤竹國)의 왕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왕위를 사양하고 달아나 동해 쪽 물가에 살면서 스스로 밭을 일구어 먹고 살았다고 하여 고죽국이 고조선의 후국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시대 기록은 주 무왕 시대보다 다소 앞서고 있다.

 

고조선 22세 색불루(索弗婁)단군은 재위 20(BC 1266)에 이르러 후국(侯國)인 남국(藍國)이 자못 강성해져서 고죽국의 왕과 함께 모든 도적(중국 세력)을 쫓아 내셨다. 남쪽으로 수도를 옮겨 엄독홀에 머무르시니 그곳은 은()나라의 국경과 가까운 곳이었다(안경전역 환단고기 145p).”

 

“36세 단군인 매륵(買勒)단군 52(BC 653) 임금께서 병력을 보내 수유국(須庾國) 군대와 더불어 연()나라를 정벌하니 연나라가 제()나라에 위급을 고했다. 제나라가 대거 고죽(孤竹)으로 처들어오다가 아군의 복병을 만나자 화친을 구걸하고 물러갔다(戊辰五十二年 (買勒)帝 遣兵 與須臾兵 伐燕 燕人 告急於齊 齊人 大擧入孤竹 遇我伏兵 戰不利 乞和而去)(안경전역 환단고기 161p).”

 

***참고: 수유(須臾)는 기자(箕子)의 이름을 서여(胥餘) 또는 수유(須臾)라고 말했는데, 수유국은 기자의 후손이 세운 나라로 고조선의 후국(侯國)임을 보이고 있으며, 고죽국 역시 고조선의 후국(侯國)으로 환단고기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며, 제나라 관자(管子)BC 664년 고죽을 죽였다는 것과 달리 이보다 10년 후인 BC 653년 화친하고 물러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죽국의 위치

고죽국의 위치는? () 시대의 통전(通典)’ 북평군 평주조에서 평주는 지금의 노룡현(盧龍縣)이다. () 시대에는 고죽국이었다고 기록했다. 또한 통전영주(營州)조에서는 영주는 지금의 유성현(천진시 남쪽)이다. (:BC 16001028) 시대에는 고죽국지(孤竹國地)였다고 기록했다. 이것은 상·(·) 시대에 고죽국이 매우 강성하여 지금의 천진 지역으로부터 대릉하 유역 조양(朝陽) 지구도 영유했음을 기록한 것이었다.

 

***참고: 영주(營州)는 지금의 천진시 남쪽인 유성현(柳城縣)이라고 했고, 또 이곳이 고죽국(孤竹國)의 옛 땅이며, 평주가 바로 이곳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참고: 낙랑군은 위만조선의 왕검성인 험독(險瀆)에 있었는데 이 험독은 요령성 반금시 반산현 지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반산현은 지금의 반금시를 가르킨다.

 

험독현(險瀆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한나라가 설치했는데 후한은 그대로 했다. 응소가 조선왕 위만의 도읍이라고 했다. 물이 험해서 험독이라고 했다. 신찬은 왕험성이 낙랑군 패수 동쪽에 있다고 했다. 이것이 험독이다. 안사고는 신찬의 말이 맞다고 했다. 당시에 지금의 요녕성 반산현 경내의 해변가 땅이다.(漢置後漢因之. 應劭曰朝鮮王滿都也. 依水險故曰險瀆. 臣瓚曰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 此自是險瀆也. 師古曰瓚說是也. 當在今遼寧盤山縣境內濱海之地)“

 

수서 배구전(隋書) 배구전의 고죽국에 대한 기록과 조선현(朝鮮縣)의 위치

수서(隋書)67의 배구전(裵矩傳)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배구가 상소를 올려 말했다

"고려(高麗: 高句麗)의 땅은 본래 고죽국(孤竹國)의 땅입니다. 주나라 시대에 기자를 봉했는데 한나라 때 나뉘어 삼군이 되었으며, 진나라 때에 요동에 통합되었습니다. 지금은 신하가 아니게 되어 외부의 영역으로 구별되어 있는고로, 선제께서 마음에 들지 않으셨기에 오랫동안 정벌하고자 하셨습니다. 다만 양량(楊諒)이 못난 탓에, 출격했으나 공은 세우지 못했습니다. 폐하의 시대가 되었사온데, 어찌 그들을 정벌하지 않으시고 관과 요대의 지역을 야만스런 맥인들의 소굴로 두려 하시나이까. 지금 고구려의 사자가 돌궐에 가서 돌궐왕 계민을 만나 서로 나라끼리 합치기를 논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황제께서 걱정하실 일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

(矩因奏狀曰:「高麗之地本孤竹國也周代以之封於箕子漢世分為三郡晉氏亦統遼東今乃不臣別為外域故先帝疾焉欲征之久矣但以楊諒不肖師出無功當陛下之時安得不事使此冠帶之境仍為蠻貊之鄉乎今其使者朝于突厥親見啟民合國從化必懼皇靈之遠暢慮後伏之先亡脅令入朝當可致也。」)

 

수서’(隋書)의 고죽국에 대해서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고죽안시’(孤竹安市)에서 고죽국은 영평부(永平府)에 있다고 말했다. 영평부 자리가 기자조선이 있던 자리라는 뜻인데, ·청 때의 영평부는 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 루룽(盧龍)현이다. 청나라 때 역사지리학자 고조우(顧祖禹)가 편찬한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영평부 북쪽 40리에 한나라 낙랑군의 속현이었던 조선성(朝鮮城)이 있다고 말해서 영평부 자리가 기자조선의 도읍임을 밝혔다. 지금의 허베이성 루룽현(河北省 盧龍縣)이 옛 한나라 낙랑군 조선현 지역이라는 사료는 이외에도 많다

 

***참고: 수서(隋書) 배구전에는 고구려가 본래 고조선의 고죽국이고, 기자조선의 땅이며, ()나라가 삼군(三郡: 낙랑, 현도, 임둔을 지칭함)을 설치한 땅이라고 하였다. 이는 고죽국이 기자조선 땅으로 하북성 천진시, 당산시와 요령성 지역에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

 

***참고: ‘독사방여기요에 영평부(河北省 盧龍縣) 북쪽 40리에 한()나라 낙랑군의 속현이었던 조선성(朝鮮城)이 있다고 했는데, 조선성 즉 조선현(朝鮮縣)은 이병도나 식민사학자들이 말하는 평양이 아니라, 하북성 노룡현에 속해 있던 땅이다.

 

대명일통지의 고죽국 위치인 영평부와 평주 및 낙랑군이 동일지역이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평부永平府(현 하북성 노룡현) 조에는 군 이름인데 고죽이 옛 이름이다. 진나라 때는 북평이었고, 위나라 때 노룡이 되었다. …… 북연 때는 평주 및 낙랑군이었는데, 후위에서 낙랑군을 북평군으로 개칭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금의 하북성 노룡현이 고죽국이자 낙랑군이라는 뜻이다. 국어<제어齊語>에는 “(제환공이) 마침내 북쪽으로 산융을 정벌하고 지(令支)를 치고 고죽(孤竹)의 목을 베고 남쪽으로 돌아왔다.”라고 말한다. 산융, , 고죽은 모두 동이족 국가들이었다. 중국 학계는 현재 고죽국의 수도를 하북성 당산(唐山)시 난현(灤縣) 남쪽으로 보고 있다.

 

고죽국은 법령이 있었고, 청동기문화는 은(=)의 청동기보다 훨씬 앞선다.

고죽국은 어떠한 정치를 하던 고조선 후국(侯國)이었는가? 고죽국은 매우 이른 시기에 율령을 제정하여 통치한 율령국가였다. ‘서경에 고죽국 왕자 백이(伯夷)의 업적으로 법령을 제정하여 백성들을 (자의적) 형벌로부터 막았음을 든 것은 고죽국에서는 매우 일찍 율령에 의한 통치 행정이 시행되었음을 기록한 것이다.

고죽국에서는 청동기문화가 크게 발전했다. 현재 중국의 가장 오래된 황동(黃銅) 2점도 당산(唐山)에서 출토됐는데, 고죽국 청동기였다. 1973년에 고죽국 영토였던 요령성 객좌현 북동촌의 두 매장지에서 출토된 12개 청동기 가운데 한 예기(禮器)에는 고죽국의 아미(亞微)”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고죽국의 청동기임을 알려주는데,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청동기였고 상(=)의 청동기보다 빠르며, () 청동기의 원류가 된 것이었다

 

고죽국은 발해만 연안에 설치된 고조선의 후국으로서 고조선에서 파견된 고추가가 통치했다. 그 역사적 증거로는 BC 7세기 중엽에 고조선과 고중국이 국경 전쟁을 하게 됐는데, 중국 측 산동반도의 제() 환공(桓公)은 노((() 등과 연합국을 편성했다. 이에 대항하여 고조선 측은 고죽(孤竹)이 중심이 되어 불리지(弗離支, 또는 영지·令支산융(山戎도하(屠何) 등이 고조선 연합군을 편성하여, 고중국(, , ) 연합군에 대항하여 고조선을 방어했다.

 

이때 고죽국은 고중국 연합군에 대항해 고조선의 중심세력이었음이 고중국 측 문헌 관자(管子)’에 기록돼 있다. 이때 제의 환공에 대항해 싸운 고죽국 장군이 황화(黃花)였고, 고죽국 군주의 성씨는 묵() 씨였으며, 호칭은 고조선 고추가인 답리가(고대발음 다리가)였다.(신용하교수. 인류 5대문명인 고조선 문명 참조).

 

공자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의 고죽국과 싸운 관중에 대한 예찬

공자가 말했다. “관중이 아니면 우리는 (오랑캐처럼) 머리를 헤치고 왼편으로 옷을 매었으리니, 어찌 필부필부(평범한 사람)같이 알량한 절개를 위해서 도랑에서 스스로 목매어 알아주는 이 없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微管仲 吾其被髮左衽矣 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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