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7. 진시황이 동쪽의 조선을 경계로 쌓은 만리장성과 낙랑군수성현의 위치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2-01 |
한국고대사의 단편적 자료들⑦ 진시황이 동쪽의 조선을 경계로 쌓은 만리장성과 낙랑군 수성현의 위치-1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진시황이 동쪽의 조선을 경계로 쌓은 만리장성과 낙랑군 수성현의 위치
〇사기 진시황 본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진시황(재위 246-210년)은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상을 종식싴키고 마침내 BC 221년 중국을 통일한 후 스스로 자신이 삼황오제(三皇五帝)에 견줄 수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시황제(始皇帝)라 자칭했던 인물이다. 진시황은
“천하를 나누어 36개의 군으로 만들고 郡(군)에는 守(수)와 尉(위)와 監(감)을 두었다. 백성(民)을 黔首(검수)라고 부르도록 하였다. 영토는 동쪽으로 海(해:발해)와 朝鮮(조선)에 다다르고, 서쪽으로는 臨洮(림도)와 羌中(강중)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北嚮户(북향호)에 이르며, 북쪽으로는 황하(河)에 의지하여 요새(塞)로 하였고 隂山(음산)을 아울러 遼東(요동)까지이다
(史記, 卷六, 秦始皇本紀, 第六
分天下以為三十六郡, 郡置守 尉 監. 更名民曰黔首 地東至海曁朝鮮, 西至臨洮羌中, 南至北嚮户, 北據河為塞, 並隂山至遼東)
사기정의(史記正意)는 아래와 같이 주석하였다.
“바다는 발해 남쪽의 양주, 소주, 태주의 동쪽 바다를 말한다. 기(曁)는 ‘다다르다’의 뜻이다. (조선은) 동북쪽 조선국이다. 괄지지에 이르기를 ‘고구려 수도 평양성은 본래 한나라 낙랑군의 왕검성이다. 바로 고조선이다”
(海謂渤海南至楊,蘇,台等州之東海也 曁及也 東北朝鮮國 括地志云 高麗治平壤城 本漢樂浪君王險城 卽古朝鮮也)
***참고: 사기에 진시황 “영토가 동쪽으로는 바다(海)와 조선의 경계에 이르렀다”고 했는데, 진시황이 쌓은 만리장성의 동쪽은 조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괄지지에 “바다는 남쪽 양주에서 소주 태주 등의 동쪽 바다”라고 하였다. 이 설명은 진나라의 바다가 지금의 발해만 근처일 것으로 추정되고, 고조선의 영토는 현 중국의 하북성 일대까지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참고: 진나라의 영토가 음산(陰山)과 아울러 요동까지였다고 했는데, 당시의 요동은 진나라 장성의 안쪽임을 나타내거나 또는 경계 밖 조선의 땅 요동일 수 있다.
***참고: 괄지지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은 본래 한나라 낙랑군 왕검성이다. 바로 고조선이다”라고 한 것은 진장성 밖에 바로 왕검성이 있고, 이곳에 고구려의 수도 평양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평양의 위치에 대해서는 후술코자 한다.
〇진시황의 만리장성
진시황(재위 BC 246-210년간)은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상을 종식시키고 마침내 BC 221년 중국을 통일한 후 스스로 삼황오제(三皇五帝)와 같은 위치의 시황제(始皇帝)라고 자칭했던 인물이다. 연(燕)나라는 BC 300년 고조선을 침략하면서 반짝 발전하는 듯 했지만, 불과 80년 후에 진나라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다.
진나라 장성(長城)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기원전 214년 연(燕), 조(趙), 진(秦)의 3개국 장성을 하나로 이었는데, 역사에 ‘만리장성’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진시황은 BC 215년 갈석산에 올랐다고 하였다.
이후 한(漢), 위(魏), 수(隋), 명(明) 시기에도 장성은 끊임없이 축조됐다. 현존하는 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때에 건축한 것으로 길이 6700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의 만리장성은 1992년-2002년까지 대대적인 보수와 복원작업을 거친 것이다.
진나라의 동쪽 경계가 바다(海)와 조선에 이르렀다(地東至海曁朝鮮)고 한 내용은 당시 진나라의 동쪽 끝인 만리장성의 동쪽에 조선이 있었음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으며, 만리장성의 안쪽에 진나라 땅인 낙랑군과 수성현이 있었을 것이다.
진장성(秦長城)은 연나라 장성과 조나라 및 진나라의 장성을 하나로 연결하여 만든 장성이므로 진장성의 동쪽 끝과 연나라 장성의 동쪽 끝은 비슷한 위치가 아닐까 추정된다.
○ 사기(史記)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는 갈석산(碣石山)을 경계로 진장성이 시작되고 진장성의 시작인 수성현(遂城縣)은 즉 진장성 안쪽임을 나타낸다.
『사기(史記)』 『하본기(夏本紀)』에는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에 말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진나라 장성(長城)의 시발점이다(太康地理志云 樂浪遂城縣 有碣石山 長城起所)”라고 기록되어 있다.
태강지리지의 주석에“갈석산은 한나라 낙랑군 수성현에 있다. 장성이 이곳에서 시작된다. 지금 장성이 남아있고, 동쪽에는 요수(遼水: 난하)가 흘러서 고구려의 옛터가 지금도 남아 있는데 그곳으로 들어간다(碣石山 在漢樂浪郡 遂城縣 長城起於此山 今捻長城 東載遼水 而入高麗遺址猶存)”고 하였다. 태강연간은 AD 280-289년 사이 서진 무제 때의 연호이다.
AD 801년 편찬된『통전(通典)』에 다음과 같이 갈석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노룡은 한나라 비여현(肥如縣)으로 갈석산이 있다.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어 그 이름을 얻었다. 진 태강지지(晉太康地志)에 말하기를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갈석에서 일어났다고 하였는데, 지금 고구려의 옛 지경에 있으며, 이 갈석이 아니다(盧龍肥如縣 有碣石山 碣然而立在海旁故名地 晉太康地志云 秦築長城 所起自碣石 在今高麗舊界 非此碣石也).”
또 『통전』 변방에는
“갈석산은 한나라 낙랑군 수성현에 있다. 장성이 이 산에서 일어났다. 지금 그 장성이 남아있고, 동쪽으로 요수(遼水: 난하)를 끊고 고구려 옛땅으로 들어간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상서』에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로 들어간다‘는 문구를 살펴보면 우갈석은 황하(?)가 바다 근처에 다다르는 곳으로 지금의 북평군 남쪽 20여 리에 있다. 이곳은 곧 고구려 땅에 있는 좌갈석(左碣石)이다. 『안상서』에 이르기를 ’갈석을 오른쪽에 끼고 황하로 들어간다는 말은 우갈석이 황하 근처의 바다에 다다르는 곳으로 지금 북평군 남쪽 20리에 있다. 이곳은 곧 고구려의 땅 안에 좌갈석이다(碣石山在樂浪郡遂城縣 長城起於此山 今捻長城東截遼水而入高麗遺址猶存 按尙書云 夾右碣石入於河 右碣石卽河赴海處 在今北平郡南二十里 卽高麗中爲左碣石)
***참고: 태강지리지에 진장성이 낙랑군 수성현에 있는 갈석산에서 시작된다고 하였으므로 낙랑군 수성현은 진장성 안쪽의 진나라 땅으로 보아야 하며, 지금의 하북성 당산시로 비정된다.
***통전에 갈석산은 북평군 남쪽 20리에 있고 AD 801년 당시 옛 고구려 땅에 속한 갈석산이라고 하였는데, 수양제(재위 604-618)가 고구려를 침략하기 전, “고구려가 발해와 갈석 지간을 점령해 있다(崇取勃碣之間)”고 자복했던 점에 비추어 여수전쟁(麗隨戰爭) 당시 고구려 땅에 갈석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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