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대사자료4. 고조선은 팔조금법이 있었고, 화폐가 통용된 나라이었다 | 글쓴이 | 이태수 | 날짜 | 2023-01-28 |
한국고대사의 단편적 자료들④ 고조선은 팔조금법이 있었고, 화폐가 통용된 나라이었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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〇고조선은 팔조금법 등 법률로 통치되던 나라이었다.
전한서지리지(前漢書地理志)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되어 있는 범금팔조(犯禁八條)이 있다. 이 8조 중 3조의 내용만이 전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살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相殺, 以當時償殺).
2. 남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곡물로써 보상한다(相傷, 以穀償).
3.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소유주의 집에 잡혀들어가 노예가 됨이 원칙이나, 자속(自贖:배상)하려는 자는 50만 전을 내놓아야 한다(相盜, 男沒入爲其家奴, 女子爲婢, 欲自贖者人五十萬)
1번은 생명이 중시되던 사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2번은 고조선이 농업사회이었고, 사유 재산이 인정되는 사회였음을 알 수 있으며,
3번은 고조선이 일반인과 노비가 있는 신분 사회였으며, 화폐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도전(明刀錢)이 진개의 고조선 침략 이전 고조선 영토에서 발굴되고 발견되고 있는 것은 고조선의 영토와 명도전의 분포지역이 일치하고 있음을 보인다.
『환단고기 번한세가(桓檀古記 番韓世家)』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안경전역 환단고기 471p).
색불루단군 4년(BC 1282년)에 진조선(眞朝鮮)의 천왕께서 칙문을 전하였다....또 백성을 위하여 금팔조(禁八條)를 정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사람을 죽이면 즉시 사형에 처한다(相殺以當時償殺).
2, 상해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보상한다(相傷以穀償).
3, 도둑질 한 자 중에서 남자는 거두어들여 그 집의 노(奴: 남자종)로 삼고 여자는 비(婢: 여자종)로 삼는다(相盜者男沒爲其家奴女爲婢).
4, 소도를 훼손하는 자는 금고형에 처한다(毁蘇塗者禁錮).
5, 예의를 잃은 자는 군에 복역시킨다(失禮義者服軍).
6, 게으른 자는 부역에 동원시킨다(不動勞者徵公作).
7, 음란한 자는 태형으로 다스린다(邪淫者笞刑).
8, 남을 속인 자는 잘 타일러 방면한다(行詐欺者訓放).
***참고: 한서나 위지동이전에서는 기자 때 팔조금법이 정해졌다고 했으나, 환단고기에서는 고조선의 색불루단군 4년인 BC1282년 팔조금법을 칙문으로 전하셨다고 했다. 환단고기에는 한서지리지에서 빠뜨린 나머지 5개항이 들어있다(안경전역 환단고기 471p).
〇고조선은 명도전의 화폐가 통용된 나라이었다.
중국에서는 포전(布錢)이라는 화폐가 춘추전국시대의 전기인 기원전 8세기(BC 700-800년 경)부터 전국시대까지 약 500년간(BC 200-300년 경)까지 중국 전역에서 통용된 중국 최초의 주조 화폐로 기록되고 있다. 모양은 철(凸)자의 아래 부분이 파인 형태이었다.
도전(刀錢) 또는 명도전(明刀錢)은 칼모양의 화폐로 춘추전국시대 말기부터 한나라 초기에 통용된 것으로 지역은 고조선의 영토이었던 요동과 요서 및 하북지방에 널리 분포하고 있고다. 진개가 고조선을 침략하기 전의 고조선 영토는 하북지역인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와 요동군 지역이 모두 고조선 지역이었던 것이다. 동쪽의 끝인 요동군의 양평은 어데인가? 『後漢書 李賢의 註』에 의하면 “양평은 요동의 속현으로 금 평주 노룡현 서남에 있다”고 하였다. 노룡현은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이며, 이보다 서남쪽에 있는 곳은 하북성 당산시(唐山市) 부근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같은 기록을 미루어 보면 지금의 북경 지역도 고조선 지역으로 추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연나라의 수도이었던 계(薊: 천진시 북쪽에 있는 하북성 형태시) 이남에서는 명도전이 거의 발견되지 않으므로 연나라 화폐라 볼 수 없다. 명도전은 연나라와 이웃해 있던 조(趙)나라나 제(齊)나라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아서 이들 나라가 명도전에 의한 연나라와의 교역은 없었고, 연나라의 화폐가 아님을 증명한다.
한국민족대백과의 고고학 사전을 보면 “명도전은 대체로 BC 3-2세기(BC 201-101년)로 추정되는 시기에 요동과 서북한, 하북성 지역에 집중 분포된다고 한다. 서북한 지역에서는 BC 1세기(BC 1-100년) 이후의 오수전(五銖錢)과 함께 평양시 정백동 3호 무덤의 출토예가 알려져 있기도 하다”라고 하였는데(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고고학사전) 이는 잘못된 주장으로 보인다. 연나라가 진나라에게 멸망당한 것이 BC 222년이므로 BC 3-2세기(BC 201-101)는 연나라가 멸망 당한 이후의 일이며, BC 1세기(BC 1-100년)은 위만조선(BC 194-108) 시기에 해당되어 한나라 시기에 해당되므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고고학사전은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한국사학계는 명도전에 대해서 “전국시대 연나라(기원전 323-222년)에서 만들어진 청동제 화폐”라고 설명하고 있다. 약소국가이던 연나라가 진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지 약 70년 후이고, 진개가 죽은 지 57년 후인 BC 222년 진(秦)나라에 멸망했는데, 그동한 만주 지역과 한반도 및 고조선으로부터 빼앗은 하북지역인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군 지역에 걸쳐 엄청난 명도전을 사용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한국사학계는 잘못된 주장을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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