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고대사자료83-1. 낙랑군조선현은 진황도시 부근, 이병도란 놈이 말한 평양이 아니다. 이병도는 고대사를 망친놈 글쓴이 이태수 날짜 2023-03-12

한국고대사 자료들-83-1. 낙랑군 조선현은 이병도란놈이 말한 평양이 아니고, 진황도시 부근이었다. 이병도는 한국고대사를 망친놈이다.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낙랑군과 조선현은 이병도가 말한 평양이 아니고, 진황도시, 당산시 부근이었다.

 

○『진서(晉書)지리지의 14 진지(晉志) 4 낙랑군(樂浪郡)편을 보면

"낙랑군은 한나라가 세웠고 6개의 현을 다스리는데. 호수는 3700이며 조선현은 주나라 기자가 책봉된 땅이다. 둔유, 혼미, 수성현(진시황의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시작된 곳이다), 누방, 사망현이 있다

(樂浪郡 漢置. 統縣六, 戶三千七百. 朝鮮(周封箕子地) 屯有 渾彌 遂城(秦築長城之所起) 鏤方 駟望"라고 적고있다.

 

***참고: 진서(晉書)지리지의 낙랑군 편에는 낙랑군에 수성현이 있고 이 현은 진장성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조선(朝鮮: 기자를 책봉한 땅) 둔유(屯有), 혼미(渾彌), 수성(遂城: 진장성 축조가 시작된 곳), 누방(鏤方), 사방(駟望)6개 현()이 있었다고 하였다.

 

***참고: 낙랑군의 조선현(朝鮮縣)은 아래의 수서지리지(隋書地理志)에 노룡현 지역이고, 북평군에 속하기도 하였으며, 비여현에 편입되기도 한 지역이다.

 

○『수서 지리지(隋書地理志)의 북평군

"북평군(北平郡). 옛날에 평주에 설치했었다. 다스리는 현은 1개이고 가구수는 2,269이다.

 

노룡현(盧龍縣). 옛날에는 북평군(北平郡)을 두었었는데 신창현(新昌)과 조선현(朝鮮) 2개의 현을 다스렸다. 북제(北齊)에서는 조선현을 없애고 신창현으로 편입시켰고 또한 료서군의 해양현을 없애고 비여현(肥如)으로 편입시켰다.

 

개황(開皇) 6년에 또한 비여현(肥如)을 없애고 신창현(新昌)으로 편입시켰다가 18년에 이름을 로룡현(盧龍)으로 바꾸었다. 대업(大業) 초에 북평군(北平郡)을 설치하였다. 장성(長城)이 있다. 관관(闗官)이 있다. 림유궁(臨渝宮)이 있다. 복주산(覆舟山)이 있다. 갈석(碣石)이 있다. 현수(玄水)와 로수(盧水)와 온수(溫水: 열수(湼水) 윤수(閏水)와 룡선수(龍鮮水)와 신량수(臣梁水)가 있다. 바다가 있다."

 

( ????수서(隋書)????卷第30 地理志 )

 

(北平郡 舊置平州. 統縣一, 戶二千二百六十九

盧龍 舊置北平郡, 領新昌朝鮮二縣. 後齊省朝鮮入新昌, 又省遼西郡幷所

 

領海陽縣入肥如. 開皇六年又省肥如入新昌, 十八年改名盧龍. 大業初置北平郡.

 

有長城. 有關官. 有臨渝宮. 有覆舟山. 有碣石. 有玄水盧水溫水(溫水

原作 , 據水經一四濡水注改). 閏水龍鮮水巨梁水. 巨梁水(原作 , 據水經一四鮑邱水注改). 有海.

 

***참고: 북평군에는 노룡현이 있었는데, 신창현과 조선현을 다스렸고, 노룡현은 신창현, 비여현, 다시 수양제 18년 노룡현이 되었다. 갈석산이 있었고 장성도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북평군 노룡현은 지금의 진황도시 노룡현이다. 수양제 초기에는 이 노룡현에 북평군을 설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통전(通典)> 178, 주군8, 古冀州 , 盧龍縣을 보면,

노룡(盧龍)은 한나라() 비여현이며, 갈석산에 있다. 우뚝 솟은 돌이 서 있는데 바다에 의지해 있으니 고로 이름을 그리 한 것이다. ()나라 태강지리지도 함께 진나라가 장성을 축조했는데 갈석산으로부터 출발점을 삼았다고 적고 있는데, 지금 고려의 옛 경계에 있다고 한다. 이 갈석과는 다른 것이다.

 

盧龍 漢 肥如縣有碣石山 碣石而立 在海旁, 故名之, 晉太康地志同 秦築長城 所起自碣石, 在今高麗舊界, 非此碣石也>

 

***참고: 노룡현에는 갈석산이 있고, 이 갈석산은 태강지리지에 진나라가 장성을 축조한 출발점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 기록된 노룡현은 지금의 진황도시 노룡이다.

 

<통전(通典)> 186, 邊方2, 東夷 下, 高句麗)에는,

 

갈석산이 낙랑군 수성현에 있다. 장성이 이 산에서 일어난다. 지금 그 증거로 장성이 동쪽으로 요수를 넘어서 고려 땅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유적이 존재 하고있다.

 

(碣石山 在漢樂浪郡遂城縣 長城起於此山. 今騐 長城東戴遼水 而入高麗 遺址猶存).라고 기록하고 있다.

 

***참고: 갈석산은 낙랑군 수성현에 있다고 하였으며, 진장성(만리장성)이 이 갈석산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에 요수(지금의 灤河)가 장성의 동쪽을 지나고 있고, 고구려의 땅으로 들어갔고, 그 유적지가 남아 있다고 하였다.

 

○『사기집해(集解)에서는,

집해서광이 말하기를 창려에 험독현이 있다. 색은에 험독현이 있다 색은에 위소가 말하기를 옛 고을의 이름이다. 서광이 말하기를 창려에 험독현이 있는데, 응소가 주를 달기를 지리지의 요동 험독현은 조선왕의 옛 도읍이다. 신찬이 말하기를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현의 동쪽에 있다.

 

(集解徐廣曰 昌黎有險瀆縣也 索隱韋昭云 古邑名 徐廣曰 昌黎有險凟縣 廣劭注 地理志遼東險瀆縣 朝鮮王舊都 臣瓚云 王儉城在樂浪郡浿水之東).

 

위만조선의 수도가 요동군 험독현에 설치되었다고 했는데,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의 험독현(險瀆縣) 조에는 당시 광령현(廣寜縣) 동남쪽의 바다 가까운 곳이라고 하였다(險瀆故城 在今廣寜縣東南.....濱海之地).

 

***참고: 응소의 집해에서 창려가 험독현이다라고 했고, 서광도 험독이 조선왕의 도읍지이고, 낙랑군 패수(조백하)의 동쪽에 있었다라고 했다. 대청일통지의 험독의 왕험성도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창려현 지역으로 비정한다. 왕검성의 위치는 하북성 진황도시 창려현 외에도 신채호의 경우 개평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의 조선현 창려현 서남쪽 노룡현 동쪽 지역임을 나타낸다

조선현(朝鮮縣)

한나라가 설치했는데 후한과 진나라는 그대로 했다.(괄지지)고려 왕험성이고 즉 고 조선이다.왕험성은 지금의 평양이다. 후위가 조선민을 옮겼다는 바로 그곳인데 조선현을 설치했다. 북제 때는 성으로 했는데 옛 성이 지금 직예 노룡현 동쪽에 있다.(漢置. 後漢及晉因之. (括地志)高麗王險城. 卽古朝鮮王險城卽今平壤. 後魏徙朝鮮民於此. 置朝鮮縣. 北齊省. 故城在今直隸盧龍縣東)“

 

사고전서(四庫全書) 18을 보면

 

평주노룡현에 갈석산이 있다(通典)고 하였고, 갈석산의 창려현 서남쪽 50리 떨어져 있고, 바다에서 30리 떨어져 있다(明通志)고 하였는데, 이는 진황도시 창려현에서 서남쪽으로 50리 떨어져 있는 지역이고, 평주 노룡현에 속한 지역임을 나타낸 것이다.

 

독사방여기요(讀史方與記要)에 기록된 내용은

섭하가 조선비왕 장을 찔러죽이고 도망친 새()가 평주 유림관(楡林關)이라고 하였는데,

 

유림관(楡林關)은 산해관(山海關) 서쪽 40지점이고, 일명 유관(楡關)으로 대저 번융(蕃戎)을 제()하여 요해(要害)에 웅거한 것이 실로 유주(幽州)와 평주(平州)사이의 천험(天險)이다라고 하였으므로, 지금의 산해관 서쪽이므로 당산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XXX가 주장하는 청천강에서 섭하가 조선비왕 장을 찔러죽이고 도망칠 곳이 아니다.

 

결론

이상의 기록들을 검토하면, XXX 이병도란 자가 주장한 낙랑군=평양, 낙랑군 치소인 조선현=평양이라는 거짓된 주장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위의 기록에 평주 노룡현 지역에 낙랑군 조선현이 있었고, 진장성이 시작된 진황도시와 당산시의 갈석산 지역에 낙랑군 수성현이 분명히 있었다. 또 낙랑의 운장(雲鄣)은 만리장성의 안쪽과 북경의 북쪽 조하(潮河) 사이의 지역이 확실하다.

 

위만이 연나라에서 건너온 패수(浿水)는 북경 북쪽을 흐르는 조백하이며, XXX 이병도나 XXX 이병도를 추종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청천강이 결코 아니다. 패수를 건너 연나라와 제나라 사람도 위만조선으로 피난, 망명하였으며, 조선현과 왕검성은 진황도시 창려현에서 서남쪽 50리 떨어져 있고, 역시 진황도시 노룡현의 동쪽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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