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매국노 이병도는 진서의 한사군을 한반도 내에 있다고 왜곡한 놈이다

2021.10.17 | 조회 312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는 진서(晉書)의 한사군을 한반도내에 있다고 왜곡한 놈이다.

 

진서(晉書)에 나타난 한사군은

1)낙랑군(樂浪郡)에 속한 2) 朝鮮조선, 3) 屯有둔유, 4) 渾彌혼미, 5) 遂城수성, 6)鏤方누방, 7) 駟望사망의 7개 군현(郡縣)이 있었고

1) 대방군(帶方郡)소속의 현에는 2)列口열구, 3) 長岑장잠, 4) 提奚제해, 5) 含資함자. 6) 冥海명해, 7)呑列탄열 7개 군현(郡縣)이 있었다.

 

이들 낙랑군과 대방군 소속 군현들은 사실상 요동지방(遼東地方)의 지배자가 된 연()의 공손강(公孫康)은 후한(後漢)의 헌제(獻帝) 건안 연간(建安年間 : 196220)에 낙랑군 소속 둔유현(屯有縣) 이남의 땅을 떼어서 새로 대방군을 설치하였다.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는

건안(建安)연간(AD 196-220) 중에 공손강은 둔유현 이남 황폐한 땅에 대방군을 설치하고 공손모와 장창 등을 보내어 유민을 수집하고 병사를 일으켜 한.예를 정벌하니 옛 주민들이 점차 모여들었다. 이후 왜와 한에 관한 일들을 대방군에 속하게 하였다.”

(建安中 公孫康 分屯有縣 以南 荒地 爲帶方郡 遣公孫模 張敞等 收集遺民 與兵伐韓濊 舊民稍出 是後倭韓 遂屬帶方)는 구절을 인용하여,

 

공손강이 새로 만든 대방군에는 열구(列口), 남신(南新), 장잠(長岑), 제해(提奚), 함자(含資), 해명(海冥) 7개 군현을 포함하여 관할하면서 치소를 대방현에 두었다.”는 내용에서

 

둔유(屯有)를 황해도 황주라 하고,

열구(列口)를 황해도 은율,

장잠(長岑)을 황해도 풍천,

함자(含資)를 황해도 서흥,

제해(提奚)는 미상

해명(海冥)을 황해도 해주라고 비정하여

대방이 황해도에 있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또 현재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 동남 문정면에 있는 속칭 당토성(唐土城)을 대방군(帶方郡)의 유지로 추정한다고 하였다.

 

이병도란 자는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인데, 영양왕 22(AD 611) 수양제는 고구려 침략 시에 수양제 침략 전격로를 살펴보자.

 

진서(晉書)에 기록된 치소인

황해도 사리원이라고 한 대방군(帶方郡:12군의11번째)을 비롯하여

황해도 풍천이라고 한 장잠은 (122번째),

미상이라고 한 제해는 (126번째),

황해도 서흥이라고 한 함자는 (122번째),

황해도 해주라고 한 명해는 (123번째)군현들이

모두 수나라에서 평양으로 진격하는 고구려 땅에 있었다.

수양제 진격로에 표시되지 않은 7) 탄열(呑列)도 부근 지역일 것이므로 모두 대륙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진서(晉書)1)낙랑군(樂浪郡) 소속이라고 한 2) 朝鮮조선, 3) 屯有둔유, 4) 渾彌혼미, 5) 遂城수성, 6)鏤方누방, 7) 駟望사망의 7개 군현(郡縣)

낙랑(樂浪)은 좌1212번째에

조선(朝鮮)은 좌1210번째에

수성(遂城)은 탁군태수 최홍승의 진격로에 있었다.

 

이뿐아니라, 124번째는 개마(식민사학자들은 한반도 내에 있다고 한다),

7번째 요동,

8번째 현도,

11번째 옥저, 등도 모두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고, 압록수(鴨淥水: 지금의 압록강이 아니라 대륙에 있었다) 서쪽에 위치한 땅인 것이다.

 

수양제의 침략경로를 다시 살펴보자

수양제는 좌12(左十二軍)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이후 수양제가 1133800명으로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이때 좌익위대장군 우문술은 부여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우중문은 낙랑도로 나오고 좌효위대장군 형원항은 요동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설세웅은 옥저도로 나오고, 우둔위장군 신세웅은 현도도로 나오고, 우어위장근 장근은 양평도로 나오고, 우무후장군 조효재는 갈석도로 나오고, 탁군태수 최홍승은 수성도로 나오고 검교우어위호분낭장 위문승은 증지도로 나와 모두 압록수(鴨淥水) 서쪽에 모였다.

 

이상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명명백백한 지명이다.

 

그러나 이병도란 자는 이같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역사적 기록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병도는 진번군의 위치가 요동이나 고구려 지역에 있었다는 북방설에 대해 일소(一笑)에 붙이고도 남음이 있다고 일축하면서 진번군=대방군=황해·경기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근거로 든 것은 고대 사료가 아니라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중국학자 양수경(楊守敬: 1839~1915)<회명헌고>(晦明軒稿)에서 대방군의 7개 현을 옛 진번군의 잔현(殘縣)이라고 주장한 것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아무런 사료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양수경의 주장에 대해 이병도는 어떻든 대방 7현을 고() 진번의 잔현(殘縣)으로 추단(推斷: 추측해서 단정함)한 것은 틀림없는 탁견으로 진번 문제 해결에 한 서광을 비추어주었다라고 극찬했다.(<한국고대사연구> 114)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로서 어찌하여 수나라가 평양을 향해 침략하는 경로에 위치해 있었던 대방(帶方郡:12군의11번째)을 비롯하여 장잠(122번째),제해(126번째),함자(122번째),명해(123번째)군현들이 모두 수나라에서 평양으로 진격하는 고구려 땅에 있었음을 전혀 무시하고 대방과 그 속현들을 황해도와 경기도라고 주장하는 한국사 매국노짓을 서슴치 않았단 말인가?

 

이병도란 자는 은율군은 고구려 시대의 율구(栗口)’ 혹은 율천(栗川)’이니 율구(栗口)는 열구(列口)와 음이 거의 같고 율천(栗川)도 열수(列水)의 이사(異寫)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열구현이 오늘의 은율 부근이라 함에는 이론(異論)이 없을 것이다.”(이병도, ‘진번군고’, <한국고대사연구>)

 

이병도는 진번군의 위치가 요동이나 고구려 지역에 있었다는 북방설에 대해 일소(一笑)에 붙이고도 남음이 있다고 일축하면서 진번군=대방군=황해·경기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근거로 든 것은 고대 사료가 아니라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중국학자 양수경(楊守敬: 1839~1915)<회명헌고>(晦明軒稿)에서 대방군의 7개 현을 옛 진번군의 잔현(殘縣)이라고 주장한 것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아무런 사료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양수경의 주장에 대해 이병도는 어떻든 대방 7현을 고() 진번의 잔현(殘縣)으로 추단(推斷: 추측해서 단정함)한 것은 틀림없는 탁견으로 진번 문제 해결에 한 서광을 비추어주었다라고 극찬했다.(<한국고대사연구> 114)

 

이병도란 한국사매국노는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번역하여 책까지 낸 놈이다. 또 이병도는 와세다대학 졸업논문으로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제출했다고 하는 자이므로 수양제의 침략경로를 분명히 보고 알았을 것임에도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낙랑이 한반도 내에 있고, 대방이 황해도에 있었다는 한국사매국노 짓을 서슴치 않았다.

 

한국사를 좀먹은 좀벌레보다 못한 한국사매국노 이병도의 주장이나 이병도의 주장을 신주모시듯 모시면서 아직도 한국사매국노 짓을 서슴치 않는 벌레보다 못한 무리들은 반드시 박멸될 날이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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