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매국노 이병도의 낙랑군치소 조선현=평양은 폐기되어야 한다

2021.10.13 | 조회 17

한국사매국노 이병도의 낙랑군치소 조선현=평양은 폐기되어야 한다.

 

이병도는 패수=청천강북지류, 열수=대동강, 대수=재령강, 낙랑군 조선현=평양을 주장하고 있다.

 

식민사학자들은 이병도의 주장에 대해 이 연구가 본격으로 이루어진 진짜 시기는 사실상 조선시대부터 나오던 학설이다. 일본제국은 조선 학자들의 성과를 가로채었을 뿐. 아래 표에 나오듯 조선시대 중기부터 낙랑군과 관련된 지명을 추론하였다.라고 하면서 일본사람들의 주장이 정말로 타당한 주장이며, 틀림없고 믿을 수 있는 주장이라고 보증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왜놈들의 주장이나 한국사매국노 이병도의 주장은 만고불변,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참으로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나 그 추종자들의 이같은 주장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백겸

1552

-1615

홍여하

1620

-1674

한진서

1777

-?

증보문헌비고

1908

정약용

1762

-1836

이병도

1986

-1989

패수

청천강

청천강

대동강

 

대동강

청천강

북지류

열수

한강

한강

한강

한강

한강

대동강

대수

대동강

 

임진강

임진강

임진강

재령강

낙랑군
(조선현)

평양

평양

평양

평양

평양

평양

 

그러나 영양왕 22(AD 611) 수양제는 고구려를 침략하기 위해서

12(左十二軍)1) 누방, 2) 장잠, 3) 해명,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이병도라는 한국사매국노가 낙랑군의 치소가 조선현이고 조선현은 평양에 있다고 거짓말을 한 조선현이 수양제의 좌1210번째 침략경로에 있었고, 황해도 봉산군 당토성에 있다고 주장한 대방군은 수양제의 침략경로 우1211번째 있었으며, 황해도 풍천이라고 주장한 장잠(長岑)은 좌122번째에, 해주라고 주장한 해명(海冥)은 좌123번째에, 황해도 서흥이라고 주장한 함자(含資)은 우122번째에, 기타 제해(提奚)는 우126번째 수양제의 평양을 향한 침략경로에 있었다. 이들은 압록수(鴨淥水) 서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며, 황해도에 있는 땅이 아니다.

 

더구나 한국사매국노 이병도가 함경도 덕원이라고 주장한 동이는 수양제 우12군의 10번째 침략경로에 있었고, 함흥지방이라고 주장한 옥저는 수양제의 침략경로 좌 1211번째에 있었고, 식민사학자, 이병도를 추종하는 한국사매국노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낙랑은 지금의 평양에 있지 않고 수양제 침략경로 좌12군의 12번째에 있었다. 치소(治所)의 위치는 바뀌는 것이지만 지명은 한국사매국노들의 주장처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수양제 침략군이 황해도에 있는 조선이나 대방, 장잠, 해명, 함자, 제해 등을 통과해서 압록수에 모인 것이 아니다.

 

이병도란 자는 와세다대학 졸업논문을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인데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는 땅들을 모두 황해도라고 맹랑한 주장을 하여 한국사매국노 짓을 하였으며,, 아직도 그 한국사매국노를 추정하는 자들이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신채호는 개마현 왕검성을 요령성 개주시 및 해성시로 보았다.

왕검성이 위치했던 개평은 지금의 요령반도 중간의 개주(蓋州)시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평양패수고에서 요령성의 개주시(蓋州市: 蓋平) 및 해성시(海城市)를 왕검성 자리라고 보았고 위당 정인보(鄭寅普)1946조선사연구 상()’에서 낙랑군 조선현은 지금 평양과 원래 무관하다면서 신채호처럼 해성현을 왕검성 자리라고 보았다.

 

결론

평양 왕검성의 위치에 대해서 여러 가지의 설이 있고, 장수왕 이후에는 지금의 평양이 평양성으로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의 평양성은 개마대산(蓋馬大山: 지금의 대흥안령산맥이나 노호얼산맥일 가능성이 높다) 동쪽의 현도군(玄菟郡) 개마현(蓋馬縣)에 위치한 왕검성지(王儉城址) 평양이다.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

東 沃 沮 在 高 句 驪 蓋 馬 大 山 之 東[] 東 濱 大 海北 與 挹 婁夫 余南 與 濊 貊 接其 地 東 西, 南 北 長[] 可折方千里.土肥美,背山向海,宜五穀,善田種,

[]蓋馬,縣名,屬玄菟郡.其山在今平壤城西.平壤即王險城也』〔개마는 현의 이름으로 현도군에 속한다. 그 산: 개마대산(蓋馬大山)을 말한다.은 평양성(平壤城) (西)쪽에 있다. 평양은 곧 왕검성(王 儉 城)이다.라는 기록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현도군(玄菟郡)은 삼국사기 보장왕조에 기록된 바와 같이 당나라 장수 이적이 요하를 건넌 후 처음 고구려군과 전투를 벌인 장소로 요동성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해 있다.

 

왜놈들이나 이병도 같은 한국사 매국노 이병도나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를 추종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압록강 상중류에 걸쳐서 현도군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보장왕 조에 나온 당나라 이세적이 요수(遼水)를 건너 바로 고구려와 싸운 땅이 현도이며, 현도군의 속현인 개마현의 평양은 요수(遼水) 부근 요령성 개평(蓋平)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이병도같은 한국사매국노가 주장한 낙랑군=조선현=평양의 새빨간 거짓말 학설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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