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5대 모본왕은 상곡, 어양, 북평, 태원을 침략하고 싸웠다

2021.10.10 | 조회 21

고구려 5대 모본왕은 상곡, 어양, 북평, 태원을 침략하고 싸웠다.

 

고구려 제5대 모본왕 2(AD 49) 고구려가 한()나라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습격한 곳은 어데인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고구려 모본왕 기사를 보자제5대 모본왕(慕本王) 2(AD 49)에는 고구려가 장수와 군대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습격하였다. 그러나 요동태수(遼東太守) 채동이 은혜와 신의로 모시겠다고 하였으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慕本王 二年春 遣將 襲漢 北平 漁陽 上谷 太原 而遼東太守 蔡彤 以恩信 侍之 乃復和親)”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30a0b265.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60pixel, 세로 720pixel

서한도편 백도백과(西漢圖片 百度百科)에 중국인들이 표시한 북평군

 

서한도편 백도백과(西漢圖片 百度百科)에 중국인들이 표시한 북평군(右北平郡)과 어양군, 상곡군의 지도를 보라. 이곳은 한반도 내에 있거나 또는 압록강 주변에 있는 곳이 아니라,

 

어양(漁陽)은 지금의 북경시(北京市) 동쪽이다. 이 지도는 지금 중국의 북경을 넘어서 훨씬 남쪽의 석가장시를 포함하며, 상곡은 진나라 때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연()나라의 북부지방이다. 사기(史記)에는 상곡을 탁록지역이라고 한다.

 

또 태원(太原)은 용성(龍城)이라고 불렸던 지역으로 북연(北燕)의 수도(首都)이었던 지역이며, 지금 산서성(山西城)의 성도이다. 중국인이 현대의 서한도편 백도백과(西漢圖片 百度百科)에 분명히 표시하고 있는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이 중국 내륙지방에 있었음을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이다.

 

6대 태조대왕 ”3년에는 춘이월에 요서(遼西)10개의 성을 축조하고 한나라의 침략에 대비하였다.(太祖大王 三年 春二月 築遼西 十城 以備漢兵)“라고 하였고,

 

태조대왕 53(AD 102) 왕이 장수와 군졸을 한나라 요동에 진입시켜서 요동의 6개현을 약탈하였다. 요동태수 경기가 군사를 동원하여 항거하니 고구려의 왕군이 대패하였다(太祖大王 五十三年 王遣將入 遼東 奪掠六縣 太守耿夔 出兵拒之 王軍大敗)” 라고 하였는데,

 

태조대왕 때 고구려 군이 한나라에 군대를 보내 침략한 곳은 서한도편 백도백과(西漢圖片 百度百科)에 분명히 표시되어 있는 우북평군과 요동군 사이에 위치한 요서군(遼西郡)의 땅이다.

 

그러나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는 삼국사기를 번역 출간한 놈이면서도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이 중국의 대륙 땅에 있었고, 요서군이 중국의 우북평군과 요동군의 사이에 있는 땅임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사실을 모두 숨기고 전혀 인정하지 않고, 한사군의 한반도설을 주장한 놈이다.

 

이병도의 낙랑군치소 조선현=평양은 한국사매국노적 주장이다.

 

참으로 한국사매국노 이병도의 낙랑군 조선현=평양, 패수 청천강 북지류, 열수=대동강, 대수=재령강의 주장이나 한사군 한반도설은 옳지 않다.

 

 

한백겸

1552

-1615

홍여하

1620

-1674

한진서

1777

-?

증보문헌비고

1908

정약용

1762

-1836

이병도

1986

-1989

패수

청천강

청천강

대동강

 

대동강

청천강

북지류

열수

한강

한강

한강

한강

한강

대동강

대수

대동강

 

임진강

임진강

임진강

재령강

낙랑군
(조선현)

평양

평양

평양

평양

평양

평양

 

식민사학자들은 이병도의 주장에 대해 이 연구가 본격으로 이루어진 진짜 시기는 사실상 조선시대부터 나오던 학설이다. 일본제국은 조선 학자들의 성과를 가로채었을 뿐. 아래 표에 나오듯 조선시대 중기부터 낙랑군과 관련된 지명을 추론하였다.”라고 하면서 일본사람들의 주장이 정말로 타당한 주장이며, 틀림없고 믿을 수 있는 주장이라고 보증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왜놈들의 주장이나 한국사매국노 이병도의 주장은 만고불변,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참으로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나 그 추종자들의 이같은 주장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덕일 설에 대한 식민사학자들의 비판식민사학자들은 아래와 같이 역사학자 이덕일의 주장을 매우 신랄히 비판하고 있다.

 

이덕일은 식민사학자들에게 '한사군'은 일종의 메시아다. 요즘은 한사군 대신에 한군현 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마치 자신들이 식민지배 찬양 논리를 극복한 것 처럼 말 장난을 한다. (……)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사군은 한반도 북부에 있어야 한다. 실제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는 평양 지역이 아니라 하북성 노룡현 일대이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덕일에 대해서 식민사학자들은 왜놈들의 주장이 타당하며, 한백겸, 홍여하, 한진서, 증보문헌비고, 정약용도 이병도와 같이 낙랑군 조선현이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덕일에 대해서 신랄히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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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양왕 22(AD 611) 수양제는 고구려를 침략하기 위해서좌12(左十二軍)1) 누방, 2) 장잠, 3) 해명,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이병도라는 한국사매국노가 낙랑군의 치소가 조선현이고 조선현은 평양에 있다고 거짓말을 한 조선현이 수양제의 좌1210번째 침략경로에 있었고,

황해도 봉산군 당토성에 있다고 주장한 대방군은 수양제의 침략경로 우1211번째 있었으며,

황해도 풍천이라고 주장한 장잠(長岑)은 좌122번째에,

해주라고 주장한 해명(海冥)은 좌123번째에,

황해도 서흥이라고 주장한 함자(含資)은 우122번째에,

기타 제해(提奚)는 우126번째에

평양이라고 주장한 낙랑은 좌1212번째 수양제의 평양을 향한 침략경로에 있었다.

 

이들은 압록수(鴨淥水) 서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며, 한국사매국노 이병도가 말하는 황해도에 있는 땅이 아니다. 수양제 침략군이 황해도에 있는 조선이나 대방, 장잠, 해명, 함자, 제해, 낙랑 등을 통과해서 압록수에 모인 것이 아니다.

 

이병도란 자는 와세다대학 졸업논문을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인데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는 땅들을 모두 황해도라고 맹랑한 주장을 하여 한국사매국노 짓을 하였으며, 아직도 그 한국사매국노를 추정하는 자들이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매국노들아, 너희들은 고구려 모본왕의 한나라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습격한 곳을 어떻게 허황된 거짓말로 변명할 것이며, 고구려 태조대왕의 요서 10성 신축과 한의 요동군 6현 침략을 어떻게 거짓말로 변명할 수 있겠는가?

 

한국인의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제 한반도 내 한사군설의 거짓된 주장을 폐기하는데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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