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왕검성은 현도군 개마현, 요령성 개주시이며,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

2021.10.09 | 조회 11

평양왕검성은 현도군 개마현, 요령성 개주시이며,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 평양은 요하 부근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東 沃 沮 在 高 句 驪 蓋 馬 大 山 之 東[] 東 濱 大 海北 與 挹 婁夫 余南 與 濊 貊 接其 地 東 西, 南 北 長[] 可折方千里.土肥美,背山向海,宜五穀,善田種,

 

동옥저(東沃沮)”고구려(高句驪) 개마대산(蓋馬大山) 동쪽에 있다.동쪽으로 큰 바다(. )에 림하고, 북쪽으로 읍루(挹婁)와 부여(夫余)가 있으며, 남으로 예맥(濊貊)이 접하였다. 그 땅은 동서가 좁고 남북은 길다. 사방 가히 천리(千里)이다. 땅은 기름지고 좋으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고, 마땅히 오곡이 있고, 밭농사도 좋다.

[] 蓋馬,縣名,屬玄菟郡.其山在今平壤城西.平壤即王險城也』〔개마는 현의 이름으로 현도군에 속한다. 그 산: 개마대산(蓋馬大山)을 말한다.은 평양성(平壤城) (西)쪽에 있다. 평양은 곧 왕검성(王 儉 城)이다.

 

위의 설명에서 볼 수 있느시 개마(蓋馬)에 대한 설명 중에 개마는 현도군(玄菟郡)에 속한 땅일 뿐 아니라 이곳이 곧 평양와검성(平壤王險城)이라고 했으므로 현도군(玄菟郡)의 위치만 정확히 안다면 평양왕검성의 위치도 정확히 알 수 있다.

 

현도군(玄菟郡)의 위치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보장왕 3(AD 644) 당태종은 유주와 계주 등지를 순행하면서 고구려 연개소문의 죄를 요동과 갈석에서 묻겠다고 하면서 1차 고구려 정벌계획을 밝힌다. 이듬해(AD 645),

“<四年 夏四月 世勣 自通定 濟遼水 至玄菟 我城邑大駭 皆閉門自守....五月城陷 男女八千口沒焉 李世勣 進至遼東城下.> (4년 여름철 4월 이세적은 요수를 건너서 현도에 이르렀다. 고루려의 성읍주민은 크게 놀라 성문을 닫고 수비에 들어 갔다......오월 성이 함락되고 남녀 8천명이 모두 죽었다. 이세적은 더 나아가 요동성 아리에 이르렀다)”

 

위의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현도는 요하를 건넌 다음 고구려의 현도성에 다다른 것이며, 이후 진군한 요동성과의 중간에 위치한 지역이다. 다시 말해서 요하와 요동성의 중간에 현도성(玄菟城)이 위치해 있다. 또 개마현(蓋馬縣)이나 개마대산(蓋馬大山)은 현도군에 소속된 것이므로 요하를 건너 존재하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평양 왕검성은 기록에 분명히 표시되어 있드시 요하를 지나 요동성에 이르기 전에 위치되었던 현도군의 소속현 개마에 위치해 있었고, 현도와 가까운 위치이며, 결코 지금의 평양은 아니다.

 

이병도 같은 한국사 매국노가 주장하는 압록강 상중류 현도 존치설은 한사군을 반도 내에 집어넣기 위한 매국노적 주장이다.

 

현도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수없이 나오며, 요동지방에서 중국과 싸우던 지역임이 분명하다.

 

평양에 대한 다른 기록들

-“11대 동천왕 21(AD 247) 2월에 왕은 환도성이 난리(*관구검의 침입)를 겪었으므로 도읍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평양성을 쌓아 백성과 종묘와 사직을 옮겼다. 평양이라는 지명은 본래 선인 왕검(王儉)의 택지였다고 하였고 또는 왕의 도읍지를 왕검이라 했다

 

*위의 기록을 보면 이곳에 기록된 평양성이 지금의 평양성이 아니다. 지금의 평양성은 장수왕 때 옮긴 것이므로 다른 지역이다. 평양성을 선인 왕검의 택지이었다는 기록을 볼 때 앞서 기록된 현도군 개마현에 위치한 왕검성 평양일 가능성도 있다. 11대 동천왕 때(AD 247)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했는데, 만약 한국사 매국노들이 주장하는 대로 미천왕 15(AD 314)까지 낙랑이 평양을 점령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그보다 67년 전에 고구려가 평양에 수도를 옮길 수 있단 말인가? 선인 왕검의 택지이었던 평양은 현도군 개마현의 왕검성이며, 이곳은 신채호도 주장했던 개평(蓋平) 지금의 요령반도 중간에 위치한 개주시(蓋州市)이다.

 

-“15대 미천왕 3(AD 302) 9월에 왕은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현도군(玄菟郡)을 침범하여 8,000명을 사로잡아 평양으로 옮겼다. 12(AD 311)에 장수를 보내어 요동의 서안평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14(AD 313) 낙랑군을 침범하여 남녀 2천명을 사로잡았다. 15(AD 314)에 남쪽의 대방군(帶方郡)을 침범하였다. 16(AD 315) 현도성(玄菟城)을 공격하여 부수니 적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음이 매우 많았다.”

 

*위의 기록에 볼 수 있드시 15대 미천왕 3(AD 302) 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현도군을 침범하여 8,000 명을 사로잡아 평양으로 옮겼다고 했는데, 여기에 나온 현도는 요동성과 서쪽의 요하 사이에 현도가 있었으므로(고구려 본기 보장왕조 참고) 이곳에서 사로잡은 8,000명은 지금의 평양으로 옮긴 것이 아니고, 현도군 개마현(예전의 평양성이며, 왕검성)으로 옮긴 것이다. 낙랑이 망한 해가 식민사학자들은 AD 314년이라 하고, 그때까지 낙랑이 평양에 있었는데 어떻게 12년 전에 현도군 백성 8,000명을 식민사학자들이 말하는 낙랑의 평양으로 옮길 수 있단 말인가?

 

-16대 고국원왕 4(AD 334) 추 팔월에 평양성을 증축하였다(增築 平壤城). 5년 춘정월 축북국신성(築國北新城). 9년 연왕 황(모용황)이 침입하여 그 군사가 신성(新城)에 미치니 왕이 동맹을 요청하자 그들이 돌아갔다.

 

*위의 기록에서 증축한 평양성은 신성(新城)과 더불어 연()의 침입을 막고자 증축한 성이므로 지금의 평양성이 아닌 연나라와 국경지대에 있는 평양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고국원왕 13(AD 343) 추 칠월 왕이 평양의 동황성으로 옮겨왔으니, 평양성은 지금의 서경 동쪽 목멱산 가운데 있다(秋七月 移居平壤 東黃城 城在今西京東 木覓山中)

 

*위에서 왕이 옮겨 간 평양성은 지금의 서경(西京) 동쪽 목멱산 가운데 있다고 했는데, 이곳을 지금의 평양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평양 동쪽에 동황성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또 지금의 평양은 장수왕 때 옮겼으므로 여기에 표시된 평양은 개마대산(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는 개평(蓋平)의 평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41(AD 371) 동 시월에 백제왕(근초고왕)이 군사 3만명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와이 군사를 이끌고 방어하다가 화살에 맞아 이당 23일에 왕이 서거하였다.

 

*여기에 기록된 지금의 평양과 같은 지역일 가능성이 높으나, 백제가 대륙에도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므로 대륙에 있었던 평양성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대 장수와 15(AD 427) 장수왕 15년 도읍을 평양으로 옮겼다(十五年 移都平壤)

*여기에서 도읍을 옮긴 곳은 지금의 평양이 확실하다고 본다.

 

이병도의 낙랑군치소 조선현=평양은 한국사매국노적 주장이다.

이병도는 패수=청천강북지류, 열수=대동강, 대수=재령강, 낙랑군 조선현=평양을 주장하고 있다.

 

식민사학자들은 이병도의 주장에 대해 이 연구가 본격으로 이루어진 진짜 시기는 사실상 조선시대부터 나오던 학설이다. 일본제국은 조선 학자들의 성과를 가로채었을 뿐. 아래 표에 나오듯 조선시대 중기부터 낙랑군과 관련된 지명을 추론하였다.라고 하면서 일본사람들의 주장이 정말로 타당한 주장이며, 틀림없고 믿을 수 있는 주장이라고 보증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왜놈들의 주장이나 한국사매국노 이병도의 주장은 만고불변,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참으로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나 그 추종자들의 이같은 주장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백겸

1552

-1615

홍여하

1620

-1674

한진서

1777

-?

증보문헌비고

1908

정약용

1762

-1836

이병도

1986

-1989

패수

청천강

청천강

대동강

 

대동강

청천강

북지류

열수

한강

한강

한강

한강

한강

대동강

대수

대동강

 

임진강

임진강

임진강

재령강

낙랑군
(조선현)

평양

평양

평양

평양

평양

평양

 

이덕일 설에 대한 식민사학자들의 비판

이덕일은

식민사학자들에게 '한사군'은 일종의 메시아다. 요즘은 한사군 대신에 한군현 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마치 자신들이 식민지배 찬양 논리를 극복한 것 처럼 말 장난을 한다. (……)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사군은 한반도 북부에 있어야 한다. 실제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는 평양 지역이 아니라 하북성 노룡현 일대이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덕일에 대해서 식민사학자들은 왜놈들의 주장이 타당하며, 한백겸, 홍여하, 한지넛, 증보문헌비고, 정약용도 이병도와 같이 낙랑군 조선현이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덕일에 대해서 신랄히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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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양왕 22(AD 611) 수양제는 고구려를 침략하기 위해서

12(左十二軍)1) 누방, 2) 장잠, 3) 해명,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이병도라는 한국사매국노가 낙랑군의 치소가 조선현이고 조선현은 평양에 있다고 거짓말을 한 조선현이 수양제의 좌1210번째 침략경로에 있었고, 황해도 봉산군 당토성에 있다고 주장한 대방군은 수양제의 침략경로 우1211번째 있었으며, 황해도 풍천이라고 주장한 장잠(長岑)은 좌122번째에, 해주라고 주장한 해명(海冥)은 좌123번째에, 황해도 서흥이라고 주장한 함자(含資)은 우122번째에, 기타 제해(提奚)는 우126번째 수양제의 평양을 향한 침략경로에 있었다. 이들은 압록수(鴨淥水) 서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며, 황해도에 있는 땅이 아니다.

 

수양제 침략군이 황해도에 있는 조선이나 대방, 장잠, 해명, 함자, 제해 등을 통과해서 압록수에 모인 것이 아니다.

 

이병도란 자는 와세다대학 졸업논문을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인데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는 땅들을 모두 황해도라고 맹랑한 주장을 하여 한국사매국노 짓을 하였으며,, 아직도 그 한국사매국노를 추정하는 자들이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신채호는 개마현 왕검성을 요령성 개주시 및 해성시로 보았다.

왕검성이 위치했던 개평은 지금의 요령반도 중간의 개주(蓋州)시다. 단재 신채호는 평양패수고에서 요령성의 개주시(蓋州市: 蓋平) 및 해성시(海城市)를 왕검성 자리라고 보았고 위당 정인보(鄭寅普)1946조선사연구 상()’에서 낙랑군 조선현은 지금 평양과 원래 무관하다면서 신채호처럼 해성현을 왕검성 자리라고 보았다.

 

결론

평양 왕검성의 위치에 대해서 여러 가지의 설이 있고, 장수왕 이후에는 지금의 평양이 평양성으로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의 평양성은 개마대산(蓋馬大山: 지금의 대흥안령산맥이나 노호얼산맥일 가능성이 높다) 동쪽의 현도군(玄菟郡) 개마현(蓋馬縣)에 위치한 왕검성지(王儉城址) 평양이다.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

東 沃 沮 在 高 句 驪 蓋 馬 大 山 之 東[] 東 濱 大 海北 與 挹 婁夫 余南 與 濊 貊 接其 地 東 西, 南 北 長[] 可折方千里.土肥美,背山向海,宜五穀,善田種,

[]蓋馬,縣名,屬玄菟郡.其山在今平壤城西.平壤即王險城也』〔개마는 현의 이름으로 현도군에 속한다. 그 산: 개마대산(蓋馬大山)을 말한다.은 평양성(平壤城) (西)쪽에 있다. 평양은 곧 왕검성(王 儉 城)이다.라는 기록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현도군은 삼국사기 보장왕조에 기록된 바와 같이 당나라 장수 이적이 요하를 건넌 후 처음 고구려군과 전투를 벌인 장소로 요동성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해 있다. 왜놈들이나 이병도 같은 한국사 매국노가 주장하는 압록강 상중류에 걸쳐서 현도군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삼국사기(三國史記) 보장왕 조에 나온 요수(遼水)를 건너 바로 고구려와 싸운 땅이 현도이며, 현도군의 속현인 개마현의 평양은 요수(遼水) 부근 요령성 개평(蓋平)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이병도같은 한국사매국노가 주장한 낙랑군=조선현=평양의 새빨간 거짓말 학설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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