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나 한국사매국노들의 한반도내 한사군설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2021.10.05 | 조회 36

 

이병도나 한국사매국노들의 한반도내 한사군설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양심있는 인간이라면 반성하라

 

낙랑은 한반도에 있지 않았고, 대륙에 있었다.

진태강지리지(晉太康地理志)낙랑군(樂浪君)은 수성현(遂成縣)에 갈석산(碣石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지역은 하북성 동쪽 진황도시(秦皇島市) 창려현에 있는 갈석산이며, 서진(西晉) 시대의 갈석산은 이곳이며, 수성현은 이곳을 가르킨다.

 

그러나 왜놈들이나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나 그 추종자들은 낙랑 평양설과 낙랑군에 속한 속현(屬縣)들이 평양 주변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낙랑군의 치소인 조선현이 평양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사매국노 이병도는

건안(建安)연간(AD 196-220) 중에 공손강은 둔유현 이남 황폐한 땅에 대방군을 설치하고 공손모와 장창 등을 보내어 유민을 수집하고 병사를 일으켜 한.예를 정벌하니 옛 주민들이 점차 모여들었다. 이후 왜와 한에 관한 일들을 대방군에 속하게 하였다.”

(建安中 公孫康 分屯有縣 以南 荒地 爲帶方郡 遣公孫模 張敞等 收集遺民 與兵伐韓濊 舊民稍出 是後倭韓 遂屬帶方)

 

공손강이 새로 만든 대방군에는 열구(列口), 남신(南新), 장잠(長岑), 제해(提奚), 함자(含資), 해명(海冥) 7개 군현을 포함하여 관할하면서 치소를 대방현에 두었다.”는 내용에서

 

이병도란 자는 열구(列口)를 황해도 은율, 잠잠(長岑)을 황해도 풍천, 함자(含資)를 황해도 서흥, 해명(海冥)을 황해도 해주라고 비정하여 대방이 황해도에 있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또 현재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 동남 문정면에 있는 속칭 당토성(唐土城)을 대방군(帶方郡)의 유지로 추정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병도란 자가 얼마나 한국사를 왜곡하고 한국사매국노 짓을 했는지는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역사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영양왕 22(AD 611) 수양제는 조명을 내리기를 고구려는 무리가 혼미하고 불공하여 발해와 갈석 사이를 점령해 있고(崇聚), 요동 예맥의 땅을 잠식했으며...글안의 무리와 해변을 지키는 수나라의 사병을 죽이고, 또 말갈의 항복자와 요서를 침범하였다....나는 풍속을 살피러 유주와 삭주에 순행을 왔으니 이에 고구려의 죄를 물으려 다시 올 수 없다. 이에 친히 6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한다....

 

12(左十二軍)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다.

 

이병도라는 한국사매국노가 황해도 당토성에 있다고 주장한 대방군은 수양제의 침략경로 우1211번째 있었으며, 황해도 풍천이라고 주장한 장잠(長岑), 해주라고 주장한 해명(海冥), 황해도 서흥이라고 주장한 함자(含資), 기타 제해(提奚) 등이 모두 수양제의 평양을 향한 침략경로에 있었고 압록수(鴨淥水) 서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수양제 침략군이 황해도에 있는 대방이나 장잠, 해명, 함자, 제해 등을 통과해서 압록수에 모인 것이 아니다.

 

이병도란 자는 와세다대학 졸업논문을 고구려 대수당전쟁(對隋唐戰爭)에 대한 연구를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고 하는 자인데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는 땅들을 모두 황해도라고 맹랑한 주장을 하여 한국사매국노 짓을 하였으며,, 아지고 그 한국사매국노를 추정하는 자들이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 BC 75년에는 앞서 BC 82년 현도군에 폐합되었던 임둔군의 고지(故地)도 병합하여 그 관할구역이 너무 광대하고 멀어서 단단대령(單單大嶺:함남 長津郡咸州郡 사이의 黃草嶺) 이동(以東)의 옛 땅에는 낙랑군 동부도위를 분치하고, 그 관하에 동이(東暆불이(不而잠대(蠶臺화려(華麗사두매(邪頭昧전막(前莫부조(夫租) 등 이른바 영동(嶺東) 7현을 두었다.“는 내용의 동이, 불이, 잠대, 화려, 사두매, 전막, 부조 등 영동 7현도 모두 함경남도 장진군과 함주군 사이의 황초령이라느니, 황해도 자비령이라느니 하는 매국노적 주장으로 이들 7개 현을 함경도와 강원도 지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사 매국노 이병도란 자는 임둔군(臨屯郡)의 위치는반도의 동북해안의 땅으로 지금의 함경남도 전체에 비정했는데, 한서무제본기의 4군을 설치한 기사의 끝에 붙인 신질이 인용한 무릉서임둔군치 동이현은 장안으로부터 6,138리이다.”라는 것에 근거해 동이현의 장안으로부터의 거리를 추산한 결과, 그 위치가 대체로 지금의 함경남도 남단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한편, “낙랑군 동부도위 7개 현에 대해서도 고구려시대 천정군(泉井郡)의 속현인 동허현(東墟縣)이 동이현의 동이와 음이 비슷하므로 지금의 함경남도 덕원군에 비정하였다. 또한 무릉서에 임둔군의 속현은 15현이라고 한 기록에서 서기전 75년 임둔군을 폐하고 낙랑군에 속한 7현을 각각 함흥·안변 부근으로 비정하였다.“

 

그러나 수양제는 12(左十二軍)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는데, 이병도가 주장한 동이(東暆)는 함경도 덕원이 아니라 수양제의 우1210번째 침략경로에 있었고, 낙랑의 치소이며, 그곳이 평양이라고 주장한 조선현(朝鮮縣)은 수양제의 좌1210번째 침략경로에 있었다. 화려(華麗)는 현도(玄菟)에 속한 현으로 요수(遼水)를 건너 바로 현도가 있었으므로 요수 부근에 있었던 현이다. 화려는 고구려 태조대왕 66년 한나라 현도의 화려를 쳤다는 기록에서 볼 수 있드시 현도에 속한 현이며, 현도는 이세적이 고구려 공격 시 요수를 건너 바로 공격한 성이 현도성이다.

 

수양제의 좌12(左十二軍)1) 누방, 2) 장잠, 3) 명해, 4) 개마, 5) 건안, 6) 남소, 7) 요동, 8) 현도(玄菟: 華麗), 9) 부여, 10) 조선, 11) 옥저(沃沮), 12) 낙랑(樂浪) 등의 길()로 나아가고,

 

우십이군(右十二軍)1) 점선, 2) 함자, 3) 혼미, 4) 임둔(臨屯), 5) 후성, 6) 제해, 7) 답돈, 8) 숙신, 9) 갈석, 10) 동이, 11) 대방(帶方), 12) 양평 등의 길()로 나아가 계속 진군하여 평양에 총 집합하라.“고 하였는데,

 

낙랑군 남부도위와 동부도위에 속한 장잠, 명해, 현도, 화려, 조선, 낙랑, 함자, 제해, 동이, 대방 10개소가 모두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었고, 이병도란 한국사 매국노나 이를 추종하는 한국사매국노들이 한반도에 있다고 주장했던 요동, 옥저, 임둔을 포함하면 13개소가 모두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로인 대륙에 있었다. 악착같이 한사군 한반도설을 주장하는 한국사매국노가 만약 양심이 있는 한국 사람이라면 반성하고 올바른 한국사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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